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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독자 서평이 없다는 것이 아쉬워서 글을 남긴다. 이 책에 독자의 감사와 리뷰가 없다는 것 자체가 이 책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의 역자글에서 김화영 교수는 이 책과 장 그르니에의 섬, 그리고 카뮈의 <결혼/여름>을 20세가 프랑스 3대 미적 산문으로 꼽는다. 카뮈 역시 그르니에의 섬의 앞부분에 '섬에 붙여'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세대에게 영향을 끼친 책으로 <섬>과 이 책,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꼽는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나왔지만, 오히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럽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2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방향을 잃었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해방의 철학'이었을 것이다.
2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의 역사적 진보와 그 결과로서의 시스템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렸다. 더불어 기존 사회의 주류인 도덕과 윤리는 쓸모없는 꼰대들의 억압이 되었다. 로스트 제네레이션, 실존주의, 조금 더 나아가 성해방과 구조에서의 독립을 선언하는 68혁명과 히피 운동...
이런 흐름의 전주에 바로 지드의 이 책이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당시의 젊은이들은 이 책에 열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메시지는 방종한 쾌락에의 찬가가 아니다. 이는 외부의 억압과 금기로부터의 탈출이자 스스로의 기준에서 육체와 정신을 동일시하려는 선언이다. 지드가 중요하게 여기는 '헐벗음'은 이를 잘 보여준다. 도덕과 윤리와 정신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모든 것을 가지려는 '살찐 쾌락'도 거부하는 것이다.
전에 적었던 감상을 올린다.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도 [그대 자신]에게---그 다음으로는 그대보다도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 주기를."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위의 구절이 그것을 요약해 줄 것 같다.
나 자신이 꽉 막힌 틀 속에 갇혀 있다는 억압감과 무료함 속에서 열정에 찬 이 책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새로운 시선과 해방의 분위기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 [중요성]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어야 하고 보는 것 속에 있어서는 아니될지어다. 그대가 [확연한] 지식으로서 그대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도록 그대와는 확연히 따로 남게 될 것이다."
'중요성'이 '지식'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요구와 시선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시선'속에 있다는 이 말이 가져다 주는 청량감과 설레임. 중요성이 단지 자기 자신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혹은 바깥의 대상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지나쳐 가는 외부의 대상들을 바라본다는 것이 마음을 끈다.
내 스스로의 시선으로, 그러나 지나쳐 가는 외부에 대해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외부와 자신의 조화를 이룬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이상적인 자세도 이런 것이다.
이 책의 말조차 버리고, 자신이 배운 것을 잊기 위한 여행. 자신이 알고 배운 것은 분명 자신의 일부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지만, 지식 자체가 삶과 같은 말이 될 수는 없다.
" 행동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행동할 것. 선인가 악인가 개의하지 말고 사랑할 것. 나타나엘이여, 나는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 주마.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전에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정열이 나의 사후까지 살아 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것을 이 땅 위에서 털어놓고 나서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나는 [희망]한다."
인간이 정한, 그저 '공통적인 감정의 인식'에 지나지 않는 '공감'으로 정해진 것은 善도 神도 아니다. 도덕은 결국 그 자체가 신성하고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거리낌도 없이 욕망을 소진하여 더 바랄 것 없는 '절망' 속에서 죽기를 바라는 이 희망은 더 없이 '인간적'이고 '주체적'으로 보인다.
단순한 쾌락주의적 행동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 외부의 관습적인 고정틀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의 해방을 설교(?)하며 읽는 이의 가슴을 채우는 알 수 없는 설레임과 두근거림.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매력이자 신선함이 아닐까?
"또 한마디---어떤 사람들은 이 책 속에서 다만 욕망과 본능의 예찬밖에는 볼 수 없거나 혹은 오직 그것만을 보고자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좀 근시안적인 소견인 듯하다.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쳐들 때 거기서 보는 것은 그런 것보다도 [헐벗음]의 옹호이다. "
-1927년판 서문 中-
정말 다시 읽으면서 이전에는 욕망과 본능의 예찬을 봤다면 이번에는 그것과는 좀 다른 부분을 보게 된다. 욕망과 본능에 대한 방종이 아닌 절제되고 자유로운 해방, 그것이 '헐벗음'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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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앙드레 지드 작가님의 지상의 양식책을 보고 쓰는 글입니다. 본편의 대략적인 내용과 개인적인 감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뮈 스승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호기심이 일었다 카뮈가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문체가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따 |
|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리뷰입니다. 앙드레 지드의 작품은 좁은 문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대여로 지상의 양식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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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앙드레 지드의 사상적 자서전이자, 전 세계 젊은이 들에게 보내는 육체와 정신의 해방 찬가다. 지드는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모든 구속에서 벗 어나 강렬한 생명력을 향유하는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모든 감각을 통해 자연과 생명을 맞아들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직접 느껴 보지 못한 지식은 무용할 뿐이며, 머리로 배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비워 버리는 것이야말 로진정한 교육의 시작이라고 가르치는 역설의 교과서다. 지드는 그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바라본 세상, "맨발에 닿는 세계의 생살"을 서정적이고 수 수하게 표현해 냈다. 하늘보다는 땅, 신보다는 인간, 영혼보다는 육체, 형이상학적인 관념이 나 이성보다는 형이하학적인 현실의 여러 모습들과 인간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그는 또한 일생 동안 단 한 번밖에 없는 봄, 그 찬란한 청춘의 품입없는 열정과 시람음 노래하며,.과거 와 미래에 살면서 정작 지금 이 순간을 놓치는 젊은이들에게, 순간들의 현존에 온 마음을, 존재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활짝 핀 꽃보다는 약속이 가득한 꽃망울을, 소유보다는 욕망을, 완성보다는 발전을 사랑"한 지드는 지상의 양식.을 통해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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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소설인가 싶다가도 장르가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하나의 길이 여기 있다. 분명치 않은 울림이 있는데 책 속보다 그 밖에서 감지해야한다. 조용한 구심점이 되어주지만 내려놓고 보면 그 안에 없다. 돌고 돌아봐야 알 수도 있다. 이토록 특별한 양식은 변하지도 않고 여기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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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는 어린 시절 좁은 문이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였습니다. 그 이후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이 거의 없습니다. 지상의 양식은 사실 제목만으로도 어려울 것 같아 손이 가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이 책은 앙드레 지드가 결핵으로 투병하는 동안 가상의 수신인인 지드의 수제자인 나다니엘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글입니다. 읽는동안 깊은 감동을 받고, 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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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이런 류의 철학서,인문서가 없을까 하고 목말라하던 차에 지상의 양식을 접하게 되었다. 예전에 가벼운 마음에 들었다가 한번 포기한 적이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된 터라 오픈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지상의 양식을 보기 전에 앙드레지드의 '좁은문'을 보며 지드가 얼마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한지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고전의 고전이라 추천하는 책, 다소 어렵지만 음미하면서 읽는 그런 느낌으로 정독을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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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만은 않았다. 빗대어 쓰여진 표현이 많았고, 잠시 멈춰 생각하고 고민해볼 거리가 책장 곳곳에 가득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멈춰 섰다가 나아가다가 다시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그런 형태의 독서 여정이었다. ‘지상의 양식’은 능동적인 독서가 요구되는, 아니 어쩌면 능동적인 독서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그런 한 권의 책이었다.
그럼에도 깊은 인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짜릿한 전율을 안기는 문장이 여기저기서 솟아올랐고, 때론 격한 공감을 때론 격한 의문을 유발하는 키워드들이 신선했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곱씹을수록 점차 다른 시각으로 보이는 대목들 역시 흥미로웠다. 머리가 지끈거리던 순간순간이 있었으나 능동적인 독서가 안기는 기분 좋은 지끈거림이었다.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 쓰여진 문장이야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겠지만, 내 사고방식이 변함에 따라, 내 주변 상황이 변함에 따라,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함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면모와 매력을 드러낼 책이라 비치는 만큼, ‘지상의 양식’은 곁에 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리뷰를 통해 조심스레 권해보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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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마 알베르 카뮈가 추천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당시의 프랑스 문학계에는 실존주의를 비롯한 커다란 바람이 불고 있었고, 지드가 같은 세대였다고 할 수 있을지 그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할 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어떤 맥락 내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지드의 자전적인 성격을 띄고 있고 삶에 대한 하나의 지침을 제시해주는 것으로서 도움이 되는 책인 것 같다. 우리 자신을 때로는 놓아주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에 피해를 끼치며 막 방종하라는 건 절대 아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옥죄는 건 자신인 경우가 참 많고, 가끔은 본능에 충실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좁은 문>도 사실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꼭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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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작가인 박웅현씨의 여덟 단어에 언급되던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철학적인 소양이 매우 부족한 나는 읽으면서 고문을 당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자 한자 읽어 가면서 조금씩 고민하던 것들에 대한 대답을 얻어가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부닺거리며 내안에 들어와 고민하는 것들의 본질을 헤집어 준다. 하나씩 곱씹어 가며 읽어 나의 마음의 양식을 꼭 쌓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