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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예전에 우리가 갖고 있던 것, 보고 있던 것, 그리고 일상에서 항상 마주치던 것들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것들이 왜 사라졌는지, 혹은 언제 없어졌는지 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마치 애초부터 그런 것은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책에서든, 아님 시골여행길에서든 예전에 보았던 것들의 흔적을 발견하면 한없는 아쉬움 속으로 빠져든다. 지금은 가고 없기에, 사라져 버린 것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때로는 서러움으로, 때로는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그리고 때로는 다시 보기를 기대하는 소망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지만, 혹은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감각 속에 살아있는 것들을 살펴보고 있다.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우리들이 일상에서 늘 접하던 것들이기에, 책을 읽으면서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긴다. 저자가 이처럼 사라져버렸기에 마음에 사무치고, 가슴에 울리는 것으로 꼽은 것들은 가재도구나 먹을 거리, 마을의 풍경, 놀이, 풍습 등이다. 마을, 동네, 고샅, 장승, 서낭당, 징검다리, 우물, 아궁이, 아랫목, 꽃신, 책보, 검은 고무신, 서리, 칡뿌리, 바느질, 할머니 무릎, 혼례, 초가삼간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말을 듣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맺히기도 하고, 가슴 속에서 통증이 몰려오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들이기에 서러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나는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다. 사립문 밖으로 나있는 고샅에서 동무들과 숨바꼭질했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밤길에 어머니 심부름이라도 할라치면 서낭당이 무서워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어깨에 책보를 둘러매고 집으로 오던 하교 길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유람 길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여름이면 냇가에서 해가지는 줄을 몰랐고, 산으로, 들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때로는 오디 때문에 입 주위가 자주색으로 물들었고, 때로는 칡뿌리를 찾다가 옷이 흙투성이가 되곤 했다. 기억을 더듬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지만, 추억에서 깨어나 정신이 들면 지금은 볼 수 없는 모습들이고, 가슴 속에서만,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는 광경들이기에 서러운 생각만 든다. 겨울 밤,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에 두발 넣고 둘러앉아 깎아 먹었던 생 고구마며, 무는 그 맛이 어떠했는지, 결코 잊을 수 없지만 지금은 그 맛을 볼 수가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얼지 말라고 윗목에 보관하던 고구마나 땅속에 넣어두었던 무를 지금은 더 이상 볼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활이 풍족해지면서 어려웠을 때의 모습들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지만, 그것들이 기억의 저편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일 게다.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 없어지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고향도 사라지고, 일가친척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의 아이들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되어만 간다. 그리움은 아쉬움이고 소망이라고 한다. 이제는 잃어버린 것들이기에 더욱 소중하고, 그리움으로,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비록 그것들이 그리움을 넘어 서럽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자꾸만 메말라가는 마음속에 잠시나마 고향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 서러움 한 조각이라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좋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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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검고 작은 머리통들이 낮은 담벼락을 등지고 잘도 숨는다. 숨바꼭질, 술래잡기, 얼음땡……. 골목이 내게 놀이터였다면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81)에게는 ‘이젠 없는 것들’이, 시골 ‘고샅’이 그리운 놀이터였다. 그 자신이 할아버지이자 할머니가 되어 무릎베개한 손주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백여 개의 추억 보따리를 풀어낸다. 시골 아이는 땡볕 아래 ‘고샅’에서 친구들과 얼굴이 불그뎅뎅해질 정도로 뛰어논다. 모처럼 생긴 동전 몇 푼으로 ‘구멍가게’로 달려가 맛난 걸로 뱃속을 채운다. 그러다 탈이라도 날라치면 방바닥에 배를 깔고 ‘할머니 약손’을 청한다. 그러면 주름진 약손은 “체한 배를 내리자! 체한 배를 내리자!” 하며 “배 위에서 빙글빙글 맴돌이를 친다.” 하지만 이제는 고샅도, 구멍가게도, 할머니 약손도 사라지고 없다. 드라마 〈곰탕〉속 순녀(김혜수)는 남편 인성(류시원)이 가끔 내려와 얼굴을 비춰도, 연정 품은 남편 친구 재훈(한재석)이 찾아와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한 솥 가득 곰탕을 끓여냈다. 이렇듯 아궁이는 내게 모락모락 피어나는 하얀 연기처럼 여인이 부질없는 마음을 날리는 곳이었다. 원래 군불을 때우면 뜨끈한 ‘아랫목’이 되고, 남은 잿밥에 생밤이며 생고구마를 넣으면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되던 곳이 아궁이였다. 저자는 사라지는 아궁이를 그리며 “한 집의 더운 기운도”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며 쓸쓸해한다. 아버지는 지금 개떡을 보면 색이 너무 곱고 너무 고소하다고 하신다. “씁쓰레하고 시큼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시장기가 도는 입으로는 먹을 만했으며,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는 그럴듯하기도 했다.”는 개떡이 진짜 개떡이라고. “오늘날로 치면 핫도그나 햄버거쯤” 되겠지만, 요즘은 아이들은커녕 “개가 한숨지을지도 모를” 개떡이 되었다. “가을이 되면 감처럼 노리끼리하게 익는” 고욤은 “쓴맛이 배어나곤 했으니 그 자체로는 맛난”과일이라 하기 어려워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속담까지 낳았다. “여름에 큰바람이 불면” 떨어지던 풋감을 ‘청시’라 했고, “앙상한 나무 꼭대기쯤”에 달랑 한 알 달려있던 감을 ‘까치밥’이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그 “마지막 남은 까치밥 한 알”이 다음 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작은 소망을 간직하는 애틋한 마음조차”씨가 말라버렸다. 어디 사라지고 없어진 풍경이 이것들뿐인가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눈에 삼삼어리고, 귀에 자욱하고, 코며 입에 어릿대는 것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저자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뿌리 잘린 나무처럼” 살고 있다던 그의 말이 가슴 한 켠을 아련하게 짓누른다. 사람에게 그리움이 없다면, 추억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그렇기에 정성껏 추억을 그러모아 꾹꾹 눌러 담은 이 두 권의 책이 더욱 귀한 것이리라. 곳곳에 듬성듬성 줄지어 놓은 황순원의 「소나기」나 박목월의 「나그네」같은 문학작품, 혹은 옛 노래와 함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소년을 위해 나온 책이지만 오히려 어른의 외로움을 달래는 듯하다. ‘이젠’ 꼭꼭 숨어버린 우리의 ‘그리운’ 것들을 찾아낼 때다. 책장(冊張)을 들춰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