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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운데에서도 이길 수 없는 사랑은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이라 생각한다. 이미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져 그 방향을 향한 채로 시작한 감정이기도 하고, 묘하게 사람의 양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 최근에 본 퀴어 영화 《내가 사랑한 남자》가 있다. 수영코치 뤼카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마르탱에 질겁한다. 일단 뤼카는 함께 살고 있는 연인 리즈가 있고, 동성애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르탱은 뤼카 주변을 맴돌며 줄기차게 들이댄다. 그러던 어느 날, 뤼카는 우연히 마르탱이 에이즈 환자이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르탱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한편 리즈는 연인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뤼카는 마르탱에게 가 버린다. 그 애는 아프잖아…. 나중에 마르탱이 사라졌을 때는 화풀이를 한답시고 리즈에게 이런 말도 한다. 너는 좋겠다? 걔가 없어져서 말이야. 리즈는 말을 잇지 못한다. 뤼카의 말에 반박하는 건 마르탱을 모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거다. 그 사람은 나 없이 안 돼, 알잖아, 너는 괜찮잖아. 너는 건강하잖아. 너는 나 없이도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나도 니가 필요하다고. 새로운 사람, 불쌍한 사람에게 가 버린 이의 귀에 남겨진 이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다.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가 그런 내용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샤르가 패닉이 되어 이브를 껴안고 ‘내 아기, 내 아기’를 되뇔 때,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행간에 감춰진 많은 것들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보다 충격적이고, 보다 잔인한. 이브를 향한 리샤르의 감정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지만 4년이라는 시간은 그 칼날을 무디게 했다. 이브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며, 복수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리샤르. 뱅센 숲이나 불로뉴 숲에서 이브의 고통을 지켜보던 그. 이브를 만들고, 이브를 가르치고, 이브를 돌보는 리샤르는 그녀에게 미갈(독거미)이라 불린다. 이름을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이브를 고립시키기 위해 리샤르 역시 자신을 포기한다. 세상에 두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서로의 존재에 맞춰진 시계. 나만 바라보고, 내가 주는 것을 취하며, 결국 나에게 매달리는 존재. 관음하던 고통은 전이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거미줄에 잡힌 먹이를 가련히 여긴 순간부터, 조금씩 허물어지는 거미줄 위에서 제어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자신을 예감하면서, 리샤르는 결국 자신의 피조물에 굴복한다. 제어당하고, 제어하는 입장의 전복. 하지만 리샤르는 피그말리온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진 못할 것이다. 이브는 여전히 리샤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리샤르는 여전히 미친 사람이므로. 함께 한 시간동안 체득한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리샤르는 이브가 자신을 떠날까 봐, 이브는 리샤르가 언제 예전으로 돌아갈지 몰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서로를 구속하고 제한하면서, 서로에 한없이 매달리면서. 마치 세상에 두 사람만 남아 있는 것처럼, 서로만을 바라보면서. 파괴적인 감정은 강력한만큼 깨지기 쉽고, 그 안에 자리한 서로에 대한 연민은 다시 그 조각을 붙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견딜 수 있는 선을 학습하고 그 언저리에서 머물, 불안한 관계. 아, 움직일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늪처럼 깊어져만 가는 그 감정은 비틀린 사랑일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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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만든 거미줄 위에서 움찔움찔 거리는구나. 산채로 사로잡힌 녀석을 둘러싼 거미줄을 하나씩 벗겨내는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독기가 가득해. 거미줄이 다 벗겨지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 물론 넌 알고 있겠지. 어떤 녀석인지 네 맘에 꼭 드는 녀석으로 잡았을 테니까. 거미줄을 벗겨내다 죽여 버리게 되면 어쩌나. 그러면 이 이야기가 끝을 맺지 못할텐데, '미갈' 너의 이야기가 세상에 풀려나오는 걸 상상해봐 멋지지 않아? 몸서리치지 않는 이가 없을 게야. 독거미가 등장하는 잔혹한 SF 장르를 상상한 독자라면 심장마비로 죽어 버릴지도 모르지. 가슴 속에 얼음이 들어찬 듯 아주, 아주 서늘할 거야. 이것이 네가 바라는 건가? 아니야, 넌 더 엄청난 것을 바랐을 게야. 하지만 어쩌지. 세상이 때론 공평할 때도 있거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는게 삶이야. 그렇지?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에 등장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리샤르, 이브, 알렉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 굳이 이름을 밝히자면 또 한 명의 남자 '뱅상', 나는 이 뱅상이라는 이를 맹세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알렉스의 독백으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어느날 사라졌다는 것 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뱅상이라고 밝혔을 때의 충격이란, 오랜시간 함께 한 벗이 납치당한 듯 했다. 알렉스와 뱅상 그리고 리샤르와 이브의 연결점은 어디일까. 이들이 운명적으로 만나지게 될 때가 있기는 할까.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아니,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영문을 모른 채 끌려 간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어느 이름 모를 무인도는 아니었다. 우리들처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 처럼 보이는 리샤르, 그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리샤르의 처음 감정은 '복수'였을 것이다. 가장 잔인한 복수. 그러나 삶은 뜻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잔혹하다. 이브의 고통을 즐기는 리샤르의 모습은 이해할 수도, 이해되지도 않았다. 정신병원에 있는 비비안에게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조차 비비안의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뱅상이 리샤르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리샤르의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뱅상의 모든 것이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알렉스가 등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뱅상이 철저하게 지켜냈던 알렉스가 리샤르의 곁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운명이라는 고약한 녀석 때문일 것이다. 한 곳에서 만나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겐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끔찍함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공포심이 더 크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을 덮을 수 있을까.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가 가지는 큰 매력은 '복수'라는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냥 잊혀질 수도 있는 단 한 편의 글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나를 휘감은 거미줄처럼 숨막히는 공포와 전율을 선사한다. 진실에 가까워질 수록 벗어나려 버둥거려 보지만 진실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공포, 이것이 '독거미'의 매력인 것이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이브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가 옭아맨 거미줄을 끊어낼 수가 없다. 아니, 끊어내고 싶지 않다. 이미 강한 '독'에 중독 되었으니.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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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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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 <독거미> 나는 영화보다 책을 먼저 읽었기때문에, 조금의 사전정보도 없이 책을 읽었기때문에 책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복수극이니까. 지금껏 이렇게 잔인하다고 느낀 복수극은 없었으니까.
중간에 끊어읽을 수 없었을 만큼 푹 빠져서 읽었다. 이 책은 굉장히 어둡고 질척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깔끔하고 냉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새로웠다. 그리고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기도 했지만 끝까지 읽어야하는 책이기도 했다.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밝혀지는 진실들이 조금 더 소름끼치게 만들고, 잔인하게 만들지만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히고 설킨 그들의 운명을 훑어 볼 수 있었고, 안타까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처를 안고, 복수를 하지만 그 복수를 통해서도 예전의 모습은 되찾을 수 없을만큼 아주 냉철하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된 성형외과 의사가 굉장히 인상깊었다.
이번 해에는 무조건 많은 책을 읽자고 다짐한 나에겐 무지 반가운 책이었다. 긴장되고 애태우는 내용의, 행복하진않았던 책이었지만 이런 책이라면 하루에 한권씩도 읽겠다 싶었으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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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는 마치 엘로이나 챈들러처럼 시작됩니다. 거대한 저택, 부유한 성형외과 의사, 그 안에 갇힌 아름답고 반항적인 여자. 그러나 멋진 탐정, 우직한 경찰과 같은 존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난데없이 한 남자가 납치된 이야기가 사이 사이에 삽입되고, 다쳐서 잠수타는 은행강도의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독자들은 의문에 빠져듭니다. 각자의 속도로 진행되던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과거의 한 점에 모이게 되고, 이야기는 빠르게 결말로 치닫습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독자의 예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지나치게 결말을 서두른 게 아닌가, 매력적인 전개에 비해 너무 서투르게 진행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이며, 알모도바르가 이를 어떻게 영화로 구현할 지 벌써부터 기대하게 됩니다. (이하 스포)
종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요? 힌트는 비비안의 의사가 했던 말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그러죠. 당신은 성형외과 의사라서 뭐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런 식으로 고칠 수 없다고요.("정신과는 성형외과와 다릅니다. 겉을 바꿀 수 없어요. 선생님 같은 성형외과 선생님들이 쓰는 수술도구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육체(외양)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그의 정신(마음)마저 달라지게 했습니다. 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스톡홀름 신드롬, 피그말리온 효과 등이 떠오르지만, 결국 종케는 사람의 마음과 육체를 칼로 긋듯 명확히 분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요. 누구보다 가혹한 복수를 꾀했던 미갈이 결국 이브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고, 그토록 탈출을 염원하던 이브가 다시 독거미(미갈)를 살려주고 제 발로 돌아가는 결말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억지스러운 느낌은 주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하게 이어지던 감정의 선을 끈기있게 따라잡은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단선적이지 않고, 그 스펙트럼은 복잡하고도 오묘한 빛깔로 채워져있음을... 종케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짧지만 힘있는 이야기입니다. 한여름의 읽을거리로 손색이 없다고 여겨지네요. 본문에도 썼지만 너무나 알모도바르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어서 영화에 대단히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이런 이야기인가, 하고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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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해보면 간단한 포맷이다.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성형외과 의사가 매력적인 여자와 함께 좋은 저택에서 산다. 그는 여자를 미워하고 학대하는 것 같지만 조심스럽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남자는 대체 왜 그러는가? 그리고 여자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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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부유한 성형외과 의사 리사르의 저택에서 시작된다. 그의 집에는 아름다운 여인 이브가 갇혀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가 이브가 리사르의 심기를 건드리면 강제로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강요받게 되고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이브의 얼굴을 보며 리사르는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누군가로 부터 쫓기고 이유도 모른채 감금당하는 뱅상, 그를 가둬 짐승 취급하며 길들이려 하고 있는 미갈 (미갈, mygale은 커다란 독거미를 가리키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미갈은 뱅상을 살려두며 처음에는 가혹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뱅상이 원하는것 이상을 해주기 시작한다. 그에게 먹고 자고 배출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그림과 음악으로 문화적인 생활도 누리게 해준다. 점점 뱅상은 자신의 이런 삶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 미갈을 믿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렉스, 뱅상의 친구이며 은행털이로 지명수배 당하고 있는 인물.
자신의 불리한 상황으로 성형외과 의사 리사르를 이용해 성형을 받아 탈출하고자 이브를 납치하지만 일이 꼬여 상황은 역전된다.
이렇게 몇 안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거미줄 처럼 얽히고설켜서 하나로 연결이 되며 리사르와 이브, 미갈과 뱅상, 알렉스의 잔혹하고 기괴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문장 하나 하나가 여인인 나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었지만 결말이 너무 궁금하여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 소설 중간에서 몇개의 단서로 결말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사건의 시작과 끝, 인간의 끝과 시작은 복잡하게 얽혀들어가기에 이 책이 흥미진진했던것 같다.
사실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좋아하는 감독중에 하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영화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했다면 당연히 기묘한 이야기이며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을것이 확실하였으므로 결국 내 예상은 맞았다. 이 영화는 내가 사는 피부(The Skin I Live In )라는 제목으로 내년에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예고편이 공개되어 있다. 리샤르 역에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캐스팅 되었다. 허허허 예고편 보니 딱이네. 마지막으로 특히 남자분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아주 예전에 개봉한 마이클 더글라스와 글렌 클로즈의 위험한 정사를 기혼 남성분들께 권하고 싶은 이유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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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샤르는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성난 못짓을 애써 누르고, 빠르고 힘차게 본채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쾅 닫았다. 계단까지 뛰다시피 갔다.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올랐다. 2층에 오르자, 주먹 쥔 손을 쳐들었다가 다시 내리고, 검지를 둥글게 말아서 그 손가락만으로 살며시 노크했다." -본문 중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소설이라는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일단 책을 먼저 읽었다.(뭐 딱히 상관은 없다. 영화는 안봤으니까) 시작부터 끝까지 거미줄에 걸린 먹이의 느낌이랄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옴싹달싹 못하는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옥죄는 거미줄처럼 책 <독거미>는 촘촘하다. 물음표로 시작하는 이야기와 전개는 백 여개의 느낌표로 끝난다. 이 책에 대해 감히 말하자면, 올해 읽은 책 가운데 최고가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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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독특하게도 두 개의 서체로 기술되어 있다. 굵은 서체로 써진‘너’에 대한 이야기와 보통체로 써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유연한 서사는 제각기 다른 길을 걷는다. 어떤 연결점도 없어 보이는 서로 다른 인간들만 보인다. 단지 폐쇄된 공간에 어떤 인간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막연한 유사성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될 뿐. 누군가가 쫓기고 그 집요한 추적 끝에 생포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까지는 성실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까닭도, 또 왜 동물실험을 하듯 사람을 매어놓고 길들이는 작업처럼 보이는지도 암흑을 더듬듯 오리무중이다. 이러한 구성과 추리기법은 꽤나 낯섦에도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또 하나의 시선은 은행털이 중 경관을 살해하고 도주하는‘알렉스’라는 이십대 청년을 쫓는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공개수배를 피해 은둔하고 있는 자. 거미줄을 처 놓고 자신은 어딘가에 숨어 엿보며 먹이가 걸려들면 서서히 말아 보관하고 조금씩 먹어치우는 독거미처럼 완전한 무기력 상태로 몰아넣고 사슬에 묶인 먹이를 찾아온다. 이 사악하고 잔인한 괴물을 청년은 '미갈(Mygale: 독거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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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너에게 주인은 '미갈'이었어. 독거미와 같았어. 은밀하게 슬금슬금 움직이고, 잔인하고 흉포하며, 강박적이면서도 자기 계획에 치밀하니까. 자기 소굴에, 이 호사스러운 거미줄에, 자신은 간수고 너는 죄수인 이 화려한 감옥에, 몇 달 동안 너를 가두고 자신은 집안 어디에 숨어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