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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읽을 땐 이 책이 예전에 한참 유행하던 여자들을 마녀라고 몰아서 화형 시키는 마녀사냥을 주제로 쓴 도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면 이 책 속 여자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같은 내용으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고 그걸 알게된 여자는 복수를 하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사랑을 해도 진실되지 않은 사랑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의 나오는 인물을 몇명 애기 해 보자면 니콜, 에마, 태주, 샬롯, 에드워드, 초희 가 있다. 니콜은 자신이 200년 산 마녀라고 했다. 태주는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가 사흘만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켓을 들고 병원 앞에 매일 맨발로 나와 추움을 이겨내고 서있었다. 그걸 본 니콜이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이 그 아이를 살려주겠다고 한다. 자신은 마녀라고 말하면서, 니콜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6번째 손가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태주는 6번째 손가락을 찾아 다녔다. 그녀는 유모차들만 보면 달려가서 아이를 보곤 했다. 여기서 피켓을 들고 병원 앞에 서있는 것과 유모차만 보면 달려들어 아이를 보는 것은 아이를 잃은 엄마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그녀들은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고 아이만 보면 자신의 아이가 생각이 날테니까 말이다.. 니콜은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20살이나 젊은 여자를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에마다. 에마는 니콜의 남편을 버린 채 돈이 많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니콜은 에마에게 자신과 같은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이 어린 여자와 바람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에마는 충격이 뛰쳐나갔고 술만 마시다가 졸피뎀과 마약을 먹고 한 남성과 싸우다 병에 맞아 죽었다. 이런 내용들이 전개 되다가 마지막에 있던 그 큰 반전에 나는 한동안 벙쪄있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 자신이 마녀가 되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 정말 그렇게밖에 자신을 만들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것일까 이 책은 처음엔 단순하고 간단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으나 보다 심오했고 내용도 깊었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고 책을 읽은 후에 여운이 남아 홀로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예스24 리뷰어 클럽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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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마녀라고 소개하는 여자가 있다. 이 마녀가 한 여자를 본다. 그녀는 태주다. 태주는 출산 후 스물여섯 시간 만에 딸을 잃었다. 출산 도중 태반을 먹는 바람에 죽었다고 의사가 말했다. 이 상실이 그녀를 미친 사람처럼 만들었다. 겨울에 맨발로 사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딸의 죽음은 그녀와 남편의 사이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일상이 무너진 자리를 광기와 절망이 차지했다. 초록 눈의 마녀 니콜은 태주에게 끌린다. 니콜도 샬럿이란 딸은 잃은 적이 있다. 마녀는 태주에게 죽은 딸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마녀이기에 가능하다고. 현실에서 몇 가지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마녀 니콜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실제 마녀가 있고, 마녀사냥꾼만이 마녀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를 쫓는 마녀사냥꾼은 산부인과 의사인 데이비드다. 이야기 중에 그녀가 데이비드를 만난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녀의 남편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에게 빠진 이야기를 한다. 이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을 드라큘라라고 말하는 사람과 힘을 합쳐 그 여자를 파멸로 이끈다. 이 남자와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배신과 복수 이야기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분적으로 재밌지만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다.
니콜은 마녀사냥꾼을 피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끝에 지금은 한국에 머물고 있다. 태주는 니콜의 말에 빠져들었다. 죽은 아기를 부활시킬 수 있다니 절망에 빠진 그녀이기에 지푸라기라고 붙잡고 싶다. 마녀는 아기 육손이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작은 희망은 이런 무도한 요구 사항을 따르게 한다. 절망 속 희망이 길에 돌아다니는 유모차 속 아기들의 손가락을 헤아리게 만든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는다. 아기의 손가락을 자를 가위를 들고 그곳을 찾아간다. 인간의 욕망은 이런 참혹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
마녀와 일반 여성의 공통점은 둘 다 아이를 잃고 죄책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태주가 아기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구해왔을 때 다른 요청을 한다. 임신한 열일곱 소녀를 데리고 오란 것이다. 여학교 앞에서 이런 학생을 구하려고 기다린다. 그러다 육손이의 손가락을 구하러 갈 때 본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초희다. 기존의 두 여성은 출산과 상실을 경험했다면, 초희는 아직 뱃속에 아기를 품고 있다. 물론 그녀는 이 임신을 불안해 한다. 이제는 너무 늦어 낙태도 힘들다. 이렇게 이야기는 상실에서 작은 희망으로 넘어간다.
니콜과 태주의 이야기에서 초희로 넘어가는 과정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마녀의 마법으로 부활이 가능할까 하는 의혹을 던져준다. 초희가 마녀의 제물로 올라갔을 때 태주는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초희의 뱃속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고, 자신의 아이가 부활한다면 행복할까? 태주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다른 엄마가 자신처럼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믿는 순간, 당신이 바라는 걸 이루게 될 거예요.”란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믿고 바라는 것에 따라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니콜과 태주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도 바로 이 현실 인식이 차이 때문이다. 이 문장을 전달하는 것은 니콜의 목소리라고 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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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추운 겨울 지하철역 사거리에서 가슴아픈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있는 여자와 유모차만 보면 쫓아다니는 여자를 보며 어떻게 이런 시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서평을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니콜, 태주 그리고 초희. 세 여자의 이야기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이 중 진정한 빛의 마녀는 누구였을까?
책의 내용에서 공식적인 마녀는 니콜이다.
200년 이상을 산 마녀. 남편의 외도로 상처입고, 화재로 여덟살 딸을 잃어 마음의 상처로 세계를 떠돌다가 현재는(9개월 전부터) 한국에 정착하여 사는 런던 여자 니콜.
검은 코트의 태주. 태어난지 사흘된 딸을 잃고 온전하게 이 세상을 누리고 살 수가 없어 매일 피켓을 들고 병원 앞에 서있는 여자. 검정코트를 입고 맨발인 채로.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니콜의 말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여자.
17세 청소년 임산부 초희. 임신 사실을 안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고, 뱃 속의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할 즈음, 마녀가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하여 그 마법 재료를 구하러 가고 있는 태주를 만나고, 초희 뱃속의 아이가 필요해진 태주에 의해 마녀 니콜과 대면하게 된 초희.
세 여자의 각자가 지닌 가슴 아픈 사연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연들을 읽어가면서 이 여인들이 밝은 빛으로 스스로 걸어나가길 바랐다. 아픔을 극복하는 뻔하지만 희망적인 소설이길 바랐다.
이 책을 다 읽고 진심으로 고백하건데 나는 이들의 고통에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남편에게 크게 배신당해본 적도 아이를 잃어본 적도 원치 않는 아이를 가져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이들이 아픔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해서 뭔가 답답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가? 왜 그 아픔에만 집착하고 있나? 왜 왜 왜? 많은 질문들과 이해되지 않음이 교차했다. 그나마 분량이 가장 적은 초희가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니콜 , 태주와는 다르게 자신이 처한 문제에 대해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내맡기는 쿨함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가장 단기간에 해결 내지는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줘서 그나마 다른 인물들 보다는 덜 답답했다. 니콜과 태주...... 이 여인들은 아직 제대로 평가를 못하겠다. 그럴 수 밖에 없음은 어느 정도 이해 되어도,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가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니콜의 그동안의 행적이 사실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사실이라면 니콜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에드워드(마녀사냥꾼 책 표현 -읽는 재미를 위해 정체를 비밀로 해야겠다 )는 니콜의 뒤를 쫓기만 했을까? 좀 더 일찍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태주는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했을까? ,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밝은 빛을 쳐다본 후의 삶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많은 의문이 남고,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나처럼 같은 여자라도 충분히 공감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남자라면 인물들에 대해 더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 '빛의 마녀'가 좋다.
물음표가 많이 떠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해볼 것들이 많았다는 것. 하여 아직도 이 소설의 인물들을 계속 생각하게 한다는 것.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이게 내가 이 소설이 좋다고 한 이유다.
어쩌면 조만간에 이 소설을 다시 펼쳐 볼지도 모르겠다. 난 아직도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고 니콜과 태주의 과거에 묶여있어서.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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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는 마녀들 - 김하서, 『빛의 마녀』
마녀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마녀로 행세하는 여자가 있다. 남편이 바람을 피자 여자는 자기 마음속에서 다른 자아를 찾았다. 자신을 타락한 천사로 소개한 그는 여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 환상 속에서 여자는 다섯 살 딸만 있는 집에 불을 질렀다. 아이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 이때부터 여자는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았다. 세상을 떠돌다가 한국에 왔다. 스스로를 200살이 넘은 마녀로 생각하며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하며 일상을 영위했다. 니콜의 이야기다. 니콜은 한국에서 강태주를 만난다. 그녀는 태어나 삼일 만에 목숨을 잃은 아기를 잊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병원의 책임을 물으며 한겨울에 맨발로 거리에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외면하는 그 여자를 니콜은 외면하지 못했다.
니콜은 태주에게 죽은 아이를 살리는 마법을 펼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먼저 육손이 아기의 여섯 번째 손가락이 필요하다. 아기를 살릴 욕망에 부푼 태주는 봉사활동을 빌미로 천사원에 가 육손이 아기의 손가락을 구해온다. 태주는 니콜이 마녀라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 아니, 그녀는 죽은 아기를 살릴 수 있다는 니콜의 말을 믿는지도 모른다. 니콜이 마녀든 아니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니콜이 죽은 아기를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니콜이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태주는 자기 영혼이라도 팔려고 한다. 육손이 아기의 손가락을 가위로 끊어낸 순간, 태주는 자기 영혼을 악마에게 건넸을 수도 있다. 그만큼 태주는 죽은 아기에게 집착한다. 죽은 아기에 집착하는 그녀가 낯설어 남편은 일을 핑계 삼아 군산으로 떠났다. 태주 곁에는 이제 니콜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아기가 살아야 태주도 살 수 있다.
손가락을 구해온 태주에게 니콜은 열일곱의 임신한 여자아이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제물이란다. 태아의 부정한 피가 죽은 아이에게 새 생명을 준다는 말을 태주는 철석같이 믿는다. 태아의 부정한 피는 태아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태아의 피를 사용하면 이미 죽은 아기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이 황당한 얘기를 믿을 만큼 태주는 절실한 마음으로 아기를 살리려고 한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이 흘린다는 걸 태주는 모르는 것일까? 태주는 그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는 일을 하려고 한다. 죽음을 각오했다는 말이다. 아기에게 바쳐지는 이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숭고한 모성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끔찍한 집착이라고 말해야 할까
태주는 열일곱에 임신을 한 초희를 데려온다. 그녀는 초희를 육손이의 손가락을 구하기 위해 천사원으로 가는 길에서 본 적이 있다. 당시 초희는 마흔이 넘은 아저씨를 따라나선 상황이었다. 초희는 화장실에서 태주가 떨어뜨린 물건을 집어주었다. 손수건에 싼 손가락이었다. 태주는 임신한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여학교에 갔다가 임신한 초희를 발견한다. 초희는 태주를 기꺼이 따라나선다. 태주가 벌이는 일을 알고 따르는 게 아니다. 그녀는 갈 곳이 없다. 세 여인이 만났는데, 모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마녀로 생각하는 여자는 아기를 잃은 여자에게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마법을 부린다고 장담한다. 아기를 잃은 여자는 마녀의 말을 믿고 임신한 여고생을 제물로 데려온다. 배 속 아기가 제물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여고생은 별다른 생각 없이 태주를 따라 니콜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 운명의 칼로 배 속 태아를 죽여. 그래야 죽은 네 아이가 살아 돌아와.” 태주는 두려움에 숨이 막혔다. 배 속 태아를 죽이라고? 거대한 피 물결이 눈앞에 출렁이는 듯했다. 피 물결 어디에도 그녀의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희미하게 작은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주는 두리번거렸다. 초희의 불룩한 배 위에 빛줄기 하나가 비치는 광경을 보았다. 태주는 북소리가 살아 있는 아이의 심장 뛰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배 속의 태아는 긴 어둠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살아 있다. 태주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225쪽)
배 속에 든 남의 아기를 죽여야 죽은 아기를 다시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마녀가 죽은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우리 귀에 속삭인다. 단, 죽은 아기를 살리려면 남의 아기를 죽여야 한다. 악마와의 거래는 이렇게 진행된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것을 잃어야 한다. 하나를 살리려면 다른 것을 죽여야 한다. 태주가 마녀의 속삭임에 굴복하는 순간 태주 또한 마녀가 된다. 마녀란 다른 게 아니다. 마녀는 자기를 위해 남을 죽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당연히 마녀는 여자만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이익을 얻기 위해 기꺼이 남을 해치는 사람을 우리는 마녀라고 불러야 한다.
서양 중세 시대에는 마녀 사냥이 유행이었다. 일반 사람들과 조금만 달라도 사람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마녀는 차별의 기호이다. 요즘으로 따지면 소위 ‘왕따’가 마녀가 아니겠는가. 마녀는 강하지 않다. 강한 사람은 결코 마녀가 되지 않는다. 강한 사람은 마녀가 되기는커녕 마녀를 생산한다. 이 사람은 마녀고, 이 사람은 마녀가 아니라고 결정을 내린다. 태주는 초희의 배 위에서 빛나는 빛줄기 하나를 본다. 배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향해 빛을 내뿜고 있다. 생명의 빛이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아기를 낳아 본 태주는 북소리가 태아의 심장 소리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이렇게 죽은 아기를 살리는 의식은 실패한다. 죽은 아이를 살리지는 못했지만, 태어나야 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니콜은 왜 스스로 마녀가 되었을까? 아무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인 에드워드는 늘 일에 지쳐 살았다. 니콜에게서 얻을 수 없는 위안을 다른 여자에게서 얻으려고 했다. 니콜은 세상으로 열린 마음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마음속에 서식하는 또 다른 자아에 집착하여 늘 환상 속에서만 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딸이 죽었고, 죽은 딸을 잊기 위해 니콜은 마녀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이것은 태주 또한 마찬가지다. 죽은 아이에 집착한 그녀는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려고 했다. 죽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아기를 죽이려고 했다. 사악한 마녀의 길로 뛰어든 것이다. 마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마녀를 만든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마음이 마녀를 만든다. 태주는 배 속 아기가 내보내는 생명의 빛을 통해 새로운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마녀를 품고 있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마녀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 마음 밖으로 뛰쳐나온다. 죽은 아이를 살리라는 얼토당토않은 명령을 내려 세상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버린다. 마음속 세상을 불타는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니콜이 그런 삶을 살았고, 태주도 그런 삶을 살았다. 지금 이 세상을 그 누군가도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은 아닐 것 같은가? 결코 아니다. 당신 또한 무언가에 집착하는 삶을 산다면 이런 삶을 빠져들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의 마음속에 마녀가 들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간절함을 먹이 삼아 세상을 피바다로 물들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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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지 스물여섯 시간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의 엄마 태주.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홀로 피켓 시위를 한다. 불을 질러 딸을 죽였고 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스스로 마녀라 하는 니콜. 태주에게 다가간다.
다르지만 딸을 잃은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엄마. 태주와 니콜의 만남. 니콜은 태주에게 자신은 마녀라며 시키는 대로만 하면 죽은 아이를 살려줄 수 있다고 한다. 태주는 무엇이든 하겠다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작정이다. 여섯손가락을 가진 아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오는 등 뱃 속의 태아를 죽여야하는 일에도 서슴없이 행하려한다. (흐억-)
태주와 니콜은 자신의 아기를 지키지 못 했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로 인해 현실속에서도 이해받지 못 하고 폭력적인 세상의 시선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넘치게 큰 간절함이 부작용이 되어 그 상처속에 자신을 가두어 현실을 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는. 둘다 상처투성이.
사람들의 염려는 틀리지 않아요. 불행은 회색 먼지 같아서 누구의 어깨에나 내려앉아요. 그게 불행의 법칙이에요. 부자든, 가난하든, 젊었든, 늙었든, 공평하게, 예고 없이, 순식간에 악의 꽃을 피우죠. (p.28)
예고없이 찾아온 불행의 두려움이 자기혐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생긴 피해의식. 그 때문에 비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던 그녀들의 이야기. 읽는 내내 안타까웠고.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줘야만 할 것 같았던. 김하서 작가의 <빛의 마녀>.
![]() ▲ p.20
세상에 뽀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들과 마주칠 때마다 몸을 웅크렸다.
▲ p.73
"진짜 악이 뭔지 아나?" 나는 침을 삼키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어요. 그는 내 눈을 꿰뚫어 보며 속삭였어요. "사람이야."
![]() ▲ p.217
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었어요. 기억이란 곪은 상처처럼 도려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죠. 그 기억을 거즈로 덮을 만한 다른 기억이 필요했어요. 나처럼요.
![]() ▲ p.244
그날 나는 그림자가 사라진 듯 삶의 일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어요. 내가 잃어버린 건 무엇이었을까요. 분명한 건 누구도 생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없을 거라는 거예요. 당신도 나처럼 소중한 걸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 삶의 그림자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어쩌면 간절함때문에 니콜에게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태주. 어쩌면 잠시나마 그랬을지도 모를.
가장 경이로운 게 뭔지 알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삶은 강물처럼 계속 흐른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삶의 숭고함이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뉴스를 보죠. 삶에서 기쁨이나 감흥을 느끼지 못해도 절망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아요. 다들 그렇게 박제처럼 살아가니까요. (p.236)
<빛의 마녀>는 니콜과 태주의 교차되는 시선이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니콜과 태주의 문체가 달랐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괜찮았고, 결말 또한 감사했고. 위태위태 했던 태주의 마음에 빛이 생긴것 같아서 감사했다. :D
그리고 김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
▼ 자음과 모음 새소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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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마녀 #김하서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한국장편소설 #추천도서 #위로 #빛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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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시리즈 '새소설'의 4번째 이야기 _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_의 김하서 작가의 새 작품 <빛의 마녀>
책을 읽고 나서 살짝 감상을 적어보면.. 너무 재밌게 읽었다...정말 이 작품으로 작가님을 알게 됐는데 너무 인상적이고 문장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청소년문학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안에 담은 이야기들이 생각지도 못하게 흘러갔고 두 여자의 간절한 이야기가 정말 잘 전달되어서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더 높아졌다.
사거리 앞 산부인과에서 제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억울합니다. 제발 제 아기를 돌려주세요. 초록빛 눈을 가진 마녀가 태주를 처음 본 날, 그가 들고 있던 피켓에 적힌 글 맨발로 돌아다니던 그녀를 매일매일 마주치면서 깨닫게 된 것. 그녀는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을 마녀로 소개하는 니콜과 스물 여섯시간 밖에 살다가지 못한 자신의 아이를 잊지 못하는 태주. 책은 니콜의 이야기와 태주의 이야기가 연달아 나오고 그렇게 둘이 만나게 된 내용이 전해진다. 각자 아픔을 품고 살고 있는 이들이 마주하게 된 현실과 둘이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게 될 믿을 수 없는 일들까지. 책의 뒷편에 소개된 단어가 정말 딱 맞았던 책이었다. '잔혹하다' 정말 잔혹한 동화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과연 그 끝에는 누가 웃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녀를 혐오하고 두려운 존재로 믿고 있죠. 당신도 내가 두렵나요? 그저 당신들과 달라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마녀라는 이유로?'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았던 것이 다였는데 예전부터 사람들은 마녀들을 두렵고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했다. 그렇고 니콜은 상처를 받고 살았다. 혐오당하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 그렇게 사는 것이 익숙해졌는데, 태주는 달랐다. 마녀라는 것. 이 세상에 마녀가 있다는 것. 일반 사람들이 듣게 된다면 그저 어이없어하며 지나갈 이야기이다. 하지만 태주는 그 말을 믿는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네 아이를 살려줄 수 있지." 자신의 아이를 살려줄 수 있다는 마녀의 피와 같은 유혹을 그저 받아들이게 된다. 결핍된 삶을 살며 고통스러워 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더욱 파멸의 끝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 그 과정이 진행되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로 나오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과 같이 영상으로도 어두운 느낌이 잘 전달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니콜과 태주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기를.
태주와 남편. 그들은 서로의 눈빛에서 죄책감과 두려움을 마주할 것이다. "혼자만 달아나려고 했니? 죽는 게 쉬운 줄 알았어?" 남편은 오해하고 있었다. 죽으려고 약을 먹은게 아니야. 당신 비명 소리를 듣지 않고 잠들고 싶었을 뿐이야.
책 속에는 니콜과 태주, 그 외에 그 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 이야기를 해버리면 너무 큰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이야기 하지 못하지만/ 그 인물들은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두 여자와 이어지게 되는 전개양상이 인상적이었다. 그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는 정말 책의 분위기대로 잔혹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모두 살아움직이는 느낌을 받게 한 부분들도 눈여겨 볼 만 하다고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책이 좋았던 점은 작가님이 전하려는 느낌이 문장과 함께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책을 천천히 읽으며 하나하나 꾹꾹 눌러 담긴 문장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려운 책을 아직 낯설아 하는 나에게 이 책은 쉽게 읽혀서 좋았고 동화같아서 좋았고. 무엇보다 잘 읽히면서도 그 안에 담긴 문장들이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빛의 마녀 책을 읽으며 들었던 단어들을 정리해보면 _간절함, 절박함, 혼란, 망상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에는 물음표로 채워지게 된다. 아프고 힘든 일은 왜 나에게 일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나를 더 어둠의 굴 속으로 빠뜨리게 하고, 그렇게 그 굴을 빠져나오기 위해, 아니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간절함과 절박함은 당연히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태주의 간절함을 알게 된 니콜이 그녀에게 제안하는 무언가. 상처받은 이들이 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일어나는 일들과 그 가운데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각자의 사연까지. 얽혀있지만 그 안에 생각해야 할 일들과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까지 끝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책을 덮고 든 생각은 과연 니콜은 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는 의문이었다. 니콜은 자신을 자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장이 정말 기억에 남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추천하게 되는 책이다. 또 책이 주는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어둡지만 그 안에 아주 작은 빛을 쫓아간다는 느낌.. 만나보지 못했던 분위기와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
+ 이 책을 읽고 김하서 작가의 다른 책 '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도 궁금해졌고 더불어 새소설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새소설'은 지금 한국문학의 가장 참신하고 첨에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 시리즈라고 한다. 배준 작가의 시트콤은 읽었는데 (개취로 맞지는 않았지만) 새소설 시리즈가 추구하는 참신한! 작품에 잘 맞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번에 읽은 빛의 마녀는 만족스럽게 읽었기 때문에 다른 책들도 관심이 간다. _박사랑 작가의 우주를 담아줘, 안보윤 작가의 밤의 행방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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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본디 어둠의 존재가 아니던가. 음습한 마녀에게 빛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빛의 마녀'라고? 빛의 흡혈귀, 빛의 좀비, 빛의 처녀귀신 이런 것들처럼 너무 이상하지 들리지 않은가 말이다. 더군다나 한국을 배경으로 한 마녀 이야기라니, 도대체 어떤 서사를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김하서 작가의 소설 <빛의 마녀>에는 벽안(碧眼)의 유럽 마녀 니콜이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과 동류의 절망에 빠진 태주를 발견하고, 그녀의 상처를 지워줄 것을 제안한다. 처절한 절망 속 간절한 바람, 태주는 험하디 험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빛의 마녀>는 깊은 상실과 깊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김하서 작가가 보는 인간의 실존이란 결국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가 고르지는 않지만, 읽는 이의 호기심을 놓칠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공감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소설 속 그녀들의 고통은 생생하게 묘사되지만, 그녀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아마도 그녀들의 고통이 구조적/관계적 문제이기 보다 개인적/내면적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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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명의 여자가 있다. 단 스물여섯시간만을 살고 세상을 떠난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아이를 살려줄 수 있다는 마녀. 소설은 두 여자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마녀의 시점일 때는 잔혹한 동화같기도 하면서 섬뜩하기도 했고,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시점은 절박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쯤에 등장하는 다른 어린 산모의 이야기까지 더해져서, 이 소설은 세 명의 여자를 중점적으로 돌아간다. 아이를 잃고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세 여자의 사이를 이어줘서 그런지 소설의 분위기는 간절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겼다. 스물여섯시간의 삶을 살다간 아이의 존재로 추운날 아이를 살려달라는 피켓을 들고 서 있던 태주. 그런 태주에게 다가온 마녀 니콜의 존재는 단 하나의 동앗줄이자 구원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니콜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며 '내 아이를 위해서'라는 동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태주의 절박함은 다른 아이를 향했고, 마녀의 말대로 재료와 제물을 찾아나서기에 이른다. 그 과정이 정당한가라는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태주의 상황이 너무도 있을법한 상황이라 공감이 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스스로 마녀라고 하는 니콜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녀임을 내세우며 오랜 세월을 살았고, 자신을 쫓는 마녀 사냥꾼이 있다고 말하는 니콜. 조곤조곤 동화같이 자기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는데 갈수록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뱀파이어의 존재, 마녀사냥꾼과의 이야기, 다른 마녀의 이야기는 조금씩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게다가 니콜의 딸 샬럿의 존재까지. 소설의 제목이 '빛의 마녀'라고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빛처럼 찬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아남았다는 마녀 니콜은 태주를 통해 자기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고 죄책감과 상실감 절망 때문에 스스로에게 벌을 주던 태주는 마녀 니콜을 만나 비로소 동기를 얻었다. 아이를 다시 살릴 수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태주에게는 그런 말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태주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던 사람은 바로 또다른 생명을 품고 있는 어린 산모 초희였다. 초희의 뱃속에 든 아이를 죽여야만 태주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 니콜. 태주는 그제서야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이 소설은 사회에서 소외당한 세 여자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였다. 소설의 묘한 분위기 때문에 읽기는 쉽게 읽었는데 뒷맛이 어쩐지 씁쓸하다. 소설을 통해 만난 인물들이지만 언젠가 세 여자에게 소설의 제목처럼 빛이 깃들기를 바라게 되는 이야기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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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셨나요? 아이는 있으신지요? 요즘에는 이런 질문들이 실례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 보는 사이나 얼굴만 알거나 눈 인사만 하는 정도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못하고 속으로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습니다. 첫째 아이를 결혼하고 한참만에 낳았는지라 저에게는 아이가 가지는 의미는 정말 남다릅니다. 아이가 없던 저에게 아이는 남들과 똑같이 살 수 있게 해주었고 다른 사람들과 공통적인 주제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어둡고 컴컴한 세상에서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빛과 같던 존재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이 책에도 두 명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둘 다 과거에는 아이가 있었으나 지금은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아득해집니다. 아이가 없어진다면 제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모든 부모가 다 그렇듯 살 수나 있으려나 싶네요.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거겠죠. 이 책에 나오는 태주를 보니 맘이 짠합니다. 죽은 아이 때문에 한 겨울에 맨발로 뛰쳐나가고 자신도 집도 남편도 돌보지 않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됩니다. 옆에 있으면 안아주고 싶고 그녀에게는 들리지도 않겠지만 그만 잊어버리라는 어설픈 위로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 맘이 편할 것 같네요. 읽는 내내 마음이 어찌나 불편하던지요. 니콜도 마찬가집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맘이 짠하네요. 정말 여자라 그런지 엄마라 그런지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태주의 이야기와 니콜의 이야기가 넘나들어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정말 단숨에 다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장난 아니네요. 마녀라는 신비로운 소재가 있어서 그런지..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다른 아이를 죽여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이실 수 있을까요? 현실적이면서 신비로운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제일 재미있었답니다. 그동안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는 청소년 책을 출간을 많이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어른들이 봐도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다른 새 소설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정말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읽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으신 분들은 어서 빨리 읽어보세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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