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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굿이 나무를 톺아보면 들리는 사람살이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읽고
[들어가며] '나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책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잠언으로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유행가로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그러하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나무의 이미지는 '한결같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아이가 자라서 노인이 되어서도, 불확실한 내일이지만 오늘도 묵묵히 살아가는, 오래도록 사랑한 연인을 그리는 그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삶을 기억해주는 존재의 한결같음을 나무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은 이러한 나무의 가치를 알아보고 20년 넘게 나무와 대화하며 그들에게 담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슈베르트와 나무>, <고규홍의 한국의 나무 특강> 등 나무에 관한 여러 책에서 '나무'를 매개로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을 보여준 그가 신작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나무와 그 나무를 심고 돌보며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를 찾아 나무 앞에 머물던 시간에 나를 찾아온 것은 나무보다 먼저 그 나무를 심은 혹은 나무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무를 찾아갔지만 나무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6쪽)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소개된 나무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나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땅에 자리잡는다. 하나는 말 그대로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의미 있는 장소에 꽂으면 거기서 나무가 자라나는 식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민간에서 전해지는 설화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다보니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나무와 그 이야기에는 상징과 은유로 표현된 사람살이의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고. 그래서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나무의 전설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1-선비]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즐겨 심었던 나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은행나무라고 한다. 유학의 대명사이자 아이콘이기도 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설파하던 자리를 '행단(杏壇)'이라고 불렀던 유래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오래된 향교나 서원에서도 은행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까닭이라고 한다.
사라져가는 하나의 생명을 포근히 품어 안은 소수서원 솔숲은 그래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사람살이의 평범하면서도 깊은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철학의 숲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73쪽) 개인과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솔숲을 이룬다. 그 군집 속에서 줄기를 뻗어나가는 묘목이 있는가 하면, 수명을 다한 고사목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무가 서로 연대하며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치고 터득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는 세상도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소수서원의 솔숲에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소수서원 솔숲
나무는 앞에 나서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래된 문화재 안팎에서 옛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참으로 소중한 자연문화재다. 물론 그 깊은 속내를 들춰내는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몫이다.(85쪽) 저자는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와 배롱나무가 신사임당과 율곡의 자취와 숨결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 자리한 문화유산에 켜켜이 쌓여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그 곳으로 달려가 문화유산의 숨결과 그들이 주는 감동을 흠뻑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일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과의 만남도 좋지만 같은 공간에서 우리와 같이 살아 숨쉬는 나무와도 대화를 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평범한 백성들이 심은 나무에는 백성의 살림살이가, 학자들이 심은 나무에는 그들의 철학이, 종교인이 심은 나무에는 종교적 신앙이, 정치가들이 심은 나무에는 정치의 역사가 담겨 있다.(101쪽) 나무에게 곁을 내어준 사람의 '사람살이'를 나무가 묵언으로서 증언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아꼈던 백송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어 중국 밖에서는 자라기 힘든 백송이 왜 우리나라에서 자랐으며, 또 굳이 이 나무를 이 자리에 심고 애지중지 키운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건 나무 안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아보는 일이 된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2-민중] "아가야! 살아서 입으로 먹지 못한 쌀밥, 죽어서 영혼이 되어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156쪽) 아기 무덤을 지켜주던, 쌀밥을 닮은 꽃이 피어나는 이팝나무에는 보릿고개로 인해 아이를 떠나 보내야만 했던 아비의 가슴 깊이 맺힌 한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이팝나무 꽃처럼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를 권한다.
지친 나무들을 사람처럼 여기고, 사람에게 힘이 되는 막걸리를 나무에게 나눠주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의 정성으로 생각하면 아름다운 풍습이라 할 수 있겠다.(214쪽) 30여 년 전 경북 청도 운문사에 있는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의 악화된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막걸리 공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막걸리가 나무의 생장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 영향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더불어 사는 멋을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마다 봄이면 맛난 막걸리를 흠뻑 마시고 겨우내 지친 몸을 추스르는 장한 나무다. -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지팡이를 꽂은 사람들-스님]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로 유명한 원효대사의 인생 나무는 비자나무라고 한다. 특히 비자나무의 쓰임이 꽤 흥미로운데,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쓰이며 비자나무는 귀한 목재로서 바둑판으로 더없이 좋은 재료라고 한다.
나무를 심는 건 분명 스스로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빨리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라 하더라도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려면 나무를 심는 사람의 수명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일이다.(193쪽) 저자는 후손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심이 있어야만 한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를 몸소 실천한 사람으로 풍수지리설의 연관 검색어라고 할 수 있는 도선국사가 있다.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수지리도 한 사람의 삶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자손손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도선국사가 전국을 누비며 풍수가 좋은 곳을 표시하는 방법이 바로 좋은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 도립리에 남아있는 반룡송으로 불리는 소나무는 도선국사가 나무를 심으며 장차 이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고단한 삶을 살아내던 당시의 민중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한 도선대사의 배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한 가지의 소원은 꼭 이루어준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이천 도립리 반룡송
반면에 보조국사 지눌의 인생나무로 불리는 고향수(枯香樹)는 고사목(枯死木), 즉 말라 죽은 나무라고 한다. 스님의 발이 되었다가 다시 스님에 의해 생명을 되찾은 이 나무는 현재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의 하나로 알려진 송광사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기 십상일만큼 앙상한 줄기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그 옛날 중생을 위해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던 지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3-항일운동가] 이제 고작 100년을 채 못 살았지만 앞으로 이 나무가 살아갈 세월은 그 몇 배가 넘을 것이다. 풀어내는 만큼 자신의 결 안에 담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만큼 클 것이다.(357쪽) 근대사로 넘어오면서 조금 더 현실감 있는 인물과 나무를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백범 김구 선생과 <상록수>를 지은 심훈 작가 모두가 애지중지한 나무가 향나무로 똑같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았던 작은 화분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인상깊었다. 그가 화분 속 작은 나무의 나무잎으로 가슴에 붙여진 일장기를 가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역사의 치욕을 가려준 나무가 대왕참나무였으며 당시 독일 베를린 지역에서 월계수를 구할 수 없어 참나무(오크, Oak)로 대신했다는 일화도 알 수 있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당시 올림픽 시상식의 흑백 사진을 수도 없이 봐왔으면서도 미처 눈여겨 보지 않았던 그 자리에 바로 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사진을 볼때마다 나무가 전하는 역사에 귀 기울여보기로 다짐해본다.
![]() 손기정 선수와 역사의 치욕을 가려준 대왕참나무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나무를 심은 사람들4-이색적인(異色的人)] 한 그루 소나무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전통 혼례를 치르고, 그 후계목을 키워나가려 애면글면한 정성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소나무를 아끼는 민족인지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 할 만하다.(339쪽)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벼슬을 내린 것도 신기하고 이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전통 혼례식을 치뤄 후계목까지 키워냈다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특히 혼례의 주례는 산림청장, 신랑과 신부의 혼주는 각각 보은 군수와 삼척 시장이 맡았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났다.
천리포수목원은 마이클 폴란의 말대로 사람과 자연 혹은 자연과 문화의 중간지대에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창조적 지혜'를 실현시킨 대표적 숲이라 할 수 있다.(383쪽) 천리포수목원은 책이나 언론 기사를 통해 이따금씩 접했지만 수목원의 전반에 관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파란 눈의 나무 할아버지로 불리는 칼 페리스 밀러, 민병갈(한글 이름)이 평생에 걸쳐 충남 태안반도에 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을 심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수목원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곳은 1만8천 종류의 토종식물과 외래식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인공미와 자연미의 절묘한 조화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수목원이라고 한다. 책을 일고 천리포수목원 관련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면서 더욱 현장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꼭 함께 가서 저자가 말했던 감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 민병갈 흉상과 완도호랑가시나무 -사진 출처: 천리포수목원 홈페이지
세상이 열리고 그 안에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무를 베어내고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무를 심어야 했다.(383쪽)
[나오며] 작년에 읽었던 나무의사 우종영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에서 '실제로 나무는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마치 자서전처럼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긴다'는 문장을 보면서 나무의 나이테는 그 나무의 일기와도 같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을 읽으면서 나무는 자신의 삶, 즉 나무살이를 나이테라는 일기장 또는 자서전에 써내려감과 동시에, 자신의 곁을 내어준 이의 사람살이를 마치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듯이 나이테에 한 글자 한 글자 기록하는 존재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삶을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치는 가로수가, 혹은 숲과 산 속의 나무들이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결코 허투루 보내서는 안될 것이며 나아가 오늘을 어제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입 안과 머리 속에 맴돌았던, 나무라는 존재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두 단어를 다른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바로 '수굿하다'와 '톺아보다'이다. 지금까지 말해보거나 들어보지 못했던 터라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계속 책을 읽어나가면서 어느덧 '수굿이' 나무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톺아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개 숙여 찬찬히 나무가 전하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왜 나무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서평단 리뷰어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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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정원에 작은 나무를 심곤 하였다. 그리고, 그 나무들을 초저녁에 현관 앞 계단에 앉아서 바라보는 것이 어린 시절 나의 일상의 모습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산책 또는 여행을 하다가 만나는 나무들은 정확히 그 이름이나 특성을 알지 못하더라도 왠지 편안함과 함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항상 반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는 직접 나무를 심지 않아서인지 그 나무들을 심은 누군가에게 막연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마냥 끌렸던 것 같다. 나무의 역사와 그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적인 즐거움은 물론 감성적인 편안함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백성들이 심은 나무에는 백성의 살림살이가, 학자들이 심은 나무에는 그들의 철학이, 종교인이 심은 나무에는 종교적 신앙이, 정치가들이 심은 나무에는 정치의 역사가 담겨 있다. 또 오래전에 국가 간의 외교를 담당했던 선비들이 심은 나무에는 어렴풋이나마 외교의 역사가 살아남아 있다. - p. 101 中에서 - 겉으로는 같은 형태의 나무일지라도 누가 어떠한 의도로 심었느냐에 따라 그 나무의 의미는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선비와 승려, 백성 등과 같이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심은 나무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눈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나무의 내면을 함께 다루고 있다.
작년에 다녀온 영주 여행지 중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에 심겨진 솔숲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 반가웠다. 소수서원 주변에 있던 울창한 솔숲이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그것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이 책에서도 그곳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추가로 심은 소나무들도 있고, 그 와중에 고사된 나무도 있었는데, 이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오묘한 생명의 철학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왜 이곳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스님들과 관련된 나무들은 저마다 다양한 의미와 함께 바로 스님들의 지팡이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스님들의 지팡이는 곧 그들의 분신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결국 오랜 시간동안 그 생명을 지속하여 오늘에 이른 나무는 곧 스님들의 깨달음 내지는 진리의 상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장율사의 지팡이가 자란 나무로 알려진 정선 정암사의 주목(朱木)은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고도 700미터의 산에서 자생하는 주목은 토종 나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꽤 흔한 나무이다. 그런데, 1300년 전에 자장율사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이 나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그루가 마치 한 그루처럼 자란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다. 130년 전에 이미 죽은 나무가 다시 자라면서 어떻게 이런 형태가 된 것일까? 사실 원래의 나무는 고사하였으나, 자장율사를 기리는 의미로 절에서는 이 나무를 베어내지 않았는데, 이후 나무는 안이 텅빈 상태를 유지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나무 안쪽에서 새로운 나무가 자란 것이었다.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이러한 현상은 자장율사의 뜻을 따라 마치 나무가 자신의 몸을 덜어내고 그 안에 새 생명을 키운 것으로도 볼 수 있기에 우리는 나무의 신비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선비와 학자, 스님들이 심은 나무들이 고귀한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이팝나무는 배고프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라는 점에서 나무의 다양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특히 진안 평지리의 이팝나무는 아기 무덤을 지켜주던 나무들이라는 점에서 빈곤했던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결국 젖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들을 묻고, 배곯아 죽은 아가를 두고 차마 돌아설 수 없었던 아비는 무덤 앞에 죽은 아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하얀 쌀밥을 닮은 꽃을 한가득 피우는 이팝나무였다. 마을 사람들도 그러한 사연을 알고 이팝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면서 그곳은 이팝나무의 군락이 형성되었다. 이후 그 이팝나무 숲에 담긴 한맺힌 사연을 마냥 두고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팝나무들을 베어내고 일곱 그루만을 남겼다. 그리고,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으니 이는 이팝나무에 담긴 사연이 그저 나무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나무에게는 가지를 펼치고 넉넉하게 숨쉴 만큼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배려되지 않은 상태의 이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자신의 공간을 조금씩 양보하며 자랐다. 공생의 지혜를 찾아낸 것이다. - p. 138 ~ 139 中에서 - 문경 장수 황씩 종택의 탱자나무의 거대한 규모를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시골의 할아버지 댁에 가면 밭이나 과수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탱자나무였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담장과 비슷한 높이의 이 탱자나무는 그 가시와 함께 얽혀있어서 충분히 담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수 황씨 종택의 탱자나무는 오랜 시간 좌우는 물론 위쪽으로도 성장을 하면서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우리나라 안의 어떤 탱자나무와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멀리서는 하나의 거대한 탱자나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서로 두 그루가 한데 뭉쳐 자란 것인데, 가시로 인하여 서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공생의 지혜를 터득한 양 함께 성장할 공간을 양보하면서 자란 것이기에 우리는 이들로부터 공생의 지혜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E.H.카아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은 나무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부분이다. 나무를 심는 순간 그 나무는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 나무가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의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보살핌은 단순히 나무에게 물과 양분을 공급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애초에 그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순간 빛을 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를 통해 이어간 사람살이의 작은 역사가 E.H.카아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옛사람의 이 땅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됨을 알 수 있다. 우연히 아파트의 조경을 담당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분은 우리 아파트도 그런 길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꾸준히 가꾸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담양의 상징인 메타세콰이어길에 필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문득 그러한 뜻을 공유하면서 아파트 주변의 나무들을 가꾸고 또 관심을 이어가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언제쯤 이곳이 그러한 멋진 길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다양한 나무와 그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는 나무들에도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 의미를 알게 된다면 결코 나무들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나무 이외에도 주변의 나무에 담겨진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봄으로써 그동안 일방적으로 나무를 바라보던 우리로서는 나무와 소통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나무들이 보통의 인간보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무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걸어온 궤적을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마을 어귀에 위치한 나무들이 그 마을의 역사와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저자 고규홍은 나무 인문학자라 불리운다. 그러한 타이틀에 맞게 이 책은 현존하는 나무들을 통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전 모습은 물론 철학과 역사를 전하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토록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나무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에서 내가 직접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무는 소수서원과 관련된 나무가 유일할 정도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설명한 나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 다행히 책의 말미에 각 나무에 대한 주소도 정리되어 있으니 현재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면 이 책과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중이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하여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나무의 또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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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주제에 따라 떠나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발자취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20년간 탐사한 최치원, 이황, 김정희, 원효대사, 태조, 효종, 김구 등 나무 심은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들 평소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을 떠나면 관광지 주변에 있는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를 유심히 보곤 한다. 나무의 어마어마한 높이와 둘레에도 놀라지만 안내판에 적힌 나무의 나이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수령 500년은 기본이고 1000년이 넘은 나무들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나무의 크기나 나이는 알려고 하는데 정작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어느 스님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땅에 꽂아서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의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이 땅에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떠난 일종의 나무 역사 탐사기다. 책은 5가지 주제에 따라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정보와 당시 시대적 역사도 함께 알려주고 있다.
1장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말기 최치원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며 명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현실 정치의 벽에 막혀 은둔 생활 도중 심었다는 합천 학사대 전나무, 조선 초 청백리의 상징으로 불렸던 맹사성이 집 마당에 심었다는 충남 아산시 배방읍 한 쌍의 은행나무, 천재 예술가의 삶을 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숨결이 남아 있는 강릉 오죽헌 매실나무, 조선 최고 선비 김정희가 아버지를 따라나선 청나라 연경에서 가지고나와 심었다는 충남 예산 백송나무 등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 시대 옛 선비들과 그들이 심은 나무 이야기가 펼쳐진다. 1장에 나오는 나무들 중 내가 직접 만난 나무는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백송이다. 이 백송은 충청남도 예산의 추사 고택에서 살아 있는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나무로 중국이 고향인데 옮겨심기가 잘 안 되는 특징이 있어 중국 외에서는 잘 자라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나무라고 한다. 소나무의 한 종류이지만 '백송'이라는 나무 이름답게 줄기 표면이 하얗고 회색의 얼룩 무늬가 독특하며 세 개의 잎이 한데 모여 돋아나서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다.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충남 예산 추사 고택으로 여행을 떠나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서 고이 싸들고 와 애지중지 키웠다는 하얀 빛깔의 자태를 간직한 백송 앞에 선다면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물론 충남 예산으로 떠난 김에 근처 고려시대 충렬왕 때 지었다는 수덕사에도 가보고 근처 덕산이나 온양에서 온천을 즐긴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맹사성이 집 마당에 심었다는 한 쌍의 은행나무, 아산 맹씨행단 은행나무>
2장에서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위해 전장으로 나가던 안강이라는 마을의 청년 김영동이 어머니를 위해 심었다는 경주 월성의 회화나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장군 오득린이 전쟁 후 고향 나주로 돌아와 심었다는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조선시대 부친상을 당한 최중룡이 3년 동안 머리를 풀고 어버이의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한 뒤 후손들에게 효성을 가르치기 위해 심었다는 세종시 연기 봉산동의 향나무 등 부모와 형제를 기리고, 마을의 기운을 바로잡기 위해 심은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즘 가로수로 자주 눈에 띄는 나무가 이팝나무다. 병충해에 강할뿐만 아니라 초여름 화려하게 피우는 하얀 꽃이 예뻐서 요즘 가로수로 많이 심고 있는 나무 중 하나인데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하얀 쌀밥과 비슷하게 생겨서 배고프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라 한다. 천연기념물 제214호인 전라북도 진안군 평지리에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이팝나무 여러 그루가 있다.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는 아기 무덤을 지켜주던 나무들이라고 하는데 농사가 잘 안 되는 흉년이 오면 먹을게 없어 많은 갓난아기들이 굶어 죽었고 아이들이 죽으면 어른들은 죽어서라도 쌀밥을 마음껏 먹으라고 쌀밥나무, 즉 이팝나무를 아기 무덤 앞에 심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모든게 풍족한 세상에서는 상상이 안 가는 이야기이지만 불과 300년 전 이 땅에서 흔히 일어나던 이야기다. 300년 전 이팝나무를 심던 부모들의 가슴 아픈 마음을 되새기며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부모들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다.
"아가야! 살아서 먹지 못한 쌀밥, 죽어서라도 실컷 먹으라!" <아기 무덤을 지켜주던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군>
3장에서는 1300년 전 자장율사가 꽂아둔 지팡이가 자란 나무라는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 주목, 800년 전 보조국사 지눌이 명승을 찾아다니다가 자신과 송광사의 영원불멸을 기원하는 뜻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손수 절집 입구에 꽂았다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곱향나무, 조선시대 진묵대사가 전라북도 모악산 망해사에 낙서전이라는 전각을 지으면서 심었다는 팽나무 두 그루 등 스님들이 부처님의 은덕을 베풀고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심은 나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년에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뒤흔드는 광대패 5인방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의 미담을 만들어내라는 명을 받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조진웅 주연의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을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장면 중 세조가 계곡에서 오랫동안 앓았던 피부병을 문수보살을 통해 고친다는 미담을 광대패가 조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속 허구가 아니라 세조 실록에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 입구에 가면 커다란 잎갈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피부병을 앓았던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을 낫게 되었는데 목욕을 위해 옷을 걸어두었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잎갈나무 아래에 옷을 걸어둘 수 있는 모양으로 작은 돌탑을 세워놓은 것이 관대걸이라는 유물이 생겼다고 한다. 세조실록에는 세조가 집권한 지 8년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40여건의 기이한 현상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에 오른 '세조'가 왕권 강화와 민심을 얻기 위해 요즘으로 말하자면 "가짜 뉴스"를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장율사가 심은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 주목>
4장에서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세속을 떠나던 중 잠시 머물렀던 용문사에서 수명을 다한 나라를 생각하며 심었다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조선 팔도를 주유하며 하늘의 기운을 받고자 심은 담양 대치리 느티나무, 병자호란 때 오랫동안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했던 효종이 볼모 생활내내 자신을 시중하던 권육이 세상을 떠나자 손수 소나무 두 그루를 골라 그의 묘에 심었다는 논산 갈산리 쌍군송 등 임금이나 선비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심은 나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담양부사 성이성이라는 어진 사또가 있었는데 농사를 짓고 사는 담양 주민들의 애로사항인 여름 홍수 때마다 범람하는 강을 다스리고자 담양천변에 뚝을 쌓고 둑을 튼튼히 지키기 위해 나무를 심은게 지금의 담양 관방제림이라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며 현재 구역 안에 모두 185그루의 나무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나무이야기보다는 성이성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 성이성이라고 한다. 성이성은 아버지가 남원부사를 지낼 때 아버지를 따라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남원에서 살았고 이후 서른세 살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네 차례에 걸쳐 암행어사를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점이 <춘향가>의 이몽룡과 흡사하다는 이야기다. 성이성의 후손들은 오래 전부터 이몽룡의 모델이 성이성이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양반의 자제가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고, 흔치 않은 성씨인 '성'을 춘향의 성으로 쓴 것도 <춘향가>의 제작자가 성이성을 염두에 둔 배치 아니겠느냐는 짐작이다. 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특성뿐 아니라 이렇게 나무와 얽힌 인물의 숨은 이야기가 이 책의 큰 매력이라 하겠다.
<마의태자가 심은 용문사 은행나무>
5장에서는 조국 광복 투쟁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구가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와 3년 동안 승려 생활을 했던 마곡사에 옛일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마음과 함께 심었다는 공주 마곡사 김구 향나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청년 손기정이 시상대에서 가슴에 걸린 일장기를 가렸던 나무를 가져다 심은 서울 만리동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우리나라 최초의 조림왕이라 불리는 임종국이 일제 침탈과 전쟁으로 헐벗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 재산을 모아서 나무 심기를 시작한 장성 축령산 편백 숲 등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 심은 나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다. 평소 나무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수목원을 다녀봤지만 미처 가보지 못한 수목원이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와 인연이 없는 수목원이다. 2019년 현재 무려 1만8,000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2000년에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을 받았는데 세계에서 12번째이고, 아시아에서는 홍콩에 이어 두 번째 일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에 처음 나무를 심은 사내는 놀랍게도 '파란 눈의 한국인' 민병갈(1921 ~ 2002)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어 통역 장교로 일본에 주둔했다가 전쟁 직후 우리나라에 미군정과 함께 들어온 후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좋아 영구 귀화한 민병갈은 한국은행에 다니던 1960년 즈음 당시 마을의 한 노인이 내놓은 황무지 땅 5,000평을 사들인 후 성의를 다해 나무를 심기 시작해서 오늘날의 천리포수목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푸른 눈의 한국인이 모래 천지였던 황무지 땅에 첫 나무를 심은 후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든 모습은 저자 말대로 "푸른 숲의 기적"이라고 할만 하다. 인공미와 자연미의 경계를 놀랍도록 신비롭게 보여준다는 천리포수목원의 숲을 빠른 시일 내에 직접 거닐어 보며 푸른 숲의 기적을 느껴보고 싶다.
<임종국의 숲이라고 불리는 장성 축령산 편백 숲>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맹사성, 이황, 신사임당, 효종, 김구 등 위인부터 이름 모를 이 땅의 평범한 아버지들까지 순전히 나무를 심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 나무 이야기로 나무의 식물학적 특성 뿐 아니라 나무를 심은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 낸 나무 인문학책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나무에 얽힌 전설들이 있지만 땅에 꽂은 지팡이가 어떻게 나무가 될 수 있느냐는 과학적 의심을 할 필요가 있을까? 책을 읽은 후 나무 안에 담긴 사람의 자취와 그 사람이 남긴 뜻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 오랫동안 나무에게 무한한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휴머니스트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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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보다 먼저 지구에 살았겠지. 은행나무는 4억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아주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나무가 많았겠다. 그런 때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모습 상상 못할 건 없기는 하구나. 나무 키는 아주 크고 줄기는 굵겠지. 그런 나무가 많은 숲에는 새나 동물 곤충이 많이 살겠다. 조선시대에는 여우나 호랑이 반달곰도 살았는데 이제 그런 짐승은 거의 없다. 반달곰은 있던가. 그렇다고 그걸 보러 가면 안 될 듯 싶다. 사람을 보면 공격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반달곰은 자기가 살 곳에서 잘 살기를 바란다. 북극곰은 먹이를 구하지 못해 사람이 사는 곳에 나타나기도 했다던데. 지구가 안 좋아져서 살기 힘든 건 사람만이 아니다. 동물은 더하다. 지구를 더 안 좋게 만들지 않아야 할 텐데.
지금도 있지만 이제는 쉬는 날이 아닌 나무 심는 날에 나무 심은 사람 많았을까. 예전에는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기후가 바뀌어서 나무를 사월이 아닌 그것보다 더 빨리 심어야 한다는 말도 하던데. 이 책 제목을 보니 끝에 한 글자만 다른 장 지오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생각났다. 어떤 한사람이 오랫동안 도토리를 심어서 숲을 만든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건 예전에 만화영화로도 만들었다. 우연히 텔레비전 방송으로 할 때 봤다. 괜찮았던 것 같다. 나무 씨앗을 땅에 심어 숲을 만드는 이야기 하나 더 있다. 《씨앗 편지》다. 풍선에 씨앗과 편지를 매달아 날렸더니 그걸 주운 아이가 그 주소로 편지를 썼다. 그게 소설일 뿐인지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잊어버렸다. 남자아이가 심은 나무 씨앗은 나무로 잘 자랐는데, 한번 불이 난다. 다행하게도 다시 숲은 살아난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아니 돌고 돈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기념하려고 지금 사람도 나무를 심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일이 더 많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죽었을 때 나무를 심었다. 이걸 보니 소나무 은행나무 매실나무 느티나무가 많이 보였다. 앞에서 말한 나무를 심은 사람은 한국에도 있었다. 1944년 여름 임성국이 농사 짓던 장성 지역에 큰비가 내려 물난리가 나고 산사태가 일어났다. 임성국은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었다. 지금 그곳에는 편백나무 참나무 일본잎갈나무가 있단다. 치유의 숲이라 이름 붙였단다. 본래 미국 사람이었던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은 충남 천리포 땅을 사서 여러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1970년대에 천리포수목원으로 등록했다. 한국에 생긴 첫번째 사설 수목원이다. 오랫동안 일반 사람은 못 갔나 보다. 일반 사람이 가게 되고는 좀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나무만 보러 가지. 그런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무가 많은 곳을 걸으면 마음이 편하다. 난 이제 나무 모습이 아니지만 예전에는 나무였던 책 숲을 걷는다. 진짜 나무는 가끔 만난다.
이 책을 보다보니 난 나무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런 나무가 딱 하나라도 있다면 좋을 텐데. 신사임당은 매실나무를 좋아했다. 이황도 그랬구나. 선비는 소나무와 매실나무 좋아했겠다. 소나무 숲으로는 소수서원 들어가는 곳이 좋단다. 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짓고 이황이 임금한테 편액을 받았다. 서원은 거의 자연으로 둘러싸였다. 나무를 보고 공부하고 마음도 닦으라는 거겠지. 한옥은 나무와 잘 어울린다. 집을 짓고도 나무를 심었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내가 나무를 많이 보는 곳은 아파트 둘레에서다. 내가 사는 곳은 아니지만. 그런 곳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나무를 본다. 이름을 아는 나무는 별로 없지만. 아파트 둘레에 심은 건 어딘가에서 사오는 걸까. 산 아무데서나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좋아하는 나무가 딱 하나 있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나무 자체를 좋아해도 괜찮겠다.
스님은 거의 지팡이를 심었다. 땅에 꽂아둔 지팡이가 이런저런 나무로 자랐다. 어느 어진 스님이 찾아간 마을은 평화로워 보였다. 스님은 언젠가 다시 그곳에 찾아오려고 우물가에 자신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그 지팡이는 은행나무로 자랐다. 그 이야기에는 마을이 언제나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다. 효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도 있고 못 먹어 죽은 아기를 위한 나무도 있다. 이팝나무는 아이뿐 아니라 시어머니한테 구박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며느리 한이 서린 것이기도 하다. 며느리는 늘 잡곡밥만 지었는데 제사에 쓸 쌀밥을 지어야 했다. 밥이 잘됐나 하고 며느리가 조금 먹어본 걸 가지고 시어머니가 혼냈다. 며느리는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고 이듬해에 며느리가 죽은 무덤가에 이팝나무가 자랐다. 난 한국에 공자 후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들은 적 있을 텐데 잊어버렸을지도). 그런 걸 신기하게 여기다니. 한국에 사는 공씨는 거의 공자 후손일까. 중국 사람이 한국에 오고 여기 눌러 산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겠다. 그건 중국 사람만은 아니겠구나. 아주 오래전이어서 이젠 한국 사람이다.
오랫동안 죽었다 살아난 나무도 있다. 그게 바로 공자의 64대손 공서린이 심은 은행나무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말 때문인지 한국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서당이나 서원에 많겠다. 공서린이 서당 앞에 심은 은행나무는 공서린이 죽고 말라 죽었는데, 250년이 지나 다시 싹을 틔웠다. 세상에는 그런 신비로운 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자라지 않은 백송도 있고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면 우는 나무도 있었다. 나무는 사람과 함께 산다. 나무는 사람한테 주는 게 많은데, 사람은 나무한테 받기만 하는 듯하다. 사람은 나무 없이 살기 어렵다. 나무는 자연이구나. 사람은 자연한테 많은 걸 받는 걸 고맙게 여기고 아끼고 함께 살면 좋겠다.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사람을 바라본다. 나무에 담긴 이야기는 사람이 한다. 앞으로도 나무와 사람에 얽힌 이야기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 이야기는 지금 사람보다 앞날 사람이 듣겠지. 나무를 심는 건 지금보다 앞날을 생각해서다. 오래전 많은 사람이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