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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계몽주의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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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 프랑스의 사상가들이다. 1700년대 그들은 무지에 대해 투쟁하였고, 그들의 투쟁은 끝내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계몽주의는 그야말로 인류사에 빛이 된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이자 대표주자라 할 볼테르는 프랑스에서 쫓겨나 영국으로 가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영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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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 프랑스의 사상가들이다. 1700년대 그들은 무지에 대해 투쟁하였고, 그들의 투쟁은 끝내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계몽주의는 그야말로 인류사에 빛이 된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프랑스 계몽주의의 선구자이자 대표주자라 할 볼테르는 프랑스에서 쫓겨나 영국으로 가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영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어쩌면 영국에 대한 동경이 프랑스 계몽주의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영국의 계몽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기록된 영국의 계몽주의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로크이다. 그밖에도 데이비드 흄이니, 애덤 스미스 같은 인물들은 계몽주의자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심지어 철학사나 경제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쉽게 영국의 계몽주의란 로말은 잘 꺼내질 않는다. 영국에 계몽주의자는 있었지만 하나의 흐름으로서 계몽주의는 없었다는 듯이. 과연 그럴까 

 

로이 포터의 대답은 분명하다. 영국에 계몽주의는 분명히 존재했다.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영국의 계몽주의는 근대 정신의 탄생에 결정적이었고, 너무 시기적으로 일렀다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실증하기 위해 그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영국 사회 전반, 특히 엘리트 집단에서 벌어졌던 온갖 흐름을 조망하고 있다. 거기에는 앞에 말한 대표적 계몽주의자뿐만 아니라 홉스, 이래즈머스 다윈(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웨지우드, 토머스 멜서스, 조지프 프리스틀리, 벤담과 같은 잘 알려진 인물들, 그밖에도 전문가들이나 들어봤음직한 수많은 인물들을 동원하면서, 종교, 과학, 사상, 도덕, (), 출판, 빈부의 문제, 행복에 대한 생각, 자연, 진보, 개혁, 정치 등등 온갖 분야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하나하나 그들의 생각들이 드러난 말과 글 들을 모두 언급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로이 포터가 이렇게 방대하게 인용하면서 탐구한 결과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는 있다. 우선은 17, 8세기의 영국 계몽주의가 하나의 단일한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과격할 만큼 진보적이었던 데 반해서, 다른 이들은 체제 수호에 열심이기도 했으며,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방안도 서로 어긋나는 것들이 많았다. 계몽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 앎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어떤 방향이든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일깨우려고 했던 노력들은 모두 계몽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생각들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 영국의 계몽주의가 나타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그 무혈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계몽주의의 가장 큰 특징, 혹은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의 계몽주의는 혁명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몇몇 계몽주의자들이 프랑스 대혁명에 환호했지만, 그들의 환호는 영국에 대한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계몽주의는 계몽주의일까?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 계몽주의자는 있었을른지 몰라도 계몽주의라고 하는 일련의 도도한 흐름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영국 계몽주의가 그러한 혁명 없는, 또는 혁명에 대한 예방 주사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개인주의에 있었다고 본다. 다양한 생각과 주장 속에 공동체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계몽주의자들은 개인을 강조했고, 사적인 삶을 보장하고자 했으며, 그래서 자유방임주의가 나왔다. 이렇게 쓰고 있다.

로크는 통치자에 맞서 개인적 권리들을 역설했다. 흄은 시민적 덕성보다 사적인 삶을 더 소중히 여겼다. 스미스는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개인 행위자를 옹호했다. 벤담은 모두가 평등하며 각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판단한다고 주장한 한편, 고드윈은 체계적인 아나키즘을 정식화했다.” (725)

 

비록 한 나라의 한 시기의 사상사를 자세히 들여다본 것이긴 하지만, 그 나라가 영국이라는 것은 의미가 깊다. 영국은 그 당시 이미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한동안 세계의 표준이었다. 읽다 보면 그 당시의 사상과 아이디어가 현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지금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다. 과거를 읽는 것은 현재를 읽는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0.02.25.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