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때 엄마랑 정민선생님의 한시를 읽었던 기억과, 조간신문에서 안대회님의 칼럼을 읽었던 기억에 보자마자 질렀고, 적당히 한두번에 읽기 좋은 분량으로 분권 되어있어서 거의 매주 한두 권씩 사 모으고 있습니다. 새글보다 더 세련된 번역으로 너무 신선하고 좋습니다. 이번 책 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 편도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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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문으로 작성된 옛글을 현대에 맞춰 해석한 작품입니다. 05권에서는 허균의 '시에는 별취와 별재가 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이나옹을 전송하며', '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 '백성 두려운 줄 알아라', '상원군의 왕총에 대하여', '김종직을 논한다'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 <안대회, 이종묵, 정민 선생님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5 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 외 > 에대한 리뷰입니다. 이시리즈는 본문 구절을 누르면 원문과 주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더욱 좋았어요. 좋은 글은 '쉬운 일상적 표현으로 자신의 개성을 담아 짜임새 있게 주장을 펼친 글'이라고 한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강원도 원주에 여행을 갔다가 느낀 인간의 감회를 담은 「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 등 허균의 다양한 지적 편력을 보여 주는 글들이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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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自由奔放한 思考와 삶의 軌跡을 보여 준 허균(許筠, 1569年~1618年)이 1609年 9月 그의 나이 41歲 때, 江原道 原州로 母親 省墓 가서 近處 法泉寺址를 찾았던 일을 記錄한 것이다. 法泉寺는 725年에 세워진 오래된 절로 高麗 文宗 때 智光國師의 重創으로 큰 절의 面貌를 갖추었고, 許筠이 訪問하기 10年 前 發生한 壬辰倭亂 當時 慘禍를 입어 廢墟로 변했다. 이곳 나들이를 제안했던 僧侶 智觀은 20年 前에는 數百名의 僧侶로 북적대던 큰 절 이었다고 回顧한다. 許筠은 절터 近處에 있던 세 무덤을 보고, 生前 富貴와 名聲이 대단했지만 只今은 아무도 모른는 埋葬者와 生前 힘든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世上이 기리는 埋葬者를 比較하면서 記憶에 남지 않을 富貴와 權勢를 좇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萬代에 이름을 남길 삶의 態度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한다. 그 때 나들이를 함께 한 智觀은 죽은 뒤에 千秋萬世의 名聲을 누린들 自己가 모르는 걸요. 저 같으면 차라리 제 이름을 남에게 알리지조차 않으렵니다.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게 무슨 所用이랍니까? 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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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 분방한 사고와 삶의 궤적을 보여 준 허균(許筠, 1569년~1618년)이 1609년 9월 그의 나이 41세 때, 강원도 원주로 모친 성묘 가서 근처 법천사지를 찾았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법천사는 725년에 세워진 오래된 절로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의 중창으로 큰 절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허균이 방문하기 10년 전 발생한 임진왜란 당시 참화를 입어 폐허로 변했다. 이곳 나들이를 제안했던 승려 지관은 20년 전에는 수백명의 승려로 북적대전 큰 절 이었다고 회고한다. 허균은 절터 근처에 있던 세 무덤을 보고, 생전 부귀와 명성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모른는 매장자와 생전 힘든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세상이 기리는 매장자를 비교하면서 기억에 남지 않을 부귀와 권세를 좇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만대에 이름을 남길 삶의 태도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한다. 그 때 나들이를 함께 한 지관은 죽은 뒤에 천추만세의 명성을 누린들 자기가 모르는 걸요. 저 같으면 차라리 제 이름을 남에게 알리지조차 않으렵니다.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게 무슨 소용이랍니까? 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은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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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 1569년~1618년) : 최초의 국문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분으로 조선 시대 문신, 호는 교산(蛟山). 서자를 차별 대우 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하였으며, 광해군의 폭정에 항거하기 위하여 반란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였습니다. 이 책에 일곱 편의 글이 실렸있습니다. <시에는 별취(別趣)와 별재(別材)가 있다> : 젊은 시절 동갑 단짝 친구인 권필(權?, 1569년~1612년)의 시에 대해 찬양하는 글로 시는 시로만 판단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 어휘를 알맞게 구사해야 글이 단단해지고, 단락에 짜임새가 있어야만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좋은 글이란 이 두 가지를 갖춘 글일 뿐이라며 허구적 인물과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을 통해 말합니다.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이나옹을 전송하며> : 평소 아꼈던 화가 이정(李楨, 1578년~1607년)이 세상과 자신에 환멸을 느껴 불교에 의탁하려고 할 때 그에게 전한 위로와 충고의 글입니다. <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 : 휴가 때 어머니 묘에 성묘하러 왔다가 근처 법천사에 들렀던 일을 적은 글로 인간의 영고성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백성을 두려운 줄 알아라> : 봉건 왕조 때 이런 글을 써도 괜찮았을려나? 백성들의 봉기를 부추기는 듯한 글로 호민을 두려워 하라고 경고합니다. <상원군의 왕총에 대하여> : 1607년 평안도 상원군에 있는 고분을 발굴하였던 이야기. <김종직을 논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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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전 4:30~5:10 pp 50~66 2) 안대회ㆍ이종묵ㆍ정민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05 허균 외 http://m.yes24.com/Goods/Detail/8609438 3) 허균은 호민론, 즉 백성 두려운 줄 알아라에서 백성은 세 부류로 나눈다. 항민, 원민 그리고 호민. 항민은 풍년 들면 기뻐하고, 흉년 들면 빼앗기고 부림을 당해도 운명이려니 하고 감내한다. 원민은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도 더 내놓으라고 괴롭히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하며 원망을 품는다. 호민은 변고의 순간을 포착한다. 유사시에 그들은 평소에 품었던 다른 마음을 드러내 항민과 원민을 선동한다. 평소에 항민과 원민만 있는 줄 알고 착취가 계속되면 호민이 일어나 망한 실례를 허균은 든다. 조선 시대 이런 글을 쓴 허균은 참으로 대담한 사람이다 . 결국 그는 민중의 진정한 대변인으로 생애를 마친다. 한국 현대사는 허균의 호민론이 현재도 시대를 아우르는 진리임을 보여준다. 백성을 두려워하여 돌보고 기르는 정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4)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이벤트'에 참여하며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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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우리 옛글 시리즈의 5번째 책의 주인공은 허균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파격적일 정도로 시대를 앞서나간 행보를 보인 풍운아같은 인물이 허균인데, 이 책에서도 허균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글 자체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매끄럽게 잘 쓰인 문체와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허균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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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매일 읽는 우리 옛글 시리즈의 5번째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작품들을 실었다. 반골로 유명한 허균답게, 다소 일상적인 주제를 다룰 때에도 날카로운 비판의식 등이 드러나는 대목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글 자체도 매끄럽고 물 흐르는 듯한 명문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재미있게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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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이익과 만대의 명성>은 허균의 글을 한글로 번역하여 묶은 책이다. 홍길동전에서 사회제도의 모순을 통렬하게 지적한 허균답게 이 책에 실린 책도 당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당대의 사회성이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관련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 대목도 여럿 있는데, 충실한 해설이 그 빈 공간을 넘치도록 채워주고 있다. 번역 자체도 좋아서, 허균의 글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