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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하다. 그래서 더 노골적이고 자극적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더 가슴아프고 더 비참하게 더가온다. 이게 작가의 능력, 작가의 고상한 전달력인가보다. "나의 용서는 한없는 반복이었고,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들의 실험이, 그들이 보여한 번호가, 그들이 채취한 샘플이 헛된 것임을 증명하며, 한 소녀가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해 그들이 과소평가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였다. 나의 용서로 나를 없애려한 없애려한 그들의 실패는 확실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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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끝자락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나.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쓰인 책이기에 이 끔찍한 비극은 어떤 포장도 없이 순수하게 전개된다. 슬프고 침통한 부분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책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이, 고통이, 눈물이, 피가 책장을 넘에 내 온 몸으로 스며들어온다. 731부대와 견줄만큼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로 기록된 이 사건의 더욱 슬픈 사실은, 실험 대상이었던 1500쌍의 쌍둥이중 결국 살아남은 것은 100쌍임에도 정작 주모자인 요제프 멩겔스는 나름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후기를 쓰기 위해 그의 행적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멩겔스의 비인간적인 시술이 아닌 피해자들의 고통과 삶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묘사한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책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쉽게 상상하기 힘든 잔인한 고통을 받은 생존자가 결국 용서를 택했다는 것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용서이고 가장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용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모자들의 반성여부와 관계없이, 생존자들은 용서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자신을 되찾았을 것이다. 자신을 향한 행위들에 대한 분노를 넘어선 용서. 그 엄숙한 인간적인 모습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다시 해보자." 나는 그 문장을 끝맺을 필요가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22장 결코 끝이 아닌 중> 펄과 스타샤가 앙 다문 양귀비 봉오리를 그렸을 때, 비로소 죽음이라는 침묵이 멎고 미래라는 시곗바늘이 움직였으리라. 그들 눈에 비친 미래는 사랑과 빛으로 가득한 세상이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