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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우물과 탄광] 묵묵히 서로를 배려하면서...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온다던 3월인데 2020년도의 3월은 바이러스 천지가 되어 몸도 마음도 춥게만 느껴지게 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우물과 탄광, 그것은 곧 우리 현실 속 삶의 터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닐지.
이런 시절에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카본힐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를, 가족들 중심의 증언과 서사로 펼쳐 낸 소설 - 우물과 탄광 -을,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서로(가족, 또는 타인들)를 배려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가족 각자의 시선에서 어떤 사건과 세상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 이야기 속으로 ::
우물과 탄광은 1930년대의 앨라배마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가족의 서사, 탄광과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은 약간 공포 스릴러처럼 시작했지만, 결국은 가족 드라마 같은 따스한 소시민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총 아홉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지만, 각 장마다 테스, 버지, 앨버트, 리타가 번갈아 가며 '나' 서술자(시점)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꽤 치밀하게 내면적인 심리 상태가 묘사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 '미로 게임'처럼 여겨져서, 오히려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다. 독특한 서사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작은 공간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마주한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추리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만나는 것 같다.
어느 여름밤, 홀로 테라스에 앉아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던 테스는 한 여자가 우물 쪽으로 다가가 그 안으로 무언가를 던져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 갓난아기였다. 테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식구들에게 말해보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 상상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테스이지만, 가족들은 각자의 이유로 테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날 우물 속에서 정말로 갓난아기의 시신이 발견되고 만다.
이렇게 시작된, 꽤나 충격적인 공포, 스릴러처럼 시작된 이야기. 결국 이 소설은 우물에 버려진 아기를 둘러싼 사건으로 시작되며. 테스와 버지는 아기를 버린 여자를 찾기 위해 카본힐 곳곳을 조사하며 다닌다. 뿐만 아니라 앨버트(아버지)가 탄광 안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도. 그들의(그 지역의) 삶 속 깊숙하게 들어서는 기분이 들게 한다.
177쪽에서. "그러니까 언니의 얘기는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가 사악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악한 게 아니면 결국 미친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다른 이유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엄마 같은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계속 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왜 지금껏 그녀가 눈에 띄지 않았을까? 사악하거나 미친 사람들은 분명 우리 생각과 다를 수 있다."
또한 가족을 생각하는 아버지 앨버트는 가장으로서, 가난한 살림이지만 서로의 평안을 위하고 자신들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배려한다.
이 2020년도 3월,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엄청난 코로나 19사태는, 어떤 모델로서의 앨버트와 가족들을 대입시키게 한다. 풍족하지 않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더 힘들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고개 숙이게 한다. 천진난만하지만 사태를 주의깊게 관찰할 줄 아는 테스와 버지와 잭의 모습. 책임감이 강한 앨버트와 우리들의 엄마 같은 모습의 리타.
우리 주변에서 벌어졌을 것 같은 이야기, 또는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어느 소박한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소설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절대 공포를 체험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전체 이야기와 테스의 가족들을 찬찬히 따라 가다 보면 오히려 훈훈한 온기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25-27쪽에서. 테스는, "나는 우물이 그리웠다. 우리집은 아무리 잭이 아직 꼬맹이라고 해도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집 전면에는 테라스로 향하는 문이 나 있는 거실과 나와 버지 언니가 함께 쓰는 침실이 있었고..." "우물을 보면 왕풍뎅이를 실에 묶어 관찰하듯 개울을 작은 나무 구멍 안에 가두어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하에서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은 우물 안에 잠시 머물렀다 다시 흘러갔고, 우리는 원할때면 언제든지 그 개울물을 양동이로 떠올릴 수 있었다."
우물은 삶의 터전이자, 때로는 공포스런, 그리고 회한이 어린, 다양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그 우물에서 시작된 사건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가족들 각자의 시선과 아버지가 다니는 탄광의 어둠과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어둡고 깊은 어떤 속을 보여주면서도 결고 무겁고 두렵지만은 않으니. 그것이 곧 가족들이 함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묵묵히 서로를 배려하는 좋은 가족들이 있어서 말이다.
이 시절에 읽으면 참 좋을 내용이라 여기고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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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아기를 내버리고 간 뒤, 한동안 꽤 오래도록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귓가에는 첨벙하는 물소리가 계속 멤돌았다."p13
이야기는 어떤 여자가 테스의 집 우물에 아기를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한밤 중 테라스에서 그런 괴이한 일을 목격했다는 것만으로도 오싹하고 소름돋았다. 그런데... 이야기는 우물에 버려진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스릴러나 미스테리로 전개되지 않는다. 우물이 있는 그곳에 사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사는 그곳 카본힐의 생활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건을 처음 목격한 테스의 집엔 아빠 앨버트, 엄마 리타, 언니 버지, 동생 잭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글은 각각의 가족 구성원의 시각으로 사건을 그리고 생활을 이야기한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 부부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직하고 듬직한 아빠 앨버트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다. 차분한 엄마 리타는 없는 살림을 쪼개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늘 노력한다. 큰딸 버지는 동생들을 그리고 부모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며 자신만의 독립적 세상도 꿈꾸는 야무진 아이다. 둘째 테스는 엉뚱하지만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끝까지 추척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막내 잭은 아직 어리고 개구쟁이지만 가족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마음이 있는 멋진 꼬맹이다. 이렇게 다섯 사람은 나름의 생각들도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분자분 이야기 한다.
"사람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린 그들의 사정을 잘 모르잖니. 남의 도움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게 가장 나은 법이야."(p281)
개인적으로 테스가 엉뚱하지만 멋진 계획을 세우고 언니와 함께 실행에 옮기는 부분에서 몰입이 가장 됐다. 하지만 우물 아기 투척 사건만이 그들에게 일어나는 큰 사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추적은 책의 주된 줄거리가 되진 않는다. 충격적인 사건이긴 했지만 당시의 그들에겐 그보다 더 시급하고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았다. 부모로서의 일이 그렇고, 돈을 벌기 위한 일이 그렇고,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렇다. 더군다나 막내 잭에게 있었던 일로 인해 부모라는 위치는 더욱 위기에 처하게 된다. 허나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가족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족을 향한 사랑을 봤다. 물론 그들이 사는 사회가 그리 녹록한 곳은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는 인종차별이 있었고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그 어느 곳보다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고단한 중생들이 많다. 특히 1930년대 미국의 탄광지대엔 잘 사는 이들보다는 하루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사는게 팍팍하고 힘들고 그래서 슬픔을 겨우겨우 이겨내거나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며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슬픔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 한마디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앨버트의 작업원 조나는 그렇게 말했나 보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p170) 그래도 희망은 보였다. 자신들이 처해있던 사회적 고단함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이 하나, 둘, 계속 생기다 보면 더 나은 사회는 가정은 분명이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각자가 가진 답들은 모두가 다 정답이 될수도 있을테니까..
"잭은 나보다 더 일찍 그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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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로 보이는 뒷모습이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뭔가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은 표지 디자인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폐장시간을 앞둔 동물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3시간 10여 분 동안 펼쳐지는 엄마와 다섯살 아들의 탈출기를 흥미롭게 펼쳐낸 『밤의 동물원』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 덕분에 그녀의 데뷔작 『우물과 탄광』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불어 커졌는데 우물과 탄광이라는 흥미로운 장소는 소설이 들려줄 이야기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테스는 어느 여자가 자신의 집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가는 것을 목격하고 가족들에게 알리지만 아무도 테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날 담요와 아기가 발견된다.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왜 아기를 버린 곳이 가족의 우물이었는지 궁금증이 이어진다. 다섯 가족의 시점이 바뀌며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는 『밤의 동물원』과도 흡사하지만 긴장감으로 흡인력 있게 읽혔던 『밤의 동물원』과 달리 『우물과 탄광』은 긴장감보다는 이후에도 계속되는 평범한 일상들이 흡인력 있게 읽히며 『밤의 동물원』과는 또 다른 매력과 재미를 전해준다.
서로 다른 성격, 성향의 가족들의 내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빠르게 시점을 바꿔가며 소설의 흡인력을 높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1930년대 탄광도시 앨라배마주 카본힐의 묘사와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배경에 대한 묘사가 소설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인종차별 문제에 성숙하게 대응하고 교육하는 아버지 앨버트의 모습과 학교 선생님을 선망하는 버지의 모습은 마치 성장소설을 보는 것 같은데 뿐만 아니라 소설에는 휴머니즘, 페미니즘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매력을 더해준다. 진 필립스의 내공에 감탄할 부분들이 넘쳐나는데 『우물과 탄광』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우물에 아이를 던진 여자에 대한 미스터리에 이끌렸지만 소설은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진 필립스가 생생하게 묘사한 1930년대 탄광도시의 풍경과 그에 어우러지는 정서를 몰입하여 읽다 보니 무거운 주제들이 녹아들어 결코 가볍게 읽어서는 안될 이야기를 너무 빠른 속도감으로 읽어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만큼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하는 소설이다. 『밤의 동물원』에 이어 『우물과 탄광』 역시 높은 기대에도 재미와 여운을 충족시켜 작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졌다. 진 필립스가 다작을 하는 작가이길, 진 필립스의 작품이 발표되면 한국에도 빠르게 번역되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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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필립스 의 데뷔 장편소설 「 #우물과탄광 」은 이미 번역 출판된「한밤의 동물원 」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1930년대 미국의 작은 탄광 마을인 카본힐을 배경으로, 단란한 무어 가족의 우물에 갓난아이가 버려지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ㅡ p.28 [테스] 개울가는 아무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반면 우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 안에서는 개울의 냄새가 풍겨왔다. 바닥은 개울가 돌멩이처럼 미끄러운 이끼가 끼었겠지. 나는 우물 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어쩌면 목욕물을 긷는 중에 인어공주나 말하는 물고기가 딸려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종종 했다. 그런데 목욕물에 딸려온 아기라니. p.35 [잭] 다만 아침에 집을 나선 아빠가 그날 저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가장이 되리라는 것도, 당시 내 또래의 몇몇 남자아이들은 이미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탄광으로 보내지 않았다. ㅡ 미스테리소재가 도입된 #가족소설, #성장소설 이다. 모범적인 가장이며 언제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빠 앨버트, 늘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 리타, 동네 남자애들이 모두 다 마음에 품어 볼 정도의 미모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찾아가는 큰 딸 버지, 무한한 상상력과 해맑은 미소로 주위를 비추는 작은 딸 테스, 막내지만 의젓한 잭. 앨버트 무어와 리타 부부, 버지와 테스 그리고 잭 삼남매, 각각의 시각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들은 우물사건 범인을 추적하는 한편, 너무나도 모범적인 가족의 소소한 일상,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과 이웃의 궁핍하고 고난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흑인 인권,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1930년대 미국의 시대적 배경이나 분위기 때문에 하퍼 리의 앵무새죽이기가 생각나기도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이유가 무엇인지 끝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예측치 못한 곳에 다다르고, 1930년대 미국의 생생한 일상으로 가볼 수 있는 재미를 한껏 선사한다. ㅡ p.67 [앨버트] 주변에 병충해를 입은 것들도 있었지만 다들 빨갛고 과즙이 풍부해 보였다. 과육이 터질 듯 부풀어오른 토마토들을 보고 있으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하나를 따서 사과처럼 한입 베어 물자 과즙이 턱까지 흘러내렸다. "이리 와봐라, 잭.'' 입안에 한여름의 맛이 가득했다. 나는 턱수염 주변으로 토마토 씨를 잔뜩 묻힌 채 하나를 더 따서 잭에게 건넸다. (...) 이며 혀며 손이며 팔이며 온통 과즙으로 범벅을 한 채 재잘거리며 후루룩후루룩 토마토를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토마토는 정말 행복한 열매 같아요. 그쵸 아빠?" 토마토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테스가 물었다. "아주 신나고 즐거운 열매예요. 레몬은 뾰로통하고 복숭아는 바람둥이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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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잭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다. 엄마는 정원 한쪽에 장미 덤불을 가꿔 공간을 마련했고,버지 언니는 숲을 가로질러 혼자 멀리까지 산책을 가곤 했다.아빠에게는 탄광이 있었다……물론 그곳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었고 가끔 탄광벽이 무너져 수많은 인부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어쨌든 아빠 역시 식구들과 따로 떨어져 지낼 공간이 있었다.내게는 우물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p.26)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미스터리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잠시 읽어 나가다 보면 아기가 우물에 빠진 사건으로 인해 하루가 별 다를 것 없이 지나가는 한 가정에 조용한 일렁임이 이는 시작점이 되는 사건이다.그 사건이후 많은것이 달라지기 시작한다.탄광에서 현장 감독하는 일을 하는 아빠인 앨버트.음식 솜씨 뛰어나고 생활력 강한 엄마 리타.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는 큰딸 버지.통통 튀는 귀여운 매력의 엉뚱 발랄 테스.귀염둥이 막내 잭.이렇게 다섯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서술 되는 이야기는 하나의 상황을 두고 가졌을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엿볼수 있고 그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는 진행이 된다.지독히도 가난한 탄광마을.그리고 경제 대공황을 지나는 시기의 1930년대 미국의 어느 마을.목화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그리고 너무나도 적나라하게.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당연하다는듯이 펼쳐지는 인종차별.백인우월주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접해 봤음에도 인간의 집단의 이기심.잔혹함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하는 의문의 들었다.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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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필립스의 <우물과 탄광>은 1930년대 미국이 배경인, 미스터리가 가미된 가족 소설이다. 한 여자가 어느 집의 뒷마당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그 모습을 그 집의 둘째 딸 테스가 목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테스가 가족들에게 낯선 여자가 우물에 아기를 버렸다는 말을 전하자 가족들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튿날 우물에서 퉁퉁 불은 아기 시체가 발견되고, 테스는 밤마다 죽은 아기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보다 못한 테스의 언니 버지는 테스와 함께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를 찾으러 나선다. 소설의 도입부만 보면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가 누구인지 추리하고 탐문하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소설일 것 같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1930년대 미국 탄광 마을의 생활상을 세세하게 반영한 가족 소설에 가깝다. 테스는 물론,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 어머니 리타, 언니 버지, 남동생 잭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당시 미국 탄광 마을의 평범한 백인 가정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근면하고 성실한 가장이다. 어릴 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돈을 벌었고, 리타를 만나 결혼하여 자녀 셋을 두고 제법 괜찮은 가정을 이뤘다. 평일에는 광산에서 일하고 휴일에는 목화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느라 몸이 남아나지 않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테스의 어머니 리타 역시 밤낮없이 요리와 빨래, 청소는 물론 농사일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다. 큰딸 버지는 그런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어린 테스와 잭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좋다. 그림처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소설인가 싶지만 당시로서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법한 생각이나 장면들도 많이 나온다. 가령 테스의 아버지 앨버트는 탄광에서 함께 일하는 흑인 광부들을 차별하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 지금으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1960년대까지도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었음을 감안하면 앨버트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앨버트인데도,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기 안에 흑인을 차별하는 생각이 남아있었음을 깨닫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테스의 언니 버지는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라서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성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버지는 연애나 결혼보다 취업과 독립에 더 관심이 많다. 이 또한 지금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지만 이 시절만 해도 여자는 '혼기'가 차면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당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던) 교사가 될지 간호사가 될지 고민하는 버지에게, 메릴린 이모가 너는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다고 격려하는 장면이 참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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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 뭔가 숨겨진 것들을 찾아보려 했다. 저 정중함 뒤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을까? 고단한 삶을 살거나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눈 밑은 거뭇했고 얼굴에서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너무나도 피곤해 보이는데 혹시 이 아이를 데리고 하루하루 버티기보단 차라리 없애버리고 싶다는 감정이 들지는 않을까? 집에 이런 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면 그애를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을 먹지는 않았을까? p.113
<밤의 동물원>으로 만났던 진 필립스의 데뷔작으로 하얀 목화밭과 검은 광산이 공존하는 1930년대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아홉 살 소녀 테스는 부엌 뒤테라스에 있는 우물 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한 여자가 담요를 둘둘 말아 감싸고 있던 아기를 우물 안으로 내던진 것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얼음처럼 굳어 버린 테스는 얼마 뒤 부엌문을 열고 들어온 버지 언니에게 말한다. "어떤 여자가 우물 안으로 아기를 던져버렸어." 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테스의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다음날 우물 양동이에서 핏기 없이 자그마한 아기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바쁜 가족들의 일상은 계속 된다. 탄광에서 2교대로 일하는 아빠 앨버트, 세 아이를 돌보며 새벽 소젖 짜기부터 저녁 손바느질까지 해내느라 쉴 틈 없는 엄마 리타, 그리고 두 딸 버지와 테스, 막내인 잭까지 이야기는 이들 다섯 식구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엄마는 줄곧 일거리를 붙들고 있었지만 결코 피곤하거나 힘들거나 혹은 지친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아빠는 죄 없이 체포 당한 흑인 동료를 위해 새벽에 자다 깨서 경찰서를 찾는다. 앨버트와 리타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힘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향해 있다. 자연스레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어갈 지 짐작이 될 것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아빠 밑에서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공손하고, 상대가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돕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는 과정이 소소하지만, 따뜻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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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을 한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감독관님. 못된 여자가 아니고요. 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우물에 던져버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관님 말씀대로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 p.170
이 작품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테스는 악몽을 꾸고, 아기 생각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버지는 누가 그랬는지, 어떤 여자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두 자매는 최근에 출산한 적 있는 동네 여자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집집마다 찾아가 아기들을 확인해보기로 한다. 그 여자는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거나, 겨울은 다가오는데 온 식구가 맨발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라 이렇게라도 해야 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아기가 계속 울어대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을까, 더는 감당하기 힘든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 혹은 열 번째 아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걸까, 그 과정에서 버지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나간다. 엄마는 우물 옆에 서서, 어떻게 하면 조금은 편히 살 수 있을지 고민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까?
작가는 범인이 누구이고,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미스터리보다 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된 사람들의 삶과 일상에 더 집중한다. 다섯 식구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여전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반복되는 삶의 고단함과 사회적인 관습과 편견을 넘어서는 석탄 암석처럼 단단하고 확실한 사람들의 선함과 긍정적인 믿음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이들의 생계와 훈육을 위해 부모로서 부단히 노력하는 부모, 탄광 사고로 시력을 잃은 동료를 위해 힘을 모으는 광부들, 불운이 닥친 앨버트의 가족을 위해 저마다 형편에 맞게 위로를 전하는 이웃들까지.. 가족의 사랑과 헌신, 이웃과의 연대, 참된 노동의 가치가 생동하는 삶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가부장적 분위기와 인종차별이 잔존하는 시대의 한계 안에서 인간이기에 가능한 근면과 선함이 깃든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가족 드라마는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가지만, 뭉클하고 따스한 여운을 남겨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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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홀린 듯, 서평단 공지를 보고 무심코 신청했다가 설 연휴 직전에 툭, 받았다. 연휴 기간동안 잊고 있다가, 2주 안에 리뷰를 써야 한다는 서평단 조건을 떠올리고 읽기 시작했는데, 흡인력이 대단해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다. 1920년대 미국 앨라배마주 카본힐. 카본힐은 인구의 75%가 탄광에 종사하는 광업 도시로서, 탄광노조의 중간 관리자급 인부인 베테랑 광부 앨버트는 리타라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버지, 테스, 잭 삼남매를 위해 매일매일 석탄 가루를 마시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우 너그러웠고,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애썼으며, 가족들에겐 생활력 강한 가장이었고, 광대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땅을 갖고 있는 지주이기도 했던 그는 모든 이웃에게 따스한 사람이었다. 리타 역시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내어주고, 산더미 같은 집안인을 하며 남편이 벌어오는 생활비를 알뜰하게 쪼개서 경제적으로 잘 쓸 줄 아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안주인이었다. 고학년인 버지는 엄마를 닮아 매우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나고 있었고 맏이답게 사려깊고 동생들을 잘 챙겼다. 테스는 좀 더 말광량이 기질이 있었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매우 활달했다. 막내인 잭은 아직 어렸지만, 아들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배 곯을 일도 없었던 이 따스한 가정에 폭탄같은 일이 벌어진다. 테스네 집은 숲과 연결되어 있었다. 뒷마당에는 숲에서부터 흐르는 개울이 지나고 있었고, 앨버트는 이를 생활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두터운 우물을 만들어 놓았다. 뒷마당 우물가는 테스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어린 소녀의 공상의 도화지였다. 그 날, 어둑한 저녁에도 테스는 잔잔한 생활 소음을 BGM삼아 뒷마당이 보이는 부엌 문에 기대 어둠에 잠겨가는 숲과 우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우물 뚜껑문을 열고 무언가를 던졌다. 너무 어두워서 형체만 보였지만, 분명 아기였다. 테스는 자기가 본 것을 가족들에게 말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테스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다음 날, 리타가 길어올린 우물 양동이 안에서 퉁퉁 불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920년대 중~후반 탄광마을 카본힐을 주로 다루고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 작품 안에서는 경제 대공황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은 총 9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작은 장들로 다시 나뉘어 있다.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활용되어온 기법으로 나는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과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시리즈에서 처음 접했다. 모든 등장인물이 각자 자신의 시점으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이 시점들이 아주 친절하게 챕터로 나뉘어 있으며 매 챕터는 짧고 간결하다. 이러한 구조와 형식은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집중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시대적 정서보다는 작가 개인의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매우 목가적인 작품이다. 카본힐이라는 마을의 정경, 탄광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가족들이 사는 집과 경작하는 땅, 해먹는 음식 등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따스하게 그려지고 있다. 우물 속에 던져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시작되지만, 이렇게 따스한 필체로 버지와 테스의 성장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당시 시대상에 비춰지는 인종차별, 경직된 사회적 성 역할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담겨 있지만, 먹고, 놀고, 일하는 것을 그리듯 일체의 감정과잉 없이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볼륨이 결코 두껍지 않지만, 담겨있는 정서도 매우 풍부하고, 인물 개개인에 대한 내러티브도 풍성할 뿐 아니라, 제공되는 정보의 양도 꽤 많다. 열심히 읽다보면, 주요 인물들의 삶을 거의 다 알아낼 수 있는데, 책의 두께를 보면 '어떻게 이렇게 간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정말 필요한 이야기만 쏙쏙 뽑아 잘 만들어냈고, 감정과 정서의 흐름도 매우 균형적이다. 나는 처음 이 작품을 펼쳤을 때, 비극적인 이야기를 상상했다. 전간기를 다룬 소설들이 대부분 그렇게 비극적이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이 가족에겐 전쟁과의 접점이 없었다. 잭의 나이로 보아 2차 세계대전은 잘 피해갔겠지만,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을 위한 징집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사건이 그것을 피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잭에게는 전쟁에 대한 공포보다, 언젠가 탄광에서 일해야 한다는 일상의 공포가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앨버트와 리타는 자식들에게 그런 삶을 피하게 해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고, 이 작품은 다행히 비극적으로 종결되지는 않았다. 작품에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쏘아져야 하듯, 탄광은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데, 다행히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진짜 다행다행) 무척 목가적이고 따스한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어렸을 때 작은 TV에서 봤던 [초원의 집] 같은 외화(지금으로 치면 미드.ㅋㅋ)가 떠올랐고, 연상 작용으로 그 시기의 나의 삶들도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올라서, 오랫동안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 부모님이야말로 가장 영향력 짙은 선생님이고, 가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일터다.
p.s 재미있게도, 이 작품 직전에 시대적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를 다룬 뮤리얼 스파크의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를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영미권 여성 작가의 소설로 1920~40년대를 다루고 있고, 소녀들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한쪽은 대도시, 이쪽은 시골 탄광촌. 여러모로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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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탄광 / 진 필립스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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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재미는 역시 내가 가보지 않은 시대의 겪어보지 않은 일들을 간접체험하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대 미국의 탄광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진 웹스터의 데뷔작 <우물과 탄광>을 읽는 내내 아주 재미있었다. ? ? 앨버트와 리타, 그들의 세 아이 버지, 테스, 잭은 풍족하지 않은 살림에도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이다. 소설은 그들의 집 근처 우물에 어떤 여자가 갓난아이를 던져넣는 충격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앨버트는 앨버트대로, 버지와 테스는 그들대로 누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이 배우는 것은 다양한 삶의 면면들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누군가의 가난은 동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함께’이기에 살 수 있다는 것. ? ? 이 소설의 핵심은 ‘함께’라는 단어에 있는 듯하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 누가 우물에 아이를 던졌는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을 했는지(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 궁금해하는 것. 미스테리로부터 시작되지만 앨버트 가족의 다섯 시각으로 펼쳐지는 일상과 그 일상 속 배움들이 더 깊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 ? 연필 굿즈에 새겨진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문구가 어떤 장면에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그 장면이 앨버트가 흑인 동료인 조나로부터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방법’을 깨닫는 장면이라 더욱 좋았다. 리타가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장면만큼이나! 탄광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목숨을 담보로 일한다는 것임에도, 배려와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앨버트 가족의 모습에 명절을 무사히 보낸 것 같기도. ? ? ? (*첫번째 독자-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 www.instagram.com/vivia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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