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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건국을 둘러싼 기원설에 대한 이견 조선건국은 신흥사대부의 출현으로 시작? 고려와 조선의 지배계급은 같은 계급출신?, 출신성분은 지은이 던컨은 한국사연구에 힘쓴 몇 안되는 외국 연구자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정권교체, 즉 조선왕조 기원은 어떤 면에서는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데, 이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국사교과서나, 학계의 통설은 조선왕조 창건 주도세력은 고려 말에 대두한 ‘신흥 사대부’였다고 규정한다. 새 엘리트집단의 출신성분은 지방의 중소지주, 향리다. 과거를 거쳐 중앙관계에 진출, 새로운 이념인 성리학을 받아들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흥 사대부는 중앙의 문벌귀족으로 대지주였으며, 불교를 믿는 기존 엘리트집단과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이 달랐다. 신흥사대부론에 대한 반박- 고려말, 신흥사대부 같은 새로운 엘리트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조선전기의 주요 양반가문으로 38문(집안)을 지적했는데, 이중 9문(집안)만이 1351년 이후 관계에 진출하였다. 이들 가문과 공민왕 이전에 약간 명의 관리를 배출한 7문(집안)까지를 더한 16문(집안)을 신흥 사대부로 보고 검토작업을 한 결과, 16문(집안)은 조선 초기 중앙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고 왕조 교체의 주역은 더더욱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려 말에 ‘신흥 사대부’ 같은 새로운 엘리트집단의 출현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흥사대부로 보였던, 이들 집단과 기존 엘리트세력의 관계는 어떠했나, 고려 후기 세족을 중심을 이루는 도당이 세족일부를 구성한 권문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권문이란 당시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세력가 개인 또는 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여 세족(世族)은 전통 깊은 귀족으로서 그들이 다름 아닌 사대부였다. 고려 말의 정치현실을 보면, 세족이 중심을 이루는 도당이 세족의 일부 구성원을 권문이라 하여 공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리학이 조선왕조의 건국이념이었을까? 아니다. 지은이는 한국사회가 성리학 중심의 사회로 가는 과정에 있어서 조선 초기는 한당유학과 성리학이 공존하는 일종의 과도기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상사적인 변화에 있어서도 점진적이었다는 점을 그는 강조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학계에서 성리학이 왕조교체의 이념적 무기였고 조선왕조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는 주장이 철저히 검증 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고려-조선 왕조의 지적 전통이 복합적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지은이 던컨의 이야기의 얼개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의 기원은, 여러 모로, 다시 검토를 해봐야하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국사교과서에서는 이런 내용을 검토 반영하여 수정 내지 재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책으로 역사에 대한 인식의 어려움, 통설(어떤 의도로 왜 그렇게 정리했고 봤는지...본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 하나, 패자의 변명과 한 걸음 물러서 관찰한 이들의 서사, 서물, 기록도 충분히 참조해야 할 것이며, 새롭게 자료를 정리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이책에서는 통계를 가지고 설명하는데(통계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