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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 내용보기
실직/조성국소맷부리 고무단휑하니 늘어진 추리닝 차림새로다짜고짜 쳐들어왔다붉은 양파그물자루얼굴에 덮어쓰고빨갛게 반코팅된 일장갑을 낀 손에다식칼까지 들고 와막 휘둘러 댔다내 허벅지를 살짝 스치는 겁박도 잠시 저지르더니뜬금없이 풀썩 주저앉아그저 신고만 빨리 해 달라고 부탁했다입꼬리에 희멀건 거품이 끼도록 통사정하였다그제야 국가가관여했다 장기간 노역을 부리며먹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 내용보기
실직/조성국

소맷부리 고무단
휑하니 늘어진 추리닝 차림새로
다짜고짜 쳐들어왔다
붉은 양파그물자루
얼굴에 덮어쓰고
빨갛게 반코팅된 일장갑을 낀 손에다
식칼까지 들고 와
막 휘둘러 댔다
내 허벅지를 살짝 스치는 겁박도 잠시 저지르더니
뜬금없이 풀썩 주저앉아
그저 신고만 빨리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입꼬리에 희멀건 거품이 끼도록 통사정하였다

그제야 국가가
관여했다 장기간 노역을 부리며
먹고 자고 입고 볼일 보는 일까지
일체 관장하기 시작했다

시집『나만 멀쩡해서 미안해』(시인수첩)
.....

언젠가 뉴스에서 접한 30대의 아버지와 아들이 마트에서 우유 등을 훔치다가 회자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관의 선행이 이 부자의 삶을 극적으로 바뀐 일이 국민의 동정을 불러 일으켰다.
사회의 이러한 일이 이 뿐일 수 없지만 사흘 굶어 담장을 안 넘은 사람이 있겠냐 싶은 삶은 지금도 심심찮게 목격한다.
시인의 시집을 읽는 내내 시인의 삶에서 마주치는 여정을 투박한 우리네 언어와 뚝배기 같은 해학이 스며서 읽고 나면 웃음 짓게 하고 씁쓰레하기도 한다.
한 시대를 통과해온 이지역 중견 시인께서 발화한 넉살과 해학은 그렇다고 가볍지 않고 생의 뒷면을 보게 한다.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
한 편 한 편을 읽고 가게 하는 시인의 문장은 우리네 삶과 마주보게 한다. 어느 선술집 주인장이 모듬고기 한 접시 쑥 내미는 마음 같고 봄날의 난분분한 꽃 같다.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하다는 자탄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지는 빚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실직자의 행동도 시인은 미안해한다.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멀쩡해 미안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 다 - 김황흠

#나만멀쩡해서미안해 #시인수첩시인선031
#조성국
k*****5 2020.01.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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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조성국소맷부리 고무단휑하니 늘어진 추리닝 차림새로다짜고짜 쳐들어왔다붉은 양파그물자루얼굴에 덮어쓰고빨갛게 반코팅된 일장갑을 낀 손에다식칼까지 들고 와막 휘둘러 댔다내 허벅지를 살짝 스치는 겁박도 잠시 저지르더니뜬금없이 풀썩 주저앉아그저 신고만 빨리 해 달라고 부탁했다입꼬리에 희멀건 거품이 끼도록 통사정하였다그제야 국가가관여했다 장기간 노역을 부리며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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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조성국

소맷부리 고무단
휑하니 늘어진 추리닝 차림새로
다짜고짜 쳐들어왔다
붉은 양파그물자루
얼굴에 덮어쓰고
빨갛게 반코팅된 일장갑을 낀 손에다
식칼까지 들고 와
막 휘둘러 댔다
내 허벅지를 살짝 스치는 겁박도 잠시 저지르더니
뜬금없이 풀썩 주저앉아
그저 신고만 빨리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입꼬리에 희멀건 거품이 끼도록 통사정하였다

그제야 국가가
관여했다 장기간 노역을 부리며
먹고 자고 입고 볼일 보는 일까지
일체 관장하기 시작했다

시집『나만 멀쩡해서 미안해』(시인수첩)
.....

언젠가 뉴스에서 접한 30대의 아버지와 아들이 마트에서 우유 등을 훔치다가 회자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경찰관의 선행이 이 부자의 삶을 극적으로 바뀐 일이 국민의 동정을 불러 일으켰다.
사회의 이러한 일이 이 뿐일 수 없지만 사흘 굶어 담장을 안 넘은 사람이 있겠냐 싶은 삶은 지금도 심심찮게 목격한다.
시인의 시집을 읽는 내내 시인의 삶에서 마주치는 여정을 투박한 우리네 언어와 뚝배기 같은 해학이 스며서 읽고 나면 웃음 짓게 하고 씁쓰레하기도 한다.
한 시대를 통과해온 이지역 중견 시인께서 발화한 넉살과 해학은 그렇다고 가볍지 않고 생의 뒷면을 보게 한다. 거울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
한 편 한 편을 읽고 가게 하는 시인의 문장은 우리네 삶과 마주보게 한다. 어느 선술집 주인장이 모듬고기 한 접시 쑥 내미는 마음 같고 봄날의 난분분한 꽃 같다.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시인만 멀쩡해서 미안하다는 자탄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지는 빚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실직자의 행동도 시인은 미안해한다.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멀쩡해 미안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 다 - 김황흠

#나만멀쩡해서미안해 #시인수첩시인선031
#조성국
k*****5 2020.01.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