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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사이비" 내용보기
책을 읽으면 양서와 악서의 기준을 나누게 됩니다. 간단하기 구분하자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책, 여전히 이 책을 이해하기에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책을 저는 양서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책을 악서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기준은 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기분이고,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나의 기준에는 양서가 됩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과 일치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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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양서와 악서의 기준을 나누게 됩니다. 간단하기 구분하자면, 한번 더 읽고 싶은 책, 여전히 이 책을 이해하기에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책을 저는 양서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책을 악서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기준은 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기분이고,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나의 기준에는 양서가 됩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과 일치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나에게 조금 부족한 책이며, 저의 이해의 폭이 이 책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과 저자의 생각과 사유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이 책은 잡문집입니다. 특정한 주제가 없이 저자의 생각과 사유만으로 자신의 일상과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과, 자신의 가정을 바라보는 모습,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우리 교육의 모순과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문학과를 나와서 우리 사회에서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있으며, 스스로 사이비 향원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붙인 사이비 향원은 연암 박지원이 연암집을 통해서 경멸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반성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언어에 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정치와 언론에서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기자와 언론인,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지 국어가 아닌 것입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돈에 맞춰져 있으며,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관들을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말하는 분노의 실체에 대해서, 그들은 국민들이 모두 분노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며, 분노하지 않는 국민들을 분노하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그런 모습을 최근 보여주고 있는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와 교육부 비리와 언론인들의 현제 모습과 일치 합니다.우리 사회에 인문학의 실체는 있지만, 그 인문학이 왜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인문학 전문가라고 자처 하는 인문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지저는 꼬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저자의 아들의 이야기와 부모님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 안에 보여지는 글쓴이의 생각과 가치관, 자녀에게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마음 씀씀이 속에는 수많은 흙수저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고춧대의 삶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으며, 고추가 모두 수확되고, 마지막 희나리가 수거되면서, 마지막 고춧대가 뽑히는 그 순간을 부모님과 연결짓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숨어 있는 자식과 부모의 연에 대해서, 우리의 인연이란 무엇이며, 나에게 주어진 인연은 또다른 인연으로 덮혀지고, 지워진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보면 그렇것 같습니다. 인연을 맺고 끊는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맺어진 인연이 새로운 인연으로 덮혀지고, 때로는 불편한 사정으로 인하여 끊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책에는 그런 모습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느끼게 되며, 우리의 몸은 본질적으로 인연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인문학서들이 출세와 성공을 지향하기 위해서 인문학 독서를 탐독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문학 열풍의 허와 실은 무엇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인문학 도서를 구분하고 있으며, 가려 읽고 있으며, 돈이 되는 인문학과 돈이 안 되는 인문학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누군가 먼저 써놓은 인문학에 대한 생각과 통섭을 복사하고 빼끼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특히 모 작가의 수백권을 출간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그 사람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되돌아 보았습니다.    

k*******2 2017.01.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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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 교수의 삶과 글쓰기, 아뿔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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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간호윤은 고전을 사랑하고, 후학들에게 이를 가르친다. 그래서 명함도 고전을 읽고 쓴다는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다. 그는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았다.그간 우리 고전과 동양 고전에 관한 3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연암 박지원을 연구하였다. 이 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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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간호윤은 고전을 사랑하고, 후학들에게 이를 가르친다. 그래서 명함도 고전을 읽고 쓴다는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다. 그는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았다.

그간 우리 고전과 동양 고전에 관한 3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연암 박지원을 연구하였다. 이 책의 제목도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소망에서 따왔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이비 향원(鄕愿)’의 유래를 소상히 밝힌다. ‘향원’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다. 이 말은 『맹자』의 「진심편」과 『논어』의 「양화편」에 나온다. 공자는 “향원은 덕의 도둑이니라[鄕愿德之賊也]”라고 하였다.

이처럼 제목 『사이비』에는 시류에 부응하지 않고 줏대 있게 자신만의 글을 쓰겠다는 저자의 포부가 서려 있다. 연암 역시 출세보다는 학문 연구와 신문물에 온 관심을 쏟았다.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단서장사(短書長思)」(http://blog.naver.com/ho771)에 써 놓은 글 중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그의 글은 일상의 흐름을 일침(一針)의 시선으로 포착하는가 하면, 고전에 대한 애정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무릇 보통 사람은 아는 것과 행함이 다르다. “그 아우라 넘치는 글귀들, 하느님 버금가는 놓치기 아까운 말씀들, 그래 눈맛에 귀맛까지 여간 아닌 그 글과 행동이 영 각 따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어느덧 거머쥔 화두, “글 따로 나 따로!”(書自書我自我). 이를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의 고민에서 배추꼬리만큼 벗어났다고 고백한다.

그가 아우르는 글감의 소재는 끝이 없다. 딸아이의 카톡, 제자들과의 인연, 언론에 비친 세상만사, 보고 들은 책과 영화, 그리고 인문학과 고전 작품들. 특히 우리 고전에 대한 저자의 극진한 사랑은 우리 것을 다시 되돌아보게 해준다. 가령 16·17세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임제(林悌)가 있었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알아도 『화사(花史)』를 아는 이는 드물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내 인생길 어디쯤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만 한세상 잘 사는 길인가?

저자의 화두는 올곧은 삶이다. 참 마음이 들어 있는 말을 하고, 참 마음이 담겨 있는 글을 쓰고싶어 한다. 그는 연암처럼 목숨을 건 글쓰기(소단적치騷壇赤幟)를 꿈꾸고, 다산같이 복사뼈가 세 번 헐도록 공부하기(과골삼천踝骨三穿)를 소망한다. 나는 어느새 저자가 펼쳐 보이는 삶의 무늬에 스며든다. 아뿔싸!

YES마니아 : 로얄 h*******c 2016.11.08.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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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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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써 놓은 글 중 일부를 선별하여 활자화한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처음 제목은 ‘3류의 사회학: 까치발로 어섯눈 뜨기였다고 하니, 이는 '사이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저자는 이 책에 세상을 보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저자의 강한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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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블로그에 써 놓은 글 중 일부를 선별하여 활자화한 것이라고 한다. 제목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하지만 처음 제목은 ‘3류의 사회학: 까치발로 어섯눈 뜨기였다고 하니, 이는 '사이비’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저자는 이 책에 세상을 보는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저자의 강한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많다.

 

“난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 애쓰지 않습니다. 난 내 손가락으로 세 사람도 존경하는 이를 꼽을 수가 없답니다.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 말 그대로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말과 행동이 다른 자들은 어제도, 오늘도, 충분히 보았고 내일도 볼 듯합니다. 내 글은 지금 내가 내 눈으로 이 세상을 본 내 몸의 사리여야 합니다.” (p.6)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강한 개성이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개성이 강하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심지가 굳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번 세운 뜻을 쉽게 져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가 대부분 그러하다. 이처럼 개성이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런저런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체성을 살려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난 비교적 솔직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고 나 또한 별다른 이의를 재기하고 싶지 않다. 감정의 기복을 애써 숨기려 해도 남들이 금방 알아차리는 것을 보면 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내 글쓰기 또한 나를 굳이 감추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이 때문인 것도 잘 안다.

 

가끔씩 인생고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란 존재가 한없이 작아진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미사여구들도 감당키 어려운 말들이다. 그래, 인생하수인 나로서는 얼마든 이러저러한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늘 처음 사는 오늘을 사는 나다 .나는 산송장이 아니다. 박물관에 박제된 미이라도 아니다. 나는 뜨거운 심장이 뛰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오늘을 서툴게 사는 것에 대해 크게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이다. 작든 크든 저 사람과 다른 나이다.” (p.226)

 

이처럼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이 살아가는 저자의 삶이 부러웠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말이 있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한 마디로 내 생각이나 의견을 상대방의 입장이나 기분에 맞출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돌아서서 후회를 하거나 방금 했던 말을 물리고 싶어진다. 솔직히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내세운다.

 

저자는 살다보면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때가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어서 문득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말이다. 그럴 때 저자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연구의 대화, 그리고 “낭환집서”에서 연암 박지원 선생이 했던 말을 되새긴다고 하니 얼마나 개성이 강한 사람인가 알 수 있다. 이 두 고전은 저자를 삶의 절벽에서 구해준 밧줄과도 같다고 한다. 나도 “낭환집서”에 관심이 간다.

g****0 2016.10.30.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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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사이비, 진짜이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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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이 책은 제목부터가 대단히 이채롭다. ‘사이비(似而非)’란 사전적으로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을 뜻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사이비에 대해 논증하거나 설명하는 작업에는 그다지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작가가 사이비를 소재 혹은 주제로 삼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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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이 책은 제목부터가 대단히 이채롭다. ‘사이비(似而非)’란 사전적으로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을 뜻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사이비에 대해 논증하거나 설명하는 작업에는 그다지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작가가 사이비를 소재 혹은 주제로 삼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저자가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 혹은 자신이 접하는 뉴스, 혹은 자신에게 발생하는 사건 등에서 느끼거나 깨달은 바를 두서없이 써내려가는, ‘잡문’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구사하는 표현은 대단히 분방한 편이어서, 어떤 경우는 활자화되기에 적합한 ‘글’이라고 판단하기 쉽지 않은 대목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로 책에 적합한 문체에 익숙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이 난무하는 이 책을 읽어내기가 조금은 까다롭기도 하고 조금은 짜증스러움이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비단 작가의 문체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이런 문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생각 자체가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을 내 가슴 속 한 구석에 깊이 찔러 넣는다.

 

비록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사이비’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지만, 이 책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큰 요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사이비를 경계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 밝혔듯 사이비는 겉모습만 비슷할 뿐 본질은 완전히 다른 대상이나 사물이나 사람이나 집단을 가리킨다. 이런 사이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자성어인 ‘표리부동(表裏不同)’으로 쉽게 환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에서 ‘스스로가 하는 말과 그 말의 내용과는 상반된 행동이나 태도를 취하는 사람 전부’를 사이비로 규정한다는 인상을 준다.

 

달리 표현하면, 사이비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그럴 듯한 가면(persona)을 쓴 위선자(hypocrite) 또는 이중인격자(double-faced person)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삶을 살아간다.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인생이라는 희곡을 상연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희곡에서 요구하는 인물을 표현하려면 거기에 적합한 가면을 바꿔 쓰고 거기에 적합한 동작과 대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가면을 쓰고 필요한 동작과 대사를 하지 못하고 완전히 부적합한 가면을 쓴 채로 부적합한 동작과 대사를 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 대목에서 사이비가 생겨난다.

 

저자는 『사이비』라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불합리하게 자리 잡은 사이비의 풍토를 크게 개탄한다. 이것은 단순히 탁상공론적인 개탄이 아니다. 저자가 실제 삶 속에서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온갖 부조리한 경우들을 당하면서 어쩌면 일종의 피해의식처럼 저자의 인식구조 자체를 완전히 장악해 버린 삶의 체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비록 작가가 말하는 내용의 전부는 아니어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측면들도 있다. 어찌 보면 넋두리처럼 들린다는 인상마저 주는 이런 냉소적 지적을 통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려는 취지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체념이나 단념이라기보다 각자의 처지에서 그러한 사이비를 경계하도록 행동하라는 무언의 당부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자신의 현 위치(배역)에 적합한 가면을 쓰고 적합한 언행을 통해 인생이라는 희곡을 적합하게 연출하라는 충고가 아닐까?

 

不사이비, 곧 진짜여야 한다는 것...... 저자가 500페이지를 넘게 채워 쓴 이 책에서 정말 들려주고 싶은 간단한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n******n 2016.11.06.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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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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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이 책은    사이비(似而非),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非)라는 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분도 나도 서로의 말은 고담준론이지만, 행동은 영판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5쪽)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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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이 책은 

 

사이비(似而非),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라는 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분도 나도 서로의 말은 고담준론이지만, 행동은 영판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5)

 

그렇게 자신이 사이비라는 것을 고백한다. 더 들어보자.

그것은 진실과 사실이 다른 것만큼이나 정합성을 꽤 갖추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그렇게 정의, 민주화, 학자, 양심과 비슷한 가짜였습니다. >

 

갑자기 자음과 모음을 교묘하게 엮은 그분과 나의 사이비 말과 사이비 숨결이 뒤섞인 그 공간이 무서워졌습니다.>

 

그런 가짜, 가짜가 쓴 글은? 이 책은? 다른 출판사에서는 출판을 거절하며,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부정과 넋두리로 된 글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그래 세상을 속이려는 글이나 현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글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속이는 글이기 때문입니다.”(6)

 

그렇다면 정말 가짜라 자칭하는 저자가 쓴 이 글은, 가짜일까 진짜일까 

 

읽어볼 말들

 

저자는 청나라 증국번의 말을 인용하여,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3가지 조짐을 말한다.

 

첫째는 무엇이건 흑백을 가릴 수 없고

둘째는 하찮은 녀석들이 설쳐서 선량한 사람이 위축되어 아무 말도 못하며

셋째로 이것도 지당하고 저것도 무리가 아닌 우유부단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얼버무리는 풍조.

 

아니, 몇백년전에 증국번은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토록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시대가 있었던가? ‘하찮은 녀석들이 설치는 것은 또 어떠한가 

 

이런 증국번을 인용하여 이 시대를 보도록 한, 저자는 자기 자신이 사이비라 칭한다 할지라도, 그 말, 다시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아직은 모르니 몇 개만 더 읽어보자.

 

조지 오웰, 동물농장과 1984년으로 현실을 예리하게 통찰하면서 놀랍도록 미래를 놀랍도록 예언한 작가다. 그가 정치와 영어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 언어는 거짓을 참말처럼, 살인도 훌륭한 일로, 허공의 바람조차 고체이게 만들었다.”(238)

 

그 말 읽으면 작금의 우리나라 모습을 바로 알 수 있지 않은가?

 

광고의 기원을 아시는지? 이런 글도 이 책에 들어 있다.

 

광고의 기원은 기원 전 1000년 경 고대 이집트까지 올라간다.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이러한 광고 문구가 있다.

도망간 노예 샘을 찾아주면 순금반지를 드립니다.” (298)

 

그러니 호기심도 채워주는 역할도 한다.

 

동서고금을 모두 논하는

 

이 책에서 다뤄지는 사항은 다양하다. 이런 때 동서고금을 막론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동양의 사마천, 증국번, 공자, 서양의 조지 오웰, 마크 트웨인, 우리나라의 변영로 등등.

 

저자가 거론하는 인물을 여기 다 기록하기는 말 그대로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물을 들어 이야기를 꺼내는 것들이 변영로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까닭이 있는 글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아쉬운 점 하나, 그러나  

 

저자가 서점에 가서 어떤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이렇게 평한다.

 

현대 독서가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적당한 쪽수(150 페이지 정도) 인데 디자인도 심풀하여 눈길을 끌었다.”(134)

 

그렇게 현대독서가들이 좋아할 법한 쪽수를 알고 있다면, 이 책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책은 무려 508쪽이니, 그 말 적당한 쪽수가 150 페이지 정도- 은 아무래도 사이비 같다.

그러나 범용한 내용, 속악한 표현으로야 수레()를 채도록 쓴들 무슨 소용이랴? 되풀이 하여 말하는 듯하나 나는 까닭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변영로 선생의 글에 힘입어, 이 책은 범용한 내용이 아니므로, 또한 까닭이 있는 글이므로, 설령 이 책이 500 쪽을 넘는다 할지라도 용서를 해 주기로 했다. 이런 책은 읽으면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으로.

 

 

s***h 2016.11.05.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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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 간호윤의 사이비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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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으며,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하는 사이비 향원은 아니되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고전독작가 간호윤의 "사이비(작가와 비평 출판)"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단서상사」에 올려 놓았던 글들 중에서 일부를 선별하여 활자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애써 긍정으로 포장하지 않은, 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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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으며,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하는 사이비 향원은 아니되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고전독작가 간호윤의 "사이비(작가와 비평 출판)"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단서상사」에 올려 놓았던 글들 중에서 일부를 선별하여 활자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애써 긍정으로 포장하지 않은, 이
세상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힌다. 이 책의 내용은 콕 찍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쓴 글이라기 보다는 그때 그때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저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어나간 책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들을 활자로 표현 한 것이라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사이비라는 말로 시작하여 글쓰기에 관련하여 출판사의 현실을 그리고 '돈(경제)'이 바로 글쓰기를 죽이는 포식자임을 도도새를 내세워 비판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도도새(포루투갈어로 '어리석다')는 자기가 사는 곳을 침탈한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결국 사람들은 모조리 도도새를 먹어 치웠다. 그 결과 도도새는 멸종되었으며, 이어서 이 섬에 서식하던 한 종의 나무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훈수꾼이 없어도 나는 안다. 내 삶을 경영하는 글쓰기가 바로 저 도도새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글쓰기에 온전히 삶을 투자하는 사람을 꽤 어리석게 본다는 사실을. 슬프지만, 투자에 비하여 승수효과가 없다고 이죽거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그리고 이것이 돈(경제)과 관련 있음을." - 본문 중에서 -


  저자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 자신이 또하나의 쓸모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경계한 것이다.


" 글이 나를 죽인다.

그러므로 아래 써 놓은 글은 의미가 없다. 써도 쓴 것이 아니기에 읽어도 읽은 게 아니다.


'글 따로 나 따로!' '서자서 아지아!'

연암 선생이 지극히 경멸했던 사이비 향원이다. 책 몇 자를 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떻게 글은 저렇게 고상하고 멋진데 행동은 이렇게 치졸하고 저급할까?'에서 오는 책께나 읽은 이들의 파르마콘적(Pharmakon) 인간군상이다. - 중략 -

이제 내 글이 나에게 묻는다.

"어이! 간 선생! 나를 글이라고 써 놓은 당신! 당신의 마음이 진정나요?"

글이 무섭다.

아니, 이 글을 쓰는 내가 무섭다.

이쯤이면 글이 나를 죽인다. - 본문 중에서 -


저자 간호윤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 사소한 소재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하고 있는 불합리한 현상이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는 채 오직 물질만을 추구하는 것들로 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 개입문제를 접하면서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 그러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를 생각해 본다는 말은 요즘 국정논란을 미리 보는 듯 하다. 그리고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는 우리 삶의 근간인 인문학이 부고장을 돌릴판이니 살려달라는 소리가 아닌지 묻는다. 그 누구도 인문학이나 인문학하는 사람을 더 이상 우리 사회의 해방군으로 보지 않으며, 아니 이제는 인문학자들의 자조와 자긍의 자동웅체 용어 '남산골샌님'조차도 웃음가마리가 된 지 오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교조적 지식의 마당쇠를 자임하고 나선 인문학자들이 더 이상 할 소리는 아예 아니라고 개탄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l***4 2016.11.06.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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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세상에 대한 고전독자가의 솔직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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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꽤 많이 서평단에 당첨되어서 기분좋게 책을 받고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일단 서평단에 당첨되면 공짜로 책을 받아본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되도록 호의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긴다. 나는 보통 영화나 책을 평가할 때 별점이 후한 편이다. 결코 박한편이 아니다. 되도록 좋은 면을 보는 편이 내게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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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꽤 많이 서평단에 당첨되어서 기분좋게 책을 받고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일단 서평단에 당첨되면 공짜로 책을 받아본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되도록 호의적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긴다. 나는 보통 영화나 책을 평가할 때 별점이 후한 편이다. 결코 박한편이 아니다. 되도록 좋은 면을 보는 편이 내게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게 다가왔다. 저자와 글에 대한 반감이 커져서 도통 중립적인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저자와 출판사에게는 죄송하지만, 솔직하게 집고 넘어가야겠다.

 

 꼭 비판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냥 적당히 리뷰쓰고 적당히 넘어가면 서로 좋은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분도 글은 솔직해야 하고, 당당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글에 대한 비판까지도 각오하며 글을 써야겠다.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해보겠다. 단점부터 시작하려니 어렵다. 장점은 저자가 정치나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고 올곧은 정의와 도덕적 가치를 중히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은 본받을 만하다. 그리고 솔직하게 가감없이 자신의 생각과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또한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제 단점을 이야기해보겠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불편했다. 너무 책이 불평불만, 푸념, 부정, 자책, 열등의식 등으로 꽉꽉 채워져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일기를 모아놓은 듯하다. 일기란 자기 자신을 위해 쓰여진 글이다. 결코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다. 이기적인 글이다. 저자도 책도 너무 이기적으로 쓰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 힘들었다. 조금은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다듬고 좀 더 건강한 글들로 추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누가 모르는 사람의 하소연, 넋두리, 투정, 푸념을 듣고 있고 싶겠는가? 500p에 달하는 푸념을 말이다.

 

 "가끔씩이긴 하나(사실 남들이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종종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기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 연유이다. 이 말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내 위주로 나만 생각한다는 말이다. 내 생각만 하느라 상대의 행동과 말을 정녕 유의 깊게 보고 새겨듣지 못했다는 말이다. "떡꾹이 농간한다" 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나이를 먹으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내 못된 버릇이다." -p220

 

 책이란 독자를 위해 쓰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간의 의미가 없다. 자신만을 위한 글은 자신만 읽으면 그만이다. 책을 출간했다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배려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부분에서 그런 불친절을 많이 느꼈다. 중요한 내용이 짤린 사진이라던가, 해석 없이 한자로만 된 글이라던가, 같은 내용의 반복이라던가 등등.

 

 저자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달리는가?' 에 대해 자문한다. 자문할 뿐 심도있게 고민해보고 그 답을 내리지 않는다. 여기에 나는 가장 큰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럴까?' 라고 푸념으로 글을 끝맺지 말고, 거기에서부터 출발점을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계속 질문만 던지고 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 저자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 거기서 찾은 답을 글로 써나간다면 훨씬 훌륭하고 좋은 글, 좋은 책이 탄생할 것이다. 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고 긍정적인 글과 책이 나올 것이다. 독자들은 그런 글을 원한다. 

 

 그리고 또 하나 좀 더 자신의 좋은 모습, 주위 사람의 좋은 모습, 세상과 역사의 좋은 모습들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글로 옮기셨으면 좋겠다. 불행을 견뎌내는 글이 아닌 이겨내는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   

 

p.s 생각해보니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글도 유머와 휴머니즘이 깃들어 있으면 굉장히 좋은 글이 된다. 그런 책으로 더글러스 애덤스의 <마지막 기회라니?>와 호무라 히로시 <세계음치>가 기억난다. 이런 책들은 저자의 불평불만 가득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럽다.

 

g****2 2016.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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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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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연현상과 과학현상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그러한 본질을 본질답지 못하게 하거나 오도, 또는 왜곡 하는것으로 본질을본질인양 사칭하는 것이 바로 사이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그런 사이비가 많아 질수록 우리는 속고사는 사회, 속고 사는 삶을 살아가게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만 결코 그 깨달음은 쉽지 않다.왜냐하면 바로 자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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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연현상과 과학현상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본질을 본질답지 못하게 하거나 오도, 또는 왜곡 하는것으로 본질을
본질인양 사칭하는 것이 바로 사이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사이비가 많아 질수록 우리는 속고사는 사회, 속고 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만 결코 그 깨달음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정의하는것에서 부터 사이비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모든 일들을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이라는 말을 무슨 화두처럼
달고 산다는 생각을 하기도하고 보기도 한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들 보면 세상의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지만 뒤 돌아 보면 그들도 말만 그렇지 결코 긍정적이지도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지도 못한다.
그러한 면에서 볼때 저자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지 않음을 말하고
있어 나와 같은 의식을 지닌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에게 글이란 해원의 도구이자 나를 속이는 글이 될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긍정이 아닌 측면을 고집하는것이 어쩌면 세상사에 대한 울분이
될지 아니면 스스로의 삶에 대한 넋두리인지를 판명하는 길이 될것이다.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로서 글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된다.
글이라고 무조건 좋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 생각에 따라 아무리 좋은 글귀라도 그 의미와 받아들임이
달라질 것이기에 더더욱 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6장의 구성으로 이뤄진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많은것들에 대해 타자인
저자의 생각으로 본질을 왜곡하는 사이비성이 높을수도 있음을 주도면밀하게
스스로 분석해 내고 밝혀내고 있음에 너와 나를 떠나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사는 모두 사이비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함께 갖게된다.
정통이라면 정통이 딜것이고 사이비라면 사이비가 될것 같은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고민에 빠트리게 하는 책이다.

n********1 2017.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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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 고전독작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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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흉할수록 고전이 새롭게 다가온다.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논어>의 글귀처럼, 고전으로 사회을 새롭게 읽고 사회상을 통해 고전을 되새긴다. 고전이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는 세상은 요지경이기 떄문이기도 하겠다. 신간 <사이비(似而非)>는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 박사 에세이다. 고전 프리즘으로 세상 읽기다. 저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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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흉할수록 고전이 새롭게 다가온다. 온고이지신(溫故以知新),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논어>의 글귀처럼, 고전으로 사회을 새롭게 읽고 사회상을 통해 고전을 되새긴다. 고전이 끊임없이 읽히는 이유는 세상은 요지경이기 떄문이기도 하겠다. 신간 <사이비(似而非)>는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 박사 에세이다. 고전 프리즘으로 세상 읽기다. 저자의 네이버 블로그 '단서장사'(短書長思,http://blog.naver.com/ho771) 기고글을 선별하여 엮었다. 제목은 왜 사이비고 고전독작가란 누구인가.


​"이야기 마디마디는 정의요, 민주화요, 학자의 양심이요, 등으로 종횡무진 널뛰었습니다 …… 그렇게 우리는 사이비였습니다. 그분도 나도 서로의 말은 고담준론이지만, 행동은 영판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p.4~5) 사이비는 지식인의 반성이 아닐까 싶다. 고전독작가란 "옛 글을 읽고 글을 쓰기에 붙인" 직업명이란다. 고전에서 올곧은 기개와 날카로운 정신을 만날수록, 사이비같은 현실이 개탄스럽고 스스로 성찰하게 되는가보다.

사이비란 제목을 짓고 연암 박지원 선생이 그리워졌다고 한다. 꼿꼿한 정신과 사회비판의식에서 현실 담론을 찾는다.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망언, 세월호 참사를 보며, 연암이 지은 <민옹전>을 떠올린다. 민옹은 '황충(蝗蟲 : 백성들이 땀흘려지은 벼를 갉아먹는 메뚜기)'를 비유하며,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척 장신의 황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그것들을 잡고 싶어도 커다란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이라 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와 창비 사건 때도 그렇다. 연암은 글쓰기를 소단적치(騷壇赤幟)라 했고, 향원(鄕愿)은 절대 아니되겠다고 말했다. '전쟁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를 미워한 비판의식을 배운다.



<사이비>는 시사, 일상, 독서, 학문, 인문학 담론, 리뷰 등 다양한 소재를 풀어낸다. 저자의 해박한 고전 지식과 사회를 보는 식견에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공감한다. 고전은 배울 게 많다. 하지만 제대로 배워야 한다. '감사원장 사퇴의 변을 보고'가 인상적이다. 감사원장 내정자가 지난 수입이 물의가 되어 사퇴하면서, "고니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먹칠하지 않아도 검다"고 변을 남겼다. 그러나 원전은 다르다. "이처럼 검고 흰 것은 태어날 때부터 소박함이니 검다 희다 따질 것도 없고 명예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시끄러운들 명예를 넓힐 수는 없을 겝니다."(p.314) 이후 구절이다. "공자의 인의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이지, 자신의 청렴과 개결을 증명하는 인용구로 쓰일 수 없다." 아전인수식 고전 인용은 "고전의 명예도 욕되고 본인은 더욱 욕될 뿐이다"(p.314)라고 정확히 꼬집는다.



비록 사이비처럼 말과 행동,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할 때도 있지만, 간호윤 박사의 고전 사랑과 독서 담론, 지향하는 정신은 500쪽 넘는 책을 정독하게 만든다. 특히 독서론은 책에 대한 사랑과 배움의 자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비록 재주가 없더라도 그칠 수가 없다. 천재 실학자 정약용 선생은  복사뼈가 세번 헐었다는 과골삼천(踝骨三穿)의 일화를 남겼다. 공자는 제자 염구가 도를 구할 힘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자,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던 길을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냐."라고 호되게 꾸짓었다. 연암 박지원은 "쇠똥구리는 스스로 쇠똥을 사랑하여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롱 역시 그 구슬을 가지고 저 쇠똥구리의 쇠똥을 비웃지 않는다."며 재주를 부러워하지도, 재주 없는 이를 비웃지도 말라고 하였다. 결국 공부란 임제 선사의 선어처럼,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정신이 아닐까. (고전 속에서 거니는 단상(斷想) 몇, -책,벽 지둔의 공) 고전, 인문학은 사람 공부고 내 삶의 주인되는 공부지 싶다. 간호윤 박사의 고전 에세이를 읽고 깨닫는다. 비록 소시민의 삶을 살더라도 나름껏 식견을 넓히고 비판의식을 갈고 닦는 일은 일생의 과제다. 재주 있는 사람이 부럽지만, 한편으론 재주가 없어도 해야 할 일이니 창피하지 않아서 안심이다. 어설픈 위로보다 힐링이 된다.



밑줄 치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과 고전 인용구가 많다.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사서삼경, 노장, 정조 등 종횡무진이다. 그 중에 정조의 충고를 새기고 싶다. 독서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다. "옛 사람은 일을 만나서 사리를 판단할 때는 반드시 두 겹, 세 겹 빈틈없이 꿰뚫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 사람은 반 겹도 꿰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이 눈앞에 닥치면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바로 글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p.348) 반가운 책을 만나니 말이 많아졌다. 서평이 길다.

a*****a 2017.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간호윤 #사이비 #작가와 비평
"#간호윤 #사이비 #작가와 비평" 내용보기
사이비간호윤국정화 교과서, 금수저-흙수저 논란... 등등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은 저자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일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책 한 권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책을 내기 전에 얼마나 많이 까였는지 알려줄 정도로 책을 출판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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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간호윤





국정화 교과서, 금수저-흙수저 논란... 등등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다른 책과 다른 점은 저자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일까.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책 한 권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저자는 자신이 책을 내기 전에 얼마나 많이 까였는지 알려줄 정도로 책을 출판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지잡대에 나와서 책을 출판 할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글을 보았다. 정치인들의 별 내용 없는 책들은 왜 그렇게 출판 하지 못해서 안달인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이 대한민국이다. 저자의 직업이 선생이다 보니 많은 학생들 중에서 가끔 기적을 일으키는 학생을 보았다고 한다. 과연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일까?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 하는 비중은 학술 분야에서는 고작 4% 뿐 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인슈타인 처럼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학술 같은 분야가 아닌 각자 잘하는 분야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그것 그대로 괜찮다고 하는 사회가 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는 그대로 저마다의 가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책은 저자가 읽은 것, 봤던 것, 들었던 것 모두 이 책에 담겨 있다. 책과 영화 가리지 않고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글들이 가득하다.  김구 선생은 과거를 공부했지만 낙제하고 나서 관상책을 보았다고 한다. 책으로 공부를 다 한다음 거울을 놓고 자신의 관상을 보니 천하에 흉한 상이 었다고 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비관에 빠졌다가 마의 상서에서 한 구절을 봤다고 한다. 

'얼굴이 좋은 것이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이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예전에는 얼굴이야 어떻든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어떻든 얼굴만 예쁘면 되는 사회가 된 것 같아서 씁슬해졌다. 

m*********s 2017.0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