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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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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대학가를 휩쓴 적이 있었다. 관련된 강의나 강독회 같은 것들이 대학마다 한번쯤은 열렸을게다. 막연하게 회자되던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의 현실을 이만큼 진단하고 분석한 책도 드물었다. 독보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최장집'이라는 정치학자를 알게 됐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최장집의 '민주주의론'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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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대학가를 휩쓴 적이 있었다. 관련된 강의나 강독회 같은 것들이 대학마다 한번쯤은 열렸을게다. 막연하게 회자되던 '87년 체제' 이후 한국 정치의 현실을 이만큼 진단하고 분석한 책도 드물었다. 독보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최장집'이라는 정치학자를 알게 됐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최장집의 '민주주의론'은 진보, 보수 양쪽에서 모두 비판을 받았다. 보수는 그렇다치고, 진보 쪽에서 최 교수의 견해를 비판한 걸 종합해보자면 대의제, 정당 민주주의를 강조한 나머지 직접 민주주의를 도외시하고 있다거나, '운동'으로써의 정치가 갖는 의미를 축소한다거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병행발전을 주장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세가지 비판에 대해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비판들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대립적 구도로 놓고 마치 대의제 보다는 직접 민주주의가 더 진보적인 것처럼 강변하는 태도다. 네트워크의 확장과 촛불집회 등을 예로 들며 직접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막연할 뿐만 아니라 사실은 환상에 가깝다. 사회 다양한 집단들의 요구가 표출되고 경합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의 사회화와 조정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정치체제인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와는 상당히 무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형식적 내용과 실질적 내용이 역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체제이며 따라서 일차원적인 것이 아닌 복합적인 구조와 과정'(p140)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올바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힘의 관계를 폭넓게 다원화하는 작업,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이익이 올바로 대표될 수 있도록 정치활동을 조직하는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상 정치'의 복원이다. '운동'으로써의 정치를 '거리의 정치'로 협소화하지 않는다면, 일상 정치의 실현이란 곧 '정치 운동의 일상화'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해 최 교수는 "그렇지 않고 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지배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실체적 성과는 만들어 질 수 없다"(p23)고 반박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평등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주의와 불평등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가 공생하는 구조인 현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체제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모색은 진보진영 전체의 과제이다. 다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포섭당하지 않고 오히려 민주주의적 원리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실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일흔이 된 최장집 교수가 일용직 노동자, 봉제공장, 복지현장, 재래시장 등에 발품을 팔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왜 민주정부 하에서 노동의 시민권이 더 약화되고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처지가 비참해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당 체제의 무기력함이 가져온 결과이며 민주정부를 운영해 온 정치 엘리트 집단의 무능력함이 부른 참사다. 

 

그는 서문에서 "노동은 모든 사회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정부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 있다. 따라서 노동의 위기를 말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위기의 한국 경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국 사회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 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달려 나가느 한국 사회의 '바닥으로의 질주'가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유지될 수 없다....(중략)... 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이제 "민주주의가 아무런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기능으로 전락하게 되고, 사회 공동체는 해체와 분열, 갈등의 위기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p128)는 최 교수의 지적처럼 '재벌 중심-노동 배제적 생산 체제'로부터 성장과 복지가 병행할 수 있는 '노동 참여적 생산체제'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정치를 복원해야 할 때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3.06.1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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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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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저서들을 그동안 많이 읽어왔고, 문제의식이나 관심분야에 대해서 공감할 때도 많은 걸 배울 때도 있었다. 만난 적 없지만 스승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읽은 다음 머리에 남아 있는 건 얼마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조금은(그리고 무척) 부끄럽긴 하지만.   “노동문제와 민주주의를 평생 연구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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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저서들을 그동안 많이 읽어왔고, 문제의식이나 관심분야에 대해서 공감할 때도 많은 걸 배울 때도 있었다. 만난 적 없지만 스승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도 읽은 다음 머리에 남아 있는 건 얼마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조금은(그리고 무척) 부끄럽긴 하지만.

 

노동문제와 민주주의를 평생 연구 주제로 했던 저자가 “20118월부터 20125월 말까지 10개월에 걸쳐 [경향신문]에 연재된 글들을 책의 형태에 맞게 고쳐 쓴이 책은 기존에 다뤘던 내용들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고 있어 아주 새롭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좀 더 단호하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모호하거나 고민 가득하기 보다는 어떤 해법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길게 썼을 수도 있겠지만 지면의 한계와 읽는 대상자들에 맞는 눈높이로 설득력을 갖추면서 문제제기와 통찰력 모두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니 저자에게 관심 있던 사람들이라면 거꾸로 이런 책부터 먼저 읽고 다른 저서들을 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상처투성이 삶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노동 없는한국 민주주의의 결과임을 말한다. 자신의 노동으로 소득을 얻고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생산자 집단들이 생활 세계와 시민사회, 나아가 정당 체제의 영역에서 사실상 무권리 상태에 있다는 증언인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질문한다. 민주화 25년이 지난 지금, 도대체 우리가 꿈꾸고 바랐던 민주화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저자의 입장은 한국사회에 꽤 도움이 되는 의견이고 생각이겠지만 그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사람들은 무척 적은 것 같다. 아니, 많다고 하더라도 그렇기만 할 뿐이고 변화나 개선의 의지까지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작은 목소리일 것이고 전달되지 않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지 않을까? 점점 세상은 각박해져만 가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변화가 일어나길 사람이라면 짧게 꾸며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시 다듬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y*******o 2023.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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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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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권했으며 권력 유지를 위해 역시나 비민주적인 방법을 동원한 정권. 칠흑과도 같은 어둠의 시간들을 거쳐 도달한 오늘은 그 시절과 비교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독재’라는 단어를 들먹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21세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진실로 민주화되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거침없는 투쟁으로 무엇을 쟁취했는지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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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권했으며 권력 유지를 위해 역시나 비민주적인 방법을 동원한 정권. 칠흑과도 같은 어둠의 시간들을 거쳐 도달한 오늘은 그 시절과 비교하자면 많은 부분에서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독재’라는 단어를 들먹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21세기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진실로 민주화되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거침없는 투쟁으로 무엇을 쟁취했는지 허무한 기분이 조금은 들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을 해왔듯 80년대 민주화의 주역들은 평범치 않았다. 그들은 충분히 공부한 엘리트들로 민중들의 삶의 터전으로부터 조금은 유리된 형태의 삶을 살았다. 외치는 구호가 충분히 강렬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는 현실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더욱 컸다. 그들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독재정권의 붕괴 이후에 대해서는 고민치 못했다. 당장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인데, 그 사실이 큰 차이를 발생시켰다. 우리가 경험한 불만족스러운 민주화는 어쩌면 그때의 실수(?)로부터 비롯된 것일 게다.

극소수에게 힘이 쏠리면 많은 이들은 자연스레 소외를 경험한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노동자들이야말로 소외를 제대로 경험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누구인가? 1960년대 이후 ‘압축적 산업화’를 이끌었고, 1980년대 ‘운동에 의한 민주화’에 헌신했던 그 노동자를 뜻하는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노동자라면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노동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하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을 듯하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모호한 이 정의가 노동자들을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끔 했다. 같은 노동자임에도 다른 계급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뭉치질 못했다. 여기에 색깔논쟁이 더해져 많은 이들로 하여금 저항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민주당 집권 10년은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상대적으로 친노동자적이라 여겨왔던 정당의 집권이었다. 하지만 정권이 추진한 바는 신자유주의였다.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보편적이지 않았던 ‘비정규직’이 공식화된 것도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반목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은 표류했다.

저자가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듯했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는 일할 수 없을까봐 불안해했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벌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괴로워했다. 모호한 기준에 의해 나뉜 합법과 불법이 이주 노동자들을 갈라놓았으며, 권유에 의해 시작한 신용카드 대출이 사람들을 신용 불량자로 내몰았다. 하나같이 어려웠고 미래를 꿈꾸기엔 현실조차도 너무 버거워보였다. 안타까운 점은 그들이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특별히 실패한 게 아니라 그것이 보편적인 삶이라는 사실이 숨 막혔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오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움츠러들 때 내 주변의 많은 이들도 나와 같았다.

하지만 변화의 씨앗은 싹트고 있었다. 타인이나 정부가 아닌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도우려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꽤 벅찼다.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은 청년유니온이지 싶다. 하급 서비스직 부문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청년들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다. 최저임금마저도 무시한 저임금을 강요받으며 일하는 이들에게 청년유니온은 법에 보장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정치계에서도 이들은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기성 정당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의 역할에 대해 되물을 것을 주문했다. 정치계에서는 새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안철수에 대해서도 마냥 동조치 않음으로써 성숙하고 균형잡힌 시선을 견지했다. 물론 그들은 이제 막 태생한 집단과도 같으며, 제도권 정치에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이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다른 부문에서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다.

대다수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노동을 배제한 채 민주화를 부르짖었으니 삐걱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 하여 이제까지의 모든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음으로써 민주화의 성과가 소수 엘리트 활동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q*****2 2013.08.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