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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계 제일의 가난한 나라로 꼽히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주무대이고 전쟁으로 얼룩진 상처와 종교적 이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대서사를 만날 수 있는 책 '헛된 기다림'... 우리에게는 조금 거부감 아닌 거부감이 있는 이슬람이란 종교와 국제적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활약하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의 실상에 대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미국식 주입 교육에 입각하여 아무래도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의 문화와 삶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시간이였다.
1979년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집을 떠난 남동생을 찾으러 온 여인 라라는 영국인 의사였던 마커스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마커스.. 그는 아내와의 결혼식때 여자가 주례를 섰다는 이유만으로 아내 카트리나가 탈레반의 주도하에 돌에 맞아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고 믿고 있다. 이제 마커스의 유일한 희망은 사라진 딸 자민과 손자를 찾는 것이다.
미국인인 데이비드는 사랑하는 형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아버지에게 받은 시계판의 작은 보석에 이끌려 아프카니스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남자다. CIA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자민과 그녀의 아들 비흐자드를 만난 데이비드는 자민이 라라의 남동생 베네딕트에 의해 어떤 일을 당했으며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베네딕트와 함께 부대를 탈출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게 된다. 데이비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민에게 서서히 빠져든다. 솔직해야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자신이 아는 것을 하루하루 미루고 있던 와중에 자민은 데이비드를 선택하는데... 허나 데이비드와 자민의 사랑도 잠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위해 자민은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는 상황에 놓이고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어 한시라도 눈을 떼면은 이야기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게 되어 있다. 서로가 다른 국적의 다른 민족 사람들이지만 내전과 전쟁, 종교적인 이념과 사원을 지키는 남자의 눈에 보이는 뻔한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아주 현실적인 생생한 묘사가 이어져 실감나게 느끼면서 읽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지내야 하는 상황이나 누군가의 위협에서 도움을 받은 이는 자신을 아껴주는 이와 함께 결국 최후의 죽음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여진다.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주고 이해를 돕는데 어느정도 도움을 주는 책이지만 다양한 각도와 인물들에 의해 쓰여지는 이야기는 다소 지루한 면이 조금 있지만 집중력만 떨어지지 않는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아프카니스탄에 주둔해 있는 미군과 탈레반, 정부군과 반군과의 싸움으로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의 삶은 힘들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힘겨루기는 선량한 국민들에게 고통만 더해줄 뿐이다.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을 세밀하고 날카롭게 바라보는 저자의 도움으로 마치 눈에 그들의 삶이 보이듯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참혹함이 느껴진다.
특히 책에서 인상 깊게 쓰여져 있는 부분이라면 타인에 의해 아름다운 세밀화가 그려진 벽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커스부부에 의해 흙이 덧발라진 부분이나 책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천장에 못을 박아 보전하는 카트리나 부인의 모습이 연상되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기도 했다.
현재의 아프카니스탄의 모습이라고 느껴도 좋을만큼 사실적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내란과 전쟁으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무엇인가를 꿈꾸는 그들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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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무슬림'은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영역에 자리잡고 있는 근접하기 힘든 과제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살만 루시디나 오르한 파묵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그네들의 사유와 가치관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보다는 확대 포장된 선입관이 뇌리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9.11 사태로 한 쪽의 주장만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구조적 모순에서 더욱 더 이슬람은 테러리즘과 더불어 '악의 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 문학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러한 선입관들에게 자유로울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들로 인해 이슬람권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왠지 과격할 것이다라는 느낌도 들게 마련이고 이러한 선입관들이 같은 문학작품을 대하는 느낌 자체를 180도 다르게 보게 하기도 하죠. 그 동안 우리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슬람문학에 대한 감을 잡긴 했지만 사실 터키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이슬람권을 매조진다는 느낌은 가질수 없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도 했죠.
우선 이번 작품을 평하기 전에 모던 클래식에서 먼저 선보였던 두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하고 이번 작품을 평하는 것이 오히려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와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를 통해서 한 발자국 나아간 이슬람 정통문학의 맛을 봤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이슬람권 전반에 흐르는 가치관과 사유 그리고 서구세력에 대한 의식등을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깊이 있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그 동안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을 읽기 전에 먼저 이 두 작품을 접해보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헛된 기다림> 은 앞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두 작품과 비교해서 읽게 되면 한 차원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우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파키스탄 출신에 작품 배경도 파키스탄이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는 이란출신 작가에 이란을 작품배경으로 되어 있는 이슬람의 본 고향 작품들입니다. 이번 <헛된 기다림> 역시 아프카니스탄출신의 작가에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파키스탄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된 이슬람 문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정치적인 색체가 상당히 강하게 칠해져 있고 상당히 자기주장적인 작품(물론 이 표현은 그리스도교 서구세력의 시각에선 그리 보일 것입니다만)이었다면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된 내용으로 이슬람문화와 사회전반을 자조하는 사적인 영역의 작품으로 볼 수 있어 두 작품이 대조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는 앞의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가 다소 되바라지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유화적으로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면 <헛되 기다림> 이 두 가지의 기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요 양떼를 몰들이 숨가쁘게 몰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확 놓아버리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해버리는 방식이라고 할까요.(이 점은 등장인물들의 언행를 보게 되면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영국과 미국,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국적(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를 내포하고 있죠)을 가진 남녀노소(개인적인 영역에서 또 다른 강자와 약자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시사합니다)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흔을 확인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와 과거(회상)를 오가면서 각자가 현재 이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추리적 기법과 사건 나열적인 서술방법을 구도로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변하지 않는 공간속에서 시간의 갭만 느끼게 하는 설정이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전제는 상호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치유한다고 하지만 막상 등장인물들(마커스를 제외하고는) 은 자신에 주어진 역활만을 충실하게 수행 한다는점(정말 말리고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수행하죠)과 각자의 스토리가 정점을 향해 치닫가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듯이 슬그머니 덮어 버리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방식은 나름의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입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혹은 넘지 않아야 할 것만 같은 선을 사정없이 넘어버리는 등장인물들의 과감성과 뻔뻔함을 그리고 그렇게 넘어버린 선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발을 빼드시 흐지무지 갈무리하는 점들이 다소 위태롭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설정이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나딤 아슬람은 이러한 외줄타기식의 서사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내면 저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흔을 다 끄집어 내서 알려야 하고 이를 이해의 기본 전제로 삼아야 제대로된 치유가 되고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행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피빛 물든 장면들도 서스럼 없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과감없이 작품에 뿌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다소 파토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의 호흡과 맥박수를 사정없이 끌어올리지만 작품 요소요소에 산재하고 있는 나이브한 서사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러한 기법도 양립할 수 없는 양측을 보듬을때 진정한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작가의 사유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카사와 데이비드의 죽음은 바로 상호간의 반목과 상흔을 승화시키는 화해의 메세지로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죽음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대두시킴으로써 작가는 화해와 치유의 어려움과 더불어 그 절박성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죠. 작중 "약자들의 용서는 당신들 강자들이 들어마시는 공기 같은 거, 약자들의 용서가 있어야 당신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자기네 나라의 건물 두 채가 무너진 일로 그들은 세상의 어둠을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안전하지 못한 곳인지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고, 치유와 화해로 어떻게 다가가야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이슬람 문학을 만났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앞의 두 작품이 에피타이저였다면 이번 <헛된 기다림> 이야말로 메인 매뉴에 해당 한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에 작품 곳곳에 묻어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서정적인 서사들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번역가도 작품해설 첫 마디에 언급했던 'Beautifully written'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내러티브 전반에 흐르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체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서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시공간과 맞물리면서 한층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요. 이슬람과 비이슬람(주로 그리스도교의 서구세계)이라는 운명적인 만남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과 이 공간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상당히 이부분이 쉽지 않는데 작가는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상흔을 다 어루만져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에진의 낮은 울림은 잔잔하게 울려 퍼질것이고 그 울림속에서 치유와 화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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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참 둔한 사람이라는 것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뒤에 읽을 책이 잔뜩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좀처럼 소설에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냥저냥 대충 때우고 넘어갈 법도 한데, 읽히지 않는 글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꾸역꾸역 (이번에는 하도 안 읽혀서 혼자 상상하며 연기까지 했다.) 이틀을 붙잡고 읽어냈다.
단순히 읽어낸 것이 아니라 챕터가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이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다양한 관점에서의 날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커스가 탈레반에 들키지 않으려고 덕지덕지 붙여둔 진흙이 조금씩 떨어져 나오면서 보였던 벽화처럼 말이다. 나는 마침내 <헛된 기다림>의 막막하고 답답한 시작점을 견디고 무너뜨림으로써 소설 속 인물의 다양한 시점에서 비치는 여러 사유에 와 닿을 수 있었다.
2.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념을 품고 살 필요와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임스의 독백처럼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신념만 있을 뿐 자유는 없었다. 신념도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홀로 지켜내야 할 신념보다는 남이 부담해야 할 신념과 그것을 강제해야 하는 신념에 가깝다. 특히,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신념을 적용했다.
냉전과 전쟁이라는 온도 차. 미국과 소련의 주도권 전쟁의 틈을 노리고 제각기 이득을 취하려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의 양대 군벌 간의 세력 다툼. 그리고 이슬람의 영역에 침범하여 그들의 신념에 반하는 이념(교육)을 심는 이방인들을 처단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탈레반의 학정. 이 모든 흐름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민중의 시선에서의 기록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몰고 왔다.
도대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서술하는 사실주의적 구성과 거대한 세력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비극을 참고 견뎌야만 하는 인물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왠지 <제노사이드>가 생각났다. 냉전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전쟁이 끊이지 않는 말살의 소용돌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나'라는 존재의 관찰과 관점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을 느꼈다.
그러한 삶의 순간순간을 참고, 견뎌내어 그들(아프가니스탄)의 삶을 <헛된 기다림>이 아닌 희망의 기다림으로 바꾸어보려고 애쓰는 소수의 희생자들. 그리고 오늘 이시간에도 희망을 놓치지 않고, 큰 뜻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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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을 겪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와 내가족,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전쟁에 대해서 배웠고, 약자로서 강자에게 당한 아픔을 알고 있기에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은 하고 있다. 뉴스에서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하게 되면 "제발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종종 하기도 한다.
<헛된 기다림>은 전쟁에 관한 소설이다. 위의 줄거리처럼 마커스는 가족을 모두 잃고 평생을 혼자 살아온 70대 노인이다. 아프리카 지역에 전쟁이 일어나면 뉴스에서 마커스 가족과 같은 일반 시민에게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데.. 참 볼때마다 가슴 아팠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무참히 살해되어 가족들은 누구에게도 소리지를 수 없고, 그저 삭히고 참아야만 하기 때문에 참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했고,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마커스의 집에 3명의 각각의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이것이 비단 아프리카 지역의 국민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언제든지 우리나라, 한국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더욱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하루빨리 전쟁이 없어지고 행복한, 평화로운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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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은 책은 두 권 이상 소장되어 있다. 텍스트를 마구 쑤셔 넣어 지나치게 작은 판형으로 만든 축쇄판도 있고, 글자 크기를 키우고 행간도 널찍하게 벌리고 가장자리 여백도 널직하게 띄운 판도 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햇지만 지금은 이해한다.책의 내용을 따라가며 즐기고 싶을 때는 눈이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글자가 촘촘히 인쇄된 축소판이 좋을 것이다. 반면에 언어 자체를 음미하고 싶을 때, 문장의 리듬이나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해 가며 읽고 싶을 때는 좀 더 큰 판형이 쉼표에서 적절히 쉬어가며 천천히 읽어 나가기에 좋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듯. (p91-92)
전쟁과 폭정, 내란 등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곳,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아프카니스탄의 비극의 역사를 이처럼 사실적이면서도 가슴아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싶다.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과 손에 잡힐듯 생생한 묘사를 일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듯 그렇게 느긋하게 읽어 내려가고 싶지만 책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수족절단이나 투석형, 강간, 자살, 폭탄테러 등 잔인한 폭력들이 군데군데 묻어둔 지뢰처럼 책의 곳곳에서 너무도 상세히 묘사된 채 튀어나와 가슴 철렁하게 만든다. 소설은 읽는 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슬퍼서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서 문화 교류의 중요한 통로요, 정치적,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으로 잦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야만 했던 비극적인 나라. 모두가 탐냈으나 가질수 없었던 땅, 영국과의 세 차례 전쟁을 벌였고 20세기 후반 이후 소련의 침공, 내란, 탈레반의 폭정, 미국과의 전쟁 등 극심한 혼란에 휩쓸린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종교와 부족간의 갈등, 주변 국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작가는 소설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아프카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고 그들의 다음세대에 관해 날카로운 감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그려 낸 <헛된 기다림>은 현재와 과거, 선과 악,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프가니스탄 동쪽의 토라보라 산악 지대, 마을과 떨어진 호수 근처에서 홀로 살고 있는 70대 영국인 의사 마커스의 집에 행방불명된 남동생을 찾아 온 러시아 여인 라리사가 방문한다. 연이어 중년의 전직 CIA 요원 미국인 데이비드와 반군세력에서 활동하다 부상당한 아프간 청년 카사는 우연히 데이비드와 마커스의 도움을 받아 집에 머물게 되지만, 침략자이자 적이나 다름없는 백인들과의 생활이 편치 않다, CIA 요원으로 반미 세력을 소탕하는 임무를 지닌 제임스는 옛동료의 아들로 데이비드를 삼촌처럼 따르며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아프간인인 젊은 여교사 두니아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간진한 채 차례로 이 집에 모여든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련군에 끌려간 마커스의 딸 자민은 군인이었던 라리사의 남동생 베네딕트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의 아들을 낳게 된다. 수년 후 첩보활동중인 데이비드를 만나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군벌에 끌려가 실종된다. 자민과 함께 탈영한 베네딕트는 소련군이란 이유로 반군에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사라진 연인을 못잊고 결국 아프카니스탄을 다시 찾은 데이비드는 사랑하는 여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배트남 참전 용사였던 형이 실종되자 형을 찾아 헤메던 경험이 있기에 데이비드는 남동생의 흔적을 따라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먼 이국땅을 찾아온 라리사를 이해하고 그녀를 돕지만 진실을 밝혀야 할지 갈등한다. 탈레반에게 아내를 잃고 죽은 딸의 아들을 찾는 마커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방을 쫒는 이들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각자의 시선으로 이 나라의 전쟁을 바라 본다. 작가는 여러 국가의 등장인물을 통해 각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은 쉽지 않지만 자신의 상처를 덮어 두지 않고 원인을 알아내려 노력한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사건과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좀처럼 풀릴 줄 모른다. 게다가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려는 순간 흐름을 끊고 수시로 바뀌는 화자 때문에 줄거리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서구 열강들의 욕심과 탐욕은 물적, 인적 피해를 입고 돌아서야 했지만 전쟁이의 한복판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프가니스탄과 주민들이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전쟁일까.
“그냥 돈을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원해. 그러면 안 되나? 돈이 있으면 학교와 병원, 공원, 도서관, 지역복지센터를 지을 수 있잖아. 돈만 있으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부를 얼마나 축적했느냐가 삶의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부자들은 부를 축적함으로써 세상에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하지.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야. 탐욕과 필요는 엄연히 다른 거라고. 그리고 난 비단 이 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돕고 싶어.”
책을 덮고 나서도 아름다운 세밀화나로 가득찬 화첩이나 벽면 가득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그린 벽화로 둘러싸인 방들, 그리고 표지의 그림처럼 그 방의 천장에 쇠못으로 박혀 있는 수백 권의 책들의 이미지가 자꾸만 떠올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힌 채 죽어간 예수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책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간 못자국이 마치 인간의 씻을 수 없는 죄인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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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나딤 아슬람의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는 예전에 읽었던 연을 쫓는 아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정치,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연을 쫓는 아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역사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인종간의 갈등으로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일어난 대규모 학살과 소련군의 침공과 탈레반 정권의 등장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피폐해지고 고달프게 이어졌는지 그리고 전쟁과 내전으로 인해 힘이 없는 개인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의 고통 속에 살았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9.11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과의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졌고 개인의 삶은 더욱더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통은 끝임없이 그들 곁에서 비극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있는 나라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있었고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적 갈등과 인종적 갈등은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과는 동떨어진 삶을 강요했습니다. 군벌에 의해 탄압 당하고 위험에 노출되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희생을 강요 당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엿볼수 있는 헛된 기다림은 역사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수 있는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토라보라 산악지대에서 영국인 의사 마커스는 혼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예전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었지만 탈레반과 군벌에 의해 가족을 잃었지만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행방불명이 된 남동생을 찾기 위해 찾아온 러시아 여자 라리사와 전직 CIA요원 데이비드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 세력에 있는 카사와 여교사 드니아가 찾아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마커스의 집에 모인 그들에게는 모두 마음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군벌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이유로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진실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찾아왔지만 그들이 듣게된 진실은 비극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들은 비극을 받아들였고 불편한 진실 속에서 상처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할수 있는 일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묵묵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상처를 극복해 희망을 생각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하는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웠습니다. 생각과 나라도 틀린 그들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다르지 않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 상처 받은 마음 속에서도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느꼈고 아프가니스탄사람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우리나라가 겪었던 역사적 아픔이 떠 올라 더 가슴이 아프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와 더 이상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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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하면 생각나는 것이 피폐한 삶에서 전쟁과 싸우는 이들의 모습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은 왜 하는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분단된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나는 전쟁없이 평화롭게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렇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나보다. 자신의 국민들은 안중에 없으며 오로직 특정계층 사람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핵을 보유하고 전쟁을 일으키려한다.
이 책은 나딤 아슬람이 현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외세의 칩입과 내란, 전쟁등으로 인한 그들의 잔인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잘 표현해 낸 책이다. 아마도 그가 말하려 했던 것들을 좀더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충격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탈레반의 모습은 극단적인 그들만의 모습이지 아프가니스탄 전체 국민들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내외 적으로는 아프가니 스탄 국민들에게 더욱 많은 피해를 입게 하였다.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계속된 전란과 탈레반의 폭정, 반군 군벌들 간의 내란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 한집에 머물면서 서로의 상처를 내보이고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속에서 문화간의 충돌,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 종교의 충돌, 남녀의 충돌을 다루면서 이해와 조정, 상생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소설 면모도 갖추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내용이라 할 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도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볼수 있었다. 낯선문화와 관습 종교들이 우리들에게는 익숙치가 않다.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알 수 있었으며 많은 공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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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사제 계급인 드루이드의 막강한 권력은 켈트족 정치 조직의 약점이었다.
초자연적인 존재에게서 권한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제들이 통치하는 나라는 결코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수가 없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회고록에 쓴 글이다. 돌부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듯 돌부처의 거대한 입술을 바라본다. 델포이에서 신탁을 내리는 아폴로 신은 직접 대답하지도 침묵을 지키지도 않고 암시만 했다.
나딤 이스람은 1966년에 파키스탄 동북부 구자란왈라에서 태어나 열네살에 가족과 영국으로 이주했다. 맨체스터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였으나 문학에 심취하여 불과 열네 살 때 파키스탄 신문에 첫 단편 소설을 발표하였고 대학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1993년에 데뷔작 <레인버드의 계절>을 발표한다. 이작품으로 베티 트라스크 상과 데뷔 소설상을 수상받고 주목받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2004년에 <잃어버린 연인들을 위한 지도>를 발표하여 2005년에 환태평양 및 남아시아 지역의 이해를 증진하는 작품에 수여되는 기리야마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에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과 영국도서상 데시벨 라이터 부문 후보에 오른다. 이 <헛된 기다림>은 2008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현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외세의 침입과 내전으로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이고 참담한 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이작품으로 2011년에 워릭 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책에서 영국인 의사 마커스는 아프가니스탄인 아내와 딸을 잃고 토보라 산악 지대의 마을과 떨어진 호수 근처에 혼자 산다. 어느날 러시아 여인인 라리사가 행방불명된 남동생을 찾아 마커스가 사는 곳으로 온다. 이어 전직 CIA요원이자 보석상을 했던 미국인 데이비드가 마커스에게 오고 뒤에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인 청년 카사가 온다. 그리고 젊은 여교사 두니아가 찾아온다. 이들은 비정한 운명을 안고 서로 얼키고 설킨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마커스가 그의 딸 자민의 아들이라고 추측되는 청년을 만나기로 하면서 끝이 난다. 마커스의 아내 카트라나는 정신병을 얻게 되고 탈래반에 의해 죽는다. 그의 딸 자민은 소련군에 잡혀가고 라리사의 행방불명된 남동생에게 강간을 당한다. 라리사의 남동생 베네딕트가 탈영을 하면서 자민을 데리고 마을로 나온다. 베네딕트는 죽음을 당하고 자민은 사생아를 낳게 되고 난민소로 간다. 자민은 CIA요원인 테이비드를 만나 그와 사랑하게 된다. 자민은 소련의 스파이로 오인을 받아 죽고 자민의 아들은 행방불명된다. 그 뒤 데이비드는 자민의 아버지 마커스를 만나고 자민의 아들을 수소문한다. 그리고 마커스가 혼자 사는 곳을 오면서 러시라 미망인 라라사를 만나 그녀와 사랑을 한다. 그리고 뒤에 온 카사와 함께 죽음을 당하고 젊은 여교사 두니아는 사라진다. 이들이 살고 있는 아프카니스탄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두니아와 자민 그리고 카트리나는 이슬람의 문화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이에 저항하는 힘없는 이슬람 종교 속의 여인들이다. 카사는 부모가 누군지 모른채 돌아다니다 순교자 훈련소가 들어가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이 된다. 이들은 모두 잘못된 종교의 믿음에 의해 철저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쟁과 종교의 폭력에 철저하게 유린 된 아무 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 나라도 6.25 전쟁을 겪었고 지금까지 불완전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세대가 흘렀는데도 불안전한 상황을 이어오고 있다. 기성 세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젊은 새대는 이러한 상황을 거부하고 변혁을 꿈꾸어야 한다. 이것은 젊은 이들의 특권이다. 이전과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불안정한 상황이 끝나 평화가 오고 아프카니스탄이 비극이 끝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젊은이들이 꿈을 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모르게 하고 꿈을 꾸지 못하게 서로 경쟁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꿈을 꾸지 않으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비극은 다음 세대로 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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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다림은 현대 아프가니스탄 역사를 날카로운 감각과 빼어난 묘사로 그려냈다. 파키스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세 번째 소설로, 2011년 워릭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책에서 저자는 아프간인뿐 아니라 영국인, 러시아인, 미국인 등 여러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선과 악,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울러 다양한 국가와 부족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복잡한 현실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버무렸다. 무대는 아프가니스탄의 토라보라 산악 지대. 탈레반과 군벌의 손에 아프간인인 아내와 딸을 잃고 홀로 사는 70대 영국인 의사의 집에 행방불명된 남동생을 찾는 러시아 여인, 전직 CIA 요원인 미국인과 반군 세력인 아프간 청년 등이 모여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들의 관계는 아프가니스탄 역사의 비극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슬람은 인종도, 국적도, 종교도 다르지만 모두 잔인한 현실 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아픔을 간직한 인물들을 내세워 전쟁과 폭력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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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다림>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내 목숨을 폭탄과 함께 적을 심판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나와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은 과연 사람인가 아니면 심판자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들의 율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가족이건 아무런 제지도 없이 나이 어린 남자아이는 여자들에게 폭력과 죽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다소 허황되고 믿을 수 없는 종교가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책에 못으로 통과된 이 책의 표지를 보면서 그들이 집안에 있는 책들을 빼앗아버리고 불살라버리는 것에 어쩔 수 없는 자구책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천정에 매단다는 기가막힌 소설속의 이야기가 단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자민을 찾기위해 마치 첩보 영화 이야기와 같은 일들이 그간에 알려지지 않는 이슬람 문화와 슬프고도 무서운 지옥속의 이야기에 우리들을 치를 떨게 하고 있습니다. 제목처럼 그토록 찾고자하고 사람을 기다린다는게 헛된일이라는 것이 너무도 좌절하게 되고 슬프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얼마전 그들은 세계자연 유산을 흔적도 없이 폭파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책에서처럼 땅속 깊숙한 곳에 불상이 발견되고 폭파시켜버리려고 했지만 총탄 세례를 아무리 퍼부어도 금빛으로 메꾸어져 버리고 마는 모습에 그들은 두려움으로 땅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나의 종교를 갖는 다는 믿음이 우리들에게 행복과 인간을 존중함으로써 참다운 진리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 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 것들이 절대로 반드시 우리 이외의 종교들은 거짓이라며 조금이라도 나와 맞지 않고 나만의 방식이 아닌 사회, 집단, 인종, 남녀들이 존재하고 해악을 끼친다면 죽음과 공포로 몰아가고 성전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항하고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도대체 어찌할 방법들을 모르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서방 열강들은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무기를 동원해서 색출하고 저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나라별로 규제와 감시, 그리고 불편함으로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보존해왔던 유적들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는 뉴스를 들어볼 때마다 우리들은 안타까움과 분노속에 놓여 있습니다. 열강들의 이익을 위해 어린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처럼 그들을 이용하고 무시하며 자원을 거의 빼앗다시피 하는 모습에 아마도 분노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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