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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유하는 중간 정류장, 선셋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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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신문에서는 난리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어 청년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다. 사실 정년이 연장되었다고 해봐야 그 혜택을 입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 할 텐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세상에서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과 상처는 바로 직업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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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신문에서는 난리다.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어 청년들의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다. 사실 정년이 연장되었다고 해봐야 그 혜택을 입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 할 텐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의 세상에서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과 상처는 바로 직업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 고민과 상처 또한 그들이 헤쳐나가야 할 또 하나의 난관인 것을..

 

우리들은 모두 자신만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당사자인 나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이 많다. 꼭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어디가 아파야만 상처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롯이 자신이 극복해야 할 경우가 많다.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설사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본, 객관화된 상처이기에 치유해 줄 수도 없고, 치유되지도 않는다. 물론 그것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희미해져 가지만 나 역시 한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후회도 많이 했고, 방황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현실로 받아들이는데 거의 10년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허 해진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의 상처가 그대로 나에게로 전이되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상처의 종류는 다르지만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의 젊은 날이 떠올랐다. 그렇게 볼 때, 아직도 나는 나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상처 중 일부는 무너져 내린 현실의 삶과 관계가 있기에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나중에 제대로 해결할 실마리는 찾을 수 있을지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 온다.

 

상처와 고민은 그것에서 도망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의붓형의 죽자, 그 원인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마일스 헬러, 좋은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던 유망한 청년인 그는 부모를 떠나,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떠돌아 다닌다. 형의 죽음에 대한 자책이 그를 어느 한곳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서 폐가처리 작업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공원에서 필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고등학생인 그녀와의 관계는 그가 더 이상 플로리다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친구인 빙 네이선의 제안에 따라 부모님의 집이 있는 뉴욕의 변두리에 위치한 선셋 파크로 거처를 옮긴다. 빈집인 그곳에는 이미 세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불법인줄 알지만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곳에 모여든 그들은 선셋 파크를 무단 점유하여 함께 살기 시작한다.

 

자기만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반사회적 투사를 꿈꾸지만, 의외의 감정으로 고민하며 열심히 드럼만 두드리는 빙, 과거 아르바이트로 돌보아주던 소년과 관계를 가진 후 임신한 아이를 지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 몰두하는 엘런, 체중에 대한 콤플렉스를 논문으로 풀려 하는 엘리스, 그들 모두는 저마다 다른 고민과 상처를 가지고 선셋 파크에서 살아가지만,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출구를 찾아간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는 그곳이 바로 선셋 파크였던 것이다. 소설은 이들 네 명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상처와 절망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제3자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더불어 마일스의 아버지 모리스, 친모 메리와 양모인 윌라의 이야기는 소설의 전체내용과는 별도로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해주기도 한다.

 

우리들은 때로는 자신의 상처와 고민을 그대로 방치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극복하려 애쓰기도 한다. 비록 그 방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상처와 절망이 아물 수 있도록 받아주는 곳, 다시금 희망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 그런 곳이 있다면 좀 더 빨리 상처에서,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네 젊은이가 선셋 파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아니,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다. 우연이 많이 가미되는 것이 조금은 그렇지만,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k*****1 2013.05.05. 신고 공감 13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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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스쳐지나가는 이 순간을 위해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다.
"『선셋 파크』스쳐지나가는 이 순간을 위해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다." 내용보기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어둠과 고통의 시간들이 다가오지 않게 막고 싶은 것이다. 그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바람일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그 순간에 끼어들지 않길 바라는 그 짧은 시간들의 소중함을 잃고 싶지 않는 기분일 것이다. 다가올지 모를
"『선셋 파크』스쳐지나가는 이 순간을 위해 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다." 내용보기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어둠과 고통의 시간들이 다가오지 않게 막고 싶은 것이다. 그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바람일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그 순간에 끼어들지 않길 바라는 그 짧은 시간들의 소중함을 잃고 싶지 않는 기분일 것이다. 다가올지 모를 상실의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한 간절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할 수 만 있다면 과거의 어느 시간속으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돌리고 싶은 순간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그렇게 간절하고 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폴 오스터의 신작 『선셋 파크』에서 마일스 헬러라는 인물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형 보비와 말다툼을 했던 때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형이 죽지 않은, 죽기 전의 그 순간으로.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자기의 덩치가 조금만 작았더라면, 형을 살짝 밀쳤을뿐인데, 그 순간 차가 지나와 형을 치어버렸을 때,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그 순간으로 돌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일스 헬러는 책을 좋아하고, 야구를 좋아하며 공부도 잘하는 영특한 아이였다.

의붓형 보비와 투닥거리긴 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형이 죽고난 후, 상실감으로 부모와 함께 부유한 삶으로부터 도망을 쳐 떠도는 삶을 살고 있다. 플로리다에서 집주인이 빚을 갚지 못해 떠난 집들을 처리하는 '폐가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버려진 물건들에서 그들의 삶을 느끼며 사진을 찍어 남기고 있다. 그에게는 아직 열여덟 살이 되지 못한 어린 연인 필라 산체스가 있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폐가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집어와 언니들에게 선물로 주고 자신에게로 데려왔다.

 

 

마일스는 칠 년 동안 떠도는 삶을 살면서도 연락을 끊지 않고 편지를 보냈던 빙 네이선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뉴욕의 브루클린가에 선셋 파크에서 버려진 폐가에서 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나가게 되어 방이 비었으니 의향이 있으면 오라고 초대를 한다. 갈 마음이 없었지만 갑자기 일이 생겨 그들이 있는 선셋 파크로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일스는 빙 네이선과 앨리스 버그스트롬, 엘런 브라이스와 네 명이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상처를 입어 보아야만 비로소 한 인간이 될 수 있다.  (200페이지)

 

버려진 집에서 무단으로 살고 있는 이들 모두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각자 자신만의 아픔과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빙은 의외의 감정이 생겨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엘런은 스무살 때 열여섯 소년과 사랑에 빠졌다가 지금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그림에 매진해보려하지만 그로 인한 우울과 상처를 견딜수 없다. 박사논문 연구 주제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논문으로 쓰고 있는 앨리스 또한 몸무게가 늘어 거대해진 몸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애인 제이크때문에 힘들어 한다. 이들 모두 경제적 불황에 힘들어하고, 자신의 삶,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에 고민하는 이들이다.

 

 

이 책의 주제와 연관된 영화가 책속에서 나온다. 앨리스가 논문 주제로 사용하기도 했고, 선셋 파크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 네 명 이외에도 마일스의 생모, 아버지가 공통적으로 보았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다. 이 영화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로 전쟁이 끝난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세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는 현실의 어려움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미국의 낙관주의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이 영화에서처럼, 책속의 주인공들은 앞이 꽉 막혀 있는 고통의 시간들 희망의 시간들로 헤쳐 나가는 이들이다.

 

 

지금 이순간 버리지 않고 살아내기로 한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곧 사라질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의 모습때문에 나도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이들의 희망이 내게도 스며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4.02. 신고 공감 11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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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살아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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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은 실상 그 자신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운명이라는 굴레, 또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우연에 의해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길을 따라 그저 떠내려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삶 전체에 나의 의도는 실오라기 하나 개입할 수 없는 것이구나 쓸쓸해지곤 한다.   폴 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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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은 실상 그 자신이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운명이라는 굴레, 또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우연에 의해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길을 따라 그저 떠내려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삶 전체에 나의 의도는 실오라기 하나 개입할 수 없는 것이구나 쓸쓸해지곤 한다.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는 그런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나는 잠깐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외딴방>에서 받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아마도 폴 오스터가 남성 작가이기도 하고, 다분히 독립적이면서 개인주의적인 미국적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암울한 현실을 겪는 네 명의 청춘들의 이야기는 처절하다거나 절망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읽힌다.

 

사실 청춘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년의 회상을 떠올리게 하는 '선셋 파크'라는 제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희망이 없는 현실과 마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노년과 같은 삶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청춘의 모습은 공동묘지가 넓게 펼쳐진 '선셋 파크'의 배경과 함께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이 겪는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 청춘들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걱정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소설은 마일스가 폐가 처리 작업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경제적 이유로 황급히 도망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집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이복 형 보비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우연히 듣게 된 새엄마와 아빠의 대화 내용에 충격을 받은 마일스는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미국 전역을 떠돌게 된다.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이, 언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지내던 중 그는 공원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같은 책(위대한 개츠비)을 읽고 있던 한 소녀, 필라 산체스.  마일스는 똑똑하고 야무진 그 소녀에게 한눈에 반한다.  미성년자인 필라와 동거를 하며 늘 조심스러웠던 마일스.  그러나 필라 언니로부터의 협박에 굴복하여 결국 그는 그곳을 떠나게 되고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뉴욕으로 돌아간 마일스 헬러가 지내게 되는 곳이 바로 선셋파크인데 그곳에서 그는 옛친구 빙과 엘런, 앨리스를 만나게 된다.  뉴욕의 변두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인 선셋 파크는 현재 시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시 소유의 건물인 선셋 파크를 불법 점유한 셈이었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들에게 선셋 파크는 임대료나 관리비의 부담 없이, 집주인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 모인 네 명의 청춘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그들 나름의 아픔과 상처가 있다. 형과의 말다툼 끝에 형을 도로로 밀쳐 달려오던 차에 치여 죽게 한 것에 대한 자책에 시달리는 마일스와 반사회적 투사를 꿈꾸며 선셋 파크 무리의 리더가 됐지만 의외의 감정으로 고민하는 빙,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림에 몰두하는 엘런, 체중에 대한 콤플렉스와 남자 친구와의 삐걱거리는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앨리스.

 

마일스는 그들과 함께 선셋 파크에 모여 살면서 서서히 미래를 꿈꾸게 된다.  부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연인 필라가 뉴욕에 있는 대학에 합격함으로써 곧 재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대학에 복학함으로써 미래를 계획하고자 했다.  박사학위 논문을 거의 끝내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던 앨리스. 과외 교사로 일했던 시절 가르치던 학생과의 교제와 우연찮은 임신 때문에 달아났던 엘런은 그때의 학생이 어엿한 청년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남으로써 희망에 부풀게 되고, 마일스의 고교 동창인 빙은 마일스에게 자신의 사업체를 맡기고 밴드와 함께 순회 공연을 떠날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로의 꿈을 찾아 각자의 길로 헤어지려던 그때 선셋 파크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더 나은 사람,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좀 공허하기도 하지요. 더 나은 사람이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4년동안 대학에 가서 전 과정을 이수했다고 증명해 주는 학위증을 받는 식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더 나아졌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더 강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계속 밀고 나갔어요. 한참 지나니까 목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노력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투쟁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저 자신을 놓쳐 버리고 만 거죠. 계속 죽 해나갔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더는 모르게 되었어요.˝    (p.281)

 

삶은 자신의 의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같은 사건들에 의해 등 떠밀려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그러한 삶을 유지하고 끝까지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 폴 오스터는 독자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달의 사락 s*****l 2014.10.19. 신고 공감 8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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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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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노을빛으로 물든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처럼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행복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노을빛에 겹쳐 떠올리며, 내일 새로운 태양이 떠오리라는 작은 희망을 공원 한 구석에 묻어두는 이도 있으리라. 혹 어떤 이는 이름 모를 불안감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에 떨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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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노을빛으로 물든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처럼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행복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날 있었던 일들을 노을빛에 겹쳐 떠올리며, 내일 새로운 태양이 떠오리라는 작은 희망을 공원 한 구석에 묻어두는 이도 있으리라. 혹 어떤 이는 이름 모를 불안감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의식에 떨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아쉬움, 밤의 어둠의 불안감과 함께 내일에 대한 작은 기대감을 동시에 내게 던져주었다.

 

주인공 마일스 헬러는 여행길에 사소한 말다툼으로 의붓형을 밀치게 되고, 형은 그 자리에서 트럭에 받혀 즉사한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마일스는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하여 10년 동안 부모님과 연락을 두절한 채 살아간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지만, 그 사고가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이었는지 그에게도 모호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더욱 괴로와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행한 범죄의 결과로 인해 고통을 받았지만, 마일스 헬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순수한 죄의식의 발로로 인해 괴로와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의도와 우연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짊어지기 힘든 짐이었다.

 

살다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행위의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이 변해가는 경우 말이다. 아마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기억이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변명, 혹은 자기 합리화로 일컬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마일스 헬러는 변명도, 자기 합리화도 하지 않은 채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말았다. 그것은 타인과의 단절이었고,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였다. 그에게는 그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마치 그 사고의 순간부터 마일스의 삶이 정지된 것처럼. 그는 이제 압류 가옥을 청소하고 새 집처럼 단장하는 일을 하며 버려진 물건의 사진을 찍는 것을 유일한 취미이자 낙으로 삼아 매일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에게도 구원의 손길은 있었다. 필라 산체스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공원에서 같은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만난 이들은 사랑에 빠지고 헬러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필라는 아직 고등학생이어서 필라의 가족들과 마일스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게 되고, 마일스는 필라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잠시 도피하기로 한다. 선셋 파크 공터의 빈집을 무단 점거하고 있는 빙 네이선, 엘런 브라이스, 앨리스와 함께 살게 된 마일스. 이들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방을 얻어 독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들이 붙잡을 것은 미래에 대한 꿈 밖에는 없다. 선셋 파크의 희망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h*****s 2013.08.22.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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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다면, 희망은 소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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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면, 희망은 소멸되지 않는다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   “인간의 육체는 다른 인간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육체는 접촉이 필요하다. 작은 인간 육체만이 아니라 큰 인간의 육체도. 인간의 육체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241~242쪽)   모든 텍스트는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개인의 상처와 세대의 상처를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교차시킬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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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다면, 희망은 소멸되지 않는다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

 

인간의 육체는 다른 인간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육체는 접촉이 필요하다. 작은 인간 육체만이 아니라 큰 인간의 육체도.

인간의 육체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241~242)

 

모든 텍스트는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개인의 상처와 세대의 상처를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교차시킬 줄 아는 작가는 드물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작가는 폴 오스터다. 그런 폴 오스터의 신작 정확하게는 2008년에 출간되었지만 번역본을 우리는 이제야 손에 쥐었다- 선셋 파크(열린책들, 2013)이 나왔다. 이 작품은 개인의 상처와 미국의 상처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망가진 세계에 대한 우화로 확장시키는, 그런 작품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플로리다와 뉴욕이지만 진정한 배경은 폐허희미한 빛의 아우라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7)

 

주인공인 마일스 헬러는 경제적인 이유로 급하게 집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 남긴 것들을 사진에 담으면서 살아간다. 28살이지만 그에게는 야심 같은 것은 없다. 마일스 헬러에게는 탄탄한 출판사를 경영하는 아버지 모리스 헬러와 영문학 교수인 계모 윌라가 있지만 그는 7년째 부모와 등지고 방황하는 중이다. 마일스 헬러에게는 지워지지 않은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마일스는 배다른 형 보비와 도로에서 다투다가 홧김에 형을 밀쳤는데 보비는 곧바로 자동차에 치여 사망한다. 그 후 마일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할 용기도 없었고, 태연하게 살 배짱도 없었던 마일스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학마저 중퇴하고 낯선 곳을 떠돈다. 마일스는 필라라는 여고생과 사랑에 빠지지만 얼마 되지 않아 플로리다를 떠나야 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마일스는 오랜 벗인 빙 네이선의 권유로 뉴욕의 선셋 파크에 합류한다. 오래된 물건을 고치는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을 운영하며 소일거리로 드럼을 치는 빙 네이선은 두 명의 친구 앨런과 앨리스- 와 함께 선셋 파크의 빈집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마일스와 마찬가지로 선셋 파크의 젊은이들은 모두 자신의 삶과 힘겹게 대결하는 중이다. 기술의 진보를 불신하며 과거의 정신이 스며든 현재를 위해 개인적인 저항을 전개하는 빙, 그림을 그리며 첫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는 앨런, 궁핍 속에서 필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문화사에 대한 논문을 쓰는 앨리스. 마일스를 비롯한 네 사람은 모두 과거와 대결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폴 오스터는 선셋 파크에 거주하는 네 사람의 삶과 함께 앨리스가 논문에 삽입하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를 마일스의 아버지 모리스와 생모 메리-, 계모 윌라의 과거와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이 전쟁 이후의 평온한 삶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담은 이 영화는 미국의 영광스러웠던 시기와 이질적인 세대의 탄생을 동시에 상징한다. 파시즘을 분쇄하고 세계대전의 승리를 거머쥔 1945년은 아마도 미국 역사에서 최고의 해였으리라. 그러나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버지들의 자식들은 냉전과 원폭, 베트남전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부모에 맞서서 반체제 자유주의 운동을 전개한다. 세계 대전 이후 호황을 누리면서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국가의 내부에서는 조금씩 세대 간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선셋 파크의 빈집을 점유하는 마일스, , 앨런, 앨리스는 그 다음 세대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에서 풍요로운 소비를 만끽하며 성장한 세대.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전면적인 등장 이후 국가의 위신이나 사회의 풍요와는 달리 평범한 개인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궁핍의 악순환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었다. 이 소설이 세계 경제 불황의 시발점이 되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가 발생한 2008년도에 씌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선셋 파크의 네 젊은이가 과거 때문에 그토록 아파하는 의미는 확장되어 읽힌다. 소설에서는 개인의 상처에 대한 서술로 나타나지만, 폴 오스터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 대한 언급을 반복하면서 이 소설을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우회적인 항의서로 확장시킨다. 기술은 진보하고 사회의 부는 숫자상으로는 증가했지만 황폐한 빈집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픈 과거와 맞서는 폴 오스터의 인물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2008년의 쌍용자동차, 2009년의 용산, 2011년의 한진중공업, 취업난에 직면한 젊은이들의 아우성, 그리고 타자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생존에 몰두하기에 바쁜 사람들. 지금-여기 우리의 현실이 훨씬 동물적이고 디스토피아에 가깝지 않은가. 지난 대선의 결과는 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간소한 지표일 것이다. 우리의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그리고 소비세대는 미국의 세계대전 세대-반체제·자유주의 세대-소비세대와 흡사하다. 단지 우리에겐 생애 최고의 해따윈 없었고 경쟁만이 더욱 가속화될 따름이다. 적나라한 현실과 비교하면 고통을 짊어진 네 사람이 모여 사는 소설 속 선셋 파크가 오히려 따뜻해 보일 지경이다.

 

선셋 파크의 인물들은 결국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를 바라본다. 마일즈는 사랑하는 필라와 재회하고 부모에게 과거를 고백한다. , 앨런, 앨리스도 역시 각자의 길을 찾고 자신을 옭아맨 과거를 벗어나서 미래를 꿈꾸기 시작한다. 비록 그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는 순간 새로운 갈등과 마주하지만 폴 오스터는 네 젊은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킨다. 과연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답하기에는 마냥 씁쓸하기만 하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폴 오스터의 인물들이 고통의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만일 수도 있겠다. 현실은 훨씬 가혹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텍스트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상상적 해결이라는, 프레데릭 제임슨의 익숙한 답을 내놓아도 무방할 정도로 인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대한 폴 오스터의 서술은 섬세하다.

 

P.S : 장강명의 장편소설 표백(한겨레, 2011)선셋 파크와 비슷한 세대를 다루고 있지 만, 두 소설의 온도 차이는 크다. 표백이 체계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과 냉소의 화법을 지녔다면 선셋 파크는 개인에 대한 응시와 공감의 화법을 지녔다. 두 소설을 겹쳐 읽으면서 불황기의 소비사회를 통과하는 청춘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떠할까

 

YES마니아 : 로얄 2*****h 2013.04.09.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 속 가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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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는 가해적 상처가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원치 않은 상대 혹은 상태에 저항하다가 누군가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나 역시 피해를 입는다. 내가 의도했건 안했건 가해자가 되었을 때, 몹쓸만큼 엄청난 가해자가 되었을 때 그 누구에게도 온정을 바랄 수 없다는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세상의 유일한 정의일 지도 모른다. 이 때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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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는 가해적 상처가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원치 않은 상대 혹은 상태에 저항하다가 누군가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나 역시 피해를 입는다. 내가 의도했건 안했건 가해자가 되었을 때, 몹쓸만큼 엄청난 가해자가 되었을 때 그 누구에게도 온정을 바랄 수 없다는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세상의 유일한 정의일 지도 모른다. 이 때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벌주는 것이다. 이 방법 밖에 없다. 


가해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동안 가해자는 자기 피부 아래쪽 깊숙히 궤양이 생기도록 스스로를 향해 깊은 상처를 판다. 그 깊은 우물 속엔 자신 밖에 없다. 그 우물 속을 빠져 나올 구원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 벌주기가 스스로를 파멸시켜 모든 가학적 행위가 피학적 행위와 같아졌다는 생각은 사랑이 다가왔을 때 나타난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빗속, 어둔 구름을 뚫고 한줄기 빛처럼 홀현히 나타난 사랑 그것은 유일한 구세주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구원은 영속성이 없다. 개별적인 인간은 그 인간을 규정짓는 망할 정체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인간이 자기가 지닌 개별적인 특성, 성격 때문에 마지막 구원을 남겨두고 다시 또 유사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은 인간의 개별성을 규정한다. 


인간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는 걸까. 아니다.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같은 동굴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엔 선셋 파크의 주인없는 집을 무단으로 점거해서 살아가는 동료들이다. 함께 공유했던 건 빈곤 밖에 없는 줄 알았던 그들. 그들에 대한 정의감이 그를 다시 망가뜨렸지만,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닐 터이다. 그의 곁엔 가족이 있을 터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기다릴 터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가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깊이 깊이 공감하고, 흐느낌 같은 감정들이 들숨 날숨을 통해 폐를 통과하며 그 감정에 함께 머문다는 것은.. 나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관계들 속에서 인식하고 있지 않던 어떤 작은 사건, 작은 상황들 속에서 가해자라는 것이다. 힘든 친구에게 따뜻하게 마음쓰지 못하는 것들, 아픈 부모님에게 자주 전화하지 않는 것들.. 수없이 많은 순간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가해의 행동을 한다는 걸 인식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피부 밑을 파내어 상처를 만들고 우물을 판다는 뜻일 터이다. 


우리도 어쩌면 선셋파크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주인 없이 스러져 가는 낡은 집에 내 빈곤한 정신과 궁색한 물건들을 채워 넣고, 공허한 하루가 더 공허한 내일이 되지 않기 위해 달그락 거리며 살아가는 곳. 그림자를 피해 작은 희망의 햇살조각 안에 앉아 있는 곳, 언제 경찰이 들이닥쳐 그동안 채워놓은 것들을 삶에서 밀쳐버릴 지 모를 그 허름한 선셋 파크의 주인없는 집에 무단 침입하여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블 리뷰 10-3



g******1 2014.10.13. 신고 공감 5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선셋 파크 /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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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고통과 상처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중간 지대 선셋 파크.. 그곳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젊음,청춘..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하고 아름답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이라는 것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 그 고통이나 아픔은 생각치도 못했던 사소한 것에서 비롯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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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고통과 상처도 무의미하지는 않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중간 지대 선셋 파크..

그곳에서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젊음,청춘..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하고 아름답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이라는 것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리라.

그 고통이나 아픔은 생각치도 못했던 사소한 것에서 비롯될 수도 있을 것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들어 아픈줄도 모르는 사이 심한 상처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은 젊음이라는 그 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해 주는.. 무의미하지 않은 과정임을 선셋파크에 사는 젊은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전에 접했던 폴오스터의 작품들에 비해 현실적이고 평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3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개개인의 묘사와 그 인물들로 인해 대변되는 여러가지 모양의 상실과 고통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로 시작되는 소설..

'달의 궁전'을 통해 폴오스터의 소설을 처음 접했지만 웬지 그의 소설의 첫 문장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함축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그 첫문장을 천천히 읽어보고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한번 읽어본다..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 폐가처리,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 무단거주, 그리고 선셋(sunset)파크..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뭔가 절망과 상실이 느껴지는 소재들 그리고 그 소재들과 함께 연관이 되었는 젊은이들..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마일즈 헬러

그날 형 보비와 그렇게 별 일도 아닌 일로 다투지만 았았다면.. 내가 나보다 체격이 작은 형을 그렇게 밀치지만 았았다면.. 모든 상황이 달라지고 내 인생도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

형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의 대화도, 좋아하던 야구도 하지 않는 공허하고 침울한,끔찍한 아이가 되어버렸다는 보비형의 친엄마 그러니까 나의 새엄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나는 바로 짐을 꾸릴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와 주소지를 수시로 바꾸고 온갖 일을하면서 스스로 벌을 주는 듯이 살아온 7년이라는 시간..그런 내게 구원과도 같은 존재는 필라였다. 우연히 공원에서 내가 읽고 있던 책 <위대한 갯츠비>와 같은 책을 읽고 있던 어린 소녀.. 남들과 다르게 갯츠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유일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닉이라는 의견을 얘기하는 영리한 소녀 필라..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사랑앞에는 어려운 난관이 있었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라의 곁을 잠시 떠나 친구 빙이 제안한 선셋파크로 간다.. 그곳은 내가 떠나온 뉴욕이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가게 되면 웬지 과거와도 화해를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공연차 뉴욕에 와 계신 친엄마와도 그리고 아버지와 새엄마와도.. 그리고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그 일도 이제는... 이라는 맘과 함께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빙 네이선

세상은 너무 크고 이미 너무 망가져있다.세상이란 내가 살고 있는 이 좁은 영역의 삶이 전부이다.

그리고 항상 불만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기에 현상황의 반대편에서 항상 저항한다. 또한 기술적인 발전은 삶을 가능성을 축소시킬뿐이다 그러기에 나는 휴대전화, 컴퓨터등의 디지털 제품을 피하고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한 반격의 의미로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을 운영하며 주말이면 드럼과 퍼커션을 연주한다.

나는 덩치도 크고 수염도 덥수룩하고 연애운은 지지리도 없는 , 오로지 드럼치는 일로서만 기쁨을 느끼는

그런 찌질한 인간이다.. 어느날 우연히 만나게 된 엘렌을 통해 알게 된 선셋파크,,

꼭 미네소타 평원의 농장에서 훔쳐다가 뉴욕의 한 가운데 뚝 떨어뜨려 놓은 것 같은 그 낡은 2층 목조 건물을 보고.. 오호라.. 바로 이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체제에 가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 아닌 공공의 행동의 기회였다.

불법인 줄 뻔히 알았지만 행동해야할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셋파크에서의 무단생활,,

결국 경찰의 출동으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벼텼음에 웬지 기분 좋음을 느끼게 된다.

 

엘렌 브라이스

선셋파크 현관앞에 서서 휴일 아침.. 안개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빙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곳 선셋파크로 이사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덜 외롭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일로 고통스럽긴 하다.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안개속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해서 불안하다. 과거로 묻어두었던 8년전의 임신과 유산 그리고 보드카 반병과 수면제 스무 알을 삼킨 자신을 발견해 목숨을 구해준 앨리스..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듯이 떠나왔던 가족들에 대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런 나의 감정들을 그리고 칠하고 싶다. 정물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서 더 동적으로 거칠게 그렇게 붓을 놀리고 싶다.. 

빙이 나의 모델이 되어주고 내 마음속의 욕망에 대한 그림을 아무런 사심 없이 봐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렇듯 위안이 된다니..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벤자민..그래 난 달라질 수 있어..

화장하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다시 태어날거야.. 라는 노래가사처럼.. 그렇게 멋진 여자로 태어날거야..그리고 당당히 이제 이 선셋파크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앨리스 버그스트롬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집세를 내지 못해 살던 아파트에서 쫒겨났지만 은퇴연금으로 근근히 생활하시는 부모님께 차마 손을 벌릴수가 없었다. 그러던 내게 엘렌의 제의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받아들여야하는 좋은 조건의 제의였다. 집이 낡고 언제 어떻게 될 운명일지 모른다하더라도 일단 집세 걱정 없이 돈을 모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다른 걱정 없이 몰두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울을 바라볼때마다 내 모습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난 뚱뚱해..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혐오스러운데 옷을 벗고 같이 침대로 들어가는 제이크가 보기에는 어떤 기분일까..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지만 나도 이 세상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국제 펜클럽에서 죽음의 위협앞에 살아가는 작가들. 망명작가들의 옹호를 위한 일을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구체성이 보이는 듯 하다.. 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과거의 나를 둘러싸고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듯 하다..

 

이 4명의 인물들과 그 주면의 가족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절망과 희망의 코드가 교차한다.

폴오스터의 글을 읽다보면 그 이야기안에 다른 이야기들이 인용되거다 재 창작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한다. 이 책에서도 마일즈와 필라가 만나는 계기가 되는 소설 <위대한 갯츠비>와

앨리스의 눈문 주제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날>이 등장한다.

어찌보면 약간은 비현실적인 듯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던 갯츠비를 현실적인 화자 닉에 비중을 둔 필라의 의견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얘기하고 싶었던 메세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참전했던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돌파구를 찾아하는 것이 삶이다.

법원에서 나온 이들이 퇴거를 명령했지만 어떤 물리적인 제제가 가해진 것은 아니기에 끝까지 버티며 생활했던 그들은 결국 아무런 대책없이 강제 집행을 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자신들의 그동안의 삶을 지탱해왔던 앨리스의 논문, 엘렌의 스케치등을 미처 챙기지도 못한 채 쫒겨나게 된다..설상가상으로 마일즈는 그 과정에서 앨리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찰을 폭행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고 피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지금'이라는 살아내야하는 중요한 순간이 있음을 깨달았기에..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3.05.01.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의 절망은 우리의 희망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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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폴 오스터의 신작 '선셋 파크'는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인 '보이지 않는'이 2009년에 출간되었으니 채 1년도 안 되어 새로운 작품이 나온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둠 속의 남자'가 나왔던 2008년 부터 꾸준히 1년에 한 권씩 내고 있다. 이러한 시기의 간격은 지금의 폴 오스터를 있게 한 대표작들, 그러니까 뉴욕3부작,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등이 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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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나온 폴 오스터의 신작 '선셋 파크'는 2010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전작인 '보이지 않는'이 2009년에 출간되었으니 채 1년도 안 되어 새로운 작품이 나온 셈이다. 그러고 보니 '어둠 속의 남자'가 나왔던 2008년 부터 꾸준히 1년에 한 권씩 내고 있다. 이러한 시기의 간격은 지금의 폴 오스터를 있게 한 대표작들, 그러니까 뉴욕3부작,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등이 해마다 주루룩 나왔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이 전기의 대표작이었듯 혹시 이 일련의 작품들은 후기의 대표작들인 셈일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지금 생각하기엔 분명 이 세 작품들은 그럴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이 세 작품들엔 어떤 강한 연속성마저 감지된다. 그러고 보니 저번 '보이지 않는 리뷰'에서 한 번 언급했던 것도 같다. '어둠속의 남자'와 '보이지 않는'은 9. 11이 남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에 대한 작가 자신의 반향이라고. '어둠속의 남자'는 정확히 9. 11 이후에 이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자문자답하는 작품이었고(이는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이지 않는'은 그 후, 2008년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경제 공황까지 가세한 미국에서 오늘의 현실이 과연 무엇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나를 되돌아보는 소설이었다. 그렇게 폴 오스터는 자신에게서 미국으로 나아갔다. 그럼, '선셋파크'는 어디로 나아간 것인가?

 

  전작 '보이지 않는'의 리뷰에서 나는 그 소설의 마지막이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라고 말했었다.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고 다시금 역사를 만들어가기 위한 현장이라고.

  결국 소설 '보이지 않는'은 이제 만들어 갈 미국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건 한 마디로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된, 그렇게 미국이 잃어버렸던 것의 복원이었다. 현재의 미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60년대의 미국은 가지고 있었던 순수한 이념들 혹은 가치들...

 

  그런데 '선셋 파크'의 시작도 그러하다.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선셋 파크'의 이야기는 마이스 헬러로 부터 시작되는데 작품의 첫 등장 장면에서 그는 서브 프라임으로 인해 밀린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야반도주해 버린 빈 집에서 그들이 남기고 간 그들의 물건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집 하나하나가 실패의 이야기이다. 파산과 체납, 빚과 가압류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다. (p. 7)

 

  그렇게 마일스 헬러가 소위 '폐가 처리(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물건을 깨끗이 치워 다른 사람들에게 팔기 쉽게 만드는 일)'를 하는 주인을 잃어버린 집들은 9. 11 때 생겨난 그라운드 제로의 또다른 모습이다. 마일스 헬러는 그런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하도록 고용된 인부다. 이는 '보이지 않는'의 마지막에서 세실이 보았던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하는 인부들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정반대다. '보이지 않는'에서는 현존하는 그라운드 제로를 기초로 역사를 이어 올렸다. 하지만 지금 마일스 헬러가 인부로서 하는 일은 그라운드 제로를 없던 것으로 지우는 일이다. 얼른 기존의 흔적들을 제거하여 새로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에서는 거기에 뭐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선셋 파크'에선 분명히 존재한다. 이 차이는 어쩌면 기억과 망각의 차이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이 대지에 새겨진 상처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라면 '선셋 파크'는 새겨진 상처는 다른 흙으로 서둘러 덮어서 망각해버리고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그렇다면 이것은 또 한 번 겪었던 폴 오스터의 절망이 드러난 표현인지도 모른다. 2010년의 미국은 그야말로 '폐가 처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시다시피 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타개하고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추진했던 오바마의 금융개혁은 완전히 좌절되었다. 생각보다 기득권의 방어는 꽤나 강고했고 결집 또한 대단했다. 그 앞에서 오바마는 무력하기만 했다. 많은 여론의 지지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건 미국을 좀 더 바람직하게 재건할 또 하나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었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이 9. 11 이 가져온 기회를 날려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타자를 공격함으로써 비극을 재빨리 망각하려 했었던 미국은 결국 다시금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 마치 카트리나에 휩쓸린 뉴올리언스 처럼 한 순간에 모든 재화들이, 그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던 모든 가정들이 속절없이 쓸려가고 말았다. 이를테면 또 하나의 엄청난 그라운드 제로가 생겨난 셈이었다. 위기이 재발은 이제 좀 깨달아야 한다고. 더 이상 예전처럼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신호를 주고 있었지만 역시나 미국은 아무런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오바마의 금융 개혁 실패는 미국이 또 한 번 망각을 선택했다는 선언에 다름아니었으니까.

 

   '보이지 않는'에서 조금은 희망적인 미국의 미래를 그렸던 폴 오스터로서는 정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광경이었을 것이다. 늘 어떤 위기에 있어서든 '폐가 처리'만 고수하는 미국은 그에게 분명 이대로 영원히 실패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나라로 보였을 것이다. 트라우마가 치유될 순간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꾸만 커져갈 뿐. 마일스 헬러의 아버지 모리스 헬러처럼 타인의 아픔에 민감한 폴 오스터로서는 망각으로 그 개인들의 고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미국이 더욱 절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셋 파크'는 바로 그 절망에서 잉태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절망 끝에 나온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의 아이러니함. '선셋 파크'는 그런 아이러니로 충만한 우주이다.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고 구원의 가능성은 그대로 추락의 가능성으로 변질되고 만다. 모퉁이를 돌다가 예기치 않게 강도를 만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은 늘 뒷통수를 타격할 의외의 변수를 마련해두고 있다. 이를테면 모리스 헬러가 소설에서 처음 등장할 때 나오는 친구의 딸(수키) 장례식 장면처럼.

 

 그는 여러 해 전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화창한 날 늦은 오후 휴스턴 스트리트에서 수키와 우연히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수키는 고등학교 무도회에 가는 길이어서 눈에 확 띄는 화려한 빨간색 드레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토마토처럼 붉디붉은 빨간색이었다.(...) 그 날부터 그의 마음 속에서 수키의 모습은 생기발랄한 젊음과 미래의 가능성의 정수를 구현한 모습, 불타는 젊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모범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그는 한겨울 베네치아의 눅눅한 냉기, 거리로 무릎 높이까지 넘쳐흐른 운하, 불기 없는 방들의 몸이 떨리는 외로움, 그 속의 어둠의 힘에 부풀어 올라 터져 버리는 머리, 이 너무도 많고도 너무나 작은 세계에 의하여 파열해 버리는 삶에 대하여 생각했다. (p. 153)

 

 수키로 인해 언제까지나 세상이 화창하게 지속되리라 여겼던 믿음은 그녀의 예기치 않은 자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폴 오스터는 시각적 그리고 촉각적 이미지들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이러한 모리스 헬러의 정신적 추락을 극명하게 부각한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추락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그야말로 느닷업이 맞게 된 루시퍼의 해머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그의 아들 마일스 헬러에게도 나타났었다. 그가 무려 7년 동안이나 탕아의 존재로 살았던 것은 말다툼 끝에 밀쳐버린 배다른 형이 길에 넘어져 차에 치여 숨지게 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사소한 밀침이었지만 그게 가져온 것은 뜻밗의 죽음이었다. 그로 인해 마일스 헬러의 인생은 송두리째 전복되고 말았던 것이다. 역시나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징후도 없이.

 

 마치 운명이란 게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측불허다. 어쩌면 이 소설에 만연된 아이러니는 이 예측 불허를 경험한 자의 허망함일지도 모르겠다. 선셋 파크의 집이 거기에 모인 모두에게 겨우 구원의 공간이 되려는 순간 느닷없이 출현한 퇴거 명령 집행을 위한 경찰관에 의해 그 모든 가능성들이 산산히 부숴져 버릴 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일스 헬러의 시선에 담겨져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이 있기 전 바로 앞장에서는 선셋 파크의 거주자들 중 가장 행복과 거리가 멀었었던 앨런은 다시금 첫 연인을 만나 이런 고백을 한다.

 

   미칠 것만 같아. 아침에 눈을 뜨면 새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껴 본 건 정말 오랜만이야.

  잘됐다. 엘

  그래, 잘된 일이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p. 316)

 

  이러한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퇴거 집행의 날을 맞이하고 행복에 젖었던 그녀의 두 눈은 공포로 경악하는 두 눈이 된다. 행복이 어느 순간 갑자기 다가오리라는 걸 몰랐듯, 불행 역시 그러하단 걸 그녀는 그렇게 뼈져리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이런 걸 경험한다. 한 마디로 소설 속 이런 문장으로 대표될 수 있는 이런 경험을.

 

  지금 그는 어디에 있나? 피할 수 없는 소멸과 계속될 삶의 가능성 사이의 경계선 위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p. 186)

 

  이 경험은 정확히 폴 오스터가 2009년 미국의 모습에서 느끼던 것이었으며 2008년 서브 프라임 이후 갑작스럽게 맞이한 재정 파탄으로 인해 자신의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모든 미국 가정들이 느끼던 것이었다. 그렇게 2001년의 9.11 이 만들어버린 트라우마의 심연은 미국이 내부의 진실된 반성이 아니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외부의 타자들을 지우는 것으로만 끝없이 메우려들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인 모든 가정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아마도 미국에서만 유독 일어나고 있는 좀비 영화 붐은 이것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한 순간에 몰락을 경험했던 그들은 역시나 똑같이 단 한 번의 물림, 혹은 긁힘으로 좀비로 변해버리는 것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좀비란 그들이 겪었던 고통스런 기억이 구체화된 산물이요, 그들이 과거와 현재 짊어지고 있는 절망, 무력감 그리고 분노를 대신해서 표현하고 있는 존재인 셈이다.

 

  이 '확산'은 '선셋 파크'의 소설적 구성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소설은 '마일스 헬러'만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차츰 선셋 파크에 모인 네 명의 내면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모두(All)의 내면으로 확장되어 간다. 마치 금융위기로 인해 난파선이 되어버린 이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재민으로서의 그들 하나하나의 내면을 다 보여주려는 것처럼.

 

  이렇게 '선셋 파크'는 지금 당신 곁에서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소설이다. 그들의 내면 속에 간직된 것을.

 

  지금 확산되고 있는 좀비 영화가 미국인들이 그동안 미국이 했던 것과 똑같이 오로지 타인을 파괴함으로 자기가 겪고 있는 고통을 대리 치유하고 있는 것임을 고려한다면(그러니까 나는 지금의 좀비영화들을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앞에서 자신이 드러눕고 있는 소파 같은 것으로. 그렇게 자신들의 무의식적 욕망이 술술 드러나고 있는... 이런 면에서 같이 흥행하고 있는 '슈퍼히어로'물에 대해서도 의심의 시선을 던질 수 있다. 사실 '슈퍼 히어로물'은 '좀비물'과 동전의 양면관계다. 좀비물은 타자를 파괴하고 히어로물은 타자를 구원하지만 모두 타자에 대한 내밀한 헤아림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좀비물에서 타자들이 오로지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소모품이듯 슈퍼히어로물에서도 타자들은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해 그 배경으로 사라져줘야 하는 소모품들인 것이다. 금융위기가 초래한 트라우마 앞에서 좀비물이 '너도 나처럼 당해봐라'라는 무의식적 욕망의 상관물이라 한다면 슈퍼히어로물은 '압도적으로 강해져서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무의시적 욕망의 상관물이다.) 이렇게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의 내면을 아우르는 것이 어쩌면 폴 오스터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대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너무 자신의 고통만 바라보려 하지 말고 타인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지 그 헤아림의 시선을 한 번 던져보라는...

 

  그랬을 경우, 우리가 알게 되는 것 한 가지...

  그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힘겨움, 고통들이 나만은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그 모든 힘겨움, 고통들에서 나만이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폴 오스터가 독자들에게 주려하는 것을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면 아마도 나는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한다.

 

  '너만 예외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라'

 

  우리는 소설이 점점 모든 인물들의 내면으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마일스 헬러만이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모두가 다 자신만의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선셋 파크'의 공간에서 연대가 가능했던 것도 그러한 헤아림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살던 선셋 파크 바로 옆에 그린 우드 묘지 가 있었던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종종 거기를 거닐거나 바라본다. 그러면서 거기에 묻힌 그들의 삶을 헤아린다. 선셋 파크의 집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한 구원의 공간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헤아림이 바로 그들에게 진정한 연대와 구원을 가져오게 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듯 하다.

 

  그린우드 묘지는 소설에 종종 나오는 야구 선수들의 생애 와 이어진다. 마일스 헬러와 그의 아버지 모리스 헬러는 한 순간 빛났다가 예기치 않게 은퇴해 버린 야구 선수들의 인생을 자주 떠올린다. 마일스 헬러와 모리스 헬러처럼 느닷없이 루시퍼의 헤머를 맞았던 자들을. 그렇게 그들의 삶이 예외가 아니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린우드 묘지의 존재와 야구 선수들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에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 묘지는 9. 11이나 이라크 전쟁, 혹은 금융 위기에서 희생된 이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을 헤아려 볼 것을 말하기 위해. 그러면 더욱 우리는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역시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삶의 모든 힘겨움 또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전혀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단지 우리가 여기에 서 있고, 그들이 저기에 누워 있는 것은 다만 우연이고, 운이 작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선셋 파크'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어떠한 행복에도 혹은 불행에도 머무르지 못한다. 행복과 불행은 마치 넘실거리는 파고의 높낮이 만큼이나 변화무상하다. 그건 그들의 능력과 노력과도 무관하다. 흡사 눈을 가린채 해변의 모래 사장을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밟게 될 것이 부드러운 모래일지 아니면 깨진 유리 조각일지 그도 아니면 누군가의 배일지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봐도 비슷하다. 우리 역시도 그와 같은 상황이다. 고통은 전조도,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소설의 마지막 마일스 헬러가 또다시 뜻하지 않게 당하는 고난이 전혀 억지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도 그런 우리의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나만은 예외겠지'하는 생각은 여기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한다. 그 예외일 거란 생각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은 더욱 크게 보이고 거기다 '불운'이란 생각까지 겹치면 더 큰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때문에 그들은 타자들에 대해 적대적이 된다. 좀비물이나 슈퍼히어로물에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투사시키는 것처럼.

 

   그리하여 결국 미국이 저질렀던 잘못처럼 동일하게 늘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된다. 오바마의 금융 개혁은 언제나 자신들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기득권자들에 의해 실패하고 우리나라의 아파트 소유자들은 아파트 가격에 대한 자신들의 소망이 우리나라 경제 상황상 관철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그 헛된 믿음을 정부가 따를 경우 그로 인해 또 어떤 어려움들이 타인들에게 전가될 것인지 알면서도 자신만은 예외라는, 아니 예외이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한다.

 

  예외는 그렇게 단절을 가져오고 결국엔 늘 더 큰 희생을 대가로 치루게 한다. 아마도 그래서 칸트는 바로 그 예외가 되려는 생각이야 말로 정말 '악마적'인 것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칸트는 단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악마란 다름아니라 스스로 예외가 되려는 존재들이라고.  

 

  소설 '선셋 파크'는 '나만 예외'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결국 야구 선수 잭 로크도 죽는다. 늘 행운으로 모든 불행을 비켜나갔던 그는 그의 삶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마일스와 모리스 부자에게 '예외'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도 죽는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동시에 마일스와 모리스 부자는 진정한 화해를 하게 된다.(잭 로크는 일종의 '사라지는 매개자'이다. 그것은 예외의 한계, 그것이 치유와 구원을 줄 수 없음을 말하는 존재이다.) 즉 우리는 이를 통해 '선셋 파크'가 하려고 하는 말, 그러니까 예외를 버렸을 경우 타인 역시 같은 어려움과 힘겨움 속에 살고 있음을 보게 되고 그렇게 상호 이해의 연대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치유 혹은 구원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더욱 확인하게 된다.

 

  물론 우리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마일스 헬러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보게 된다. 이제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바로 그 시선의 변화가 폴 오스터가 주려 하는 치유와 구원의 모습이다.

 

 

 

 



l****1 2013.10.21. 신고 공감 2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하루키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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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폴 오스터의 책을 읽으면 미국의 하루키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어느어느 부분이 일치한다든가, 유사하다든가 하고 말하기는 어렵다.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감정에 휩싸인다.하루키의 소설이 그렇다.딱 꼬집어 재밌다고 말할만한 부분이 없음에도 계속 읽게된다.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가 허전한 부분을 책이 메워준다는 생각이든다.폴 오스터의 책이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하루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보기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폴 오스터의 책을 읽으면 미국의 하루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어느 부분이 일치한다든가, 유사하다든가 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런 감정에 휩싸인다.


하루키의 소설이 그렇다.


딱 꼬집어 재밌다고 말할만한 부분이 없음에도 계속 읽게된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어딘가 허전한 부분을 책이 메워준다는 생각이든다.


폴 오스터의 책이 그렇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딱히 재밌는건 없다.


재미야 추리소설이 재밌고, 스릴러가 재밌다.


그냥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실물도 아닌 가상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특별할것도 없다.


심지어 나와 비슷한 부분도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보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부분에서 폴 오스터는 미국의 하루키 같다는 생각이 든다.

YES마니아 : 로얄 i***n 2017.07.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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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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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위기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그런 위기를 계기로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하게 된다." 는 작가의 한 마디에 실린 글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마다 어떠한 문제들을 안게 되기도 하고,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갖게 되는 상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한다.   [선셋 파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기를 저마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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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위기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그런 위기를 계기로 자신을 정확하게 판단하게 된다." 는 작가의 한 마디에 실린 글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마다 어떠한 문제들을 안게 되기도 하고, 그러한 문제들로 인해 갖게 되는 상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도 한다.

 

[선셋 파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기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하고 그 속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청소년 시절 형제끼리의 말다툼으로 우연찮게 형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 주인공 마일스, 결국 형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된다.

7년 간의 방랑에서 마일스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극도의 절제된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우연히 마주친 여고생 필라를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과 놓아버렸다고 생각했던 끈을 잡아간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친구 빙의 초대로 우연히 뉴욕 폐가 선셋 파크의 집에 마일스를 포함해 다를 것 같지만, 각자의 고통과 삶에 대한 상실을 안고 있는 4명의 젊은 남.녀가 한 데 모여 살게 된다.

경제 불황이라는 터널 속에 많은 사람들의 허우적거림에 이들 젊은 이들도 예외는 되지 못했다.

비록 폐가라서 언제 쫓겨 날지 모를 불안함의 시간들 속에 있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부딪치고 아파하고 그러면서 작가가 말한 자신을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얻어간다.

작가는 마일스가 부모님과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닫아 버렸던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고, 서로의 고통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또다른 사건으로 마일스가 이 세상에 대한 문을 닫아 버리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하지만, 마일스는 예전 형의 죽음에서 보여 주었던 행동과는 다르게 보다 성숙된 한 개인으로서 이번의 위기를 피하지 않을 수 있음도 시사한다.

이 책은  삶에서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 피하는 것만 답은 아니며, 때로는 피하고 싶고 눈을 감고 싶지만, 정면으로 맞서서 극복하는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아픔이고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표현 방법이나 전개 방식에 있어서 다소 환상적인 느낌을 갖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번 [선셋 파크]는 그런 지금까지의 내 느낌보다는 좀 더 현실에서 직면할 수 있는 문제들을 더욱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편안하게 표현해 줘서 읽기 좋았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게 읽고 지나가 버릴 수 있는 게 아닌, 폴 오스터의 뛰어난 문체로 그 또한 뛰어 넘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난 또 어떠한 생각과 행동으로 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난 그러한 일들을 통해 나를 좀 더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도 자문해 본다. 정답은 없지만, 삶은 한~~ 없이 어렵다.

 

 

m******9 2013.04.15.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