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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뒤돌아 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키에르 케고르- 점심식사 후에 산책을 즐긴다. 걷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혼자서의 그 걸음은 사색을 동반할 수 있어 좋다. 때로는 무심함이 함께하기도 한다. 매일 반복되는 분주한 일상의 중간마디에 허락된 선물 같은 시간이다. 주로 찾는 곳이 인사동과 운현궁, 삼청동 길이다. 서울 중심에 위치한 사무실로 인해 자연 속의 한적함을 즐길 수는 없지만, 인사동은 옛것과 새것이 어울러진데서 오는 경이로움과 수많은 갤러리를 순회하며 접하는 예술작품이 주는 감성의 새로움이 좋다. 더불어 오가는 관광객들이 미지의 세상과 접하면서 연출하는 그들의 경쾌한 표정과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반갑다. 운현궁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자연의 싱그러움과 넉넉함, 그 속에 담긴 역사의 뒤안길을 내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물 하나하나 돌담의 돌 하나하나가 역사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속에 담겨진 지나간 왕가의 감추어진 이야기와 권력과 세월의 무상함을 듣는다. 삼청동 길과 북촌 길은 골목마다 마주하는 옛것이 주는 아릿한 향수가 정겹다. 간혹 무심코 들어간 골목길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발견되는 새로운 풍경은 마치 어릴 적 소풍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았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그럴 땐 그 조그만 풍경에 넋을 빼앗겨 한참을 머뭇거리기도 하고, 이름 없는 조그만 가계의 아기자기한 소품에 정신을 팔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도 때 이른 성하의 계절이 선사하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는 장애에 부딪친다. 그럴 땐 눈부신 햇살을 피해 찾는 곳이 교보문고이다. 새로이 출간된 신간을 살펴보는 재미와 이런저런 분야의 책들과 눈을 마주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대책 없이 찾아오는 지름신의 강림에는 속수무책이지만 말이다. 공부하고 책 읽는 것을 복이라 말하고, 남을 도울 힘이 있는 것을 복이라 한다. 학문하여 저술이 있는 것을 복이라 하고, 시비 소리가 귀에 들리는 일이 없는 것을 복이라 하며, 아는 것 많고 바르면서도 진실한 친구가 있는 것을 복이라 한다.(장조. 주석수.《내가 사랑하는 삶》, 33쪽) 뜨거운 햇살을 피해 어느날 산책길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만나 지름신의 강림을 받은 책이 장석주 시인의『마흔의 서재』이다. 개인적으론 요즘 책 제목으로 많이 사용되는 ‘마흔으로’ 시작되는 책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저 숫자에 불과한 나이로 독자를 한정하는 그런류의 책에 대한 묘한 거부감 때문이다. 어쩌면 그 마흔의 나이를 넘긴 자가 가진 젊음에 대한 질투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고, 평소 싫어하는 책 제목이었지만 공허함속에 깊이가 느껴지는 책 표지 디자인에 이끌려 무심코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집어 들면서 단지 책을 좋아하는 어떤 독서가의 기록일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별 기대를 갖지 않고 넘긴 첫 장에서부터 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 매력에 빠져들었다. 아니 책에 빠져든게 아니라 장석주 시인의 문체에 빠져들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작가의 그 끝없는 사색의 깊이가 가진 내공에 짓눌려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어느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뿐만 아니라, 시절도, 책과의 만남도, 세상사 모든 것이 인연이라고 했는데 우연히 마주한 장석주 시인의 『마흔의 서재』또한 이런 인연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일반적인 일상에서는 나와 인연을 맺을 어떠한 마주침도 없을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장석주 시인, 그가 시인이었고, 3만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으며, 한때 잘나가는 출판사의 대표였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지금도 일 년에 천권이상의 책을 구입하며,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과 더불어 알아주는 지독遲讀(천천히 책을 읽기)가이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한권씩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으며 수시로 노자와 장자를 읽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에게 진정 부러운 것은 그가 가진 자연속의 주택도, 3만권의 장서도 아니었다. 그의 사색의 깊이였다. 매일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사색을 위한 산책을 하는 그의 단순한 일상과 끝없는 사색이었다. 이 책 『마흔의 서재』는 그 사색의 산물이다. 시를 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내밀함과 농축미, 마치 오래 도를 닦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우친 선승의 가르침 같은 그의 문장은 구절구절이 마치 보석처럼 빛났다. 그의 글이 주는 이런 느낌은 그가 즐겨 읽는다는 노자와 장자의 영향을 지극히 받은 때문일 듯하다. 대부분의 독서가가 책에 대해 서술한 책이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에 반해 『마흔의 서재』는 사색의 소재를 통해 그 사색의 편린을 이끌어내기 위해 책을 인용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독서력과 어느 정도의 사색을 동반하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그의 책이 주는 문장의 내밀함과 깊이는 존경을 넘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사색이란 마음. 의식. 생각의 작동이다.(177쪽)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주위에서 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 왜 그리 열심히 책을 보냐고?” 그들에게 난 “그냥” 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심오한 철학적인 깊이를 가진 답을 그들에게 하더라도 책을 보는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는 한, 그 어떤 대답도 의미가 없을테니까. 하지만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왜 책을 보냐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 나를 알기위해서, 그래야 행복하니까” 이다. 이게 나의 답이고 지금도 책을 보는 이유이다. 이 책 『마흔의 서재』엔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왜 사색을 동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책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사색을 통해 그 질문에 답을 찾는다. 그리고 그 답을 여기 서술했다. 그것은 그냥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가 책을 만나서 얻은 사유의 조각들이 그의 사색을 통해 숙성되어, 그만의 글맛을 품어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기에 기록된 문구들은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지혜의 산물이다. 삶의 깨달음이다. 도를 닦는다고 반드시 깊은 산속에 들어가 면벽을 하고 고행을 해야만 세상과 우주의 이치가 깨우쳐지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걸 사색이라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서도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 책이란 이렇듯 위대한 산물이다. 지식을 향한 탐구의 수단이고, 지혜의 샘물인 것이다. 그것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이다. 사색을 동반하지 않은 책읽기는 자기 위안을 위한 지식의 촉구 욕망을 해결하는 자위행위일 뿐이다. 사람과 동물을 가로지르는 경계는 ‘생각함’이다. 사람은 생각을 하며 살고, 동물은 자기 성찰 없이 오로지 본능의 지시대로 산다. 사람의 생각함은 기억과 감각, 그리고 모든 운동을 관장하는 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율동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다. 생각함이란 사람이 사람이라는 강력한 징표이다.(173쪽) 책은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마주하기 어려운 이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전수받는 것,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작가는 인문학적인 책읽기가 왜 삶을 변화시켜주는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제시해준다. 이 책의 말미에 그에게 사유의 씨앗을 제공해준 책들이 정리되어 있다. 대부분이 인문학 서적들이다. 한권의 책을 만나서 그 책에 올곧이 기록되어 있는 작가의 생각과 마주할 때 우리 그 책 한권만큼 다른 사람으로 성숙한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책이 바로 ‘나’이고,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내일의 ‘나’이다. 우리가 만나는 책이 남은 인생의 우리의 길이 된다. 그 길은 우리의 선인들이 걸어온 길이고, 내가 마주한 책이 나에게 제시해주는 길이다. 그리곤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지, 그리고 행복한지를. 둘러보면 행복은 어디에나 널려 있다. 욕망에 가려져 그것을 찾지 못할 뿐이다(50쪽) 아니다 행복은 살그머니 왔다가 살그머니 사라진다 행복한 순간들은 놓치는 사람들이 정작 걱정거리들은 어디로 도망갈까 두려운 듯 꽉 움켜진다. 요컨대 행복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51쪽)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점심식사 후 산책에 나선다. 물론 시골이나 자연속의 한적함은 아니지만 머릿속에 사색을 위한 씨앗문장 하나를 뿌리고선 산책에 나선다. 햇볕이 따사롭다. 바쁠 것도 없다. 번잡한 도심의 담장 밑에 오롯이 자리 잡은 여린 풀잎에도 눈길을 줘보고, 화단에 잘 가꾸어진 꽃들의 화사함에도 마음을 빼앗겨본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깃들인 표정도 눈가로 쳐다보고, 앞에서 다가오는 여인네의 걸음걸이에도 시선을 나눠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경이로움이고 신비로움이다. 세상의 분주함과 어울려 나 혼자 휘적휘적 걷기도 하고, 뒷짐 지고 세상과 동떨어진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객기다. 세상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 마음속이 한가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여유롭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모든 번뇌도 모든 고통도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닌가. 오늘 산책길의 동행자인 씨앗문장은 내게 어떤 지혜를 전해줄까? 급할 것 없다. 오늘 싹이 나지 않으면 내일 또 같이 하면 될 것이니. 원래 숙성은 오랜 시간을 걸칠수록 제 맛이 우러나오는 법이니까. 간절하게 갈망할 것, 자유로울 것, 사람을 사랑하며 살 것!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첫 번째 날이다. 오늘을 뜨겁게 끌어안으라!(3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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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했지만 현대인에게 마흔은 미혹(迷惑)이다. 어느덧 인생의 오후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변변하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 앞을 내다봐도 불안한 미래가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아이들 키우느라 노후대비는 커녕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용히 침잠의 시간을 한번 갖은 기억도 별로 나지 않는다. 그 누구나 당황하는 자신을 만나게 되는 시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흔은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장석주 시인에게도 이런 시기가 찾아왔다. 스무살에 시인이 된 저자는 스물여섯에 독립해 출판사를 세웠다. 서른 두 살에 베스트셀러를 내고 청담동에 작은 빌딩을 사들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보지 않는 길을 서성이게 된다. 드디어 서울 살림을 접고 시골로 이사한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텃밭에는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와 앵두나무를 심고, 뜰에는 모란과 작약과 영산홍을 심었다. 어느덧 열세번의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 마음공부 삼아 노자와 장자를 열심히 읽었다.
저자처럼 선수를 쳐서 행복을 앞질러 나아감으로써 행복을 찾는 일은 대부분의 현대인에게는 남의 이야기이다. 친구들과 술 한잔 걸칠 때 세상불평과 함께 펼치는 넋두리일 뿐이다. 다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 농사나 짓겠다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방안을 찾아보지 않았기에 꿈이라기 보다는 가망성 제로인 백일몽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인생 마흔이라는 시기는 결코 늦지 않았다. 초조해 하지 말자. 삶은 계속되고 아직 꿈꿀 시간은 많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수고한 마음을 도닥거리고 어루만지며 남은 오후의 시간을 무엇하고 보낼 것인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해야 할 때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오후는 길고 충만하다.
삶의 갈림길인 마흔에 있어 함께 가야 할 것이 바로 책이다. 그래서 마흔에게는 서재가 필요하다. 시간의 갈림길에서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등산보다는 앞길도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건너는 것을 닮았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나침반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이 바로 마흔에게 인생의 앞날을 비출 등불이요, 나침반이다. 저자는 3만권에 달하는 장서로 가득한 서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매일 한권의 책을 읽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연과 그리고 책과 함께 하는 저자의 인생 오후는 어쩌면 고독하다. 하지만 행복하다. 책속에서 찾는 꿈이 있어 매일매일이 다르게 다가온다. 깊어진 사유와 책의 말과 꿈들이 모여 넉넉한 하루를 만든다. 넓어지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깊어지는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걸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저자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든 걸 버려야 새로 채울 수 있는 법인데, 나는 지금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는가 보다. 지금으로선 저자의 삶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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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책으로 혁명하라/책에서 일생의 멘토를 만나라 중>
♣ 책 속 글:page 131~132 나는 날마다 한 권의 책 읽기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떻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나요? 책과 친해지고,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에 몰입한다. 몸과 마음이 이완하고 책에 흠뻑 빠져든다. 몰입을 통해서 책과 하나가 되면 마치 무릉도원에 든 듯 행복해진다. 둘째, 책 읽는 즐거움 그 자체에 빠져든다. 책 읽기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다면 그걸 지속하기 어렵다. 셋째,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들을 꼼곰하게 고르고 그것들을 사들인다. 책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미 책 읽기는 시작된다. 넷째, 읽은 책들을 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억하는 것이 불가결한 것도 아니다. 기억은 상상력을 한정하지만, 망각은 무한상상력의 텃밭을 일구는 쟁기이다. 망각은 풍요화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다. 다섯째,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찾아 읽으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 책을 덮으며 매일 30분이상 독서를 하려고 마음 먹지만 100%중 약 60%정도 실천하고 40%는 시간과 일에게 핑계를 되어본다.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yes 24 독서습관에 자꾸 참여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책 모으기 특기를 발휘하며 욕심껏 사들기고 모아두지만 정작 못 읽고 안 읽은 책들이 더 많다. 이 책에 소개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지식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도쿄제국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3년 만에 짐을 싸들고 나왔단다.그 이유는 단 하나."점점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읽어치우지 못하게 되었다(중략) 읽고 싶은데 읽지는 못하는 책들이 책장 가득히 꽂혀 있는 것을 매일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은 심한 고통이었다." 그러니까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지 못나는 환경에 대한 불만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것이다.(p127) 다른 욕심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유독 욕심내는 것이 있다면 책이다. 다 읽지고 보지도 못하는 책을 왜 그리 사들일까? 일단은 호기심 때문인것 같다. 저가가 궁금하고 책 내용이 궁금하고 저자는 어떤 시선으로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바라봤을까?. 저적 호기심 그것이 발동하면 장바구니에 읽고 싶은 책들을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그렇게 또 담아둔다.이 습관은 20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부터이다. 월급날이 되면 한 달 동안 수고한 나에게 책으로 보상하고 선물을 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습관 아닌 습관처럼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재미없는 책이든 재미있는 책이든 잘 버리지 못하고 아직까지 다른 사람주는 것도 아까워 한다. 아직 다 채우지 못한 것이 많아서 인지 도통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쌓여 있는 책을 보면 부자가 된듯하고 일단 기분이 좋다. 먹을 것을 저장해 둔 개미처럼. 그 중 저와 맞는 책을 만나면 더 없이 행복하고 책 읽는 내내 즐겁다. 그렇게 난 책에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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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란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이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간다" 책을 그다지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나의 느낌을 텍스트로 표현했을 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지금보다 나은 나의 모습에 대한 동경이 누구보다 강한 나는 어쩌면 책읽기가 최고의 놀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장석주의 "마흔의 서재"는 나이 마흔이 될쯤엔 가져야 할 지적인 공간으로 자신만의 서재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어느 시골 호숫가에 마련한 자신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살며 삽살개와 산책하며 지낸다. 3만여권의 도서를 소장한 자신만의 서재를 가지고 매년 1000여권의 책을 산다는 그는 독서를 통해 지적 능력을 신장시키고 지적생산을 하고 있으며 독서를 장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 말한 "삶은 계속되고 아직 꿈꿀 시간은 많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내 나이 마흔이 되고 이태가 지나는 요즘, 꿈이 아닌 후회가 내 머리속에서 또아리를 틀며 살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늙음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후회가 꿈의 자리를 대신할 때 생기는 것이리라. 꿈꾸는 자의 이름은 소년이라 했던가 미키 키요시의 '어느 철학자가 보낸 편지'에서 여행의 즐거움은 '낯익은 것을 새롭게 보기'에서 생긴다고 한다. 불과 6개월전까지만해도 나는 도대체 여행이란 것을 사람들은 왜 가고 싶은지, 왜 가는지 이유를 몰랐던 사람이다. 몸고생, 마음고생하며 게다가 자기 돈을 써가면서까지 말이다 만사 귀찮고 집에만 있고 싶었던 내가 여행의 참맛을 깨닫게 되었는데 텍스트로 풀어보면 바로 "낯익은 것의 새롭게 보기"이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론 아내의 여행가자는 말을 마음깊은 곳에서 기다리기까지 한다 공자가 말하기로 나이 마흔에 불혹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는데 현시대의 우리는 나이 마흔이라도 소년,소녀에 불과하다. 저자는 그 이유로 흔들리지 않는 지혜의 부족이 원인이며 지혜를 채우기 위해서는 독서와 그를 통한 깨달음이라고 한다. 또한 권석천 기자는 개인적 자아만 발달하고 사회적 자아는 증발한 탓이라고 한다.그래서 자기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도처에서 활보하는데 이 또한 독서만이 해법인것 같다. "책이라는 것은 이상한 물건인 듯하다. 꼭 사야할 필수품은 아니지만 사지 않으면 안되는 지적 재산이기 때문이다". 마흔의 서재에 나오는 책들도 섭렵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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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마흔'과 '서재'로 이루어진 한 채의 '소슬한 집'이다." ( 책의 서문 중에서)
![]() 인생에 있어서의 한 고비라고 할 수 있는 나이인 '스물', '서른', '마흔', '쉰' .... 등은 그 나이마다 가지는 큰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나이대가 책제목으로 많이 등장한다. '마흔'은 요즘 백세 시대라고 하기는 하나, 나이에 있어서의 정점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삶의 이정표에서 절반쯤에 해당하는 나이. 그래서 마흔을 불혹(不惑), 즉 미혹이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흔들림이 없다는 뜻인데, 이 나이에 도달하면 세상의 이치를 꿰고 삶의 근본에 대한 통찰이 깊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생의 1막은 끝나고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가정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직장에서도 중간쯤의 위치에 도달했을테니, 마흔이 되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재정립을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하루로 치면 오후가 시작되고, 계절로는 가을이 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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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장석주는 젊은 날의 방황 속에 시립도서관에서 손에 닿는대로 책을 읽어 나가던 시절도 있었고, 스무살에는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이십 대 후반에는 이미 출판사를 창업하여 성공가도를 걸었고, 삼십 대 초반에는 큰 집과 3천 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재를 가지기도 했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 출판기획자, 방송진행자, 대학교수, 북 칼럼니스트 등 책과 관련된 일을 일관되게 해 오던 그가 어느날 홀연히 자연을 벗삼아 살기로 하고 서울을 떠나 시골에 정착하게 된다. 지금 그곳에는 약 3만 권이 넘는 책들이 있는 서재가 있으니, 저자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현재의 나를 단속하며 내일의 나를 앞당겨 보게 하는, 책. 책이 편안한 친구이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워낙 독서가로 잘 알려진 저자이기에 그가 '마흔의 서재'에 어떤 책들을 올려 놓았고, 그 책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 낼 것인지 궁금했다. 역시 이 책 속에는 장르가 다양한 책들이 약 90여 권이 올려져 있다. 항상 책을 끼고 산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 중의 몇 권 밖에 읽지를 못했으니 저자가 그 책 속의 문장들을 소개해 줄 때마다 관심있게 책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시인의 서재, 시인의 독서 편력기는 책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말해 준다. 자연과 벗삼아 사유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저자의 삶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그가 가진 3만 권의 장서는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노자, 장자를 비롯한 고전들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에게 지금의 삶을 살도록 부채질한 장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에게 행복은 한때 잘나가는 출판사의 성공에서 누렸던 것들이 아닌 아주 사소함에서 오는 것이다. 햇빛 한 줄기, 메아리, 솔 숲의 향기, 물의 반짝임.... 행복이 그에게 이런 것이라면, 그의 생활도 역시 가장 적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하게 살아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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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는 '최적의 지적 공간'이다. 꼭 정독해야만 할 책이라면 도서관이나 남에게 빌려 읽지 말고 반드시 사라. 책을 한 권 한 권 사모아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어라. " (p. 112)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영혼의 품격과 깊이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쯤에서 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둘러 본다. 저자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책들. 저자는 1년에 약 1.000 권의 책을 구입한다고 하니, 그의 삶은 책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것이리라.
" 책들의 대양에서 내가 읽은 책들이라고 해 봤자 티스푼 하나 정도나 될 것인가!" (p. 126) 그렇다면 나는 그 많은 책 중에서 얼마만큼의 책을 읽었을까? 티끌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마흔의 서재>를 읽으면서 책 속의 또다른 책 90권의 한 부분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책읽기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책과 함께 있기에 즐겁고 행복할 수 있었던 나를 되돌아 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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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멈추어 읽는 책이 남은 인생의 길이 된다 ..
이말을 읽으면서 내 남은 인생의 길도 책속에 제시되어 있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게 과연 편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 중에 눈에 띈 장석주 시인의 마흔의 서재는 내가 오랫동안 해온 책읽기에 새로움과 시인은 마흔의 나이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싶었다 책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그사람의 서재에는 무슨 책들이 있는지 무척 궁금해한다
책속에는 작가가 읽어왔던 책들과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부합하는 여러 책들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담겨져 있다 작가는 많은 것을 읽었고 배워서 아는게 많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인생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아는 것보단 모르는게 더 많았다고 말한다
작가는 많은 것을 읽었고 배워서 아는게 많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인생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아는 것보단 모르는게 더 많았다고 말한다 2만여권의 책들에 둘러싸여 하루 세끼 따뜻한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하루가 왠지 부럽기도 하고 마흔의 서재 한권으로 작가가 쌓아온 내면을 오롯이 받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2만여권의 책들에 둘러싸여 하루 세끼 따뜻한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작가의 하루가 왠지 부럽기도 하고 마흔의 서재 한권으로 작가가 쌓아온 내면을 오롯이 받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책이란 참 고마운 존재구나 싶다
책을 한권씩 읽을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작가는 말하며 마흔에 잠시 쉬어가며 남은 인생은 책속에서 이정표를 찾으라고 알려준다. 책속 가득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책들이 건네주는 의미와 내 마음 가득히 새겨야 할 말들이 너무 많아서 읽으면서 내내 행복함을 느낀다. 이런 책은 조금씩 되새김질을 해가며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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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게 서른은 얼마나 거창하게 찾아왔던가. 스물아홉의 파릇한 밤들을 뒤척이며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른을 마중 나간다. 그래서 그때는 서른이 얄궂지만 맞이할 만한 손님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서른과 쉽게 악수했다. 돈 버느라 바빴고 번 돈으로 결혼하느라 바빴고 애 키우려고 또 돈 버느라 바빴다고, 내 안에 무언가를 채울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노라고 변명해본들 어쩌랴. 이미 인생 반은 이렇게 와버린 것을.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 반을 어떤 길로 갈 것인가이다. 물론 답은 애당초 없다. 이 나이쯤 되니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어쩐지 쉽지 않다. 그럴 때 내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우울한가? 따분한가? 자기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때마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 책으로 달려간다. 책 읽기는 인생의 슬픈 터널을 지나서 의식의 고양이라는 신세계로 가는 길이다. 이 가을 아침에 가슴이 뛰는 것은 내가 책 속에서 사는 까닭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은 모든 책들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책으로 혁명하라> 中 서른이 별 거 아니었듯, 마흔도 별 거 아니다. 조금 더 늙은 소년소녀들로 마흔에 당도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자위하기에는, 내 속의 빈 공간이 조금 부끄럽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들을 꾸기 위한 영양제로 책을 수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책에는 두 세 개의 편지글이 나오는데, 그 중 한 편지에서 나는 겁 없이 꿈꾸라는 다독임을 받았다. 나는 삼백 가지의 꿈을 꾸고, 이백아흔아홉 개는 버렸습니다. 끝내 이루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데 나를 만든 건 바로 기어코 이룬 한 개의 꿈이 아니라 그 이백아흔아홉 개의 덧없이 버려진 꿈이었지요. “자신이 쓰지 않은 작품 속 주인공처럼 사는 법을 배우라.”(에픽테토스)고 하는데, 잘 산다는 것은 뭐, 그런 걸까요? 삶을 만드는 건 우리가 걸어온 길이겠지만, 정작 우리 마음을 끌고 가는 건 가보지 못한 그 수많은 길들 아니던가요? -<뜨겁게 편지를 써라> 中 홀로 있는 시간은 점점 많아지지만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은 또 잘 허락되지 않는 삶. 그런 마흔들에게는 서재가 필요하다. 거울처럼 자신을 들여다보고, 고독을 기꺼이 마주하고, 편지를 쓰고, 펼친 책 위에서 눈 뜬 채 꿈을 꾸기 위해. 인생의 반을 살아오면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깨달음들을 몸속에 알알이 박아두기 위해. 남은 인생 다시 힘차게 걸어 나갈 때 길마다 외롭지 않기 위해.
어느 날에는 견딜 수가 없어서 벽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통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처한 고독의 형벌은 역설적으로 삶을 고요한 내적 평형으로 이끌었고 영묘한 축복이 되어 돌아왔다. 가장 가난한 시절은 인생 최고의 호시절이 되었다. -<사색 속에 자신을 유배하라> 中 시인도 저렇게 외로웠나보다. 견딜 수 없어 그 많은 책들을 삼켰나보다. 그리고 이제껏 올곧게 잘, 마흔의 길들을 걸어 왔나보다. 마지막에 저자는 매일 아침마다 서재 앞에 서라고 말한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만지듯, 서재 앞에서 오늘 인생길의 이정표를 뽑아 길을 떠나라고, 날마다 ‘희망’이 ‘아침’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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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마흔에 다시 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아직 마흔은 아니다. 이제 서른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가끔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넘겨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만큼 바뀌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특히 반가웠던 건 차라투스트라에 관한 내용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뼈가 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던 청춘의 기억을 다시 불러본다. 절망을 입에 달고 다녔던 그 시절에 책 읽기는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은 짐을 내놓는 출구 같은 것이었다. 그때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철학으로 읽지 못했다. 아니 그걸로 무얼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벅찬 일이었다. 다만 삶을 단번에 꿰뚫어 통찰하는 자만이 할 수 있을 법한 날카로운 시어들이 와서 의지를 불태우고 간 건 아니었나 싶다. 오랫만에 다시 이 책으로 다시 차라투스트라를 만나게 되었다. 도저한 절망에서도 '긍정이라는 축복'을 길어낼 수 있었던 그 힘으로 지금 다시 나태한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경우다. 작가의 말대로 차라투스트라의 어조를 닮은 글이 마음을 후빈다.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예언자'은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번민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우리 방랑자들은, 항상 보다 외로운 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은, 하루를 끝냈던 그 자리에서 다음날을 시작하진 않는 것을. 그러므로 어떤 새벽도 황혼이 우리를 이별했던 그곳에서 우리를 찾아내지는 못함을.” <고별에 대하여>
언제고 시간 나면 읽어보리라 했던 책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뽑아낸 책들의 정수들을 읽으며 '내 마흔의 서재'를 꾸밀 상상을 해본다. 다시 책이 삶을 이끌어줄 때가 온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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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 저자 : 장석주 출판사 : 한빛비즈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마흔, 도대체 마흔이 오기는 오는 거야? 했던 내게도 이제는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나이다. 공자님은 나이 마흔에 불혹(不惑)을 깨우치셨다는데 아직도 나는 온갖 유혹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럭 저럭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하다. 아니 평범하다고 하면 나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래도 지금껏 열심히 살았고 안정된 가정도 있으며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으니… 이맘때쯤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한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평온한 바다와 같이 고요해 보이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공존하는 혼돈의 시기이기도 한 까닭이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반환점에서 문득 뒤를 돌아본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의 기회. 그 중에 나에게 선택 받은 것들로 인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반대로 나에게 선택 받지 못했던 것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의 끝에 결국 몇 가지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후회일 뿐 결코 그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장석주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고 말이다. 책과 책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향연 이 책을 받아 들고 책의 띠지에 장석주 시인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에 제일먼저 눈이 갔다. <마흔에 멈추어 읽는 책이 남은 인생의 길이 된다> 이문장만 4~5번을 되내어 보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더욱 내 마음속 울림과 공명을 하는 느낌이다. 저자인 장석주 시인의 글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했었다. 저자는 다독가이자 애서(愛書)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한적한 시골집 <수졸재>에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힘은 역시 독서를 통한 사유에 있다는 것을 그가 소장한 책이 3만여권이나 된다는 사실에서도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의 인문학적 통찰의 밑바탕에는 이런 배경이 숨겨져 있다. 그럼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는 저자의 오랜 사유에서 쏟아내는 통찰력 있는 글들이 그 글의 밑바탕이 되는 책들과 어우러져 마치 한국의 전통음식 비빔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온갖 나물과 밥 그리고 고추장과 참기름이 한데 섞여 만들어내는 맛의 향연. 이 책을 읽으면서 글과 글, 책과 책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향연은 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것인가 하는 책에 대한 예찬을 쏟아낸다. 저자가 책 속에서 소개한 책들을 헤아려 보니 정확히 85권이 된다. 이 책들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나는 각 장의 주제를 통해 어렴풋이 유추해 본다. 그 메시지를 여기에 옮겨 본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한 페이지 마흔은 인생의 오후, 빛은 따뜻하고 그림자 길어져, 걸음을 느리게 잡아당기면 곧 펼쳐질 금빛 석양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어가도 좋은 시간. 아침부터 수고한 마음을 도닥거리고 어루만지며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하라. 그런 이에게 오후는 길고, 충만하다 삶의 갈림길 마다 책이 있다 하루를 끝내고 수고로운 발을 씻은 후 낮은 책상머리에 앉은 저물녘. 시간의 갈림길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다름 무엇 아닌 책, 책이다. 책이 있어서 마흔의 긴 밤은 두렵지 않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현재의 나를 단속하며 내일의 나를 앞당겨 보게 하는 책. 책이 편안한 친구이다. 이전과는 다른 생이 기다린다 책을 덮고서 자리에 누우니 오롯이 한 평, 고독하고도 행복하다. 제 아무리 욕심껏 산들 돌아갈 때는 넓어도 한 평이라 했던가. 이 한 평에서 매일 꾸는 꿈. 그것이 있어 매일을 다르게 살 수 있고 다른 내일을 상상할 수 있다. 마음 꾹 다지고 잠들어 한 번 뒤척이면, 내일 아침, 또 다른 생이 기다리리. 넓어지지 말고, 깊어지는 삶을 매일 한 줌의 희망이 아침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다. 소탈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라. 이 하루가 쌓여 마흔의 남은 인생 절반의 길이 되기를. 오후부터 깊어진 사유와, 책의 말과, 꿈들이 모여 이 넉넉한 하루를 빚어낼 것이다. 다시 몸이 풀린다. 다시 제대로 살 시간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꼭 마흔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 나이 즈음이 되면 대부분은 지나간 시간과 현재, 그리고 다가올 내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하는 것 같다. 저자는 그 답을 책에서 찾고자 했다. 책을 읽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책을 통해 사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랑, 행복과 같은 삶의 의미가 되는 단어들의 주변만 기웃거리던 데서 벗어나 그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진정한 본인만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크게 공감한다. 최근 책의 편식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한 책 읽기에 집중한다는 의미일 텐데 저자가 소개해 주는 책들을 통해 현 시점에서 숨 고르기를 하며 내 안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봄이 좋을 듯 하다. 행복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고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 p48 노래하는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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