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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지난다] 오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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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지난다 이다. 흰 바탕의 얇은 두께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아서(혹은 만만해서) 골랐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가지고 다니며 읽을 만큼 휴대성이 좋고,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책과의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가볍게 책 표지를 넘기고, 한 장, 두 장, 세 장을 넘기니 난데없이 차례의 목록들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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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지난다 이다. 흰 바탕의 얇은 두께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아서(혹은 만만해서) 골랐을지도 모른다. 가볍게 가지고 다니며 읽을 만큼 휴대성이 좋고,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책과의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어서 읽어보고 싶었다.

가볍게 책 표지를 넘기고, 한 장, 두 장, 세 장을 넘기니 난데없이 차례의 목록들이 길게 펼쳐졌다. 이 책이 시집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안 것이다. ‘나쁜 꿈’, ‘고양이집’, ‘세계등 어떤 내용일지 궁금증을 만들어내는 부제목들이 얼른 시를 읽어줘하고 이끄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한 번 읽고 나서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시집 그 어떤 것보다도 시 표현이 간결하고 저자의 내면적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시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자가 추구하는 시의 문체와 내면세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기에 그로써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시들을 내 생각과 함께 적어보려고 한다. 순서는 시집에 나온 읽는 순서대로이다.

잘 들어요병원 진료 후 받는 처방전처럼 저자가 내게 해주는 세상살이 충고처럼 느껴진 시이다. 어쩌면 너무 세상에 현실적이고 예민하고 경계심을 가득 안은 채 살아가는 나에게 시에서 나온 충고들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시를 읽고 놀란 이유는 듣지 않을 거죠?’라고 한 번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구절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충고들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 그토록 엉망이라는 건 아니라는 것, 결국 나한테는 변명처럼 들린다는 것을 책 너머 저자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들킨 듯한 기분이 묘한 만족감을 준다.

바람 없는 날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꼭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 법한 일들이 하나씩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내가 중앙도서관에서 처음 대출 기계를 사용할 때, 사용법을 전혀 모르고 긴장한 채로 하다 보니까 뒷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대출을 하지 못했었다. 결국 뒤에 있던 분께 먼저 순서를 양보했지만, 그전까지 그 사람이 냈던 한숨과 무서운 눈빛은 내가 감당하기 너무 어려웠었다. 감사하게도 자신의 책을 다 빌리고 옆 소파에 앉아있던 나에게 사용법을 알려주었지만, ‘그렇게까지 무섭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도서관 와서 책을 빌리는 것 자체가 오늘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나?’처럼 크고 큰 생각 풍선으로 이어졌다. 시를 읽으며 일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있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들이 떠올려지면서, ‘바람 없는 날 빈 나뭇가지들만큼이나 쓸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동선이 시는 내 생활을 대표해주는 시와 같다고 느꼈다. 무슨 일이든 잘 끝내고 다음 일을 처리하면 좋을 텐데, 꼭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곳곳에 실패가 밟힌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한 번씩 실패나 어려움을 만나야 일이 완전히 끝나는 불행함을 여러 번 겪어보았다. 결국에는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걸로 마무리. 그래서 시의 마지막 구절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나를 용서해야 하는데.’

유감이 시를 읽고 떠올려지는 친구 하나가 있다. 온갖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불행함을 남을 깎아내리는 무기로 삼지만, 그런 무기는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친구. 1년 동안 이 친구와 함께 다니며, 나는 사람을 분석하는 말도 안 되게 못된 버릇이 생겨버렸다. 꼭 누가 누가 더 불행한가, 내기를 하는 것처럼, 또 누가 다른 친구들에게 호감을 받나 경기하는 것처럼 매일 그렇게 보냈다.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몸과 마음이 피곤한 일도 많이 있었다. ‘결국은 누가 웃게 될까?’ 궁금하지만 굳이 그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지는 않고, ‘적으로 우선 친구를 쓰는 / 불행을 필요로 하는 / 일시의 어리석음을 영구화하는이라는 구절에서 그 친구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많이 원망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그럴 수 없었지만, 지금은 본인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영구화하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쓸쓸한 일이 시집에서 읽은 시 중 가장 솔직담백하게 나를 위로해준 시이다. 타지에서 건너와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 쓸쓸함이어서 그런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이런 감정을 한 번 느꼈던 것 같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사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었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몇 달 사이에 많이 변모되어 있었다. 오글거리고, 화가 날 정도로. ‘좋은 사람들 알아가지만 / 좋았던 사람들 놓게 되는실제로 대학에 와서 정말 더 알아가고 싶은 많은 친구와 선배들을 만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쭉 선생님 복이 있던 나는 교수님들까지도 다 좋으시다. 하지만 내게 좋았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나는 그들을 필요로 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괴로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사람에 관한 관심이 줄어간다. 시의 마지막 부분처럼 기껏 그리워했는데 그럴 게 아니었던 그런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고작 네 줄의 시에 많은 공감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가능한 일이었다.  꿈을 지난다 의 특별한 점이다. 짧고 짧은 시가 입력된 시집을 읽고, 나머지 흰 여백을 바라보며 내 생각으로 채울 시간을 시집이 직접 부여한다. 지구에는 무척 많은 인류가 사는데 기쁨은 그들 스스로 만족하고 느끼는 감정일지 몰라도, 고통이라는 것은 어떻게 어디에 쓰이는 걸까? 우주 세계가 돌아가는 데 사용하는 것도 아닐 텐데, 인간의 고통은 아파도 너무 아프다. 슬픈 사실이다.

그 외에도 가끔>, <수업>, <나이 든 자가 행복하긴 쉽지 않다>, <좌절은 그렇게 온다>, <행정실>, <경멸>, <더 훌륭해져야 한다등 마음에 드는 시가 많이 있었다. 저자가 던져주는 짧은 시와 시가 차지하고 남은 시집의 흰 여백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한 나만의 생각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시집과 함께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읽고 각자 든 생각을 공유하는 일도 즐거울 것 같다.  꿈은 지난다 라는 시집의 제목처럼 흘러가는 구름 같은 일상에 여러 개의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즐거운 시집이다. 조금은 어렵더라도 괜찮다. 흰 여백에 자기 메모를 하듯, 자기 생각으로 채워나갈 여유를 이 시집이 주고 있기 때문이다.

 
b*****8 2022.04.3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