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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화인문학 총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연구원들이 공동저작한 공저 논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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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폭력이 없는 상태'이다. '싸움이나 물리적 폭력은 물론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도 없는 상태'라고 적극적으로 풀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희망과 기대를 반영한 사전적 정의읠 뿐, 인류가 이러한 평화를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작거나 큰 전쟁, 분쟁이 그치지 않고 인류는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경험해 본 평화의 개념과 그 시대, 그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또한 인류는 평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추구해왔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주관 열 한 명의 연구자가 각자의 전공과 관심사에 맞게 쓴 글을 모은 책이 바로 이책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영국, 인도, 중국, 일본, 북한, 이슬람 까지 이들 국가나 지역에서 생각하는 평화는 무엇이었고, 인류는 평화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실천해 왔는지, 역사적 흐름에 따라 그 양상을 정리하고 인식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각국의 평화에 대한 개념과 의식을 정리한 책이다. 정리 후 살펴 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필진은 차례대로 아래와 같다. 이천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혜경 前 대구가톨릭대 강의전담교수 강성우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연구교수 김선 前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 류경희 前 서울대 외래교수 김준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서보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이원삼 선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김광수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 HK교수 로 주로 신진 학자들이 참여했다.
4세기 로마제국의 작가 베게티우스는 로마군의 쇄신을 위해 저술한 <군사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는 이, 전쟁을 준비하게 하라”에서 비롯된 이 말이 금언처럼 되면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문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거의 전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이런 오랜 생각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현실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거나, 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생각에 편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결국 공존과 상생(相生)이자, 인류에게 두루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곳은 없었다. 인류는 힘에 의한 지배를 꿈꾸면서도 그러한 지배와 억압을 넘어서는 이상 상태를 놓치지 않았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주장을 이제는 과거의 것으로 돌리고,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는 새로운 금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1장 이탈리아에서의 평화는 단계별로 보면 다음과 같은 역사를 지닌다. 첫째, 강력한 힘으로 주변 지역과 이민족을 점령한 뒤 큰 위협이나 전쟁없이 지내던 로마는 Pax Romana를 이루면서 번영한다. 둘째는 이 제국이 무너지면서 분열시대에 꿈꿨던 질서 혹은 정의로서의 평화, 셋째는 근대 이후 혼란과 테러, 폭력과 무질서 속에서 꿈꾸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평등성과 인류 공영으로서의 평화를 단순히 힘과 전쟁의 대척점 보다는 시민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그런 부분을 알아보고 있다.
2장의 영국은 브리튼섬에서 유럽의 약소국으로 살아가다가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벌이고, 새로운 질서를 경험한다. 17세기 이후로는 Great Britain을 통해 이른바 힘이 평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퀘이커와 같은 평화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에 영향을 받으며 반전 혹은 물리력에 대한 무저항 개념도 발전되어 왔고 반전 운동 혹은 평화주의적 태도가 힘을 받기도 했다.
3장의 인도의 평화론은 개인적 해탈로서의 평화와 사회적 다르마(질서)로의 평화로 나뉜다. 인도사회 특유의 카스트지배체제와 또 식민지 경험 등을 통해 인도의 평화 개념을 알아본다.
4장 중국의 평화는 유교적인 사상인 화평(和平)을 유교적 사유체제인 대일통 및 대동 사상과 연결지어 논하고 있다. 중국의 고전 <춘추>에서 대일통이라는 표현을 기치로 중국은 한족과 이민족의 국가 교체를 경험하면서 다양성의 통일에 방점을 두고 평화를 이해한다. 명과 청 제국 이후 대동이라는 이상세계를 꿈꾸기도 했고, 유럽 열강의 침략주의도 경험하면서 평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한다.
중국은 특유의 중화민족 우월사상 등이 나라와 민족의 성향 전반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와 평화주의는 양립이 가능할 것일까. 국가와 민족이 존망이 제국주의 열강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들은 모두 민족주의를 장래에 영속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필수과정으로만 보았다. 결코 평화주의와 대립되는 관념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가 거난세라고 인식하고 먼저 자기나라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것을 궁극적인 평화세계 즉 '대소원근야일(大小遠近若一)'의 대동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양자의 양립 그것이야말로 가능한 것이 아닐까. ---p.154
5장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미 순방 보고서를 참조하면서 '대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제국주의가 되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통해 세계 대전에 참여하면서 평화라는 개념을 망각했다. 이후 원폭으로 패배한 후에 패전의 대가로 평화는 반전, 반군국주의, 비핵화로 개념화된다는 사실을 16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4세기만에 깨닫는다.
'종전'은 일본 주류의 속내를 보여주는 언어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용어는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다. 여기에는 천황제에 기초한 일본무류성 같은 정서가 놓여있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미국에 대해서는 종속적이다 싶은 자세를 취하는 데 비해, 자신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가해자 의식이 크지 않다. 전쟁에서 진 것(敗戰)이 아니라, 그저 전쟁이 끝났다(終戰)고 생각하는 일본인의 무의식 안에 전쟁의 원인에 대한 반성, 피해자에 대한 사죄의 마음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평화는 여전히 일본 중심적이다. ---p.195 ~ 196
6장 한국과 7장의 북한이 생각하는 평화 개념은 남북 분단과 연결되어서 통일과 반전, 비폭력, 민주주의의 남한과 통일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힘과 무력이 필요하다는 북한의 대결적인 자위로서의 평화가 분한의 평화론을 집약해서 설명한다. 8장 이슬람에서는 지금도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소극적으로 규정하면 전쟁의 위협과 공포, 압제와 부정, 빈곤과 불의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이슬람식 평화이다. 9장 과테말라는 독재 군부와 저항 세력 사이에 장기 내전을 치르다가 1996년에 평화로운 국가로 더 안전한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10장 남아프리카 공화국은오랫동안 흑백갈등이 지속되다가 만델라 집권 이후 이런 부분이 조금씩 줄어들며 인종간 화합과 공존을 국가적 과제로 여기고 있고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하나의 국가 및 국민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또한 역사적으로 대륙인 중국과 해양국 일본 사이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며 그 어느 누구보다 평화의 개념이 절실한 우리나리에서 반드시 연구하고, 숙지해야 할 사상이 바로 평화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별로 잘 연구된 성과를 모은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책이다.
* 인간사랑 출판사에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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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상상한 평화는 과연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이 책 “세계 평화 개념사”는 문명의 발달 자체가 전쟁의 역사이기도 한 인류앞에 대두된 평화에대한 인식과 평화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지구촌 10여개국이 처한 각각의 역사와 현재를통해 이 단어가 품고있는 역사와 그 역학관계, 그리고 그 주체자인 인간이 어떤 과정을통해 평화를 인식했는지 그 변화과정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분명한 것은 결론적이지만 지구의 역사는 힘에의한 평화를 추구해 왔다는 사실인데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폭력을 도구화한 전쟁을 통해 야기된 분쟁과 갈등 등 충돌요소들을 공존과 상생이라는 거대한 반대급부적 평화로 나아가고자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평화라는 급부적 힘의 논리를 통해 강자 역학적인 상하, 주종관계인 반대급부를 봉합해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적 평화 의미는 오랬동안 혼란기를 거친 휘황찬란한 역사를 이유야 어쨌든 지켜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싶다. 지구촌의 거대한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무방비 도시를 선언함으로서 값진 문화유산을 지켜낸것만으로도 그들이 인식한 평화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지, 아니면 자포자기였던지 생각할 꺼리를 던저준다. 다만 무방비 도시화를 선언했던 당시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는것은 항복과 같은의미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는데 지구촌의 많은 도시들이 무방비 도시를 선언했던 사실을 참고하며 생각해본다. 끝없는 전쟁속에 피어난 영국의 평화적 의미는 한마디로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기독교 종교적 당위성에 문제를 제기하게된 역설적인 인과관계가 발생했다. 물론 유럽의 빈약한 종교사상적 토대속에 전쟁이라는 상황이 맞물려 복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속에 큰 영향을 주고 받은 면이 컸다는것은 존재한다. 인도의 평화 개념은 개인적과 집단적인 두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집단에 국한된 한계를 보이고 그럼으로서 유리한 쪽으로 그 정당성을 도구화, 변질된 부분은 사회적 상황과 큰 관련이 있어보인다. 이는 오늘날 모든 국가나 사회에 해당되듯이 주류집단에게는 정의라는 이름의 검을 표방하게되는 맹점이 있다. 중국의 근대 평화 관념은 한마디로 대일통이라는 춘추공양전에 처음 소개되는 단어로 이는 한마디로다양성을 매듭이라는 지점을 통해 그것이 종족이든 사상이든 하나의 사건이든 그 지점을통해 윤리도덕, 질서, 덕, 규범 등 다양한 보편적 가치들을통해 공존과 평화를 중시하는 사상적 틀의 기반이 된듯하고 총체적으로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로 모든것이 합리화되는듯 하다. 1,2차 세계대전에 모두 관련돼있는 일본, 과연 일본적으로 상상된 평화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무엇을 상상했기에 자국내에 머물지 못하고 대외로 눈을 돌려 전쟁속으로 세계를 몰아넣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돌아보게 했다. 우매하지만 개인적 결론은 끈임없이 대결양상으로 펼처지는 사회주의와 기독교적 소수의 평화주의 노선과 근대 일본의 서구 지향적인 지식인들을 통해 대국지향주의로 나아가면서 어물정한 군국주의가 돼버린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는 다양한 국가적 틀을 갖추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결국 자기중심적인 평화주의라는 우경화로 흘러가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헤본다. *계속 보충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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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평화 그 거대담론사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은 안하더라도 갈등과 충돌과 분쟁의 연속이다.... 오늘날 평화라는 말은 많이 통용되지만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지는 않다. 과연,, 평화란 무엇일까???
< 팍스(Pax), 정의(Giustizia), 아르테(Arte),,, 이탈리아 평화 개념의 역사,,, >
< 평화, 끝없는 전쟁속에서 피어나다,,, 영국 평화개념의 탄생과 진화,,, >
< 최상의 집단질서유지와 복지를 추구하다,,, 인도의 집단적 차원의 평화 개념,,, >
< 대일통(大一通, 대동(大同) 그리고 화평(和平),,, 중국 근대 평화사상의 전개,,, >
< 비전(非戰), 반군국주의, 비핵화로서의 평화,,, 일본 평화개념사의 핵심,,, >
< 한국인의 평화사상,,, 그 궤적과 특징,,, >
< 자위(自衛)로서의 평화,,, 북한의 평화개념,,, >
< 평화가 전쟁으로,,, 이슬람의 평화관,,, >
< 과테말라의 평화 협정 이후,,, 적극적 평화에 이르는 험로,,, >
< 차별과 갈등에서 화해와 공존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평화개념의 역사적 맥락화,,, >
공존과 상생(相生),,,평화를 준비하자.... 적극적인 평화를 준비하자...
추천합니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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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상상한 평화는 과연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가. 이 책 “세계 평화 개념사”는 문명의 발달 자체가 전쟁의 역사이기도 한 인류앞에 대두된 평화에대한 현실을 각국의 실상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인류의 공존앞에 던저진 평화라는 최대공약수라는 각각의 사정과 이념앞에 인류가 나아가고자하는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그 미세한 이해와 해석의 분분한 차이를 인류라는 생존의 목적을 가지고 들어내고있는 평화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지구촌 10여개국이 처한 역사와 현재를통해 이 공적 역학관계, 그리고 그 주체자인 인간이 어떤 과정을통해 평화를 인식하고 있는지 그 변화 과정을 전문가의 시각으로 추적해 보고자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분명한 것은 결론적이지만 지구의 역사는 힘에의한 평화를 추구해 왔다는 사실인데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폭력을 도구화한 전쟁을 통해 야기된 분쟁과 갈등적 충돌요소들을 공존과 상생이라는 거대한 반대 급부적 도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명분적으로 평화를 추구했다는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곧 평화라는 급부적 힘의 논리를 통해 폭력을 통한 강자 역학적인 상하, 주종관계를 명분화된 이념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반대급부로 봉합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각각의 이해관계는 전쟁을 경험해보지못한 전후세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오늘, 우리앞에 던저진 평화 이면에 뒤덮혀있는 국가간 시선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적 평화 의미는 오랬동안 혼란기를 거친 휘황찬란한 역사를 바라보면서 이유야 어쨌든 지켜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싶다. 지구촌의 거대한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무방비 도시를 선언함으로서 값진 문화유산을 지켜낸것만으로도 그들이 인식한 평화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지, 아니면 자포자기적 선택이었는지는 생각할 꺼리를 던저준다. 다만 무방비 도시화를 선언했던 당시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는것은 항복과 같은의미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는데 지구촌의 많은 도시들이 무방비 도시를 선언했던 사실을 참고하며 생각해본다. 끝없는 전쟁속에 피어난 영국의 평화적 의미는 한마디로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기독교 종교적 당위성에 문제를 제기하게된 역설적인 인과관계가 발생했다. 물론 유럽의 정치적 종교에비해 빈약한 사상적 종교토대속에 전쟁이라는 도구적 상황이 맞물려 복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속에 큰 영향을 주고 받은 면이 컸다는것은 존재한다. 인도의 평화 개념은 개인적과 집단적인 두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집단에 국한된 한계를 보이고 그럼으로서 주류의 정당성으로 도구화되고 변질화된 부분은 사회적 상황과 큰 관련이 있어보인다. 이는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국가나 사회에 해당되듯이 주류집단에게는 정의라는 이름의 검을 표방하게되는 맹점이 있다. 아다시피 모든 이념적 태동의 시작은 민주적 선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의 도구화로 변질되고 사당화된다는것은 지구촌의 오랜 역사이자 원칙이다. 중국의 근대 평화 관념은 한마디로 대일통이라는 춘추공양전에 처음 소개되고있는 단어로 이는 한마디로 사회적와 계층적 다양성을 매듭이라는 인과관계적 지점을 통해 이해되고 그것이 종족이든 사상이든 하나의 사건이든 일정한 그 지점을 통해 윤리도덕, 질서, 덕, 규범 등 다양한 보편적 가치들을 스펙트럼 하게된다. 이는 표면적이고 이념적으로는 공존과 평화를 중시하는 사상적 틀의 기반이 되는듯하겠지만 총체적으로는 도구화된 민족주의라는 단어로 모든것이 합리화되는듯 하지만 결국은 주류층들만의 리그로 사념화되고 변질되고 만다. 이는 만국공통의 지구역사이다. 주도적으로 1,2차 세계대전에 모두 관련돼있는 일본, 과연 그들이 일본적으로 상상한 평화란 무엇인가. 그들이 이해한 세계화라는 단어가 무엇을 그리고 있기에 국가발전을 점진적인 자본적 교류를 통해서가아닌 힘을 통한 선포로 전쟁속에 세계를 몰아넣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며 돌아보게 했다. 아마도 지금으로 이해하자면 그들만의 사전적 이해인 문화적 우경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론적이지만 개인적 결론은 끊임없이 대결양상으로 펼처지는 사회주의와 소수의 앞서나간 젊은 기독교 유학자들로의 평화라는 단어의 그릇된 이해와 국가관이 근대 일본의 서구 지향적인 소수 엘리트 지식인들을 통해 대국 지향주의로 나아가면서 오늘날 우경화적 토대가되는 군국주의가 돼버린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는 다양한 국가적 틀을 갖추어 나아가는 과정의 불협화음을 소수의 자기중심적인 평화주의라는 우경화로 흘러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본다. 그 외에도 한국인의 평화사상의 궤적과 특징, 자위로 바라보는 북한의 평화개념, 평화하자면서 정쟁으로 나아가는 이슬람적 평화관, 과테말라의 평화협정, 그 이후의 험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평화개념, 차별과 갈등에서 화해와 공존으로의 맥락이 기다리고 있다. 시족이지만 오늘날 일본을 생각하면 강자에게는 약한반면 약자에게는 강한, 결국 나만 옮다는 것은 결국은 틀리다는 말이다. 나와 타인 모두에게 옮아야 한다. 이는 철학의 부제에서오는 혼선이다. 문제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깊이있는 전문적 식견은 우리 자신의 시선을 넓히고 이성을 살찌운다. 결코 가볍지않은 명제 평화, 그 깊이있는 국가간 이념속에 투영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이 리뷰는 인간사랑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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