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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맥락에서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까?《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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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종파가 결정된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중 과학자들의 책들은 상당히 비약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책들이 많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이란, 비약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무신론자, 신이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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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종파가 결정된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중 과학자들의 책들은 상당히 비약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책들이 많았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도덕이란, 비약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무신론자, 신이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련의 신무신론자들은 과학적 방법에 따른 이성적 무신론을 따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신무신론자들은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대니얼 데닛,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샘 해리스를  꼽고 있다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는 싸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이 싸이코패스는 알다시피 도덕적인 감정이나 양심을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뇌의 한 부분이 고장 난 것이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에게 마음의 아픔과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주인공(이병헌)은 싸이코패스(최민식)을 죽음 직전까지의 고통을 준 뒤 놓아주곤 하는데 정작 싸이코패스는 괴로워하기는커녕 그 순간들을 즐긴다. 좌절한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을 느끼라고 애원까지 하지만 정작 싸이코패스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도덕()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싸이코패스는 악하다. 싸이코패스에게는 선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싸이코패스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싸이코패스를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무신론자들은 악조차 자연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태생적으로 싸이코패스로 태어난 사람을 게임이론을 적용하여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신무신론자들은 싸이코패스를 인간의 다른 능력처럼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뇌의 단계에 불과한 자연적인 형질로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의 집단적인 행복은 자연적인 습성에 맞출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싸이코 패스를 뇌신경과학으로서 치료 가능한 질병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 샘 해리스는 자유 의지는 없다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는 환상이며 우리가 자기 행동의 주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은 우리의 경험에 의한 무의식에 뿌리를 둔 우리 마음의 역량일 뿐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뇌신경과학의 영향으로 도덕을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믿음의 영역으로 들여 놓았다. 과학은 존재와 사실에 대한 믿음의 영역이고, 도덕은 당위와 가치의 영역이라는 경계(오래된 담장)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골자이다.  이에 더불어 샘 해리스는 무의식이 우리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였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의식할 수 있는 '실재'의 것이라는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에서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진리(眞理)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이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제, 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사실 혹은 참된 이치나 법칙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바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실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저자가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이해한다는 말은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를 제시한다는 뜻과도 같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이제까지 도덕적 진리의 몫을 담당하고 있던 종교가 그동안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삶의 의미와 도덕 지침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하며  논리적이고도 실제 근거인 과학적인 믿음으로서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 때만이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적 진리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이 무의미하며 뇌는 틀림없이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 도덕 , 문화, 이 세 가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 나는 합당하게 가치를 둘 만한 유일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 존재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지점에서는 반드시 뇌와 관련된 사실이나 혹은 뇌와 세계 전체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실로 설명될 것이다.

둘째, ‘객관적 지식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우선적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사실을 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실과 가치 양쪽 영역에서 인간의 뇌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시스템을 분명 공유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답이다. 이론과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또 그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기에 믿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것의 거짓을 증명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강령의 핵심이자, 인지의 규범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관한한 가치 없는 사실은 없다.’-p261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에서 달라이 라마는 현대의 종교가 과학 기술의 놀라운 발달로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교의 가치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샘 해리스가 도덕과 행복의 과학적 연구가 왜 필요한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는 종교를 이성적으로 포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샘 해리스가  종교를 가진 동료 과학자에게  삼위일체에 대한 과학적 논리가 부족하다며 과학적 믿음에 근거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은 아무 의미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영혼'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근거'로 증명할 수 있을 때에라야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 사이에 영혼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혼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태이다. 분명히 종교에는 영적인 부분이 있다.  애초부터 무신론자들의   신이 없다'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과학자들의 비약적인 논리는 샘 해리스에게서도 보여지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믿음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것을 증명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이르는 '본질'이나 '보편적 진리'에 다다르기에는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인과 과학자들의 믿음이라는 '보편적 진리'가 같아져야 과학적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종교가 담당하던 몫을 이제는 과학이 그 자리를 메우려고 하는 시도는 오래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떠오르고 있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종교의 종말을 예고할 정도로 민감하게 종교를 자극한다. 과거 감성이 넘치던 시대에는 종교의 도덕적 진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그 가치의 보편적 판단에 대한 실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이 점점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로 변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 현상은  현대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일부분인지도 모르겠다.  뇌과학자들에게는 도덕과 과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 줄 책이지만 종교인들에게는 더욱 이성적으로 무장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서로 편견을 가지고 부정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치 않으면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를 포괄하고 무신론과 유신론의 믿음과 의심을 모두 고려하며, 더 넓은 자유 원칙이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이 의식을 고양시켜야 한다. 자유를 위한다는 과학과 이성과 합리성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_p394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3.04.10. 신고 공감 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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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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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우선 신이라고 명명한다면 과연 신의 실체가 있을까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인간이 살아 가면서 극한의 상황 이를테면 죽음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절대적 위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신적 존재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려는 나약한 인간의 심성이 묻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신이 존재한다면 오늘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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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우선 신이라고 명명한다면 과연 신의 실체가 있을까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인간이 살아 가면서 극한의 상황 이를테면 죽음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때 절대적 위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신적 존재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하려는 나약한 인간의 심성이 묻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해본다.신이 존재한다면 오늘날과 같이 종교,부족,내전,성차별,지구의 재앙 등과 같은 문제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가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나약함을 의지하고 영혼을 내세까지 고이 간직하고픈 구원과 열망이 내세관으로 나타나고 그 영적인 힘을 빌어 종교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구원해 준다고 세인들에게 호소한다.종교가 신앙을 기본으로 본래의 교리 및 율법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고 사회와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취지이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늘날 각 종교들의 활동을 보면 모든 영역에 걸쳐 미치는 않는 곳이 없다.종교가 사회단체가 된 지는 오래이고 경제적 세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인류의 평화와 안녕은 물론이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덕마저 종교의 교리에 포함되어 있기에 종교를 통해 인간은 거듭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신이 만든 종교,교리,율법만이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갈 수가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순수한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종교인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최고이고 이상이며 선과 악,시비(是非)까지 가려줄 줄 안다고 믿고 이를 세속인들에게 강요하고 현혹한다.교육수준과 판별력이 높아진 현대인에게 종교는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일 뿐 강요와 현혹은 더 이상 먹힐 수가 없는 문제라고 본다.아울러 세속적인 자유주의자들은 도덕적인 문제에는 객관적인 정답이 없고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문제해결과 해답이 도출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신이라는 이름으로 절대적 권위와 힘을 누렸던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양상과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나뉘어져 가고 있는 마당에는 신의 존재는 더 이상 도덕,윤리와 같은 문제를 절대 해결해 줄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이러한 차원에서 저자 샘 해리스는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문제거리를 진화론,심리학,신경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서술해 나가고 있다.아울러 사실과 가치라는 차원에서도 이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고 있고 이 글의 목표가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있기에 이러한 맥락에서 현상의 사실과 가치 즉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순수한 인간의 마음은 사회적 변화,흐름에 따라 각박하고 계산적이고 이해다툼으로 확산되어 오고 있다.또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문제해결법도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는 만큼 그 해결방법에 대한 법률과 제도,규율 등도 제정되기를 수도 없이 반복된다.종교가 일차원적이고 단선적인 문제였다면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시대에서는 관례와 상황,유추에 의한 문제해결이 우선시되는 것 같기도 한다.인간의 두뇌 또한 고지능화되면서 각종 범죄,모방 충동,문화적 편견 등이 횡행해 나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알바니아 사람들의 전통습관인 '친족 복수'라는 문제가 과연 악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가치관이 저열한 것인지도 생각케 한다.한국에서도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연좌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이념이 낳은 통한의 부산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진화론,심리학,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도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사고와 행동의 일정한 패턴을 따르는 경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몰두한다.그것은 분노,혐오,공감,사랑,죄의식,수치심 등 감정적 측면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기술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 본 문 -

 

 인간은 좋고 나쁜 것,선하고 악한 것을 따지기 전에 오랜 세월 관례로 굳어진 것들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점과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적 본성과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뇌 구조,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실,자연의 법칙에 따라 기준을 세우고 최악의 불행을 불러오는 행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다만 도덕과 윤리라는 문제는 인간의 양심을 잣대로 해서는 안될 일과 해야 할 일을 가릴 줄은 알면서도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이해관계가 우선시 될 경우에는 도덕과 윤리라는 것도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 탐구 영역차원에서 도덕적 진보도 발달해야 할 것이다.나아가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종교에 대한 무지,편협성이 크게 작동하면서 지구촌은 핵 확산,집단학살,에너지 안보,기후변화,빈곤,공교육의 부재 등이 커다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신이 절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진화론,심리학,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이 글을 통해 종교가 갖고 있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의 문제와 사회과학적이고 뇌 구조적인 문제가 융합적인 차원에서 풀어가기를 바란다.현재 인류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거리를 사실과 가치적인 차원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풀어 간다면 도덕적 진리,도덕의 보편적 개념도 새롭게 자리잡아 가지 않을까 한다.

 

 

 

 

 

 



j******6 2013.04.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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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진리,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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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진화는, 상상 가능한 이론적 구성물 가운데에는 어떤 경우에서나 다른 구성물에 대해 결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구성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문제에 대해 천착했던 사람들은 우리의 지각세계가,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어떠한 이론적 체계를 선택해야 할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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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진화는, 상상 가능한 이론적 구성물 가운데에는 어떤 경우에서나 다른 구성물에 대해 결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구성물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문제에 대해 천착했던 사람들은 우리의 지각세계가, 한 치의 오류도 없이, 어떠한 이론적 체계를 선택해야 할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의 모든 원리로 이끄는 논리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에 대하여 과학의 대표적 분야인 물리학의 한계에 대하여 1918년 막스 프랑크의 회갑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말입니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가세트는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흥성으로 퇴조되고 있는 철학이 본연의 소명으로 회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과학적 진리는 비록 정확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이며 완전한 진리는 아니다.’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유와 존재의 상호 동화라고 정의되고 인식의 영역에 속하는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yes24.com/document/7110006>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을 설파한 샘 해리스박사는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에서 발전된 뇌과학의 증거들은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과학은 사실에 관한 것이지 규범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양태에 대해 무엇이 잘못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 인간의 조건에 관한 과학은 있을 수 없다.(23쪽)”고 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제리 포더와 같이 반대하는 과학자들이 여전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도덕과 행복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덕과 행복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서 얻어진 것들을 도덕적 진리, 선과 악, 믿음, 종교, 행복의 미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원저의 제목이기도 한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습니다. 도덕의 풍경은 “가설적 공간이지만 실제적, 잠재적 결과의 공간으로, 봉우리의 높이는 잠재적 행복의 높이에 해당하고, 계곡의 깊이는 잠재적 고통의 크기에 해당한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즉 다양한 문화적 관습, 윤리 규정, 정부의 양태 등은 이 풍경에서 지점 사이의 좌표이동으로 표현되고, 이것은 또한 인간 번영의 정도 차이로 나타난다.(17-18쪽)”라고 설명되고 있는데, 다양한 변수를 데이터화하여 객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삼차원공간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다양한 높이의 산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가치 또한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도덕적 진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이와 같은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의 결과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을 ‘스리마일 섬 효과’로 설명기도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 있는 스리마일섬은 1979년 일어난 원자로 노심 용융사고로 세인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나쁜 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어 보면, 이 사고를 통하여 각국은 핵안전을 보다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게 되었고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됩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http://blog.yes24.com/document/6188673>를 읽으면서 ‘문화를 전달하고 모방하는 복제단위’를 밈(meme)이라고 정의하고 “밈풀에서 펴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323쪽)”라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적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생물의 진화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개체와 이타적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균형을 이루어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해당 생물집단의 생존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킨스가 주장하는 밈이라고 하는 문화의 복제단위는 생존에 긍정적 요소만이 살아남고 부정적 요소는 소멸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샘 해리스는 밈의 존재를 인정하고 밈이 ‘전달된다’며, 숙주로 삼은 인간의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밈의 생존은 개인이나 집단에 실질적인 이익(번식되느냐 아니냐)을 가져다주느냐 아니냐에 좌우되지 않는다.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의 행복을 저하시키는 개념이나 문화적 산물에 매여 사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37쪽)”고 밈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파푸어 뉴기니 하이랜드 지역에 사는 포레(Fore)족의 생존을 위협했던 쿠루(kuru)병의 확산과 소멸을 샘 해리스의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쿠루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의 습속이 포레족 마을에 들어온 이후에 새로 생겼다가 쿠루병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호주 정부가 카니발리즘을 강력하게 금지하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소멸되어 갔던 대표적인 프리온질병입니다. 즉 카니발리즘이라고 하는 문화적 요인의 유입과 정착이 종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방향으로 작용하는 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소위 밈이라고 하는 사회문화적 복제단위가 믿음이라고 하는 집단의 사고결과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것이며, 집단적 행복추구를 위한 문화적 행동양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예로 든 포레족의 사례처럼 어떤 종족이나 사회가 품은 실재에 대한 믿음이 허위일 뿐만 아니라 명백하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진화론이 생물학적 명령으로서 이기심을 수반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부분에서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수준에서의 선택압력은 개인의 생존보다는 혈연관계가 있는 존재들을 위한 희생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의 생존보다 유전자를 공유하는 존재들의 생존이 유전자집단의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론이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의 호혜적 이타주의이론입니다. 혈연관계가 없는 친구들이나 심지어 요즈음 개그콘서트에서 보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보는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협동이 가능한 이유가 설명되는 이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개인과 집단의 행복의 지침이 되는 도덕이 분석범위에 있다는 가정을 다음처럼 요약하고 있습니다. “1. 뇌의 유전자 변화는 사회적 감정, 도덕적 직관, 언어 등을 발생시켰고, 2. 이로 인해 약속이나 명예 중시 등 점점 복잡한 협동 행동이 가능해졌으며, 3. 이러한 행동은 또 문화적 규범, 법, 사회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의 목적은 점점 발전하는 이 협동 체제가 그것을 상쇄시키는 힘에 맞닥뜨렸을 때에도 지속되게 하기 위함이다.(113쪽)” 물론 잘못된 믿음에 의하여 퇴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유전자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 이론은 문화의 복제단위가 밈이라고 하는 가설적 구조가 아니라 유전자라고 하는 실재적 구조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로 뇌연구 결과 도덕적 인지와 관련된 뇌영역으로는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과 측두엽(temporal lobe)의 많은 부분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전두엽 외측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에 대한 분노를, 전두엽 내측은 신뢰 및 상호성과 관련된 보상의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뇌과학자 조르주 몰과 리카르도 데 올리베이라-수자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포유동물에서는 볼 수 없고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행위, “다른 사람에게 이로우면서 내게 직접적인 이익(물질적 혹은 명예에 대한 이익)이 없는 행위(진정한 이타주의)를, 특히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뇌의 보상영역이 급격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161쪽)

 

내측전전두피질(MPFC)이 믿음을 담당하는 뇌부위로 생각되는 것 같습니다. MPFC는 자기표현과 관련되어 있는데, 남을 생각할 때보다 자신을 생각할 때 MPFC의 활성이 커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MPFC의 활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는 ‘어떤 명제를 참이라고 믿는 것은 마치 그 명제를 확장된 자아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가 종교적 믿음과 관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활성이 높은 형태의 D4 수용체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회의적이고 기적을 믿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향은 종교의 종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극한 대결을 불사하는 종교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도덕 지침의 원천으로 믿을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신을 믿는 가장 흔한 이유라고 합니다.(17쪽)”

 

이 처럼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종교적 믿음의 본질이 베일을 벗어가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그 사실을 공론화하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 공동체가 대체적으로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데도 불구하고 종교적 독단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국립과학원, 국립보건원과 같이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관, 심지어는 네이처와 같은 과학 잡지까지도 종교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티븐 굴드의 ‘중복되지 않는 권위’ 개념, 즉 ‘과학과 종교는 전문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두 분야가 적절하게 관점을 규정하면 갈등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학은 물리적 우주의 작동에, 종교는 의미, 가치, 도덕, 선한 삶에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뜻이 담겨 있다.(16쪽)”고 양해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도덕문제에서 신앙과 이성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보는 저자의 경우에도 막상 공적 담론에서 과학의 역할에 대하여 논의할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종교적 의견이라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혼란과 박해로 어두웠던 수 세기, 즉 종교적 암흑기를 지나 과학이 꽃을 피우게 된 지금에도 종교는 여전히 과학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서구에서 광신도의 손에 고문이나 살해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종교에 공격적 태도를 취했다가는 연구비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42쪽)”는 인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우주를 선으로 이끄는 위대한 힘이자, 우주를 악으로부터 지키는 진정 유일한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가톨릭교회의 본산 로마 교황청이 사제가 되려는 여성을 파면하면서도 어린이를 강간한 남성사제는 파면시키지 않는다거나, 여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낙태를 시행한 의사를 파면시키면서도 인종 학살을 자행한 나치당원은 단 한 명도 파면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도덕에 대한 교회의 판단기준은 혼란스러운 것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 존재의 가장 절박한 문제에 관해 과학을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즉 도덕적 믿음도 과학적 믿음과 같이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게 될 것임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도덕적 믿음을 지켜온 종교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은 저자의 이런 견해가 옮긴이의 생각으로 걸러져 전달된 점은 없었는가 하는 우려입니다. 옮긴이의 글에 적고 있는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 책은 주로 종교에 대한 반대로 종교가 도덕을 말할 수 없고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독단에 가까운’ 강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392쪽)”



y*****2 2013.04.0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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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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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보편화하라!『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 책이다. 흔히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과학이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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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도덕적 진리’를 ‘과학적’으로 보편화하라!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과학의 맥락에서 도덕적 진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 책이다. 흔히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과학이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 해리스는 이 책에서 과학이 인간의 가치들을 형성하고 무엇이 훌륭한 인생을 구성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도덕적 문제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강제 베일 착용, 여성할례 같은 명백히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에 입각하여 도덕적 차이를 지적으로 ‘관용’하기 시작하면 동정심을 갖지 못하게 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도덕 규칙을 갖지만, 각 규칙 사이에는 각기 나름의 보편성이 전제된다고 강조하면서, ‘도덕적 사회화’는 양 극단이 깊어져 가는 사회에서 좀 더 균형 잡힌 지점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아르's Review

 

 

다른 책들에 비해 너무도 긴 서문을 마주하면서, 그래도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금 지나고 나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하면서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가는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도중 한숨을 쉬면서 책장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책장 속의 책은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뉜다. 아직 읽지 않은 책, 읽었지만 다시는 보지 않을 책, 나중에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앞의 두 가지 범주는 논외로 하고서 마지막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로 말하자면, 읽기는 읽었으나 그저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려니 하면서 읽은 것들로 몇 번을 읽어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책들로 일부러 그런 책들만 고스란히 모아놨다. 언젠가는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고개를 넘을 것이라는 심산으로 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이 책 역시 마지막 범주에 들어가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그 범주 안의 저자의 또 다른 책인 자유의지는 없다가 눈에 띄었다.

 지독하게도 페이지마다 왕복해야 했던 그 때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 이 책이었구나. 그를 또 만났구나, 라는 두려움 반 그리고 과연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 반으로 서문을 꾸역꾸역 넘기고 있었다.

 서문을 지나 1장의 도덕적 진리에 들어서게 되면서 나는 저자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현상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 의지라 말 할 수 있겠지만 그 의견에 반대편에 있는 자들에게 쏟아질 비난과 힐난 때문에라도 대게 중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거침없이 주창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역시 지동설이 옳다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드러내기 그 당시에 풍미하고 있던 거짓이 가득 차 있는 속에 진실이라 일컫는 것을 드러내기 두려워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샘 해리슨는 그의 의견을 주창하고 있다.

 심지어 아홉 살 난 소녀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쌍둥이를 임신한 경우에도 말이다. 그런데 교회는 인종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 치하의 독일 나치당원은 단 한 명도 파면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극악무도하게 뒤집힌 우선순위가 정녕 대안적인 도덕체계의 증거라고 봐야 하는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실체변화의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피임의 도덕적위험을 말할 때도 분명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두 영역에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일에 주목해야 하는지 터무니 없이 혼동한다고 보는 게 맞다. –본문

 아직 종교에 대한 개념이 적립되어 있지 않아서 인지 내게 있어 종교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다지 관심 영역이 아닌 분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가끔 떠오르는 것은 어찌되었건 잘못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뒤에 이어지는 죄책감의 근원 때문인 것 같다.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뚜렷한 종교가 없음에도 옳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나타나는 양심의 가책과도 같은 그 일말의 꿈틀거림은 왠지 모르게 현세이든 사후이든 영향을 받을 것만 같아 두려워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도덕적인 관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연 중에 만들어 낸 약속과도 같은 것일 게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인 제재 조치를 받는다거나 신체의 자유가 사라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 지 언정 무언가 내 스스로 께름칙하게 하는 그 근원에 대해 샘 해리스는 양심이나 종교적인 틀이 아닌 과학의 틀에서 도덕을 판단하고 논하려 하고 있다.

 대게 우리는 삶의 거의 매 순간 이기적 욕망에 강력하게 빨려 들어간다. 또한 자신의 통증과 쾌락에 대해서는 더는 예민해질 수 없을 정도로 집중한다. 모르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절규는 가장 극심한 상태가 되어서야 관심을 끌고, 그마저도 곧 사라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식적으로 반성할 때 선행과 공정성의 천사라 우리 안에 날개를 펼친다. –본문

 선과 악이 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그는 바라본다. 어떠한 행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샘 해리스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인 도덕적 풍경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 하는 바 도덕적 풍경은 하나의 산 봉우리를 떠올리면 되는데 봉우리의 높이는 잠재적 행복이고 계곡의 깊이는 잠재적 고통의 크기가 된다. 이 풍경 속의 산 봉우리가 단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인 것은 필시 하나의 문제에 단 하나의 답이 아닌 여러 개의 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에 있어서 이전과 같은 윤리적인 시각이 아닌 도덕의 과학을 통해서 그 봉우리들에 대해 탐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내측전전두피질 MPFC의 보다 큰 활성화와 관련됨이 밝혀졌다. (중략) MPFC는 지속적인 현실 감시와도 관련되며, 이곳에 손상을 입으면 지어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즉 자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뇌에 어떤 원인이 있든지, 이야기를 지어내는 증상은 믿음의 과정이 맹렬하게 활성화되는 상황에 있는 것 같다. –본문

무엇을 믿는다, 라는 것에 있어 신념이 될 수도 있고 지인이 이야기 하는 속설일 수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에 있어서 믿는 다는 것은 그것이 옳다는 것에 대한 기저 의식을 가지고 현재 발현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인식하는 행위로서 우리는 대게 믿는 다는 것은 옳은 것으로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믿는 다는 것은 지식이 될 만큼의 확고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재한 것이라면 이러한 믿음 또한 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에 이 믿음이라는 것을 뇌의 영역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샘 해리스는 도덕이라는 것은 단순히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탐구의 진정한 영역이라고 믿으며, 문화의 우연성을 초월하여 도덕적 진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음을 밝힌다. 그는 우리가 행복이나 웰빙이라는 말을 여러 가지 뜻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가 어렵기도 하고 행복에 대한 회의주의와 마주하기도 한다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말을 대신해서 인간의 긍정적 존재 상태를 말할 개념은 없다고 말한다. -본문

도덕, 하면 윤리적인 잣대로 관념에 젖어 혹은 타성이나 종교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색깔로 치자면 도덕은 빨간색으로 무언가 심장과 연결성이 있을 것만 같은 양심의 문제를 파란색과 같은 차가우면서도 냉정한 현실에 대해서만 파고 들고자 하는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연 이 둘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과학의 잣대로 도덕을 판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는 신이 대답할 수 없는 몇 가지라는 제목으로 하여 도덕을 판단하려 했을 것이다.

자유의지는 없다, 를 읽고 나서도 그러했듯이 이것이 절대적인 진리이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보는 것도 있구나, 하는 또 다른 관점을 배웠다 정도로 만족하련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 어디에서 도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했을까. 쉬이 읽히지는 않고 모든 것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안목을 배운 것, 그거 하나면 됐다 싶다 

  

아르's 추천목록

 

종교적 도그마에 보내는 합리적 이성의 편지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지적 윤리적 상황에 빠진 현대인의 문명에 대한 걱정을 담은 책.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함께 종교적 도그마와 지적 설계론을 비판하는 미국의 논객 샘 해리스의 신작으로 거대하고 무지한 기독교 국가들에게 거침없이 비판을 날리는 독설을 담은 편지글이다.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는 가장 독실한 형태로 드러나는 기독교의 윤리적 주장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담은 것이다.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것 자체가 오류의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이 믿음이라는 이름 하나로 사람들의 소통을 막고 폭력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음을 비판한다.

대체 종교가 무엇이길래 사랑과 믿음, 관용이라는 이름아래 인간의 폭력성을 조장하고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인지 또한 합리적 기준과 증거를 통해 사실을 판단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소통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근거없는 도그마임을 성경 구절과 다양한 통계를 통해 이야기한다.

또한 저자는 지금 우리의 문명을 유지시키고 우리의 생명을 담보해 주는 것은 근거 없는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을 갖고 있더라도 지적인 정직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의미에서의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고전적 무신론과는 달리 베스트셀러「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의 샘 해리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크리스토퍼 히친스, 「주문 깨기」의 대니엘 데닛 같은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신 존재와 종교의 가치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종교를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사회악으로 간주해 종교가 없는 세상이야 말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솔직히 오늘날 종교계의 한심한 현실을 보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태도는 정말로 어떠한가? 그것은 종교의 타락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주장과 태도는 정녕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며, 평화를 지향하는가? 그렇지 않다
.

저자는 그들의 생각야말로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위험하며, 폭력적이며,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조목조목 밝히며, 우리 시대 무신론자들의 오만과 편견을 신랄하게 고발하며,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지적 겸손함으로 합리적 대화의 장으로 나아올 것을 촉구한다.

[알라딘 제공]

 

 

 

 

독서 기간 : 2013.04.17~04.23

by 아르

 

p********1 2013.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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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도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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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도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말이다. 말그대로의 '도덕과학'이 가능하다. 도덕과학이란 '행복에 관한 과학'이고 행복이란 인간의 의식적 경험의 긍정적 상태이다. 인간의 행복은 세상의 사건과 뇌의 상태에 의존하기에 도덕과학은 뇌과학에 근거하여 성립될 수 있다. 도덕의 문제는 흔히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로 환원되곤 했다. 그러나 사실과 가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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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도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말이다. 말그대로의 '도덕과학'이 가능하다. 도덕과학이란 '행복에 관한 과학'이고 행복이란 인간의 의식적 경험의 긍정적 상태이다. 인간의 행복은 세상의 사건과 뇌의 상태에 의존하기에 도덕과학은 뇌과학에 근거하여 성립될 수 있다. 도덕의 문제는 흔히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로 환원되곤 했다. 그러나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에 도전하면서 과학이 전통적인 가치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 대두되고 있다. 즉 선과 악, 시와 비라는 오래된 가치 문제에 대해 과학이 답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철학자 샘 해리스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과 함께 종교적 도그마와 지적설계론을 꾸준히 비판해오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신(新)무신론자이다. 이번 신작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시공사, 2013)에서 샘 해리스는 철학과 뇌신경생물학을 바탕으로 과학이 도덕적 문제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진리가 실재하기에 이에 대한 도덕과학이 가능하며, 선악은 자연적 현상이기에 과학적 차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저자는 '도덕의 과학화'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이다.  도덕의 풍경은 일종의 가설적 공간으로 봉우리와 계곡이 존재하는데 봉우리의 높이는 잠재적 행복의 높이에 해당하고 계곡의 깊이는 잠재적 고통의 크기에 해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덕의 풍경은 기독종교적 은유인 '눈물의 계곡'에 기대어 만든 가설적 공간인 셈이다. 도덕의 봉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는데 이는  어떤 도덕적 문제는 대동소이한 다수의 답, 다수의 도덕의 봉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건강에 좋은 음식이 단 하나라고 주장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여러 개라고 해서 논의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행복 문제에는 반드시 옳고 그른 답이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에 대한 옳고 그른 방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대답들을 명백히 나쁜 것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선 사이에 긴장은 흔히 존재하며, 이 경쟁적인 가치들의 우선순위를 놓고 수많은 도덕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자율성은 사람들에게 명백히 이익을 가져다주므로 공동선에도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이익이 균형을 이룰 방법을 '정확히' 결정하기 어렵다거나 균형을 이룰 천 가지 동일한 방안이 있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굉장한' 방안이 없으리란 법은 없다."(72쪽)

 

샘 해리스는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에 도전한다. 데이비드 흄과 무어의 이론을 반박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기존의 자연주의 오류와 미결문제 논쟁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과학적 사실에서 가치와 당위를 도출하는 것을 자연주의 오류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를 오류라고 보지 않는다. 구체적 사례에서 과연 그것이 실제로 좋은지를 물을 수 있다는 미결 문제 논쟁도 속임수라고 비판한다.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은 미국의 세속적 자유주의와 기독교 보수주의, 유럽의 비종교 사회와 이슬람국민 사이에서 이른바 '문화전쟁'이 일어나는 주요인이기도 하다.

 

가령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사실과 가치를 구별하면서 성서적 자유주의, 다양성에 대한 불관용, 과학에 대한 불신, 인간과 동물이 겪는 고통의 진짜 이유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반면에 세속적 자유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 도덕적 상대주의, 정치적 올바름과 불관용까지 관용하기 등으로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에 불을 지른다. 다문화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도덕적 상대주의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가치는 문화마다 다르고 어떤 문화권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믿음이다. 샘 해리스의 눈에, 도덕적 상대주의는 서구 제국주의, 인종중심주의,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범죄를 지적으로 보상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간이 신에 의지하지 않는 주체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 무신론자다. 무신론자들이 보기에 종교는 이미 부패가 극을 달했다. 샘 해리스는 가톨릭 교회의 성적 학대와 고문 스캔들을 언급하면서 "남색꾼들, 소아성애증 환자, 가학성 변태성욕자들을 높은 지위로 끌어올리고 이들에게 권위있는 자리를 제공하며 아이들에게 접근할 특권"을 부여한 가톨릭교회와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성토한다. 바티칸이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성적 노예로 만드는 범죄조직과 매한가지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샘 해리스 역시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종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신무신론자들은 종교의 종언을 환영하겠지만 나는 종교의 소멸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종교의 소멸이 종교의 부흥보다 세상에 더 이로움을 미칠지 의문스럽기 때문이고 영적인 추구와 신비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종교옹호론자인가? 최소한 종교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중국의 파룬궁에 대한 억압에 반대한다. 책에서 샘 해리스는 종교옹호론자들이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즐겨 인용하곤 한다고 지적한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문자그대로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이 발언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앞세우는 창조론과 같은 사이비 과학을 허용하자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다.   

 

z***a 2013.04.0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치 판단의 선악을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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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사실과 가치가있다. 사실은 객관적, 과학적 검증을 통해 참, 거짓을 명확히 내릴 수 있는 것이고 가치는 상황, 문화, 주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변할 수 있는 것. 예컨대 '태양은 항성이다'라는 진술은 사실 판단, '태양은 아름답다'라는건 가치 판단인 것이지. 바쁜 시간에 왜 이런 싱거운 정의를 내리고 있느냐고? 나도 동의해. 하지만 어쩌겠어 앞으로 소개할 이 책이 우리가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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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사실과 가치가있다. 사실은 객관적, 과학적 검증을 통해 참, 거짓을 명확히 내릴 수 있는 것이고 가치는 상황, 문화, 주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변할 수 있는 것. 예컨대 '태양은 항성이다'라는 진술은 사실 판단, '태양은 아름답다'라는건 가치 판단인 것이지. 바쁜 시간에 왜 이런 싱거운 정의를 내리고 있느냐고? 나도 동의해. 하지만 어쩌겠어 앞으로 소개할 이 책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사실, 가치 판단의 주관성이 완전한 헛소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그러니까 사실과 가치에 대한 우리의 지난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거지.







가치 판단의 주관성이 헛소리라는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미국인들이 청국장을 먹는 한국인을 시체를 먹는 좀비라고 매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산업 문명의 시민들이 아마존의 원시 부족을 야만적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굳이 초딩 시절의 도덕 교육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현대인 대다수는 문화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교양인의 덕목이라 믿는다. 저자 샘 해리스는 문화적 상대성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인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완전 헛소리. 참과 거짓의 칼날이 사실을 정확히 자를 수 있듯이 가치 또한 '보편적 옳고 그름'으로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 다시말해 청국장을 먹는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비도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무시무시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개소리는 집어쳐!라고 말하기 전에 그 근거를 한 번 들어보는 관용을 베풀어 보자. 


저자가 봤을 때 도덕과 비도덕을 가르는 기준은 행복이다. 어떤 현상이 전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가? 기여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그러나 백번 양보해 이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과연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난공불락의 질문을 돌파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통계적 추론도 -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통 이러이러한 것에 행복을 느끼더라 - 서구 문명 사회를 기준으로 한 독단적 판단도 아니다.


인간은 왜 행복을 느낄까? 우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외부적 사건이 있어야 한다. 우리 뇌는 이 외부 사건을 인지적으로 처리한 뒤 그 결과로 행복 또는 불행의 불을 켜는데,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결국 뇌의 상태인 것이고, 이 말은 우리가 현재 뇌의 상태를 관찰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어디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현대의 뇌 과학이 이것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시간의 문제지 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첫째 도덕은 결국 인간의 행복에 대한 문제다.

둘째 행복은 뇌의 현재 상태에 다름아니며 뇌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뇌의 상태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셋째 이 말은 결국 어떤 가치가 선하고 악한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치 판단의 선악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면, 매 선거때마다 누구를 찍어야 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떤 정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 전체의 행복 증진을 위해 보수가 옳은가 진보가 옳은가? 이것은 더 이상 토론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으로 참 거짓을 밝힐 수 있는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샘 해리스의 멋진 신세계!


논리적 타당성을 떠나 저자의 주장은 우생학, 유대인 학살, 히틀러 같은 이미지를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한국인은 청국장이라는 식문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인류 전체의 행복을 저해한 비도덕적 국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영리하게도, 샘 해리스는 이런 애매한 사례 대신 '여자에게 베일을 강요하는 중동 문화' 내지 '여자의 음부를 꼬매는 아프리카의 관습' 등을 예로 들어 가치 판단의 선악 구분이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가 네오 나치스트거나 뇌과학 성애자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선악을 확실히 구분함으로써 인류 전체에 불행을 가져다 주는 명백한 비도덕적 행위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고자 한다. 모든것이 뜻대로 이뤄졌을때 뇌과학은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악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악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정말 참신하고 멋진 생각이다. 이것저것 다 떠나 샘 해리스가 가진 이 순수한 열정만큼은 존중해 주고 싶다. 하지만 뇌과학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걸 가감없이 완벽하게 드러내 준다 하더라도 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왜 그럴까? 만약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비도덕이라는게 증명됐다면 과연 미국이 아프간, 이라크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까? 샘 해리스의 뇌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신형 폭격기를 이끌고 민간 지역을 공습하는 미국을 향해 '당신의 부도덕함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 뿐이다. 


나는 뇌과학의 불합리함이 아닌 바로 이 무능력함을 토대로 샘 해리스를 거부한다.

s*******r 2013.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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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의 독선 vs 신무신론의 독단』《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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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앉은 자리, 의자에 따라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을 한다.  쉬운 예로 출근시간 서울의 지하철을 떠올려 보자.  어느 날은 운이 좋아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좁다거나 지옥같다는 생각에 휘말리지 않았다. 단지 밀고 밀리며 필사의 탈출 작전을 실행하는 하차의 순간에만 잠시 힘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유일신의 독선 vs 신무신론의 독단』《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내용보기

 우리는 흔히 앉은 자리, 의자에 따라 바라다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을 한다.

 쉬운 예로 출근시간 서울의 지하철을 떠올려 보자.

 어느 날은 운이 좋아 의자에 앉아서 편안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좁다거나 지옥같다는 생각에 휘말리지 않았다. 단지 밀고 밀리며 필사의 탈출 작전을 실행하는 하차의 순간에만 잠시 힘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계속된다면 '행운'이라 부르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날은 서서 가게 되는 거다. 거의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자리에 있음에도 어제의 편안하던 풍경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밀고 밀리는 보이지 않는 몸싸움에 시달려 아침부터 녹초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정체다. 아주 사소한 일, 작은 조건의 변화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을 달라지게 한다.

이 책은 그러한 풍경을 '도덕'으로 옮겨 놓고 있다. 문화와 도덕, 종교와 무신론, 신과 과학 간의 풍경의 차이를 확인시켜준다.

 이해하기 어렵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데다, 이해하기 싫은 이야기도 나오지만 분명 흥미로운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우리 나라는 비교적 종교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의 충돌이 적은 편이라 이 책의 서술 배경을 이해하는 데 상대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란 건 이야기해두고 시작하련다.

 

책의 원제는 The Moral Landscape(도덕의 풍경)이다. 저자는 상대적인 도덕이란 있을 수 없으며, 도덕이 더이상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도덕의 풍경은 하나가 아니며, 봉우리에 빗대어 표현한 것처럼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두고 종교계와 과학계가 충돌을 일으켰다는 기사를 읽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종교에 관대한 것인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것인지, 혹은 아무래도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얼마나 팔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난 마케터도 아닌데) 저절로 떠올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거기다 온통 시커먼 표지란 신이 없는 암흑을 뜻하는 것일지 혹은 도덕 의식이 함몰된 도덕적 해이상태(Moral hazard)를 의미하는 것인지와 무관하게 뭔가 무거워 보여 부담이 된 것도 있었고, 무거운 주제에 종이 마저 무거운 재질이라 그 무게가 더욱 늘어나버린 탓도 있었다.

 

 여러 봉우리 어디에서 봐도 이 책이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무거운 책이 반가울 때가 있다.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내 안의 얼어붙은 사고를 깨뜨릴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무게가 무거운 만큼 그 파문 또한 큰 법이다.

 딱딱한 광물 일 수록 더 높은 경도를 가진 매개가 필요한 '과학적 원리'의 연장선인 거다.

 

저자는 '뇌과학자'다.

 심리학자도, 종교학자도, 역사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해석한다. 결국 그는 뇌과학자 답게 인간의 모든 것, 감정, 도덕, 정의, 믿음 등을 뇌의 활동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전작인 <자유의지는 없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는 것조차 사실은 기억과 경험에 의한 뇌의 판단에 불과하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또한 저자는 뇌과학자이면서 '신무신론자'로 불리는 그룹의 일원이다.

어쩌면 조금은 과격하게 느껴질 만큼 독단적으로 그는 종교의 허위성을 말하며, 그 허상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그는 가차 없는 비판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가혹한 비판자로서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의 근원이라고 말하곤 하는 자유의지를 부정했고, 신의 창조물이라는 상징을 부수어 버렸으며, 도덕감정을 단순한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작용으로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내놓는 사례들을 모두 수긍할 수는 없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사고와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얼만큼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어내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고, 몇 번이나 말도 안되는 논리라며 저자의 주장을 독단적 의견으로 치부하려 했었다. 그게 앞 쪽 100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00쪽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인 논의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는 서서히 눈에 들어오고 머리에서 읽히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 때도 안나왔으면, 정말 읽다 말았을지도.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제법 귀중한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됐다.

"다툼은 같은 수준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교훈 말이다.

 

 종교계에서는 저자를 비판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신성모독은 기본적인 죄목일테고, 독단이니 독선이니 독설이니 하는 말이 오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가톨릭은 타 종교에 대해 가혹하기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저자 쪽에서는 종교계의 허위와 허상, 비과학적 이론들과 억지스런 짜맞추기를 풀어놓으며 비판과 비난의 수위를 높이겠지.

 

 결국 어느쪽이나 결국 진흙탕 싸움 끝에 난장판 되듯 서로를 더럽히게 될 것이다.

 

 타협의 여지도 반론의 여지도 없는 원천 봉쇄의 오류를 전제로 전개되는 논의에 승자가 있겠는가?

 셋이 길을 가면 거기엔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바른 일을 하는 이가 있으면, 그 바른 일을 배울 수 있으니 스승이 있을 것이고,

그른 일을 하는 이가 있으면, 그 그른 일을 해서는 아니됨을 배울 수 있을테니 또한 스승이 있는 셈이다.

 

 책은 저자가 쓰고, 출판사에서 만든다. 하지만 그것으로 완성되었다고 하기엔 아직 한 가지 요소가 부족하다.

바로 독자에게 전해져, 독자에 의해 읽히고 해석되는 순간에 한 권의 책이 완성되는 것이다. 미흡하나마 이 책은 내게 왔고 내게 어떤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음은 물론, 마음에 경계를 세우게 했다.

 

 편협해지지 말 것.

 사실 도덕이 어떤 정신적인 것에서 저절로 생성된 것이든, 뇌의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의 결과물이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책이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읽힐지는 알 수 없지만, 저자와 저자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 중 어느 쪽에 설까를 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있다고 믿은 들 또 어떠한가?

 

 지금 돌아보면 의외로 재밌게 읽은 책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기억하는 뇌'의 활동의 결과인지, '경험하는 뇌'의 결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뇌 과학과 종교를 따라다니는 논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하겠다.

 

 아, 깜박했는데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역자의 말"부터 보는 게 읽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 장의 내용의 개략적 정리를 하고 있음은 물론, 저자의 의도도 친절히 풀어주고 있거든요. 

 반대로 1장부터 읽는 건 좀 반댈세. 

 

c*********p 2013.04.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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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풍경에서 발견한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샘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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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샘 해리스: 시공사, 2013) 도덕의 과학화가 던지는 질문들     "과연 도덕의 보편적 개념은 존재하는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입니다.(신학생의 입장에서 이분의 책을 읽노라면 매번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던지고픈 점들이 많이 있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샘 해리스'는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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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샘 해리스: 시공사, 2013)

도덕의 과학화가 던지는 질문들

 

  "과연 도덕의 보편적 개념은 존재하는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입니다.(신학생의 입장에서 이분의 책을 읽노라면 매번 흥미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던지고픈 점들이 많이 있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샘 해리스'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과 함께 종교적 도그마와 지적설계론을 비판하는 활동과 다양한 사회 주제에 관하여 도발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논의를 진행해나가는 작가입니다. 책의 원제목은 "The Moral Landscape"(도덕의 풍경, 경치)입니다. 이는 샘 해리스가 생각하는 가상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도덕의 풍경' 속 어딘가에는 인간의서로 다른 사고와 행동 관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풍경 속 계곡과 봉우리들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책은 '독단에 가까운' 주장 예를 들자면 종교에 대한 반대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종교는 도덕을 말할 수 없으며 말하게 해서도 안된다는 주장을 전개하기에 번역 제목 또한 원제 못지 않게 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갈등이 악의 시대를 불러왔을까?>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는 인간 사회의 도덕 개념에 대한 도덕적 진리의 본질이 있는가와 이 질문을 과학을 통해 접근하며 얻어진 답변을 사고와 행동 결정에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러한 노력은 '도덕적 자연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듯 싶습니다.(니체는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의 저서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을 거듭하는 그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이 책에서는 도덕의 보편적 개념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입증하고 종교적인 개념에서의 접근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책은 5개의 장(서론을 합칠 경우 6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뇌과학으로 접근한 <자유의지는 없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는 과학+@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연구하여 보편적 개념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보다 명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길 가운데 '샘 해리슨'의 저서들 그 가운데서도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는 도덕에 대한 물음과 답에 대한 흥미로운 진술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조차도 거부하고 '독단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강한 비판은 갈등의 '화해'가 아닌 '충돌'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인간의 도덕적 자기 인식의 특징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다른 견해들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책을 읽을 때 주의가 요구됩니다.

 

  '샘 해리슨'의 저서는 개인적으로 뇌신경과학자가 어떻게 하여 인간의 의지와 신념, 선택, 행동, 인식 등을 설명하는지와 종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선택한 책들입니다.(개인적으로 리처드 도킨슨의 책과 더불어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고 사회적 정서에 대한 이해로서 뇌과학의 응용 및 뇌과학 발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듯 싶습니다.  

 

 



s******a 2013.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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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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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중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삶’을 살면서 행복, 평화, 축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나쁜 삶’을 살면서 불행, 공포,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 경우 ‘좋은 삶’은 ‘나쁜 삶’보다 분명 나은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나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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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중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삶을 살면서 행복, 평화, 축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나쁜 삶을 살면서 불행, 공포,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 경우 좋은 삶나쁜 삶보다 분명 나은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나쁜 삶에 내세의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면, 이 경우에도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 논객이자, 철학자, 신경과학자로 프로젝트 리즌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로 있으면서 과학 지식과 비종교적 가치를 사회에 전파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종교적 도그마를 꾸준히 비판해 온 샘 해리스는 행복이라는 문제에도 반드시 옳고 그른 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해 과학이 답을 제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철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옳음과 그름, 선과 악이라고 하는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과학이 인간의 가치들을 형성하고 무엇이 훌륭한 인생을 구성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도덕적 문제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도덕은 인간의 의식적 경험의 긍정적 상태인 행복에 관한 과학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거의 한 세기 동안 과학의 도덕적 상대주의는 신앙에 기반한 종교가 무지와 편협성의 가장 큰 엔진으로 작동함으로써, 도덕적 지혜의 유일한 보편적 기틀로서 거의 전횡하다시피 해왔다.”고 하면서 그러나 도덕적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생겨날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p.372)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도덕적 진리에서는 도덕적 진리가 실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도덕과학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선과 악에서는 선악은 자연적 현상이며 과학적 차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행위의 옳음은 의식적 존재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달려 있다는 결과주의적 입장이다. 3믿음에서는 믿음이란 어떤 말을 이라고 받아들이는 뇌의 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윤리상 믿음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며 종교적 믿음을 비난한다. 4종교에서는 종교의 역기능과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난 폭력에 대해 역설한다. 종교가 사람들의 고통보다 친척과 동맹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신성함의 가치에 골몰하고 있으며, 폭력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5행복의 미래에서는 행복의 과학으로서의 도덕의 앞날을 낙관하며 도덕의 진보를 희망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덕은 인간의 의식적 경험의 긍정적 상태인 행복에 관한 과학이라며 인간의 행복은 세상의 사건과 뇌의 상태에 의존하므로 과학적 사실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밝힌다.

 

과학과 이성이 우리의 삶에서 가지는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 생생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이 책은 인간 번영에 기초한 도덕, 그리고 과학과 합리성과 얽히는 도덕에 대한 강력한 논거를 펼치고 있으므로 굉장히 호소력 있다.



이달의 사락 k*****6 2013.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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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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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과학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해보았겠습니까? 아직도 서적을 덮은 손에서 전율이 가시지 않습니다. 저자인 샘 해리스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도덕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암묵적인 룰 혹은 접근불가의 영역에 손을 뻗었습니다. 도덕의 신학적 해석이나 신학적 이해, 철학적 해석이나 철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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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과학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해보았겠습니까?

아직도 서적을 덮은 손에서 전율이 가시지 않습니다.

저자인 샘 해리스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도덕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암묵적인 룰 혹은 접근불가의 영역에 손을 뻗었습니다.

도덕의 신학적 해석이나 신학적 이해, 철학적 해석이나 철학적 이해가 아니라

과학적인 이해 를 통해 도덕을 논의 합니다.

이게 제 글솜씨가 모잘라서 표현하기 애매 하긴 한대,

도덕(윤리학)과 철학, 과학을 모두 맛볼 수 있습니다.

편협하게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넓은 의미의 과학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실 겁니다.

제가 바로 그런 경험을 하였기에 추천해 드리는 겁니다.

내용은 크게 보면 도덕이란 무엇인지, 선과 악의 개념, 믿음, 종교, 행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파트에서 다양한 예시를 들며, 자신의 논리를 풀어나갑니다.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대니얼 데닛들의 저서들처럼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게 논리를 풀어갑니다.

나에게 딱 맞는 교수님께 강의를 듣는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도 쉽게 풀어서 써내려 갑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나 논지를 알맞은 비유를 통해 표현합니다.

잘 가르치는 교수님은 어려운 개념들을

'어렵고 전문적이고 그들만이 알 것 같은 언어'로 풀어나가는게 아니고

'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나가는 교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 딱 맞는 서적이었습니다.

다만, 서론 부분에서는 번역을 참 어렵게 해놓은 느낌이 듭니다.

마치 한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저와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면 무작정 읽어나가보시길 바랍니다.

뒤로 조금만 넘어가도, 앞의 내용들이 조금씩 가능해집니다.

안읽히더라도 조금만 참고 넘어가신다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자유의지는 없다' 라는 서적을 읽어보셨습니까?

이 서적의 저자인 샘 해리스의 저서 입니다.

그것보다 조금 어렵게 다가오지만, 더욱 큰 감흥을 느끼실 수 있을 책 입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서적이지만, 제목처럼 내용 또한 도발적입니다.

그러나 철저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읽어보면 정말 엄청나다는 말만 입에서 맴돌게 되실 겁니다.

얼마전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의 '새로운 무의식' 이라는 서적을 읽고

한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 는 더욱 크고 신선한 충격을 저에게 선사해주었습니다.

윤리학을 공부하시려는 분

뇌과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경험해 보고 싶으신분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얻어 가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해드립니다.

i*******2 2013.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