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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넌 내꺼!【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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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패자는 지는 게 두려워서 도전조차 안 하는 사람이야. 넌 지금 도전 중이잖니. -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 中     내가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마다, 가끔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말속에 희망이 전제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도전에 실패한다 해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도전하라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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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패자는 지는 게 두려워서 도전조차 안 하는 사람이야.

넌 지금 도전 중이잖니. -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 中

 

 

내가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마다, 가끔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말속에 희망이 전제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도전에 실패한다 해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도전하라는 의지가 함축적으로 숨어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구절은 나에게 희망을 품게 한다.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새로운 나날의 시작점에서 그날을 향한 도전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새날을 사는 것이다. 바야흐로 멘토의 시대다. 여기저기 아픈 영혼들이 많으니까 어떤 것에라도 의지해서 살아갈 의지를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범람한다. 차동엽 신부 또한 종교인들에게는 멘토 격인 분이다. 그에 걸맞게 그는 이 책에서 지겨우리만치 희망을 설파한다. 희망, 희망, 희.망. 희망이 뭐냐, 먹는 거냐? 그래, 희망 좀 먹어보자. 냠냠 쩝쩝, 우리, 맛나게 희망을 먹어치우자. 희망을 먹고 희망으로 살찌는 내가 되어보는 거다!

 

사실 지겹다. 뭐가 지겨우냐면, 희망이라는 단어가 지겹다. 본능에 기초한 감정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상에는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설파하고 희망을 부추기는 온갖 것들이 넘쳐난다. 내가 즐겨 읽는 문학 작품만 해도 그렇다. 다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건 희망을 품으라는 메시지다. 아프고 고단한 삶에 함락된 채 주저앉아있는 주인공이 종래에는 희망으로 귀환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 번 희망을 마음속에 되새기게 된다. 한쪽에서는 희망을 망각하게 하고 반대편에서는 희망을 상기시키는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 실상은 무엇을 대변하는가. 바로 희망을 마음으로부터 격리시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는 희망은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인 본능과도 같다고 말한다. 맞다. 실패가 두렵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고 삶이 아프고 세상이 너무 싫어질 때도 많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희망의 뿌리가 심어져 있다. 단지 아픔과 슬픔, 고통이 너무 커서 희망의 뿌리를 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보자'. 자신의 내면에 여린 싹을 틔우고 있는 희망의 뿌리가 질긴 생명력으로 무장하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상기하고 매일같이 물을 주자. '희망아~ 내가 너에게 애정의 물약을 줄 테니 잘만 자라다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 말이 옳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 말이 옳다." -174쪽

 

희망으로 점철된  책의 내용에서 유독 나에게 와 닿았던 문장이다. 맞다. 모든 건 내 의지에서 비롯된다. 희망을 품는 것도, 좌절하고 절망에 잠식당하는 것도 내 의지로 주관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한다 해도 무엇보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다. 나를 믿고 나를 알고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망망대해 바다에 띄워진 인생이란 배의 선장이 되어 맞선다면 무엇도 지나가지 않을 일은 없으며 견뎌내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인 내가 되고 주체적인 삶을 살라 부르짖는가. 하지만 여전히 멀었다. 나, 너 할 것 없이 모두 멀었다. 왜 멀었냐고? 저자도 줄기차게 주장하듯이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삶의 주체가 내 속에서 파생되지 않고 외부로부터 의지하려는 심리 때문에 그렇다. 희망은 꿈꾸는 자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다. 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행사하길 거부하는 것일까. 다음을 위해, 기약하는 것?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단 말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특권, 희망놀이에, 꿈을 향한 노 젓기, 주체적인 나로 거듭나며 세상 속에서 한바탕 놀아보는 건 모두 '나'로부터 시작이다. 희망? 지겹지만 믿어 볼 일이다. 그것만이 살아내는 동아줄이라면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꽉 움켜쥐고 놓지 말자. 희망이 먼저 나를 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희망에 전제되는 것은 '도전'이다. 그와 동시에 결과로 도출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성공과 실패. 실패는 성공의 발판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정이다. 이왕이면 승승장구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받는 걸 누구나 원하지 않나. 그러나 실패든 성공이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다름없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 조금 뭣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려 애쓴다. 노력이라기보다는 노력하려 '애쓴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에 국한해서 그렇다는 거다.(사실, 나 게으른 사람...) 나 자신과의 약속을 나는 무엇보다 최우선에 두려 한다. 이곳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들이 찾는 공간이므로 글, 리뷰라는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꽤 많이 도전했고 도전한 만큼 실패했다. 그렇다고 실패만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인간은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결과 앞에서 때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가끔 나를 바라보는 아니꼬운 시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나는 내가 하고자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은 낸다. 그게 내가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원동력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는 의지 말이다. 사실 실패는 너무 두렵다. 하지만 실패보다 더 두려운 건, 내가 리뷰 서두에서 말한 도전조차 하지 않는 '포기'하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라지~ 희망은 그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 당장의 현실이 막막하더라도, 아프더라도, 포기만은 하지 말자. 포기는 희망을 버리는 것의 동의어와 다름없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계속 도전할 것이고 실패할 것이다. 그때마다 좌절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희망을 주창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보다 심도(?) 있게 희망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 뼛속부터 정신까지 심기일전하라고 열심히 독려하는 저자가 있다.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이끌어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책을 읽은 독자인 나는 그에 부응해, 그의 말을 따르면 될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희망은 육체로 탐하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탐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나의 정신을 정화해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 그에 따라 책에서는 자존감 회복, 두려움 극복, 본질 그대로의 나를 바로 보는 것까지, 희망이라는 열매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하는지 세세하게 잘도 알려준다. 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고 숱하게 들어봤음 직한 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잘 잊는다. 읽을 때는 맞아 맞아 맞장구를 치고 가슴 깊이 반성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지 않는가. 그래서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은 흔해 빠진 내용으로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특히 희망이란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손안에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더 그렇다. 희망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마음으로 보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이런 책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면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할 정도로 관심 없어 한다. 무작정 희망을 품으라고 하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나의 마음 문제였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희망, 기대 같은 감정들은 나 스스로 보고 인식의 전환을 마련해야지 어떤 다른 방법이 없다. 세상이, 사회 구조가 문제인데 어떻게 살맛이 날것이며 희망을 품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희망적이고 미래가 희망적이어야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당위성을 갖다 붙이는 것은, 그 자체로 희망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거다. 희망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품어보는 것,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하는 옛말이 있다. 우리, 이런 마음으로 살자. 이 생이 아니면 희망도 신념도 꿈도 다 부질없다. 그 세상에서 꿈이란, 원해도 행할 수 없는 정말이지 꿈같은 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나.

 

지금 나에게는,

희망의 페달을 맘껏 밟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희망을 손짓해 부를 수 있는 손이 있고,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수치 측정이 불가한 크기의 넓은 마음이 있는데 왜 품지 못하는가.

희망, 오늘부터, 넌 내꺼! 아니, 넌 영원히 내꺼였어~!!!

 

 



w*****8 2013.05.20. 신고 공감 17 댓글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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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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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세상이 잿빛이다. 경제는 불경기라고 하고, 북한과의 관계는 일촉즉발이다. 사람들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다. 한나라의 대변인이 외국에 나가 추악한 짓으로 국제무대에서 나라망신을 시켰다. 청년실업과 등록금에 이 땅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었다. 한참 꿈과 희망에 들떠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해야 할 그들에게 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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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세상이 잿빛이다. 경제는 불경기라고 하고, 북한과의 관계는 일촉즉발이다. 사람들은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다. 한나라의 대변인이 외국에 나가 추악한 짓으로 국제무대에서 나라망신을 시켰다. 청년실업과 등록금에 이 땅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었다. 한참 꿈과 희망에 들떠서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해야 할 그들에게 내일이 없단다. 앞이 보이지 않는단다. 모두가 꿈을 잃고 그저 지친 얼굴로 하루하루를 영위한다. 그런데 여기 희망을 부르면 희망이 내게 온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차동엽 신부이다.

 

  상자가 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판도라가 열었던 상자. 그러자 안에서 죽음과 병, 질투와 증오와 같은 수많은 해악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사방에 흩어지게 되었다. 판도라의 호기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그때부터 여러 가지 재앙으로 괴로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둘러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을 때 그 상자 속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있었던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래서 희망은 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 속에 손을 집어넣어 꺼내야 되는 대상이다. 내가 찾아 나서야 하는 대상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그 순간부터 희망은 인간의 운명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운명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고 목 놓아 외칠 때 찾아온다. 반드시.

 

  《무지개 원리로 알려진 차동엽 신부는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희망에 대한 변론이 들꿇고 있는 것은 그만큼 희망을 위협하는 기운이 사회· 문화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하루가 힘차게 시작하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얼굴에는 밝음과 웃음이 없다. 모두들 얼굴을 스마트폰에 쳐 박고서 그저 묵묵히 목적지로 향한다. 하루를 시작한다는 밝음과 주어진 새로운 하루에 대한 그 어떤 기대와 희망도 그들의 얼굴에는 없다. 그저 일상의 분주함에 치일대로 치여 피로와 절망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매일처럼 이어지는 삶을 수행하기 위해 마지못해 일터로 향한다. 그 어떤 희망도, 미래에 대한 꿈도 그들의 얼굴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세상을 향해 차동엽 신부는 외치고 있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Spero, spera). 그렇게 우리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 하고 희망을 권면하라고, 그렇게 할 때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있음 자체가 주위사람들에게 힘찬 희망의 응원이 된다고 말한다. 차동엽 신부는 그가 접한 많은 고전 속에서 희망에 대한 메시지들을 모아 이 책 희망의 귀환을 통해 전해준다. 그 메시지들이 불러드린 위대한 희망의 성과를 이야기 한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가진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희망을 불러들여 스스로의 삶을 바꾼 이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그 얘기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불행하고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희망을 이야기 하고 미래를 꿈꿨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그들의 희망대로 현실에서 그려졌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이게 삶의 가장 커다란 비밀이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다간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참된 지혜이다.

 

  인류의 역사는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 희망을 붙잡고 올곧이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가 힘들다고 절망스럽다고 애통해 한다고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사회를 이끌고 있는 책임자들이 자신의 직분을 다하지 못해 많은 국민들의 절망의 탄식을 불러오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직무유기와 방조죄를 운운하며 한탄스러워만 하고 있을 것인가? 이런 지금의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위로힐링이다. 그래서 요즘의 사회적인 화두가 힐링이다. 그리고 비움이다. 그런데 우린 언제까지나 위로힐링만 부르짖으며 현실을 도피하여 안주하고 있을 것인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들을 향해 허공에 대고 빈주먹만 휘두르고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가 해야 할일은 이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새로운 희망의 내일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힘차게 나서는 일이다. 우리들의 때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아니 진즉 우리 코앞에 와 있다. 그 기회는 우리가 지금의 안주를 떨치고 일어나 자신을 잡아주기를 원한다. 그럼 그 기회를 움켜지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희망이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그 봄의 계절 뒤에 모든 것이 용솟음치고 신록이 무성한 여름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희망을 믿고 희망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삶의 겨울은 희망의 봄에게 그 길을 비껴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희망이 오지 않는가. 세상이 힘들어서 희망을 노래하기 힘든가. 그럼 하다못해 내가 매일 쓰고 있는 볼펜의 이름이라도 희망이라고 부쳐라. 그리고 그 볼펜을 쓸 때마다 희망이라고 불러보자. 그리고 그 볼펜을 가슴에 꽂아라. 그럼 그 희망은 내 손에, 내 가슴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만 그 모습을 보인다. 희망도 마찬가지이다. 희망의 존재를 믿지 않고 현실의 고됨에 굴복하는 자, 희망이 주는 시원한 샘물과 희망의 성취로 인한 상큼한 과실을 맛볼 수 없다. 희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가 개발하지 않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본능이다. 이제 그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본능을 불러일으키자. 희망이라는 이름의 본능을. 그 본능과 포옹하고, 춤추고, 즐겨라. 희망이 나의 삶을 지배할 때 까지. 

 

내 멋에 살라. 내 폼에 살라. 나 잘난 맛에 살라. 나에게는 나만의 멋이 있고 나만의 잘난 맛이 있다. 그 무엇에도 주눅들지 않는, 비교불허의 나스러움이 내게는 있다.(186)

 



h*****o 2013.05.16. 신고 공감 10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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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희망 충전제 《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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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모시고 인근 숲으로 마실을 다녀왔다.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다시 모셔 올 때까지만 해도 볼이 홀쭉해 지시고 얼굴은 검게 타 병색이 완연하였는데 이제는 병세가 호전되어 얼굴에서도 병색이 옅어지고 움푹 파였던 볼에도 살이 붙고 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공황장애와 당뇨가 있으셨던 어머니는 우울증까지 겹쳐 첫 날부터 과거를 회상하시며 자꾸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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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모시고 인근 숲으로 마실을 다녀왔다.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다시 모셔 올 때까지만 해도 볼이 홀쭉해 지시고 얼굴은 검게 타 병색이 완연하였는데 이제는 병세가 호전되어 얼굴에서도 병색이 옅어지고 움푹 파였던 볼에도 살이 붙고 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공황장애와 당뇨가 있으셨던 어머니는 우울증까지 겹쳐 첫 날부터 과거를 회상하시며 자꾸 눈물을 보이셨다. 평소 너무도 밝고 건강하셨던 기억만 있어서 오히려 아프신 어머님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만 하였는데, 어머니는 잊으셔도 될 법한 이야기를 애써 기억하며 우시곤 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문득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어머님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기운이 없으셨던 분이 이야기를 하실 때는 없던 기운도 생기시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는 듯 했다. 인근 숲에 가서도 어머니는 이야기의 꽃을 피우셨는데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야야, 내가 지금 아픈 게 차라리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에 아프다고 하니 모두 나를 걱정하고 생각해 주는구나... ” 매일 우시며 절망가운데 계시던 분이 희망이라는 지푸라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감사함에서 오히려 나는 절망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파발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차동엽 신부님의 희망찬가의 새 책은 《희망의 귀환》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이다. 스타워즈 시리즈 중 다스베이더의 귀환처럼 반가웠던 이 책을 보며 차동엽 신부님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속에 희망이란 꽃씨를 심는 일과 다름없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다.”

“희망은 인간의 운명이다.”

“나도 희망한다(Spero). 너도 희망하라(Spera).”

“겨울은 언제나 봄 속에서 끝난다.”

 

 

책에는 희망의 메시지로 넘쳐나는 이야기들과 과학적으로도 희망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증명과 희망놀이가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해온 사실들을 열거하며 희망에 대한 차동엽 신부님의 집요한 탐구로 시작된다. 무책임한 희망 부추기가 아닌 희망의 원리들을 역사와 문학에서 성공한 이들에게서 찾아내어 희망의 엑기스들을 추출하며 오로지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심도 깊은 과학이론과 역사의 검증을 받은 희망의 이야기에 대한 귀납적 진술을 하는 ‘희망’의 대화이다. 세상의 모든 것의 원리와 규명이 있듯이 희망원리에 대한 저자의 집요한 탐닉을 읽다보면 마치 희망이 전이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는 홀로 다섯 형제를 키우시면서 겪으셨던 생활의 고통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신다. 없는 살림에 다섯 명이 모두 대학에 다니게 되자, 끼니 거르는 것은 기본이고 당장 먹고 사는 일 걱정으로 막막하였던 지난날들을 떠올리시며 눈물을 보이시곤 한다. 치통으로 매일 밤 괴로워 잠 못 이루시면서 돈이 없어 치과에 가지 못해 앓던 이를 일부러 흔들어 빼시곤 하였는데 결국에는 윗니가 다 없어지더라 하시며 자식들은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하신다. 내가 처음 어머니를 뵈었을 때 어머니는 윗니가 하나도 없으셨다. 지금은 의치를 하고 다니시지만, 그때는 돈이 생기면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자식들에게 무조건 부쳐줘야 했기에 생니를 모두 흔들어 빼셨던 이십 년 전의 어머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런 곤궁함에도 어머님은 자식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차동엽 신부님이 말하는 희망과 어머님의 희망은 닮아있다. 희망으로 가득 차 절망이 조금의 틈새도 엿볼 수 없는 맹목적이고도 우보만리(牛步萬里)의 뚝심이라는 점이, 병 앞에서도 희망을 다시 부여잡고 일어서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통해서 , 그리고 차동엽 신부님의 희망 충전제로 나는 다시 희망하게 되었다. 차동엽 신부님의  희망꽃씨가 우리에게 있는 한,  꽃씨가  울울창창 숲을 이루는 그날이 우리에게도 머지않았기를 소망해본다.


당신이 불행하다고 해서 남을 원망하느라

기운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어느 누구도 당신 인생의 질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오직 당신뿐이다.

 

모든 것은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자신과 다른,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 당신은 이미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신 본연의 모습에 평안을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자부심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만이 당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말고

심지어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당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삶은 언제나 당신 자신과 연애하듯 살라.

 

더보기 (나를 사랑하라)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3.05.13. 신고 공감 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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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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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고 하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이 과소비라고도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은 꿈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이야기들은 저자의 다른 책들, 무지개원리에서도 이야기가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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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고 하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사치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이 과소비라고도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은 꿈과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이야기들은 저자의 다른 책들, 무지개원리에서도 이야기가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언급된 부분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필요가 있느냐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억지로라도 희망을 부르라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이라고 우기기라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생각 가운데에서도 그렇게까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실제로 그런 부분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희망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잭 켄필드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에서도 그렇고, 영혼을 살리는 닭고기 수프라는 책들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 그곳에서도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희망이라고 하는 것, 우리 인생의 탈출구가 되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절망이 우리를 덮친다고 할지라도 맷집을 키울 필요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맞는 것 같다. 맷집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면역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면역력을 키우다가 보면, 어떤 일에 부딪혀도 이겨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면역력을 키워나가다가 보면 언젠가는 뒤집을 수 있는 상황도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에서 희망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의 희망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지금 한번 실패했을 뿐이라는 그런 면역력이 분명히 필요하고, 끝까지 희망을 선포할 수 있는 부분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짜이다. 그러나 공짜라고 해서 그 결과가 나중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희망을 끝까지 이야기하다가 보면, 결국 그대로 되어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희망을 붙잡고 있다가 보면, 절망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런 측면에서 꼭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i*******2 2013.04.0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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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 - Spero, spera.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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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산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그것이 없다면 살아갈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절망에 빠져서 몸부림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무너져 버린 것일 게다. 현실은 팍팍하다. 아무리 이상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해봐도 맞닥뜨린 벽은 높아져만 간다. 물가는 오르고 세금도 오르는데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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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산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 그것이 없다면 살아갈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절망에 빠져서 몸부림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무너져 버린 것일 게다. 현실은 팍팍하다. 아무리 이상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해봐도 맞닥뜨린 벽은 높아져만 간다. 물가는 오르고 세금도 오르는데 급여는 오를 생각이 없고, 그나마도 자리 보존을 걱정해야 한다. 아니, 취직 자체도 너무나 어려운 시대이니 어쩌면 이런 걱정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나 힘들다’라고 아우성을 친다. 치유와 관련된 TV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관련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포진해 있는 현상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비약인가? 최소한 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 대다수는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더라.


저자인 차 동엽 신부님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과거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이 유명세를 탔을 때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출판사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삼성전자 이 병철 회장이라는 네임밸류에 기대어 책 판매량을 올리려는 의도에 편승한 종교인. 그것이 당시 내가 가졌던 명백한 편견이다. 그런데 TV를 그리 자주보지 않는 내가 우연찮게 ‘땡큐’라는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고 그날의 출연자에 신부님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에서도 희망을 설파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또 우연히 같은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또 한 번 그분의 모습을 뵙게 되었다. 여전히 희망을 전하며 혜민 스님보다 당신이 선배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심에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또…… 우연히 <희망의 귀환>이라는 책이 내게 도착했다. 이쯤 되면 인연을 맺어 보라는 계시가 아닐까?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테고, 인연이라 해봐야 책을 통해 맺는 것이 전부겠지만 말이다. 


Spero, spera.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저자가 지상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희망 경구로 꼽는 라틴어 격언이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누군가가 외친 나도 희망한다라는 문장은 너도 희망하라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된다고 전하는 저자. 저자는 희망은 절망의 뒤편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됨을 역설하며 희망을 설파한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여 현실을 무시하고 절대긍정을 외치는 이상론자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저자가 외치는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전제로 한다. 현실이 힘들고 고달프고 절망적일지라도 희망을 놓지 말라는 외침이다. 사실 나는 끝 모를 추락이나 지독한 절망 속에 빠져본 적이 없어 그 고통의 크기를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극도로 고통스럽지 않은 인생이라고 해서 편하기만 할 리는 없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에 외부로부터 괴로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변함으로 인해 짜증스러운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 비해서 무의미한 불평불만을 더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태도는 아쉽게도 희망만을 노래하지는 못한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극단적인 절망에 빠져들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태도도 그리 좋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절망에 빠져들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을 외치는 것, 희망을 부르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희망, 희망, 희망의 반복이다. 이제는 알아들었으니 그만 말해도 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지만 다양한 사례들, 위인들의 격언들, 저자가 제안하는 해결책과 조언들은 상황과 주제에 맡게 비슷한 듯 다른 내용으로 포진해 있다. 어떤 페이지를 임의로 펴더라도 희망적인 힘을 솟게 해 줄 조언이 담겨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은 각자가 가진 가치관, 처해진 환경,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를 것이므로 자신에게 맞는 내용을 찾아 읽는다면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인 태도로 살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작심삼일에 그치는 불평불만 많은 내게 처방된 솔루션은 긍정의 연습을 해라! 평소 쓰는 부정적인 언어나 문장을 모조리 목록으로 적고 이것과 반대되는 긍정의 문장 10개를 추려 나의 10계명으로 삼을 것. 매일 꾸준하게 이 문장들을 읽고 적어볼 것.


이런 노력 없이 막연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련스러운 조치입니다. 나쁜 습관이 뿌리 뽑히고 좋은 습관이 자리잡을 때까지는 의지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복잡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적어보는 것! 이것이 해야 할 전부입니다. P. 188


책 한 권 읽는다고 금방 모든 것이 변화될 수는 없다. 희망을 아무리 부르짖고 그것을 머리로 받아들여도 마음을 열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망과 불만, 좌절과 고통은 틈새를 다시 비집고 들어와 자라난다.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같은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를 견지하더라도 현실이 변화는 것이 없다면 점점 악화되는 절망, 변화 없는 관망보다는 작더라도 희망을 외치는 것이 낫지 않나. 


희망은 인간의 운명이다. P. 8






d******4 2013.05.10. 신고 공감 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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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귀환』희망을 품고, 그리고,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진다.
"☆『희망의 귀환』희망을 품고, 그리고,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진다." 내용보기
내가 가진 희망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아주 작은 희망에서부터 큰 희망으로 순간순간 변해간다. 아니, 커다란 희망은 마음속에 늘 자리하는 것처럼 박혀 있어 그것에 대한 희망을 가슴 설레기도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꿈꿀때, 그것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에 애달아 한적도 많지만, 희망을 향한 부푼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그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때 나는 교사가
"☆『희망의 귀환』희망을 품고, 그리고,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진다." 내용보기

내가 가진 희망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아주 작은 희망에서부터 큰 희망으로 순간순간 변해간다. 아니, 커다란 희망은 마음속에 늘 자리하는 것처럼 박혀 있어 그것에 대한 희망을 가슴 설레기도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꿈꿀때, 그것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에 애달아 한적도 많지만, 희망을 향한 부푼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그 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한때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한때라기보단 꽤 오랫동안 교사가 되고 싶었던것 같다. 하지만 내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학교도 제대로 갈 수 없었다. 내가 꿈을 꾸었던 희망인 교사와는 다르게 딸아이가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편하게 보였고, 방학때면 여행을 떠날수 있는 그 여유로움이 부러워 아이가 교사가 되기를 바랬지만, 역시 딸아이의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어, 딸아이가 교사가 되리라는 희망은 일찌감치 버렸다. 하지만 딸아이가 교대를 가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밝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 무슨 일을 해도 잘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고, 아이가 자신에 대해 절망을 갖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로 아이에게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희망적인 말을 해주는 것, 그것에 엄마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동엽 신부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한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Spero, sprera.

 

저자는 절망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희망을 붙잡으라고 말한다. 절망하고 싸우지 말고, 자꾸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이루어지든지 말든지 계속 좋은 것을 상상하고 연거푸 희망을 품는 것이 절망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절망을 생각하지 않는 것, 자꾸 희망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설다 보면 누구에게나 살얼음판을 내딛는 심정이 될 경우가 찾아온다. 또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의욕도 없을 때가 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용기를 내야 한다.  (296페이지)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이 우리에게 닥쳐온다.

그때마다 절망하면 우리의 삶은 너무도 불행해 질 것이다. 하지만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나는 왜 안될까?'라는 생각보다는 '나는 할 수 있어. 잘 될거야' 하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두면 곧 잘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예전에 본 책 중에서 '생각의 힘'이라는 꼭지가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서 냉동 창고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냉동 창고에 갇힌 남자가 얼어 죽은 이야기로, 남자가 갇힌 그 시간의 냉동 창고는 냉동이 되지 않은 기온이었지만, 그 남자는 냉동 창고라는 이유로, 점점 추워졌고 결국에는 얼어죽은 이야기였다. 이 책에서처럼 생각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냉동 창고에 갇히자마자 얼어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남자는 얼어 죽은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긍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내용이어서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 차동엽 신부는 희망의 멘토로서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삶이 지친 40대에게도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 아직 대학생인 이들에게도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열정'을 잃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 자신의 꿈에 다가가기 위해 죽도록 노력할 수 있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쏟다 보면 우리는 되리라는 희망으로 마음이 부풀 것이다.

 

 

나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차동엽 신부의 말처럼 희망을 품고, 희망을 그리고, 희망을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공부가 꼭 전부는 아니라고. 아이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을때 그것에 호응하며 될 수 있을거라는 희망적인 말을 건넬 수 있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5.13. 신고 공감 6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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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의 신성함, 살아감의 뿌듯함, 살아내야 함의 비장함!
"살아있음의 신성함, 살아감의 뿌듯함, 살아내야 함의 비장함!" 내용보기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희망'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라는 생각. 이렇게 생긴 분이구나... <이책은> 서평 의뢰를 받았다. <저자는> 저 : 차동엽 ---발췌하다  '한국형 자기계발서'로 행복과 성공의 이정표를 제시하며 무지개 빛깔 축복을 선사한 『무지개 원리』의 저자. 차동엽(노르베르또) 신부는 관악산 기슭 달동네 난곡(지금은 '난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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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희망'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라는 생각.

이렇게 생긴 분이구나...

<이책은>

서평 의뢰를 받았다.

<저자는>

저 : 차동엽 ---발췌하다

 '한국형 자기계발서'로 행복과 성공의 이정표를 제시하며 무지개 빛깔 축복을 선사한 『무지개 원리』의 저자. 차동엽(노르베르또) 신부는 관악산 기슭 달동네 난곡(지금은 '난향')에서 연탄 및 쌀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희망'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때로 시련을 경험하기도 하였지만, 『무지개 원리』를 통해 선보인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라는 마음가짐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왕성한 저술활동 외에 연 600회를 넘는 기업 및 방송 강의로 국민 사기진작에 기여하고 있으며, 수십 회에 걸친 TV와 라디오 방송 특강을 통해 '인생해설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내용 맛보기>

 책소개 ---발췌하다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 저자 차동엽 신부. 그가 이번엔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동원하여,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강연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대중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주제로 여기며 울고 웃는다. 그의 희망 탐사는 집요하고, 끈질기고, 장쾌하다. 그래서 이 책은 별별 절망의 명분을 훼파하고, 희망 예지를 망라하며, 유쾌한 희망 지평을 열어 제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의 실체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읽은 소감>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만큼이나 참으로 읽을 책도 많고, 읽어야할 책도 많다. 밥벌이와 연계된 책이라면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읽겠지만, 교양서나 취미로 읽는 경우엔 대개는 밀리기 마련. 알음알음으로 저자와 제목만 알게 되는 책들이 살아지는 날수들에 자꾸만 보태어진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분이자 책이었는데 좋은 기회로 책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짖음이자 타이름 나아가 격려의 메시지는 희망이었다. 맨 마지막의 바닥에 있다는 희망. 그래서 더 간절하고 더 소중하며 더 기다림을 배우게 하는 단어 '희망'.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자 독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자기관리 철저는 머릿속으론 되는데 행동으로 습관화하기는 적어도 많은 반복이 이루어지고 생활화되어야 습관화로 정착하는 법. 그렇기에 자기관리를 위한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지만, 결국은 그게 그거 같아서 나중엔 관심권에서 가급적 뒤에 두는 장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를 포함한. 실행이 문제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적다는 말이렷다. 같은 내용이라도 풀이에 따라 자신의 구미에 맞으면 그게 또 약이 되는 것. 여기선 희망에 관한 희망을 위한 희망을 주는 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스토리가 있는 예시를 많이 드는데, 그 내용이 짤막짤막해 지루함은 덜하다. 좋은 글귀가 많다보니 읽으면서 공감하는데, 문제는 하도 많아서 책을 넘기면서 자꾸만 다른 글귀를 읽느라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형광펜의 밑줄쫙으로 읽은 흔적이라도 남긴다.

 

책을 읽으며 좋은 예화와 글귀, 시가 매우 적절하게 나열되어 있음이 장점인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으니 집중을 방해한다. 좋은 것들로의 묶음이다보니 당장 떠오르는 글귀가 없다. 다 좋았어요...그 많은 글귀들을 어떻게 다 모았을까...방대한 독서량이 바탕에 있을터인즉 그렇담 메모나 언더라인을 통한 정보저장이겠네...끝없이 이어지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단순한 나열로만 그치는게 아니고 배열을 또 적절하게 했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순간만큼은 긍정바이러스와 희망메시지를 팍팍팍 넣어준다. 문제 제시뿐이 아니고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어떻게 노력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조근조근 얘기해주는데 훈계조가 아니고 공감이 되게 말해준다.

 

젊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고,

장년에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중천에 뜬 해와 같으며,

늙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저녁에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49페이지

떠오르는 해의 가능성을 말함인데 이는 곧 청춘의 다른 이름이 가능성이라는 것.

 

"지금 우린 '안 돼' 대신 '할 수 있어'란 사회에 살고 있다. '된다'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된다'라는 힘은 너무 강하다. '안 될 거야'란 딴죽을 걸 틈이 없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데도 '해냈다'라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쉬지 않고 채찍질했는데도 말이다. 바로 현대인의 병으로 우울증이 꼽히는 이유다." 

  학자들은 이를 뭉뚱그려 '피로증후군'이라 말한다. ---53페이지

 

덩사오핑이 힘들고 어려울 때 외웠고 즐겨 암송했던 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고,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게 한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정을 참을성 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 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165~166페이지

 

"나만 실패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누구나 실패한다"라고 말한다.

"항상 실패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번에 실패했다"라고 말한다.

"내 인생은 실패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기회는 계속 있다!"라고 말한다. ---173 페이지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

"쟤도 할 수 있고, 얘도 할 수 있는데, 왜 나라고 못할쏘냐." ---217페이지

 

우리가 겪는 괴로움이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그리하여 그것의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로가 된다 할 것이다.--222~223 페이지

 

"꿈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흔들리고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 아이가 존재의 내공을 갖고, 생의 의욕을 갖게 하려면, '사랑'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베풀어주세요, 생의 의욕이 절로 살아나겠죠. 그렇게 되면 저절로 꿈도, 희망도, 목표도 생기기 마련입니다."---265~266페이지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을 보면 하찮다고 생각할 만한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챙겨서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본다. 그들은 특히 '3가지 방문'을 잘 하는데, 바로 '입의 방문'과 '손의 방문', '발의 방문'이다.

  입의 방문은 직접 또는 전화로 주위 사람을 챙기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방문이다.

  손의 방문은 문자나 편지로 관심과 사랑을 전달하는 방문이다.

  발의 방문은 말 그대로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찾아가 위로를 주는 방문이다. ---271 페이지

 

 

 

나나를 도도로 바꾸십시요 라는 말을 들었을때 그 자리서 외워버렸다. 얼마나 참신한 내용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책도 잘 읽고 글도 잘 쓰고 블로깅도 잘하면 예스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거다.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때문에' 를 '~덕분에'로 둔갑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던데 이 말도 앞으로 가급적 사용해 보려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먹는다는 일. 그건 생각이 그렇게 들어야함이요 생각이 들면 공손한 태도로 표출됨이 자연스러울 것. 예스블로그 덕분에 그나마 나는 책읽기도 가뭄에 콩나지만 읽고 쓴다.

 

살아있음의 신성함, 살아감의 뿌듯함, 살아내야 함의 비장함! ---264페이지

삶이란 참으로 치열할 수도 있음이라. 더구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불편한 삶을 영위함에 스스로 위축되는 경지가 많음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큰 연관성이 없다면 가급적 모르쇠 하고픈게 또 한켠에 자리잡고 있음도 숨기지 않으련다. 위의 구절은 에너지가 파바박 전해져 오는 느낌이 참으로 좋다. 삶이란 힘들지라도 그 고비가 지나면 좀 나아지고, 내공도 생기며 행복함이 많아지면 저절로 살맛도 난다. 희열이 함께 하는 삶은 그 자체가 활력이니 보는 사람도 덩달아 즐겁다. 희망을 잃지 않아야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긍정의 힘이 생긴다는 걸, 알려준다.



k******5 2013.05.12. 신고 공감 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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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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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사회를 무한경쟁으로 인해 피로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사회, 즉 피로사회, 절망사회라고 진단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른바 2030세대는 너무 일찍 비정한 경쟁사회의 ‘쓴맛’을 알아버렸고, 40세대는 제대로 용 한번 써보기도 전에 ‘피로 및 노쇠’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고, 5060세대는 떠밀리듯 인생 메이저리그와의 결별 고민에 불쑥불쑥 ‘황망’에 빠지곤 하는 것
"[13-25]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내용보기

저자는 현대사회를 무한경쟁으로 인해 피로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사회, 즉 피로사회, 절망사회라고 진단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른바 2030세대는 너무 일찍 비정한 경쟁사회의 ‘쓴맛’을 알아버렸고, 40세대는 제대로 용 한번 써보기도 전에 ‘피로 및 노쇠’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고, 5060세대는 떠밀리듯 인생 메이저리그와의 결별 고민에 불쑥불쑥 ‘황망’에 빠지곤 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1)”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모든 나쁜 것이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서도 희망만은 인간의 곁에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현실이 암울하면 할수록 우리는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희망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희망이란 결국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산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목표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만약 누군가가 희망을 버리면, 그는 무엇을 하든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희망을 버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가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스레로 스페라: Spero, spera)2)라는 격언을 되뇌는 것은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귀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따뜻한 격려의 마음을 한 마디로 압축한 셈이다.

 

기적이 절실함이 하늘에 닿아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간절히 희망을 갈구하면 희망도 올 것이다. 하지만, 막연한 무엇에 대한 갈망은 사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호들갑스럽게 희망을 소리 높여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행운을 상징하는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을 상징하는 세 잎 클로버를 짓밟는 것처럼, 오히려 그런 행위는 큰 실망과 낙담, 그리고 절망만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들을 알기에 저자는 피로사회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으로 무책임한 희망 부추기기 대신 차분한 희망담론을 제안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차분한 희망담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저자가 읊조렸다는 희망 자체의 다이내믹에 대한 과학적▪심리적 진술, 역사의 검증을 받은 희망 이야기에 대한 귀납적 진술3)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쨌든 이 책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4)이다.

 

물론 이 또한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치료법이라면 그 진위를 가리지 않고 덥석 받아들이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망이라는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무식하게 박박 우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런 희망의 밧줄을 한 번 잡아볼 만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차동엽, <희망의 귀환>, (위즈앤비즈, 2013), p. 19

2) 차동엽, 앞의 책, p. 9

3) 차동엽, 앞의 책, p. 54

4) 차동엽, 앞의 책, p. 64

w******f 2013.05.07. 신고 공감 5 댓글 11
리뷰 총점 종이책
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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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희망을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무분별한 희망은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며 무조건적인 희망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는 무조건적인 희망에 반기를 드는 입장이었다. 대책 없는 희망고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희망에만 부풀어 있는 것. 나는 그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희망을 애타게 원하면 내 주변에 희망이 올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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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처럼 희망을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무분별한 희망은 사람을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며 무조건적인 희망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는 무조건적인 희망에 반기를 드는 입장이었다. 대책 없는 희망고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희망에만 부풀어 있는 것. 나는 그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희망을 애타게 원하면 내 주변에 희망이 올 수 있을까? 희망을 간절히 원하면 희망은 어느 틈엔가 살포시 다가올 수 있을까?

 

청춘의 심장이 뛰는 한, 그가 희망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청춘이 희망이다. 청춘의 뜨거운 가슴이 희망이다. 누구라도 아직 열정이 살아있다면, 그 사람이 희망이다. 육순, 칠순, 팔순을 넘기고도 여전히 팔팔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희망이다. (46)

가끔 생각한다. 희망이란 젊은 친구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아닐까? 희망이란 낭떠러지 끝에서 살아야 하는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평소의 우리들에게 희망은 조금 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온하고 잔잔한 일상에서 희망은? 간절함이 덜해서 희망이 접근하기 힘들려나?

 

무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과연 무한한 희망이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려나? 작가는 말한다. 꿈을 접은 그대에게, 희망놀이 한 번 제대로 해 보자고. 청춘의 특권 앞에 희망이 함께여야 하고, 이 피로사회의 출구 역시 희망이라고 말한다. 절망이라는 껍데기는 만들어진 절망일 뿐. 우리는 희망을 통해 도약해야 하고, 희망에 명중해야 한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하고, 나를 사랑해야 하며,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한다. 그런 삶 안에서 희망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희망은 공짜이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므로...

 

희망 실종을 부추기는 이 사회에 작가는 희망 부활을 꿈꾼다.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희망마저 갖지 못한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희망이라는 녀석은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또한 돈을 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희망은 품으려고 하는 이에게는 정확하게 안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한낮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내 상황에 절망만 하지 말고, 희망의 옷을 입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냇물이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좋은 평탄한 길만이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순탄하게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225)

 

남과 비교해 내 인생은 늘 절망 속에 갇혀 있는 듯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시련과 아픔은 있다. 다만 내 시련보다 작아 보일뿐. 비용도 들지 않고, 큰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 희망. “나도, 그리고 너도 희망하라.” 마음속에 늘 희망을 간직하고 산다면 평범하지만 그 속에서 작게나마 웃을 수 있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나의 삶. 우리 사회에 변혁을 가져올 구원 투수는 지금 불펜에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312)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3.05.04. 신고 공감 5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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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 희망을 잃지 않는 길 [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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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에 '버티고'란 코너가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기다렸다 꼭 보는 인기코너다. '버티고'는 여배우 허안나의 상대역을 해낼 남자배우가 없어 대신 아마추어 배우 세 명이 한 사람씩 차례로 연기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왜 도전이냐?  허안나에게 따귀를 맞는 장면에서 그 매서운 손맛을 이겨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으로 나서는 배우가 없는 이유다. 따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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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콘서트에 '버티고'란 코너가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기다렸다 꼭 보는 인기코너다. '버티고'는 여배우 허안나의 상대역을 해낼 남자배우가 없어 대신 아마추어 배우 세 명이 한 사람씩 차례로 연기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왜 도전이냐?  허안나에게 따귀를 맞는 장면에서 그 매서운 손맛을 이겨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으로 나서는 배우가 없는 이유다. 따귀를 맞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기 때문이다. 남자 배우 세 명은 주인공이 되겠단 원대한 꿈을 안고 따귀 맞기에 도전한다. 잘만 버티면 주인공이 되는 꿈을 이룬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세 사람 모두 눈 앞에서 튀기는 불꽃 연타를 견디지 못하고 꿈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쳐버린다.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꿈꾸던 무명배우들의 희망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순간이다.

 

  그 세 사람은 제목 그대로 버티기만 했어도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모르지만 그것을 감내하며 얻게될 주인공의 자리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르지만 버티기만 하면 자연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이 빼먹지 않고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포기하지 마라는 것. 버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인내심을 가지고 거기에 매달리다 보면 어떻게든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목표란 것이 아주 간절할 때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역할이 간절하지 않다면 굳이 따귀에 불이나는 고통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꼭 이루어야 할 꿈이라면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이라면 무엇이든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것이 외부로부터의 고통이든 아니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든 말이다.

 

 이 책 《희망의 귀환》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해 본들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희망으로 귀환시킬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희망은 저자인 차동엽 신부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그에 대한 눈을 떠야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희망은 우리 주변의 지천에 늘려있다는 사실에만 눈을 떠도 실낱같은 희망의 불빛이 눈을 간지럽힐 것 같다. 저자는 살아있는 우리에게 이 세상 자체가 희망 덩어리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희망재전야상(希望在田野上), 희망은 우리들의 '밭'과 '들판'에 늘리고 늘려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헛군데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면서 말이다. 이 말은 곧 주위를 잘 살피기만 해도 어디서든 희망 덩어리를 캐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역사의 수많은 사례를 보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들어가 있습니다. 다른 것은 사람의 손에 있지만, 시간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길이 막막해 보일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루어질 때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답은 '버티기'입니다."_(P.191)

 

 꿈을 좇다 지친 이들에게 더 버텨보라는 말만큼 고약한 말이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 꿈을 이룬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버틴 사람들이다.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중도에서 포기한 꿈을 어떻게든 끈질기게 추구하여 얻어낸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희망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희망은 귀환하지 못한다. 절망 속에서도 간절히 희망을 품고 있어야지만 그것이 씨앗이 되어줄 수 있다. 간절함이 '버티기'의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은 희망에 대해 간절함을 품고 있어야만 한다. 한톨의 씨앗도 품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제아무리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줘봐야 싹트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한 이 책에 줄을 그어대며 읽었던 이유가 바로 씨앗을 품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이야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저 한 발 한 발 계속해서 걷다보면, 한 발이 또 한 발이 되고, 또 한 발이 되어 100km도 갈 수 있답니다._(P.296)

 

 한톨의 씨앗이라도 가슴 속에 품게 되면 다음은 굳은 의지와 버티기로 꿈과 희망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녹록지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하려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자신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우뚝서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문득 따귀 몇 대만 맞으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버티고'의 남주인공들이 오히려 부러워진다. 무척 고통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순간의 불같은 고통만 이겨내면 되니 말이다.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태도만이 희망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YES마니아 : 골드 l*****j 2013.05.04. 신고 공감 5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