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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직업 특성상, 자주 피를 대하고 접한다.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인상을 찌푸리며 못본것을 본듯이 고개를 매몰차게 돌려버린다. '피'라는 속성은 그런 것이다. 새빨간 그것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여기, 피의 웅덩이 속에서 끌려나온 한 남자가 있다. 전 무호흡 잠수 챔피언 자크 르베르디는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끌려나온다. 그의 옆에선 방 안 가득 피를 흘린채 죽어있는 알몸의 여자가 있다. 그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명백한 살인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살인자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 기자-마르크 뒤페라이다. 마르크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두 번이나 끔찍한 방법으로 잃고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그는 자크 르베르디의 사건을 취재하면서 흥분하게 된다. 그를 파헤치면,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자신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자신만의 의식을 숨기려는 살인자와, 그것을 파헤치려는 기자의 심리전이 시작된다. 숨기려는 자와, 알아내려는 자.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살인자와 점차 드러나는 살인사건의 전모. 그리고 의식이라 불리는 살인의 절차가, 점차 무호흡에 빠져들듯 나를 옥죄여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어떤 '선'이 존재한다. 그 선을 넘으면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검은 선'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르베르디는 어렸을적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선을 넘었다. 그는 검은선에서 자신만의 의식에 몰두하고, 결국은 희생자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피에 자신의 광기를 내걸게 된다.
살인자를 쫓아가던 마르크 역시, 르베르디의 흔적에서 구토를 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를 놓지 못한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놓아버리고 르베르디를 따라 선을 넘어 검은선으로 쫓아가게 된다. 그는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하고는, 결국 그 악에 삼켜져버렸다.
산소와 결합하여 우리몸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새빨간 피는 어떤면에서 경이롭다. 하지만 산소를 잃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검은피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채 죽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마르크는 몸속의 피까지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그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대할땐 조심해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랑제가 보여주는 악의 심연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단, 자신안의 악을 마주대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심연이 당신을 검은선으로 데려가 버릴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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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다 싶게 전개되었던 이야기는 2권으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가속도가 붙는다. 우리는 범인을 이미 알고 있다. 처음부터 이 친구가 범인이에요 하고 알려주고 시작했으므로, 이미 그는 감옥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시작했으므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가 그곳에서 나올리 없다는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저 그렇게 거기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작가를 잘못 본 것이다. 작가는 후반부에 무지막지하게 달리고 있다. 아니 거의 날아가는 속도다. 이미 견고하게 쌓기 시작한 범인과 기자와의 관계. 물론 범인은 기자가 여자인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힌트들을 계속 남겼다. 이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둘간의 거리는 점점 짧아졌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가 남긴 빵부스러기들을 따라사 동남아시아들을 휩쓸고 다니면서 그가 숨겨 놓았던 작품들을 찾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찾아내면서 그는 진정한 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떻게 그가 여자들을 죽였는지를 밝혀낸다. 사건은 경찰이 아는 것처럼 단지 많은 칼자국을 가지고 피를 흘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추악한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사람의 악행이란 어디까지일가. 어디까지가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일까. 기자는 범인을 감옥에 묻어놓고 싶어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검은 피. 편집자는 절대 모른다.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을 바탕으로 기획된 것을 말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그 범인이 보면 다 알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모른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았다. 자신이 사진을 도용한 모델의 모습은 프랑스를 벗어나 앗시아 권까지 진출을 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현장검증을 하러 가던 범인은 그 차가 사고가 나면서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경찰은 분명 죽었을 것이라고 단정짓지만 그것은 그들의 바람일 뿐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자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범인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피흘리는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나씩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살해된다. 분명 그의 짓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모델도 위험하다. 그는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서 둘만의 도피를 준비하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이렇게 그 둘도 범인의 손에 잡혀서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것인가.
분명 경고했었다. 배신은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남의 사진을 도용하고 남의 이름으로 그에게서 접근을 한 기자는 배신을 한 행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모델을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자신이 원해서 사진을 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범인과 기자와 모델. 그 셋이 만나게 되는 장면은 조용하지만 긴장감이 서려있다. 과연 이 세 사람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까. 안단테로 흘렀던 1권이 지나가니 알레그레토를 지나서 비바체로 달려가는 2권만 남아버렸다. 포르테로 강하게 때리면서 더이상 빠를수 없는 속도로 넘어가는 2권이 끝나니 급허무해진다. 검은 선은, 검은 피는 결국 무엇이었던가.
+ 도떼기시장 같은 표현을 쓰는 번역은 여전하다. 어디서 이런 단어들을 알았는지 정말 우리네 부모님들이 쓸 만한 단어들의 향연들이다. 조금은 세련된 단어를 써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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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은 지금, 밤새 나를 옭죄었던 가위눌림에서 겨우 벗어난 기분이다. 깨고 싶지 않았던 악몽을 떨치고 난 후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지를 가늠하는 기분으로 책에 관해 써 본다.
소설은 한 사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처절한 공포와 숨막힘을 호소하는 남자, 대나무, 오두막, 묶인 여자, 피의 샘, 질식.....남자의 독백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이 소설을 관통하는 악의 근원을 말해 준다. 그 사내는 무호흡잠수 챔피언 자크 르베르디다. 한 여자가 살해당한 오두막에서 용의자로 지목되어 말레이지아 감옥에 갖히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내, 마르크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애인을 잃고 코마를 경험했던 그는 죽음에 홀린 듯 범죄 사건을 뒤쫓으며 사는 지방신문 기자다. 그런 그에게 자크 르베르디는 무척 매혹적인 사냥감이었다. 자크는 이미 범행 사실이 밝혀져 감옥에 갖혔기에 그의 행방을 쫓아 범죄를 막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어떤 심리, 어떤 계기로 그렇게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고 싶어서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자크에게 평범한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안한 건, 엘리자베트라는 가상의 인물, 여자다. 그를 속이고 진실을 털어놓게 하고자 하디자라는 여자의 사진을 이용한다. 무척 아름다운 모델지망생으로 그녀 또한 악몽 같은 과거를 뚫고 살아왔고 마르크에게 호감을 느낀다. 교도소 안에 갖힌 연쇄살인자에게 순진한 아가씨의 얼굴로 위장해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마음을 연다. 그렇게 자크, 마르크, 하디자 사이의 기묘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와 자크가 엘리자베트(실제로는 마르크)에게 내리는 지령에 따라 마르크는 자크가 저지른 살인을 시간에 역행해 추적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밝혀지는 살인자의 초상...모습을 드러내는 惡 주된 세 인물의 공통점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악몽은 현실을 반영한다. 세 사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자크는 살인으로, 마르크는 살인자를 쫓는 것으로, 하디자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소설은 크게 접촉, 여행, 귀환이라는 세 파트로 나뉘고, 이야기 전개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읽는 내내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친다. 빠르고 정교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무호흡잠수 선수였던 자크가 느꼈을 법한 공포심과 망아지경마저 공감되는 듯하다. 또 말레이지아, 캄보디아, 태국, 프랑스, 시칠리아 등 자크의 행로를 소급해 가는 여정에서 각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세밀히 묘사되어 한층 실감이 더해진다. 이야기의 재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주된 캐릭터 자크가 풍기는 카리스마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검은 선을 향한 집념과 정교한 계획, 강인함, 단호함, 파괴력 등 악마 같은 마력을 지닌 사내다. 읽다 보니 기꺼이 가상의 인물 엘리자베트가 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달아나고 싶을 정도로 무섭지만, 자석에 이끌리듯 검은 구렁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랄지.
검은 선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경계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은 어차피, 마르크의 입을 빌어 작가가 비유하듯,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섞여 움직이는 곳 아닐까. 아니, 인간의 내면은 이렇게 흑백이 섞인 피아노와 같지 않을까. 검은 검반만으로나, 흰 건반만으로는 피아노 연주가 되지 않듯이 말이다. 인간은 저마다 악에 동조하거나 악을 행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에서는 다만, 그 극한을 보여 준 것뿐이라 여겨진다.
악마는 섬세할 것이다. 악을 행하려면 선행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악을 그리는 것도 마찬가지라 짐작한다. 어둡고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일, 이를 이야기로 만들어 그려 내는 일은 밝고 아름다운 것을 비추는 것보다 더 정교한 탐구를 요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검은 선>은 철학적이고도 탐미적이기까지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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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져 있는 선. (245p)
프랑스 소설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작가라면 그런 생각은 조금 달라진다. 그의 작품 [황새]를 읽고 프랑스 장르소설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작가의 이름만 믿고 덥석 두권을 집어든 케이스다. 이런 경우 잘못하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작가에 대한 기대감마저도 허물어질수가 있는데 이 책은 어떨까.
너무 오랜만에 프랑스 작품을 읽어서 그런지 이 작품이 오래전 책이라 그런지 -초판은 2008년이고 4쇄는 2010년 판이니 그렇게 오래전이라고 할 수도 없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번역을 너무 옛스럽게 해서 그런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들이 아닌 약간은 오래전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또한 들어서 초반부는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믿음이 약간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작가보다도 번역자가 문제이긴 하다. 소설에서는 가독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리 재미난 내용이라 할지라도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설로서의 기능을 일정부분 상실했다고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다. 빠르게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내용이다.
스릴러라고는 하나 연쇄적으로 사건이 마구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건의 사건이 저질러지고 용의자가 잡히고 그의 다른 범죄들이 연결되고 있지만 부인하는 입장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범죄자들의 심리를 알아보겠다고 덤빈 저널리스트.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바야흐로 범죄자와 용의자와 저널리스트간의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붙잡혔고 사형이 확정이라고 여겨지는 - 그는 여자라고 믿고 있는 그에게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보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길 원하고 자신을 따라오길 원한다. 여자가 아니라면 상대도 해주지 않는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신분증까지 훔쳐서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편지를 보내고 한발자국씩 가까와지고 있는 기자는 그게 호기심을 느끼고 그가 이끌어가는대로 그의 범죄의 흔적들을 좇기 시작하는데 둘 사이의 이 믿은은 어긋난 믿음이며 언젠가는 깨어질 얼음판 같은 믿음이다.
배신을 가장 싫어한다는 그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때 이 기자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른다. 절묘하게 정맥만 노리면서 몸속의 모든 피를 쏟을 때까지 기다리는 범죄자. 전직 무호흡 잠수 챔피언이었던 그가 왜 이렇게 피에 집착하게 되엇을까. 편지로 연결된 그들의 소통은 이제 이메일로 더욱 빠르게 왕복하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은 언제 어떻게 깨어지게 될 것인가. 검은 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경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린 거예요. 다른 인간들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죠. (16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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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릴러의 황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돌아왔다. 역시 오래 기다렸다. 출판사에 여러번 졸랐는데 이제야 나왔다. 기다린만큼 이번에는 전작과는 다른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범죄 사냥꾼과 연쇄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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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사람을 죽였다. 살해 자체도 그랬지만 희생자 물색 역시 한치의 빈틈도 없었고, 죽음으로 이르는 완벽한 세계를 창조해내려고 노력했다. 대체로 성공을 거뒀다.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희생자들은 발견됐고 그의 방식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속할 지경이었다. 과거 무호흡 잠수 세계 챔피언이던 남자, 그남자의 뒤를 캐는 퇴물 프리랜서 기자. 기자는 왜 끈질기게 그의 의식(뇌)에 관해 알고 싶어했는가, 제목 '검은 선'이 의미하는 건 무엇인가. 묘사는 끔찍하고 숨막힌다. 어둡고 축축하고 퇴폐적이다. 오히려 심미적이라 할 만큼 완벽한 살인 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왜. 대체 왜.
기자 마르크는 그의 뇌에 닿고 싶어하는 자다. 단순히 사건 취재라는 형식이 아니라 이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자의 뇌 깊숙이 들어가 파헤치고 이해해보려는 것. 알고 싶은 것.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시작하는 추격전에서 범인에 대한 반전이 없다면 읽는 이는 주로 '쫓는 자'에게 집중하게 마련이다. 사람을 잔인하게 심미적으로 거행하는 살인사건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연쇄살인범 뇌 속으로 들어가려 끈질기게 파헤치는 기자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을 투여하면서. 마르크는 긴 시간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조사하고 연구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여기던 차, 하나의 위험한 아이디어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사진기자 친구가 야심차게 키우는 (신입)모델 하디자의 얼굴을 이용해 여자라면 흥미를 보이는 자크에게 접근하기로. 수감된 자크에게 편지로 접근해 궁금증을 채우고 원하는 목표(자크의 범행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일/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일)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은 아주 쉽고 빠르게 가상의 여인 엘리자베트를 만들어내고, 그는 어떤 불행과 위험이 닥칠 지는 생각지도 못한 채 철저히 자기 신분을 위장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마르크의 위험한 자신감은 더 위험한 자크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저마다의 욕망과 충동. 악과 악의 만남을 엿보는 힘이란 강력하고 자극적이다. 누구나 자기 욕망을 실현하며 행복해지려 한다. 마르크와 자크와 하디자의 트라우마와 마침내 마주하는 충격적 진실은 어느 하나 믿을 수 없었던 피의 범죄현장을 그려내게 한다. 그들은 스스로 동시에 상대방과 마주하며 자신의 경력을 다한다. 누가 누구 위에 있고 누가 누구 아래에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저마다 상대의 위에 존재한다 믿었던 이들의 서글픈 진실은 씁쓸한 결말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도 살릴 수 없고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다. 집념은 집착이 되고 욕망은 욕심이 된다. 가서는 안 되는 길, 품어서는 안 되는 욕망,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향해 끊임없이 걸어들어간 이들의 최후는 이 어마어마한 핏빛 소설의 결말을 보는 걸로 끝내서는 안될 것이다. 떠올리고 또 떠올리고 또 떠올릴 필요가 있다. 왜, 대체 왜. 당신 대체 왜. 어쩌다 그랬냐고 이제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죄는 늘 여죄인가 보다. 죄 위에 죄 옆에 죄 주변에 늘 다른 죄가 놓여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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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벌써 하루하루가 숨 막히게 무덥다. 온몸을 찍어 내리누르는 땡볕의 무게를 등에 얹고 걷는 한낮엔 점점 난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샴쌍동이처럼 등에 붙어버린 더위를 한 칼에 베어버리는 섬뜩한 섬광! 여름엔 역시, 스릴러가 답이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전업한 후, 12년간 세계 각지를 누비며 환경, 분쟁, 과학, 소수민족 등에 관한 르포를 쓴 저력으로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을 직접 창작을 하기로 결심한 프랑스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틈틈이 집필하여 ‘황새의 비행(1994)’, ‘크림슨 리버(1998)’, ‘돌의 집회(2000)’, ‘늑대의 제국(2003)’까지 고공비행을 계속하다 ‘악의 기원 3부작’을 야심차게 계획하고 2004년 ‘검은 선’, 2007년 ‘림보의 서약’을 통해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대단한 작가의 경력을 모른 채, 접하게 된 ‘악의 기원’이었다. 지옥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살해 장소에서 넋 나간 용의자 ‘자크 르베르디’가 첫 페이지에서 잡혔다. 그는 무호흡 잠수의 세계 신기록으로 국제적 명성을 떨친 자이며 현재는 마흔아홉 살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다이빙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자백할까? 아니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나설까? 이를 쫓는 경험과 경력이 놀라울 만큼 다채로운 기자 ‘마르크 뒤페’, 그는 함구하고 있는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파헤칠 수 있을까? 명백한 용의자가 있어서 거의 해결된 것 같은 사건이 다양한 일상 위에 표류하면서 새로운 사건을 이끌어내는 능력, 그렇게 말레이시아 감옥에 있는 자크와 프랑스에 있는 마르크의 연애편지가 시작된다. 여자를 선호하는 자크를 위해 본인도 모른 채 연애편지 속에 끼어든 모델 ‘하디자’까지, 삼각관계의 서막이 1권에서 시작된다. 범인이 거의 확실한 것 같은 용의자를 잡고 시작하는 스토리건만, 작가의 경력을 십분 발휘하여 동남아를 풍부하고 세밀하게 휘젓고 다니며 연애편지의 비밀, 즉 ‘악의 기원’을 하나씩 벗기는 취재능력이 무척 흥미진진하여 지루할 틈이 없는 스릴러다. 밝혀지는 진실, 살해 방법들이 숨 막히게 잔인하면서도 작업의 철저한 정교함이 알흠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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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과 적도 사이에 또 하나의 선이 있다.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검은선” 검은 피로 피칠을 한 악의 기원 3부작 첫 번째 프로젝트!!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장편 스릴러는 오래 전에 <늑대의 제국> 으로 스크린에서 먼저 만났더랬다. 이후에 “악의 기원 3부작” 프로젝트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다시 돌아온 그를, 악에 대한 이야기, 즉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를 파헤치는 심리스릴러로 만나게 된다. 전 무호흡 잠수챔피언 르베르디가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된다. 기자 마르크는 르베르디에게 접근하여 특종기사를 포착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엘리자베트'라는 여성으로 위장하여 살인범으로 하여금 살인의 과정을 편지를 주고 받으며 털어놓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여자인 줄도 모른 채, 살인범 르베르디는 가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마르크는 마르크대로 살인범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미학적인 살인의식에 점차 매혹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특종거리의 취재목적으로만 접근했었지만 마르크의 위험천만한 도박은 수위를 높여 업그레이드된다. 우선 악마의 머릿속에 들어가 악의 근원을 쫓아 들어가는 것. 그래서 그의 생각을 소설로 옮겨 담는 것! 악의 궤적 '검은 선'에 가까워지던 중, 마르크의 정체를 알게 된 살인범 르베르디는 무시무시한 광기를 뿜으며, 숨통을 끊으려 돌진해 오는데....
소리없는 적색경보 사이렌이 심장을 두드린다. 처음부터 살인범을 등장시켜 놓기 때문에, 범인은 누구인가? 라는 추리적 관점에는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다. 이것은 한 저널리스트가 “검은 선”으로 상징되는 악의 순수한 원형을 찾아들어가는 동굴탐사 같은 시추에이션이다. 이러한 설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패턴화된 지적 쾌감보다는 마음 한 구석을 훏고 지나가는 섬뜩함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르베르디와 마르크의 내면의 본성이 근본적인 일심동체로 동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기만큼 손쉬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르베르디가 마르크를 미친 듯이 뛰 쫓는 대목은 지금 생각해도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압권인 명 장면으로, 숨막히는 긴장감을 서서히 그리고 촘촘한 밀도로 채워나가는 그랑제의 솜씨는 실로 탁월하다. 자! 격렬한 스릴보다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스릴을 체험하고 싶다면 바로 이 소설 <검은 선>이다. 갓 스릴러에 입문할 시점에 훌륭한 선도자 역할을 했던 잊혀지는 않는 멋진 걸작! 그의 최근작인 미세레레를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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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해도 해도 너무 더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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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과 적도 사이에 또 하나의 선이 있다. 시체와 공포가 푯말처럼 이어진 선'
그것이 바로 검은선이다. 이 검은선,이라는 책을 우연찮게 받아들고 뭔가.. 하고 있을 때, 낯익은 역자의 이름이 보여 어떤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내 취향이 아냐, 하면서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루 반나절만에 두 권의 책을 다 읽어버렸다. 근무시간에 꼭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상사의 눈치도 보지않고 퍼질러 앉아 읽어버렸다는 뜻이다.
나는 심리를 묘사하고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잔혹함이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너무 끔찍해서 대강의 줄거리와 결론만을 파악하고 제대로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 검은선은 속이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면서도 차마 책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었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연결이 절대로 중간에 끊을 수 없게하는 악마의 유혹같은 강한 끌림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무호흡잠수 챔피언인 르베르디가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고, 그를 취재하려는 마르크 뒤페라의 이야기로 검은선은 조금씩 그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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