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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전국국어교사모임.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엄마가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기획한 책들을 많이 사다 주셨기 때문이다. 그 때는 오직 수능과 입시를 위해서 읽어대던 책들이었지만. (그 땐 읽는 것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골라왔다. '재물이야기'라, 특히 표지 제목 밑에 조금 작게 쓰여진 글씨에 꽂혔다고나 할까. '쌓아 놓고 베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결혼 후, 조금은 달라진 나의 경제관념. 결혼 전에는 아끼는 후배들 밥 사주는 재미에 알바도 여러 탕 뛰어가며 고되게 일을 해서라도 베풀기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한 푼 한 푼이 어찌나 아깝게만 느껴지던지. 아마 결혼식과 집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나의 돈에 대한 미련을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보다. 다시 순수해지고 싶었던 지도 모르겠다.
한국문학은 역시나 놀라울 정도로 재미가 있다. 서양의 고전들은 왠지 어두운 것들도 많이 있는데, 한국문학 하면 '해학', '풍자'를 뺴놓을 수가 없다. 어찌나 재미있게 돈을 좋아하는 자들을 비꼬는지. 여러분들도 읽어보시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페이지 앞 쪽엔, '국어시간에 고전읽기'시리즈를 펴내며 쓰는 전국국어교사모임의 글이 있다.
고전이 이처럼 깊은 가치를 지녔는데 어째서 고전을 읽는 사람은 흔지 않을까? 아마도 고전이 사람을 쉽게 끌어당겨 주지 않기 떄문일 것이다. 고전은 우리에게 섣불리 손짓을 하지도, 눈웃음을 치지도 않는다. ...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들이 고전을 즐겨 읽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했다. 뻣뻣하고 까칠한 고전을 달래서, 부드럽고 친절하게 청소년을 끌어당기도록 손을 쓰고 공을 들였다. 멋없이 무뚝뚝하던 고전을 정성껏 매만져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청소년들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탈바꿈했다.(p.4)
정말 전국국어교사모임의 노력대로, 나는 부드럽게 고전과 손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우리 문학에 사실 큰 관심은 없었고, 그런 이유는 대입 수능의 영향이 크다. 그저 입시를 위해 문학을 접했으니 무슨 재미를 느꼈겠는가. 청소년들을 위해 그리했다 하지만, 청소년이 아닌 나에게도 부드러워 좋았다. 아마 청소년이든 노인이든 까칠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을 좋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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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돈에 울고 웃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 부자 되기와 부자로 살기에 대한 이야기들, 되로 주고 말로 받고에 대한 이야기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이야기들 이렇게 4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비슷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끼리 묶어 분류해 놓았다.
또한 목차부터 보시다시피 아시겠지만, 재미있는 그림체가 이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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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가득 메우는 그림들이 마치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깊이 문학작품에 매료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충동질한다. 화려한 색감과 여성들에겐 고운 색감을 입혔다. 고전을 대하는 맛을 더욱 돋군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은 거의 다가 돈에 욕심이 없고, 지아비를 높일 줄 알며, 지혜로워서 그 가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여성들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여성은 '궁한 사람끼리 만나 부자가 되다'의 김씨의 처.
가난한 양반의 아들인 김씨는 장풍헌 댁에 혼기가 찬 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청혼을 하러 나선다. 자신의 가문의 가난한 처지를 앎에도 불구하고, 가서 혼사를 논한다. 그러자 장풍헌은 손사래를 친다.
"내 딸이 자네 집에 들어가면 영락없이 굶어 죽고 말 것이 뻔한 이치! 자네는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p. 176,177)
멋쩍게 물러 난 김씨. 그런데 그것을 엿듣고 있던 장풍헌의 딸이 나와서 하는 말이 놀랍다.
"우리 집 안방에 맞아들일 사위래야 기껏 하찮은 무관밖에 더 되겠어요? ... 가난과 부자, 죽고 사는 것이야 저마다 이미 정해진 복에 달렸는데, 김 도령의 청혼이 왜 당치도 않겠어요? 저는 김 도령이 꼭 아버지께 허락받았으면 합니다."(p.177)
아주 당차고, 자신감있는 딸. 여기서 말하는 자신감이란, 세상에 맞선 자신감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감이라는 단어보다는 '순리를 따를 줄 아는'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찌 이런 현명한 여인이 있을 수가! 요즘 세상에 이런 여인을 찾아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둘은 혼사를 치르고, 여인은 가문을 일으키는 지헤를 남편에게 일러준다.
또 인상깊었던 다른 한 여인은, '뜻이 있으면 끝내 이루어지는 법'에서 등장하는 고도령의 부인이다. 그녀에 대해 이 책에서 묘사하기를, '매우 어질고 사리에도 밝으며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까지 갖춘 딸'이라고 말한다. 이 여인도 역시, 아까 김씨 부인처럼 남편에게 지혜를 주는데, 남편은 그것을 약속한 기한동안 잘 수행하고, 엄청난 이익을 얻고 귀향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부인을 만나, 농담을 던진다.
"내가 그 때 집을 떠나 정처 없이 가다가 길에서 도적을 만나 돈을 다 빼앗겼다오. 서당을 두루 돌아다니며 글을 배우고자 했으나 모두 머리를 흔드니 별 도리 없이 여기저기서 문전걸식했을 뿐이구려!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약속한 십 년이 되었으니 이 꼴을 하고라도 돌아와야지 어쩌겠소! 부인은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큰 부자가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이 지경으로 궁핍하니 어찌 차마 얼굴을 들겠소."(p.223)
짖궂은 고 도령! 여러분은 이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역정을 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 도령의 부인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높은 벼슬을 하여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모두 분수가 정해져 있어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까지 모은 곡식만으로도 평생 먹고 따뜻이 지내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뭘 더 바라겠습니까?"(p.223)
고전 속 여인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여인들도 있지만, 현숙한 여인들의 상을 그릴 땐, 항상 이런 덕을 갖춘 것 같다. 1. 하늘에 순응할 줄 아는 마음 2. 지아비를 높일 줄 아는 마음 3. 지아비가 빛나게 할 수 있는 지혜 4. 돈을 사랑치 않는 마음
정말 멋지다, 우리네 여인들! 나도 이 여인들을 본받아, 우리 가정을 반드시 풍족하게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