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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때 착한 사람 콤플렉스 같은 걸 가졌었던 것 같고, 지금은 콤플렉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혹은 평판에 상당한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초반부에서 이야기하는 착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평등함이나 억울함 등에서 나름대로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내가 그런 나의 성향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고민 끝에 내렸던 결론은 "굳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며 살지 말자." 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착함,
선함"에 대해서 개념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나는 그동안 나름대로의 내 삶을 살아오는 데 있어서 느꼈던 심리적인 불편함에
대해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착하다는 것이 단순히 다른 사람을
위한 자기희생이 아니라, 그리고 그 자기희생이 곧 나의 불편함, 불이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착하다는 것은 곧 훌륭한 것이라는 정의를 통해서 느낀 점이 많았다. 특히 맘에 들었던 주장 중 하나는 최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주장했던 명제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책은 주장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도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나는 덕성이 있는
선하고 착한, 훌륭한 사람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 나는 (책의 표현대로는) 착하지 않은 것이다. 즉, 나의 착함에 대한
정도도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근거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나 스스로 최근에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로서의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의문과 고민도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업무 속에서 과거에 했던 보고서의 내용들을 찾고, 그 내용을 정리,
분석하고, 그 다음의 단계에 무엇이 올 것인가 하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때로는 지루하고, 이 일들을 통해서
나는 올바르게 성장해 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문가의 모습은 많은 경험을 통한
전문가를 그리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전문가들은 수많은 정보를 취합, 분석해서 하는 의사결정보다 도리어 문제에
대한 직관적인 의사결정이 더 현명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론, 나에겐 더 많은 경험과 그 경험을 위한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내가 지향해야 할 전문가의 모습은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Analyst의 모습이 아니라, 직관적인 통찰력으로
해법을 찾아내는, 혹은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는 Creator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올바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덕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의 정치/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리더의 부재에 대해서
다소 아쉬움을 느꼈고, 나 스스로가 조금 더 덕윤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됨으로써 주변의 내 후배, 부하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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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POINT: 자신과 주변사람을 위한 착한 사람이 되라.
그 사람 어때? "그냥 착한 것 같아", "그 분은 항상 도움주시는 착하신 분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사용하거나 알고 있었던 착하다는 의미는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대한민국 특유의 주변의식으로 인해 그 뜻이 많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이미지를 착하게 보이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팩쌓기의 일환으로 나타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착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 인사성 밝고 항상 웃는사람, 귀찮고 싫은 일에 항상 솔선수범하는 사람 등 대부분이 자기희생을 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고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이 지속되면 본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부분 이런 질문에 대해 계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사람이라는 인식을 보일까봐 생각하기도 꺼려하는게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 사회는 규범의 테두리에 개인 희생을 통한 착한 행동들의 보편화를 통해 예의바르고 정있어 보이는 사회로 꾸며보이고 있다. 이런 사회의 현상은 최근에 와서 점차 부작용들을 일으키고 있고, 대표적으로 흉악범죄, 자살 등을 들 수 있다. 항상 부모님이나 어른 말에 복종을 하면서 살았는데 살아갈수록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개인을 궁지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겪는 불행들의 일반적인 특징 1.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속으로 끙끙 앓는다. 2. 남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일에 힘을 쏟다보면 자신을 위한 시간이 부족해진다. 3. 남이 불쾌해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시선에 민감하다. 그래서 걱정이 많고 예민하다. 4. 행동은 차분한 데 비해서 마음이 산만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공상을 많이 하고 현실감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위의 내용처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착한행동으로는 나와 주변인이 함께 행복해지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착함의 기준을 "덕윤리"로 새롭게 정의 하고 있다. 덕윤리란 쉽게 말해 자기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영순위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가족이나 친구 등의 주변인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소위 말하는 정없는 각박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불행한데 그 외의 것을 먼저 배려하고 희생하라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그런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 -p106-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는 사회범죄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지나친 경쟁 과열로 개인을 사랑하기는 커녕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 이런 현상들은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착함의 덫에 걸려 정작 자기자신의 말에 귀기울이고 사랑하지 않았던게 문제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보면 자신과 주변을 사랑하면서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긍정적인 모습들이 모여 좀 더 건강하고 겉과 속이 같은 진정한 착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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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리스는 덕 있는 자가 '직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습관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했다. 윤리학자들은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덕윤리가 감성적, 직관적 덕이 된다고 해석한다. 흥미로운 것은 감성적인 영역은 본능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지만 직관이나 습관과 같은 능력은 후천적인 습득을 통해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영이나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하면 그것이 몸에 익어 습관이 되고 실력이 향상된다. 이러한 습관과 직관적인 능력은 앞에서 이야기한 두뇌의 이중처리시스템에서 이성적인 루트가 아닌 감성적인 루트를 통해 나타난다. 감성, 직관, 습관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며 순간적으로 나타나는데, 본능적 반응을 제외한 능력 중 상당부분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노력 끝에 얻은 좋은 능력을 칭찬하고 덕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덕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계발시킬 수 있다. ( 모기룡 지음,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중에서 ) 저자 모기룡님은 세상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철학과를 선택했다가 결국 인지과학은 종착역으로 삼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활자 매체에 무관심하고 록음악을 듣기에 심취했으며 대학시절 공부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지금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취미이자 본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도덕, 철학, 사회 등 많은 문제들은 결국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융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착한 사람들이 이긴다>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하고 좌절하지 말고 행복하게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힘을 주는 책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행복하지 못하다. 바로 착하게 살아가면 불행해지는 현실을 본다. "착하면 뭐해 바보인 걸" 더 이상 착하게 살아가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여기서 착함은 그 사람의 행동이 착한 행동을 했을 때 착하다고 한다. 외양의 행동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이제는 착함이 행동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착함이 '자기희생적 이타주의'라고 말하면서 '도덕의 법칙'으로 둔갑하는 것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 이타적 행동이 착한 것은 맞다. 그러나 '자기희생'이 착한 것은 아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할 때가 비로소 착하다고 해야 한다. 바로 내면의 선한 의도와 생각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직관적, 본성적으로 훌륭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의 덕목이 된다. 그리고 덕 있는 자는 그러한 덕목을 습관적으로 발휘한다. 즉, '좋은 습관'이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습관과 직관은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나타나는 능력이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한 삶은 선한 삶과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이는 착한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토머스 스탠리는 미국의 백만장자 733명에게 성공의 요인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그 상위 다섯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았다. 1.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대하기 2. 자기 관리에 힘쓰기 3.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4.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배우자 만나기 5. 남보다 열심히 일하기 위 다섯 가지 요인을 보면 모두 감성지수와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 마음이 따스한 착한 사람이 부자가 될 확률이 크다는 사실이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배려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냉철해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집중해야 한다. 실력을 쌓아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감성적인 판단이 미래에 더 필요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무기가 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베스트셀러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가 발달한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온다고 주장한다. 미래사회에서의 필수적 재능을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성적인 재능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이성과 대비되고 감성에 가까운 재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지능지수(IQ)보다 감성지수(EQ)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고 부자가 되는 지름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키우는 부자가 되는 성공비법 5가지를 실천해보자. 1. 누구에게나 솔직하게 대하기 2. 자기 관리에 힘쓰기 3.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4.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배우자 만나기 5. 남보다 열심히 일하기
119힐링실천 : 부자가 되는 성공비법 5가지 실천해 보기. 바라돌이사랑 http://blog.naver.com/varado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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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처음 책을 받아 보면서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라고 하는 제목은 약간 진부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지 기대하면서 책을 읽어나갔지만, 책을 덮고난 결과는 처음의 기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새로운 착함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즉, 착함이 무엇인지, 착함이라는 말이 가진 불편한 모습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지금 시대에 단지 우리가 알고 있던 착함이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무엇인가라는 것으로서 '덕윤리'라는 이름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선이라는 이름아래 행해진 결과가 아니라 선이라는 행위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감성이라는 부분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종래의 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합니다. 종래의 도덕관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분량이 30퍼센트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부터는 약간의 불편함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덕윤리에 대한 개개의 모습들이 기존에 제가 믿고 있던 시각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착함의 대안으로서 덕윤리라는 것을 소개하는 저자의 입장은 이해가 되었지만, 전반적인 글의 내용이 덕윤리를 너무 좋게만 말하는데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 생각에 '덕윤리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그 정도는 아닌것 같다.' 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이 많은 '착함'과 '정의'라는 쉽지않는 주제를 다룬 내용이었고, 일견 비슷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지 못한 분이라면, 이 책과 함께 보는 것이 많은 고민거리를 함께 던져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기존의 착함'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는 도서를 참고도서와 같은 방식으로 알려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착함에 대한 입장을 먼저 확인하고, 이 책을 보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명확히 하는데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각박해져 가는 분위기와, 착함 보다는 악함이 더 많은 듯이 느껴지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은 아닐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덕윤리가 제가 생각했던 착함의 대안은 되지 못할 지라도 착함이 그립고, 더 많은 착함이 이 세상에 가득찼으면 하는 바람만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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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은 항상 이용만 당하고 어리숙하고 실속 없다고 생각하고만 있다. 그 이유는 강해야 살아남을수 있다라는 잠재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 또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못살면서 누굴 도와주고 있나? 자기도 힘들면서 누굴 도와줘? 바보 아니야? 이런 생각 들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살면 얼마나 각박한 삶일까? 진정 서로 도와주며 함께하는 삶은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때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책의 지은이는 모기룡 작가이며 오늘은 이를 통해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기는지 알아 보겠다. 모기룡 작가는 '자기희생적 이타주의' 에 대하여 이타주의적인 행동은 '착한 것이지만 자기의행'은 잘못된 것이고 이런 행동 때문에 착하고도 불행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 '착함'이란 무엇인지 부터 소개해 주고 있으며 진정으로 착한 행동과 기존에 낡은 상식을 깨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예시를 들어 어떤 행동에 문제점이 있고 착한 행동인지를 알수 있게 해주고 있다. 덕을 키우는 방법과 성공 기법에 대한 사항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은것이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고 현 시대에 착함의 정의를 내릴수 있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을때 덕을 쌓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며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바꿀수 있는 계기가 되어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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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저자 : 모기룡 출판사 : 한빛비즈 우리는 살아가면서 덕(德)을 지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도대체 덕(德)의 본질은 무엇일까 ? 국어사전에서 ‘덕’을 찾아보면 그 의미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덕(德) 1. 도덕적ㆍ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 2.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이런 저런 생각의 끝에 나는 ‘덕’이라는 것은 인간이 가진 내면의 그릇(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면의 그릇이 큰 사람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그릇이 다 채워지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더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子曰, “德不孤, 必有鄰.” (자왈, “덕불고, 필유린.”)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 논어(論語), 이인(里仁), 25장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이 짧은 문장을 놓고 무척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 자신이 가진 덕의 크기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기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이 책<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에 등장하는 덕윤리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한번 덕의 본질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몇 가지의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착함 이란 무엇인가?’ 가와 같은 약간은 추상적인 질문에서부터 ‘이성과 감성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이 독자들이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질문들까지 책이 던져주는 화두는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사뭇 달랐으나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불편한 마음이 드는 부분이 제법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덕윤리라는 개념 자체의 옳고 그름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논조 자체가 뭔가 확고하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공감, 감성을 통한 덕의 내재화에는 나 또한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이성적 사고를 놓고 이 시대의 착함이라는 명제를 상당부분 흔든다는 것은 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개인적 의견이다. 세상에 음(陰)과 양(陽)이 존재하고 천지(天地)가 나뉜 것은 다 그것들 간의 보이지 않는 조화로 인해 세상이 돌아감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인간이 지닌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사고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중용(中庸)을 이룰 때 가장 아름다워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나와 딸아이는 한 달에 한번 장애아동이 있는 시설로 봉사활동을 다닌다. 처음 딸아이를 그곳에 데리고 갔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딸아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녀석은 자신이 그 자리에서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한 아이들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고 내심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즉, 감성적으로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아빠라는 존재와 같이 동행한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봉사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사랑의 감정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이성적 사고로 시작된 봉사는 이제 감성에 의해 마음속에 내재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자발적 봉사를 통해 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는 칭찬은 그 녀석의 동기를 더 부여시켜주는 촉매가 된다. 그럼 여기서 우리 딸아이의 봉사는 진정 착한 행동이었을까 ?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는 관점, 아니 같이 봉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 지금의 딸아이는 충분히 착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뒤로 하고 책을 잠시 살펴 보자.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 이 시대가 이야기 하는 ‘착함’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책을 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함’이라는 명제가 틀렸다는데서 책은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착함’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덕윤리’다. 덕윤리는 ‘훌륭함’을 ‘착함(선함)’과 동일시한다. 그런데 ‘휼륭함’에는 ‘성공’또는 ‘탁월한 능력’과 같은 요소도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덕윤리에서 말하는 ‘착함’에는 ‘성공’과 ‘탁월한 능력’이 포함될 수 있다. – p47 결론적으로 인간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좋은 능력과 태도, 성실함 같은 것이 바로 덕이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세상을 지배해온 이성적 도덕관으로 인해 ‘착함’의 기준이 사람의 ‘내면’이 아닌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위’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사람의 내면을 충실히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의도적 행동이 결국 그 사람의 내면을 채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의문을 던져본다. 두번째로 저자는 ‘당신은 이성적인가, 감성적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의무론과 공리주의를 비롯해 근대 이후 서양 철학이 이성 위주로 흘러갔다는 말과 함께 감성적 도덕을 주장한 흄과 애덤 스미스를 통해 감성에 기인한 ‘동기’로 도덕을 평가한다. 결국 인간의 이성적 영역보다 공감이나 감성을 통해 더 행복해 진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리고 공감능력이나 감성지수를 키워야 덕윤리에 가까워 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덕을 실천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통해 실제 덕을 키우기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해법은 위 두 개의 챕터를 통해 제시된 것을 다시 집계했다고 보면 되고 마지막 ‘그 밖에 오해들’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펼쳤던 주장에 대해 다소 누그러진 입장을 보인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덕윤리는 클라우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는 떠오르지만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문득 어릴 때 보았던 무협만화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났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란 없다. 누구도 스스로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며 그 행동이 선하다 악하다 하는 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선한 사람은 자신이 선하다고 스스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도 자신이 악하다고 스스로 떠벌리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선과악의 모순이다. 그런데 우리는 느끼고 있다.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를 말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감성적 영역이든 이성적 영역이든 중요한 것은 본인은 본인 행동의 선과악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아닐까? 물론 저자가 말하는 덕윤리를 위한 자기 내면의 수양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양만 한다고 정말 군자(君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수양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의 이목으로 인해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내재화 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시대가 던지는 ‘착함’이라는 화두에 대해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직 이런 주제를 다루기에는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노래하는 멘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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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상담을 하면서 고객분들께 본인의 투자성향을 물으면 잘 모르겠다라고 한다. 정형화된 sheet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해본다. 원하는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는데 1층과 25층만 남아있습니다. 1층은 서비스로 아담한 정원이 있고, 25층은 아파트 앞 호수공원이 보여 조망이 아주 좋습니다. 어느 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물론 선택은 고객의 몫이고 위 질문은 위험성향(Risk tolerance)을 묻는 것이다. 안전한 투자성향을 25층은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나타낸다. 아~~주 대다수는 13층을 선택한다. 수익도 위험도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착한 사람이 이긴다!!! 딱 13층이다.
‘착한 사람이 이긴다.’ 책 제목을 보면서 느낀 점은 대상이 누구지? 하는 부분이었다. 이길려면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세상의 악한 사람들과 대항해서 이기는 것인지, 이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개개인의 착함으로 극복하자는 것인지 의문이 많았다. 그러나 알 수가 없었다.
사회학자 장보드리아르는 현 시대를 소비사회로 규정하면서 우리는 생산품의 기능보다는 상품을통해서 얻을 수 있는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했다. 모사(copy)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모사(copy)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다. 착함도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각종 메스컴과 엄친아(?)들로 인해 착함을 투영받은 것이다. 이렇게 살아야만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에서는 착하게 살지 말라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덕윤리대로 우리는 의도를 선하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저자의 글을 잠시 인용하면, 칸트의 의무론은 억지로 따르는 동기를 착하다고 보며 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의무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덕윤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켜서 하는 착한 행위가 진정으로 착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P175 우리는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화의 과정을 겪고 비로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덕윤리에서 말하는 진정 착함이 이렇다 하더라도 사회화를 간과해서는 우리 사회의 규범에 위해성이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착함 즉, 덕윤리란 시대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윤리와 덕성인가? 동시대의 어떤 사람이 과거 조선시대의 기준에서는 훌룡한 사람이 될지 몰라도, 현재 우리 시대에서는 훌룡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그는 덕이 있는 것이 아니다. P152 전통은 미래에 있는 것이다. 과거의 관습과 규범이 현시대에 옳지 않다면 우리도 미래의 시대에도 통용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Q가 뛰어나야 성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면의 선함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것인가? 인간관계의 대응력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덕윤리의 선함이 될 수 있을까? 요즘 TV에서 방영하는 ‘직장의 신’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어휴~ 통쾌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나는 선한 사람인가? 장보드리아르의 모사(copy)처럼 나를 투영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 덕윤리 측면으로 보자면 난 전혀 착한 사람이 아니다. 13층의 느낌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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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착함'은 무엇인지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다. 우리는 '착함'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수 많은 책을 들춰내지 않아도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왜 그럴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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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이긴다. 정말인가요? 정말 착한 사람들이 이기곤 하나요? 사실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것은 바보같다는 의미로 퇴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배우자를 고를 때 성격에 착한 것을 고르는 것은 여전한 것을 보면 어쩌면 착한 것이 굉장한 경쟁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착하다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남이 착하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칭찬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당연한가요?^^;; 저 사실 착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 하지만 무척! 착해요,.... 그러니 이기는 것인가요::????????????????????????????(죄송합니다...) 이 책은 어쩌면 현대 문명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쓸모 없는 책'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착하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책이기 때문이지요. 착한 일을 아무런 대가 없이 '심지어 자신의 마음 조차 착하다고 느끼면 안된다고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을 본다면 분명 철학적인 의미 이상을 가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자는 그것을 바로 착함의 기본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책을 보면서 조금 답답함을 느낀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내가 손해보면 정말 손해 본 것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받아 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사회에서 말이지요. 책에 이런 예시가 있습니다. 내가 철도 기사인데 이대로 가면 사람 다섯 명이 죽고 레일을 꺾어서 가면 한 명이 죽는다고 가정했을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계산적인 원리에 의해 한 명이 죽는 곳으로 레일을 꺾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승객인데 기차가 오고 있는 상태에서 다섯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 앞의 사람이 뚱뚱하여 떨어지면 한 명만 죽고 다른 다섯 명이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상황에서 한 명을 죽음으로 내 몰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착해서 그런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가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교육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을 과연 착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인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실제로 책 내용이 많이 어려운 감이 있고, 일반적으로 느낄 때 예시는 정말 신선한 감은 있습니다만, 오히려 정서에 안 맞는 것과 같은 내용들도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착한 사람들이 이긴다는 전제하에 '착함' 이라는 것을 정의 하기 위한 이 책의 노력은 다른 사람을 교화시키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사실 서평이 자기 주관이 많이 개입된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난해한 면도 있고 긍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읽기가 조금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착하다'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표현하고 싶고 알고 싶다고 한다면 이 책만큼 훌륭하게 정의를 내린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착함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점 그것이 결론이자 정의 입니다. 기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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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이 이긴다」착함에 대한 새로운 감성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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