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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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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 세상에서 가장 긴 벽]우리가 장벽을 대하는 매뉴얼대한민국 국민의 범위는 좁았다. 정부수립 초기, 자기만이 대한민국의 주체라고 외치던 수많은 대한민국들이 있었다. 폭력과 소외 그리고 외면으로 점철된 자기주장들은 편협하고 조악한 대한민국을 초래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것을 편집·교정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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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 세상에서 가장 긴 벽]


우리가 장벽을 대하는 매뉴얼


대한민국 국민의 범위는 좁았다. 정부수립 초기, 자기만이 대한민국의 주체라고 외치던 수많은 대한민국들이 있었다. 폭력과 소외 그리고 외면으로 점철된 자기주장들은 편협하고 조악한 대한민국을 초래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것을 편집·교정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헌법이라는 책이 바로 그들을 지표하고 있다. 


저항과 자유의 문장들이 비록 먼지 쌓인 장롱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문장들은 당장이라도 또 한 번 외쳐지길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출근길의 정체 속에서 건너다보던 광화문 거리 혹은 시청 앞 광장에도, 당신이 지난날 여행을 시작하며 공항 편의점을 들렀을 때, 텅텅 비어있던 진열대를 보고 한숨 쉬며 흘겨보던 입국장 구석탱이 조잡한 돗자리 위에도 말이다. 아마 당신들 중 누군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기는커녕 전혀 어긋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노라고 중얼거리며 작은 방바닥에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괜찮다. 아마 지금 당신들과 나는 ’장벽‘ 너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일 테니까.


모닥불을 준비했다.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한 왕국을 다스리던 파란 왕의 이야기이다. 파란 왕은 어느날 파란 신하에게 장벽을 세우라 명했다. 파란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강제로 장벽 밖으로 이주를 해야만 했다. “네, 명 받들겠습니다...!” 신하의 대답은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가진 지도자를 떠올릴 때, 흔히 가깝게는 트럼프를 멀게는 히틀러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모닥불 앞에 모여 있는 당신들과 나라 할지라도 결코 그 가까움과 멂의 수직선 위에 놓이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매일매일 우리는 우리 안에 작은 트럼프를, 작은 히틀러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작은 몸을 이끌고 그것을 마주할 때면 벽이라는 것은 너무나 거대했다. 그것의 안과 밖을 알 수 없다는 느낌만이 나를 압도했다. 나보다 작거나 큰, 혹은 같을지도 모르는 당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시야만큼만 벽을 알 뿐이다. 나의 시야보다 낮은 곳에 ’안입니다.‘라는 사인이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나의 시야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벽은 항상 다른 누군가를 마주치고 만나 생각하고 말하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나의 몸과 말이 벽을 세우는 것이다. 때로는 그 벽을 두드리며 누가 나를 밖으로 쫓아내었느냐고 울분에 차 소리치던 때도 있었다. 나는 나만의 왕국의 국왕이었고, 누군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모두를 버렸던 것이란 걸 지금의 나는 조금 알게 되었다.


배제와 혐오는 고립으로 향한다. 자폐적 자아가 조악하게 쌓아올린 장벽은 필시 자신의 몸을 옥죄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말이 장벽을 쌓기를 멈출 수 있는 것일까?


잔카를로 마크리와 카롤리나 차노티는 그림책 ’장벽‘의 내러티브 속에서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욕망을 교정하는 것은 또 다른 욕망이며, 나아가 그릇된 욕망을 변화시키는 것은 보다 옳은 욕망이다. 두 작가가 탄생시킨 파란 왕은 마치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처럼, 자신만의 성을 쌓고 모든 자기 밖의 존재들을 거부한다. 다른 색을 가진 존재는 비존재라 여긴 것이다.


왕이 장벽을 세우려 마음을 먹은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모든 것은 예견되어 있었다. 파란 사람들을 둘러싼 장벽을 세우기 위해선 빨간 사람들이 있어야했다. 필요에 의해 빨간 사람들은 파란 사람처럼 여겨진다. 이윽고 정원, 도로, 분수, 기념상, 전망대까지 파란 왕의 연쇄적으로 생겨나는 필요에 의해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장벽 안으로 초대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유일하게 불필요했던 장벽이 왕 자신에 의해 허물어진다.


소외된 이들을 초대해 이용해야 한다는 말일까? 아니다. 작가들이 말하는 필요는 도구적인 필요가 아니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만 행복하도록 진화해온 존재이다. 만남은 사건이고, 사건이 없는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흘러가는 시간이며, 잊히는 시간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인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굳이 정원이나 분수가 아니더라도 ’당신‘이 필요하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왜 우리는 그렇게도 빨리 발견할까? 누군가를 자신과 같다고 여긴다는 것 또한 사실상 배제가 아닐까? 마치 그들을 장식장 위의 태엽인형처럼 돌아가는 무의미한 존재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항상 손을 뻗으면 집을 수 있는 탁상 위 물잔처럼 말이다.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아니 너무 단정 지어져 버린 것이다. 문득 팔꿈치에 치여 떨어져버리는 그런 존재. 장벽 안에 있다는 것 또한 장벽 밖에 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이를 뒤집어 적용해보면 다른 색을 가진 사람들의 본질이 드러난다. 다르다는 느낌은 새롭고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나를 침범해 들어왔다는 인식이다. 사건이다.


틀림과 다름의 이슈를 기억해보자. 아무리 다르다고 말을 아름답게 꾸며도, 경황없는 우리의 기분은 틀림을 말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다르다는 용어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하며 스스로 불러들이는 자기연민이 아니다. 새로운 감각의 침입, 그 무례함에 대하여 ’그것은 틀렸다‘라고 반응하는 진실함이다. 쉽게 말해서 ’장벽을 세워보는 것‘이다. 관계는 무례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장벽을 세워야만 장벽 너머의 광야가 구획 지어진다. 그리고 그 구획을 바라볼 때, 그 너머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장벽이 좋다는 말인가?


현대는 장벽을 지우는 시대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장벽을 스스로 허물도록 강요받는다. 구조를 쥐고 흔드는 이들은 청년들에게 무기력과 우울함 권장하고 있다. 세상에서 존재를 드러내야할 청년들은 자진해서 비존재의 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물론 장벽은 무너져야만 한다. 하지만 장벽의 무너짐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무너져야할 장벽은 당신이 채 다 세우지도 못한 돌담이 아니라 저기 저 멀리 세워진 높고 거대한 벽이다.


우리를 모이게 한 이 모닥불이 꺼지면 나는 당신들과 장벽 앞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장벽 앞에서 외치고 싶다. 나는 필요하다고 말이다. 우선 당신들과 내가 서로의 벽을 너머 서로를 찾아야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벽은 우리 사이에 놓인 이것 하나뿐일까. 아니라면 벽들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가 진정 함께 무너뜨려야할 벽은 무엇인가. 그 모든 질문들을 대화와 만남을 통해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해답을 찾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벽 안을 점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장벽 안의 누군가가 우리의 해답을 필요로 할 테니까.


상황극을 한 번 해보려 한다. 자, 우리는 무지개 색 사람이다. 그림책 내용 안에서도 결국은 밖에 남은 사람들 말이다. 다들 감은 눈을 크게 뜨고, 서로의 장벽을 그리고 저 너머의 장벽을 확인하자.

g*******1 2019.07.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