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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이란 지속되는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것..
"복원이란 지속되는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것.." 내용보기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편안해짐을 느낀다. 특히 장편소설보다는 중단편이나 콩트라 불리는 짧은 소설을 읽다보면 내 마음 속에서 서로 잘났다고 경쟁하던 자아들이 조용해지고 책 읽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마 사람 사는 모습들을 잔잔하게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글쓰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선뜻 구매
"복원이란 지속되는 삶을 가꾸고 사랑하는 것.." 내용보기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편안해짐을 느낀다. 특히 장편소설보다는 중단편이나 콩트라 불리는 짧은 소설을 읽다보면 내 마음 속에서 서로 잘났다고 경쟁하던 자아들이 조용해지고 책 읽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마 사람 사는 모습들을 잔잔하게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글쓰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이 책이 눈에 띄길래 선뜻 구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쁘다보니 책 읽을 시간을 마땅히 찾지 못하고 서너달을 책상위에 놓아두다가 이제야 읽었다. 쫓기는듯한 기분으로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작품집에는 표제작을 포함하여 10편의 중단편이 들어있다. 대부분이 7-80년대 작품들이지만 간혹 90년대의 작품과 작가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의 작품도 한편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어제의 문학을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는다는 목적을 가지고 출판사에서 기획하고 펴낸 시리즈의 한 권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작품집과는 달리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1989년에 발표한 표제작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에서 화자는 문인이다. 관변단체에서 운영하는 잡지사의 수기모집에 응모한 작품들의 심사를 맡아 최우수작 한 편을 뽑았지만 수상자가 당선을 없던 걸로 해달란다는 소식을 듣는다. 최우수작이었던 <복원>은 유신을 전후한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 때 한 씨족마을이 교묘하게 저지른 선거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6.29로 직선제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다음해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달, 화자는 평일날 성묘를 하러 가다가 문득 수기의 작가가 살고 있는 곳이 공원묘지가 있는 곳과 같아서 그를 찾아간다. 수기의 작가인 윤노인과 그의 마나님은 화자에게 경계를 풀지 않고 도전적이었지만 제풀에 경계가 풀리고 집안내력을 털어놓는다. 전쟁 때 인민군에게 사살된 윤노인의 부친 이야기 끝에 마나님은 남편이 쓴 수기가 당선되기를 바랬으나, 대통령선거 때 공화당 후보가 구정치인이고 읍내 유세에서 수기에 고발한 장본인이 대통령후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마음이 캥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취소하라고 말했고 취소가 되었으니 얼마나 잘된 거냐고 말한다. 어찌되었든 6.29전에는 꿈도 못 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화자는 월북 납북 문인들의 문학선집에 수록된 복원된 이름들을 읽다가 고등학교 시절의 국어선생이었던 송과묵선생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러나 화자가 알고 있는 선생은 월북도 납북도 아닌 사형을 당한거였다. 그래서 언젠가 책을 펴낸 사람을 찾아가 바로잡아 달라고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약회사 부장이라는 송과묵선생의 막내자제가 전화를 해왔다. 납치당한 아버지의 작품들을 모아 전집으로 꾸미고자 했으나 출판사들마다 뜨악해하자 자비로 발간하고 전집 끄트머리에 아버지의 친구문인과 제자문인들의 글을 첨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화자에게 북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형식의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화자는 유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선생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복원해서 전집의 마지막에 첨부하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입증해줄 제3자의 도움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감옥에서 송선생의 죽음 소식을 처음 전해준 숙부는 생사를 알 수가 없었고, 역시 감옥에서 그 사실을 알았던 고등학교 동창 혜진은 감옥 갔었던 것은 아무도 모르는데 비밀을 지켜달라면서도 앞으로는 만나지 말자고 냉담하게 거절한다. 한때 소설을 쓰고 관직을 거쳐 은퇴한 백민세옹은 한마디로 송선생이 납치당했다고 못을 박는다. 편지글의 첫줄도 쓰지 못했는데 책 나올 날짜가 지나고 송부장의 전화가 왔다. 형님이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고. 그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북쪽으로 간 사람들의 문학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거기에 아버지가 포함되자 동조했다고 한다. 나쁜 일 일수록 정정하는 것보다 동조하는 것이 좋아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형제 누이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화자는 그 이야기들을 귓등으로 흘리며 갈비를 뜯고 자작으로 축배만 들고 있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해서. 작품을 다 읽었지만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우리들이 복원해야 할 것은 과연 이것 하나뿐인지. ‘척결 척결하지만서두 복원도 허들 않고 척결부터 허겠단 소릴 누가 믿남’(171쪽)하며 자릴 뜨던 수기 작가인 윤노인의 말이 작품을 읽는 우리들에게 복원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다.

 

표제작 말고도 책에는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를 통해 민간인들이 겪은 고초를 그린 [겨울 나들이], 전쟁 통에 미군 PX에서 점원노릇을 하며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온 여인들의 이야기인 [공항에서 만난 사람], 인민군이었던 삼촌의 존재가 혹여 가족들에게 피해로 다가올까봐 아버지가 삼촌을 삽으로 내리치던 장면을 목격했던 화자의 기억을 그린 [빨갱이 바이러스]와 같이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룬 작품들이 여러 편 들어있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은 작품에 작가가 천착하는 이유는 아마 전쟁을 겪었고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작가의 가족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노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도 있다. 연달아 딸을 낳은 며느리를 죄인 취급하는 친구를 만난 후, 화자는 친구에게 손자든 손녀든 차별하지 않고 대접해 주었던 치매든 자신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해산바가지], 폐암이 뇌로 전이되어 죽음의 길로 들어선 남편과의 이야기를 다룬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치매기로 가출한 어머니를 반년도 더 지나 포교원이라는 절집에서 발견하지만, 절집 보살과 함께 평화롭게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는 [환각의 나비]가 그것이다.

 

작품집에 실린 10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인 것 한 가지를 찾는다면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작품 해제에서 손유경은 ‘박완서 작품은 죽은 자의 비극과 생존자의 불행을 기록하고 발설하는 그 과정 자체’라며, 작가가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반복하면서도 피로 물든 기억의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생의 의지’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를 다른 말로 치환하자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자각이 아닐까 싶다. 살아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애도할 수 있고, 또 그런 삶을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가꿔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복원이란 비극 이전의 삶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그 이후에 지속되는 삶에서 살아있음을 누리고 사랑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읽었던 박완서 작품들과는 달리 때로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k*****1 2020.06.22. 신고 공감 15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