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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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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쯤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까지의 몇 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었는데 그 중 한권이 이 책이다. 입사한 뒤 어떤 업무로 500명 쯤에게 매일같이 메일을 보내야 했는데 너무 업무적이라 딱딱하다는 의견이 있어, 본의 아니게 내가 쓴 글을 넣어야 했다.한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실어 보냈는데 처음으로 몇 개인가의 답장을 받았다.신입치고는 용맹스럽게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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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쯤에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까지의 몇 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었는데 그 중 한권이 이 책이다.

 

입사한 뒤 어떤 업무로 500명 쯤에게 매일같이 메일을 보내야 했는데 너무 업무적이라 딱딱하다는 의견이 있어, 본의 아니게 내가 쓴 글을 넣어야 했다.

한번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실어 보냈는데 처음으로 몇 개인가의 답장을 받았다.

신입치고는 용맹스럽게도, 거대 조직이 멸망하는 이유에 대해 나름 냉정한 분석을 했던 것이다.

 

동시대의 서구 국가들이 절대왕정으로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작지만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급격한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체질을 갖추는데 비해, 명나라는 비대한 체격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 운영을 규범, 사회적 통념 등의 準-법적인 것들에 의존해 통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누구도 변혁을 주도해 나갈 수 없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말았는데, 역사상 가장 무능한 통치자로 꼽히는 만력제 또한 사회구조의 희생자로 읽히는 면이 있다. 누구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상징이 만력제이다. 그야 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장거정, 척계광 등이 주도하면 개혁은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무너뜨리려는 관료사회의 습성에 의해 좌초되고 그야 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태평성대 1587년은, 그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이후 서구에 농락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청나라를 잊은 건 아니지만 청나라도 동일한 사회구조를 이어받았다)

 

대기업은 재력과 풍부한 인력으로 거대한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고 힘이 집중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 그런데 조직이 거대해지다보면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경계선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가 그 회사가 무너지는 시점이다.

아직까지는 삼성은 그런 경계선을 만나지 못한 듯 하고, 내가 몸담던 회사는 쇠락 일로에 있다. 나는 아마도 짧은 기간동안 회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불운한 미래를 예언했던 것이다.

조직이 그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CEO가 사업가가 아니라 관리자로 머무르며 종이컵 하나 절약하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타이밍에 중요한 투자를 망설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듯 하다.

 

레이 황의 대역사관은 현대에 유행하는 에피소드 중심의 역사관에 대한 거부이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정말로 행운에 행운이 겹쳤다고 느낄만한 요인들이 너무 많다.

임진란이 일어나 명나라와 조선의 체력을 깎아먹었고, 이괄의 난으로 조선북방군이 와해된 틈을 타서 후금은 무인지경을 달리듯 조선을 침략해서 인구와 부를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는 명장 원숭환을 스스로 제거했고, 흉년으로 이자성의 난이 일어났으며, 이자성이 하필 북방을 지키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의 애첩 진원원을 뺏아가는 바람에 복수심에 불탄 오삼계가 청나라 군대를 초빙해서 그렇게 대륙이 통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밝혀내서 역사의 우연성을 밝혀 내는 게 현대 역사의 트렌드이다.

레이 황은 이를 거부하고, 대역사관을 주창하며 오랜 호흡으로 관찰하며 중국이라는 사회의 내부 구조를 파헤쳐 근원에 숨어있는 요인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 읽은 이 책은 십 여년의 경험을 통해 더욱 깊이있게 읽힌다.

대부분의 역사는 묘하게도 멸망하는 시점이 가장 재미있다. 삼국지처럼.

지금은 떠난, 머지 않아 쓰러질 회사를 체험하는 동안 멸망의 요인은 다양한 것 같아도 속살은 비슷비슷하구나 싶더라.

 

 

 

g*****7 2017.02.2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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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 레이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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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최근에 읽었던 개리 맷팅리의 <아르마다>와 동시간대의 명나라 역사를 다룬 책이어서 눈길을 끈 책이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명나라 13대 황제였던 만력제 재위 15년인 1587년을 기점으로 명나라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만력제는 명나라 역사상 가장 긴 48년의 재위 기간 동안 명나라를 다스렸다. 사실 명나라는 현군의 등장이 극히 드물었다. 홍희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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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최근에 읽었던 개리 맷팅리의 <아르마다>와 동시간대의 명나라 역사를 다룬 책이어서 눈길을 끈 책이었다.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명나라 13대 황제였던 만력제 재위 15년인 1587년을 기점으로 명나라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만력제는 명나라 역사상 가장 긴 48년의 재위 기간 동안 명나라를 다스렸다. 사실 명나라는 현군의 등장이 극히 드물었다. 홍희제(4대)에서 선덕제(5대)의 기간을 '인선의 치'라 일컫는 태평성대의 시기를 가져왔으나, 그 기간은 10년 정도였으며, 9대 홍치제의 치세도 18년 정도였으니 대략 280년의 명의 역사에 비한다면 그리 긴 시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려 48년간 명을 다스렸던 만력제는 어떠했을까? 책을 읽기 전에 간단히 조사를 해보면 초기에는 '만력중흥'으로 불리우는 치세로 인하여 명군의 길을 걸을 수 있었으나, 장거정의 사망 이후 점점 암군의 길을 걷게 되는 인물이었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1587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일까?

 중국인 입장에서(저자는 국민당에서 복무를 하였고, 마오쩌둥의 집권으로 인하여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서 역사학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시점이 세계적으로 선진 문화를 가지고 있던 중국의 모습에서 점차 낙후된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시점으로 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책의 제목대로 아무 일도 없던 1587년의 명나라 역사는 어떠했는지를 자료의 수집과 분석을 통하여 그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아무 일도 없던 시기여서 그런지 특정한 사건보다는 인물들을 통하여 그 시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거정과 만력제이다. 이 책을 통하여 장거정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있었는데, 그는 각종 개혁을 통하여 명나라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뜻밖에도 장거정은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강력한 추진력으로 인하여 개혁에 대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었으며, 그를 스승으로 모시던 어린 만력제와 태후를 든든한 세력으로 두고 있었다. 만력제는 황제이기에 앞서 장거정을 스승으로 받들면서 그의 정책에 대하여 지지를 표명한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들어본 일조편법과 같은 내정 개혁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장거저의 개혁도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낸다. 1587년은 바로 장거정 사후 5년째 되는 해였다. 장거정이 살아있는 동안 만력제는 그를 믿고 지지를 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장거정에 반대하던 세력들의 고변으로 호화스러운 삶을 살면서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였던 장거정에게 실망과 함께 분노를 표출하였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장거정에 대한 실망에서 황제를 견제하려는 대신들과의 갈등으로 심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만력제는 점점 정치에 무관심 내지는 소극적으로 대응을 하며 후궁에 빠져 암군의 길로 향하게 되며, 이는 결국 명의 쇠락을 부채질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장거정의 뒤를 잇는 신시행은 그럼 어떤 모습으로 명의 역사를 보여줄까? 장거정의 강력한 정책 추진으로 많은 정적을 만들고, 결국 사후에 만력제로부터 죄인으로 취급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신시행은 최대한 절제하고 중용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도 장거정의 추천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한계가 있었기에 장거정의 정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장거정과 같이 독단적인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크게 적을 만들지 않고, 만력제로부터 어느 정도의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지만, 효율적인 정책 추진에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항상 중간에서 조정하는 입장을 보이던 신시행의 정국 운영은 결국 명나라의 문제점을 그대로 이어나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문신 중심의 명나라 조정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이들의 가장 큰 실책인 여진족인 누르하치의 세력을 미리 꺾어 놓자는 무신들의 주장마저 묵살하는 장면을 등장시키면서 이 결정이 결국 명나라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패착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당시 명나라의 법에 대한 의식은 어떠했을까? 해서라는 인물로서 그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해서는 강직한 관리로서 철저한 법 질서 확립을 주장한 인물이었다. 그는 만력제의 아버지였던 융경제에게도 직간을 하여 죽을 뻔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대쪽같은 인물이었다. 당시 명나라의 관리들의 수입은 상당히 박한 편이었기에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상납금에 의존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각 지방의 관리들을 법에 따라 철저히 통제를 한다. 분명 이러한 해서의 행위는 시대를 초월하여 마땅히 칭찬을 받아야 할 사항이지만, 당시 명나라의 관리들은 해서를 꽉 막힌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그를 멀리한다. 그러나, 해서는 죽을 때까지도 꼿꼿하고 우직한 면을 보이면서 법 준수의 화신으로 남아 있지만, 서서히 망조에 깃든 명나라의 조정에서는 해서 조차도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명나라의 군사력은 척계광으로 설명되고 있다. 왜구 침입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명나라는 장거정의 천거로 인하여 척계광이 등장하면서 효과적으로 왜구를 격퇴하게 된다. 철저한 훈련과 엄한 군기, 그리고, 공적에 따른 공정한 대가를 지급하면서 척가군이라 불리울만큼 충성스러운 군대 조직을 형성하여 나름 군사 개혁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설명하였듯이 문신 중심의 명나라에서는 이러한 척계광을 시기하면서 그를 해안에서 북부 지방으로 이동시켜 북방에 대한 방위에 전념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중앙의 문신들에 의하여 사사건건 간섭을 받고, 더욱이 친밀한 관계였던 장거정의 사후에 장거정의 정적들에 의하여 결국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만리장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방어 형태를 구축하고 있던 척계광의 해임은 결국 수십년 뒤에 명나라를 침공하는 청나라의 입장에서는 천우신조였을 것이었다. 이로써 결국 명나라의 군사력은 개혁의 길에서 다시 엉성한 통제 불능의 길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등장 인물은 이탁오라는 인물이다. 당시 명나라는 주자학을 기조로 유학이 발달되었다.(이것은 조선도 역시 동일하다.) 하지만, 왕양명에 의한 양명학과 같이 주희의 격물치지에서 사람의 관점에서 주위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의 해석을 강조하는 다양한 학풍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러한 부분은 주자학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문난적을 당하던 조선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좀더 개방적인 사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기에 이탁오도 역시 나름의 사상을 체계화하면서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와 해석이 달랐던 사람들에 의하여 공격을 받고, 개인적인 생활까지 비난을 받게 된다. 결국 옥사로 한 많은 삶을 마무리하는 이탁오의 모습을 통하여 사상적으로 굳어져 있던 명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자가 1587년이라고 정하긴 하였으나, 이 책은 그 시점을 전후로 한 명의 몰락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아무런 사건이 없었던, 겉으로 태평성대의 모습을 보여준 시기였으나, 각 인물들의 행적을 토대로 하여 이미 쇠퇴하고 있던 명나라의 모습을 분야별로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좀더 우리의 역사와 연관을 지어본다면 5년뒤인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으니, 그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1587년은 명나라로서도 거의 황혼에 접어들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명의 몰락 원인을 각 분야별로 정리하여 서술한다면 방대한 양이 될 것이기에 1587년이라는 시간을 설정하여 저술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거대한 명의 몰락. 그러나, 그처럼 거대하고 정립되어 있던 법의 체계로 인하여 마치 관성의 법칙대로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시기였기에 1587년이 아무 일도 없었던 해로 가려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꽤 많은 양을 할양하여 저자의 중국에 대한 역사관과 또 다른 저서인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의 서문으로 보이는 글도 싣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중국의 역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추가적으로 파악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길이라고 하지만, 자칫 딱딱해 보이거나 지루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이 책과 같이 독특한 관점에서 인물들을 통한 당시의 역사적인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g*******7 2014.03.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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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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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허물을 벗기며>나는 황제를 항상 호의호식하며 인간으로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명 중기 모든 제도가 단단히 굳어지고 난 후부터 이러한 생각은 대단한 착각인 듯하다. 노도와 같은 허례허식에 나조차도 숨이 탁 막히고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만력제를 동정하게 될 정도였다.사실 이 책의 진수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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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허물을 벗기며>


나는 황제를 항상 호의호식하며 인간으로서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명 중기 모든 제도가 단단히 굳어지고 난 후부터 이러한 생각은 대단한 착각인 듯하다. 노도와 같은 허례허식에 나조차도 숨이 탁 막히고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만력제를 동정하게 될 정도였다.


사실 이 책의 진수는 저자의 '전근대성'에 대한 고민에 있다. 전근대성과 성리학, 도덕성에 대한 집착 이 세 가지가 항상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과 명에게 이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 듯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도덕성에 대한 집착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지적된 바가 있는데, 저자는 명나라의 사회 관습을 논하며 시종일관 이를 비판한다. 그 밖의 사회 발전을 저해했던 모든 전근대성에 대한 서술이 이 책에 들어있다. 이 모든 것은 저자가 느꼈던 (그리고 많은 한국인들이 근대 역사를 배우며 느낄) 당혹감, 낭패감, 열등감, 무력감의 산물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저자의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여담인데 깨닫고 보니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나는 중국인들도 이런 고민을 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유사한 사태를 공유했던 만큼 마찬가지로 유사한 생각에 다다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세 가지 기본적 구성 원리인 존비·남녀·노소의 구별은 어느 것도 경제·법치·인권과는 관련이 없으며, 어느 한 가지도 국가 발전의 원리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P. 405)"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상법(商法)으로 상층 구조와 하층 구조를 연결시키는 데 반해, 낙후한 국가는 구식 농촌의 관습 및 구조로 행정의 기초를 삼고 있다는 점이다." (P. 407),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모두 유가 사상과 같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지 않은 원칙에 제약을 받고, 법률도 창조성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 사회의 발전도 필연적으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원리 원칙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기술적인 부족함을 보완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P. 382), "왜 중국은 일본처럼 되지 못했던가? (...) 그들이 (...) 뛰어난 유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른 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존비·남녀·장유의 사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P. 442) 


그럼으로써 저자는 왜 중국이 일본처럼 근대화될 수 없었는지, 마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표현대로라면 어째서 '일본은 우등생 중국은 열등생 조선은 낙제생'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해답을 풀이한다. 먼저 답부터 얘기한다면 이러한 근대화는 결코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내겐 "그동안 조선이 항상 일본을 앞질러왔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운 좋은 개혁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켰다"라는 진술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본서의 문장에도 잘 나타나있다. "이러한 상황은 겉보기에 짧은 기간에 갑자기 나타난 것 같지만 실은 장기간의 변화와 발전을 거쳐 마지막에 드러난 것이다." (P. 414) 


저자는 이렇게 힘주어 이야기한다: 사회 발전을 얕보지 마라! "군비가 단지 무기에 있지 않으며 건전한 행정 기구와 제정 제도가 뒤에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행정부의 기능이 사회적 기능에 좌우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 사회가 17세기에 머물러 있는데도 황제의 조서 한 통으로 20세기로 약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 (P. 445) " 사실 이미 오래전에 난 결론이지만, 개혁의 성패는 그 안에 내재한 구태의연한 도덕을 없애는데 있다. 도덕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과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덕을 바꾸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도덕이 자라날 씨앗과 도덕을 용인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적용하면, 조선과 일본의 관계처럼 "그동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문명)이 항상 서양보다 잘 나갔지만 서양은 산업혁명을 통해 운 좋게 상황을 역전시켰다"라는 말이 허구성을 내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력하게 느끼게 된다.


저자의 논지는 이렇게 수렴된다: "근대적인 기술과 낡은 사회 조직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 조직을 정확하고 엄밀한 것으로 진보시키든지, 이완된 사회 조직이 새로운 기술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말든지 둘 중 하나였던 것이다." (P. 297), "1939년 모택동은 "중국 봉건 사회 속의 상품 결제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맹아를 잉태하여 기르고 있어서, 비록 외국 자본주의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중국은 여전히 완만하게나마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견해이다. 사법권과 입법권을 확실히 통제하여 정부가 그 기능을 다하여 상업상의 신용을 보장하지 못하면 자본주의는 어떤 국가에서도 실행될 수 없다. 상품 경제가 이러한 조직력을 결여하고 있고 또 운동의 차원에서 전개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역시 잉태되고 양육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맹아'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의 형성은 국가 체제를 거쳐야 하고 또 사회 전체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또 언제나 종교와 신앙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대로 '완만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발육 성장할 수는 없다. (...) 어느 하나 국내외의 저항에 부딪힌 개혁을 거치지 않고 성공한 경우가 없는 것이다." (P. 466) 나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맹아라는 말이 한국에서만 쓰이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쓰이는 말이었다니. 신기했다. 사실 맹아라는 표현 자체가 한국에선 쓰일 일이 전혀 없는 단어임을 감안하면 중국에서 먼저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로서는 한국인과 중국인으로서의 '우리'가 느낄 그 감정들이 (당혹감, 열등감 등등) 그렇게 나쁜지 모르겠다. 또 그것을 논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으며, 일본은 근대화에 적절한 기반을 갖고 있었으나 조선은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나쁜가? 꼭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를 볼 필요는 없다. 조선은 조선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과거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다면 발전을 위해 찾으면 되지 자학을 위해 찾거나 과거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해 찾는 건 바보 같은 짓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담론에는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같은 사태를 면밀히 분석하고 앞으로를 위한 주춧돌로 삼는 것일 것이다. 


3.5점

y*****2 2018.06.10.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