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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켄드 성실상으로 받았던가, 채널예스 인터뷰 후 드미트리님이 챙겨주셨던가?? 시간이 지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예스이십사 루트를 통해 내게 온 책은 한결같이 '생각지 못하게' 재미있거나 깊이 있어서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진작 읽을 걸'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증정 도서가 좋은 책이기 쉽지 않은데, 어쩜 이렇게 나에게 꼭 맞는 재미있고 좋은 책을 주시는지!! 요즘 북켄드가 없어져서 아쉽고도 아쉬울 뿐이다.
중학교 10년차 교사이고, 지금도 3년 째 연이어 중2 담임을 하고 있다보니 책 내용 전체가 뼛속 깊이 와닿는다. 19세기 근대 공교육 학교 제도가 가지고 있던 악습은 21세기인 지금도 남아 있어서, 구조, 정책, 제도가 야기하는 폭력을 학교에서 매일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서 사건, 사고가 터지면 한 사람 한 사람은 착한데 왜 학교에서 끊임없이 이런 일이 터질까 궁금해지곤 한다.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저자는 보여준다. 사회학자로서 학교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사건을 그대로 기술하고 질적으로 분석하고,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교사로서는 그 모든 부분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책 전체를 옮기고 싶을 만큼 읽을 만한 책이기에, 기록해두고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보기 위해 다소 분량이 많지만 옮겨 적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1. 단적인 예: 소모적인 용의복장 검사 왜 학교는 용의복장을 세밀하게 정해주고 검사하고 있을까. 담임으로서 학교 생활에서 가장 큰 고통을 야기하는 분야 중 하나기에 작년 좋은교사운동 정책토론회를 준비하면서 학생들과 교칙 분석을 하며 생각을 들어보았다. 발제하고 글을 잡지에 싣고 후속 작업을 고민하는 최근, 어렵사리 교사 대토론회를 연 후 평교사의 생각은 비슷하지만 '학생다움', '명문학교'를 만들기 위해 용의복장 검사를 버리지 못하는 일부 윗분들의 생각 덕분에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학생다운 (어른이 보기에) 단정한 모습으로, 어른들의 '말씀'에 착하게 순종하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권위의식은 한창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청소년과의 소통을 방해한다. 그러한 어른의 모습은 전혀 존경스럽지 않은 '꼰대'로 비취질 뿐이다.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는 그들의 귀에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교사로서는 어른들의 이러한 피해의식이 교사 한 명이 여러 학생을 상대해야 하는 다인수 학급이라는 구조 자체에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비해 10명 정도 줄어든 24명을 데리고 비교적 매우 아름답고 쾌적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예산이 들더라도 교사를 많이 뽑아 학급당 학생수만 줄여도 학교 혁신을 상당히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2학년이 되자 학교와 지역을 제패하기 시작했다. 다른반에 차례로 난입하여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고, 수업을 방해하는 일도 있었다... A중학교의 학생들은 '군단'의 폭력적 지배에 겁을 먹고 두려움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학교는 그들이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후에 생활지도를 엄격하게 할 방침을 세웠다. 즉 폭력그룹이 무엇을 하든 경찰을 부르지 않았고, 정학 처분도 하지 않았으며, 멋대로 폭력을 휘두르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대신에 애꿎은 신입생들의 복장과 두발상태를 엄하게 검사하고, 교사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불손행위를 하는 학생들을 단속했으며, 학교행사에 강제로 참여시킴으로써 학교질서를 회복시키려고 했다." 62-63쪽. "학교 교사의 경우, 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는 청소년들의 태도나 복장이 학생답지 않다고 느껴질 때 자신의 세계를 파괴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왠지 모를 피해의식을 느끼고 억누를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다. 또 교육 서비스를 받는 청소년들을 학생답게 하는 것이 학교를 정화하는 법이라고 생각하여 교사에 의한 다양한 인격지배나 폭력이 버젓이 통용되기도 한다." 130쪽.
2.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함(정신승리, 센척, 사이코패스)
학생들도 중2병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센척'을 꼽는다. 정말 강한 사람은 센 '척'하지 않는다. 그래서 '센척'하는 친구를 보면 마음 속으로는 무서워하기보다는 불쌍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착하게 바꿔주려 하기 보다는 귀찮아한다. 예전에 따돌림 당했던 학생이 적당한 상대를 정해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을 없앤다는 저자의 통찰이 대단하다. 그는 마치 사이코패스인 양 남들 앞에서 악랄한 행동을 즐기는 척한다. "아Q정전"처럼 남들은 그가 세다고 마음 깊이 인정하지 않지만 스스로는 세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정신승리다. 이렇게 변모한 가해자를 방치하는 사이 주변 친구들은 방관자가 되고 새로운 피해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원인을 파악해서 대처하지 않으면 학급은 보이지 않게 곪아 터질 수 있다. "고통의 과정을 거쳐 강인해진 자들은 슬픔이나 아픔, 정의, 인간다운 감각(휴머니즘)을 단절하고 자신을 무쇠와 같은 강인한 이미지로 개조하는 일에 자기 자극적으로 집착한다. 자신이 죽게하고 다치게 한 피해자의 가족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무표정하게 마주한다는 것은,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버리고(극복하고) 인간이기를 초월한 무쇠와 같은 강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것이야말로 '강인함'의 진수이다." 119쪽. "A는 ... 이지메에 가담했다. "그러지 않으면 강해보일 수 없거든요. 강하게 보이지 않으면 언제 당할지 몰라요. 동정은 금물. 자신 말고는 모두 적이에요. 섣불리 상대했다간 큰일 나요. 친구도 믿지 않았어요." 서열 상위의 아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중 누구 하나가 만만해 보여도,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라 함부로 상대할 수 없었다." 149쪽.
3. 급진적 대안 1: 학급 폐지+ 법으로 시민 의식 깨우기, 학교를 치외법권 속령에서 벗어나게 하기)
저자는 학생들의 악랄한 이지메 행동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원인을 분석한 후 교육계 안에 있는 성인들은 절대 생각 못할 급진적 대안을 보여준다. 첫번째 대안은 학급을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지난해 성적에 따라 랜덤으로 모인 학생은 갑자기 운명처럼 같은 학급 학생들 모두와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강요당한다(솔직히 나도 자신과 맞지 않는 친구와도 무조건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하기 미안할 때가 있다). 잘 맞는 친구와는 잘 지내고, 나머지 친구와는 자유로운 한 개체인 인간으로서 부딪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면 괜찮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학급이란 체험학습, 체육대회 등을 모두 함께 즐겁게 해야만 하는 '공동체'로 주어져 있다. 담임에게는 너무나도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고, 반장 부반장 역시 공동체를 잘 유지해야 한다는(수업시간에 떠들면 반장이 책임지라고 말하는 교사, 즐거운 행사를 위해 반장이 희생할 부분 많음, 캠페인과 리더십 캠프를 위해 학교에 자주 나오게 함 등등) 부담을 갖는다. 생각해보면 핀란드나 덴마크 공립학교 학생들은 매우 자유로워 보였다. 용의복장은 점검하지 않게 된지 오래인 듯 보였고, 수업시간에 다소 늦더라도 선생님께서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워 보였다. 학년이나 학급 체제가 틀에 잡혀 있지 않고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교실을 이동하며 듣는 구조였다. 일본이나 한국의 학급 구조는 지금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유지된 구조였지만, 생각해보면 학급 폐지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 생각해볼 만하다. 지금은 대안으로 한 교사가 소수의 학생을 꾸려가는 동아리 형태의 학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김진우, "나와라 교육대통령"). 동아리 조직은 비슷한 진로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묶을 수도 있다. 또한 마치 속령이자 치외법권 같은 학교에서 교육주체들이 성숙한 시민으로 서게 하기 위해 학교 밖과 같이 법적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으로서는 학교 안에서 사건, 사고가 벌어졌을 때 쉬쉬 하며 숨기고, 혹 피해자가 법적 조치를 취하고 싶다면 학교나 마을 공동체에서 방출될 각오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러한 조치는 학교에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생 때 이지메를 했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위와 같은 학교 문화가 이지메를 더욱 조장한다고 분석한다. 이지메 하는 학생에게는 센척해도 자신에게 해보다 이익이 훨씬 크다는 판단에 더욱 악랄한 행위를 반복한다는 주장이다. 학교도 사회처럼 대처한다면 자신에게 피해가 오리라는 계산 때문에 이지메를 멈추리라고 보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조작형 이지메와 관련해서는 학급제도를 폐지하도록 한다. <해결의 열쇠> 가해자가 학생이든 교사든, 폭력에 대해서는 경찰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면 '계속하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한마디로(이해타산의 가치가 바뀌어) 폭력에 의한 이지메는 확실하게 멈춘다. 학교나 직장에서 자신이 큰 손해를 보면서까지 특정 상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일은 드문데, 그 배경에는 '해도 괜찮은' '하는 편이 오히려 득'이라는 이해 구조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4장에서 논한 이해와 전능의 접합에서 생겨나는 심리-사회적 정치 공간 가운데 폭력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타입은 법의 적용으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법을 도입하는 것은 장의 정보를 바꾸고 더불어 현실감각의 모드를 전환하는 강력한 작용을 한다." 196쪽.
4. 급진적 대안 2: 학교 힘빼기, 자격시험화(교육기관과 평가기관 분리)
일본이나 한국처럼 공교육이 선택 여지 없이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확고한 의무교육 형태일 때 장점도 있지만 폐해도 상당하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학교 체제가 이지메를 조장한다고 본다. 학생이든 어른이든 기본적으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으로 선 후 본인의 선택에 의해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데 지금 학교 체제(어른 세계도 마찬가지, 전시에 있었던 끔찍한 이지메로부터 직장에서의 따돌림 관행 등)는 '공동체'를 강요하다보니 '중간집단전체주의'가 횡행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의무교육기관인 공립학교가 가진 힘을 빼야 한다. 저자는 표와 같이 의무교육을 없애고 권리교육을 하자, 학생의 필요에 따라 알아서 배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를 주장한다. 지금처럼 방대한 교육량을 학교에서 굳이 받지 않고 필요한 교육을 자신이 매력 느끼는 기관에서 찾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교육을 받게 하는 장치로 교육기관과 평가기관을 분리해 배워야할 내용을 잘 배우고 있는지 자격고사를 만들면 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평가 혁신은 수업자와 평가자가 밀착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돌아볼 만하다. 저자의 주장처럼 내신, 추천, 수행평가에 있어 수업자와 평가자가 동일한 상태에서 점수가 상급 학교 진학과 취업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면 학생은 정신적 매춘과 교사에 대한 비굴함을 배울 수 있겠다는 주장이 공감 되었다. 권리교육을 위해서는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바우처로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주어 개인이 필요할 때 자신이 필요한 교육을 찾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 역시 복지국가들을 보면 내가 진로를 잘못 잡았더라도 일을 쉬고 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생활비와 교육비 지원 등으로 배려하고 있다. 이렇게 언제든 진로를 되돌려 좀 더 행복한 삶을 향해 방향을 틀 수 있는 구조는 무한 경쟁체제로 인한 긴장도를 낮춰준다. "권리교육이란, 당사자가 자기 의지에 따라 참가할 권리를 갖는 교육이다. 국가나 지방공공단체는 이 권리를 만인에게 보장해야만 한다. 권리교육은 생애학습, 사회교육에 포함시킨다. 연령 제한은 없다. 대상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시민이다. 또 권리교육의 장은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시민적인 공간이 된다. 권리교육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대등한 시민으로서 교제하는 시민 상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 새로운 교육제도에서는 의무교육이든 권리교육이든 학교를 기본 유닛으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교육제도에서는 권리교육을 학습계와 향유계(자유로운 '유동-착상'의 축적에 의한 자기 형성과 관계 형성 지원)로 크게 나눈다. 이에 따라 관계 형성은 관계 형성으로서 매력과 행복감에 의해 자유로이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또 뜻하지 않은 집단주의에 방해받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속도에 맞는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된다. 현행 학교제도에서는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 '배우는' 일이 강제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 잔혹한 심리-사회적 현상이 만연하는 것은, 5장에서 상세히 논했듯이 '배움의 공동체'라는 기치를 내걸고 청소년들을 온종일 강제적으로 부대끼며 지내게 하는 학교공동체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또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이 '공부를 하는 것'이라는 현실감각이 만연하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습득하지 않더라도 종일 교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공부했다'고 여긴다. 학교에서 긴 시간 수업을 받고, 심지어 학원까지 다니면서도 성적이 나쁜 경우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예삿일이다. 그들은 강제적인 집단생활 속에서 인격을 무한정으로 지배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집단 학습(배움의 공동체)을 반복하면서 무능의 습성을 몸에 붙인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점수를 얻어도 태도가 나쁘다거나 협조성이 떨어진다고 인정되면 불이익을 당한다. 고등학교는 공부해서가 아니라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서 좋은 인상을 심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감각마저 만연한다. 내신이나 추천이나 수행평가 따위의 제도는 비굴한 정신을 함양하고 정신적인 매춘을 부추기며, 과제 수행이라는 점에서는 인간을 무능하게 만든다(단기적인 정책으로 분류했으나 내신, 추천, 수행평가는 즉시 폐지되어야 할 제도이다)." 222-224쪽.
5. 이상향: 투명한 사회에서 벗어나기(공동체가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 '각자의 삶의 방식과 관계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자유로운 사회' 결국 저자는 학교나 사회에서의 이지메는 '투명사회'이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병철의 "투명사회"나 영화 "소셜포비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공동체가 개인을 '지켜보고' 있는 구조 속에서 개인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설 수 없다. 현대에서 독재자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지점은 중간집단전체주의이다. 중간집단 다수에게 따돌림 당할까봐 눈치보며 살아야하는 구조이다. 공동체가 제시하는 정답대로 살아야만 하는 삶은 답답한 삶이다. 이에서 벗어난 삶을 살았을 때 이지메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학교에서부터 무의식 중에 주입된다는 지점 역시 무섭고 슬프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이상 사회는 개인이 각자가 타고난 성향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이를 기본으로 나와 맞는 매력적인 타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자유로운 사회이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사회의 원리와 반대되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그것은 투명한 사회이다. 투명한 사회에서는 무엇이 바람직한 삶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관계인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뛰어넘어 결정된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삶은, 모든 이에게 바람직한 삶이어야만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체가 전체와 함께 공명해야 하는 회화와도 같은 인상을 타인에게 강제한다. 사람들은 개개인이 분산되어 행복을 추구하는 불투명함이나 느슨함에 '어머니와 같은 사회'가 더럽혀진다고 느끼고, 불쾌하고 불안해한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이 공존한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세계(코스모스)가 더럽혀졌다'는 증오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잔혹한 짓을 태연하게 행한다. 사회는 '우리'가 정한 삶의 방식으로 뒤덮인 공동세계(코스모스)여야 하는 것이다. 학교는 이러한 투명한 사회의 전형이다. 학교는 원래, 학습지원 서비스를 젊은 시민에게 제공하는 조직이자 공부를 가르치는 장이다. 그런데 분수나 알파벳도 모르고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있어도 많은 교사들은 (어려운 점은 있겠지만) 학교(코스모스)가 붕괴되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학습지원 서비스를 받는 클라이언트(학생)가 당연한 시민적 자유로 두발을 염색하거나 피어싱을 하거나 교복을 입지 않거나 하면, 교사들은 학교가 오염되고 파괴당하기라도 한 듯 피해의식과 증오로 가득 차고, 그것이 대역되인 양 소란을 떤다. 학교는 교복을 입히고, 양말 색이나 머리 길이를통일하고, 운동장에서 '차렷' '앞으로 나란히'를 시키거나 하면서 학생을 '학생답게' 만들려고 한다. 그 '학생다움'에 예속함으로써 단지 학습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곳에 성스러운 '학교다움'이 현현한다. 왜 학생이 염색을 해서는 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성스러운 '학교다움'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생활지도에 열중하는 교사들의, 마치 학생의 목숨보다도 치마 길이나 양말 색깔(학생다움)에 가치를 두는 듯한 그 과정된 분위기가 이해된다. 학습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업원(교사)이 학생답지 않은 클라이언트(학생)에게 피해의식(수치심)을 느끼고 분노하여 폭력을 행사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투명한 사회에서는 신, 학교, 국가, 민족, 공동체 등에 '나'의 존재가 관철되고 있음을 매일 구체적으로 나타내며 살아야 하고, 그 때문에 삶의 방식이 정해져버린다. 그 'OO다운'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사회를 가득 메움으로써 개개인의 생명보다도 존엄한 집합적 생명으로서의 공동세계(코스모스)가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다." 202-20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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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메를 왕따라고 지칭
1. 교육부의 어이없는 정책이 준 선물
- 갈수록 심해지는 왕따 문제에 대한 교육부의 대처가 너무 어이없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의해 읽게 된 책.
2. 법의 테두리가 미치지 못하는 성역 (무법지대)
-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왕따가 일어나며, 이 현상은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모, 심지어 선생들까지 특수한 관계가 얽혀서 쉬쉬하게 만든다는 끔찍한 내용.
- 저자는 이 끔찍한 내용을 심리학적으로 잘 접근하여 그 실체를 완전히 해부한다.
-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 모든 권력관계를 학교라는 특수한 배경에 빗대어 그 무엇보다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로만 이뤄진 공간이기에 교사라는 침입자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교사를 자기들만의 세계에 끌여들이는 (고자질하는) 학생을 배신자로 여기며 더욱더 괴롭힌다.
- 결과적으로 한 학급에 억지로 가둬 문제가 생기고 교사들은 교권을 마치 신성한 권리인냥 여겨 방치하여 문제를 야기한다는 측면이 가장 크다고 본다.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벌여졌어도 언제나 자기 학교에 문제가 없다고 떠드는 뻔뻔한 교장과 교사들을 보라...)
3. 왕따 문제는 방지하는 방법
- 저자는 왕따 문제를 방지 하기 위해서는 학급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곳에서 몰아 넣는 강제 교육이 아니라 의무교육과 권리교육을 나눠 여러 단체를 설립 후 학생들이 골라서 들을 수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 학생에게도 법적의 테두리를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이 큰 피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남을 괴롭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기에' 라는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자유권리가 보편화되어 남과 거리를 둘 권리를 인정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4. 필자의 생각
- 왕따 문제는 사실 초, 중, 고, 군대, 직장 생활에서까지 모두 나타나는 문제이다. 다만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큰 제재를 받기 때문에 폭력이 수반되지는 않는다.
- 이런 것을 볼 때 왕따로 인한 자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역 자체를 무너뜨려야 되며 마찬가지로 교사들의 교권에 대한 개념 역시 다시 세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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