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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깡꿈월드입니다.
오늘은 아주 유명한 분에 대해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한국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 김환기의 삶과 예술 이야기.
988.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을 하자면 이 책은 김환기 본인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전기 작가 이충렬님의 손에서 복원된 김환기의 삶이다. 그러니 사실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길 바란다. 그럼 시작해보자~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면 읍동에서 태어난 그는 1933년 4월 스무 살의 나이에 니혼대학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집안은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환쟁이'의 길을 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답 천석지기를 관리하며 지주로 살아갈 운명이니 무슨 공부를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리라.
다만 그는 아버지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첫딸을 낳았다며 잠깐 다녀가라는 전보가 왔지만 가지 않았다. 딸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그 그리움마저 그림에 올인했다.
그는 전위를 표방하는 미술단체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참여함으로써 추상의 세계는 물론, 미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이며, 그런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고, 그런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문학과 음악 등 문화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때 가슴에 새겨둔 상상력과 독창성은 훗날 그가 더 넓은 미술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그림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 없는 결혼으로 공허한 마음을 안고 살던 그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려준 그녀는 바로 변동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아이 셋을 가진 30대 이혼남이었기에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 시인 이상과 결혼한지 얼마 되지않아 남편을 떠나보낸 그녀도 사별의 아픔이 아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김환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 앞에 가족의 반대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변동림은 김환기의 아호였던 '향안'이라는 이름으로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사실 김환기가 이렇게 명성을 얻기까지 그녀의 희생이 절대적이었다. 부자로 태어나 고생 한번 한 적이 없었던 김환기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고, 그때마다 돈을 빌리러 가고 집안을 먹여살리는 것은 김향안의 몫이었다.
조금씩 명성을 얻어 김환기는 서울대 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탈출을 꿈꿨다. 미술의 메카 파리의 화상과 수장가들이 자기 그림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김환기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자신의 진심을 김향안에게 고백한다.
마음과 달리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던 김환기는 김향안의 권유에도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주저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김향안이었다. 그녀는 다음 날 바로 프랑스 영사관으로 가 떠날 준비를 마쳤다.
프랑스에 도착한 김향안은 김환기의 그림을 홍보에 열을 올렸고 결국 개인전을 열자는 초청장까지 받아낸다.
김환기는 그곳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파리 시대'는 김환기의 미술 역사에서 황금기였으며, 가장 서정적이고 시적인 작품들이 탄생한 시기다.
이와 반대로 그의 집안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김환기는 파리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화가일 뿐,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림을 팔아야 했지만 김환기는 자신의 자존심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그는 고민에 빠졌다. 파리의 화상과 애호가들은 왜 나의 그림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가장 민족적인 소재는 파리에서 통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파리에서 통하는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수 많은 고민 속에 그의 세계는 점차 확장되고 있었다. 1968년 쉰다섯 살이 된 김환기는 경제적 곤경 속에서도 종이 위의 유화 작업과 파피에마세라는 오브제 작업을 했다. 아무리 어려운 경제적 곤경도 그의 생동하는 예술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뉴욕으로 떠난 후 한국 화단에서 잊혀질 때쯤 그는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대상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다. 이 작품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를 읽다 만난 아름다운 구절로 시작된 것으로 하나하나 찍어낸 점에는 그리운 친구들에 대한 그림움이 녹아있었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뛰어넘는 새로운 이야기는 무엇일까? 센트럴파크에 앉아 바라본 푸른 하늘에는 태양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간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이고, 광활한 우주는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우주에서는 시간의 존재가 어떤 것일까.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그렇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우주를 그리기 위해 직접 화포틀을 짜고 이 나무틀에 광목 캔버스를 매고 아교를 칠한 다음 필요한 색을 테레빈유에 풀어서 빛깔을 만들어 유리병에 준비했다. 미술 인생의 마지막 승부라고 생각하며 화폭 앞에서 심호흡했다.
김환기는 화폭 전체를 우주로 만들고 수많은 별을 그렸다. 노력 끝에 그는 자신의 우주를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1973년 예순이 된 그는 여전히 우주를 그렸다. 작품 속에선 부러울게 없는 그였지만 현실에선 몸이 점차 쇠약해지고 있었다.
1974년 7월 7일 뇌출혈로 갑작스레 쓰려져서 수술을 받았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거라 믿었지만 그는 7월 25일 향년 61세의 나이로 별이 되었다.
그의 그림 가득 채운 점처럼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는 우주에 빛나는 별처럼 우리 마음속에 계속해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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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이미지 : 네이버
한국의 추상미술 하면 떠오르는 그분 김환기, 사실 이분은 학교다닐적 그림 몇점만 본것이 다다 . 그당시는 추상미술쪽을 워낙 싫어하고 별 매력을 못느껴기도 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을 그리는 것보다 그냥 대충 그리는것으로 추상으로 논하는 것이라는 짧은 생각이기도 했다. 이책을 통해 김환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추상미술에 대한 해안을 넓히느 계기가 될것 같아서 좋은기회라고 생각이든다. 신안 안좌도 라는 섬의 지주 아들로 태어나 경성에서 일본으로 다시 안좌도로 내려와 자기만의 그림색깔을 찾으려고 했던 김환기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일본 추상미술에서 우리나라 백자, 항아리 , 여인등을 접목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낸 그의 집념과 사상이 글 곳곳에 나타나있다. 화가 동료랑 다벗고 난상 토론을 하면서 추상화에 대한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그열정이 김환기의 소중한 열정의 밑거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환기의 소중한 열정를 이어가게 만든것은 곁에서 열심히 보필을 해준 김향안이라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흔세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박차고 파리로 가서 그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울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인이 곁에서 실생활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엘리트 출신인 김향안 또한 영시를 읽는등 자신의 배움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김환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열정을 마음에 담아두고 끝임없는 인내의 세월을 보내줌으로써 김환기의 작품이 빛날수 있었다.
파리의 생활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다시 홍대로 돌아와 교수직으로 돌아와 있던 중 쉰살에 다시 뉴욕으로 떠나 그곳을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살아있는 당시에는 그림도 많이 팔지 못하고 지금처럼 명성이 대단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았다. 그럴수록 미술에 대한 열정에 타협을 두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을 지금 다시 보게 되면서 아주조금 추상화에 대한 이해가 될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도와 작품의 해석, 그의 생각들을 캔버스에 나타내기 힘든지를 그의 생활상을 통해 알수 있었다.
추상미술과 민족적 정서인 조선백자를 접목시킨 그의 예술혼에 다시 감사를 드리게 되며 그가 마흔,쉰살에 프랑스나 뉴욕으로 간것은 새로운 서양미술의 배움이 아닌 자신의 추상화를 민족적 정서를 나타내는 추상화를 세계의 화가들과 경쟁해보고 싶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당시 ,지금도 서양미술에 은근히 우월함을 두고 있는 우리의 정서를 생각하면 그분의 예술혼은 얼마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추상화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계 어느곳이라 미술기법은 공통된것이지만 그화법을 가지고 나타내는 정서는 어느나라 어떤 미술이 우월할수 없음을 미술작품속에 나타낸 정서에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화법이고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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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의 싯구이다. 그는 화가 김환기의 친구였으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1회 한국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김환기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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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했고,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김환기의 전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예전에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얼마전 김환기 과슈집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추상화이다보니 난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알듯 말듯 어렵고,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 주변 환경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사람을 먼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김환기라는 인물을 더 알고 싶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난 후에 과슈집을 다시 집어들어들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이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단순한 표지에서 주는 인상에 혹시나 지루한 책일까 생각되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의 흡인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가고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도 물흐르듯 흘러가는 매력이 넘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진이 흑백이고 작아서 답답한 점이었다.
그래서 컬러 사진을 찾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는 점을 보게 되었다. 작가와 출판사의 소송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김환기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이었는데,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다를지 알 수 없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것이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에 나오는 문장이고, 그 부분을 작품으로 표현한 점이 경이로웠다. 예술가들이 서로 연계해서 다양한 작품 매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멋드러진 모습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 책을 통해 김환기에 대해 좀더 알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부암동에 있다는 환기미술관도 궁금하고, 신안군에서 김환기화백 100주년기념 초대전을 개최한다는 것도 관심이 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천재적인 화가 김환기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문제 해결이 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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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던 어느 날 일찍 점심을 먹고 주변 산책을 가게 되었는데, 안에 색이 바뀌는 공중전화가 있었고, 박스 주변에 글씨가 움직이고 있는(설명하기 힘든) 작품이 보였다. 지나치며 읽은 글씨들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본 시나 노래라고 생각하며 그 작품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집에 와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읽는데,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를 읽으며 그린 작품이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것이었다. 놀라움에 낮에 찍은 사진을 보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구절이 또렷하게 보였고, 우연이라지만 너무나 반가웠다. 미국에서 그려진 이 작품은 1970년 한국일보가 주최한 한국미술대상에 응모하여 대상으로 선정되었는데, 김환기 화백이 미국으로 떠난 지 7년 만에 한국에 첫 소개되어 더욱 뜻 깊은 작품이었다.
김환기 화백은 평생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고향 안좌도에서 출생하여 일본에서 유학시절에 그림을 배웠고, 경성에서, 프랑스에서, 미국에서도 힘들게 생활하며 그림을 전시를 했다. 그래서 그의 활동하던 시기와 그가 사귀던 화가들과 문인들의 교류 등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고,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 또 그의 가족이야기 등 사적인 면면들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추상이나 반추상, 모더니즘, 네오리얼리즘 등 미술 용어는 자세히 모르지만 김환기 화백은 점차 조선의 마음을 그림에 옮기고자 노력하면서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이르게 된다. 시작부터 그가 붓을 놓을 때까지 자신이 원하고 그리고자하는 것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것들을 캔버스에 옮겨 한 폭의 그림으로 풀어 내었다. 안좌도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랑하던 백자, 달, 새 마지막으로 우주를......
김환기 화백의 곁에서 늘 경제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동지였던 ‘김향안’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가 화가의 아내로 살았던 날들은 고통이 많았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 김환기 화백 뿐 만 아니라 세 딸과 시어머니를 모시며 생계를 꾸려가며 문인으로 많은 활동을 했다.
김환기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평전으로 소개된 이 책은 이충렬 작가에 의해 정리되고, 마무리되어 한 권으로 책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료와 노력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안타깝게도 환기재단(미술관)에 인정을 받지 못한 점 그리고 그 탓에 김환기 화백의 그림들을 크게, 많이 보지 못한 점이 정말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 그림을 찾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꼭 시간 내서 찾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인터넷이나 책으로 만족 못할 마음이 커진다면 환기미술관을 방문하여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수화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노랑에서는 따뜻함을, 많이 쓰인 푸른빛에서는 뭐라 설명하지 못할 서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김환기 화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을 보는 것과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그림을 보는 것은 많이 다름을 안다.
화가 김환기 그리고 화가의 아내 김향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어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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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읽기 전에는 솔직히 김환기라는 화가를 알지 못했다. 워낙 미술쪽으로는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미술이나 그림에 썩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오히려 사양화가들은 쭈루루 꽤고 있는데 우리나라 화가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괜스레 죄송스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화 김환기는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으로 손꼽히며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많은 명화를 탄생시키기도 했으며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라고 한다. 이 책은 화가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담고있는 전기로 정본 김환기 전기를 쓰기위해 방대한 자료를 검토했으며 사실관계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끝에 드디어 이 책이 탄생되게 된 것이다.
1913년 남도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환기는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에서 생활 했다. 1930년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게 되었으며 그때 추상미술을 접하게 되었다. 일본 화단의 양대 등용문 중 하나인 이과회에 2회 연속 입선함으로써 화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귀국 후 예술적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김향안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안정적인 대학교수직을 뒤로하고 유럽 화단에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 파리로 떠났을 때가 나이 마흔 세살 때라고 하니 끝없은 예술적 열망, 갈망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홍대 교수로 복직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그때가 나이 쉰 때라고 한다. 상파울로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1963년 뉴욕에서 또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70년에는 한국미술대상을 수상하였고 미국화단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74년 뇌출혈로 사망하고 만다.
수화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추상미술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접목시켜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다는 것은 우리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것이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경쟁 하기 위해서라는 대목도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점, 선, 면의 순수 조형언어로 한국적 서정추상미술을 세계에 널리알린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이책은 화가 김환기를 깊이있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에게 이렇게 훌륭한 화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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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유심초의 노래였다. 어린 시절 한밤중에 기타를 들고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히스클리프처럼 울부짖지는 않았지만 어떤 열망을 안고 소리 높여 그 노래를 불렀었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그 다음에는 김광섭의 시였다. 저녁 무렵 정릉 시민아파트 뒤편 산등성이에 올라 성북동 주택가의 휘황한 성곽을 바라보며 부유와 가난의 경계선이 그리 두텁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저쪽에 기생하는 ‘성북동 비둘기’는 싫었다. 그러다 만난 ‘저녁에’라는 시,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윽고 나는 수화 김환기의 캔버스에 펼쳐진 무수한 점을 만났다. 점 하나, 사람 하나, 점 둘, 사람 둘, 점 셋, 사람 셋 삶의 동반자들을 그리워하며 혹은 잊으며 찍고 또 찍은 아니 그리고 또 그린 김환기의 그림.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리하여 나 역시 그 무수한 추억 속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그리워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았다.
오늘 수화의 삶이 오롯이 새겨진 작가 이충렬의 책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덮었다. 만리타국에서 고독과 싸우던 화가의 상흔이 고스란히 내게 다가왔다. 그를 지켜주었던 김향안의 사랑, 책 속에 그림 속에 담긴 두 사람의 자취가 눈물겹다. 이제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밝은 별빛으로 빛난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가 아니라 우정과 사랑을 나누던 수많은 벗들이 함께 어우러져 은하수의 반짝이는 물결로 흐르고 있다. 그들이 점이라면 나 역시 한 점이 되리라. 그들과 함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한 점이 되리라. 모두가 날 알아보도록 Crescendo! 모두가 날 알아듣도록 Crescen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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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정체성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만든 김환기 한 사람의 삶은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동시대를 이끄는 시대정신과 더불어 함께 생활했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비로소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된다. 우리가 흔히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쉽게 그 사람의 일생을 혼자만의 무엇으로 생각하는 경향성이 많은데 이는 한 사람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허여, 누군가의 평전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하며 그 속에는 반드시 그 시대를 관통한 시대정신과 더불어 교류했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충렬은 ‘혜곡 최순우 한국미 순례자(김영사, 2012)’, 간송 전형필(김영사, 2010) 등 우리 현대사에서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던 사람들에 대한 평전을 발표하여 주목받아 왔다. 그가 이번에는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2013)’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화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이 평전은 김환기라는 이름만 들었지 사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김환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소둥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 이충렬은 이 김환기 평전을 준비하며 유족측과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아쉬움은 시간이 흘러 더 좋은 계기로 작용되리라 믿어 본다.
이 책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은 김환기의 일대기를 따라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 입문기, 파란만장 격동기, 도전과 좌절의 파리 시절, 절정과 아쉬움으로 구분하여 김환기의 일생을 살핀다. 부자 아버지를 둔 그가 섬 안좌도에서 태어나 가족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또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의 강압에 어쩌지 못하고 일찍 결혼한 사실이나 미술을 선택한 배경 그리고 일본에서의 화가로써 성장하는 과정 등이 전반부에 상세하게 소개된다. 일본에서 화가로 이름을 알려지는 시기 자신의 뿌리인 조선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이후 귀국 후 안좌도와 서울을 오가며 화가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과는 과정, 한국전쟁 시 부산에서의 활동 그리고 파리와 뉴욕으로 진출하는 전반의 과정이 담겼다. 또한, 이혼 후 이상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던 김향안과의 재혼으로 예술가의 삶에 든든한 동반자를 만나 더욱 성장하는 계기를 맞는다.
한국의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진 화가 김환기에게서 주목되는 점은 화가로 성장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일본이나 파리 등 외국의 영향을 스스로 극복하고 한국인으로써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구축한 점이다. 백자 달항아리에서 출발한 ‘평범한 것의 위대함’을 결국‘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임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 점이 화가 김환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임을 확인한다. 저자 이충렬 역시 이 점에 주목하여 그를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덤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과 문학 등 당시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반가운 최순우도 보이고 김용준, 길진섭, 정지용, 이상 등도 만날 수 있다.
화가 김환기는 어쩜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거부의 아들로 때어나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점, 잘 나가던 일본에서의 생활, 서울대를 비롯한 홍익대 등에서 교수로 제직하던 시절과 같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길로 나갔던 점 또한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나 오늘이나 예술가의 삶은 생활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에 의해 예술가의 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올 해 2013년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다. 평생을 걸쳐 그가 추구했던 예술정신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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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의 전작들을 보면 보통 사람들도 어떻게 미술 작품에 다가서고 어떻게 손을 잡을 수 있는가를 알게 된다. 미술품에 대한 그의 내공은 결코 아마추어라고 할 수 없지만 미술의 창작자도 아니요 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그가 미술품에 대한 감상 취미에서 수집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에 대한 글로 까지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대단한 사람의 넘사벽한 행위로 느껴지지 않아서 더 와 닿는다. 이번 책을 통해 화가 김환기의 언저리를 같이 헤메다 보면 나 역시 조금은 더 심미안이 커진 느낌이랄까~~ 이 봄에 김환기의 그림과 그의 이야기~~ 약간은 호사취미처럼 그렇게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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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마지막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소식 중 하나가 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책이 저작권 등의 문제로 소송을 당하게 되었다는 기사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한 달 가량이 지난 4월말에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1913년 태어나 1974년 세상을 떠난 화가. 이 시대를 살다간 인물이라면 대개가 그러했듯 김환기 역시 불행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시대가 그를 갈대마냥 흔들리게 만들었다. 나라 잃은 설움과 전쟁이라는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그에게서 파괴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혼을 기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가난할지언정 제 삶을 각박함으로 몰아가진 않았다. 다소 허망한 몰[死]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자신이 지향했던 무언가로 풍요로웠다. 논란이 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은 잠시 잊어보고 싶다.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 김환기. 이름을 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을 알기 때문에 난 그에 대해 아주 가까움을 느꼈지만 정작 아는 바는 없었다. 책에 따르면 그는 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집안의 기대를 한 몸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는 남존여비가 여전히 활개를 치던 시대에 아들로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에 도무지 익숙해질 줄을 몰랐다. 그러기에는 타고난 예술혼이 너무도 뜨거웠다. 결국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삶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려 드는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지주로서의 삶을 내친 점이 그러했고, 딸을 내리 셋 낳은 아내와 이혼한 점이 그러했으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김향안과 결혼해 프랑스, 미국 등에서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운 점이 그러했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아도 거대하기 짝이 없는 큰 키를 지닌 그는 어디에도 딱히 소속되지 못한 듯 방황했으며, 때때로 좋은 평을 듣기도 했지만 이제 막 삶이 활개를 치려는 순간에 허망하게 눈을 감았으니, 그 과정이 전형적인 천재들의 삶을 닮아 있었다. 그의 예술은 후발주자의 것이 아니었다. 서양적인 무언가가 밀고 들어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들어놓는 순간에도 그는 우리만의 독창성을 주목했으며 이를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다. 어찌 보면 밋밋하게 그지없는 조선 백자에 그가 그토록 빠져들었던 건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전쟁통에 집 우물에 눈물을 머금고 넣었을 백자들이 만약 깨어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온전히 남았더라면, 그 자신에게도 물론 기쁨이었겠지만 역사를 연구하는 이, 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클 뿐이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적 세계를 갈고 닦은 그로부터 한 가지 더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혁신이지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반에 마련한 자신의 색채를 조금 더 진하게 만들기는 해도 전혀 다른 색채로 대체하진 않는다. 스스로가 일구어온 바를 부정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안에 안주함으로써 좀 더 안정적인 길을 걷는 쪽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제 예술세계에 변화를 기했다.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탄탄대로를 뒤로 한 채 프랑스로 미국으로 옮겨갔던 것 역시 그러한 변화의 일환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그에게 시련을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뉴욕 타스카Tasca 화랑에게 당한 사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2년 반 가량 작업을 통해 얻어낸, 가장 좋은 작품들을 고르고 골라 출품했지만 그림과 작품값은 받지도 못했던 그 시련은 그러나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예술 외에는 문외한에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자존심도 대단했던 그는 천상 사회가 찬사를 내뿜는 성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작품을 팔아야 현실에서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실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시점부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바다. 쉽지 않은 인생, 아무나 살 수 없는 인생을 김환기는 살았다. 그래서 힘겨웠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예술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그가 하나하나 힘주어 그렸을 점들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무어가 되었건 그처럼 열정으로 매달리는 인생이야말로 정녕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품어본다. 그는 지금 즈음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지. 대를 이어야 한다, 먹고 살 자금을 마련해야 된다 등 현실의 문제들로부터 더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지금은 자신이 하고픈 예술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