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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남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100명의 직원을 통제하고 지시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책에서 읽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을 잡는다. 아들만 둘을 키우는 나는, 책을 통해 혹은 대화를 통해 아이와 소통하지만 이 소통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궁금하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똘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어떤 사건과 사고를 저지를지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그런 사건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우리 아이들의 심리 혹은 마음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
사건이 있던 날.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기억을 잃고 말하는 법을 잊었다. 내가 학교에 다시 등교하는 날. 피부로 느끼는 까칠한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날. 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그날. 사고가 있기 전 학교에 있었던 일. 바로 여울이가 죽은 그 시간 과연 음악실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른 것은 다 기억해 냈지만 그 사건만은 기억하지 못한다.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나는 말을 잃고 다시 세상을 본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침묵하는 나는 과연 말 할 수 있을까?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님과 사이좋지 않은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엉뚱한 생각이든, 엉뚱한 행동이든 해보고 싶은 나와 그걸 용납할 수 없는 부모 사이에서 결국 아이들은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와 말이 통하지 않아. 부모님께 조목조목 설명하고, 설득시키려는 시도보다는 몇 번 말하고 난 뒤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리고 더 이상의 대화는 거부한 채 스스로 벽을 쌓기 시작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라는 낙인을 찍은 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버지. 목사의 아들답게라는 말을 입에 담고서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걸 견딜 수 없어 한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친구와 친구 엄마 앞에서 아들의 인격은 무시하고 사과부터 요구하는 아버지를 보며 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나치게 아이들 편을 드는 사람도 문제지만 아이의 편에 서지 못하는 부모도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목사가 왜 좋은 아버지는 못 될까 (25)
기억을 잃은 주인공은 생각한다. 어차피 이렇게 리셋된 거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괜한 걸 기억해 내 봐야 뭐하냐? 다 묻어 버리면 그만이야 (35) 기억 이전의 인생을 과연 리셋 할 수 있을까? 리셋을 해야 할 만큼 열일곱의 인생이 아픔으로만 가득 찬 것이었을까? 하지만 소년에게는 그를 믿어주는 할아버지가 있었고, 말을 하지 못하면서 믿게 된 친구도 있었다. 스스로 돌이켜 봐라. 나는 어떤 아 였나 (94) 이런 말을 해주는 할아버지가 있는 소년은 그래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
소년은 서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친구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것도 서툴다. 방법이 서툴러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말을 잃게 되면서 그 사건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텁텁해서 잘 넘어가지 않는 진실을 찾아간다. 그 안에서 소년은 성숙하고 아버지를 그리고 할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진실은 텁텁하고 넘기기 힘들지만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했다 (211) 시간이 지나면서 시점의 다양성을 생각하게 된다. 내 부모님이 가졌던 상황,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부모님과 편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열일곱을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서클활동에 재미를 들였던 시간. 부모님과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그 스트레스를 좋은 친구들 덕분에 이겨나갈 수 있었다. 마음속의 수많은 충돌과 고민들이 올라 올 때면 넘어 서지 말아야 할 약간의 선을 넘으며 일탈(?) 행위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탈이라고 할 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유일한 탈출구였을지 모르겠다.
생각해 본다. 내가 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 굉장히 큰 거리감이 있다. 그 거리감의 폭을 넓게 하느냐 좁게 하느냐는 결국 쌍방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조건 안 돼 혹은 무조건 공부해 혹은 부모의 꿈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마음을 헤아린다면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은 줄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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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의식구조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중에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 앞에서 말과 행동,관계라고 생각한다.부부가 화목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자식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면 경제가 어려워 힘들게 살지라도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가정의 분위기,부모의 인간적인 습성을 고스란히 물려 나간다.부모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경제적 수입,신분이 높을지라도 가정과 자식들에게 쏟는 정성과 배려가 부족하다면 자식의 인성은 삐뚤어지고 샛길로 새어 나가고 말 것이다.그에 따에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악화될 것도 뻔한 일이다 그래서 진부하지만 '가화만사성'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진리 중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수다쟁이 조는 원래 수다쟁이가 아니다.고교생이기도 한 그는 하교길 건널목을 건너려다 채소장사 트럭에 치여 뇌출혈로 퇴원을 했지만 기억상실증과 실어증을 동반하게 된다.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악몽으로 변하면서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는데 학교 생활에서도 그를 놀리고 괴롭히는 급우들 때문에 기(氣)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움추려들게 되고 목사인 아버지도 그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교회 일로 늘 가정에는 무관심하고 자식과 다정하게 자상하게 대해 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급우 중에 얼굴은 예쁘지만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음악시간에 죽은 여학생과 그와의 관계가 묘하게 흘러 간다.여학생이 죽던 날 그는 과연 여학생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두고 그를 괴롭히고 놀리는 급우들은 여학생의 죽음과 깊은 연루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만나기만 하면 때리고 짓밟기 일쑤이다.여학생의 죽음은 그와는 관련이 없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리다 보니 혹 여학생의 죽음을 자신이 몰고 가지는 않았는지 자책과 괴로움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고,학교측에서는 그를 전학을 강권하지만 결국 특수반으로 옮겨지는 상황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는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과 처지를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한 여학생을 만나 정신적 고통과 심적인 문제들을 공유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셈이다.한편 아버지와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껄끄럽지만 할아버지만큼은 손자인 그에게 삶의 방식을 야구의 룰과 야구 경험에 비추어 알아 듣기 쉽게 전해 준다.그가 겪고 있는 실어증,기억상실증 및 급우들과의 껄끄러운 관계는 할아버지의 삶의 방향키를 통해 조금씩 좋아지게 되고 삶의 교훈을 체득해 나간다.
"꼭 정면 승부만이 능사는 아이다.상대하기 힘든 타자라면 일단은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인 기야." " 니 아부지......용서해라.가가 내가 잘못해서 그리된 기다.니 용서 안 하믄 내랑 니 아부지랑 똑같이 된다.
신출귀몰하는 깡패와 같은 급우들의 스쿠터 사건으로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그들은 퇴학처리를 맞게 되고 여학생 여울이가 받았을 상처를 되뇌이면서 그는 열입곱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를 야구 마운드를 딛게 된다.그가 깨닫는 것은 천륜과 같이 사랑을 주고 받아야 할 관계가 상처로 얼룩지고 그 상처가 되물림 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다.사춘기에 있는 부모는 자식의 인격을 믿고 늘 관심과 대화,애정을 갖고 대하고 가정의 분위기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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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힐링' 의 해로 기억한다. 딱히 위로되는 일들이 많아서는 아니였다. 오히려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가 더해진 해라 그런지(안 힘든 때가 언제 있었겠냐만은) 온 국민은 힐링을 필요로 했다. '위로' 라는 단어는 '힐링' 이라는 트렌드 파도를 타고 꽤나 삐까뻔쩍하게 변신했다. 내겐 그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힐링' 이라는 뜻이 치유,상처가 아니라 온라인 게임속 '힐러' 처럼 느껴졌다. 속뜻이 없어진, 그저 몹을 잡기 위해 필요한 파티원의 한 명. TV만 틀면 나오는 '힐링' 이란 단어는 마치 '레벨 xx 힐러 있어요. 파티 구합니다' 공허한 귓속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은 힐링이란 단어에 질리고 말았다. 뭐야, 또 힐링이야? 개나 소나 다 힐링이래. 그래,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힐링은 위로와 치유가 아니라 흔해빠진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힐링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다. 낡은 소재다' 란 방송 비평글도 읽었다.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 를 읽으면서 난 최근 남발되고 있는 힐링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힐링이 언제부터 치약이 되버린걸까. 이를 위하여 쭉 짜고, 물로 헹궈서 아무 생각없이 세면대 위로 내뱉는. 쭉- 쭉- 짜고 짜고 짜내다 다 쓰면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통에 던지는, 그런 치약. 위로와 치유는 인간이 세상에 온 이후로 늘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인데. 어떠한 인간이든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고 혼자서 살 수 없는 이 삶 속에 흔들리지 말라며 뿌리를 깊이 깊이 내려주게 하던 그 귀한 자양분이, 어째서 낡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걸까.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 의 주인공은 힐링의 본뜻과 역할을 다시금 되새기고, 느끼게 해준다. 우리의 10대가 그러했듯, 수다쟁이 조는 혼자만의 성을 쌓아 그 속에 살고 있었다. 무너져 버린 세상을 기억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망할 플라이맨의 습격도 받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망국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며 이건 뭐지- 의문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수다쟁이 조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듯, 윈스턴과 할아버지와 엘 할머니의 온기 어린 위로와 치유로 조금씩 세상 밖에 걸어나온다. 심지어 대담하게 빈볼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그와는 영원히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아버지조차도 이해받아야 할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 정해진 어른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기대고 다독여 주고 함께 걷는 사람이 있을 뿐. 당신이 기대려 하거나 '당신은 당연히 날 이해해야해' 라고 생각하는 상대 역시 또다른 위로가 필요한 삶의 순례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 생각했다. 수다쟁이 조가 아버지에게 글러브를 건네는 그 순간. 아픔 없이 나이를 먹는 사람은 없다. 상대적인 건 있겠지만, 그 누구도 이 세상을 고통과 아픔 없이 살아갈 수 없다. 한 때, 우리 모두 '수다쟁이 조' 였다. 만일 우리가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없는 냉혹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누군가를 안아 주거나 혹은 '정신 차려!' 하며 뜨겁게 외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맞닥뜨리는 시련에도 죽어버리지 않고, 7점대 방어율 투수 주제에 인생을 향해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인류는 생존해 있습니다 롸져, 이렇게 외칠 수 있는건지도 모를 일. 위로와 치유는 유행이 아니다. 공기처럼, 물처럼, 야구처럼, 늘 우리네 인생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힘겨운 하루를 버텨내고,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는 당신이라면-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 로 인해 보송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힘들어도 살자. 돌이킬 수 없을만큼 죄를 저질렀다 싶어도 살자. '수다쟁이 조' 가 울부짖는 반장을 붙들고 한 이 말처럼. "살자. 스스로 목을 매지 말자. 뻔뻔하게 살아남아 용서를 구하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P.S. 비록 야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야구를 모르는 당신이라도 상관없다. 이 소설은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위로와 치유와 이해의 소설'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를 잘 아는 당신이라면, 수다쟁이 조가 고독의 성을 허물고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두 배로 즐거워 질 것이다. P.S 2. 쓸데없는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심플한 묘사와 힘이 실린 문장이 가독성을 높여준다. 기억과 말하는 법 모두를 잃은 '수다쟁이 조' 가 여울이의 죽음을 통해 기억을 찾아가는 구조도 흥미롭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좀 뻔한 느낌은 있지만 메멘토, 혹은 하드보일드 탐정처럼 진실에 접근해가는 플롯은 내게 언제나 즐거움을 준다. 사건을 묘사하는 힘이 좀 더 커진다면 챈들러의 '필립 말로' 처럼 차갑지만 따뜻한 도시인이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도 은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리뷰 너무 멀리 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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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표지를 눈여겨 보게 된다. 구름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뒷 모습만 보이고 있는 소녀와 중절모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것을 자세히 보니 야구글러브이다. 또 피자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누군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그리고 한 소년. 왠지 내 눈에는 이 소년이 날라오고 있는 야구공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문 투성이 인물들. 서로 조합을 이루지 않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이 얼른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달려온 과일 장사 트럭이 코 앞까지 와있고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만 말을 할수 없고 트럭 운전사의 얼굴은 텅빈 터널처럼 보이는 꿈에 시달리는 조. 의문의 사고로 지난 기억을 잃고 실어증에 걸린 수다쟁이 조. 말을 할 수 없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그의 닉네임은 수다쟁이 조이다. 수다쟁이 조의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들려주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아버지는 좋은 목사님이지만 조는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분인지 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라 생각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지의 존재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방학전 사고로 방학내내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간 학교는 낯설기만 하다. 기억이 나질 않아서의 낯설음보다는 친구들이 자신을 낯설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 담임선생님이 자신에게 말해 준 것은 자신의 사고 전에 같은 반 친구 윤여울이 심장마비로 음악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뿐이다.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수다쟁이 조는 힘들어지는데...
진실이란 건 텁텁해서 잘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자꾸들 진실을 외면하려는 게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살려는 거지. - 본문 130쪽
<수다쟁이 조가 말했다>에서 놓칠수 없는 것은 야구이지 않을까한다. 야구라는 경기를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것은 야구이다. 수다쟁이 조도 아버지와 얽혀버린 관계를 풀어가는 것도 야구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운동경기라 그런지 야구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다.
"자기 공을 믿는 기라. 똑같은 공이라도 자기가 던지는 공을 믿지 못하는 투수의 공은 가볍다. 공이 다 똑같은지 뭐가 가볍냐고? 아이다. 믿음을 갖고 던지는 공은 그 믿음만큰의 무게가 더해진다. 그런 공은 타자가 쳐도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묵-직하거든." - 본문 94쪽
청소년 소설을 마주하는 것이 가끔은 두려울 때가 있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이 보여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나 온라인 상에서 만난 엘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어주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일이다. 지우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들일지라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하는 조와 반장. 오히려 아이들이 더 솔직하고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실수는 하고 용서하기 힘든 일을 벌일때도 있다. 하지만 가장 용서하기 힘든 것은 본인 자신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할수 있는 것은 같이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용서할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것일 것이다.
사실, 마음이 아프다. 여울이처럼 고운 친구가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현실이 아직까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직도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수다쟁이가 되고싶은 아이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입을 막고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늘 시한폭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언제든, 무슨 말이든 들어줄수 있으니 수다쟁이가 되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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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 많은 경우 내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역시 그랬다. 똑 같지 않더라도 조각조각 해체하여 억지로라도 끼워 맞춰 나를 돌아보거나 위로 받으려.... 며칠전 아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대화를 했다. 아들은 자신의 주장을 펴지도 못한채 답답한 나머지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고 대화는 곧 중단되었다. 울 아들 마음도 이랬을까? '에어쇼에서 비행기들이 글자를 쓰는 것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연기는 말로 표현 못 하는 내 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문득 윈스턴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녀석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늘 윈스턴의 마음속에만 머물렀다. 들어 줄 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 올라와 마음속의 말들을 연기로 뱉은 것이다.'(118쪽) 나는 그런 아들이 갑갑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아이도 그런 스스로가 무척이나 답답했겠지. 내 생각을 강요하고 윽박지르며 마음을 열어주지 못했던 엄마에게 아들은 수다쟁이가 될 수 없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사랑의 눈으로 보는 거라면 불편할 리가 없지. 나도 여울이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던가. 여울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늘 여울이에게 집중했다.(187쪽) 나는 사랑이라 믿었건만 아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엄마와의 대화가 편치 않았던 것이고. 우리 식구들은 나도 그렇지만 말이 없는 편이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집안은 적막하기까지 할런지도 모른다. 결혼 후 나는 나름 수다쟁이가 됐고 오버에 푼수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은 슬슬 내 눈치를 보거나 되려 삐친다. 내가 화가 났는 걸로 오해할 지경.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집은 침묵보다는 수다가 필요한 건 틀림없다.
사고로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열일곱의 주인공.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본인은 오히려 편하게 생각한다. 말하지 못하는 대신 온라인에서는 활달하며 사교적인 수다쟁이가 되어 조라는 닉넴으로 활동한다. 기억을 잃고 리셋 상태가 되었지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나 아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에 의구심을 가진 조는 음악식에서 일어난 특수반 여울이의 죽음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추리 기법을 가미하여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나에게도 책을 읽고 떨아야 할 수다가 많이 남았다. 남편의 카톡 메세지에는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라고 되어있다. 꼭 나에게 하는 무언의 말처럼 깊이 파고든다. 이제껏 너의 생각을 지지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세상의 눈치나 내 잣대로만 맞추려 했음을, 역시 별수 없는 꼰대의 시선이었고 위선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제부터라도 너의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마. 열심히 하렴~
나는 왜 마음을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나도 같았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다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다.(19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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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선택한 책이 배달되고 그 풋픗함이 표지에서부터 느껴졌다.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펼쳐 읽었고, 내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문장도 쉽고 내용 전개도 휙휙, 매끄러워 읽기 시원했다. 게다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고, 주인공의 심정이 잘 나타나 금방 몰입되었다. 무엇보다 작가 이동원이 궁금했다. 79년생이다. 와, 나와는 세살차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흥미로웠고 잠자고 있는 내 야망을 꿈틀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이동원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또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두 번째 이야기는 지금 집필 중이기도 하다고 작가 소개에 씌여 있다. '영상작가원'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너무 궁금하다. 군데군데 멋진 말들이 있었지만 밑줄이나 페이지 끝을 접을 수가 없었다. 나는 표시를 주로 밑줄긋기가 접기를 하느데 말이다.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었기에 그럴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에 관해서는 공개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냥 독자라면 읽어서 알아차리라고 말하고 싶다. 아들은 중3이고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겨우 과제로 던져주는 책을 일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하는 정도일 뿐이다. 매번 책읽기를 강조하고 협박하고 을러보지만 아이의 귀에는 들리지 않나 보다. 하긴 그 나이때 난들 그러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럴 때이기에 조금은 심드렁해 있다. 때로는 지쳐 꺾이기도 했다.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게임 이야기와 청소년기의 그 마음을 참 잘 표현해 놓았기에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을텐데 문제는 활자를 독자가 되어 읽어내 줄지가 의심스럽다. 한번 잡으면 쉽게 손을 놓지는 못한다는 것은 장담한다. 하지만 어떻게가 나에게는 지금 화두요, 과제일 뿐이다. 아마도 이밤 심히 고민해 보아야 할듯하다.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조는 주인공의 게임 닉네임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20개의 챕터 중 마지막 20번이다. 이렇게 늘어놓으면 책에 관한 것을 너무 많이 공개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만으로 호기심은 증폭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5월엔 이 책의 독자가 되시길 만인에게 공표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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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사고 충격으로 인한 실어증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이 온라인 게임상에서는 이름앞에 수다쟁이가 붙을정도로 익명을 이용해 쏟아낼 말들이 너무도 많은 수다쟁이 조는 바로 현실에서 우리아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느날 하교길에 트럭과 부딪치는 큰 사고가 있었고, 사고후 눈을 떴을때는 고교입학 이후부터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실어증으로 말을 못하는 상태에서, 다시 등교를 하게 되는데.. 여차저차한 정황으로 사고전의 일을 알게된다. 특수반에 다니던 그녀의 여자친구 여울이가 음악실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현장에 유일하게 함께 있던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
심리학을 전공중인 내가 판단컨데 조의 증상은 특정 기간 동안의 기억망각이 일어난 해리장애이다. 충격적인 스트레스 사건이 계기가 되어 불안을 유발하는 심리적 내용을 능동적으로 방어하는 일종의 심리학적 방어기제라고나 할까.
참 힘들었을 거다. 어린시절부터 목사의 아들로 늘 '정의롭고 착하고 바른' 행동만 강요받았던 아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만큼이나 아버지와 괴리감을 느꼈던 아이. 어느날 할아버지를 따라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마술창고라 생각해왔던곳을 따라가게 되면서 할아버지의 진심을 느끼게 된다. 소아마비를 앓게된 아들을 위해 어떻게든 아들에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그후 오직 아들을 위해 다리보조기를 만드는데.. 그 도구가 완성되었을때 이미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아들과의 사이는 건널수 없는 강의 되어버렸다는것이다.
이책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족과의 불화, 혼자 속으로만 자신의 고민을 감당하면서 오직 온라인 소통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으로 만나게 해주는것같다. 신인작가인데도 괭장히 재치발랄한 글솜씨에 읽으면서 몇번 웃음이 빵빵터졌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모두가 수다쟁이 조가 아닐런지 생각해보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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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사춘기 딸들을 키워서일까요? 요즘들어 성장소설이 더더욱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잠시나마 학창시절 추억에도 빠져보고 우리 아이들 세계를 엿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러면서 아이들과 조금 더 소통하는 것 같아 기분도 좋고 감동도 있습니다.
17살 고등학교 소년이 수다쟁이 조입니다. 무슨이름이 이래 했는데 게임닉네임이었어요. 수다쟁이 조가 교통사고로 기억의 일부분을 잃었으며 말하지도 못하게 되었는데요. 유독 학교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 학교에서 아주 크나 큰 사건이 있었네요. 스스로 뭍어 버릴 수도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조언과 게임속 깊은 대화하는 엘할머니의 도움으로 하나씩 파고 들며 해결해 나가고 결국 스스로 목소리도 내게 되는 모습이 정말 아이들이어서 가능하고 멋지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웬지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도 나는데요. 예쁜 여학생이지만 특수반이었던 여울이와의 일, 역시 학교폭력이 문제였던 덩치와 키다리,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사건은 은폐하고 싶었던 반장, 그리고 보호받아야 할 학교인데 숨기기만 급급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일등이 현실속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윈스턴이나 상담사이자 음악선생님의 등장은 반갑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 같아 희망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플라이맨기자의 등장은 조금 황당하고 어이없으며 어른으로서 창피하기까지도 한 이야기네요.
어른들은 말로만 어른이지 아이들이 기대고 싶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모습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한데요. 조의 할아버지나 게임속 친구 엘할머니처럼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조언해 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조는 어린시절 함께 아빠와 야구를 했지만 지금은 말 한마디로 안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조까지 야구로 인해 갈등중이지만 책은 야구를 하듯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 나갑니다. 표지의 야구 선수와 공이 왜 나왔는지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야구 용어는 잘 모르지만 야구를 한게임 즐긴 기분도 나는 줄거리 이기도 합니다. 수다쟁이 조처럼 다시 아버지와 야구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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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조가 말했다, 이동원 장편소설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나오는 책은 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내용이여서 좋아하는 편이데요. 이책을 만난 저는 좀 막막했다고 해야하나? 책의 표지와는 다른 좀 어둡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내용이 아니라 재미있게 느껴지더라구요.
책의 주인공인 수다쟁이 조~ '수다쟁이 조'의 이름은 온라인상의 별명이에요. 우리도 실명을 온라인상에서 사용하지 않듯이, 주인공 조도 온라인상에서는 현실과는 반대의 성향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실은 사고로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열일곱 소년이랍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산으로 향하는 조를 따라 책의 이야기는 시작되는데요. 조의 사고와 맞물려서 여울이가 죽게 되고 그 사건을 조과 관련있는 것처럼 되면서 조는 결국 가출을 하는데...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그 상처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다
이 문장이 머릿 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주었다는...내가 요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아직은 초등저학년인 아이가 읽기에는 어려운 내용의 책이지만, 사춘기가 찾아올때쯤 꺼내보면 정말 좋은 내용의 책이랍니다. 사춘기때의 부모와의 갈등문제까지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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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조가 말했다 문학동네 청소년 018 이동원 지음 / 일러스트 노준구, 디자인 이지선 문학동네
성장소설은 재미있습니다. 이 책도 재미있게 읽기는 읽었는데, 열일곱 살이나 먹은 소년이 등장하는 이야기라서 독서록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았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서도 한참 동안을 고민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냈답니다. 십 대의 소년/소녀가 역경을 헤치고 얻는 무엇. 그 무엇이 소년/소녀들에게 공감이 되고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에는 '나' 라는 열일곱 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게임 아이디는 '수다쟁이 조'이지요. 지능이 조금 떨어지지만 예쁘고 착한 반 친구 여울이를 좋아하던 수다쟁이 조. 여울이도 조에게 밴드를 붙여주고 편지(쪽지)도 주고 받을 만큼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실한 반장은 여울이를 짝사랑합니다. 여울이를 좋아하는 조이지만, 같은 반의 자폐아 아이의 그림을 찢어버리거나 여울이를 발로 차는, 후회할 짓도 합니다. 이럴 때는 수다쟁이 조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사실 알고보면, 조는 목사인 아버지에게 압박을 당해서 하고 싶어하는 야구 일도 억지로 그만두게 된 그런 불쌍한 아이입니다. 어느 날, 덩치와 키다리 (조네 반의 불량 아이들)이 반장을 협박하여 여울이에게 조가 보낸 척 쪽지를 남깁니다. 둘은 음악실에 있던 조를 보고 놀랍니다. 조와 반장은 덩치, 키다리와 싸우지만 밀립니다. 꽃병 조각으로 덩치, 키다리를 찌를 정도로 조를 돕던 여울이에게는 심장병이 있었고, 심장에 이상이 생겨 죽습니다. 여울이가 죽게되는 것은 너무 슬퍼서, 꼭 죽게 만들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열하는 조와 달리 반장은 사건을 은폐하고, 조는 교통 사고로 기억의 일부분과 말하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조가 장애를 극복하고 여울이의 마음을 읽게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장애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도와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