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8)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9%
  • 리뷰 총점8 31%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12)

리뷰 총점 종이책
인생의 쉼표도 때론 필요하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인생의 쉼표도 때론 필요하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내용보기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였다. 살아가면서,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살아감의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왜, '모든 게 내 탓이오' 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세상사 이해 못 할 게 없고 견뎌내지 못할 게 없다고. 그렇다 해서 모든 자책의 화
"인생의 쉼표도 때론 필요하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내용보기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였다. 살아가면서, 나이 들면서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살아감의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왜, '모든 게 내 탓이오' 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세상사 이해 못 할 게 없고 견뎌내지 못할 게 없다고. 그렇다 해서 모든 자책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라는 말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에게서 파생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깨우치고 이해하고 포용하라는 것이지. 그도 아니라면, 정말이지 나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라면 그냥 놔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괜히 전전긍긍, 끙끙대며 머리 싸맬 필요가 없는 일까지 신경 쓰고 간섭하는 건 바보스러운 짓이니까, 나이 들어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해가는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은 살아가는 데에만 너무 급급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 말하면서도 그 지겨움 속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한다. 왜냐,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지겨움이라 느끼는 생존전략이 있다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전쟁터라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어찌 그 지겨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단지 꿈만 꿀 뿐이다. 이 지겨움 속에서 탈피했으면, 한 달 일주일 아니 단 며칠만이라도 자유롭게 어디든 떠나고 싶은 꿈을 꾸는 것이다. 30~40대는 노후를 위해서 허리가 휘게 고군분투해야 하는 때이다. 철없던 시절은 20대에서 끝을 내야 한다고 다들 믿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 나이가 되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좇아간다 하면 열이면 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는 것도 안다. 나 자신의 이상만 보고자 한다면 주변의 시선쯤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꿈만 꾼다. 이 지겨운 밥.벌.이의 시간 안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벗어나고 싶어서, 일탈하고 싶어서, 속으로만 원대한 포부를 가진다.

 

저자는 그 포부를 몸소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앞만 보며 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해서, 내면의 자신을 조우하고자 해서 딱히 계획에도 없던 산티아고행을 결정했다. 인생은 언제나 이리저리 부유하는 복잡다단한 선택의 연속에 있다. 하지만 그 선택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부가적인 제약들이 차고 넘친다. 이 모든 것도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혼자가 아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될 테다. 하지만 정진홍 작가는 과감히 내려놓고 떠남을 택했다. 자신의 인생 배낭을 다시 꾸리기 위해서, 일시적 정지통을 겪고 있는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장장 900km라는 고단한 산티아고 순례길에 발을 내디뎠다. 넘어진다 해서 누가 부축해주지도 옆에서 같이 걸을 이도 드문 50여 일 가량의 대장정 속에서 그는 진정한 자신의 내면과 맞닥뜨렸다. 넘어지고 깨지고 소리치며 울고 발악하는 와중에 만난 '나'는 내일의 또 다른 모습이다. 수많은 어제를 살아온 현재의 내가 또 수많은 내일을 살아갈 나를 마주한 시간이다. 인생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고단한 여정과 다름없다. 삶이 우리에게 주는 절대불변의 진리는 인생도 결국은 홀로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누가 곁에 있어도 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내 안의 절대고독은 나만이 알 수 있고 나만이 짊어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조율할 수 없기에 때론 넘어서기 벅찬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염원한다. 때론 잠시 쉬어도 좋으련만, 한 박자 쉬고 다시 '영차'하고 일어서서 걸음 내딛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으련만, 그럴 권리도 없으련만, 내 인생이니까. 그런 쉼의 시간을 저자는 가진 거였다. 발이 부르트고 몸은 천근만근 고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지만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돌아온 것이나 다름없기에 아름다운 고행길로 남은 것이리라. 아름다운 성장의 길이었기에 그분이 눈물 흘릴 때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고 그분이 힘들 때는 내 마음도 아팠다. 특히 세르주의 망가진 수레와 마주한 부분에서는 어찌나 폭풍눈물이 흐르던지... 이 시대의 아버지들, 가장을 보는 마음 쓰라림에 그토록 공감했으리라. 삶은 고된 투쟁의 연속이다. 삶이 바로 전쟁터다. 오늘도 이 전쟁터에서 뛰고 있는 나의 아버지,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렇게도 떠올랐기에,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나의 아버지를 보고 있는듯한 마음에 그렇게도 눈물이 났다. 이 책은 나보다는 아버지께 건네고 싶다. 잠시 쉬어도 된다고, 그리고 영차~ 일어나 다시 걸어가시면 되는 거라고.... 때로는 가족에 앞서 자신의 삶, 자신부터 먼저 바라보시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비움의 마음이다. 마음의 욕심, 시기, 질투, 이 모든 걸 비워내고 나를 바로 보고 나아가야 이 힘든 인생의 고행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 왜 놓지 못하는가, 왜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가. 이 모든 게 종래에는 한점 바람에 지나지 않는 거추장스러움일 뿐일 텐데 말이다. 읽는 내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무엇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안의 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바로 보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사무쳤다. 나는 얼마나 나를 잘 알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 또한 되었다. 남들에게 휩쓸리기보다는 내 걸음을 당당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 나도 작가님과 비슷한 연배가 되면 한 번쯤 걸어보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 또한 했다. 그때 내 인생의 배낭은 얼마만한 크기가 될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휘청거리지는 않아야 할 텐데.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을 수 있는 내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Dream the impossible,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do the impossible love,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fight with unwinnable enemy,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resist the unresistable pain,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Catch the uncatchable star in the sky. - Don Quixote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내가 참 좋아하는 돈 키호테의 명언이 등장해서 더 반가웠던 책.

성장하는 내 삶을 위해서라면 때론 즐겁게 미치는 것도 좋다.

돈키호테처럼 전진하고자 한다면, 

내 삶에 잠시나마 쉼표 한 번 찍고 다시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w*****8 2012.11.15. 신고 공감 19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바람을 사랑한 풀의 흔들림처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바람을 사랑한 풀의 흔들림처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내용보기
마음이 이상하게 허허로왔다. 드문드문 찾아오던 허허로움은 드문드문 찾아오더니 나이 불혹이 가까워지니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마음이 허허로울 때가 다가오면 그냥 그 느낌을 즐기게 된다. 허허로움에 너무 빠지면 우울함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다보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슬픈 일도 그렇게 견디고 아픈
"바람을 사랑한 풀의 흔들림처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내용보기

마음이 이상하게 허허로왔다. 드문드문 찾아오던 허허로움은 드문드문 찾아오더니 나이 불혹이 가까워지니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마음이 허허로울 때가 다가오면 그냥 그 느낌을 즐기게 된다. 허허로움에 너무 빠지면 우울함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다보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슬픈 일도 그렇게 견디고 아픈 일도 아무 일 없듯 견디게 된다. 그런 허허로움이 다시 나를 괴롭히던 중이었다. 그냥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낙엽들이 뒹군다는 이유로, 바람이 차가워졌다는 이유로, 마음을 달래기에는 너무 촌스러운 변명들이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허허로움을 주체할 수 없던 차에 마음에 살뜰하게 다가온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읽는 내내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이 공허함의 정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것이 삶의 뿌리 깊은 근원적인 이유라는 것을.....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 과감히 산티아고의 길로 떠난 저자는 50여일의 일정속에 느끼고 깨달았던 삶의 궤적들을 고스란히  이 책 한권에 쏟아놓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두려움에 시작된 이 여정은 인생의 무게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자의 길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저자는 피레네 산중에서 길을 잃고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멈추지 않은 채 절대 고독속을 걸으며 살아 있음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동틀 무렵 페르돈 고개 위의 철동상 순례자들을 찍기 위해 극한의 어둠을 보내고 온몸이 얼어붙어 여명을 맞이하며 드디어 순례자들의 모습을 찍게 되었을 때 발견하게 순례자들의 모습속에서 아픔과 고통 그리고 번민과 고뇌의 모습에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순례자들의 얼굴에서 발견해낸다. 아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 삶의 본모습이었기에..  

 

나 역시도 무조건 걷는 것을 좋아한다산이던 들이던 걸으면서 느껴지는 자연과의 속삭임의 순간들이 너무 좋다. 그러다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숨이 차오를 때면 알수 없는 성취감에 빠져 가슴 그득해지는 순간이 올때가 가장 행복할 때이다. 가끔은 걷는 행위가 삶에서 발견하는 무수한 의미들을 동반하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산티아고 900킬로미터를 저자와 함께하면서 그 느낌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묘지를 걸을 때, 죽음이 주는 삶의 의미들, 눈보라 치는 피레네산맥을 걸으며,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때 엄습하는 위험들, 템플기사단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 아베르게에서도 저자는 눈으로 보는 것과 긴밀하게 삶을 연결하여 가는 길마다 지혜의 자양분을 뿌려놓았다.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인생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레이스 제1원칙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말라

레이스 제2원칙은 구간기록을 체크하라

레이스 제3원칙은 이미 지난 레이스에 집착하지 말라

레이스 제4원칙은 길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

레이스 제5원칙은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레이스를 펼치라

레이스 제6원칙은 상대를 보지 말고 목표를 보고 나아가라

레이스 제7원칙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라

 

저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인생 레이스와 닮았다고 한다. 나는 이 레이스의 원칙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많은 순간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무엇이든지...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벗어나고 싶은 유혹도 있고, 때론 그렇게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것이 아니라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가듯이,  바람을 사랑하는 풀의 흔들림처럼 살아가고 싶다.

 

삶을 썩게 만드는 것은 아픔이나 시련이 아니라

성공의 이력과 주변의 찬사다.

그것을 흘려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의 고수다.-62p

 

허허로움이 가득한 가을날 만난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는 가슴을 가득 채우고도 긴 여운이 남아 몇 자 끄적거려 놓는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2.11.04. 신고 공감 14 댓글 18
리뷰 총점 종이책
산티아고 순례길, 몸으로 가슴으로 걷다
"산티아고 순례길, 몸으로 가슴으로 걷다" 내용보기
산티아고 순례길은 피레네 산맥부근의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의 서쪽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동서로 길게 난 800km의 길이다. 해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간다. 종교적 이유가 되었든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위한 여행이든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100km를 떨어진 땅끝마을 피니스테레까지 걸었다고 한다. 많은
"산티아고 순례길, 몸으로 가슴으로 걷다" 내용보기

 

산티아고 순례길은 피레네 산맥부근의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의 서쪽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동서로 길게 난 800km의 길이다. 해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간다. 종교적 이유가 되었든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위한 여행이든 나름대로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100km를 떨어진 땅끝마을 피니스테레까지 걸었다고 한다. 많은 사색을 통해 자신과 만나기 위해 조금 천천히 걸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 47일의 순례길이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저 먼 길을 왜 혼자서 걸은 것일까? 저자는 인생 40대를 성장통을 겪는 사춘기와 대비하여 '정지통'을 앓고 있는 사추기(思秋期)의 문제와 연결해 걷는 이유를 설명한다. 열심히 질주하며 40대를 달려왔지만 어느 한 순간 정지하고 멈춘 것 같은 순간이 다가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의 쳇바퀴 도는 행보를 멈추고 스스로를 '거대한 정지'속에 몰아넣는 것이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 멀리, 제대로 인생길을 나아가기 위한 '뜨거운 쉼표'였고, 인생 전체에서의 실로 '위대한 멈춤'의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을 내딛지만 정말 제대로 가고 있는지 깨닫고 느끼는 것이 그리 수월한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자신을 객관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관찰해 보는 것이다. 이 때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걷기다. 혼자서 조용히 걸을 때,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달, 두달의 걷기가 되었을 때 자신의 밑둥에 쌓여있던 내밀한 부분까지 만나는 기회가 생긴다. 저자는 이를 '거대한 정지'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저자가 50여일간의 산티아고길 순례기간 중 자신이 찾은 내면의 소리와 마음바닥을 가감없이 드러낸 고백서이다. 까닭없는 눈물이 흘러내린 순간도 있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겸허히 내려놓는 순간도 있다.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누어 주는 따뜻한 스프 한 그릇에 감동하기도 하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주고받은 따뜻한 미소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

 

수많은 생각의 단상들이 책의 곳곳에 드러나지만 저자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결코 서두르지 말자. 살아가다 보면 봄날과 같은 날씨도, 겨울철의 냉혹한 바람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자. 때론 멈출지라도 결코 포기하지는 말자. 그 걸음으로 꾸준히 가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무서운 것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어제와 다른 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저자가 산티아고 길을 몸으로, 심장으로 걸으면서 이렇게 느낀 것 같다.

 

몇 가지 도보여행에 대한 책들이 떠오른다. 그 중 최고는 단연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장장 5개월간 걸어서 연경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한 우리 고전문학의 백미이다. 마르코폴로의 비단길을 다시 걸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도 서양인의 시각에서 걷기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에 읽은 산티아고 순례길도 참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해야 할 버킷리스트에 도보여행을 추가해 본다.



c******4 2012.12.12. 신고 공감 13 댓글 76
리뷰 총점 종이책
변화는 행동이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변화는 행동이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내용보기
구독하고 있는 신문을 통해 저자의 칼럼을 수 년 동안 읽어왔다. 문단을 #으로 구분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내용을 떠나 이 #의 기호가 필자와 독자 사이에 울타리를 친 듯 딱딱하고 서먹하게 느껴져서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필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도 감정적으로 메말라보였던 저자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는 어떻게 표현됐을 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렇게 조
"변화는 행동이다/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내용보기

   구독하고 있는 신문을 통해 저자의 칼럼을 수 년 동안 읽어왔다. 문단을 #으로 구분하는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내용을 떠나 이 #의 기호가 필자와 독자 사이에 울타리를 친 듯 딱딱하고 서먹하게 느껴져서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필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도 감정적으로 메말라보였던 저자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는 어떻게 표현됐을 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렇게 조금은 삐딱한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였기에 현실에 안주하기 싫어서 산티아고로 도보여행을 떠나게 됐다는 서문을 읽으며 저자를 요즘 유행에 편승하는 그저 그런 호사가로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처음에는 이런 잘난 사람들의 호사여행에 기대 내가 얻는 것이 있으면 좋을 거라는 “타산지석”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에 대한 내용보다 저자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빠져들었다. 저자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을 읽으며 저자가 현재 가지고 있던 삶의 절실함이 내게로 전이되는 것을 느끼게 됐을 때 비로소  저자에 대한 불편함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길을 걸으며 함께 생의 의문점에 대해 고민해 나가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처럼 다정하게 저자의 칼럼을 찾아 읽는다. 그의 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의 칼럼을 대하는 내 자세가 달라졌을 뿐이다.


  산티아고를 가는 길 위에는 고독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만남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 만남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었다. 저자를 통해 내가 만난 만남 중에는 옷 수선집 주인인 엘리아스 깔보라는 남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길을 걷는 이들의 형편을 헤아려 무료로 옷을 수선해주는 이 남자의 히끗한 머리칼과 옷에 실을 묻힌 채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구두장이 마틴》을 떠올렸다. 저자는 이 사람의 선행에 감동을 느꼈지만 깔보라는 남자 역시 저자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신의 성자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나만의 상상을 하며 이 남자의 일하는 큼직한 두 손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또 저자가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자신을 위해 수프를 끓여준 민박집 주인의 마음씀씀이에 감사를 느끼며 자신은 누구에게 이런 대접을 한 적이 있었는지 돌아볼 때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이 내게 베푼 선행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리지 않았는지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들었었다.


  바람에 날리는 들풀을 보며 김수영을 생각하고, 그의 시 <풀>을 떠올리며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며 흐르는 게 사랑이라고 정의내릴 줄 아는 저자는 어느 새 감성이 풍부한 멋진 사람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흐름이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다.


둘 사이가 어느 쪽으론가 기울어야 사랑이다. 기우는 쪽으로 사랑은 흐른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사랑하는 쪽에서 사랑받는 쪽으로, 한쪽에서 또다른 한쪽으로 그렇게 기울며 흐르는 게 사랑이다.-140쪽


  누구나 살다보면 어려움 앞에 설 때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안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산티아고로 가는 도보여행을 택했고 결국 그는 궁지에서 나온 것 같다. 가장 좋을 때 안주하려하지 않고 미래의 위기를 미리 내다보고 대처하는 저자는 현명한 사람이다.

  저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 갈 수 있었고 더 큰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책 속에는 멋진 문장이 참 많았고 그 문장 속에는 진심이 깃들여있어 읽는 사람에게 그냥 그대로 스.며.든.다.


나무가 지난여름의 무성했던 잎들을 낙엽으로 내려놓듯 또 그 열매를 땅위에 떨구며 내려놓듯 우리도 뭔가 성취했다면 담담함으로 그 성취의 감격과 흥분도 이제는 낙엽처럼, 실과처럼 겸손히 내려놓아야한다. 그래야 새봄에 다시 나무가 새 움을 틔우고 새순과 새 열매를 키워내듯 우리도 다시금 더 크고 알찬 성취의 길로 도전하며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270


  저자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삶의 텃밭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것처럼 자신의 삶의 속살을 보았다고 한다. 그랬기에 가슴 속에 꼭꼭 감춰두었던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고 가장 솔직한 자신의 속마음과 대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두려운 일은 문득 만나게 되는 자신과의 대면일지도 모른다. 이 두려운 일을 이겨낸 저자의 행보가 부러웠다.

  책 제목은 헤르만 헷세의 시 <혼자>에서 발췌했다. 어떤 길이든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지만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 가야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혼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기에 자신과 만날 수 있었고, 자신과 만날 수 있었기에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었던 저자는 드디어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 우리 삶은 언젠가 한 번은 피어날 꽃이라는 것, 순간에 피어나는 꽃을 위해 이름 없는 들풀도 최선을 다하는데 자신이 피울 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일은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 내가 살아온 흔적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거라고 하더라도 내가 보인 노력의 시간만큼은 꽃향기가 되어 시간을 넘어 존재할 것이라는 철학적인 답까지 얻어낸 저자의 모습에서 나는 산티아고를 걷는 수행자를 보았다.

  결국 저자는 이 여행을 통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책을 덮은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 꽃이 지고난 뒤 품게 될 씨앗 하나를 생각하며 자꾸만 게을러지는 나를 다잡아 세우는 일이었다. 그 씨앗이 무르지 않고 단단하게 여물어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세월을 견디게 해주기를 소망해본다.


 






t******e 2012.11.28. 신고 공감 10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심연 속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독한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심연 속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독한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 내용보기
살다 보면 문득 극한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 약간의 여유로부터 비롯된 삶에 대한 자문의 결과일까.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만 메아리 쳐 돌아온다. 답이 있을 리가.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일반적인 답을 기대한 것부터가 문제다. 결국 스스로의 고독한 판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심연 속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독한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 내용보기

살다 보면 문득 극한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 약간의 여유로부터 비롯된 삶에 대한 자문의 결과일까.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행복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만 메아리 쳐 돌아온다. 답이 있을 리가.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일반적인 답을 기대한 것부터가 문제다. 결국 스스로의 고독한 판단과 결정으로 행동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내 스스로에 대해 나도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그만큼 생각해보고 살지를 못했으니까. 어쩌면, 특별한 계기를 주지 않는 이상 계속 반복되는 상황일 게다. 나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 그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막연한 불안감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겠지. 


평안하게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내 일상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그러면서도 변화를 주기 싫어하는 나의 나태함. 당장은 버림받을 일 없어 보이는 안정적인 조직 내의 소속감. 자율적이고 자유스러운 조직 문화가 가져오는 책임의 모호함. 그 속에서 물들어 가며 침잠하는 나의 열정과 의욕은 나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스스로 만들어 낸 게으름의 늪 속에서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의 상황들은 일상의 고독감과 만나서 괴로움으로 변한다. 누구나 슬럼프를 겪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못 일어나고 주저 앉을 수도.....


산티아고. 솔직히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과거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 제목으로 본 것이 전부이고, 책을 소장하고는 있지만 읽지 못했기 때문에 순례지 중 하나라는 것과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라는 점 말고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정 진홍 작가. 과거 <정진홍의 사람공부>를 통해서 처음 만나게 된 작가 분이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을 쓰는 분이다. 그런 그가 산티아고를 다녀왔고 새로운 글들을 썼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라는 책 속에는 저자가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또 걸었던 47일간의 고독한 여행이야기가 담겨 있다.


산티아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흔한 여행 후기에 가까운 글이라 생각했는데, 아차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 장장 9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도보로 걷는 여행. 여행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하다. 순례길이라는 표현을 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무모해 보이는 고난의 길로 보인다. 책을 넘기면서도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끊이질 않았다. 프롤로그를 다 읽기 전까지만....... 안주하는 삶을 버리고 도전하는 삶을 선택했던 그의 과거와 또 다시 안주하게 된 현재를 버리고 마음점검을 하고자 떠난 자기만남과 힐링의 길. 사람은 몸이 먼저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늙는다는 그의 표현을 보면서 몸이 떨린다. 늙어가는 내 마음이 보였기에.... 숙변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려대고 마음의 시력을 되찾고,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었다는 그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은 과연 내 늙어버린 마음도 되돌려 줄 수 있을까?


책 속에는 일부러 홀로 고독한 걷기를 선택하고, 남들과 다른 시간 배정을 하고, 평범함을 버리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으려 했고, 실제로 목숨을 잃을뻔한 적도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순례길에 올랐다가 죽은 이들의 묘비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그런 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매일매일이 고통의 시간이고 사유의 시간임에 그가 느끼고 책을 통해 전하는 모든 내용들이 가볍게 와 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생은 때로 미쳐야 해. 우리는 너무 안 미치는 게 탈이야.

미쳐야 산다. 꿈꿔야 산다. - P.87

한번쯤 살짝만 미쳐봐도 그 어긋남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을텐데.... 때론 미쳐보는 것도 새로운 길을 여는 과정일텐데... 애써서 어긋나려는 것을 눌러서 붙잡고 이어서 내 꿈도 소멸되었다. 평범을 택한 내게 외치는 말처럼 들렸다.


내버려 둔다는 것은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거나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아예 잊고 지내는 것 역시 물론 아니다. 내버려 둔다는 것은 본래 그것의 성질과 기운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내 안의 힘이 원기회복을 하도록 기다리고 배려하는 일이다 - P.110

내가 생각하고 있던 힐링과는 다른 의미다. 그냥 쉬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한 일은 나를 방치해 둔 것이었다. 내버려 둔다는 것이 근원적인 자기사랑의 한 방법이라는 말이 어쩜 이리 깊이 와 닿는지!


가장 알 수 없는 게 바로 나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남을 알겠는가 - P.163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친 내 모습은 나 스스로도 느끼지만 주변에서도 알아차린다. 뭔가 나사 하나 빠진듯한 행동을 하게 되니까... 그러면서 마찰이 생기기 시작하고 나는 스스로에 대해 방어막을 친다. 나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내 자신의 일면에 대해서 변명을 하며, 타인의 생각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모든 문제는 내 속부터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었다.


운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그 울음은 결코 감싼 감정의 분루가 아니지 않은가. 그 얼마나 속 깊은 눈물의 용솟음인가 - P.283

대한민국의 남자들은 울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라왔다. 나는 감성이 메말랐다는 소리까지 들어봤으니까... 심지어 속에서는 통곡이 나오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경험했다. 내면이 말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그 감동에 눈물을 쏟을 수 있었던 경험을 엿보면서, 내 속을 다시 한번 살피게 된다. 나 스스로 너무 장막을 치고 스스로에게 거짓되게 살지 않았나.... 


나의 외로움을 타인을 통해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책을 읽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떠한 계기가 되든,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진행이 되든, 안주하는 현실이 있다면 그것을 깨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힘들고 외로울지라도 나를 찾는 고독한 길을 걸어봐야 한다는 것을...





d******4 2012.11.09. 신고 공감 10 댓글 25
리뷰 총점 종이책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내용보기
6월 8일자 중앙일보는 40, 50대가 겪는 우울증에 대해 심층진단을 했다. 무기력감과 우울함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이 질병은 평범하고 착실한 중년층 사이에서도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이들의 특징이 스트레스를 표현할 줄도, 관리할 줄도 모르는 ‘유리 멘털’에서 찾는다. 몸이 지쳐 있기에 마음의 병이 쉽게 찾아오는 그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에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내용보기
6월 8일자 중앙일보는 40, 50대가 겪는 우울증에 대해 심층진단을 했다.

무기력감과 우울함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이 질병은 평범하고 착실한 중년층 사이에서도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이들의 특징이 스트레스를 표현할 줄도, 관리할 줄도 모르는 ‘유리 멘털’에서 찾는다. 몸이 지쳐 있기에 마음의 병이 쉽게 찾아오는 그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2만3537명이 우울증에 걸렸고 그 숫자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단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를 경제적·사회적 위기감에서 찾고 있다.  요즘 읽은 몇 권의 책은 이렇게 베이비부머들의 아픔과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 자신도 베이비부머의 첨병이기에 가끔 눈물을 글썽이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끔 나이는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으로 비춰지기에 고통스럽다. 거기에다 요즘 와 더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진홍이 900 킬로미터 산티아고 길을 걸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삶을 살았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더군다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그의 감성적인 글 솜씨는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고 있다. 이 정도라면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남은 인생도 적당히 흘러가면 될 것 같은데 저자도 어느 날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이 물음이 전율을 일으키며 다가 올 때가 있다. 그때는 누구도 이 물음을 피해갈 수 없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 물음에 정면으로 서질 못하고 비켜서고 피해보려 한다. 비켜갈 수는 있다. 애써 외면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아니 그렇게 하려고 몸부림친다면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 라는 이 물음 앞에 기꺼이 정면으로 서야만 한다. 그게 삶에 직면하는 자세다.”

 

이 책의 가치를 이 질문에서 찾고 싶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은 나를 변화시킨 한권의 책으로 소중히 남아있을 것이다. 요즘 기독교의 내부비리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공격한다. 어제만 하더라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교회 헌금을 이용해 장남인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보유한 ‘아이서비스 주식 25만주를 적정가보다 4배 이상 비싸게 사들여 교회에 157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불구속되었다는 기사가 각 포털사이트에 올라왔다. 앞으로 법정공방이 있겠고 사건의 실체를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이 기독교에 대한 실망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누구보다 성령 충만을 강조했고 놀라운 기적을 많이 일으킨 목사였지만 이렇게 추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삶에 대한 성찰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100% 일치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믿음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인간은 가끔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800명의 우상 숭배자를 죽게 했던 엘리야“내가 반듯이 너를 죽이겠다!”는 이세벨 여왕의 말 한마디가 무서워 광야로 도망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 난 이렇게 나약한 그의 모습이 좋다.엘리야는 나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엘리야가 어제의 승전에 도취했다면 그는 교만해졌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선지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나약함을 알았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음식을 주어 먹게 하셨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을 통해 그를 회복시키셨다. 그래,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산티아고 900 킬로미터를 걷는다. 치유와 축복의 길이라고 알려진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해답을 찾는다. 정진홍은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걸으며 제일 먼저 눈물을 그의 친구로 삼았다. 저자는 철저히 고독하기로 작정하고 산티아고로 향했다. 그는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고 마음 착한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과 대화하며 철저히 고독을 택했다. 20대 젊은 시절 불빛도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홀로 야영을 한 적이 있었다. 가을바람이 텐트 위를 스쳐갈 때 무서웠다. 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장래였다.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도망치고 싶었고 그때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고 실컷 울고 난 다음에는 마치 비 온 뒤의 하늘이 더 파란 것처럼 짧은 희망이 어둠속에서 빛났다. 저자 정진홍도 1000미터가 넘는 눈 덮인 피렌체 산맥을 넘으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비수처럼 삶의 깨달음이 자신의 뇌리에 꽂혔다. ‘정말 제대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래서 혹독한 길을 걷게 한 신께 오히려 감사했다.’

‘제대로 살아야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에게 다짐하는 흔한 말이지만 피레네 산중에서는 다를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힘든 상황 속에서 나온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더 살기를 포기하고 나를 차라리 죽이라고 하나님 앞에 저항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그래서 진실하다. 나와 똑같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 때문에 난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다. 그가 약점 하나 가지지 않은 천사의 모습이라면 그의 고뇌는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낯선 장소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고독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한다. 그때 자신이 원하는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살았는가를 알았기에 우리는 통곡하는 것이다. 예수를 3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눈물은 그래서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감동이 있다.

눈물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란 질문에 자신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으로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에 대한 감정적인 동의다. 저자가 눈물을 흘리며 피렌체 산맥을 넘는 고행을 보며 눈물이 나는 이유는 나도 저 길을 가야한다는 당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제 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깨달은 주옥같은 삶의 진리를 기관총 쏘는 것처럼 쏘아대고 이 총알에 맞은 자신은 그 상흔을 기억하기 위해 열심히 밑줄을 긋는다. ‘우리가 더 이상 질주하지 않는 것은 몸이 둔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럴 마음이 없어진 때문이다. 삶이 가수면 상태에 빠진 탓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일어나 나를 깨우라. 내 안의 잠자는 질주본능을 깨워 이 너절한 세상을 관통하듯 질주하라.’

이렇게 저자는 독자들에게 아니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있는 중년들에게 다시 한 번 미치며 살자고 말한다. 삶이란 어차피 외로운 길인데 그것을 외롭다고 슬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고 삶의 혜안을 가진 사람들은 나름 인생의 길을 제시했다. 정진홍도 이제 그들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산티아고를 걸으려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어제와 다른 나는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날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차이를 만들면 언젠가는 그것이 진짜 다름이 된다. 그 다름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뭔가 다시 할 자유가 새 시작의 참뜻이다. 자기 미래의 주인 됨을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거기엔 땅 끝도 종점도 없다.’

그래 40,50대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제일 많고 인생은 가장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저자의 이 당부는 꼭 기억하자. ‘자기 미래의 주인 됨을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거기엔 땅 끝도 종점도 없다.’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YES마니아 : 로얄 j*****r 2013.06.10. 신고 공감 8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용보기
또 한 해가 저문다. 아직 한달 정도가 남아 있지만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허허롭기만 하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미리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짐들이 너무 많고, 또한 무거워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에 김희경씨가 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란 책을 읽고서 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용보기

또 한 해가 저문다. 아직 한달 정도가 남아 있지만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허허롭기만 하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미리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짐들이 너무 많고, 또한 무거워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에 김희경씨가 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란 책을 읽고서 산티아고 가는 길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800여키로에 달하는 길을 걸으면서,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나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면, 남은 삶이 좀 더 자유로워 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 또한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것은 용기 일진데, 아마 아직까지는 견딜 수가 있나 보다. 마음속으론 달려가고 싶으면서도 정작 몸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은 일도, 그리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는 생각이다. 어느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마는,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꾸만 예전의 기억에 마음이 머문다. 옛 사람의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갈 텐데..” 말이다. 기쁨도, 슬픔도 그리고 성공도, 좌절도 시간이 되면 지나가고, 또 다른 시작이 남을 텐데, 거기에 머물러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이제는 다시 한번 나 자신과 진솔하게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마음의 굳은살을 빼내어야 할 텐데.. 미움과 무관심과 오기를 내려놓고, 분노와 다툼과 과욕도 내려놓고, 그리고 성취와 흥분도 내려 놓아야 할 텐데, 이 또한 지나갈 것 이기 때문이다. 허나, 머리 속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정작 마음 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미련이 많이 남아있다는, 마음의 살이 너무 두껍게 굳어 있음을 느낀다.

 

저자의 용기가 부럽다. 아니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티아고 가는 길, 900여키로를 느리게 걸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마 이제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좌절만이 더 많이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느리게 걸으며, 자신의 내면과 대면해 보는 그것은, 지금까지 정신 없이 달려온 인생 전체에서 위대한 멈춤이라는,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뜨거운 쉼표라는 저자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돈다.

 

울어 본적이 언제인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억에 없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플 때는 한바탕 울기라도 했으면 후련할 텐데, 눈물이 나지를 않는다. 아니 마음은 오히려 더 냉정해지고, 차가워지기만 한다. 운다는 것이, 눈물이 난다는 것이 약하고 패배한다는 것은 아닐진 데 말이다. 산티아고 가는 그 길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그곳에서,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토해낸 저자의 울음이 내 마음을 소용돌이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라는 그의 물음이 나에게도 번민을 가져다 준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아내에게, 내 아들들에게,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 피해간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피하지 않고, 그 물음에 답해 보는 것이 인생에 직면하는 자세일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씩 짐을 꾸리고, 풀기를 반복한다. 산티아고 가는 그 길을 걷기 위해서 나는 배낭 속에 무얼 넣어가야 할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보고, 이것, 저것 포함시켜 보지만 그것들을 지고 가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누가 대신 져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오롯이 내 자신이 대가를 치를 뿐이다. 그렇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챙겨 고생을 한 기억이 난다. 준비한 것들 중에는 종주가 끝날 때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혹시나 몰라 넣어둔 것들 때문에 산행을 하는 내내 힘들어 했었다.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는 짐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 싶다. 그 짐들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들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혹시나 아직도 미련 때문에 내려 놓지 못하는 짐들은 없는지.. 이제 무거운 배낭대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의 짐을 지고 가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k*****1 2012.11.27. 신고 공감 8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삶은 기어서라도 가야하는 여정
"삶은 기어서라도 가야하는 여정" 내용보기
순. 례. 자 산티아고 가는길 900KM를 걷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 아무나 쉽게 걷기 힘든 길이어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순례자라고 부를까? 900킬로미터라는 거리는 좁은 반도에 갇혀 지내는 우리네 시각이나 관념으론 단순히 서울 부산간 왕복에 해당되는 거리로 짐작케 하는 추상적 개념일뿐. 왜일까? 왜 그들을 순례자라고 부를까? 그건 그 길이 그냥 유
"삶은 기어서라도 가야하는 여정" 내용보기

. .

산티아고 가는길 900KM를 걷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른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 아무나 쉽게 걷기 힘든 길이어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순례자라고 부를까? 900킬로미터라는 거리는 좁은 반도에 갇혀 지내는 우리네 시각이나 관념으론 단순히 서울 부산간 왕복에 해당되는 거리로 짐작케 하는 추상적 개념일뿐. 왜일까? 왜 그들을 순례자라고 부를까? 그건 그 길이 그냥 유람삼아 휘적휘적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을 걷는 다는 건, 그것도 혼자서 몇날 며칠을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 다는 것은 순례자가 느끼는 고행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와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벗 삼아 걷는 그 길에서, 아마도 살아온 과거의 회상들이 떠오르고. 개중엔 잊고 싶은 쓰라린 기억, 회환과 후회의 눈물, 아쉬움과 원통함과 용서와 관용의 기억들과 함께 부대끼며 걷는 여정이리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정, 내면의 울림을 듣는 여정, 그래서 그 길은 순례자의 길이고 그래서 그 길을 걷는 자는 순례자인 것이다. 인생의 순례자.

 

  인문학자이며 저술가이고 학자이기도 한 작가 정진홍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 섰다. “정진홍의 900킬로미터라는 소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여정의 기록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고. 그 기록을 남겼다. 순례자의 그 길을 관광 삼아 떠난 사람, 그저 길의 소개에 그친 사람, 아니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떠난 사람, 또는 여럿이 어울려 무슨 유람을 떠난 것처럼 그 길의 여정을 소개한 사람은 많았다. 지금도 서점에 진열된 여행기나 인터넷상의 자료도 그처럼 그 길을 다녀왔음을 과시하기 위한 자료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 길은 그렇게 즐기는 길이 아닌 힐링의 길이며 치유의 길이다. 깨달음의 길이며 거듭남의 길이다. 진정한 깨달음의 길인 그 길을 온몸으로 걸은 기록은 이 책이 처음이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자신의 내면에 거듭되는 물음에 답을 하며, 목숨을 내놓고 마음으로 걸은 길, 그런 기록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다. 그 길에서 돌아와 몸무게도 10KG이나 줄었지만 가장 많이 빠진 것은 마음의 비계라고...

 

  그동안 인문학적 깊이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써내려간 그의 저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의 글과 강의는 언제나 독자와 청중을 매료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1,2,3은 동서양의 고전에서 만나는 수많은 위인들의 예화를 빌어 현 시대의 경영이 나아가야할 지표를 제시해 주었고, 정진홍의 사람공부1,2는 자신의 삶에 있어 치열함으로 승부하여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고전을 통한 예화와 우리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겨진 얘기는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엔 충분했다. 나도 그의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얘기에 동감했고, 그들의 삶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그 책을 통해 지금도 가장 한국적인 한의 목소리로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주는 장사익 선생님이 늦은 나이에 노래를 시작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인생역정이 있었으며,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지냈는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레옹의 마틸다 역을 통해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파트메 역을 통해 스스로를 부각시키고, 블랙스완을 통해 그 연기의 절정을 보여준, 그 역으로 2011년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를 향한 그 완벽을 추구한 열정도 알게 되었다. 블랙스완을 통해 본 그녀의 미친 연기가 단순한 우연히 아닌 그녀의 치열한 내면의 고뇌와 열정의 산물이었고, 어쩌면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의 전공조차 이역을 맡기 위한 운명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집요함은 결과를 떠나 그 영화를 보고 내가 받은 충격을 충분히 해명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가 그의 저서를 통해 전해준 모든 이야기는 그 자신의 얘기가 아니었다. 그가 가진 독서력과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동서양 고금의 많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모아서 우리에게 들려주었을 뿐이다. 단순한 전달자였다. 자신의 얘기가 아닌 그 누군가의 얘기였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라고. 그러한 얘기가 감동외에 우리에게 주는게 무엇인지. 그런 독자들의 의문을 눈치 챈 것일까? 인문학의 날카로운 칼끝으로 우리를 향해 현란한 칼춤을 추던 그가 그 인문학의 칼끝을 자신을 향해 들이댔다.

 

  그 길은 시작부터 녹녹치 않았다.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죽음의 고비를 오르내리며 시작한 그의 여정은 우리네 삶과 닮아있다. “안주는 안락사다라는 치명적인 문장으로 시작한 그의 여정에 관한 기록은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렸다. 저자는 길 위에서 자신의 생의 철학을 녹여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스스로를 향해 들이댄 저자의 인문학의 칼끝이 외려 나의 가슴을 훓고 지나갔다. 그가 느낀 지나온 세월에 대한 고통과 회환의 얘기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구절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길 위에 선 그는 바로 나였고, 우리였다. 그의 고통과 울음, 통곡과 회환도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었다. 문득 문득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나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 중년이 되어 느끼는 삶의 고민들을 스스로의 얘기로 엮어나감에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꼈다. 그동안 작가가 글을 통해 제시한 인문학적인 생각들이 이제는 남이 아닌 나를 향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지금 우리들의 생각임을 느끼게 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 길을 걷는 작가를 통해 온전한 나를 찾을 수 있었고, 저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는 울음도 토해보고, 어느 순간 마음의 응어리가 치유되는 후련함도 느꼈다.

 

  가끔 혼자서 산을 찾는다. 어느 정도 길을 걷기 시작하면 산티아고에 나선 순례자들처럼 자연의 소리가 나의 저 깊은 마음속 심연에 잠들어 있는 추억의 조각들을 끄집어 올린다. 그 속에는 미련, 후회, 회한, 미움, 증오 ,시기 등 찌꺼기 같은 아프고 슬픈 기억들이 장마철에 밀려온 부유물처럼 기억의 밑바닥에서 떠 올라온다. 오래전 잊어버렸던 기억들까지 덩달아 떠올라 마치 그동안 살아온 삶을 기록한 한편의 다큐를 보는 듯이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온다. 그리고 질문한다. 나는 잘살고 있는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같은 일을 다시 반복한다 해도 똑같은 길을 가고 똑같은 결정을 내릴 것인지. 때로는 그 기억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숨을 쉬기도. 미처 하지 못한 일과 잘못된 결정에 대한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찢어질 듯 아프기도 하다. 작가도 산티아고를 걸으며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마음한구석에서 나를 향해 속삭인다. 저 끝까지 원했던 곳까지 가지 않아도 누구도 너를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이만 돌아가라고. 또 한편에서는 이까짓 것도 이겨내지 못하면 세상에서 무엇을 하겠냐는 내마음속 또 다른 투쟁을 뒤로하고 정상에 오르는 순간, 세상이 발밑에 있음이 기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유혹을 이기고 원했던 곳에 서있음이 기쁜 그 순간. 삶은 또 다른 시작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아마 작가도 산티아고 길의 순례를 마치고 같은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곳에 서는 그 순간 세상의 잡동사니를 버리고 소망, , 화해, 사랑, 모험등이 마음속에 가득 차기를.

 

  앞으로도 작가는 글과 강의로 우리를 매료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갖는 힘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그는 이미 그동안 자신이 알던 인문학의 지식을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의 얘기에, 그가 들이대는 인문학의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그 서슬퍼런 칼날앞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그 칼을 자신을 향해 들이댔고, 인문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의 그 어려운 싸움에서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진정한 순례자다. 삶에 있어서 그리고 그의 여정에 있어서. 그리고 그는 스스로의 승리자다. 승리자로서 마음의 비계를 덜어낸 그가 앞으로 우리에게 들려줄 말과 글이 기다려진다. 그만큼의 삶의 비계를 덜어낸 그의 그 긴 여정이 우리에겐 어떤 감동으로 또 다가올지.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가야할 길, 그 길에서 닥치는 수많은 어려움은 산티아고 가는길에서 작가가 만난 어려움과 닮아있다. 그래서 우린 그 길을 걷는 자들을 순례자라 얘기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순례자. 자신의 돌아보고 올곧이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걸어야 할 순례의 길. 그 길은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인생이란 길은 삶이 우리와 함께 하는 한 가야할 길이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말고, 기어서라도 가야할 길이고,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래서 그 끝을 봐야하는 길이다. 순례자의 여정의 끝에서 한없는 자기 위안의 눈물을 흘렸을 작가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 그 길에서 얻어진 깨달음은 바로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부딪치는 고난을 해결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우리의 삶의 끝인 인생의 끝에서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볼 때 마음에 남긴 미련과 회환의 눈물이 줄일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 삶은 나름대로 잘 살아온 삶은 아닐까.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삶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은 아닐까. 어쩌면 길 위에 선 인문학자 정진홍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위안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게으르지 말고 안주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단 한순간도 쉬지 말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끝을 보라고.

 



h*****o 2012.11.30. 신고 공감 7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_정진홍의 900킬로미터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_정진홍의 900킬로미터" 내용보기
'healing'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의미하는 말이다. 올해 유행한 관심 키워드이며 이를 압도할만한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힐링(healing)은 각종 TV 프로그램과 언론, 마케팅을 거쳐 일상용어로까지 새롭게 자리 잡은 시대의 화두이자 패러다임이다. 현대 사회의 병폐로부터 벗어나 자연식과 슬로푸드를 추구하는 것이 웰빙(well-being)이라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_정진홍의 900킬로미터" 내용보기

'healing'은, ‘몸과 마음의 치유’를 의미하는 말이다. 올해 유행한 관심 키워드이며 이를 압도할만한 단어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힐링(healing)은 각종 TV 프로그램과 언론, 마케팅을 거쳐 일상용어로까지 새롭게 자리 잡은 시대의 화두이자 패러다임이다. 현대 사회의 병폐로부터 벗어나 자연식과 슬로푸드를 추구하는 것이 웰빙(well-being)이라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둘 줄 아는 것이 곧 힐링이 아닐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나’에게 풍요로운 가능성과 발견을 열어준 힐링 특강이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저류처럼, 광막한 산티아고 여정에서 외치는 고요하지만 뜨거운 메시지이며, 절망의 무덤에서 건져 올린 삶의 열정이다. 눈물의 양만큼 깊이를 알게 하는 가슴 두드리는 통곡이다.

 

 


저자는 30년 전, 50여 일에 걸친 가난한 여행을 통해 부모와의 생체적 탯줄을 끊는 것과 같이 정신적 탯줄을 끊는 계기로 독립된 자아로 우뚝 섰음을 회고한다. 그리고 현재의 불안한 안주를 박차고 어떠한 정보도 쥐지 않은 채, 막막한 산티아고 여정을 선택한다. 배낭을 메면서, ‘채움’ 대신 ‘비움’을 배우고, 몽파르나스의 공동묘지를 보면서 ‘사사’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무덤을 향해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지 상념에 젖게 한다. 스페인 부르고스 서점에 비중 있게 진열 된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의 책들은, 그들의 문화적 저력과 동시에 우리네 문화적 후진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YOU ARE NOT IN SPAIN”이라는 낙서를 보면서 바스크인들의 애통을 듣는다. 그 울림은 나라를 잃어본 민족이라면 함께 전율하게 되는 문구이다. 당연한 그들의 외침이 외면 받지 않기를 소망하게 된다.

 

밑질 것 없어 보이는 사이는 사랑이 아니다.

그건 자칫 거래다.

어느 쪽으론가 기울어야 사랑이다. -P141

 

 


‘풀과 바람이 사랑이더라’에서 김수영의 시 <풀>을 새로운 주제로 해석한 작가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사랑은 불평등한 거래이기 때문에 기우뚱한 균형으로 잡아가는 것! 신선한 울림이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사랑은 한쪽에서 다른 곳으로 흐르기도 하고 그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서 균형을 잡아간다. 제멋대로 부는 바람에 의해 풀은 온몸으로 눕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바람은 그러한 풀의 움직임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반면, 풀은 부러지지 않는 기개를 보인다. 그것은 희생이란 덕목으로 온몸을 조아리는 모습이면서, 눕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서게도 하는 에너지로 ‘풀’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사랑의 동기를 준다. 풀과 바람은, 상호보완 파트너십을 발휘하는 행복한 증거다. 내 주위에 이러한 파트너십을 발휘할 동지가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정진홍 작가의 글은, 마음을 흔드는 변화와 깨달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난 순례자들, 화려하거나 풍족하지 않아도 자기 것을 나눌 줄 아는 따스한 시선과 손길, 길이 있는 곳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고, 살아 숨 쉬는 역사가 있었음을, 읽는 내내 스펀지처럼 스며드는 지식의 축적과 앎의 각성, 여독을 풀어주는 완화제까지 두루 갖춘 통합형 에세이집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 지친 사람들에게, 무뎌진 일상에 멈춤이 아닌 쉼표가 필요한 이들에게,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에게, 올바른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아포리즘 목록을 작성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행간마다 공감하는 글들이 빼곡하여 구구절절 맞장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티아고 900km의 지난한 여정 끝에서 가슴 벅찬 감동과 순간들의 여운이 메아리처럼 전해지는 듯하다. 



d******7 2012.11.27. 신고 공감 7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걷는다. 정지통을 지나 새로운 꿈의 여정으로..
"나는 걷는다. 정지통을 지나 새로운 꿈의 여정으로.." 내용보기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_돈키호테       광활한 피레네 산중,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한 남자가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질퍽한 길을 걷고 있다. 내 눈물이 빗물인지, 빗물이 내 눈물인지 이미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속에
"나는 걷는다. 정지통을 지나 새로운 꿈의 여정으로.." 내용보기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_돈키호테

 

 

 
광활한 피레네 산중,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한 남자가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질퍽한 길을 걷고 있다. 내 눈물이 빗물인지, 빗물이 내 눈물인지 이미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속에 쌓였던 ‘숙변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평생 울 것을 다 울었는지도 모른다. 안주하지 않기 위해, 편하고 좋은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행복을 걷어찼다. 치열했던 삶의 순간에 느꼈던 그 ‘행복’을 찾기 위해 이 남자는 그 옛날 순례자들의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저자 정진홍 교수가 산티아고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치열했던 내면의 싸움들, 그리고 산티아고에서의 눈물.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한 자락.

서른 나이에 처음 들어간 대학. 밤늦게 기숙사에 입소한 날, 짐을 부려 놓고 혼자뿐인 깜깜한 방안에서 이불이 다 젖도록 울었다. 하나의 꿈을 이루었다는 안도감과 기쁨, 지난 일 년 간의 힘들었던 공부, 그 이전의 공장 노동자로서의 지난한 삶 등 기쁨과 설움과 안도와 희망 등등이 뒤엉켜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던 진주같은 눈물. 내 안에 응어리졌던 숱한 기억들, 안으로 삭힌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 순간 참으로 행복하였다. 너무도 행복하여 눈물은 나를 정화시키는 성수가 되었다.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선 정진홍 교수의 눈물과 내 눈물의 기억으로 시작되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2000년 전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예수 사후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명을 좇아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별반 소득 없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헤롯왕에게 붙잡혀 순교해 그 유해가 죽어서 다시 간 길이고 그가 묻힌 곳을 향해 1000년이 넘도록 숱한 이들이 한 발 한 발 걸어서 간 길이다. 그 길은 누구와 함께 가는 길도 아니고 그 누구와 경쟁하러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오로지 홀로 고독하게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 위를 밟고 있음을 자각하며 가는 길이다.

 

당신과 나,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어렵사리 그 힘든 고3 시절을 보내고, 군대 2년을 죽은 듯이 보냈다.

전역하면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았다. 운 좋게 취업고시를 뚫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신, 나이 서른을 넘겨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두었다.

서른 넘어, 마흔, 혹은 쉰. 바쁘게만 달려온 인생길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은 뒤처짐이라 생각했다.

정지stop가 아닌 일단 멈춤pause.

되돌아보니 ‘나’는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나?

20대의 풋풋함과 30대의 진취성은 내 안 어딘가에 아직 숨쉬고 있을까?

질주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일까? 이젠 안주의 날들만 남은 걸까?

고민한다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

더 이상 질주하지 않는 것은 몸이 둔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럴 마음이 없어진 때문이다. 삶이 가수면 상태에 빠진 탓이다.

이제 내 안의 질주본능을 깨워 다시 한 번 땅을 박차 오르자.

 

굳이 산티아고길을 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정체된 나를 버리고, 제2, 제3의 시작을 위해서라면 어느 길이든 그 길이 산티아고이고, 꿈길이다.

정진홍 교수는 우직하게 프랑스 생장에서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까지의 900킬로미터길을 걸었다. 그 길은 성공한 나를, 안주한 나를 거부하고 20대의 열정을, 30대의 꿈을 회복하기 위한 고난의 길이자 생명의 길이었다.

정진홍, 그가 길을 걸을 때면 나도 길을 걷고, 그가 생경한 이국 친구들을 만나 외로움을 달랠 때면 나도 같이 기뻐하였다. 빗 속을 뚫으며 길을 걸을 땐 우산이 되어 그를 응원하였고, 근원 모를 외로움에 영혼까지 쏙 빼어 버릴 만큼 눈물을 흘릴 땐 내 가슴이 아릿해졌다.

이 책에 부려 놓은 정진홍 교수의 잠언을 다 소개할 순 없다. 삶의 기로에서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그의 도전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기억될 것이다.

1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성장통을 겪었다면, 30대 후반 혹은 40대 이후는 정지통을 겪는 시기이다. 나는 지금 정지통을 겪고 있다. 도저히 이 늪에서 벗어날 방법도, 용기도 없었다. 이 책을 읽고 정지통을 벗어났다면 그건 어쩜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정진홍 교수의 걸음걸음을, 그의 탈출기를 통해 나도 용기를 내어 볼 참이다. 이 지독한 정지통을 벗어나 길을 떠날 것이다.

문제도, 해결도 모두 길 위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헤르만 헤세의 시 「혼자」는 결국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응축된 시어로 비쳐내고 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k*****m 2012.11.29. 신고 공감 7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