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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베일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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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실존주의를 내걸어 실존주의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던 니체의 거대한 철학 사상을 문학적인 삶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이 도서를 접하면서 니체의 철학과 예술을 토대로 문학적인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이론적이면서 독특한 사상들은 19세기 후반 '시대의 이단아'로 불린 만큼 독창적이고 기발한 사유물이 많았다.또한 그가 주된 사상인 권력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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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후반 실존주의를 내걸어 실존주의의 대명사로 각인되었던 니체의 거대한 철학 사상을 문학적인 삶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이 도서를 접하면서 니체의 철학과 예술을 토대로 문학적인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그가 주장하는 이론적이면서 독특한 사상들은 19세기 후반 '시대의 이단아'불린 만큼 독창적이고 기발한 사유물이 많았다.또한 그가 주된 사상인 권력의지와 초인이라는 개념이 나치즘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를 이해하려면 우선 두 가지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권력의지,영겁회귀,자아의 본질 및 도덕의 비도덕적 기원과 같은 관점이고 또 하나는 니체의 텍스트 자체에서 야기되는 모순들이다. -본문 -

 

 니체는 이러한 개념들을 원근법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려고 했다.이것은 그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 중의 하나였지만 자체 내에 모순을 안고 있었기에 그 정당성은 늘 내부로부터 도전받고 있었으며,원근법주의는 이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해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대상이기도 하다.이러한 이해의 가능성들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이 불가능해보이고 그의 텍스트의 위상도 도덕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은 진리로 여겨졌던 현상들을 재해석한 결과이기도 하기에 니체가 펼친 개념과 텍스트에는 학자 및 연구자들에 의해 의견의 갈등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니체가 짧은 기간 창조적이었던 저술 가운데 경구나 은유,단편을 비롯하여 여러 스타일과 장르를 자유로이 구사했다.이 글에 실린 그의 주요 저서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유쾌한 과학>,<선악을 넘어서><우상의 황혼>,<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인데 경구적인 성향이 강하고 <권력의지>는 경구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과학이 과정과 실험을 거쳐 이루어진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 그리고 종교적 기만을 부도덕한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도덕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는 도덕과 부도덕을 행동의 동기에서 찾으며,도덕이 개별적 행위자에게 강요하는 의무의 성격에서 찾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니체의 저술의 목표가 소크라테스의 목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로 여겨진다.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다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난다.소크라테스는 일상을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으로 삼고 오늘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반해 니체는 추상적(관념적)이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독자에게 던져 독자의 삶에 즉각 영향을 주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특히 그가 다루는 해석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니체는 세계를 다양한 관습과 삶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는 텍스트로 생각하였다.즉 진리라는 개념을 버리고 텍스트라는 은유를 사용했는데,텍스트는 해석이 가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의미는 해석을 통하여 창조된다고 보았다.그런 점에서 텍스트에 가해진 해석은 과연 정확하고 옳은 것인가를 증명하고 판단할 기준이 있는 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해석 위에 재해석이 가해지다 보니 본의가 전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기독교적 도덕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태도 및 입장을 취했다.그러한 태도와 입장이 <계보학>을 비롯하여 후기 저서의 핵심이었는데,교회는 늘 관능성과 자만심.지배욕,탐욕,복수성 등을 제거하도록 강요해 왔기 때문으로 보여진다.정념의 뿌리를 비난하는 것은 삶의 뿌리를 비난하는 것이고 교회가 하는 일은 삶에 적대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생명의 일부를 제거하려는 기독교의 모순된 행태에 반발하고 전도된 세계관을 모두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던 것이다.나아가 진리와 거짓이라는 문제도 거론했는데 진리가 거짓일 수도 있고 거짓이 진리일 수도 있다고도 보았다.나아가 니체가 교리적 절대주의를 비판한 주된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행동 원칙을 강요했기 때문이며,도덕은 모든 사람이 준수해야 하는 행동 규범을 지향해야 하며,도덕은 모든 사람이 쉽게 따를 수 있도록 가장 평범하고 공통적인 요소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한다.그가 말하는 도덕이 허용하는 유일한 행동은 사회의 가장 허약한 구성원을 이익을 위한 것으로 바라 보았다.

 

 일부에선 그의 도덕관이 진부하고 모호하며 진리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충돌하고 내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그가 기존의 도덕을 새로운 행동의 규범으로 대체하기를 원치 않았다면 상기와 같은 비판을 효력을 상실했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그가 행동 규범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긍정적인 모습의 도덕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도 않았다.그의 주요 목표는 도덕적 전통을 흔들고 약화시키려는 데에 있었다.

 

 모두에서도 말했듯이 니체는 이상적인 인물의 모델을 문학 작품의 등장인물에게서 찾으려 했고,또한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훌륭한 이야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이는 그의 한계일 수도있지만 니체가 삶의 미학적이며 구성적인 성격을 강조했기에 그의 정당성은 약화되지는 않는다고 네하마스저자는 말한다.특히 <도덕의 계보학>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삶의 가치와 스타일을 결정하는 권력의지가 표현되는 것도 작중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우리는 따로 떼어놓고 봐야 한다.예술가를 작품처럼 심각하게 취급하면 안 된다.예술가는 어차피 작품을 위한 조건,모태,토양,작품을 살찌우는 퇴비나 비료 등에 불과하지 않은가.따라서 작품을 즐기고 싶으면 예술가를 잊어야 한다."

 

 끝으로 니체는 인간의 목표는 인간의 최종적 목적이 아니라 유대한 모범 즉 역사상 위대했던 개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권력의지>에서 "목표는 없다.목표는 개인이어야 한다"고 했다.그가 권하는 도덕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그의 도덕관이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자기 성찰은 자기 창조의 충돌과 결합되어 낭만주의자 및 최초의 모더니스트였으며 경이로운 인물임에 틀림없다.그가 남긴 문학으로의 삶은 성찰과 창조의 톱니바퀴를 잘 활용하였지만 아직도 그가 남긴 개념과 텍스트에는 갈등과 충돌,재해석되어야 할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j******6 2013.04.2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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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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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니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신은 죽었다’, ‘초인’ 등 굵직한 단어들 밖에 생각이 나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자극적인 부분이 많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니체의 굵직한 주제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전문적인 개념보다는 가치전도, 위버멘쉬, 허무주의 등은 우리들에게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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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니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신은 죽었다’, ‘초인’ 등 굵직한 단어들 밖에 생각이 나지 않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자극적인 부분이 많다.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니체의 굵직한 주제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전문적인 개념보다는 가치전도, 위버멘쉬, 허무주의 등은 우리들에게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사상, 글들을 읽다보면 사상을 종잡을 수 없고 글이 산만하고 무엇인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책은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읽고 있다. 그리고 광적인 니체의 팬들마저 만들게 되었다. 또 학자들은 니체를 쇼펜하우어의 ‘생의 철학’을 계승하는 기수이며, 실존주의의 선구자, 위대한 철학자로 지칭했다. 도대체 그의 철학에는 어떠한 매력, 특징이 있는 것인가? 일단 간단하게 니체의 철학은 고대철학으로부터 크리스트교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사의 모든 철학적 사상이 다 나타나는 듯이 보이고 너무나 다양한 사상적 색채를 보여준다.

 

 니체의한 문장, 한권의 책이 또 다른 니체의 문장, 책과 서로 대립 되는 그런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지금도 니체가 너무나 다양하게 해석되는 이유는 이런 니체의너무나 깊고도 넓은 심원한 사상의 특징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워낙 방대하고 사상이 위대한 다양성, 개방성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철학자들이 천 마디 말로 풀어놓을 진리 결론을, 그냥 천 마디를 단지 한 마디 말로 다 말해버리는 그런 위대한 예술적 철학자, 사상가 이다. 그래서 니체철학은비논리성이강한 듯 보이고 일관성, 체계성이 없는 듯 보일수도 있으나,그렇기에 니체 사상의 폭과 깊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원하다. 마치 지금도 캐면 발견하지 못한 금맥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철학자가 바로 니체이다. 그리고 니체는 서양사상의 원 뿌리인 그리스 고전문헌을 소크라테스 이전까지 거슬러가서 직접 다 읽어보고 연구, 비판한 이 분야에선 서양에서 유일무이한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니체에 대한 어떤 해설서보다도 흥미롭고, 균형잡힌 책이다. 흥미롭다는 것은, 네하마스가 니체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있어 모든 텍스트를 니체 자신의 자서전으로 봄으로써 모순된 니체의 논의들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균형잡혔다는 것은 전통적인 해석에서부터 데리다에 이르는 해체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니체 해석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그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를 자신의 해석의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그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떻게 쓸 것인가?' 이다. 독단주의이거나 철학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까지의 글쓰기가 다양한 방법으로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자신의 견해를 둘 중 하나로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유란 행동이다. 글쓰기란 행동이다.

 

니체에게는 글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개성과 표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견해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의 철학이 그의 개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는 곧 그것이 하나의 해석이며 개인적이라는 암시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그 자체로 어떤 삶의 양식을 표현하며 잘 살고 있는 하나의 인물 유형을 창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석이며 개인적이다, 하지만 위대하다. 


 

k****0 2013.04.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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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문학으로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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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라는 이름은 20세기를 스쳐 지나간 상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이기도 한 사랑에 붙어 다니는 구호이며 수사였다.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11).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아포리즘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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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라는 이름은 20세기를 스쳐 지나간 상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이기도 한 사랑에 붙어 다니는 구호이며 수사였다.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11).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는 명언으로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신은 죽었다"라는 아포리즘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산으로 들어가 십 년 동안 명상을 즐긴 은둔자입니다. 명상을 통해 깨달은 지혜를 인간에게 베풀어주기 위해 산을 내려오며 차라투스트라가 한 말이 "신은 죽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는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니체의 "초인" 사상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아포리즘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특한 책입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기 위해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몇 번이나 정독을 시도해보았으나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철학책이라기보다는 문학책에 더 가까운데도, 철학으로도 문학으로더 잘 읽히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체', 익숙한 그 이름만큼, 그가 말한 사상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책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았습니다. 니치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한 책은 없다는 평판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결론은 이것입니다. "니체는 이해하기 어렵구나!"

 

이 책의 역자는 "니체의 해석"에서 니체가 얼마나 해석하기 어려운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때 니체의 사상을 다윈의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따. 또 그의 권력의지와 초인이라는 개념이 나치즘과 관련되어 터무니없이 오해되기도 했다.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에 니체는 실존주의의 대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프랑스와 미국의 해체론이 위세를 떨치던 1970년대에 해체의 선구자로 재평가되기도 했다. 니체라는 이름은 20세기를 스쳐 지나간 상이하고 다양하며 이질적이기도 한 사랑에 붙어 다니는 구호이며 수사였다.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정작 그의 정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11).

 

니체 해석이 이렇게 다양하고, 또 어려운 이유는 그의 "스타일"이 난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의 저자 알렉산더 네하마스는 니체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데서 이 책을 시작하고, 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걸림돌이 되어 독자들이 쉽사리 니체에게 익숙해질 수가 없다(83). 니체가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로 독자를 당황시키는 것은 "독자에게 충격을 가하고 싶어" 한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236).

 

이 책은 3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여전히" 니체 연구의 고전으로 그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역자는 이 책의 논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책에서 네하마스는 니체의 사상을 일상적 삶의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절박한 문제의 지평에서 제시하였다. 그에게 니체는 무엇보다도 기구하고 고단하며 고통스러웠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한 탁월한 예술가이다. 삶이 곧 작품이며 철학이었던 것이다"(13).

 

니체의 것이 어려운 것만큼, 이 책도 어렵습니다. 니체를 연구하는 학도가 아니면 소화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니체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연구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니체의 사상이니 어설픈 지식을 늘어놓는 것 자체가 니체에 대한 무지를 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해 누군가 자신 있게 말을 늘어놓는다면 이제 그 깊이에 대해 의심부터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니체는 어렵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1 2013.04.2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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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내용보기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경험상 책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이 도착하기 하루 전 다른 책들이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는데 그 안에 <니체전집>의 소개가 담긴 팸플릿이 들어 있었다. 우연이겠지만 이번에야말로 니체의 책들, ‘니체’를 쓴 책들을 읽을 때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팸플릿에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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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경험상 책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이 도착하기 하루 전 다른 책들이 담긴 택배 상자가 도착했는데 그 안에 <니체전집>의 소개가 담긴 팸플릿이 들어 있었다. 우연이겠지만 이번에야말로 니체의 책들, ‘니체’를 쓴 책들을 읽을 때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팸플릿에서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니체의 책들은 다양한 스타일(혹은 모호한 태도)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역자에 의하면 니체 자신도 오독 되리라는 사실, 오독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철학 교육과 강의로 잘 알려진 학자이자 『한 권으로 읽는 니체(What Nietzsche really said』의 저자이기도 한 한 로버트 솔로몬은 『니체 문학으로서 삶』에 대해 ‘놀라운 작품, 니체에 대해 씌어진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은 약 이십 년 전, 1994년에 같은 역자에 의해 출간된 적이 있다. 역자에 의하면 이번에 출간한 책은 기존의 ‘원문 충실’한 번역과 달리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추어 재번역했다고 한다.

 

막연히 읽고 싶던,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았던 스무 살 무렵『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친 적이 있다. 읽었다, 가 아닌 펼친 적이 있다고 쓴 이유는 완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 이후로 ‘읽어야 하는데’와 ‘읽을 수 있을까’의 마음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책세상에서 출간된 <니체 전집>은 모두 21권이다. 니체의 책들도, 니체의 책들에 관해 쓴 책들도 읽지 못한 상태 그러니까 이 책이 ‘니체에 대해 씌어진 가장 뛰어난 책’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니체 문학으로서 삶』을 읽었다. ‘니체’를 완전히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하니 네하머스의 해석 역시 불확실함을 내포하고 있지만 니체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번 독서를 통해 니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니체에게 자신의 글은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루는 작은 세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니체는 경구를 즐겨 쓰며 과장법을 썼다. 네하머스는 ‘과장은 독자가 텍스트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한편 독자가 그와 논쟁을 벌이도록 만들어 준다.(69쪽)’고 했다. 네하머스에 의하면 니체의 원근법주의에는 ‘진리와 지식의 가치를 단호하게 거부함으로써 야기(85쪽)’되었거나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단지 해석일 따름이다”라는 유명한 진술에 나타난 견해(85쪽)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부분은 모여 전체를 이룬다. 부분은 독립된 대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부분을 알려는 노력, 특정한 삶을 알려는 노력, 사건을 재해석하는 일은 진정한 삶을 이루는 조건이 되거나 새로운 진리를 만든다(혹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니체에게 부분은 독립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상호연관된 엄청난 대상들의 총합이다(183쪽).

 

“창조자들이여 그대의 삶에는 가슴 아픈 죽음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순간성의 대변자이자 옹호자가 될 수 있다. 언제나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 창조자는 동시에 아이를 잉태하는 어머니로서 출산의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133쪽)

 

니체는 다양한 눈들과 많은 생각이 결합하어 하나의 진리, 좀 더 완벽한 세계, 풍성한 삶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니체에겐 ‘절대’라는 단어는 없는 듯 보인다. 같은 세상, 그것도 비극의 세상이 반복된다 해도 그것이 같은 세상일 수 없는 것은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한 세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기존의 것과는 다른 고통을 견뎌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독단주의를 비판했던 니체는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듯 독자들도 자신의 판단, 자신의 견해를 갖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삶의 양식이 바뀌기를, 독자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 ‘나의 판단은 나의 판단’이란 말은 ‘너 자신에 대해서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209쪽)’는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이 말은 삶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라는 말로도 읽힌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라는 문장은 현재의 삶은 나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말은 아닐까. 부분인 ‘나’는 현재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며, 부분의 ‘나’들이 변한 세계는 기존의 세계와는 분명 다른 세계일 것이다.

 

네하마스의 책으로 ‘니체’에 한 발 담근 내가, 권력의지, 영겁회귀, 자아의 본질 및 도덕의 비도덕적 기원과 같은 관점들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니체’를 ‘나만의 니체’로 받아들여 나만의 삶을 창조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불확실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긍정해야 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읽기 어렵지 않지만 니체에 무지한 나로서는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한편으론 니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책이기도 했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3.04.05.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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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철학이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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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마음의 풍요를 꿈꾸다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일을 할때가 있다.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첫걸음으로 니체 그 문제적 인간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프다. 무엇보다 '품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책을 보면서 의자에 앉아서 읽던 책을 소파에 기대더니 아예 침대로 가지고 가 보다 몇줄 읽다 잠들기 일쑤다.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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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마음의 풍요를 꿈꾸다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일을 할때가 있다.

삶을 보다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첫걸음으로 니체 그 문제적 인간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프다. 무엇보다 '품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문학책을 보면서 의자에 앉아서 읽던 책을 소파에 기대더니 아예 침대로 가지고 가 보다

몇줄 읽다 잠들기 일쑤다. 문장 문장이 난해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좌절했던 과거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래도

이번에는 어려워 못 읽겠다는 푸념을 하면서도 끝까지 가보자 굳게 마음을 먹었다.

 

역자인 김종갑 교수가 서문에 쓴 니체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니 체했니?'라고

농담했던 친구분 이야기가 십분 이해가 갔다. 이 책을 읽는내내 늘 마음이 답답했으니까.

 

이 책은 니체 연구의 고전이자 니체에 대해서 씌어진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쉽게 씌어진 책은 아니니까.쉬운 책은 아니다. 니체 자신도 '내가 쓴

책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100년 정도가 걸릴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철학책이 그렇듯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낯선 개념과 난해한 문장을 이해하려

애쓰느라 두고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마치 사이다없이 삶은 계란을 먹는 것처럼

꾸역꾸역 읽어대느라 힘들었다. 나의 지적 능력을 의심할만큼 초라하게 하루에 읽어내는

양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나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니체에겐 일관된 사상이

없고  비논리적으로 보이며 사상의 여러 측면이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니체에 대한 숱한 해설서가 범람수준으로 나돌아다니며 제대로 해석되지 못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권력의지와 초인이라는 개념이 나치즘과 관련되어 파시즘의 옹호자같은

오해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인물임에도 20세기 데리다, 들뢰즈같은 현대철학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쳤을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니체철학의

매력때문일 것이다.

 

저자인 알렉산더 네하마스는 제목을 보면 알수있듯이 그동안 니체를 수식하던 모든

덧칠을 벗겨내고 니체의 삶을 작품으로 보고있다. 니체에게 삶은 곧 작품이며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니체가 세계를 문학 텍스트로, 인간을 작품 속의 인물로, 또 과학과 지식을

작품의 해석으로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흔히 니체 사상에서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와 달리 네하마스는 텍스트와 그에 대한 이해에 통일성을 부여하면서

텍스트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니체는 세계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및 상황들을 문학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권력의지, 영겁회귀, 자아의 개념

및 도덕성 등에 대한 이론 및 원근법주의가 도출되었다.

 

니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과제는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였다. 기존의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선과 악의 문제보다 자신의 자아가 훨씬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체가 기존의 관념이나 가치관,습관 등을 공격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니체는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 도는

영원회귀의 삶속에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짜라투스트라가 "지금 인생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라고 말했던 부분이나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것들에 대한 개념이 어렴풋하게

정리되는 듯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했던 신이 죽었으니 이제 내 스스로가 모든 것을 창조하라는

뜻이였던 것이다. 이 자유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니체의 매력인가 보다.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조금은 니체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내 안에 오롯이 니체의 자유정신이 깃들때까지 책 속에 얼굴을 묻어야겠다. 

 

j*****5 2013.05.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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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문학으로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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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너무나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선뜻, 용감무쌍하게도 '니체'를 쉽게 알고자 했었다는 사실을 저자의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 가득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니체로 가는 길이 험난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놀라운 명성에 끌려서 읽기에는, 니체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에는 매우, 매우 어려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래도 그나마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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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너무나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선뜻, 용감무쌍하게도 '니체'를 쉽게 알고자 했었다는 사실을 저자의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 가득히 깨닫기 시작하면서 니체로 가는 길이 험난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놀라운 명성에 끌려서 읽기에는, 니체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에는 매우, 매우 어려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래도 그나마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저자가 바라보는 '니체'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니체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문외한이었던 내가 니체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분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고 진정 말하고 싶다. 아, 물론 저자의 설명은 물론 니체의 사상은 내겐 너무 어려운 벽이었고 산이었음을.......

 

니체의 사상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견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해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조차 쉽게 접근이 되지 않고 생소하고 낯설다.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니체의 견해에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어느 특정 종교를 지칭하기는 했지만 그 종교 자체보다는 그 기원에서, 가치관에서 극단의 독단적인 생각을 매우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지침을 정해놓고 수많은 다양한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통제하려 한다는 자체가 그를 몸서리치게 했음을, 그의 견해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했을지라도 공감하는 수많은 예찬자들도 있음을 보여준다. 나 역시 어설프게나마 그렇게 아주 조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하게 읽혀지고 해석되어지는 그의 경구와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또는 삶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많은 사상들은 난해하고 어렵다. 그저 니체 사망 이후 가장 니체의 사상을 우아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는 저자를 따라서 더듬, 더듬거리며 그의 사상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의 다양한 견해를 듣고 때론 수긍을 못하고 이해를 못할지라도 또 때론 공감하며 그에게 경탄하고 싶어진다. 작가이며 동시에 자신의 독자였던 니체를 열정적으로 자기 성찰에 몰두했던 그를.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을 꼭 다시 기회를 만들어서 읽고 싶다. 더불어 좀 더 니체의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니체의 저서를 읽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나의 무지함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니체의 사상들을 통해서 아주 미약하게나마 또 다른 세상을 본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춤을 춘다는 것이다. 비록 발만 까닥거리는 정도일지라도 말이다. 얼마나 작고 또 작은 생각의 틀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주 조금 나아가고 싶어졌다. 니체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사상을 통해, 그러한 니체의 사상을 훌륭하게 알려주고 있는 저자 알렉산더 네하마스를 통해서말이다.

r*****0 2013.04.20.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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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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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알고 싶은 철학자가 니체라면 가장 모르는 철학자 또한 니체이다. 다른 책들을 읽다가 혹은 철학책을 읽다가 등장하는 니체의 글들은 내가 그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글들은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니체에 대해 알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내게 이 책은 니체의 문학으로서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몇페이지를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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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알고 싶은 철학자가 니체라면 가장 모르는 철학자 또한 니체이다. 다른 책들을 읽다가 혹은 철학책을 읽다가 등장하는 니체의 글들은 내가 그에게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글들은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니체에 대해 알고 싶은 갈망이 있었던 내게 이 책은 니체의 문학으로서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몇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시점에서도 이 책에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고 많은 정성이 들어가 있음을 느낄수 있는 책으로 다가왔다. 이 책을 계기로 여러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니체에 대해 처음으로 많이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니체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어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었다. 니체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그대로 똑같이 반복하며 살기를 원하는가?이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할수 있는자, 입맛에 맞는단것만 먹는 것이 아니라 선과악, 미와추,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하는자가 초인이다.(p14)

경험주의 정신은 새로운 증거를 기꺼이 허용하고 필요시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는 선한의지를 의미한다.(p86)

-본문 중-

내가 처음 니체에게 빠져든 것은 실존주의철학이었다. 그후 내가 니체의 글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야 할 만큼 내 스스로 부족한 이해력임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그만큼 그가 내게는 알고 싶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진정한 삶에 대해 그리고 삶의 긍정에 대해 배웠다. 삶의 정당성은 현재를 긍정하면서, 또한 모든 과거도 긍정하는 순간에 주어진다는 글에서 삶의 정당성을 배웠고 나는 미와 추 모두를 긍정하는 사람이었나? 입맛에 맛는 단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악마의 제안에 대한 두가지 고려에 대해서도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근법주의, 유미주의등 그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는 시가이 되었다.

 

그것은 절처하게 나자신이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면서,일어나는자, 단련하는자, 그리고 엄격하게 극기하는자, 그것이 일찍이 자신에게 지금의 네가 되어라!라고 가르쳤다.(p279)

삶을 최대한 이용하는것과 최소한 이용하는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른시간과 다른공간에서 보다 훌륭한 삶을 살수 있도록 말이다(p235)

-본문 중-

니체의 책 가운데 읽고 싶은 책이 많았으나 그 중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위의 글은 지금의 네가 되어라!라는 글은 너무도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근본적으로 자신만의 것인 삶을 꾸렸다는 글에 근본을 나에게 두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고 어떤면에서는 참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도 없이 본질이 아닌 현상에 움직이고 나에게 근본을 두는 것이 아닌 남에게 근본을 두고 움직일때가 있는데 말이다. 고통에 대해서도 권력에 대해서도 선악에 대해도 많이 느끼고 배웠고 깨달았다. 그리고 현재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삶이다, 어떻게 내가 현재의 내가 될 것인가 등을 보고 내가 꼭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니체에 대해 알게 했을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서 삶 전체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 니체에 대해 좀 더 빠져들것 같은 생각이 든다.

q*******n 2013.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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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문학으로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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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듯한 이름 니체.나 역시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뿐이다.니체의 책들이 국내에도 상당히 많이 출간이 되어 있지만 그의 책을 한번도 읽은적이 없다.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읽힌 그의 책이라면 아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일것이다. 한번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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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듯한 이름 니체.나 역시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뿐이다.니체의 책들이 국내에도 상당히 많이 출간이 되어 있지만 그의 책을 한번도 읽은적이 없다.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읽힌 그의 책이라면 아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일것이다. 한번쯤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와 보기 위해 구입을 했지만 아이도 그렇지만 나 역시도 초반부 보길 반복하다가 아직은 넘지 못할 산이라는 생각을 하고 지금은 책장에서 자신을 펼쳐봐주길 기다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중이다.


니체에 대해 잠시 있고 있었는데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바로 니체의 대해 씌어진 책 중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니체 문학으로의 삶] 이 연암서가에서 출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 출간이 된적이 있지만 이번 개정판은 의미전달에 좀더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한다. 그동안 니체의 책을 만나지 못했지만 니체의 문학으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을 통해 어렵게만 생각했던 니체와 좀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겠다 싶어 만나게 된 책이다.


저자는 니체와 고대 철학의 권위자인 '알렉산더 네하마스'로 일찍이 니체를 좋아 했으며 더욱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대학원생때 니체의 실존주의 수업 조교가 되면서 당시 니체에 관한 중요한 책을 만나면서 니체 연구에 매진 연구에 매진하게 되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게 이 책이다.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니체 연구의 고전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철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며 철학을 문학작품으로 만들었다는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니체의 스타일로 부터 시작을 한다. 철학적 논문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 특징을 그의 저서에서는 발견할 수 없기의 그의 저서들이 철학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는 니체의 스타일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은 짧고 날카로운 경구라고 한다. 경구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뛰어난 호소력 때문이다. 니체는 스타일과 장르를 수시로 바꾸며 기존의 철학적인 전통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제안을 제시 하고, 그러한 철학적 전통으로 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서 스타일상의 다원주의를 채택했다고 한다.


니체의 글은 매우 과장적이였는데 그에 대한 이유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했던 이유.자신의 삶을 문학작품으로 만들며 일생을 저술에 전념하며 세계를 우리의 다양한 관습과 삶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는 텍스트로 생각하며 다양한 문체를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고자 했던 니체의 사상을 만날 수 있다.

 

 

1*******3 2013.04.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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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문학으로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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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과 실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니체를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한동안 일방적인 짝사랑에 빠져있었다. 보통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때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철퇴를 든 철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철퇴를 내리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듯한 그의 작품은 주입식 교육에 특화되어있었던 나에게는 정말 어려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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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과 실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니체를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한동안 일방적인 짝사랑에 빠져있었다. 보통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때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철퇴를 든 철학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철퇴를 내리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듯한 그의 작품은 주입식 교육에 특화되어있었던 나에게는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이제 나는 명령한다 차라투스트라를 버리고 그대 자신을 발견할 것을"이라는 그의 묘비명이 나에게는 마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로 이해됬을 정도였다.  그만큼 그의 책들은 내가 갖고 있는 지적한계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그 후로는 '니체의 말' 같은 경구 위주의 책으로 그를 접하는 것을 선호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나게 된 니체 연구의 고전이라고 하는 [니체 : 문학으로서 삶]을 읽으며 비로서 그의 묘비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물론, 이 책도 꽤 어렵긴 하다. 역시.. 나에게는 니체는 무리인건가.. 라며 우울해했을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경구를 읽게 되었다. 설마 이 책 한권 읽다가 내가 죽지는 않을 테고.. 그래 날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만들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자.. 하며 마음을 편히 먹었던 것과 나처럼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책은 작가를 위해 읽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읽는다"라는 니체의 격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도 니체 문학이 갖고 있는 경구적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을 주로 사용했는데,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독자의 무관심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길 원했고, 자신이 읽은 책을 사람들이 읽기를 바랬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갖기를 원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거부했고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고 다양한 텍스트 스타일로 자신의 작품을 다원주의 원근법주의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견해 역시 다양하다. 그리고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니체 자신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바로 독단주의적인 철학이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이라는 이데아론을 철학으로 끌어들인 플라톤과 상대의 자각을 종용하는 산파술을 즐겨사용했던 소크라테스가 지배하는 철학과 도덕의 세계에 종말을 고하고자 했다. 물론 그들이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 개인의 해석일뿐인데 그것을 마치 진정한 이상세계의 모습으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지배하는 관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에도 똑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상가였는데.. 그래서 자신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그리고 영원히 남긴 질문이 그의 묘비명이 된 것이 아닐까? "나의 삶의 방식은 이러한데 당신은 어떠한가?"

 

a******e 2013.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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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문학으로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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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니체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너무 어려워서 도통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니체를 모르고 살아왔던 나의 삶이 그다지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굳이 난해하다고 평정이 나있는 그를 알아보고자,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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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니체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대체 왜? 라고 묻는다면 너무 어려워서 도통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니체를 모르고 살아왔던 나의 삶이 그다지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굳이 난해하다고 평정이 나있는 그를 알아보고자,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있어 보이는 홍보용의 선택이 아닌 과감히 비켜갈 수만 있다면 비켜가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내 생에 절대 들어올 일 없을 것만 같던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칼럼을 통해서 성큼 내 자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품 중 그 어느 것보다 독보적이면서도 인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 당당히 말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몽매한 군중들에게 초인이 되어 니체 자신의 목소리를 차라투스트라를 통해서 주창하고 있다.

신은 죽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젊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험에 빠지는 것처럼 차라투스트라 역시 이상한, 제 정신이 아닌 광기 어린 사람으로 치부하여 그 마을을 떠나기를 종용하게 된다.

니체의 저술의 목표는 위에 인용된 소크라테스의 목표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니체와 소크라테스는 매우 독특한 사상가였으며, 그들 주위 사람들의 삶을 도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소크라테스는 일상을 끊임없이 토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철학이 다루고 있는 본질적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반면에 니체가 추상적이고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것을 독자에게 툭 던지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독자의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기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갑자기 신이 죽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니체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그 동안은 나와 상관없는 그였다만 몇 십 페이지에 할당하는 칼럼을 보고나니 나는 그 칼럼을 독식하는 것에 모자라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고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과 그와 함께 읽으면 좋다는 해설서까지 총 3권을 안고서는 그 전에 니체의 전반적인 관념을 알아보고자 이 책을 마주하고 있었다.

니 체했니? 라는 농담조로 시작하는 서문은 진실로 뒤 이야기들이 녹록치 않음을 알려주는 개시와 같은 말이었다. 니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아보고자 읽어 내려가는 동안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부분과 니체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고서 이 책을 마주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니체의 종잡을 수 없고 또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내용들이 수두룩하기에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해석에 난항을 겪었다는 그 부분을 과감히 포기하고서 문학 안에서의 니체로 한정하여 작품 안의 니체만을 바라보려 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개별적 인물이 자신을 아름답게 형성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글쓰기를 이용했다. 그러한 개인은 도덕을 넘어서면서도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는 인물로서, 그것은 작품의 창조자로서 니체였다. 본문

문학으로만 포커스를 맞추어 바라보는 니체는 그 역시도 만만치가 않은 과정이었다. 이 모습이 진실인 듯 하면서도 다음 페이지에 넘어가면 또 다른 모습의 니체가 문장 속에 녹아있기에 대체 어떻게 그의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지로 난항을 겪으며 페이지마다 지체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하마스가 니체의 문장들을 이해하고 풀어내는데 있어서 그 스스로가 하나의 논점을 가지고서 통일된 시작으로 마주보려 했다는 것이다.

작가를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책을 읽는 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나는 그가 가장 두려워했다는 독자로부터의 무관심에서 벗어나 그를 알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모습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다원주의 원근법적인 접근이나 영겁회귀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100%는 아니겠지만 이해하려 이것 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들춰보기도 하며 꽤나 공을 들여 읽은 책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나 자신이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면서, 일어나는 자, 단련하는 자, 그리고 엄격하게 극기하는 자. 그것이 일찍이 자신에게 지금의 네가 되어라 라고 가르쳤다본문

문학으로서 그의 삶을 판단해 보노라면 그는 그가 바라는 대로 영겁회귀를 누리고 있다. 그가 떠난 지는 오래 되었음에도 작품들을 통해 그는 계속 이 곳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니체, 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내게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이 책을 읽어봤으니 이제는 니체를 마주하는데 있어 장벽이 조금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소소한 위로와 함께 이제는 정말 니체를 만나러, 차라투스트라를 마주해 봐야겠다는 의지와 용기가 생긴다.

독서 기간 : 2013.04.01~04.10

by 아르

p********1 2013.05.04.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