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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식 긍정심리학인가, 아니면 또다른 패배주의인가?
"좌파식 긍정심리학인가, 아니면 또다른 패배주의인가?" 내용보기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록은 무척 길다. 반면에 몽상적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멸종되었다. 적어도 이미 멸종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외로 우리로 치면 386세대에 해당하는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앤디 메리필드가 다시 몽상적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인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소환하고 있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라는 표현은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식 긍정심리학인가, 아니면 또다른 패배주의인가?" 내용보기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록은 무척 길다. 반면에 몽상적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멸종되었다. 적어도 이미 멸종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외로 우리로 치면 386세대에 해당하는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자 앤디 메리필드가 다시 몽상적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인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소환하고 있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라는 표현은 라틴아메리카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빌린 것이다.

 

나도 저자처럼 두 가지 불만을 공유한다. 바로 세계에 대한 불만과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불만이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는 지루하고 감흥 없는 부정적 비판 분석에 골몰했다. 그리고 상아탑의 일부 지식인이나 순진한 학생들에 의존한 채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리얼리즘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낭만적인 꿈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대화다. 앤디 메리필드는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마르크스주의가 오래도록 유지하던 형식주의적 구속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는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한다.

 

"비판적 분석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즉 계급 및 국가의 역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논쟁에서 해방된 마르크스주의를 상상해보자. 더 이상 '과학적'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식과 내용, 현상과 본질 사이의 구별을 포기한 마르크스주의를 상상해보자. 몽상 같은 새로운 현실, 유물론적인 환상의 윤곽을 찾아내는, 현재에 대한 각성의 한숨을 내쉬지만 미래의 꿈에 대한 가장 완강한 노스탤지어를 긍정하는 마르크스주의를 상상해보자.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정신적인 정치적 전망을 주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통해 유물론에서 벗어나면서도 유물론을 포기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를 상상해보자. 긍정적인 것의 지평선을 열고 비판적 부정성의 완고한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상상해보자."(23-4쪽)

 

마르크스주의는 고유한 가치와 윤리를 고안하고 창안하는 비범한 마술적 힘이 있다. 맞다. 저자에 따르면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물신주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과학 담론이 아니라, 다른 진실을 창안하는 것, 가능성의 지평을 확장하는 시학 담론이다. 내가 보기에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문학적 마르크스주의이고,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자는 시적인 정치를 옹호하는 예술가 유형이다. 가령 마르코스 부사령관, 앙드레 브르통 등이 시적인 정치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저자 스스로도 마술적 마르크스주의가 "시와 미래의 이중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가 노골적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환상적인 세계를 모방하고 있지만 나는 마콘도 주민이 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지배적인 환상의 관점에서 또 다른 환상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힘은 비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파열시키고 재창안하고, 욕망을 창출하고 희망을 자극하는 능력에서 온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적 세속의 정신은 과학, 국가, '노동자 계급'에 관한 논쟁 등을 넘어서 비진정성의 영역으로, 우리가 알기로는 실낙원으로서만 지배적인 파라다이스로 여행한다."(49쪽)

 

마술적 마르크스주의가 스펙터클 사회와 소비문화에 맞서는 집단적 방어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에 뉴에이지의 낙관주의 풍조와 남미 문학의 몽환적 분위기를 뒤섞는다. 이런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사실 미쳐 돌아가는 신자유주의에 겁을 잔뜩 먹은 고양이와 같다. 좌파적 패배주의의 극치가 바로 이 책이 주장하는 그런 마법적 환상을 고취하는 무력한 담론이다.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신자유주의 스펙터클 앞에서 털을 곤두 세우며 제 몸을 크게 만들려는 상상력은  왜소하고 초라한 처지를 더욱 나빠 보이게 만든다. 저자가 상상한 마법적 공간인 '마콘도'는 안전한 자기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려는 지친 이방인의 처지를 드러내 보일 뿐인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자기 위안적인 심리적 고립이자 정치상의 패배주의이고 실천상의 도주행위에 불과하다.

 

정치적 해방의 소임은 노동자 계급에서 비계급적인 다중에게로 넘어갔다.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자본주의 체제와 지배 계급에 맞서는 전복 정치의 주체일 수 없고, 오늘날 반자본주의 운동의 주체세력은 비계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바꿔 말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미 한물 간 구닥다리 논리이고 대신에 '자발적 주체화'를 강조한다. 비계급 반자본주의 저항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권력을 잡는 게 아니라 생산력주의라는 시장 합리성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대한 권력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들 비계급은 전투적 낙관주의를 가슴에 품고 있다.

 

"청년층, 정치적 반란자들, 추방자들, 지식인들, 탈숙련 노동자들, 실업 혹은 감원된 노동자들, 느리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비정상적 낙오자들, 반쯤 미친 방탕아들, 부적응자들, 성공하거나 좌절한 천재들, 멋쟁이들, 그리고 소수의 속물들. 이 엉망이고 뒤죽박죽인 사람들은 일상의 부르주아 사회의 폐허 속에서 부르주아 사회에 맞서는 이상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도덕적 질서에 도전하면서, 내부에서 사회를 집어삼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상징주의와 상상력, 분노한 모든 힘을 이용하면서 마치 외부에서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것처럼 한다."

 

z***a 2013.05.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