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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짜릿하다. . . .
동아일보에 난 이 재미난 기사를 읽고 단숨에 서점에서 삼분의 일을 읽고 주문을 했다. 중앙일보에 진중권 교수가 쓴 글도 재미있더라만. 물건너 유명 컬럼니스트가 쓴 책이라는데, 이건 뭐 유튜브에서 싸이보다 먼저 뜬(!) 개똥녀 얘기도 있다. 재치와 유머가 번득이는 글에 실실거리게 하는가 하면, 쩝, 입맛 개운치 않게, 뜨끔하게도 만든다. 유명인들의 진짜 가십이 펼쳐질 땐 이건 뭐 증권가 찌라시라는 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닌가보다 싶다. 재밌다. 짜릿하다. 그리고 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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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나랴. 소문과 가십에 대한 우리네 정서를 알려주는 속담들이다. 전자는 소문이 퍼지는 속도의 놀라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후자는 대중들이 긍정적인 소식보다는 부정적인 소식을 더 쉽게 믿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십과 루머는 어떻게 다른가? 가십이란 옆집 토끼가 어젯밤 제 새끼를 물어 죽였다는 뉴스이고, 루머란 옆집 토끼 머리에 악마의 뿔이 자라났다는 소문이다.
루머는 대개 불쾌하고 이상한 사건들 혹은 아직 추측 단계인 사건들이 많다. 캐스 선스타인의 통찰대로, 루머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반면에 가십은 세심하게 선별된 특정 인물에게만 이야기되는, 특히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정보다. 그래서 가십은 일종의 '인물 분석' 혹은' 사회적 분석'에 해당한다. 가십은 대개 알려지기를 꺼리는 다른 사람들의 비밀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폭로성 소식이다. 가십은 대개 사악하고 비열하고 앙갚음의 의도가 있고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만들어진다. 물론 가십도 가끔 기분전환을 위한 일종의 오락이 된다.
오늘날 '증권가 찌라시'는 강력한 가십과 루머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찌라시 기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는 없겠지만, 자칫 찌라시에 실린 가십과 루머는 언어폭력 내지는 언어공해의 차원으로 변질되어 명예훼손으로까지 커질 수 있다. 가십의 기원은 근대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대중매체의 발달과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은 뉴스와 가십 또는 뉴스와 루머의 경계선을 이미 허물고 있는 중이다. 과거의 가십이 개인의 사교적인 즐거움에 국한되었다면, 현대의 가십은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 차원의 진실 공방을 불러 일으키는 일종의 '정보공해'가 되었다.
훌륭한 가십이 되려면 그것이 사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래서 가십은 일단 사회의 유명인사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에서도 마리아 칼라스와 오나시스, 수전 손택과 애니 레보비츠,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 심프슨 부인 등에 대한 야릇한 가십들이 소개된다. 일반적으로 가십의 가장 문학적인 형태는 바로 회고록이다. 저자는 17세기 탁월한 '가십의 역사가' 생시몽 공작과 그의 [회고록]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생시몽은 사교계에서 마주친 인물들과 정적들에 대해 솔직한 비평과 진솔한 입담을 보여준 작가로, "독실한 기독교도였지만 용서의 미덕을 발휘한 사람은 아니었다." 19세기의 위대한 비평가 생트뵈브는 생시몽을 '그가 살았던 세기의 스파이'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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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서 가십은 이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저널리즘 역시도 이런 가십을 쫓는 형태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예 디스패치와 같은 언론에서는 '파파라치'의 형식을 통해서 연예인들의 가십을 쫓고 그를 마치 특종인 양 보도하고 있는 실태입니다. 그 뿐인가요? 매일 한 인물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들어 가면서 그들의 사생활을 기사화하는 데에 앞장 서고 있고 깊이나 저널리즘이 돋보이는 보도보다는 흥미 위주의 기사만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이는 깊이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우리 몸에는 좋은 엄마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인스턴트 음식을 먹는 듯한 그런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이런 가십을 쫓는 형태는 외국에서 더 일상화되었습니다. 파파라치가 아예 직업이 되어 있고 수많은 연예인 가십과 그들의 사생활 사진들이 찍히고 또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가십들을 우리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사생활 침해의 부도덕한 일로 보아야 할까요? 조지프 엡스타인은 <성난 초콜릿>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런 가십의 역사와 문화를 샅샅히 파헤치고 있습니다. 가십이라고 하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독성 있는 문장과 문체로 풀어 냈습니다. 오랫동안 연구한 것과 같은 느낌이 있고 가벼움과 무거움을 잘 어우러 놓았습니다. 그럴듯하면서도 확인할 수 없는 아리송한 가십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쉽게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 바로 이 <성난 초콜릿>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이 <성난 초콜릿>인지는 의문점입니다. 외국에서 낸 원서는 제목이 그대로 <Gossip>인데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들어와 번역이 되면서 <성난 초콜릿>으로 바뀌었죠. 제목이 바뀐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가십'에 대해서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기에 만족합니다.
가십이라고 하는 것은 타인의 생활을 알고 싶은 '건전한 관음증'이라는 측면에서 합리화될 수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십이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 큰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잘못이 될 것입니다. 가십에 대한 탐구로 인해서 '특종'이 나오고 권력의 치부를 완전히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그 균형은 잘 맞춰야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난 초콜릿>은 가십의 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이 미국에 맞춰진 부분은 아쉬운 대목이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가십은 전세계를 아우르는 현상이기에 읽는데 크게 부담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