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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개발의 흐름과 분석인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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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의 개발의 특징과 흐름을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정리한다. 크게 3시기, 1940~70년대의 특징을 종속경제와 식민지경제 관점에서 설명한다. 일부 서구국가들의 식민지 경영에 따른 경제와 생산의 왜곡, 지배국가들을 위한 생산기지,식량기지의 역할을 설명한다. 괜찮은 식량생산에도 불구하고 어린이5면중 1명이 굶는 과테말라. 식민지국가의 식량생산에 쓰여야 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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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의 개발의 특징과 흐름을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정리한다.

크게 3시기,

1940~70년대의 특징을 종속경제와 식민지경제 관점에서 설명한다.

일부 서구국가들의 식민지 경영에 따른 경제와 생산의 왜곡,

지배국가들을 위한 생산기지,식량기지의 역할을 설명한다.

괜찮은 식량생산에도 불구하고 어린이5면중 1명이 굶는 과테말라.

식민지국가의 식량생산에 쓰여야 할 부분이 일부국가의 육류섭취를 위한 사료생산으로 전용되고..

1970~2000년대.

본격적인 산업생산의 확대.

선진국은 제조기기로서의 비중을 저개발국가로 급격히 돌리고 재수입은 확대되고.

전세계적인 분업화  supply chain이 아닌 commodity chain.

선진국은 고부가가치의 엔지니어링으로 . 저개발국가는 임금따먹기와 하청과 재하청..

2000년대 들어

새로운 패러다임

환경의 문제. 유엔기후변화협약.미소금융, 금융의 확대등을 설명한다.

 

용례는 풍부하고 많은 통계수치를 제시하지만,

별 다른 개념의 설명은 없다.

다른 책과 기 알려진 예기들을 다른 사례와 통계 숫자로 설명할 뿐.

특히 실망스런 부분은 2000년대 지속가능성 시대시대라고 설명하면서

인류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효율적으로 개발 성장해야 할 해법은 전혀 제시 못하고 있다.

갈등의 해결, 새로운 경쟁과 분배예기는 없다.

과거를 분석하기는 쉽지만 미래를 보긴 어렵다   라는 모습이다.

 

 

 

YES마니아 : 로얄 d******3 2013.06.30.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누구를 위한 개발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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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      우리는 흔히 ‘개발’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딘가(혹은 무엇인가) 개발된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깨끗하며, 효율적인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개발에 대한 이미지가 일종의 정치적 구성물이며, 힘 있는 자들(식민지배 본국, 소수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엘리트, 강대국들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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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우리는 흔히 개발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딘가(혹은 무엇인가) 개발된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깨끗하며, 효율적인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개발에 대한 이미지가 일종의 정치적 구성물이며, 힘 있는 자들(식민지배 본국, 소수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엘리트,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기구)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질서를 강요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개발논리라는 것이 어떤 한 국가 내에서의 발전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의 수탈을 전제로 한 약탈적인 경제구조였다는 것.

     시대가 바뀌고 이제 더 이상 식민지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이런 기본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발 프로젝트는 이제 지구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달라졌고, 그 공식적인 방식도 총칼과 채찍에서 전 인류의 번영이라는 멋들어진 설득으로 바뀌었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저자는 자유 시장을 통한 번영이 실은 전체 인구의 2/5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나머지 3/5은 그 2/5를 위해 여전히 수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위해 여전히 서구 선진국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이며, 재정적인 압박을 통해 저개발 국가들을 자신들의 뜻에 따라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의제도 그 중 하나다. 책은 환경, 농업, 빈곤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개발 논리에 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소개하면서, 개발을 다시 생각하기 위한 첫째 단계로 발전의 관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530).

 

 

2. 감상평 。。。。。。。   

     책의 부제가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준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군더더기 없이 잘 붙인 부제목이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저자는 왜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개발이 진행되었는데도 여전히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또 갈수록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내고 있다.

     책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소위 자본주의적 발전의 열매는 모두가 아니라 일부만을 배부르게 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늘날 이런 착취가 어떻게 지구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수출용 상품작물을 단일재배 하느라 정작 자국민들의 식량이 부족해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은 비교 우위따위의 개념이 얼마나 허황된 논리인지를 보여준다.

     이건 분명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저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 명과 암이 늘 힘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그어진 경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발에 대한 환상, 혹은 신화는 매우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경제발전이 지고의 선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속에서, 성장률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경주마가 될 것을 세뇌 받으며 살아 왔으니까. 여기에 라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왜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지, 그러면 누구에게 좋은 건지 하는 부분은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만 받아왔다.

     이런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시작은 역시 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부터다. 책의 저자도 지적했던 것처럼 발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내다버리고 새롭게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문제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하고, 대안적 삶 혹은 행동이 실제로도 가능하며 더 유익하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부분들을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들여서 잘 써 냈다.

     번역의 문제인지(사실 복문이 지나치게 많긴 하다), 원 저자의 탓인지 임팩트 있는 문장이 좀 부족한 게 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여러 부분에서 인용되고 참고될 만한 책이다.

이달의 사락 p*********n 2015.06.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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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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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개발이라는 개념은 점차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문제라기보다,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렇다면 개발을 하지 말아야 할까? 미국 코넬대 개발 사회학과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 필립 맥마이클은 좀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개발을 소비행위라고 정의하면 시장을 사회 변동의 유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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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개발이라는 개념은 점차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문제라기보다,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렇다면 개발을 하지 말아야 할까? 미국 코넬대 개발 사회학과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 필립 맥마이클은 좀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개발을 소비행위라고 정의하면 시장을 사회 변동의 유력한 수단으로 우대하는 셈이 된다고 한다. 그 바탕에는 시장이 개인의 선호성을 극대화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준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예부터 과거 식민주의의 피해자였던 한국이 제국주의와 같은 형태의 개발성장의 성공적인 나라라고 알려져 왔으며, 이러한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앞 다투어 종속경제의 희생양이었던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 들은 한국경제의 원동력을 찾기 위해서 맹렬하게 한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적인 경우는 다른 나라에서 그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조셉 콘라드가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아프라카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던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를 둘러보고 <어둠의 심연>을 집필하면서 이 지방의 기후, 풍토, 관습, 위생상태 종종교적 위식, 주거환경 등은 이루 말할지 못할 정도로 낙후 있었다고 회고한다. 더불어 이 소설을 가지고 그 배경을 1968년 베트남으로 변경한 다음 후기 제국주의의 신랄하게 비판했던 프란시스 코폴라도 아직 민주/사회를 구별 짓는 이념주의에 빠진 저개발 국가는 경제발전을 하기란 해안가에서 바늘 찾기란 말을 서슴지 않고 하였다.


개발은 하부경제에서 상부경제로 이행하는 하나의 단계이다. 그런데 그 개발의 원동력을 제국주의를 계승한 선진국들의 억압, 착취, 강요에 위해 그러한 도약단계를 가기에는 여러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저개발의 관료들은 그러한 외압에 대해서 방어하기 보다는 수긍하며 오히려 그들의 천연자원을 거의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민영화시키거나 값싼 노동력을 선진국의 임금보다 더 낮은 형태의 방법으로 제공한다.


개발이 이렇게 주변부 혹은 종속국가의 진정한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역사적 사실이었지만 그 실체가 극명하게 들어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고도로 최첨단의 금융자본이 종속부의 심장에 침투하여 실물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모티브가 되거나 시장가격을 혼란 혹은 잡음을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면 그 저개발국가는 이미 다른 나라의 종속적인 경제 시스템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예를 봤왔다. 멕시코의 경제는 미국과 무역장벽을 없애 다음에 그들 스스로의 환율, 금리, 채권등을 은행관련 법률로 제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그들 스스로가 독점적으로 쌓아올린 카르텔이 존재한다.


민주주의와 개발은 서로 상충관계 그러니깐 트레이드 오프한 관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도식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부정적인 입장에 서 있는 나이지만 그것이 지금 사건의 실체이다. 한국이 더 개발에 집중하면서 대기업의 정책을 드라이브하게 거는 순간 한국경제는 더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의 소용돌이 안으로 빠져 드는 것이다.


역설적인 패러독스를 그대로 둘것인가 아니면 현란한 레토닉을 구사하며 그 관계의 쇠사슬을 끓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그 이후의 책임은 더 이상의 개발의 개념을 끌고 오면 안 된다. 새로운 광기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n*****m 2013.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