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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동네 여자들처럼 일찍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을 떠나 고군분투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게 뭐 그리 특별한가 싶을 수도 있지만, 저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꿈을 향한 여정 자체가 어떻게 페미니즘과 만나는지를 경험담을 통해 들려 준다. 저자의 20대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대와 희망, 그리고 좌절이 너무나 공감되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이러한 이야기를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나도 저자처럼 더 용감하게 살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는 많은 여성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저자가 그 작가들을 통해 어릴적부터 꿈을 키우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린 나이일 때부터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자신을 찾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딸을 가진 엄마라면 먼저 이 책을 읽고 딸에게도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또한 여성으로서의 나의 이야기, 엄마, 여동생, 할머니, 이모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하고 싶게 한다. 각자가 어떻게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통에서 벗어나 멋진 선택들을 하였었는지, 그러한 선택과 삶이 얼마나 용감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것인지를 기록하고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진다. 이 책 처럼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꺼내어지면, 다음 세대 더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와 믿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쉽게 읽히고 멋진 일러스트를 함께 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큰 즐거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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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내용들은 모든 여성들에게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다만 그것들이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만 다를 뿐이다. - 아름다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여자답게’ ‘아름답고’ ‘예쁘고’ ‘여성스러운’ ‘여자’가 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는가를 떠올리면 연민이 샘솟다 못해 넘쳐흐른다. 여전히, 지금 이 시간에도 자기부정과 아름다움의 신화가 뒤섞인 늪 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 겨우 호흡하고 있는 여성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리고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슬픔과 울분이 차오른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을 누가 누가 잘 버티나 구경하며 즐기는 남성 중심 사회에 분노를 느낀다.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의 꿈과 야망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여성인 나에 대해 말할 권리를 거세당한 여성들은 그야말로 지천에 널렸다. 너무 당연하게도,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다. -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합리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바로 여성들이며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남성(중심의 관점)들은 자주(항상에 가까운), 셀 수 없이 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너무나 쉽게 무시하고 마이크를 빼앗는다. 그것은 분명 권력이다. 하지만 그것이 권력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무지하게 군다. 그래도 비판받지 않거나 그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미미해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권력이다. - 이러한 권력 앞에서 나 자신과 자매들에게 말하고 싶다: 도망치지 말 것, 숨기거나 숨지 말 것, 두려워하지 말 것, 의심하지 말 것, 부끄럽고 창피해하지 말 것, 포기하지 말 것, 침묵하지 말 것. 다시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직면할 것, 드러낼 것, 담대할 것, 확신을 가질 것, 낯두껍게 행동할 것, “흉포한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 - 저자와 저자가 들려 준 이야기 그리고 책으로 널리 ‘떠벌려 준’ 저자의 행위에 감사한다. 저자 이전에 연대의 손을 내밀어 준 많은 자매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가해지는 폭력과 빼앗기는 억압의 이중고 속에서도 당당히 드러낸 모습들은 서로의, 나의 기댈 언덕이 되고 ‘그래도 괜찮다’는 위로가 되고 ‘이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말할 용기가 되어주었다. 나도 이 이정표들을 따라 걸으며 길을 다짐으로써, 함께 길을 찾는 여성들에게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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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라면 누구든 이와 같은 글을 써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한 소녀가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의문들,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 헤매다 만난 보석같은 책들, 그렇게 책과 함께, 여성으로서 세상과 부딪혀가며 살아낸 30여년간의 삶을 담고 있는 책이예요. 생리가 뭔데 대체 저렇게 쉬쉬하는 걸까부터 ‘뚱뚱하다’는 말으로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아한 마음, 연애를 하면서 겪게 되는 대체 왜 내가 가슴을 드러낸 옷 좀 입었다고 화를 내서 결국 내 옷을 갈아입게 만드는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거지 하는 생각, 결혼을 하고 싶지 않고 세상으로 뻗어나가 내 삶을 살고 싶었던 20대, 완벽하진 않고 여성 특유의 취향이라 불리우는 예쁜 물건, 화장, 분홍색 등에 대한 애호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페미니스트인 내 자아를 존중하게 되기 까지의 과정...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들을 삶의 고민의 순간마다 함께 했던 책들과 함께 풀어냅니다. 때로는 작은 아씨들의 조가 저자의 롤 모델이 되어주고, 어떤 때는 오스틴의 소설 속 어쨌든 끝에 가서는 결혼하는 여성 인물들이 저자를 혼란스럽게 하며, 멀리는 울프가 외친 자기만의 방부터 가깝게는 록산 게이가 말한 ‘나쁘고, 완벽하지 않아도 난 페미니스트’란 말이 저자의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다 읽고 나면 드는 생각은 이 세상 모든 여성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할 수 있겠다는 것, 그리고 우린 모두 가슴 속에 이 책과 같은 이야기 하나를 품고 살아가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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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계기는 아마도 ‘강남역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때 20대 초반의 수많은 어린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나는 운이 좋아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성별로 인한 차별과 폭력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하는 육아라는 낯선 삶에 적응하느라 뉴스들을 거의 못보고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여성주의자들은 유별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남성의 삶이 더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일과 육아와 가사 등 엄마라는 꼬리표가 붙은 일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다. 매일 12시 1시까지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24개월 넘어서까지 새벽에 한 두번씩 깨는 아들을 돌보며 다크써클은 한없이 내려오고 내 신체는 활기를 잃은 채 진이 빠지고 있었다. 나는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어느새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고, 언제나 다툼은 이혼직전까지 갔다. 불타는 사명감도, 연대의식도 아닌 나는 내 몸이 죽을만큼 힘들었을 때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원망하다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다. 좋게 말하면 절박했던 거고, 툭 까놓고 말하면 내 필요에 의해서였다. 우리 부부가 싸우고 내가 힘든게 남편이 나빠서도 아니고, 내가 유별나서도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뿌리박힌 성별간 역할에 대한 인식 차이다. 세상은 변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 편할 대로 해석한다. 누군가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것은 짐짓 모른체하고. 그때는 내 생활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뭔지 모를 부당함과 억울함, 억하심정에 대해 풀어줄 이론적 토대가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페미니즘이다 정도였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그게 왜 그런지 자신있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는 페미니즘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심화주제로 가는 길목을 안내한다. 저자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가 소개하는 고전들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책들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페미니즘의 세계로 안내한 책들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의 이정표가 됐던 순간들을 책과 함께 소개한다. 유년시절, 예쁘게 치마를 차려입고 얌전히 인형놀이를 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말괄량이 자유분방 소녀 삐삐에게 끌린다. 청소년 시절, 신체의 변화와 성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날 때 남성의 시선으로 정의된 여성의 신체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분개한 나는 엄마에게 나의 생식기 혹은 그 부위를 부르는 더 많은 단어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보지, 난자, 잔소, 아기집, 나팔관. 나는 백과사전 8권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런 단어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왜, 양도 해파리도 코뿔소도 자기 페이지를 가지고 있는데 내 생식기는 없지?’ -본문 중- 생기대나 탐폰 광고에서 여자들은 모든 것이 하얗고 순수하고 무취한 세계에서 춤추고 실내 수영장에서 헤엄쳐 다닌다. 게다가 심지어 다른 어떤 날보다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이러한 모습에 동일시할 수 없는 이유는 내 허벅지 굵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날에는 해변에서 춤을 춘다거나 물속에서 성큼성큼 팔 젖기를 할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날의 나는 쓸모없고 추한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본문 중-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은 성과 관련된 것은 입밖으로 말하지 않았다. 요즘처럼 야동이 흔하고 인터넷으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혹은 영상으로 행위를 담아내기 전까지는 혼자 상상하거나 기껏해야 상상력을 글로 쓰거나 농담처럼 툭 내뱉는 것이 성에 대한 최대한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입밖으로 함부로 낼 수 없는 개념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욕으로, 상황을 비꼬는 위트로 포장된 농담으로 형태를 드러냈다. 그러다보니 성과 관련한 것은 은밀하고 불법적으로 숨어 버렸다. 청소년들은 야동을 통해 잘못된 성 개념을 배우고, 2차 성징으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또래 안에서 해결하려고 든다. 대부분 여성들은 평생 살면서 자신의 생식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남성들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성을 이제 밖으로 적나라하게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녀의 생식기 모두 신비롭다거나 비밀스러운 곳이 아니다. 생식기와 관련한 단어들을 입밖으로 거침없이 내뱉을 만큼, 손과 발같은 신체 부위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리를 마법이라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다. 서로를 못생겼다고,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열셋, 열다섯, 스무 살의 수천 아이들과 연결되는 가느다란 실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나는 한 여자아이가 몸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다 못해 파괴하고 싶을 정도가 되려면, 도대체 그 사회에 무슨 일이 있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본문 중- 나는 수많은 밤을 침대에서 허벅지와 배의 살을 움켜잡고 꽉 쥐어짜며 사라지기를 기도하면서 보냈다. 내가 누르고 또 누르다 보면 한순간에 내가 가진 필요 이상의 살이 증발하기라도 한다는 듯. 하지만 뚱뚱하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과 답답함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청소년기에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평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지 수없이 자문했다. 내가 뚱뚱한 건 아무 상관없고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욕설과 끝없는 무시였다고 세상을 향해 외치려면 어떤 목소리가 어울렸을까?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가 나처럼 침대에 누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끔찍하게 혼자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을까? -본문 중-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가 추구하는 미가 정말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일까? 대중매체를 통해, 혹은 남성작가들이 규정해놓은 뻔한 아름다움 아닐까? 남성들이 좋아하는 청순가련형의 베이비페이스의 글래머러스한 몸매, 선이 가늘지만 건강한 몸매, 날씬한 몸매… 몸매, 몸매, 몸매… 남성들의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여성들이 식욕을 참고, 방법도 모르면서 운동기구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추구하는 미가 날씬한 몸매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개인의 선택에 의해, 즉 나 자신의 의지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 하지만 날씬한 몸매가 사회 기준이 되어 버려 조금의 여백의 살이 허용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것은 문제다. 모든 여성이 사회가 만족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문제인 것. 한편으로는 리치가 이야기하듯, 여성 문학의 유산은 평가절하 당하고, 지워지고, 파편화되었다. 선구적인 여성들을 재발견하는 것은 핵심적인 일이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우리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것은 권력을 가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권력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결정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이제 우리 여자들이 펜을 가진 이상-대학에 더 많이 가는 것도, 더 많이 읽는 것도 우리들이다-권위를 가지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민망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서사화해야만 한다. 일인칭으로 쓰는 우리들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만이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다. 여전히 월경과 성적 괴롭힘과 젠더 폭력과 살찐 몸과 모성에 대한 훨씬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본문 중- 이 책이 특히 좋았던 부분은 마지막 여성의 삶을 사회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작가의 권고다. 여성의 힘든 삶이 내 선택이 아니고 오랜 시간 많은 여성의 희생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모두가 공감하고 문제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내 이야기, 우리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내 딸들의 이야기다.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힘을 가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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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각성'을 시작한 나에게 페미니즘은 모순이 폭발하는 세계를 인식하는 언어를 주었다. 그 각성이 고통스러워서, 내 안에 화가 너무 많이 쌓여서 매일같이 울고 글을 썼다. (p.15)
이 기간의 나는 여전히 당당하지 못하다. 회사에서 생리대를 꺼낼 때 떳떳해 보려고, 파우치나 가방으로 가리지 않아 보려고 여러 번 노력해 봤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리 중이라는 걸 왜 숨겨야 하는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왜 나조차 당당하지 못한지 스스로에게 화도 난다.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 일의 성과가 내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과 관련지어 평가될까 봐. 혹시 있을지 모를 실수에 생리 탓이라는 오명이 덧씌워질까 봐. 이 모든 걸 바꿔 나가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이런 책을 읽고, 무언가라도 배워 보려 애쓴다. 나보다 먼저 산 여성들에게서 용기를 얻고, 그 여성들이 지어놓은 매듭에서부터 시작하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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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내가 싫어하는 모든 걸 갖췄다” 몇 해 전 모 남성 개그맨이 여성 출연자에게 ‘농담’이랍시고 건낸 말이다. 이 발언에 분개한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발언을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라는 페미니즘 구호로 전유했다. 이렇듯 여성에게는 자신의 신념과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조신한’ 삶이 강요되어 왔고, 여성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사회적 압박에 맞서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기, 평생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며 살아온 스페인 페미니스트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싶어>에서 저자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이하 ‘카르멘’)는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못 채우고 나온 그 순간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성으로서 겪은 스스로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카르멘의 곁에는 언제나 엄마와 이모, 증조할머니, 여동생과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카르멘은 이들과 왜 성기를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로 둘러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친구의 강간 피해 사실에 분개했으며, 안전한 주거 공간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또한 카르멘의 인생에는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이브 앤슬러, 록산 게이 등 여러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가 함께했다. 여성 작가들의 글에서 카르멘은 문제의식과 함께 용기를 얻었다. 카르멘은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고 자란 마을인 알칼라를 떠나야 한다고 느꼈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필사적으로 알칼라를 벗어났다. 카르멘은 언제나 지금보다 나을 미래를 꿈꾸며 독일, 영국, 등지를 떠돌았지만 어디서도 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20대 후반 알칼라로 돌아오게 된다. 후퇴라고 여겨졌던 이 곳에서, 책 속에 있던 과거의 연대와, 가족의 여자 구성원들과 이루는 현재의 연대가 교차한다. “최악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증조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 모두 나간 오후가 되면 나는 그녀의 부엌이었던 곳에 앉아,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내가 한 번도 묻지 못했던 모든 것을 물어보기 위해 노트를 편다. 내게 전쟁 이야기를 해 줄 그녀의 딸들도 없는 지금, 어쩌면 내 꿈에 그녀가 계속 나타나 내가 기억할 수 있도록 응답해 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마다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를 단단히 붙잡으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러 내 꿈에 나오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지만 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았기에 카르멘의 이야기는 공감을 넘어 위로가 되었다.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많았지만 ‘설치는 애’로 찍혀버릴 까봐 입을 닫았던 유년기부터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을 꼭 벗어나서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이십대 중반을 지나 가족과 친구들의 곁에서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 까지, 카르멘이 가졌던 것과 같은 의문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 해결의 실마리에는 언제나 여성 작가들의 글과, 내킬 때 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성 동료들과의 연대가 있었다. 저자는 “이제 우리 여자들이 펜을 가진 이상 권위를 가지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민망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서사화해야만 한다. 일인칭으로 쓰는 우리들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는 것만이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다. 여전히 월경과 성적 괴롭힘과 젠더 폭력과 살찐 몸과 모성에 대한 훨씬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고 말한다. 카르멘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현실에 좌절하는 대신, 일상속에서 계속되는 여성들의 연대에 주목한다. 주변 여성들과의 대화는 카르멘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었고, 여성작가들의 글은 카르멘의 자아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듯 여성들의 이야기는 책 속에 남든, 대화로 흩어지든 다른 여성에게 힘이, 자극이, 때로는 안식이 된다. 카르멘이 그랬듯 우리는 앞으로 더 열심히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끊임없이 스스로 검열하고 의심하는 여성들에게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도 더러 있었지만 작가의 유쾌한 문체에 매료된 나머지 이런 불만(?)들 마저 언제든지 토로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정갈한 만듦새까지, 아주 유쾌한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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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공감가는 문장들. 책을 읽는다는 건,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이라니. 내 인생이 위기의 순간마다 책을 붙들고 있었던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나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히 있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동안 몰랐었는데, 나 역시 느리지만 당연하게 그 길을 향해 걸어왔고 말이다. 이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할 용기도 생겼다. 근데 왜 그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까. 작가가 아닌 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아왔지만 내 생각과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건 두려웠다. 솔직하게 다 쏟아내고는 다시 읽고 고쳐쓰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다듬다가 지워버린 글들도 많았다. 그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줘서는 안 된다는 듯이. 나와 같은 몇몇의 공감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을, 다수의 비난이 무서웠다. 그래서 아직도 난 작가가 되지 못했나 보다. 글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는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세상에 나와 비슷한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에 자매애를 느낀다. 시대를 앞서간 멋진 언니들 덕분에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니, 나도 뒤이어 올 여성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멋진 언니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전 세대에 대한 부채감은 이렇게 갚고 싶다. 이제 긴 침묵에서 깨어날 때다. #북리뷰 #엄마나는페미니스트가되고싶어 #을유문화사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여성주의 #여성연대 #책추천 #밑줄긋기 당신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기만의 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당신을 앞서간 다른 여성들을 관찰하고 그녀들의 말을 듣고 그녀들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만의 방을 얻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는 그렇게 진지한 일이 되었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저항할 수 없이 나를 끌어당기던 다른 사람들의 낯선 인생에 가닿기 위한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누구든 될 수 있었다. 마치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찰나의 시간을 벌어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윈스턴은 이렇게 썼다.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 보부아르는 독립적 여성은 직업적 관심과 여성이라는 불안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되는 것과 외부에서 기대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으며, 가까스로 찾는다 해도 “그녀에게 끝없는 긴장을 요구하는 곡예와 같은 양보와 희생”으로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여행은 마치 책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일부를 구성했다. 읽지 않고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외국으로 떠나 사는 것이 의미하는 새로운 감각 없이는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삶은 재빨리 변한다. 삶은 한순간에 변해 버린다. 나는 내가 기대한 삶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강이 보이는 난간에 기대어 다시 밖을 내다본 어느 날, 나는 내 자신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것을. 옳든 그르든 내 인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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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랬는데….” 이 책을 읽으며 수없이 중얼거리던 말이다. 70년대 끝자락에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나. 나의 엄마 시절보다는 자유로워 졌다지만 여자이기에 때문에 고개 숙이고 참아야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어른들의 ‘조언'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밤들,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며 ‘칭찬’받던 순간들, 너희는 대통령이 아니라 영부인을 꿈꾸는 거라던 여자 선생님들, 엄마를 사랑하지만 나를’여자애’ 로 만들려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던 어린 날들… 나도 있었는데… 나도 그랬는데…. 나의 불쾌했던 순간들이 서구 문명의 80년대에 태어난 작가에게서도 발견될 때 작가의 유쾌한 필체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쾌할 수만은 없었다. 다른 공간, 다른 문화, 다른 세대에서도 아직 이런 것들이 남아있다니 안타까웠다. 내가 여자라서 겪는 것이 틀림없었던 도무지 말도 안되는 오만가지 일들을 기억한다. p.14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분노와 불편을 감내하는 것이 여성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p.44 260여 페이지로 짧은 분량인데도 읽는데 2주가 걸린 이유는 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찾아보며 작가인 ‘그녀들’과 함께 읽었기 때문이다. 카르멘의 리드에 따라 다시 한 번 ‘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끄덕이며 지금의 나와, 어제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생각했다. 어제의 나는 나의 엄마가 내게 ‘전수’하려던 '여자의 미덕’을 온 힘을 다해 거부했다. 오늘의 나는 40대 일하는 여성이자 공부하는 엄마로, 내 아이들에게 너무 흔해서 잘 보이는 않는 온갖 불평등을 바로볼 수 있는 눈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으로 내일의 나는, 내 아이들이 흐림없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조화로움을 가치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록산 게이가 말하는 이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은 격렬한 분노, 유머의 결여, 호전성, 의심의 여지가 없는 원칙을 상기시키며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규칙들을 지시한다. ‘포르노그래피를 증오하고, 남자들을 증오하고, 섹스를 증오하고, 일에만 집중하고, 제모를 해서는 안 됨.’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잘못하고 있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록산 게이는 핑크색과 랩을 좋아하고 나는 원피스를 입고 립스틱과 매니큐어 바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록산 게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많았다. 누군가 나를 페미니스트라 호명할 때 단어 뒤에 숨은 뜻, 이를테면 ‘너는 화가 나있고 섹스를 혐오하고 남자들을 증오하잖아.’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강하게 부정했다. 록산 게이의 글을 읽으며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pp.160~161 나도 록산게이의 글과 생각에 동의한다. 나는 온갖 반짝이는 악세사리와 향수, 남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누구보다 섹시하게 춤출 줄도 알며, 나의 반려, 내 남편을 마음 깊이 사랑한다. 그렇다.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 나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싸움, 저항, 쟁취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조화로움’이어야 한다. 차별을 바로 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일부가 가졌던 이권과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는 것, 그로써 모두가 가지고 태어난 대로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가치다. 페미니즘의 ‘옳음’이 아닌 ‘좋음’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튕겨져 나오는 말이 아니라 스며드는 말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작가 은유, 경향 신문 인터뷰 중에서- *이 문장이 좋아서 메모앱에 저정하고 다닌다. 이 책의 작가와 나는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아이야, 네가 페미니스트가 되어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 은유의 말처럼 '스며드는 말'이 필요하다. 더 많은 스며드는 말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기를!!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더 자유로워진다. -윈스턴- p.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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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관련 책 중 가장 공감되고 쉽게 읽힌 책. 작가는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도 과감하게 써내려 간다. 지금까지도 금기시되고 있거나 여성들에게 평등하지 못한 인식을 조장하는 주제들에 대해... p65 만일 월경이 우리 여성들에게 이 세상을 가져오는 힘을 주는 일종의 신성한 명령이라면 왜 그걸 숨겨야 하며, 왜 좋은 냄새가 나도록 만들어야 하는가? p81 내가 뚱뚱하면, 내 삶의 주인공조차 되지 못한다는 말인가? p249 일인칭으로 쓰는 우리들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것만이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다. 여전히 월경과 성적 괴롭힘과 젠더 폭력과 살찐 몸과 모성에 대한 훨씬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녀가 언급하고 있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말괄량이 삐삐 같은 자주적인 캐릭터나 페미니스트 여성 작가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을 주장한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삶 속에 숨어있는 반페미니즘적 사고에 대해 좀더 깊이있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p 207 나는 여성들이, 작가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잘못된 선택이었든 아니었든 어떻게 결단을 내리고 문제를 헤쳐 나갔는지에 관심이 많다. 한 때 자유분방하고 지적인 여자 예술가들의 삶을 찾아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 보브와르나 루이제 린저, 사강, 그리고 불운의 이사도라 덩컨까지. 여자에게 당연시되었던 관습적 굴레에 대한 반항심을 키우며 시대를 이겨낸 듯 보이는 그들의 삶이 로망으로 다가왔던... 그래서 이 책에 더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 페미니스트를 위한 독서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책. 그녀의 저서를 읽으며 페미니스트로 성장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