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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나가 되고 팠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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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시작 시점을 어디로 보는 게 옳을까. 몇 백 년에 걸쳐 변화가 이루어진 서양 사회에 비해 모든 과정이 압축적으로 전개된 우리인지라 분명한 경계를 찾는 일이 쉽지가 않다. 불과 50년 전만 하여도 전쟁으로 먹고 사는 것조차도 버거웠으며, 대개의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복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때와 지금은 결코 같지가 않다.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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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시작 시점을 어디로 보는 게 옳을까. 몇 백 년에 걸쳐 변화가 이루어진 서양 사회에 비해 모든 과정이 압축적으로 전개된 우리인지라 분명한 경계를 찾는 일이 쉽지가 않다. 불과 50년 전만 하여도 전쟁으로 먹고 사는 것조차도 버거웠으며, 대개의 사람들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복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때와 지금은 결코 같지가 않다.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질 않는다. 나라 잃은 국민에게 허락된 건 설움을 삭히는 것 혹은 적극적으로 지배국의 노예가 되는 것뿐이었다. 스스로를 기만하며 끽해야 백 년도 채 되지 않는 인생을 살다 간 이들을 과연 나와 같은 현대인으로 보아도 무방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현대성의 언급을 위해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의 시선을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앞선 시대와의 차이점이 그 시기엔 분명 존재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맹아가 싹튼 시기라는 언급을 조선 후기에 대해 학습하며 접했다. 실학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매겨진 평가인 듯한데,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세태는 19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이미 1880년대 무렵의 사회는 대혼란이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서양의 배가 우리 해안에 나타났다. 마냥 미개한 것으로 취급하고픈 마음과 달리 대륙 조정이 함락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이를 바라본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공포와 기대라는 상반되는 반응은 곧 현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도 닮은꼴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당대 사람들의 혼란이 느껴졌다. 1930년대 쪽으로 갈수록 더는 우리 것으로 승부를 걸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 의식이 짙어지는 듯했다. 패배라는 현실을 가져다 준 게 우리의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굴복했다. 당시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서양의 것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2차적인 것인 경우가 잦았으며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도 불투명했다. 패배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와중에 이를 꼼꼼하게 살필 겨를은 없었다. 급기야 사람들은 서양의 것을 체득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옷차림 부분에서 일어났다. 긴 머리를 자르고,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뾰족구두를 신고. 행동양식에의 변화 또한 뒤따랐다. 부모가 맺어준 처를 버리고 연애로 새로운 배우자를 물색했다. 사랑이 매개 안 된 결혼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용기를 낸, 그들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되었다.

닮고 싶다. 충분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허나 우리 것을 저버린 계몽은 진정한 계몽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비난했다. 감히 부모 세대의 소중한 것들을 저버린다는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특히 여성을 대할 때면 그와 같은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신문명을 누구보다도 앞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여성은 소위 기생 등이었다. 오로지 재생산만에만 초점이 맞춰진 다른 계층의 여성들은 교육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여성, 게다가 얕잡아 보기에 안성맞춤인 신분. 누구보다도 앞장서 신문명을 받아들인 그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급부상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시선 또한 견디어야 하는 운명에 봉착했다. 아마도 당대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품은 감정이 부러움인지 혐오인지. 개개인, 나아가 시대조차도 한결같이 자아분열을 겪은 시절이다. 내가 누군지 알아채기 위한 노력이 여느 때보다도 많이 필요했던 시절에 태어나지 않음은 행운이다.

한 때 우리 외적인 것이라면 뭐든 긍정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우리를 점령한 일본의 것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마음을 품었다. 분명 많았을 부작용에 대해서는 언급 않은 채 일본이 그러하듯 우리도 서울에 딴스홀을 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이들의 혼란이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하얀 피부, 우리와는 전혀 다른 골격을 지닌 서양인의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그렸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희망했던 미래의 모습과 오늘날 사이에 얼마나 많은 격차가 존재할지가 궁금하다. 널린 게 딴스홀이고, 커피숍이다. 서양인들보다도 더 서구적인 태도로 삶을 대하는 듯하면서도 극적인 순간에는 내면에 잠재됐던 한국적인 DNA를 맘껏 표출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1900년대를 살다간 이들에겐 신인류 마냥 여겨질 거라 생각하니 짜릿하다.

q*****2 2020.03.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