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6%
  • 리뷰 총점8 45%
  • 리뷰 총점6 18%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7.0
  • 40대 7.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책을 읽는가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 샤를 단치/임명주 이루/2013.6.20.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읽게 된다.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읽고,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읽으며, 때로는 시험을 보기 위해 읽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의 저자 샤를 단치는 시, 소설, 에세이 각 부문에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

샤를 단치/임명주

이루/2013.6.20.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읽게 된다.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읽고,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읽으며, 때로는 시험을 보기 위해 읽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의 저자 샤를 단치는 시, 소설, 에세이 각 부문에서 프랑스 국내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뛰어난 작가이며, 이름난 애서가이자 독서광이다. <왜 책을 읽는가는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장 지오노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왜 책을 읽는가는 저자의 깊은 사색과 지혜가 담긴 유쾌하고 진지한 독서론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등 그의 독특한 독서론은 고전에서부터 뱀파이어 소설, 외설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일반적인 독서 행태, 대가들의 대표작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책을 읽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p.27)”이와 같이 책을 읽는 것이 이기적인 행위라고 단정 짓는다. 우리가 보통 책을 읽는 목적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는 어떤 지식을 알기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결국 저자가 말한 이기적인 행위라 할 만하다.

 

소설은 인물의 미스터리가 밝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우리 모습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에게 한 가지 모습만 보여주며, 피차 하나의 캐릭터로 비치는 것을 더욱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더 이상 친절할 필요가 없게 되면, 우리는 복잡한 인물로 변신한다. 마치 시신을 해부하듯 인물을 파헤친다.(p.163)”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든,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건 작가들의 깊은 이해와 함께 탄생한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괴물 같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빛을 드러내며, 남자건 여자건 외국인이건 아니면 19세기의 사람이건 어떤 시대의 사람이건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는 표면적인 세계뿐 아니라 진짜 주제와 진짜 현실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의 정신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사 뒤에 감추어진 진짜 마음은 물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과 그다지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진술 등 그 문장을 구성하는 내적인 동기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무만이 춤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독서광이라는 사람들을 어디에 비유해야 할까마지막 잔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디저트 한 접시를 더 먹어버린 뚱보, 손톱에 매니큐어를 한 겹 더 바르는 사춘기 여자아이, 불필요한 장식품을 하나 더 얹는 실내 장식가와 같다. 어쩌면 이런 독한 미식가들 덕분에 난해하다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의 글을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p.144)”

걸작은 민주적이지 않다.”최근 샤를 단치가 신간을 출간하며 한 말이다. 위대한 작품은 다수결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책과 독자의 힘은 숫자가 아니다. 소수의 위대한 독자가 세상을 바꾼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책에 대한 종말론이 확산되는 시대에 책과 독서의 가치를 옹호하며 분투하는 위대한 독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역자는 말한다. 독서광들이 걸작을 찾아내고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도 독자가 없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인생을 산다. 하지만 위대한 독자들에 의해 위대한 걸작들은 불멸의 생명력을 이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에 의해 불멸의 걸작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독서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맞서 벌이는 투쟁이자 불멸을 지향하는 행위이다.(p.268)”

저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한편이 되어 죽음과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문학, 즉 예술의 적은 바로 죽음(소멸)이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죽음에 저항한 것이 바로 문학이고 예술이다.

 

왜 책을 읽는가? 정답 없는 이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참고할 만한 충분히 사려 깊은 대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달의 사락 k******4 2024.02.10. 신고 공감 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책을 읽는가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샤를 단치/임명주이루/2013.6.20.sanbaram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읽게 된다.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읽고,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읽으며, 때로는 시험을 보기 위해 읽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의 저자 샤를 단치는 시, 소설, 에세이 각 부문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

샤를 단치/임명주

이루/2013.6.20.

sanbaram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갖고 읽게 된다.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읽고,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읽으며, 때로는 시험을 보기 위해 읽고,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을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이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왜 책을 읽는가의 저자 샤를 단치는 시, 소설, 에세이 각 부문에서 프랑스 국내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뛰어난 작가이며, 이름난 애서가이자 독서광이다. <왜 책을 읽는가는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장 지오노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왜 책을 읽는가는 저자의 깊은 사색과 지혜가 담긴 유쾌하고 진지한 독서론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등 그의 독특한 독서론은 고전에서부터 뱀파이어 소설, 외설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일반적인 독서 행태, 대가들의 대표작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책을 읽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p.27)”이와 같이 책을 읽는 것이 이기적인 행위라고 단정 짓는다. 우리가 보통 책을 읽는 목적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는 어떤 지식을 알기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결국 저자가 말한 이기적인 행위라 할 만하다.

 

소설은 인물의 미스터리가 밝혀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우리 모습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에게 한 가지 모습만 보여주며, 피차 하나의 캐릭터로 비치는 것을 더욱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더 이상 친절할 필요가 없게 되면, 우리는 복잡한 인물로 변신한다. 마치 시신을 해부하듯 인물을 파헤친다.(p.163)”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든,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건 작가들의 깊은 이해와 함께 탄생한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괴물 같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빛을 드러내며, 남자건 여자건 외국인이건 아니면 19세기의 사람이건 어떤 시대의 사람이건 수많은 독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는 표면적인 세계뿐 아니라 진짜 주제와 진짜 현실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의 정신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사 뒤에 감추어진 진짜 마음은 물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과 그다지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진술 등 그 문장을 구성하는 내적인 동기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무만이 춤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독서광이라는 사람들을 어디에 비유해야 할까마지막 잔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 디저트 한 접시를 더 먹어버린 뚱보, 손톱에 매니큐어를 한 겹 더 바르는 사춘기 여자아이, 불필요한 장식품을 하나 더 얹는 실내 장식가와 같다. 어쩌면 이런 독한 미식가들 덕분에 난해하다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의 글을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p.144)”

걸작은 민주적이지 않다.”최근 샤를 단치가 신간을 출간하며 한 말이다. 위대한 작품은 다수결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책과 독자의 힘은 숫자가 아니다. 소수의 위대한 독자가 세상을 바꾼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책에 대한 종말론이 확산되는 시대에 책과 독서의 가치를 옹호하며 분투하는 위대한 독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역자는 말한다. 독서광들이 걸작을 찾아내고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도 독자가 없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인생을 산다. 하지만 위대한 독자들에 의해 위대한 걸작들은 불멸의 생명력을 이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에 의해 불멸의 걸작들은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독서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에 맞서 벌이는 투쟁이자 불멸을 지향하는 행위이다.(p.268)”

저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한편이 되어 죽음과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문학, 즉 예술의 적은 바로 죽음(소멸)이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죽음에 저항한 것이 바로 문학이고 예술이다.

 

왜 책을 읽는가? 정답 없는 이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참고할 만한 충분히 사려 깊은 대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달의 사락 k******4 2017.05.01. 신고 공감 6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독서에 대한 책을 좋아하지만 왠지 짜증이 난다
"독서에 대한 책을 좋아하지만 왠지 짜증이 난다" 내용보기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상태가 오히려 이상하기 때문에  '나는 왜 책을 읽을까?'라는 질문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책을 꺼내들면서도, 유난스럽게 구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기대하는 것 처럼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책을 즐겨읽
"독서에 대한 책을 좋아하지만 왠지 짜증이 난다" 내용보기

  읽고 있는 책이 없는 상태가 오히려 이상하기 때문에  '나는 왜 책을 읽을까?'라는 질문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책을 꺼내들면서도, 유난스럽게 구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기대하는 것 처럼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책을 읽는 사람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책을 즐겨읽는 사람, 그 중에서도 독서광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속한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책과 서점을 사랑하는 소수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책을 읽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27쪽)"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서 이기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싶은데 많고 많은 행위 중 하필 책을 읽는 것이 이기적이라고 선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타적인 책 읽기는 언제 가능할 것인가?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요, 독자는 백마탄 왕자님이다(39쪽)"라는 말처럼 독자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책은 잊혀질 수 밖에 없고, 역사상 많은 책들이 실제로 그런 불행한 운명을 맞았다. 책읽는 사람이 소수이고, 그 중에서도 양서를 읽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러나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책을 읽는 이유는 그 책을 읽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작가와 책의 권위에 눌려 그 책을 읽고도 독자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고전이 불멸의 명성을 가지도록 만든 것은 이타적인 위대한 독자들의 힘이지만, 형편없는 책에 몰려드는 엉터리 독자들 때문에 쓸데없이 유명해지는 책들이 있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라며 《트와일라이트》나《해리포터 시리즈》등을 예로 들었다. "너무 많은 책을 읽다보니 취향이 까다로워지고 지나치게 눈만 높아(143쪽)"진 독서광으로, 그가 책과 독서에 대해 내뱉는 독설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조차 서늘하게 만든다. "화집 혹은 아름다운 책. 그것은 어떤 면에서 가장 무거운 책이고 어떤 면에선 가장 가벼운 책이다.(211쪽)", "사람들이 전기를 읽는 까닭은 아마 진짜 책이 읽기 싫어서일 것이다...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은 종종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서술된다.(177-178쪽)"

 

   저자는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오만해지고 까다로와진, 말의 유희를 즐기는 사람이다. "난 수영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짜증난다. 짜증이 나면서도 좋아한다.(194쪽)"는 그의 말을  '나는 독서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짜증난다. 짜증이 나면서도 좋아한다'고 고치고 싶다. 책에 대한 책이 진짜 책을 읽게 만드는 가이드북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책읽기나 글쓰기를 경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책을 읽고 이런 리뷰를 쓰는 나에게 저자가 일갈한다.  "아!  형편없이 서투른 글을 쓰고서도 스스로 잘 썼다고 믿으며 느끼는 이 잔인한 쾌감이란...(45쪽)"




y***d 2013.05.22. 신고 공감 6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책을 읽는가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는 저자의 깊은 사색과 지혜가 담긴 유쾌하고 진지한 독서론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등 그의 독특한 독서론은 고전에서부터 뱀파이어 소설, 외설의 논란을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왜 책을 읽는가는 저자의 깊은 사색과 지혜가 담긴 유쾌하고 진지한 독서론을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등 그의 독특한 독서론은 고전에서부터 뱀파이어 소설, 외설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 일반적인 독서 행태, 대가들의 대표작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책을 읽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p.27)”이와 같이 책을 읽는 것이 이기적인 행위라고 단정 짓는다. 우리가 보통 책을 읽는 목적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또는 어떤 지식을 알기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결국 저자가 말한 이기적인 행위라 할 만하다.

 

이달의 사락 k******4 2018.04.04. 신고 공감 5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즐거운 책읽기에서 즐거운 글쓰기로
"즐거운 책읽기에서 즐거운 글쓰기로" 내용보기
이 책 제목처럼 나도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떠오른 것은 없었다. ‘그냥 책읽는 게 좋으니까’다. 그건 그렇고, 이 책 이야기는 잘 못하겠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책읽기가 아주 좋은 것이다고만 말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샤를 단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는 걷기와도 같다고 했다. 나는 숨쉬는 것과 같지 않을
"즐거운 책읽기에서 즐거운 글쓰기로" 내용보기

이 책 제목처럼 나도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떠오른 것은 없었다. ‘그냥 책읽는 게 좋으니까’다. 그건 그렇고, 이 책 이야기는 잘 못하겠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책읽기가 아주 좋은 것이다고만 말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샤를 단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는 걷기와도 같다고 했다. 나는 숨쉬는 것과 같지 않을까 했는데, 뒤에 이 말도 나온다. 책읽기가 누구한테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게 조금 아쉽지만, 지금은 책과 가까이 지내니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주로 읽는 게 소설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27쪽) 세상과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읽기에 좋은 것은 소설이다. 다른 사람을 알기 위한 것도 있기는 한데. 그리고 지식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깊고 넓게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현실을 잊는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책을 읽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서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다시 책읽기는 좋은 것이다가 되려나.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대한 게 더 클 것이다. 샤를 단치는 문학이 기분을 바꿔주기는 하지만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다. 정말 그럴까. 책읽기가 사람을 바꾸지는 않다는 말은 맞지만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책을 읽고 위안 받을 때도 있으니까(샤를 단치는 그런 경험이 없다는 말인가).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것은 아닌가 싶다. 책 종류는 많으니까. 다른 책은 읽지 않아도 자기계발책을 읽는 사람은 뜻밖에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한테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기계발책에는 여러가지가 나오기도 하니까. 본 적도 없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을 보다가 더 알고 싶어져서 다른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렇게 썼지만 나는 다른 책을 찾아서 읽지는 않는다. 가끔 책 속에 나온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만 그 책을 볼 때뿐이다. 그 관심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오랫동안 나는 책을 읽기만 했다. 아니 가끔 읽은 책에 대해 쓴 적도 있다. 그때 읽고 썼던 것은 거의 동화였다. 소설도 많이 읽었는데 쓸 수 없었다. 지금 그렇게 잘 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 쓰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기도 하다.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기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면 쓰는 게 좋으니까. 예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렸다. 써도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몇해 동안은 대충 썼는데 지금은 잘 쓰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할 말이 거의 없다(비슷한 말을 또 쓰다). 그래도 쓴다. 어쩌면 이것은 그렇게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늘 생각하는 것은 내가 책을 잘 못 읽어서인가 보다 다. 다음에는 잘 봐야지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흐르는 거지. 처음에 쓰려고 한 것은 이런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서, 내가 책을 읽게 된 것은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는 한동안 책을 읽고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해서도 쓰기로 한 거다. 이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쓰는 버릇을 들이려고 했는데 버릇이 쉽게 들지는 않는다.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다음은 덜 즐겁다. 다른 사람한테는 책읽기뿐 아니라 쓰는 것도 즐겁게 하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고 있다니 했다. 그래서 이제는 잘 쓰지 못해도 즐겁게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고 늘 생각해야겠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내가 아주 싫어했다면 지금까지 썼겠는가. 잠깐 쓰다가 그만뒀겠지.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을 잘 쓰는 것 같지는 않다. 하나 더 책을 많이 읽는다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글쓰는 것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도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무엇이든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저기 산이 있기에 오른다, 처럼 여기 책이 있기에 읽는다.



희선




☆―

우리는 책에 도움말을 부탁하는 대신 책 속 보물을 훔쳐내야 한다. (147쪽)


우리는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흔히 책을 읽다가 몽상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문득 고개를 들고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문 채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라? (136쪽)


이달의 사락 n***8 2013.08.05. 신고 공감 5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책을 읽는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우리가 책을 읽는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내용보기
한동안 김수영의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읽고 먹먹했던 적이 있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던 아니 잃어버리고 있었던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저자 샤를 단치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사람으로 보인다. 단치의 프로필을 보니까 그는
"우리가 책을 읽는 다양한 관점에 대하여!" 내용보기

한동안 김수영의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읽고 먹먹했던 적이 있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었던 아니 잃어버리고 있었던 내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 샤를 단치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사람으로 보인다. 단치의 프로필을 보니까 그는 의대교수 집안에서 자라나 집안의 권유로 법대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문학과 창작에 대한 열정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법조인보다는 작가와 시인의 길을 걸었다. 법대 시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맘껏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나.

저자는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를 '걷는 일' 처럼 일상적인 것라고 고백한다.

 

왜 책을 읽는가?  내게 독서란 걷는 일과 같다. 심지어 나는 걸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걷거나 읽은 일은 자발적인 행위다. 이는 '정당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자발적이라는 이유로 성찰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11쪽

 

나아가 저자는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고 한다. 요즘 열풍이 일고 있는 인문학도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라면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독서는 가장 위대한 독서가만이 할 수 있을 뿐더러, 일단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라는 기본적인 목적이 충족된 이후에야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독서는 죽은 자들마저도 노래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만이 책을 읽는 이유는 아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책을 읽는 것 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 - 27쪽

 

얼 쇼리스도 《희망의 인문학》에서 사회 빈곤층은 사방이 벽으로 꽉 막힌 속에서 질식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 개혁과 함께 그들이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는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맘에 와 닿는 주옥같은 글들이 많아 좋았다. 독자가 책을 읽는 다양한 관점을 저자의 독특한 시각으로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단치를 통해 책을 벗삼아 인간과 인간성을 성찰하고, 고전(古典)을 사랑하는 마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박경철 씨도 그랬다. 문·사·철(文·史·哲)에 탐닉하던 그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법대를 갈지 의대를 갈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의대에 진학했지만, 경제학에 탐닉하는 등 문사철과 의학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인문학 전문가가 되었다.

왜 책을 읽는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왜 책을 읽는가?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편견 속에 살면서 무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둠은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고유한 특성이다. 독서가들은 순수성과 완전함과 공정함을 내세우지 않는 유일한 문학가들이며 그런 요소가 없이도, 자랑할 것이 없어도(여기서 루소는 제외한다) 그 자체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결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91쪽

 

단치는 아뇰르 브론치노(Agnolo Bronzino)가 그린 〈청년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Man, 1540)을 소개한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교양을 갖춘 듯 한 청년이 자부심이 잔뜩 서린 약간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손에는 방금 읽은 듯 싶은 부분에 검지 손가락이 끼워져 있다. 그만큼 책을 아끼고 사랑한 뜻이리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자신감을 갖게 하는 모양이다.

 

 Agnolo Bronzino, <Portrait of a Young Man> 1540.

 

특히 단치의 관점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읽히지 않는 걸작들에 대한 우려였다. 그에 의하면 걸작이 지닌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독자라는 것이다.

 

현재 읽히지 않는 걸작은 얼마든지 있다. 그 책들은 미래에는 소멸해 버릴 것이다.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위대한 독자다. 그들이 많든 적든 간에 현재 읽히지 않는 불멸의 고전은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까. 저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작가와 독자가 한편이 되어 죽음과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문학, 즉 예술의 적은 바로 죽음(소멸)이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죽음에 저항한 것 역시 바로 문학이고 예술이다. - 267쪽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다. 애당초 책을 읽을 때 이타심 같은 것은 원한 적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책을 읽는 동안 잠자고 있던 생각이 되살아난다.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요, 독자는 백마 탄 왕자님이다. 독자가 안경을 걸치고 대머리가 된 98세 노인이라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펼쳐지지 않은 책은 존재할 뿐 살아 있지 않다. 고운 먼지들의 품에 감싸 안긴 책은 어쩌면 속이 텅 빈 직육면체 상자에 불과하리라. - 39쪽

 

문학이 창작이라면 저널리즘은 해석이라 할 수 있다. - 243쪽

 

문학과 저널리즘, 이 두 가지 글의 핵심적인 차이는 죽음과의 관계에 있다. 문학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저널리즘은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문학은 유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저널리즘은 불쾌한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널리즘이 죽음이 아닌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죽은 이들은 감동을 주진 않지만, 독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쾌감을 준다. 즉, 원인을 알 수 없이 죽은 사람들, 병명조차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은 우리의 연민과 동정심을 자극할 뿐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 244~245쪽

YES마니아 : 로얄 h*******c 2013.06.06.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책을 읽는가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샤를 단치(Charles Dantizg)는 1961년 프랑스 남서부 타흐브 출생으로 의학교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안의 권유로 툴루즈 법대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법대는 내게 최고의 학과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라고. 28세 때 파리에서 박사 논문을 마친 그는 첫 에세
"왜 책을 읽는가" 내용보기

 

 샤를 단치(Charles Dantizg)는 1961년 프랑스 남서부 타흐브 출생으로 의학교수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안의 권유로 툴루즈 법대에 입학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법대는 내게 최고의 학과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라고. 28세 때 파리에서 박사 논문을 마친 그는 첫 에세이집과 첫 시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장지오노 그랑프리를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은 소설 <범죄로 버무리다> <성급한 우리네 삶> <사랑의 영화> <내 이름은 프랑스아> <카라스행 비행기 안에서> 등 다수 있다. 로제니미에상과 장 프로지테상을 수상하였다.

 

 ‘어디나 수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진흙탕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창작은 생기를 빼앗아 가는 기술이다.’(폴 레오토 <어느 하루에 대해서>)

 

‘우리는 책에 조언을 부탁하는 대신 책 속의 보물을 훔쳐 내야 한다.’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은 삶, 최소한의 긍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가 위대한 것이다.’

                                          (본문 中)

 

 그는 이미 유년기부터 독서광이었다. 부모가 “밖에 좀 나가 놀아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을 정도로. 그 어린 나이에도 책이 그렇게 좋았다고 하는 그는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다가 어떤 것에 부딪혀서 “어이쿠 죄송합니다.”하고는 고개를 들어보니 주차권 발행기였다는 우스운 에피소드도 있을 만큼. 어려서부터 광적으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열광의 도가니를 느끼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이 책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광적으로 책을 읽는지 알 수 있다. 주석에 달린 작가를 보니 그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마치 비평가처럼, 유명한 작가의 비판도 개의치 않는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 다음 단계는 쓰는 것이며, 읽지 않고는 ‘쓰는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광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그것을 업으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을 보면 무한한 존경심이 든다. 세상에 책은 차고 넘치며 골라서 읽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열광의 도가니를 아직 느껴보지 못한 다수는 닥치는 대로 읽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위대한 그들과 ‘비교하는 심리’를 반복하면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똬리를 틀지 못하도록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책읽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고 책 속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들과 한 몸이 될 것이므로. 나는 자유를 찾기 위하여 ‘책읽기’를 멈추지 않고, 또한 ‘열광의 도가니’를 느낄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이 책은 프랑스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화제의 베스트셀러이며, 장지오노 그랑프리(Grand Prix Jean Giono) 수상작,《르 푸엥》지(紙) ‘2010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책을 좋아하거나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사유고자 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줄 것이라 믿는다.

 

 

h*****7 2016.12.31. 신고 공감 3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독서는 우리를 구출해 줄 구세주
"독서는 우리를 구출해 줄 구세주" 내용보기
올 봄에 있었던 부서 워크숍에서 “책은 왜 읽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왜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등에 관한 저의 경험을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3094946). 발표를 준비할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저의 독서경험 중심으로 진행하다보니 깊이가 없고 너무 제 자랑만 늘어놓은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기회가 생겼을 때 더
"독서는 우리를 구출해 줄 구세주" 내용보기

올 봄에 있었던 부서 워크숍에서 “책은 왜 읽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왜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등에 관한 저의 경험을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3094946). 발표를 준비할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저의 독서경험 중심으로 진행하다보니 깊이가 없고 너무 제 자랑만 늘어놓은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기회가 생겼을 때 더 나은 발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독서에 관한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있기도 합니다.

 

프랑스 작가 샤를 린치의 <왜 책을 읽는가>를 읽게 된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은, ‘독서는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위험한 능력이다’, ‘독서는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다’, 등등의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독서는 □□다”라는 질문에 대하여 다양한 답을 내놓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독서를 정의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책은 독자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증오의 거품을 무는 천박한 독서’ 등과 같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독서에 관하여 전방위적 정의를 내리고 있기도 합니다. “책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책 자체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독자를 위해 만든 책은 독자를 소비자로 간주하고 무언가 의도를 품는다. (…) 문제는 책이 도구로 전락하면서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30쪽)”라는 구절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만들어진다’가 아니라 ‘만들어져야 한다’로 적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작가보다 순수하지 못하다는 작가의 일갈에 뜨끔했습니다. 작가가 지적한대로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편견을 굳히려는 생각에서 하는 이기적 독서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혐오스러운 독서에 대한 씁쓸한 추억도 있다는 저자의 지적도 틀림없이 맞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년기에 광적으로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필경 작가가 될 운명이다. 만일 그 꿈이 실현되지 dskgdkT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위대한 독자가 작가의 꿈을 접은 것이다.(217쪽)‘라고 적은 구절에서는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광적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책을 가까이 했던 것,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던 버릇이 지금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별로 느끼지 않게 만든 것 같습니다. 언젠가 글쓰기교실에서 만난 김용택시인님께서 많은 독서와 글쓰기가 시인에 이르게 만들더라면서 재능보다는 후천적 노력이 작가가 되는 길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14013).

 

옮긴이께서는 “저자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독서는 그 어느 것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가 위대한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독서가 우리를 구출해줄 구세주’가 될 자격을 갖추었는지도 모른다.(263쪽)”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책읽기는 역시 위대한 노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널리즘과 문학 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글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9.11사건 당시 저널리즘이 보여준 행보가 커다란 불행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라는 논지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입니다. 테러소식에 즐거워하는 팔레스타인사람들의 모습이나 불길을 피해서 창밖으로 뛰어내리거나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방송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 작가답게 마르셀 프루스트를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는 점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화자의 할머니가 세비네 부인과 도스토엡스키의 닮은 점을 밝혀낸 점이라거나, 노르푸아를 통해서 ‘빅토리아-니안자 호수의 서안에서 무한성과 관련된 작품’에 관한 말을 했다는 점은 라비슈의 영향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등등입니다.

 

또 한 가지, 작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자신의 법대 시절을 회고하면서, “법대는 내게 최고의 학과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었으므로.”라고 했다는 말을 읽고, 오르한 파묵이 <소설과 소설가; http://blog.yes24.com/document/6830644>에서 차별화 의식을 설명하면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랑스럽게 꺼내들어 읽었다는 이스탄블 공과대학의 신입생 이야기를 예로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을 때는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y*****2 2013.06.1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책,책
"책,책,책" 내용보기
시니컬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에 대한 지침서나 책에 대한 소개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솔직한 독서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통쾌했다. 흔히,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나 교양서, 나아가 철학서에까지 저자의 다소 충격적인 발언은 그동안 내게 작품이나 작가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경외감이 결국은 독자가 있음으로써 그러한 맘이 가능하다는 역설로
"책,책,책" 내용보기

시니컬하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책에 대한 지침서나 책에 대한 소개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저자의 솔직한

독서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통쾌했다.

흔히,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나 교양서, 나아가 철학서에까지 저자의 다소 충격적인 발언은 그동안 내게 작품이나 작가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경외감이 결국은 독자가 있음으로써 그러한 맘이 가능하다는 역설로 읽혀져서 속시원하기도 했다.

 

독서를 하게 되는 이유가 각자 다르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저자는 독서를 통해 조언을 얻으려고 하지말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탄생과 소멸하는 사이를 지탱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얘기인가, 지금까지 독서는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독서를 통해 사고의 깊이를 이어갈 수 있고 등등 너무나 원론적인 얘기들로 독서의 당위성을 알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쓴 이 책을 통해서 색다른 사고를 하게 되었다.

특히, 독서는 교양인 이라는 등식이 일반적이라 생각해 오던 내게, 저자는 '독서를 한다고 교양인이 되지는 않는다.' 라고 일깨워준다. 독서에 열중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한다고 보며, 그러한 형태는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사회적으로 큰 해악을 끼치지 않으면서 진행된다고 한다. 존 레논에게 총격을 가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체포당시 [호밀밭에 파수꾼] 을 읽고 있었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독서에 대한 폭력성을 빗대기도 한 부분에선 지금까지 독서는 해악보다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킨 것에 약간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독서는 나를 고립시키는 행위임과 동시에 그러한 독서에 대한 열중이 한 개인의 오만함을 진지한 생각앞에 머리를 낮추게 만든다고 겸손함을 표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샤를 단치가 대단한 독서광이며 애서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기라도 한 듯, 이 책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책 박물관을 떠올릴 만큼 방대한 책들과 저자가 언급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고전을 찾기 위해선 많이 읽고 실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일러준다. 그러한 실패의 경험을 통해 독자는 또다른 책으로 손을 뻗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가 명작이라고 생각되는 책을 고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정도로 해석되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실패의 반복으로 독서에 대한 게으름, 소심함, 겸손함이라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도 경고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많은 실패를 통해 비로소 좋은 고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경험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듯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매번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독서에 대한 좌절과 스스로의 밝지 못한 안목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다른 책으로의 욕망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경험은 아무곳에서나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느낌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름 독서를 한다고 알려져서 가끔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참으로 난감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어떤 종류의 책을 추천해 줘야 볼멘 소리를 듣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지 걱정도 되고, 제대로 추천해 주지 못해서 받게 될지도 모를  "지금까지 그렇게 읽더니 겨우....." 라는 질타에 지레 겁먹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고민에 빠진 내게 아주 통쾌한 답변을 해 주었다.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은 독서량 탓에 취향이 몹시 까다로워져서 이따금씩 황당하거나 덜 알려진 명작을 권할 수도 있다. "(p144) 

이 귀절을 읽는 순간 내가 염려하던 추천에 대한 부분에 서광이 비치는 듯,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방대한 양의 독서는 절대로 아니니 그 부분에선 다소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래도 제발이지 뭐가 좋은지를 추천해달라고 하지 말기를 부탁하고 싶다. 내가 유익하게 읽었다고해서 상대도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기를......

 

독서광은 마치 마지막 잔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자처럼, 오늘도 어떠한 형태로든 책에 대한 끝없이 이어지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로까지 비유한 저자의 말처럼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내 독서에 대한 행보는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결국 작가와 독서는 한 팀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팀에 합류하기를 권해보는 작가의 손길을 나는 덥석 잡아본다.

 

 

m******9 2013.04.18.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왜 책을 읽는가》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왜 책을 읽는가》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내용보기
어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해 평균 연간 독서량은 10권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2011년 통계상으로 미국이 79권, 일본이 73권이라는 걸 보면 엄청난 차이이다. 물론, 1년 동안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은 성인도 10명 중에 3명이나 된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한 달에 달랑 한 권 읽기도 힘들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도 각각
"《왜 책을 읽는가》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내용보기

어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해 평균 연간 독서량은 10권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2011년 통계상으로 미국이 79, 일본이 73권이라는 걸 보면 엄청난 차이이다. 물론, 1년 동안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은 성인도 10명 중에 3명이나 된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한 달에 달랑 한 권 읽기도 힘들다',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도 각각의 사정과 일리가 있겠지만 말이다.

 

우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는 할 수는 없다. 자발적으로, 부지런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직장에선 평균 하루 9시간 근무를 한다. 물론 딱 그 시간만큼만 회사에 머무는게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리고 어쩌다 야근도 하게 될 것이고, 가끔은 휴일, 공휴일에도 회사에 출근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날 칼퇴근을 하더라도, 친구와 만나서 영화를 볼 수도, 쇼핑을 할 수도, 저녁을 먹으면서 술을 한 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어디 또 집에만 있게 되던가. 아닐 것이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든, 가족과 함께 보내든.. 무슨 약속이든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니 대체 책은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쉽지 않지만, 그만큼 달콤한 일이다. 마치 황홀했던 섹스처럼 사랑스런 추억을 남겨준다. 독자는 책과 함께 오르가슴에 빠진다.

 

그렇다면 이런 일반론 말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아니, 어떻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일까. 나의 일상도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빡빡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억지로' 이 스케줄 속에 끼워 넣어서 만들었다. 출근시간은 9시지만, 나는 다른 팀원들에 비해서 보통 한시간반에서 두 시간정도 일찍 출근한다. 새벽 7시 정도에 텅빈 회사에서 조용히 업무하고, 책 읽는 시간이 나름 달콤하다. 게다가 집이 회사에서 너무 가까운 편이라 지하철 이동시간 중에 책 읽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먼저 업무 시작하고, 최소한 아침에 한시간은 책을 읽는데 사용한다. 점심 시간도 식사 후 최소 이삼십분 정도는 틈을 내고, 저녁에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늦게 들어가더라도 한시간정도는 꼭 책을 읽어야 침대로 간다. 주말에도 항상 영화관이니, 야구장이니 외부에 있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한달에 한두번은 회사에 출근도 해야하고, 격주 일요일마다 별도로 배우는 것이 있어 수업도 듣고 있다.

 

왜 이렇게 무리하게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책을 많이 읽어서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욕심?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투자? 혹은 책 속에서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 더 똑똑해지기 위해서? 모두 아니다. 이유는 사실 매우 소박하고 단순하다. 책을 읽는 것이 나를 '즐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서 읽기가 힘든 법이다. 매일 매일 활자와 만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는다. '나는 책만 펴면 졸음이 와'. '책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 이런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책과 궁합이 맞지 않은 사람이 정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아직 찾지 못했거나, 즐겁게 독서하는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독서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등장인물을 사랑하고, 이어서 작가를 사랑하게 되며, 결국엔 문학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독자는 어딘가에 있을 공주님 혹은 왕자님을 찾아 끝없이 헤매온사람들이다. 처음 책과 사랑에 빠지던 날 느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만 그 신선한 기운!

......아직도 사랑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말괄량이 소녀 같은 주부들은 식탁에 팔을 괴고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남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문학으로 그 아픔을 치유한다. 여전히 청춘의 상념에 머물러 있는 남자들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대신 종말론적 미래소설을 탐닉한다.

 

이 작품의 저자 샤를 단치는 프랑스 국내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뛰어난 작가이며, 이름난 애서가이자 독서광이다. 물론 우리는 숱한 애서가들의 다양한 책을 보아왔다. 독서, 글쓰기 등 방법론에 대한 책들 중에 내가 그동안 읽은 작품만 해도 수십 권은 족히 넘을 테니 말이다. 대부분은 책의 가치에 대해서, 독서의 방법에 대해서 알리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그 말은 즉,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도 다수이지만, 책을 읽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 하는 이들도 다수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작품과 달리 단순히 책에 대한 찬양 뿐 아니라 책과 독자에게 씌워진 환상을 철저히 걷어내려는 매우 도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부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지적 허영심'이나 책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나약함'을 꾸짖어준다고나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이미 환상이 깨진 일부 독자들은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겠지만,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면 오히려 저자의 엄청난 애정이 보인다고나 할까.

 

책을 통해 위로받기 위한 독서는 나쁘다><독서광은 악취미를 지닌 독한 미식가다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견해가 신선하고, 색다르게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잠을 자기 위해 읽고 쓰는 재미를 포기해야 한다면 억울하다며, 어쩌면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조차 여전히 책장을 넘길거라고 단언하는 그의 책에 대한 애정이 살짝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삶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다고 해서 나의 연봉이 올라간다거나, 나한테 금전적 보상이 뒤따른다거나, 내가 더 좋은 배우자 혹은 연인을 만나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일상에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로부터 해방시켜주거나, 우울한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런데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직장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저금을 하고, 무엇인가를 먹는 것 모두 결국 행복해지려고 하는 행동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독서라는 행동이 일상화된다면, 당신은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재미있고, 기분좋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인간이 한평생 읽을 수 잆는 책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서점에 갈때마다, 혹은 인터넷 서점을 둘러볼 때마다 천문학적인 수요의 책들 중에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아무리 부지런히 읽어도 무심코 지나치고 마는 책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마음이 아프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재미있고, 감동스럽고, 스릴 넘치는 책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면 가끔은 심란하기조차 하다. 그러니, 매일매일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나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든다.

 

, 이제 시작할 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당신은 왜 책을 읽습니까? 혹은 왜 책을 읽지 않습니까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읽지 않고에 따라서 남아있는 인생 수십 년동안 당신의 행복 수치가 달라질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3.05.24. 신고 공감 3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