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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동양고전 리라이팅 분야의 인문학 스타가 바로 윤재근 선생이다. 당시 이 분이 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와 같은 친근한 제목의 장자 우화 시리즈를 안 읽어본 청년은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윤재근 선생의 신작 <주역을 읽기 위한 통어 500>(나들목, 2013)을 읽는다. 책제목이 너무 밋밋한 느낌이 든다. <계사전> 번역에 앞서 낸 예비 작품으로, 주역을 정식으로 읽기 위한 입문편으로 주역에 자주 사용되는 통어(通語) 500개를 뽑아내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저자는 주역이 "IT 세상의 으뜸가는 교서"라고 주장한다. 주역이 말하는 변화와 혁신의 길, 융합과 융통의 길을 이렇게 정리한다.
"주역은 오로지 스스로 사물을 살펴보라(自觀物) 하고, 스스로 살핀 것을 가지고 스스로 새겨보라 하고(自玩物), 스스로 새겨본 것을 가지고 스스로 헤아려 보라(自擬物) 하고, 스스로 헤아린 것을 가지고 스스로 따져 보라((自議物) 하고, 스스로 따져 본 것을 가지고 스스로 가늠하라(自斷物) 한다. "(21쪽)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매우 불만스런 사전이다. 윤재근 선생의 인문학적 수준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잡서다.
첫째, 통어 해석에 사용되는 고정 멘트의 중복이 지나치다. 가령 "그래서 ○○○은 온갖 사물(事物)에 미치는 역(易)을 살피고(觀) 새겨(玩) 점(占)쳐 지변(知變)하여 지래(知來)하게 하는 통어(通語)가 된다."는 말이 500번이나 등장한다. 이 정도면 강박증이거나 무신경이다.
둘째, 굳이 이런 식의 한글이나 한문을 병치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쓸데없이 고집하는 바람에 국한문 혼용의 진정한 묘미를 망치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도 많은데 象과 辭, 志 등을 하필 '짓'과 '말씀', '마음 가기' 등 진부한 말로 풀어쓴 점도 구차하다. 또한 국한문 혼용을 넘어선 과도한 국한문 병치로 인해 한글과 한자의 혼용에서 오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망쳐버리고 글의 가독성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독자들이 국한문 혼용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찌 중용의 덕을 망실해 버렸는가.
셋째, 모든 사전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그 통어를 사용한 예문이나 출전이 나오지 않는다. 예문과 어원을 밝히지 않는 사전이 무슨 소용인가. 허접하다. 저자 스스로 회린(悔吝)의 의미를 돼새겨 보길 바란다.
넷째,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가령 주역의 키워드라 할 수 있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한 번 음이면 양이 되고, 한 번 양이면 음이 되는 그것을 역의 도라 한다"고 번역한다. 이런 식으로 풀이한다면 무극과 태극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건지대시(乾知大始), 곤작성물(坤作成物)'을 "건은 크나큰 시작을 차지하고, 곤은 이뤄진 것을 길러낸다"고 역하는데 이것도 매끄럽지 않은 풀이다.
다섯째, 황당한 허튼소리도 있다. 가령 "밤은 밤이고 낮은 낮이라는 생각은 역지도에 어긋나는 생각이다." 라는 단언이 그러하다. '지유명지고(知幽明之故)'를 설명하면서 나온 말인데, 이런 말은 마치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생각은 역의 도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통변의 이치를 무리하게 해석한 나머지 이런 허튼소리가 나온 것이다. 보통 주역에서 유(幽)의 의미장은 음(陰)·회(晦)·야(夜)·귀(鬼)와 통하고, 명(明)의 의미장은 양(陽)·광(光)·주(晝)·신(神)과 통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어법을 빌리면 가족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저자의 고정된 이분법에 대한 비판은 이해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라. 어느 동성애자가 주역을 얼치기로 읽고 난 후에 '남녀'라는 이분법적인 성정체성을 소리높여 비판하면서,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다라는 생각은 역지도에 어긋나는 생각이다'라고 한다면 이는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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