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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책은 티티새였다. 소설 속처럼 더웠던 여름날 밤 나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느낌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음악같아서 정말 바다내음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 바나나의 소설에 매료되어 키친, 암리타, N.P, 하드보일드 하드럭 등을 차례로 읽기 시작했다. N.P를 읽을 무렵부터는 이미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씩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얼마전 그녀의 신작이 나왔음을 신문을 통해 알게되어 한 번 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주문했다. 우선 핑크색 표지가 너무 예뻐서 더욱 들뜬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3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으로 3편 모두 사랑하는 사람(친구 혹은 애인..)을 잃고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하드보일드 하드럭, 달빛 그림자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책이었다. 조금은 지겹기까지 한...소설은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들이 상처를 치유받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워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바나나의 소설 중에 암리타를 참 좋아하는데 주인공의 성격이 나와 비슷한 점도 한 몫 했겠지만 100% 소설속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비현실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팬의 한사람으로 그녀가 조금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한 번 나에게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상깊은구절] 언제부터 잠에 몸을 맡기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저항을 포기했을까...... 늘 발랄하게 깨어 있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때가 너무 멀어서 태곳적 같기만 하다.(10p) 우리 둘 사이에는 늘 외로움이 있고, 그것을 소중하게 지켜내듯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다. 아직은.(36p) 나는 늘 새근새근 잠을 잤다. 불을 끄고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하는 생각은 지나치게 감미롭고 쓸쓸해서, 싫었다. 외로움을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순식간에 잠에 빠졌다.(4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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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가 있다. 역시 제대로 얘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생각을 전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내 언어는 산산이 부서져 고개를 푹 숙이고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것만 같다. 그럴 것을 아니까 말하지 않는다(하얀 강 밤배, 14쪽). 그 무렵의 그녀는 그냥 있기만 해도 화사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중략) 그런데 지금, 그저 차분하다는 인상 밖에 없는 까닭은 잃어버린 마스카라와 립스틱 때문도 아니고, 스물다섯이란 나이 탓만도 아닌 것 같다(94). 아마도 마리에는 바깥 세상에 대한 모든 반응을 정지시키고, 쉬고 있는 것이리라. 인생이 오직 괴롭기만 해서(94). “사람이란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끝이 없는 것 같아. 같이 있다 보니까 나까지 좀 이상해지더라고. 뭐, 사정이 복잡한 것 같으니까 어쩔 수는 없지만. (후략)” (밤과 밤의 나그네, 122) 그녀는, 그냥 지쳤어, 라고 말했다.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33).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불행하다면 자주, 이런 때를 맞닥뜨리게 되는 듯 하다. 그냥 지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이유를 알지만 원인을 모르듯이 끝도 없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을 때. 설명할 수 없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더욱 힘겹게만 느껴질 때. 죽는 건 좀 그렇구… 곰이 동면하듯 잠을 자면 좋겠어. 그냥 아무 불빛도 들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데에서 먹지도 않고 잠만 자면 좋겠어. 이런 거… 이해할 수 있어? 응. 알 것 같아. 그냥… 기운이 하나도 없어. 의욕도 없고. 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잠도 안 와. 그나마 낮엔 뭐라도 하고 사람도 만나니 집중할 게 있어서 덜 한데 불이 꺼지고 나면 이런 저런 감정들이 침입해 와. 그러면 나는 나를 감당할 수 없어. 컨트롤이 안 돼. 그래. 알 것 같아. 소리 없이 일어난 선배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연다. 너 에어컨 싫어하잖아. 매연이니 황사니 하긴 창 열어 놓으면 뽀얗게 내려 앉는 먼지 때문에 청소를 해야하지만 그래도 자연 바람이 좋으니깐. 응. 좀 누울래? 소파에 눕던가, 아니면 돋자리 깔아줄테니 거실에 누워. 못 잔지 오래 됐지? 응.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게 이 선배 같은 작가다. 맘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찾게 된다. 올해만 해도 찾아 읽은 이 작가의 작품이 여러 편이다. 최근엔 <불륜과 남미>와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세 작품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에 몽유병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같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느 때처럼 높지도 낮지도 않게, 조용 조용히, 가만 가만히, 풀어낸다. 일견 객관적이서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특별히 드러나는 격렬한 감정이 없어서 더욱 애닯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고,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창을 열어준다. “못 잔지 오래됐지? 마음이 많이 힘들지? 좀 쉬어.” 나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나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이 없어 오히려 더 고맙고 편하다. 그녀는 그저 “좀 쉬어.”라고 말한다. 담담하게. 가만 가만히. 그런데 묘하게 위로가 된다. 몸 안에 고였던 물들이 조금씩 밖으로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고맙다. 예를 들면 이 책에 실린 ‘하얀 강 밤배’에 나오는 시오리 같다. 내게 있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시오리랑 있으면, 뭐라고 표현은 잘 못하겠지만, 인생의 무게가 벅찰 때도 그게 절반이 돼. 마음이 편해져, 딱히 뭘 어떻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마음 터놓고 지내면서도 들러붙지는 않아. 서로에게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좋고. 여자 친구, 참 좋은 거더라고. 당신이 있고, 시오리가 있고, 그 무렵에는 정말 고민이 많았지만, 다 어린애 장난 같은 거였어. 지금 생각하면 축제 같았다는 느낌이야. 매일 울고 웃고. 그래, 시오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어, 사람 얘기를 들을 때는 응,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입가에 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어. 그리고 보조개도(12-13). 그냥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말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말을 하면 할수록 본질에서 멀어질 거라 생각했던 일들 말이다. 그러니깐…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어지곤 했다. 나쁜 일, 거짓말한 일, 앞으로의 일, 피곤한 일, 참을 수 없는 일, 어두운 밤의 일, 불안한 일, 아무튼 다(22). 그러다 보면 한동안 찾아오지 않던 잠이란 녀석이 신기하게도 찾아오는 거다. 그렇게 자다 깨도 그 사람은 잠도 안 자고 내 옆을 지키고 있다. “(전략) 절대 옆에 자는 사람을 외롭게 하면 안 돼.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물론 인맥을 통해서 오지만, 다들 신분이 버젓한 사람들이야. 아주 복잡한 형태로 상처를 입은, 지친 사람들이야. 자신이 지쳐 잇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지친 사람들. 그래서 다들 한결같이 한밤중에 눈을 떠. 그런 때, 희미한 불빛 속에서 내가 생긋 웃어주는 거, 그게 핵심이야. 그러고는 얼음물을 한 잔 건네주는 거야. 커피를 줄 때도 있어, 부엌에 가서 정성스럽게 끓여서. 그럼 대부분 안심하고 다시 잠들어. 편안하게. 사람이란 다들 누가 옆에서 그냥 자주기를 바라는 존재인가 봐. (중략) 어쩌면 지친 사람들 옆에서 자면서, 잠든 사람의 숨결에 내 숨결을 맞추면서 그 사람의 마음속 어둠을 빨아들이는 건지도 모르겠어. (후략)” (26-27) 나이가 들면 고통에 무뎌질 것 같지만, 오히려 통증에 점점더 예민해져가는 듯하다. 실컷 울고라도 싶은데, 엉엉 소리내어 울고라도 싶은데, 그럴 만한 장소도 못 찾겠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나같은 사람은 소리 내어 우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울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건 핑계일 뿐, 사막 한 가운데서도 어쩌면 소리내서 울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요시모토 바나나는 조용조용히, 가만가만히 이야기한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고맙다. 통곡하지 않아도 마음 속 가득한 눈물들을 달래줘서. 하지만 이젠 더 이상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찾을 일이 안 생기면 좋겠다. 더 이상 불면의 밤도 찾아오질 않고 곰의 동면같은 깊은 잠을 바라는 일도 생기질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평범하게 ‘보통’의 삶을 구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서 자신 안의 어둠과 마주했더니, 깊은 곳에서 너덜너덜하도록 상처 입고 지쳐버렸더니, 불현듯 강함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76). 깊은 침잠 끝에 다시 강해져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길. 살다 보면 때로는 의식이 스스로에게 단단히 자물쇠를 채우고 깊은 심연으로 침잠하는 일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쳤을 때나, 감당하기 어려운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의식은 삶의 에너지마저 고갈시키는 외부로부터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여 산산이 부서질 위기를 비켜 갑니다. 의식이 활동을 멈춘 사람에게는 시간 역시 그 흐름을 멈추고 고여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이 긴 겨울잠을 자면서 모진 겨울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혹독한 겨울, 언 강물 아래로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가 있어 강의 생명이 유지되듯,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의식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 뒤얽힌 감정의 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고 그것들을 소생의 에너지로 차곡차곡 쌓아, 언젠가는 빛의 수면으로 사람을 떠올려줍니다. 그리고 고여 있던 시간에도 건강한 일상의 흐름을 되찾아줍니다(옮긴이의 말,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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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이쁘장한 표지를 달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얀 강 밤배>. 1989년에 쓰여졌지만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된 것은 2005년이다. 그러니 매우 오래전에 쓰여진, 하지만 이곳에서는 얼마 나이를 먹지 않은 갓난 아기인 셈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 중 이 책은 가장 안팔렸다.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럭> <하치의 마지막 연인> <티티새> <도마뱀> 심지어는 가장 나중에 나온 <불륜과 남미>의 판매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팔리지만.
외면 받은 작품 치고는 참 느낌이 괜찮았다. 그녀의 모든 소설들은 가볍게 말하자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에, 거기서 거기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환경에 처한 등장인물들에 비슷비슷한 줄거리, 그리고 비슷비슷한 글의 구조와 느낌,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 중 어느 하나만을 집어 골라 봤다면 그만 봐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가는 것은, 내가 그녀의 소설을 모조리 읽어버릴테다, 라고 말한 것과는 별도로, 그 감성에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픈 구석을 바늘로 콕콕 찔러 괜찮다 싶으면 또 두 눈 젖게 만들고, 방 한 구석에 벽 보고 앉아 흑흑 울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며 토닥여주는, 병 주고 약 주는 소설들. 하지만 앓던 병 나 자신 조차 모른 척 하며 살기보다 아파도 한번 더 찔러주고 건드려주며 마음 속 딱딱한 응어리 쪼개어주는 그 아픔이 싫지 않다. 한번 와락 눈물 쏟고 나면 상쾌해진단다. 다 털어놓아보렴. 울어도 괜찮아. 그것이 그녀의 소설에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일게다. 그런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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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는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에 하나이다. 그야말로 일본 풍의 달달한 소설을 쓰는 요시모토 바나나는 예민하고 감성적일 수 밖에 없는 젊은 층-청소년계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작을 낼 때마다 엄청난 판매고를 이룩하고 있을 뿐더러, 일본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유럽에 이르는 세계적인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중견 작가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바나나'의 소설에서 무엇인가를 얻어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바나나의 소설은 그야말로 표지를 보는 시간 조차 아까운 시간이 되어버린다. 바나나의 소설에 존재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다. 그리고 독자가 할 일은 그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다. 그 감정을 소모하며 독자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감성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나나가 쏟아내는 감정들의 홍수가 독자 안에 파고들어오며 기존에 있던 감성을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바나나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날카롭거나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달달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렇게 바나나의 소설은 부드럽게 우리의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충만하게 한다. 개인마다 이런 감정의 접근을 받아들이는 데는 차이가 존재한다. 책이라는 존재의 목적성을 정보전달이나 메세징으로 보는 이들에게 있어서 바나나의 소설이 좋아보일리가 없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일말의 공허함을 가진 이들이 바나나의 소설에 압도적으로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다 시피 바나나의 작품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뚜렷한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물론 작품을 지탱하는 서사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서사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누가 누구를 만났고, 그것으로 인해서 감성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것이 작품을 특정지을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나의 작품을 지탱하는 것은 단순히 감성에 불과하고, 이것은 손에 잡을 수 없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바나나의 작품은 공허하다. 그러나 이런 바나나의 작품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은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공허함을 조용히 다가와서 메꿔주는 바나나의 매력을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예전처럼 바나나의 작품에 열광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느 정도 내 자신이 열정을 쏟아 부을 다른 분야를 찾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감성에 휘둘리며 살았던 청소년기를 이제야 조금 벗어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바나나의 소설은 내가 겪어야 했던 성장통에 바른 연고처럼 항상 옆에 있어 주었던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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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작가는 유독 죽음의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과 관련된 글을 많이 쓰시는 것 같다. 이번 이 책도 세편의 단편
하얀 강 밤배 밤과 밤의 나그네 어떤 체험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편의 내용 모두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되어 이야기하고 있다.
한때 잠깐이지만 같이 살기도 했던 마음이 맞았던 친구의 자살. 어릴때 부터 좋아해왔지만 엇갈리다가 다시 시작되었던 사랑이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친구. 한 남자를 두고 삼각관계였던 여자들. 그런 사이로 지내다가 한쪽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정말 싫었던 그 여자의 죽음이 한쪽여자에게 준 아린 죽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란.. 남은 사람은 떠안고 살아야 할 그런 슬픔이 아닐까.. 바나나 작가는 이번에도 그런 남겨진 사람의 죽음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그래. 라는 기분이 들도록 잘 적으신 듯 하다.. 나에겐 충분히... 전달되었으니.
책이 좀 더 두꺼웠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만약 지금 누가,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보장해 준다면 나는 안도감에 그 사람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리라. 그러나 행여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랑이 지나가고 마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처럼 마냥 잠만 자고 싶으니 그의 전화벨 소리 따위 알아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나를 혼자 내버려 둬주었으면 좋겠다. (p.11)
그와는 같이 있기만 해도 외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왠지 슬프고, 파란 밤으로 한없이 꺼져 들어가면서 멀리서 빛나는 달을 그리워하듯, 손톱까지 파랗게 물이 들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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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화가 났을 때, 슬플 때..
각기 자기만의 방법으로 도피처를 찾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듣는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른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배가 터질때까지 무언가를 먹는다거나 등의 방법으로...
나는 잠을 택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상태에 다다르면 몸이 잠을 원한다.
밑도 끝도 없이 잠만 자고 싶어지는..
그렇게 자고 나면 한결 기분이 후련해져 있는 것을 느낀다.
[하얀 강 밤배]의 그녀들도 그렇다.
현실의 도피처로,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또 과거의 누군가를 만나는 방법으로 잠을 택한다.
그리고 그 잠과 결별하는 순간
그들은 새로워진 현실, 혹은 자아를 만나게 된다.
잠이라는 것은 굉장한 치유력이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마력도 있다.
피곤할 때 잠을 자고 일어나면 체력이 회복되는 반면
수면 시간이 늘어날수록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깊은 수렁같은 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잠의 어떠한 면을 찾아내느냐는 스스로의 몫이다.
사람들은 매일 잠을 잔다.
하지만 잠들기 전, 그 이유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이 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잠자기 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잠이 나에게 주는 여러가지 이익이나 불이익
또는 잠을 통해 얻는 무언가 아님 잃어버리는 무언가를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내 안에서 알게 모르게 활기찬 기분이 되살아난 듯 하다. 그것이 친구를 잃고, 일상에 지친 내 마음이 체험한 자잘한 파도, 조그만 소생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역시 사람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혼자서 자신 안의 어둠과 마주했더니, 깊은 곳에서 너덜너덜하도록 상처 입고 지쳐버렸더니, 불현듯 강함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
| 장마가 왔다. 나에겐 잠이 왔다. 빗소리는 잠을 재촉하는 것 같다. 나는 본 2-3때부터, 잠을 너무 많이 자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특히, 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자고 싶어한다. 이럴 때, 쏟아지는 잠은 견딜 수가 없다. 요시모토의 다른 책들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지만, 첫번째 잠에 대한 작가의 견해 때문에 나는 공감하고 금방 읽어버리고 말았다. 세 가지 이야기는 한 사람의 죽음과 살아남은 사람의 몫에 대해 얘기한다. 그 매개체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항상 쓰는 초능력( 잠을 이용한 영매라고 해야 하나... )이다. 따라서,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요번 책을 읽으면서, 바나나가 너무나 일본적이라고 느껴졌다. 올 겨울에 일본에 가 보니, 너무나 미신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일본 사람들도 삶에 많이 지쳤다는 점이다. 바나나의 결론은 작은 상실 , 큰 상실,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에너지가 좋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따스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습한 장마의 날씨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줄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 확실히 말하자면 저는 배드 엔딩을 싫어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조금 헷갈렸던 것이 대체 배드 엔딩이야........ 아니야..... 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아니다'로 내렸습니다. 덕분에 이 책이 저의 베스트에 들어오게 된 것이죠.^^;;; 책 소개에는 키친 이후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라던데, 제가 보기에는 전반적 분위기로는 N.P가 한 수위, 잔잔하기로는 티티새, 그리고 신비롭기로는 달빛 그림자(키친 뒤에 실려있던 단편)가 한 수위입니다.(N.P의 경우, 제 친구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작품이나..... 저는 또 반대로 굉장히 편애하는 작품이지요. 덕분에 공정성에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가장'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모자라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이전작인 암리타나 하드보일드 하드럭, 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가 제겐 별로였기 때문에 새삼 바나나는 멋지다~라고 일깨워준 작품이기도 했고요. 책의 테마는 '잠'. 그 나른함이 책 전반에 깔려있는 것 같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저 달콤한 나른함이라기보다는 약간은 괴로운 나른함이라고나 할까요? 각각의 인물들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을 통해서 도피를 하고, 결국 문제를 해결한다......(이런 내용이었던가??? 본인도 써놓고 헷갈리네요.;;;) 와 비슷한 내용입니다.(결국 타협. 하지만 짧은 몇 줄로 내용과 분위기를 전달하기란 무리라구요.) 참고로 말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첫번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었어요. 계속 잠들려고 하는 여자의 이야기. 쉽게 공감이 가지는 않은데 어쩐지 흡입력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한 가장 큰 이유는 뭔가 이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긴 한데......... 제가 아주 피곤하고 지쳐있었을 때 잠결에 이대로 죽어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너무나 지치고, 지쳐서.......... 계속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 그리고 잠에서 깨고 나서 살아있음에 안도하곤 했습니다. 무의식 중에 저는 회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깨고 나면 뭔가 아직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잠을 자면서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했다는 듯한 느낌이죠. 멀쩡한 의식에서 회복하기란 무리라고 판단해서 무의식이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작용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게는 간만에 만난 멋진 책이었습니다. 만약 이 책이 멋지게 보이질 않는다면, 제 글솜씨가 모자란 탓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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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년이었을 때 난 소년의 미소를 가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그대신 잠을 잤다. 잠을 자는 동안,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육신의 껍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도케 했다. 시나브로 날 잠들게 하던 그 시절의 잠은 죽음을 닮아 있고 혹은 거세 당하기 전의 상상력을 닮아 있어 언제고 날 흥분시켰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번 소설집은 잠 혹은 밤 그리고 죽음의 연작이라고 봐도 좋겠다. 「하얀 강 밤배」. 잠과 삶... 비루하여 비속하고, 모든 체념이 엉킨 빨래마냥 여주인공인 나를 잠으로 잠으로 잡아 끈다. 주인공은 ‘전화벨 소리만으로 애인에게 걸려온 전화임을 직감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잘 수 있는 것’이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애인의 부인은 식물인간 상태다. “... 그들은 밤낮으로 인간의 생과 사를 얘기하고 서로를 지켜주고, 나는 말없이 저우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녀는 끝없는 잠을 잔다... ‘우리의 연애는 현실이 아니다.’... 그는 지치면 지칠수록 나를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만날 때는 시내에서 꿈의 그림자처럼 만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탓만은 아니다. 그의 지친 심신의 어둠을 감지한 나 자신이 그런 식의 처신을 즐기는 것이다...” 끝없는 잠을 자는 애인의 아내와 잠에 홀린 것처럼 생활하는 나... “잠은 솜처럼 나를 천천히 옭아매고, 나의 생기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잠은 나의 특기마저 빼앗아간다. 나는 이제 애인의 전화벨 소리임을 알면서도 잠에서 깨지 못한다. 그저 잘 뿐이다. 끝없는 잠을 자는 애인의 아내가 내린 저주가 아닐지 걱정이 되면서도 그저 잔다. 이런 나에게 생의 조그만, 혹은 특이한 불꽃놀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밤과 밤의 나그네」. 일년 전에 죽은 오빠 요시히로, 그리고 요시히로의 미국인 여자 친구였던 사라,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사촌언니인 마리에... “그때는 밤이 한결 빛나 보였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늘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이는 오빠의 어깨 너머로 멀고 아득한 경치가 보였다... 그것은 어쩌면 어린 마음으로 올려다본 미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 오빠는 절대 죽지 않을 무엇, 밤과 밤을 여행하는 무엇이었다.” 사라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던 오빠는 석연치 않은 이유들로 사라와 헤어져 일본으로 돌아왔고, 곧이어 사촌인 마리에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사라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고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 오빠는 그저 인상이 강한 한 청년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어없이 죽는 바람에, 죽기 전까지 마음껏 신나게 산 덕분에, 이상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삶은 밤과 밤 사이, 그 사이에 있는 설익은 여행 같은 것일런지도... (ps. 일본에선 사촌과의 결혼이 합법이다.) 「어떤 체험」. 하루와 나, 그리고 남자... 젊어 한 때 나는 하루라는 여자아이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쟁탈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는 이미 우리 둘 다, 다소는 삐딱한 남자, 세상을 조롱하며 독자적으로 사는 듯이 보이는 한심한 남자의 몸을 둘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있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남자의 방에 눌러 있는 것도, 그런 사람이 둘이라는 것도. 다만 나는 하루의 음습한 목소리와 신경질적으로 마른 몸에 짜증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남자와는 하루도 나도 헤어진 지 오래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난 술을 마시고 점점 더 많이 술을 마시고 그렇게 잠이 들고, 술에 취하고 잠에 취한 상태에서 ‘천사보다 관능적이고, 훨씬 더 진실한, 희미한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상하게 헤어진 남자가 아닌 그 남자를 사이에 둔 연적이었던 하루가 보고 싶다. 그 잠결의 노랫소리는 혹시 유명을 달리한 하루의 전언인 것은 아닐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무척 즐겁게 읽고는 했는데 어쩐지 이번엔 어색하다. 무엇이 날 변화시킨 것인지 곰곰... 왠지 스위트하지만 혁신되지 않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보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