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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부터 가지게 된 조건인 경우, 특히나 그것이 인력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만큼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홍종의 장편소설 '달려라 돌콩'의 주인공 오공일이 그러하다. 그는 키가 작다. 그의 나이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인데도 그의 키는 159cm에 불과하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작은 키는 곧잘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오공일 역시 마찬가지다. 소설 시작부터 그는 학교에서 내내 그를 괴롭히고 있던 무리에게 쫒기고 있다. 오공일은 사는 게 힘들다. 작아서 무시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왕따로 괴롭힘 역시 가득 받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 줄 이 또한 주위에 없다. 비오는 날 유기된 상처받은 작은 짐승. 오공일의 현재란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인생을 쫑낼 생각으로 남의 차를 훔쳐 달아나 버린다. 그렇게 해서 도착하게 된 배다른 형의 목장. 다 끝내려고 도착했던 그 곳에서 오히려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 계기를 맞이하리고는 오공일 역시 상상하지 못했다.
알고보면 우리의 절망이란 닫혀진 시야에서 온다. 그러니까 우리는 경마장의 말과 마찬가지다. 눈의 양 가장자리가 판막이로 가려져 오로지 한 곳만 보고 뛸 수 밖에 없는 경마장의 말처럼 우리 역시도 한 곳만 바라보고 살기에 절망 역시 쉽게 안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또 다른 가능성을 찾으면 그만인 것을. 쉽사리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려 하기 보다는 그냥 안게 된 절망을 장독안의 누룩처럼 묵히려 애쓴다. 그렇게 절망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처음에는 꿋꿋이 견디지만 곧 한계는 닥쳐오고 그러다 다음에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는 것으로 그만 바꾸고 만다. 그러다 한 순간, 마치 디오게네스가 목욕탕의 넘치는 물을 보고 유레카를 외치듯 '펑'하고 폭발해 버리는 것이다. '달려라 돌콩'의 오공일이 그러했듯이...
억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억지로 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크게 폭발하는 법이다. 우리의 절망이 그렇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위에서 내리누르는 돌이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납득하여 내부의 자발적 동기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외부의 가치관에 퍼즐 조각을 끼우듯 날 맞추기 위하여 억지로 스스로의 자아를 깎고 다듬으려는 동기로 억압하는 것이다. 모든 억지로 하는 것들이 다 그렇듯 그게 쉬울 리 없다. 저항이 없을 리 없다. 밑에서는 그로 인한 고통이 하얀 증기가 되어 쉴 새 없이 올라온다.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게. 내리누르는 것은 힘겨워지고 자주 아래로부터 솟구치는 충동과 억누를 수 없는 분노에 '자아'라는 뚜껑은 파르르 떨린다. 그러다 임계점이 다가오고 그만 '펑!'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맞지 않는 것은 영원히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퍼즐조가을 무리하게 힘을 가해 빈 구석에다 억지로 집어넣을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장자리의 비틀림은 남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결국 그 비틀림 때문에 언젠가는 훌러덩 떨어져 나오게 마련이다. 알고보면 우리의 절망이란 대부분 이런 것이 아닐까? 나에게 맞지 않는 곳임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참아가며 나를 다듬고 또 다듬어 겨우 거기에 맞췄는데 그 들인 노력의 보람도 없이 훌렁 떨어져 나와버렸을 때 느끼게 되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게 되는 그 기분, 울분. 그것이 바로 절망이란 게 아닐런지. 홍종의의 '달려라 돌콩'을 읽고 들게 된 생각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오공일과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보내는 홍종의 작가의 위안이다.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 보단 세상을 자신에다 맞추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라는 메세지가 담긴. 그렇게 오공일의 신체 역시도 그냥 일반인 입장에서는 스스로에게 하자로만 여겨졌을지 몰라도 말의 기수가 되려한 순간부터는 더없이 장점 많은 신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제목이 돌콩인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이 말 자체에 작가가 주려하는 위안과 용기가 다 담겨있다. 그러한 돌콩의 의미는 오공일처럼 과감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기성 교육을 박차고 나와버린 고아영이 낭송하는 시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목숨 걸고 무언가를 이렇게 잡아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 본 적이 있는가? (p. 108)
이게 바로 돌콩의 의미다. 세상의 가치에 자신을 맟추느라 비굴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긍정하고 신뢰하며 더없이 당당해지는 것. 나는 한 없이 강한 존재인데 스스로 약하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강함이란 어떤 환경이나 내가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오늘 내가 행하고 있는 그 자체로 증명되는 것이라는 것 또한. 예전에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는 이런 말을 했다. 정말 노력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때는 스스로 자신이 한 노력에 대해 감동을 받을 때 뿐이라고. 그러한 삶의 충실성이 바로 강함의 유일한 증명이며 또한 자신을 판단할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세상과 자신의 꿈을 바라보며 달려가라. 이것이 바로 '달려라 돌콩'에 담겨진 홍종의 작가의 마음이다.
정말 재밌게 읽었다. 소설 자체가 용감하기도 했다. 온전히 자신이 되기 위하여 청소년 소설로는 드물게 기성 교육으로 부터 과감히 벗어난다는 점도 좋았다. 혹시 이걸 보고 기성 교육 자체를 문제시 하는게 아닌가 하고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목적을 위한 표현이라기 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횡단하고 있는 세상의 가치 체계로 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설정으로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 보인다. 경마 기수들을 어떻게 양성하는지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해보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요즘 한국 사회에 있어서 행복의 기준은 점점 단일화되어가고 있다. 다른 가능성, 행복의 모습을 꿈꾸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대. 그것이 바로 한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잠재된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어른들의 단일화된 욕망에 차압당한 채 오늘도 내일도 푸르러야 할 청춘의 잎새들을 그저 퇴색한 낙엽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발표된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말해주듯이 지금 우리 사회의 청소년은 행복하지 않다. 해마다 자살하는 청소년 수도 늘어간다. 누가 죄없는 이들에게 이런 고통을 가하고 있는 것일까? 두 말할 것도 없이 남의 욕망에 이미 자신을 길들일 대로 길들여버린 어른들이다. 그런 어른들이 마치 자기만 당했다는 게 억울하다는 듯이 물귀신 작전이라도 펼치듯 아이들마저도 똑같은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지금 나는 왠지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이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같은 반의 친구가 아니라 바로 어른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너희들을 경마장의 말과 같이 오로지 결승점만 보고 뛰도록 만드는 존재인 어른들로 부터 자유로워지라고! 돌콩처럼 강하고 끈질기게 어른들이 주입하는 생각과 싸워 버텨서 온전한 자신이 되라고! 그렇게 사방의 모든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이 되어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자기 삶의 충실성을 가늠하며 달리라고!... 제발 그러라고... 그러면 나도 한국의 내일이라는 것을 한 번 믿어보겠다고... 정말로 간절히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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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59센티미터에 몸무게는 46킬로그램인 오공일은 정대와 아이들한테 쫓겼다. 작고 힘이 없어서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도망치던 공일이는 시동이 걸려있는 차를 보고는 그 차를 타고 스물여섯 살 많은 형 목장에 갔다. 공일이는 학교생활과 아이들과 얽혔던 먹이사슬을 끝장 내려했다. 정대와 아이들은 왜 공일이를 그렇게 괴롭혔을까. 그저 재미로 그랬을까. 공일이 엄마는 형이 결혼하고 47살에 다시 결혼해서 공일이를 낳았다. 형 아들 도민이는 공일이보다 두 살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인데 그것을 좋게 여긴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도민이는 자기보다 어린 삼촌을 모르는 척했다. 도민이는 일찌감치 축구 선수가 되어 대학 스카우트가 확정되어 있었다. 엄마 나이와는 상관없이 죽은 공일이 아버지가 남긴 빚과 작은 키 때문에 공일이가 그동안 주눅들어 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일이란 이름은 일요일에 태어나서였다. “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마라. 한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 있는가.” <내게로 다가온 꽃들>에서, 김민수 (108쪽) 돌콩은 소나 말이 좋아했다. 공일이한테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공일이와 아영이는 둘 다 기수 교육원에 붙었다. 그런데 공일이가 타 본 소 우공일이 구제역에 걸렸다. 다른 소들은 괜찮았는데 우공일만 그렇게 되었다. 한우 농장에서 키우는 소니까 언젠가는 사람한테 잡아먹힐 테지만, 병에 걸려 죽게 되다니. 공일이와 금주는 아주 슬퍼했다. 금주는 우공일 때문에 수의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시간은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했다 해도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잘못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공일이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뭐든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영이도 기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까. 축구 선수가 된 도민이도 헤매는 듯했다. 여기저기 다른 나라를 돌아다녔다. 돌아오고 나서는 조금 달라졌다. 이 책 속에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아이들이 나온다. 이 말을 쓰고 나니, 맨 처음에 써야 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바로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앞에 그렇게 썼는데.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저마다 가진 능력도 다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모든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하나 더,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에서는 잘난 사람만 보여준다. 키 크고 잘생긴 사람 말이다. 보통사람은 키 크고 아주 잘생기지 않았다. 여기 나온 공일이도 키가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런 공일이한테 딱 맞는 일이 있었다. 공일이가 기수에 관심을 가지고 하기도 했지만, 누구나 공일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길이다. 또 다른 길은 더 있지 않을까 싶다. 청소년이 그것을 찾을 수 있게 선생님과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저 공부만 하라고 할 게 아니고. 작다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 작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돌콩처럼 작아도 단단해져야 한다. 어쩐지 제목 때문에 쓴 말 같다. 희선 ☆― “나도 힘들어 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힘들어 죽는 것하고 그냥 죽는 것하고 다른 것 같더라. 그래서 기왕이면 힘들다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랬더니 살아지더라.” 장난치냐? 그만한 부모, 그만한 배경, 그만한 능력에……. 앞길을 고속도로로 뻥 뚫어놓고. “너 자신한테 냉정하게 물어봐라. 17년 동안 네가 한 일이 뭐냐고. 정말 어떤 일에 죽을 만큼 버르적거린 적 있었느냐고.”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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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돌콩줄기와 꽃-네이버 백과사전
책 속 등장인물인 고아영이 주인공 오공일에게 들려준 시다. 159cm의 키에 46kg의 몸무게를 가진 오공일은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의 폭력에 시달린다. 아이들의 폭력에 더이상 견디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한 오공일은 학교를 자퇴하고 형의 목장에서 일꾼으로 일한다. 어머니의 개가로 인해 맺어진 인연인 형은 오공일보다 26살이나 나이가 많다. 더군다나 형의 아들인 도민이조차 2살 많은 조카다. 형의 가족들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목장 생활을 해야 하는 오공일의 처지는 목장의 일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사 긍정적이고 발랄한 금주가 곁에 있어서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다. 청소년 소설은 칙칙하지 않아서 좋다. 다들 자신이 가진 무거운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그 상처를 처절하게 내보이며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허벅지를 자신이 만든 채찍으로 때리는 도민이조차 엉큼하거나 약삭빠르지 않다. 겉으로는 자신보다 어린 삼촌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어린 삼촌의 문제를 두고만 보지 않고 해결해주며 삼촌의 주춤거리는 성격을 고쳐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쓴다. 예쁘기도 하지만 성깔이 사납다는 이유로 근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고아영, 역시 내면의 상처를 스스로 내보이는 법이 없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수선화꽃을 키우는 것으로 이겨나간다. 어른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앞날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견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해지는 내용이었다.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문제의 아이들 앞에는 반드시 문제의 어른들이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현실이 만든 것이었다. 누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부모의 문제에 자식들이 개입할 여지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오공일과 고아영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기수교육원에 들어가고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졸업한다. 남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직업일지 몰라도 스스로 선택했기에 이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직업보다도 소중하다. 이런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 상담실이나 학교 밖 상담실을 기웃거릴 것이다. 이렇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그나마 낫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사회의 냉대에 자신을 내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다는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내어주어 세상과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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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소설입니다. 어딘가에서 같은 생각과 몸놀림으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환경과 여건을 선택하며 태어날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망상을 해봅니다. 하긴 요즈음은 시험관 베이비니 복제 인간이니 하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 시점이기도 하기에 태어나는 생명에겐 선택권이 없을지라도 이차적인 선택은 마련된다고 해야 할까요? 2. 이 책의 중심인물인 오공일. 이복형하고는 자그마치 나이가 26살이나 차이가 난다. 공일날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이 공일이다. 공일이를 낳았을 때 그의 엄마의 나이는 47세였다. 엄마가 재혼해서 낳은 자식이다. 늦동이들의 공통점은 체구의 왜소함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내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몇몇 기억이난다. 요즘에야 늦동이를 낳아도 더 잘 먹이고, 더 잘 키우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공일이는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다. 덩치가 적고, 환경이 불안정하니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 학교에선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린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날이 이어진다. 3.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주먹깨나 휘두르는 녀석들이 작정을 하고 공일이를 괴롭힌다. 죽기살기로 반격을 하고 도망치던 중 길가에 잠시 정차되어있던 다마스를 몰고 형의 목장으로 도망간다. 결국 고1. 학교를 자퇴한다. 이젠 무엇을 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디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중. 우연처럼, 아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기수가 되기로 한다. 형의 목장에서 말 안듣기로 정평이 나있던 소등에 올라타서 목장을 한 바퀴 돈 것도 그 계기라면 계기이다. 4. 우여곡절 끝에 기수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기수는 통상적인 체중과 키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밑돌수록 유리하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런 설정을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고맙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셈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장점으로 만드는 일 말이다. 5. 공일에겐 '돌콩'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소들이 즐겨 먹는다는 '돌콩'. 책에 인용된 김민수님의 '돌콩'이란 글이 참 좋다. "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가녀린 줄기지만 한 번 잡으면 끊어져도 꽉 잡고 있는 것, 작은 데 단단하게 익는 콩." 6. 어찌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랴. 이 땅, 이 시점을 살아가며 우리는 밤마다 좌절하고, 멍한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그들이 이 아이처럼, 공일이처럼, 돌콩처럼 단단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풀이 죽다 못해 삶에 지쳐서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싫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조차도 용기를 내어야하는 우리 이웃들이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돌콩처럼 날아 올랐으면 좋겠다. 지은이가 돌콩에 손에 쥐어준 채찍을 우리 모두 마음의 채찍으로 하나씩 분양 받았으면 좋겠다. 남을 해하는 채찍이 아닌,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선한 자극체가 있다면 보다 희망적인 내일이 마련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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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 달려라, 돌콩 중에서 108쪽 돌콩,,, 가녀린 줄기로 한 번 잡으면 끊어져도 꽉 잡고 있는,,, 목숨 걸고 잡아야하는 작지만 여문 돌콩은 주인공 공일의 모습 그대로다. 159cm 키에, 46kg, 18살 오공일, 일요일에 낳은 자식이라 반공일, 공일에서 따온 이름 공일은 마흔 일곱에 재혼한 엄마가 낳은 아들이다. 문제아들에게 시달리다가 싸움 끝에 도로에 세워져 있는 차를 끌고(훔친 차에 무면허로) 자신보다 28살 많은 씨 다른 형의 목장으로 도망쳐 온 공일,,, 이쯤 되면 덜컥 겁부터 나는 상황이 아니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싶은 마음에 무작정 도망쳐버리고, 숨고 싶은 마음부터 들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2살 아래인 조카 도민은 잘 나가는 축구선수로 대학에 스카웃 돼 탄탄대로를 걷고 있고, 공일과 나이는 같지만 농고 축산과를 다니며 야무지게 자신을 다져가는 금주, 기수의 꿈을 꾸고 있는 고아영,,, 아무에게나 등을 내주지 않았던 또 다른 친구인 작은 소 '우공일'까지,,,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돌콩 오공일의 절박함은 그의 미래, ‘기수’ 오공일로,,, 길로 안내해간다. 시큰한 느낌이 어금니에 느껴지면서 입 안 가득 비릿한 날콩 맛이 퍼지는 돌콩,,, <달려라, 돌콩>은 그런 비릿한 날콩 맛이 잔잔하게 느껴지는 청소년 소설이다. 외모면 외모, 학력이면 학력, 집안이면 집안,,, 뭐 어느 하나 받혀주는 것 없이 날 것 그대로의 공일에게 어느 순간 다가온 꿈이 자연스럽게 그의 모든 것이 돼 버리면서,,, 비릿한 그 날콩 맛 속 고소함을 가미한다. 그렇게 희망은 돌콩 인생에 한 자리를 차지하며, 므흣한 미소를 번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제주마 기수가 된 돌콩 우공일의 모습을, 자신이 지켜온 인생을 뒤로하고 훌쩍 떠난 도민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우직한 금주는 아마 농장주가 돼 있겠지?, 돌콩의 잠재력을 첫 눈에 알아본 아영의 눈빛은 여전히 돌콩을 향해있을까? 그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 역시 날 웃음 짓게 한다. 청소년기를 거쳐 온 우리, 그 때 그 시절 완벽함을 요구했던 부모님들이 야속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부모님의 나이가 된 우린, 어쩌면 그 때 그 부모님의 모습 그대로인지도 모르겠다. 풋풋하고 덜 익은, 그래서 비릿한 아이들의 성장 속에서 우리는 완숙을 요구하기보다는 미숙함을 인정하는 용기와 더 나아가려는 노력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작지만 여문 우리 아이들이 달릴 수 있도록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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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뉴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시대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최근 굉장히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것은 왕따 문제이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가슴 아픈 일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내가 학생일 때에도 분명히 왕따는 존재했다. 당시에는 물론 '왕따'라는 단어도 없었고, 뉴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조직적으로 괴롭히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방관자라는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도 가해자였을 것이고, 의도적이진 않았다 해도 때로는 집단의 힘을 뒤에 업은 직접적인 가해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유난히 괴롭힘을 많이 당하던 친구(나도 초등학생 시절 괴롭혔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를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를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그 친구를 보는 순간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랐다. 가서 정말로 미안했었다는 사과를 했어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도 들지만, 당시에는 무척 밝아진 그 친구에게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할까봐 애써 무시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것도 비겁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상처를 극복하고 무사히 성장(?)해 준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지나서 보면 가해자였던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삶을 살아왔지만, 피해자였던 친구들은 말도 못하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뉴스에서 나오는 아이들처럼 옳지 못한 선택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옳지 못한 선택이라고 말할 자격조차 내겐 없지만 말이다. <달려라 돌콩>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보아왔던 많은 '왕따'들이, 또 뉴스에 등장하는 슬픈 비극의 주인공들이 떠올랐다. 주인공인 오공일. 쉬는 날인 '공일'에 태어났다고 해서 대충 붙여진 이름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형제라고는 아버지가 다른 26세 위의 형이 전부이다. 작고 왜소하여 '왕따'의 대상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은 공일이가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자퇴하고 우연한 기회에 경주마를 모는 기수가 되는 성장기를 그려낸 책이다. '돌콩'은 공일이가 마음을 빼앗긴 '고아영'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또한, 아영이가 가장 아끼던 제주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도 목장 주인의 딸이었던 아영이는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재혼에 대한 반항으로 자퇴를 하고 기수가 되길 꿈꾼다. 두 사람은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돌콩은 작지만 단단하게 꽉 찬 콩이다. 공일이에게 딱 맞는 별명일 것이다. 그 별명에 걸맞은 체구는 기수라는 직업에 최적일 테고...... 책 속의 공일이는 우여곡절 끝에 기수라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지만, 책 속에서도 언뜻 비치듯 현실세계는 냉혹하다. 학력제한이 없다는 공고모집과는 달리 그곳에서조차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자퇴생들에 대한 은근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현실 세계는 더할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많은 부분에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고, 선택의 제한을 강요 받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 모든 직업이 꼭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때론 지식보다는 인성이 중요한 직업도 분명히 존재할 텐데 말이다. 학교라는 획일화 된 공간에서 가해자는 멀쩡히 학교를 다니고, 피해자가 자퇴를 하고 방황해야 하는 현실은 실재하고 있다. 가해자가 되려 큰 소리치는 주객전도 된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일이의 경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조차 사실은 우연에 가깝다고 봐야 하니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공일이를 밝은 세계로 이끌어 준 사람들이 옆에서 같이 함께 하고 독려해주어야 할 친구들이 아닌, 또 자식을 신경 쓰고 돌봐줘야 할 어머니가 아닌, 26살 차이나 나는 씨다른 형과 형의 축사에서 일하는 금주라는 여자 아이, 아영이라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책 속 아영이는 퀸카로 나오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라면 부잣집 딸에 예쁜 외모를 가지고 수많은 아이들의 스타인 아영이가 공일이 같은 왕따를 챙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씨다른 조카뻘 동생을 그렇게 세세하게 챙기는 형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일이의 성장기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과거 내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당했을 그 친구들에게 가진 깊은 미안함과 함께, 그래도 세상의 누군가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는 따뜻한 희망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하나, 형의 아들. 그러니까 공일에게는 조카뻘이 되는(공일과는 또래이다) '도민'이를 통해서도 현실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공일과 서로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공일의 사정을 들은 도민이가 그의 친구들을 통해 가해자들에게 보복 하는 상황에서 공일이가 극구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 세계라면 과연 말렸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는 작가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 힘을 힘으로 누르는 것.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어린 시절 싸움이라도 나면 두들겨 맞은 쪽이 친구들을 혹은 형들을 불러서 폭력으로 대응하고,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좋지 않은 형태로 발전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어떤 시점에선가는 누군가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 할 일이다. 아마도 책 속 공일이가 가해자 중 하나인 영태를 조금이나마 받아들이려는 그런 마음의 변화가 그 단초가 됨을 작가는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갈수록 서두에 말했던 왕따 문제로 인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의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이, 나아가 사회가 관심 있게 신경 써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자식에게 신경 쓰지 못했던 공일의 어머니는 힘든 현 시대에 생존을 위해 자식에게 무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부모님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듯 하다. 소설 속 공일이는 스스로가 상처를 극복하고(정확히는 아영이라는 존재의 영향이 크지만) 꿈을 이뤄냈지만, 작은 관심만으로도 자살과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고, 아이들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적절한 인성 교육을 해주는 것일 테고, 선생님의 역할은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들여다 보고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시켜주려는 노력일 것이다. 설령 학교라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퇴생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우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냉소의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속사정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배려의 마음일 게다. 사회의 꼭 학교라는 틀 안에서 정해진 교육을 받아야 아이들이 제대로 커나갈 수 있는 걸까?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이 다른 방법으로라도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이 시대의 많은 공일이들이 삶을 포기하는 일 없이 자신의 꿈을 찾아 커나갈 수 있는 밝은 사회를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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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니 이런 시원함이 따로 있을까 싶었다. 거침없이 내지르는 젊음에 대한 책들은 많지만, 읽고 나서도 개운하고, 뭔가 얻어진듯한 이 느낌이 이렇게 시원할 수 있는 재미난 책은 드물었다. 달려라 돌콩, 말 한마리 살짝 내달리는 그림이 있지만 이렇게 전개될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었는데..
공일(일요일)에 태어났다고 이름이 공일이가 되어버린 오공일. 이름도 참 변변찮은데, 키 159cm 몸무게 46kg의 왜소한 체구라 학교에서 짖궂은 아이들의 만만한 표적이 되어버렸다. 공일은 자기를 늘상 구타하고 괴롭히는 아이에게 화분을 던졌는데도, 정대라는 아이는 그걸 맞고도 희희낙낙하며, 오히려 잡히면 죽었다라는 표정으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잡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도망가던 공일은 세워져있던 다마스를 타고 도망을 간다. 운전해본적은 없는데, 택시 기사였던 아버지의 운전을 옆에서 눈썰미로 익혔던 터라, 여차저차 잘은 넘어갔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은 쳤으나 훔친 자동차가 문제였다.
오공이와 함께 헉헉대고 같이 도망을 친 나도, 오공이의 신세가 어찌 될지 염려스러웠다. 그리고 오공이의 드러나는 꼬인 족보. 아버지뻘 되는 형과 오공이보다 두살이나 많은 조카 도민이, 결국 오공이가 학교에서 도망쳐 갈 곳도 형의 축사밖에 없었고, 오공이가 훔친 다마스 건도 형의 도움으로 해결을 하였다. 오공이를 학교로 도로 돌려보내려는 것을 구해준 것은 동갑내기 여학생 금주였다. 금주는 축산과 출신으로 오공이보다 키도 크고 싹싹해 벌써부터 형의 축사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리고 오공이의 일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정말 엄마 못지않은 꼼꼼함이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갑갑해보인다. 불량 학우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학교까지 그만두고, 축사에서 지내기 시작하는데 무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다만 삼촌을 삼촌으로 대우하지 않고, 구박하던 도민이가 의외로 형처럼 나서서 공일이의 복수를 해주는데는 시원한모습이 엿보였다. 공일이와 달리 키도 엄청나게 크고, 이미 촉망받는 축구선수로 키워져 대학까지 결정된 도민이는 남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진로처럼 보이지만, 실상 알고 보면 도민이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였을뿐 아니라 지금의 그 일도 설렁설렁이 아닌 죽을만큼 버르적거리며 한거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아얏 소리도 못 내고, 쥐죽은듯 지내는 삼촌 공일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다. 자신이 너무나 아끼는 채찍을 선물로 주면서 말이다. 물론 곱게 준건 아니었지만.
공일. 참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일 수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것은 자신이 모르는 새에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곁에 두고 있었다. 채찍 하나로 경마 기수로 오해받는 공일은 경마 기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형의 목장에 있던, 금주가 우공일이라 놀렸던 그 볼품없던 소 한마리가 금주가 못 타본 딱 한마리의 소였는데 공일에게만 등을 내밀었었다. 그래서 공일이 몇번 그 소를 타보고, 승마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게 되었는데, 채찍으로 승마와 연관이 되니 아예 승마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핸디캡이라 여겼던 작은 키와 체중이 경마 기수에는 딱 적합한 신체 조건임을 알게 된다. 그가 고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조차도 문제가 되질 않는다.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공일에게 한가닥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본 것도 아는 것도 없는 공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도전을 하였다. 도민이 말한 것처럼 죽을 만큼 버르적거리며 최선을 다해본적이 없기에. 그리고 처음으로 정을 붙인 우공일을 생각하며 말이다.
얼굴은 예쁘지만 노는 아이로 소문이 나고, 패거리들이 많아 혼자 조용조용 다니던 공일과는 다르게 화려했던 고아영. 승마기수가 되기위해 교육원 시험을 보는데 고아영도 와서, 공일을 돌콩이라고 부른다. 어쩐지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는데, 아영이 읊어준 돌콩에 대한 시는 정말 의외였다. 그런 내용이라면 돌콩이라 불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뭐, 일다보니 은근히 삼각관계가 되는 구도처럼 그려진다. 얼굴 예쁘고 한 성깔 하지만, 은근히 매력있고, 같은 경마 기수가 되는 과정에서 공일과 계속 얽힐 수 밖에 없는 아영과 공일보다 키도 크고, 오히려 엄마나 형 같은 캐릭터지만, 늘 든든히 생각이 나고 뒤를 받쳐주는 것 같은 금주, 어쩐지 기대고 싶은 금주의 캐릭터까지. 은연중에 아영도 금주를 신경쓰고, 금주도 아영을 신경 쓴다. 작가가 자신의 열일곱을 되돌아보며 쓴 글이라는데, 상쾌한 공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학우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듯한 이 구도가 환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떠랴, 여자인 내가 읽기에도 너무나 재미나던걸.
요즘엔 뭐든 무조건 큰 것을 지향한다. 일반인들이 모델처럼 키크고 예뻐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타고난 유전자를 어찌하란 말이냐. 하도 키큰 사람들이 득세하다보니, 아이들 키가 작은 엄마들은 성장 클리닉이니 뼈주사니 찾아가면서 아이 키를 크게 하려고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책 속 돌콩처럼 키가 작아도 야무지게 자기 일 찾아 나서는 이들 많고, 또 키 크다고 멋지기만 한게 아니라 싱거운 사람 얼마나 많은데. 키 작고 못나고 느리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돌콩 작가, 돌콩 주인공의 이야기. 정말 멋지다. 작가 경력 열일곱해가 되어, 잊고 싶었던 자신의 열일곱을 소설로 승화시켰다는 작가분의 이야기. 달려라 돌콩, 또래들에게도 시원함을 안겨주겠으나 어른들이 읽기에도 너무나 시원한 멋진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달려라 다마스, 달려라 돌콩, 달려라 오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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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즐기라고 안타까워하지도 말아라. 한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달팽이 목사 김민수 <돌콩>
이름부터 정말 특이하다.한번 들으면 잊지 않을 이름 '오공일' 왜 '공일'일까? 택시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그가 일요일에 낳았다고 해서 지은 이름 '공일' 쉬워도 너무 쉽고 의미가 없다. 그런 오공일은 태생부터 정말 특별나다.아니 기막히다.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공일이보다 나이가 스물여섯이나 많은 형이 있다. 그 형이 장가를 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재혼을 했다.그것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와. 그 사이에서 오공일이 태어났는데 엄마의 나이가 또한 많을 때라 어린시절 그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 남이 보기엔 할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와 살았지만 그 아버지는 전봇대를 꽉 껴안고 죽고 말았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형의 아들인 그에겐 조카가 공일이보다 두살이나 위라는 것이다. 조카는 덩치도 크고 축구를 잘해서 선만의 대상이지만 공일이는 작고 왜소해서 친구들에게 늘 맞고 다닌다. 그날도 공일이는 친구들에게 쫓기도 있었다.
이제는 학교도 친구도 모든 것과 끝장을 내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친구들에게 쫓기다 그가 궁여지책으로 탈출구로 정한 것이 길가에 세워진 '다마스' 택시운전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17세지만 운전을 할 수 있다.그렇게 유유히 친구들을 뒤로 하고 분식집에 계란 배달을 하던 다마스를 끌고 무작정 간 곳이 형이 하는 '목장' 아니 내가 왜 여기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이 들던 찰나에 형의 목장에 가끔 와서 일하는 축산학과 '금주'를 만나게 된다.덩치가 남산만한 금주는 그가 차를 몰고오니 옆자리에 탔다가 도둑질을 한 것을 알고는 난리 난리,차를 어떻게 할까?절도죄가 성립이 되고 무면허운전이다. 그의 앞날은 캄캄하다.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런 공일이가 어쩔 수 없이 형의 선처로 목장에서 일을 하며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기수'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몸집이며 모든 것이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것,거기에 자신도 모르던 자신안에 소나 말을 타는 재주가 있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부딪히다보니 아버지가 또한 '말' 때문에 돌아가시게 되었고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형이나 엄마가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내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조카인 도민이가 그에게 자신의 채찍을 준것은 어쩌면 자신의 꿈을 응원하는,앞으로 자신의 꿈에 채찍질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는 공일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렇게 열절을 쏟았던 것이 없었던 만큼 정말 열심히 한다. 기수라는 것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고아영' 그녀의 제주마처럼 당차고 아픈 상처와 오공일의 꿈은 함께 초원 위에서 날개를 단 듯이 비상을 꿈 꾼다.
"네 자신한테 냉정하게 물어봐라. 17년 동안 네가 한 일이 뭐냐고.정말 어떤 일에 죽을 만큼 버르적거린 적 있었느냐고."
채찍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단련하며 운동장을 날르듯 뛰던 도민이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꿈을 접었다.왜? 그 부분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그 길이 너무 힘들고 지쳤었나보다. 어느 날 갑자기 해외여행을 가고 그렇게 한바퀴 돌고는 얼굴에 '웃음과 여유'를 찾은 도민이를 보며 자신도 자신에게 맞는 옷처럼 다시 찾은 꿈인 '기수'라는 옷을 입고 더 많은 웃음과 또 다른 가능성을 찾는 오공일이 정말 대견하게 그려진다. 우리 청소년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자신의 꿈이 아닌 누군가의 강요에 의하여 '공부'를 하게 된다.성적주의 교육에서 그들의 꿈은 산산히 부서져 버리고 꽉 맞게 조여진 틀 속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며 답답한 시간을 보내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면 정말 불쌍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다. 공일이처럼 맘껏 초원위를 한번 달려보지 못하고 그 찬란한 청소년 시절을 갇힌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탈선은 어쩌면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현실이 아닌가 한다.
단단하고 작고 보잘것 없는 야생의 '돌콩' 하지만 동물들의 먹이로 안성맞춤이다. 그런 돌콩처럼 작고 왜소하여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거나 어느 곳에서 보잘것 없는 아이처럼 여겨졌던 '오공일'이 자신에게 딱 맞는 '기수'라는 꿈을 향해 점점 단단하게 여물어 가는 시간들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한때 '루저'라는 말이 아픔이던 때가 있었다. 장대처럼 키가 커야 ,다리가 길어야 하는 것처럼 외모주의사회에서 오공일이 같은 작고 못생겨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가족들에게도 가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라 모두가 찍어낸 마네킹처럼 똑같다면 세상은 정말 재미없을 것이다.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자신만이 특별하게 잘할 수 있는 능력은 꼭 있다. 숨 쉬는 그 날까지 꿈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자존감을 잃은 청소년들이여 돌콩과 함께 힘차게 초원 위를 비상하며 꿈을 이루어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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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조그만 감동에도 뭔가 울컥하는것을 자주 느낀다. 가끔 TV를 보면서도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한편으론 눈물이 나올것 같은 순간들이 자주 있다. 예전엔 그런적이 없이 덤덤하게 또는 무심하게 느껴지던것들이 이제는 마음에 와 닿는것 같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도 여성 호르몬의 증가로 여성스러워 진다는데 그런것일까? 이거 병이 아닌지 조금은 고민된다. 홍종의 작가의 돌콩....제목부터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별명으로 부르기에는 딱이다. 특히나 돌콩은 작은 콩이라 어릴적 누구나 한번을 불렸을 만한 친숙한 이름같기도 한데 별로 들어본적은 없는것 같다. 돌미나리는 많이 들어봤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대어 추운 겨울에 미나리를 키우고 봄이 되면 수확하는 과정을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어 생각이 난다. 이는 거친 환경에서 자라남을 의미하는 이름인것 같다. 동화작가로 활동하다 청소년 문학으로 발전시킨 작가이기에 동화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가 많다. 인용한 돌콩이라는 제목의 시는 어느 시인의 연탄과도 일맥 상통하는 시인것 같아 가슴에 와닿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걸고 무언가를 잡아본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적이 있는가? 도서에 등장하는 돌콩에 관한 시로 다른 작가의 시를 인용하여 돌콩으로 불릴만한 오공일과 닮음을 의미하는 시이다. 요즘과 같이 청소년 문제들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참으로 시의 적절하게 등장한 청소년 문학 소설인것 같다. 키와 덩치가 작아 그들만의 사회에서 소외된 고등학교 중퇴생 오공일, 역시나 비슷한 덩치때문에 무리에서 소외되고 괴로워하는 우공일, 그들의 처음만남으로 친숙해진 사람과 동물간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을 통해 저자는 동물과의 소통 또한 진심과 사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러한 마음이야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러한 사랑을 바탕으로 친구가 되어주고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것을 고아영이라는 제주출신 농고생과의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고아영이라는 돌콩이라는 이름의 제주마를 사랑하는 기수 지망생을 통해 오공일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서로간의 출신과 가족관계에 있어 비슷한 상황이 이기에 어려울때 서로를 위로할 수 있고 격려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가족과의 많은 대화와 관심이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조금은 삶의 희망이며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기수들의 교육과 생활에 대해 조금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좋았고, 제주마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한편으로 오공일과 우공일과의 사랑은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이전에도 구제역으로 도살되는 소와 돼지에 관한 청소년 소설을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동물들에게도 어찌보면 우리보다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 생활하는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는데 소와 사람과의 관계는 그래도 예로부터 순하고 우리의 삶에 있어 큰 도움을 준 동물이기에 더욱 구제역으로 죽어가기 전 마지막 오공일과 우공일의 행복했던 순간이 마음에 남는다.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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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 가사가 있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받고 있지요. "
그런데, <달려라 돌콩>의 주인공인 오공일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일까? 엄마가 재혼하여 47살에 낳은 아들이건만,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공일'이라고 지어 주었다. 반공일, 공일 하는 공일, 토요일은 반공일, 일요일은 공일이라는 의미로 아무 생각없이 지어준 이름이다. 공일에게는 엄마가 재혼하기 전에 결혼한 형이 있고, 그 형은 공일이보다 2살이나 나이가 많은 도민이라는 아들을 두고 있다. 심상치 않은 가족관계인데, 공일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빚만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으니, 엄마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건물 청소를 비롯한 궂은 일을 한다. 공일이의 외모라도 번듯하면 좋겠는데,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까지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17살 고등학교 1학년생이다. 이야기는 공일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 중에서도 대장격인 정대에게 화분을 날리고, 주변에 주차된 다마스 차를 몰고 형의 목장으로 도망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공일이는 학교까지 자퇴를 하게 되니, 17살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17년간 동화작가로 활동하면서 서른 권이 넘는 동화책을 썼지만, 동화작가로서의 인생 17년이 되면서, 그 세월만큼의 나이가 든 17살의 청소년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작가 역시 작고 왜소한 체격 때문에 그의 열일곱 살은 작고 초라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공일를 어떤 모습으로 변신을 시킬 것인지 궁금해진다. 작고 왜소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공일이가 학교를 자퇴하고 형의 목장에서 일을 하는데, 그 목장에는 공일이를 꼭 닮은 소가 있다. 같은 날 태어난 소의 2/3 정도의 몸집을 가진 소인데, 성격은 어찌나 까칠한지 그 누구에게도 소의 등에 올라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소이다. 그래서 금주는 그 소를 오공일을 닮았다 해서 우공일이라고 부른다. 우공일은 그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등을 오공일에게만은 허락하는데.... 동물이라도 루저(?)는 루저를 알아 보는 것일까? 조카인 도민이 가지고 있는 채찍을 계기로 오공일은 말을 타는 기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기수가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기수 교육원에 지원을 하고, 1년 과정인 제주마 과정에 합격을 하게 된다. 우린 오공일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정환경이 불우하고 체격 조건도 좋지 않으며 학교에서는 폭력에 시달리다 자퇴를 할 수 밖에 없는 아이이지만, 그에게도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 일을 하게 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민수의 시에 나오는 돌콩처럼, " 가녀린 줄기지만 한 번 잡으며 끊어져도 꽉 잡고 있는 것. 작은 데 단단하게 익는 콩" 이 바로 오공일의 모습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아픈 것은 우공일이 구제역에 걸려서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공일이 주변에 있는 돌콩을 먹을 수 있게 가져다 주는 장면은 아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오공일을 닮은 우공일은 구제역으로 살처분이 되지만, 오공일은 자신의 상황을 기수라는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대비된다. 그것이 오공일의 앞날을 더 밝게 해주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소설이 거기에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 부적응자에 대한 이야기들 일색인데, 이 소설도 그런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기수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점이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각자의 그릇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