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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란 것은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손 움직이고 발 움직이고 울고 웃고 이웃 간에 대화하는 그 속에서 24시간 내 모습을 온전히 찾아가는 것, 그것이 생활선”
자신의 본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불교는 마음의 정체를 밝히며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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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너머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뭔가를 물어보시는 듯한 스님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근엄한 큰스님이 아니라 어린 손에 맛있는 무언가를 쥐어주시는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이다.
엄청 두꺼운 책인데 하루만에 다 읽었다. 나는 글 읽는거 정말 안좋아 하는데.. 그리고 중간중간 사진들이 있다. 흑백이라 좀 아쉽지만 스님의 표정, 그날의 분위기, 사진 찍을 때의 바람같은게 다 느껴질 정도로 정겹다. 글만큼 사진을 들여다 본 시간도 길었다.
사진마다 담겨있는 스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 듯 하다. 하얀 눈썹아래 빛나는 검은 눈동자. 수행하시는 분들은 다들 이렇게 눈이 참 빛난다. 그래서인가. 글에 담긴 스님의 말씀도 달빛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고요한 빛이 느껴진다. 좋은 말씀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내겐 이말씀이 참 재밌고도 먹먹하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누구나 이렇게 뭐라 딱히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산다. 다소 뒤죽박죽으로 살고 있던 내게,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신 스님의 일대기를 읽는 동안은 잠시 시간여행을 떠난것고 같았다. 내삶이 아닌 스님의 삶을 보면서 내 모습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그랬다.
그렇게 살다가신 스님께도 고맙고, 책을 써주신 분도 고맙고 그리고 이책을 내게 전해준 좋은 벗에게도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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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찬란한 해방후 대처승들을 몰아내고 청정비구중심의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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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절에 다니셨다. 자주 가시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초파일 등에는 빠지지 않고 꼭 다녀오셨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초파일등에 절에 갔었는데 그 때 가장 못마땅 했던 것이 부처님께 올릴 음식을 절 안에서 모두 파는데 그 값이 시중에서 파는 것에 비해 매우 비쌌던 점이다. 쌀이나 과일 등을 시세보다 몇 배 비싼 값으로 팔았고, 할머니께서는 아무런 말씀 없이 사셨다. 게다가 등을 하나 달려면 등 크기에 따른 정가가 있었는데 내 기준에 꽤 비쌌다. 그렇다 보니 할머니께서 절에 가는게 마땅치 않았다. 그 이유는 본인도 생활이 어려워 늘 돈에 찌들어 사시면서 왜 절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갖다 바치실까'해서 였다. 그리고 절에 사는 스님들은 돈 같은 건 필요가 없을텐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까'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절의 신도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주지스님의 아들 며느리가 아주 잘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뭘 잘하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스님이 아들 며느리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원래 중은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서다. 아들도 스님이었는데 그 아들도 결혼을 했다니,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절에 대해서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많은 스님들이 좋은 차를 타고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이 있으니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겠고, 그러면 결국 절은 하나의 사업도구에 불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왠지 실망스러웠다. 이 책을 보니 내가 왜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유를 좀 알게 됐다. 고등학생 때 티비 뉴스에서 스님들끼리 막 싸우고 하는 모습을 봤었는데 그 당시의 정황도 좀 알았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를 보니 그래도 서암 큰 스님 같은 분이 계셔서 참 다행이었고, 앞으로 희망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수행정진해야겠다는 반성이 됐다. 조금 하다 잘 안 된다 싶으면 금새 포기하고 좌절하고 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다. 스님은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셨다. "우리가 탐진지 삼독에 죽지 공부하다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공부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서약서를 쓰고 목숨을 걸고 공부해봅시다"라는 구절을 보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열망과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항상 정신 차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깨어 있으며 내 마음이 요동칠 때 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갖고 내 마음을 바라보자. 그리고 조금이라도 깨쳤다면 그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자. 머리속에만 있는 지식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깨달음의 경지를 어떻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생활을 깨친 속에서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