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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시기에 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찾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발견한다 하더라도 구성원 전체를 설득하여 더 나은 쪽으로 혁신을 유도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단지 사회 구성원 몇몇에 의한 너무나 미약한 목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삐걱거림, 혹은 사회 시스템의 붕괴와 같은 위기 상황이 아니고서는 사회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시정해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이 구성원 각자에게 발현된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까닭에 사회의 진보는 마냥 더딜 수밖에 없고, 성급한 사회 구성원에게 진보란 언제나 답답한 현실로만 비친다.
"국가의 경제적, 재정적 권력이 우리를 움직이긴 하지만, 국가의 지성은 그렇지 않다. 분노의 힘과 시민들의 운동 속에서 단순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나타나야 한다. 이 세계는 우리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결코 정부에 속하지 않았으며, 국가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금융권력에는 더더욱 속하지 않는다." (p.274)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충격은 각국 정부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전파되었던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한계를 노정하는 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금과옥조처럼 추구되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회의와 우리의 미래를 맡기기에는 그 제도가 얼마나 부실한가에 대한 실제적인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작금의 코로나 위기였다. 그런 측면에서 스테판 에셀의 자서전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2010년 그의 나이 92세에 발표한 32쪽 분량의 작은 책 <분노하라>가 세계인들에게 분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말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야 어찌 되든 오직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져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하다면 비록 그것이 범죄에 가까운 행위일지라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정치인들. 자신 입장은 쏙 뺀 채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국가 구성원 전체에게 유리하며 그것이 마치 정치적 선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인 양 선전하는 정치인들. 부를 향한 무한대의 욕망을 부추기고 '자유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무한대의 축재를 용인하는 정치인들. 예컨대 북한의 김정은이 최근 99% 사망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국민들 전체를 불안에 떨게 하고 국가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던 탈북 정치인과 그가 속한 정당의 정치인들은 김정은이 건재하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의 사과조차 없었다. 그를 뽑아준 지역구의 국민들도 우매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선적으로 그와 같은 자들을 공천한 정치인들의 잘못이 크다 하겠다. 결국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분노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용기가,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작금의 위기를 통해 배운다.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방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를 기다리고 잇는 어려움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며 우리에겐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너무 멀게만 보이는 가치들에 대한 열망이 우리 안에 들끓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가 불가능을 가능이라고 여긴다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고 충분한 힘이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p.167)
외교관으로서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현실 정치인이자 사상가였던 저자는 자본의 폭력에 맞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자고 호소했던 '낭만적인 레지스탕스'이기도 했다. 우리가 유럽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두 개의 지구가, 미국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의 지구에서 70억 명의 인구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스템 구축에 헌신할 것을 강조했던 스테판 에셀.
나를 바르게 지탱해주었던 첫 번째 힘은 우리 집안이 갖고 있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이었다. 내 부모님의 삶의 핵심이자 유익하며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던 것들의 영향이다. 내 부모님은 한 편으로는 그리스 신들을, 다른 한 편으로는 시를 내게 물려주었다.(중략) 내게 시는 하나의 '증거'였다. 내 경험에 의하면, 세상에는 우리를 활짝 피어나게 해주고, 우리가 맞서 싸우는 세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그로부터 초월하게 해주는 영역이 있다. 시가 바로 그 증거다. 그때 우리는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p.158)
'나에게 영혼이라는 것은 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그것은 전 인류의 눈이며, 눈물 흘리지 않고는 암송할 수 없는 시들이기도 하다.'라고 했던 스테판 에셀의 명언은 코로나 시대의 전 지구인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계명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하는 미국과 서구 유럽의 국가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희생자가 나왔던 것은 아마도 그들의 지도자 대부분이 '눈물 흘리지 않고는 암송할 수 없는 시'를 가슴에 품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길 수 있는, 영혼이 있는 지도자를 둔 덕분에 위기 상황에서도 오늘과 같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가짜 뉴스도 언제든 퍼뜨릴 수 있는 사이비 정치인을 배제하는 게 이 시대의 진보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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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생각하면 먼저 한없는 자유가 느껴진다. 멈출 수 없었던 그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끝내 홀로가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프랑스를 떠나 전 세계인들이 그리도 아름다운 추모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노 투사 스테판 에셀. 어쩌면 너무 쉽게 좌절하고 너무 맥없이 포기해버린 우리를 향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했다.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자!”고.
솔직히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분명 차원이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지난 정권 5년의 시간을 ‘속물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면 이제 시작되는 5년은 과연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짐승과도 같은 생존, 거기에 탐욕이라는 검은 털 가진 짐승만의 추함까지 더해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그 결과 태어난 것이 MB정권이었고, 또한 5년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아귀다툼으로 범벅이 된 5년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원하는 부를 얻었나? 그 잘난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 그리고 이제 다시 맞이한 시간들은 과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1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아쉽게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19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지난 시기에 이어 또 다시 고통과 눈물 속에 당장 눈앞의 시간을 버텨야 할 이들의 처절한 외침이 차디찬 바람 앞에 허망하고, 또 무참하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물조차 몰래 숨기고 그렇게 죽은 듯 살아가야 할까. 2013년 2월 27일, 95세의 나이로 타계한 스테판 에셀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이 책에서, 그는 진보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불꽃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침묵하고 있던,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양심을 깨우는 잠언들을 통해….
난 매우 겁이 많다. 애써 숨기고 싶지도 않다. 숨겨지지도 않고. 겉으로는 짐짓 강한 척 애쓰지만, 불의에 쉽게 주눅 들고 아파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난 결국 그런 한심한 놈에 불과하다.
때문에 스테판 에셀의 삶은 나에게 더욱 더 빛나고 또한 아름답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식과 정의가 짓밟히는 시대를 향해 ‘옳지 않다!’고 외쳤고, 프랑스뿐만이 아닌 전 세계인들에게 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날 것을 호소했다. 그의 호소가 담긴 작은 책자 하나가 소리 없이 세계를 강타했고, 어느 새 그의 호소처럼 ‘분노한’ 이들이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서, 외침에서, 작지 않은 혁명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옮긴이의 말처럼 체 게바라도, 마르크스도, 부르디외도 아니었다. ‘그저 행복에 대한 취향과 정의에 대한 각별한 신념을 가진, 콧구멍에서 늘 흥이 넘쳐나는 한 은퇴한 외교관’이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와 또한 지극히 정당한 분노에 매혹당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당한 분노에는 국경도, 인종도, 나이마저도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직접 보여줬다.
억장이 무너지고 마냥 쓰러지고만 싶은 시대다. 누구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이가 없고, 입을 가진 모든 이들은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하겠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다고 여기에서 한바탕 울어버리고 끝낼 순 없다. 나의 삶은, 우리의 삶은 그리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독서의 미덕은 스테판 에셀과 같은 스승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저 멀리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살아가던 그를 마치 내 이웃처럼, 이 땅의 한 가족처럼 느끼게 된 것도 온전히 활자의 힘일 것이다. 하지만 그깟 거리, 그깟 국적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세상을,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같은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적절한 감수성과 열정을 공유하고 있다면 말이다.
제1회 리영희상 수상자로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정이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비단 이 상이 언론인에게만 수상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가움과 고마움 속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감에 있어 왜 이리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하긴 이미 그들은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
책을 읽으며 그의 삶과 열정과 의지를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리고 짐짓 모른 척 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따르려 한다. “좋은 인생은 우리가 쌓아온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라는 말을.
언제 우리가 당연하게 승리한 적이 있었던가. 다시다.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이제 다시다.
“우리는 이 비열한 도살장에서 유일한 무기로 여겼던 민주주의가 승리하게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절망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믿음을 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