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나무도 꽃을 피우듯 마음은 늙지 않아요(老木開花心不老).” 정승 허조가 세 살 때부터 시를 지었다는 김시습을 찾아와서 “내가 늙었으니 늙을 노(老)자를 넣어 시를 지어보겠니?”했더니 저런 시를 지었다고 한다. 놀라울 따름이다. 나이들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어찌 어린 아이가 단숨에 생각해내 시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신동인 건가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은 관심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 대상이 어리면 어릴수록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재주를 가진 신동이 많이 있었고, 그런 신동에 관한 자료가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만의 학문세계라고 여겨왔던 인문학을 어린이들이 접하고 배웠다는 사실도... 인문학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면 어린이나 청소년이 인문학을 배우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은연중 내 안에도 아이들은 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니까. 오늘날 어른(갑자기 어른이란 말이 어색하다. 마음만은 어린 나)인 나의 인식이 이러한데 조선시대 어린이들이 인문학을 접했다는 건 어린이를 믿어주고, 대우해준 어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책을 보니 남아있는 기록 곳곳에 그런 흔적이 스며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덕무가 지은 <사소절> 세 번째 장에는 어린이를 다룬 「동규」가 실려 있는데, 어린이가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 관해 알려주고 있다. 그 중에 ‘어른 공경하기’가 눈에 띈다. 아이들을 훈계할 참인가? 어른이야 어떻게 행동하든지 아이들은 무조건 어른을 공경해야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장 선비, 여자 편을 읽어보면 어른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에 어른도 아이들도 자기 처지에서 할 도리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에 ‘어리니까’,‘어른이니까’라는 예외는 없었고.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이란 제목을 보고 만약 그 시대 어린이에 관한 기록이 있다면 주로 양반이거나 남자아이들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중인들의 삶을 소개한 <이향견문록>이 더욱 반가웠다. 한석봉이나 김정호, 김홍도, 열녀뿐 아니라 중인 어린이에 관한 기록이 3편이나 실려있다니... 어머니 시묘살이를 고집하다 겨우 열 세 살에 생을 마감한 김중진 어린이에 관한 기록은 오랜 여운이 남았다. 그 무엇이 그 아이를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까? 김중진은 유희경 선생님이 열세 살에 아버지 묘에서 시묘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것을 묵묵히 실천했고, 아버지가 말렸으나 결국 아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 시묘살이에 아들이 죽자 아버지는 유난히 명석했던 아들이 지어 둔 시를 모아 시집을 내게 되고 그것이 결국 <이향견문록>에 실리게 된 것이다. 후대에 남다른 효성과 어린시인으로 이름을 남긴 데는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조카가 울며불며 온 집안을 시끄럽게 만든 일이 있었다. 자기가 아끼는 그림이 없어졌는데 알고보니 엄마가 버렸다는 거다. 조카는 화가가 되고싶었는데 그 때부터 화가의 꿈을 접기로 했다며 지금도 종종 얘기한다. 조카는 아마도 자기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데 그림이 버려지면서 좌절감을 맛본 것 같다. 자기를 알아봐 주는 것, 남을 알아보는 것. 우리는 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성장시키는지도. 지금도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어린이가, 그리고 성숙해지고픈 어른들이 ‘인문학’을 탐구한다는 것은 얼마나 당연하고 매력적인 일인가~ |
|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다. 청소년 시기에 읽고 대학생 때 읽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한스는 그리 오래된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슷한 또래 때 만난 한스보다 지금만난 모습이 현재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 놀랍기까지 했다. 고전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시간을 넘어서 공감할 수 있고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딜 가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컸었다. 대학에서 일반 시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열리기도 했었다. 그런 왜 '인문학'일까? 딱히 어떤 학문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운데 인문학을 말이다. 하지만 강좌를 들어보고 책을 읽으며 은근한 된장같은 학문이 인문학이 아닐까싶다. 하나만으론 짜기만한 발효콩일 뿐이지만 국이며 찌개며 나물이며 된장이 들어가면 음식에 마술같은 맛을 만들어낸다. 인문학이 학문을 연마하며 된장같은 힘을 준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며 알게 된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일까, 누가 공부를 만들어 냈는지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번 씩은 해봤을 것이다. 특히나 정규 교육 과정에서조차 들락날락하는 한문은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글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보다 하나하나의 글자를 암기하기가 벅차서이고 굳이 한자가 없어도 자랑스런 한글이 있어 고개를 돌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우리 조상이 온통 한자 뿐인 소학이니 명심보감이니 하는 책들을 공부해야만 했으니 머리 꽤나 아팠을 듯 싶다. 뭐 딱히 공부가 되었을까 싶은 무식한 생각도 들지만.....
'조선 시대 어린이 인문학-조신 지식인이 그린 어린이 문화 지도'라는 책 제목을 보며 인문학이 우리에게도 있었던가 싶었다. 어린이라는 말조차 근대에 들어와서 방정환 선생에 의해 생기고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게 조선시대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문화라고 하지만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들의 문화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답은 그들이 학문의 시작으로 삼았던 책들 속에 있었다. 남자, 여자, 아이로서 기본적인 예절을 배우기 위한 이덕무의 '사소절'은 무엇보다 아이에게만 어떠허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스스로 수양과 배움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자식에게 똑바로 걷기를 강요하는 게가 아니라 말이다. 원시 시대부터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는 우스개 소리가 단지 우스갯말은 아니다.
저자는 소학을 통해 어린이에게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보고 자신의 일과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꿀 기회를 가져 보라고 제안하고 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을 때의 깨달음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을 통해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높고 먼 데 있으므로 실천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은 마땅히 해야한다고 하며 정작 자신은 미루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학문하는 어려움,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격몽요결'을 통해 배움의 근본이자 출발을 인간과 인간됨에 두고 일상생활을 통해 타인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익히는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스스로가 짠 인생 계획이 아니라 실패를 건너뛰며 늘 타인을 밟고 앞서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스케줄에 따라 '공부를 해주고 있어' 인간됨을 잃어가는 우리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현재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먼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실학과 성리학 학문의 방식은 변하지만 조상들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것은 인간다움과 삶에 대한 태도였다. 제나라 말도 변변히 하기 전에 알파벳 문자를 들이대고 학문을 익히는 기술을 통해 실패도 모르고 남보다 먼저 한 걸음이라도 먼저 가기를 바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인문학서는 어디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