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미국 문단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 ‘작가들이 칭송하는 완벽한 스타일리스트’로 정평이 난 작가 제임스 설터”인 줄도 모르고 표지 일러스트가 평화롭고 예뻐서 빌려 본 책이 “소설을 쓰고 싶다면“이었는데 단박에 매력이 느껴지는 산문집이었어요..거창하지도 않고 느끼하거나 지루하지도 않고 지적인 남성의 적당한 아우라같은게 보이는듯했거든요..막 고뇌를 쥐어짜면서 말을 꼬불꼬불하게 늘어 놓는 작가들도 있는데 그와 대비해서 좀 안심이 되는 인상이었고 소설에도 호기심이 일어 두어권 구매했는데 아직 읽진않았고 그래서 든든합니다..기대를 갖고 읽어낼수 있는 작가니까요..쓰지않으면 사라지는것들 이 책도 표지일러스트 참 센스있고 맘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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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은 2015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설터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피플〉 〈에스콰이어〉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 쓴 기사와 인터뷰, 산문 등을 한데 모은 그의 문학적 연대기이자 인생의 정수라고 할 기록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제임스 설터는 '나는 왜 쓰는가: 소설의 기술에 대한 생각'(1999년)이라는 제목의 대해서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좋은 소설은 가능성의 영억에 속해 있고, 작가는 글을 쓰며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작가 제임스 설터는 글쓰기란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내가 글을 쓰는 까닭은 어떤 대화로도, 또는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세상, 비록 위대한 소설들이 감행하는 시도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는 하지만, 어떤 소설도 완벽히 옮겨낼 수 없는 세상이 특정한 방식으로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단어에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 이 책에서 작가 제임스 설터가 다양한 작가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글들이 흥미롭다. 제임스 설터는 러시아 혁명의 작가 이사크 바벨에게 글쓰기는 고뇌였다고 이야기한다. 제임스 설터는 언제나 다시 돌아가서 읽게 되는 작가가 있으며, 그가 쓴 글은 절대로 힘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바벨은 그런 작가라고 전하는 제임스 설터의 글이 흥미롭다. "바벨에게 글쓰기란 고뇌였다. 그는 끝없이 쓰고 다시 썼고, 하루에 고작 4분의 1페이지를 쓰는 일도 잦았으며, 때로는 한밤중에 일어나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기도 했다. 그는 늘 적확한 단어 또는 표현,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의미심장하고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단어와 표현을 찾아 헤맸다. 바벨은 다른 무엇보다 구두점, 주로 마침표를 신봉했다. 그는 어떤 총칼도 올바른 지점에 정확히 찍힌 마침표만큼 사람의 심장을 깊숙이 관통하지는 못한다고 썼다. 그 힘은 더 이산 덧붙일 문장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문장이 없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제임스 설터는 진정한 작가는 모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제임스 설터는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세계는 죄를 짓고 분열된 사람들이 사는 가혹한 세계로, 이 세계는 오로지 신과 신의 자비를 통해서만 견딜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임스 설터는 작가 그레이엄 그린에게는 이야기에 대한 눈부신 감각, 멋진 대화를 쓰는 능력, 그리고 세부사항을 바라보는 관찰력이 있다고 말한다. "'여행자'라는 단어의 모든 의미에 부합하는 여행자이자 짓밟히고 배신당한 사람들의 계관 시인으로서, 그린은 현실도피적 소설을 격렬히 비난하면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진지한 문제들을 다뤄온 작가다. "삶은 폭력적이고, 예술은 그 폭력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한 깊은 지식과 결합된 따뜻한 인간적 필치야말로 그린이 그런 거대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서 삶의 정당성을 논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다란 믿음의 숨결을 느끼지만, 그 숨결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소진되지 않는 질서와 의미에 매어놓는다." 제임스 설터는 자신이 영화 각본을 쓰며 보냈던 삶에 관에 회상하며 영화와 함께 보냈던 세월의 경우에는 한때 즐거웠던, 참으로 기뻤던 것들을 돌이키게 해준다고 말한다. 제임스 설터는 영화 각본을 쓰는 시간 동안 자신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동시에 기쁨의 시간을 만났던 것이리라. "사람들에 대해 쓴다는 건 그들을 철두철미하게 파괴하고 이용해먹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경험에 대해서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한 세계를 묘사하는 동안 그 세계는 절멸되고 수많은 기억이 폐허로 돌아간다. 사물들과 사건들은 포획된 뒤 생명이 모두 빠져나가 다시는 반짝이거나 빛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 제임스 설터는 자신이 묘사할 수 없는, 아마 사람들도 각자 다른 관점과 시대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있을, 이른바 진정한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제임스 설터는 아스펜 주변의 산에서도 진정한 삶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임스 설터는 레나도를 지나가면 나타나는 원뿔형 천막에서 초원의 하얀 말, 그리고 자신의 작은 아이와 1년 내내 살았던 젊은 여성, 오두막이나 낡은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 결코 늙지 않을 뉴에이지 신봉자들, 그곳에는 진정한 삶이 있었다고 전한다. "어떤 면에서 그 삶은 여행이고, 어떤 관점에서는 여성이며, 또 어떤 견지에서는 죽을 때까지 경탄할 수 있을 경치를 끼고 있는 집일 것이다. 진정한 삶이란 돈과는 멀어진 삶, 야망을 옆으로 제쳐놓은 삶, 어떻게 해서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이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 삶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그렇게 산 탓에 가난해지는 경우는 보통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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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끌렸다.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다. 작가의 작가니 수식어는 넘쳐났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모토는 죽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는데..물론 남길것도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화가 온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오로지 기억이 나는 일들뿐이다” 아직은 이불킥할 일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기록하고 싶어진다. 내 인생의 중요했던 일들, 앞으로 중요할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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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는 2015년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제임스 설터의 아내가 그가 <파리 리뷰>,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에 실은 기사, 에세이, 인터뷰 글 등을 모아 엮은 것이다. 제임스 설터의 아내인 케이 엘드리지 설터는 책의 서문에서 “쌓아두면 안 돼”라는 제임스 설터의 말을 전하는데, 어쩌면 이것이 책의 원제인 “Don’t save anything”의 의역이 아닐까 싶다.
“... 바벨은 다른 무엇보다 구두점, 주로 마침표를 신봉했다. 그는 어떤 총칼도 올바른 지점에 찍힌 마침표만큼 사람의 심장을 깊숙이 관통하지는 못한다고 썼다. 그 힘은 더 이상 덧붙일 문장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는 뺄 문장이 없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p.40. <내러티브 매거진>, 2009년 봄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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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 책의 원제는 『Don't Save Anything: Uncollected Essays, Articles, and Profiles』이다. 제임스 설터는 생전에 자신의 글과 관련된 것들을 모아놓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가 죽은 후 아내는 그가 자신의 글과 관련해 평생 모아놓았던 글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글들을 모아 이 책이 나왔다. 기존에 선집의 형태로 묶여 출간된 적이 없는 에세이들과 아티클들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설터는 모순적 인간이거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일까? 꼭 그렇게 생각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게 삶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겠고, 인간이 원래 다면적인 속성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그의 글들이 엮여 나오는 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제목을 차용해서 말하자면 그게 모아놓지 않았다면 절대 독자들에게 닿지 못하고 사라졌을 글들이 덕분에 우리에게 와 닿은 셈이니, '쓴다'는 행위와 쓴 것들을 '모아놓는' 행위는 제임스 설터에겐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제임스 설터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웨스트포인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 비행 중대장까지 지냈다. 그의 첫 작품인 『사냥꾼들』은 이때의 경험, 특히 한국전쟁의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것이다. (참고로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첫 소설을 출간한 이후 전업 작가로 전향한다. 첫 소설이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제작을 팔린 데 잔뜩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출간된 소설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서문을 쓴 아내에 의하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수영장 판매원 등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피플』에서 인터뷰어로 일한 것도 생활고와 무관하지 않았던 걸로 보이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단의 호평을 받은 『가벼운 나날』이 출간된 게 1975년이다), 작가들과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있었던 것 같고, 홀대를 받은 적도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경험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 『가벼운 나날』의 영국 출판을 주선해 준 것이 그와 인터뷰했던 그레이엄 그린이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으나 아직 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을 인터뷰해야 했던 것이 꼭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기사들이 박스 안에서 몇십 년간 잠들어 있던 이유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 즈음 제임스 설터가 『에스콰이어』나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 실은 기사들이 가장 맘에 든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해서 주목할 글은 아무래도 책의 맨 처음과 맨 끝에 실린 글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맨 끝에 실린 글들은 (지나치게)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고, 맨 처음에 실린 글이 제임스 설터 스스로 자신에 대해 쓴 글이기도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글이라서 좋았다.
위대한 소설은 아마도 우연의 산물이겠지만 좋은 소설은 가능성의 영역에 속해 있고, 작가는 글을 쓰며 그 가능성을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 좋은 소설은 이룰 수 있는 목표다. 나머지는 책이 알아서 한다. 정말로 많은 찬사가 대단찮은 것들에 쏟아지니, 찬사를 받으려고 애써봤자 별 의미가 없다. 결국 글쓰기란 감옥, 절대 석방되지 않을 것이지만 어찌 보면 낙원인 섬과 같다. 고독, 사색, 이 순간 이해한 것과 온 마음으로 믿고 싶은 것의 정수를 단어에 담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섬. (p.29)
덧. 1. 제임스 설터가 군인에게 전업작가로 전향한 게 30대였다. 그때 그는 이미 두 딸의 아버지였다. 한동안 생활고에 시달렸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평생을 함께 했다. 서구라는 것, 그리고 예술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부부가 평생 백년해로했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무튼 아흔에 죽은 남편의 글들을 발견하고, 결정적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만든 건 그의 아내였다. 2. 가장 마지막에 실린 「말의 가치」라는 글은 1995년 우드로 윌슨 센터에서 했던 강연을 기록한 것이다. 제임스 설터는 여기서 미디어나 컴퓨터 통신의 언어를 비판하면서 문학의 언어와 문학이 가치에 대해 설파한다. 가령, 예전엔 작가들끼리 주고받은 편지들이나 작가와 편집자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들이 서한집의 형태로 책으로 묶어 나오기도 했는데, 이메일로 주고받은 송신 선집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자적으로 부딪힌 영혼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문득 든 생각인데,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들을 서한집의 형태로 출간한다면 어떤 작가가 좋을까? 어슐러 르 귄은 노년에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고 그곳에 올렸던 글들을 산문집으로 엮어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런 식의 책 출간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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