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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몸과 서양의 몸‘이라는 부제를 가진 ’몸의 노래‘... 이 책의 저자 구리야마 시게히사(栗山茂久)는 의학사학자이다. 침술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과학사 박사이기도 한 시게히사의 ’몸의 노래‘는 미국 의학사 협회가 수여하는 2001년 웰치 메달(William H. Welch Medal) 수상작이다. 이 책은 그리스와 중국에서 이루어져온 몸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밝혔다는 점에서 돋보인다.구체적으로 이 책이 다룬 이슈는 촉진(觸診)과 시선(視線) 등이다. 본문에 나오는 전덕배(錢德培)가 말했듯 서구 의학은 해부에 뛰어나고 중국 의학은 맥진(脈診)에 뛰어나다. 중국 진맥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는 자리의 중요성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양 의학의 경우 중국과 달리 오른손과 왼손에서 나타나는 속도, 빈도, 리듬 등의 특성들이 자리와 관련 없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맥은 특정 동맥이나 정맥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다. 저자는 사혈법(瀉血法)이 맥의 발견에 부분적으로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4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고대 서양의학의 박동은 심장에서 연유하는 하나의 이야기만 전할 뿐인데 한의학의 맥이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몸의 다양한 위치에서 재해석된 이야기들이었다.(해부학적으로 한의학의 맥은 혈관도 아니도 박동도 아니다.) 사실 맥은 그득한지(陽), 비었는지(虛), 조용한지(靜), 움직이는지(動), 매끄러운지(滑), 거친지(澁, 삽澁은 떫을 삽자이다. 난삽하다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등을 살펴야 할 만큼 신비적이고 난해한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 의사들이 박동을 확인하던 자리에서 중국 의사들은 맥상(脈象)을 조사했다고 말하며 그런 차이는 이론의 문제라기보다 경험의 문제였기에 그리스와 중국의 의사들은 몸을 아는 방식도 달랐다고 덧붙인다. 물론 몸을 아는 방식이 달랐기에 느끼는 것도 달랐다고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우열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맥박, 맥 등에 관한 영어 단어가 많다는 점이다. haptic(촉각의), sphygmiv(맥박에 관한), pulse(맥박, 심박) 등... 저자는 유럽인들이 냉정하고 합리적인 정확성을 중시했던 데 비해 중국인들은 환상적이고 시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표현 방식과 인식 방식의 관계의 차이에 집중한다. 저자는 맥파계나 심전도 측정기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맥진이 의심받았음을 지적한다. 즉 맥진에 대한 의심이 그런 기계의 발명을 재촉한 것이다. 선명함(언어)을 지향하는 고대의 열망이 누적되자 박동은 결국 단순한 박동수의 셈이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맥진은 몸을 아는 네 방법 중 가장 하위의 기술이라고. 즉 망진(望診)의 신술(神術), 문진(聞診)의 성술(聖術), 문진(問診)의 공술(工術), 그리고 절진(切診: 한의학에서 의사가 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서 병을 진단하는 일)의 교술(巧術)이 있다는 것이다. 현맥(弦脈: 가야금 줄을 누를 때와 같은 느낌을 주는 맥), 긴맥(緊脈: 뺑뺑하게 꼬인 줄을 누르는 듯한 맥), 부맥(浮脈: 살짝 짚기만 하여도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맥), 침맥(沈脈: 손끝으로 세게 눌러 보아야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맥) 등도 맥으로 파악할 수 있는 주요 사안들이다. 저자는 언어적 표현(과학적, 상징적, 비유적, 사실적)을 둘러싼 혼란과 차이를 말한다. 저자는 리듬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 저자에 의하면 리듬이라는 개념은 정신의 어떤 습성을 드러낸다.(앞서 맥에서 속도, 빈도, 리듬 등의 특성이 나타난다고 한 것을 기억하라.) 저자는 조형물과 음악과 의학의 리듬 사이의 일치를 이야기하며 인간은 그 변하지 않는 요소 속에서 변화의 의미를 찾으려는 고집 혹은 해석하고자 하는 반복적 시도를 눈치챈다고 말한다,(95 페이지) 앞서 현맥, 긴맥, 부맥, 침맥 등을 이야기했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미맥(微脈: 지극히 가늘고 부드러운 맥), 약맥(弱脈: 아주 부드럽고 가라앉아 있으면서 가는 맥), 세맥(細脈: 작지만 미맥보자는 크고 항상 흐르는 맥), 연맥(軟脈: 부드럽고 떠 있으면서 가는 맥) 등 과도 마주친다. 저자는 진맥은 맥을 촉진(觸診)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화타(華陀: 141 - 208)의 “기와 혈의 표현’이라는 말을 예시해 이 논의를 ‘논어’에까지 연결짓는다. 즉 혈기를 ‘덕을 향한 결심’에 대항하는 ‘날것 그대로인 잠재적 힘의 밀물과 썰물’로 생각한 ‘공자’를 예로 들며 ‘혈기의 변화’가 성욕에서 공격성으로의 변화, 그리고 탐욕으로의 변화를 지배했음을 언급한다.(103 페이지) 말하기와 듣기가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듣기와 만지기도 그렇다고 말하는 저자는 몸의 개념사가 대화의 개념사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109, 110 페이지) 2부 동서양의 시선에서 저자는 해부학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비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해부학이 이례적임을 지적하며 그렇다면 ”해부학은 그 특별한 권위를 어떻게 얻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의하면 해부학은 뚜렷한 충동 즉 특별한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122 페이지) 예언가들이 과거와 미래를 보고자 한 것과 달리 해부학자들은 몸을 그 자체로 보았다. 저자는 해부의 주된 동기가 치료였음을 부정하는 증거로 광범위한 수술 요법이 없었다는 점과 함께 해부학적 탐색이 사람이 아닌 동물에서 시작되었음을 지적하며 해부가 동물에서 시작된 이유가 종교적 터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말한다.(124 페이지) 이는 앞서 언급한 뚜렷한 충동 즉 특별한 욕망과 목적이란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목적론의 창조에 결정적인 유비(類比)를 제기한 것으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든다. 잘 알다시피 이 책에서 그려진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는 장인(匠人: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던 사람.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해부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각이라 부르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참된 지식은 변하지 않는 존재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128 페이지)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앞의 창조물에서 완전을 보았다. 해부학자는 목전에 보이는 불쾌한 신체 구성물 너머에 있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고 각 부분의 목적(telos)을 보고자 한다.(130 페이지) 종교적 규율이 사체 해부를 금지했을 때조차도 해부를 향한 충동은 일종의 영적 욕망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해부학이 근육의 존재를 강화한 것은 의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근육을 해부의 우연한 부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며 근육질 몸을 해부에 종속시키기보다 근육질 몸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해부학적 상상력에 관한 관점을 바꾸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자신이 촉진의 역사를 논하면서 사물에 대한 상상이 지각의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강조했음을 환기시키며 몸의 경우 그렇게 상상된 대상은 우리 자신이었고 봄의 방식에 관한 문제는 개인적 정체성이라는 논점과 결합되었다고 지적한다.(152 페이지) 저자는 근육과 맥진의 탄생에 관한 집착은 단일한 발전의 상반되는 측면을 나타낸다고 지적한다.(154 페이지) 저자는 중국의 의사들이 해부학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해서 시각을 경시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망진(望診)을 신술(神術)로 정의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저자는 시각의 헤게모니를 서구의 고유한 특성이라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에서도 ‘봄’이 특권적 위치에 있었다. 시각에 관한 중국 의학 전통의 특성을 생명이 없는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한 것에 있다고 보며 저자는 그러나 자신은 그들이 죽은 이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한다.(157 페이지) 그리스 해부학자들이 몸의 위계적 구조에 집중했다면 중국의 경우 위계적 서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리스가 뇌를 주도적 장기로 본 것과 달리 중국은 순환(5행)적 관점을 가졌다. “한의학의 관계는 다른 부분 뿐 아니라 다른 시점도 아우르는 관계이다. 해부로는 그런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164 페이지) 저자는 망진과 절진(진맥)은 뗄 수 없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그리스와 중국의 의사들이 모두 생명력을 혈과 기로 보았음을 지적하며 그것이 우리를 의문에 빠지게 한다고 덧붙인다. “생명이 혈기에 뿌리박고 있다는 공통된 생각이 어떻게 근육으로 드러나는 생명력(그리스의 경우)과 색(色)으로 드러나는 생명력(중국의 경우)이라는 견해와 결합되었을까?”(192 페이지) 특별히 새로울 것 없지만 저자는 색의 흥미로운 이중성에 대해 말한다. 망색(望色: 안색을 살핌)의 색 이외에도 아름다움이나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색이 그것이다. 물론 이 부분만 보면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생명이 혈과 기에 뿌리박고 있다는 공통된 생각이 하나는 근육으로 드러나는 생명력과 결합하고 다른 하나는 색(色)으로 드러나는 생명력과 결합하는가?‘란 질문 앞에 서면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은 성급한 것임을 알게 된다. 3부 존재의 스타일에서 저자는 사혈(瀉血)은 거의 사라졌다는 말을 건넨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고대 중국의 사혈 치료는 그리스와 거의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198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중국과 그리스의 치료법이 일치했다는 점이다. 동서양의 의사들은 등의 통증 치료를 위해 오금 부위를 사혈했다. 더구나 고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발목 안쪽을 사혈했던 것처럼 히포크라테스의 치료법 가운데는 침술과 유사한 것이 많다.(204 페이지) 이 사실로부터 저자는 두 가지 가능성을 언급한다. 하나는 침술이 사혈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유전적 친족성이 있을 가능성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서양인들이 침술의 경험적 토대에 동의하면서도 유럽에서 2천년간 꾸준히 시행되어온 사혈 요법을 묵살하는 것은 역설적이라 지적한다. 중국 신화에는 곡식을 먹지 않는(벽곡辟穀: 곡식은 먹지 않고 솔잎이나 대추, 밤 따위를 조금씩 날로 먹음, 辟: 피할 벽, 穀: 곡식 곡) 성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신화에는 가벼운 식사와 가뿐한 몸, 성인(聖人)이 되는 것 사이의 관계가 기술되어 있다. 중국 의사들은 어떤 종류의 지나침이든 모두 비난했지만 여분의 피가 몸을 무겁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실(實)은 잠재적 위험으로 인식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허실(虛實)은 인과관계로 묶인다. 허는 실의 필요한 전제를 규정한다. 이때 전쟁의 논리가 지배적이다. 실은 외부의 침입자들에 의해 점령당한 몸의 과도함이고, 허는 그런 침입을 초래한 내적 힘의 결핍이다. 실은 과도한 사기(邪氣)에 허는 내부 활력의 결핍에 상응한다.(219 페이지) 사혈은 과도함에만 집중하는 데 비해 침술은 양쪽의 편향을 바로잡는다.(개인적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뜸 역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뜸은 위산이 지나치면 줄이고 부족하면 늘린다.) 그리스와 중국의 의학은 같은 식으로 발전했다. 둘 다 몸의 상태를 강조했다. 질병의 씨앗, 깊은 상처와 멍, 폭풍, 추위가 모두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죽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이차적인 관심사였다. 사혈과 침술은 모두 사람들이 병이 드는 경향을 강조했다. 하지만 병인(病因)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221 페이지) 사혈가들이 부패를 위험시한 반면 중국인들은 흩어지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다. 중국인들은 갈레노스에게서 나타나는 서양의 일반적 인식과 달리 억눌린 정(精)은 걱정하지 않았다. 방중술(房中術)은 정을 보존하는 방식에 관한 중국의 비술(秘術)이다. 저자는 한때 생명에 대한 생각이 바람과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현재 우리가 그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장자(莊子)는 바람과 음악, 감정과 정체성의 상호관계를 가장 웅변적으로 요약한 사람이다. 장자는 바람이 구멍을 통해 나오면서 내는 화음을 지뢰(地籟)라 했다. 지뢰는 프네우마(pneuma: 생명 원리로서의 공기, 호흡, 정령)적 자아의 고요한 음악인 천뢰(天籟: 바람 소리나 빗소리와 같이 자연 현상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소리)의 메아리이다. 한의학에서 바람에 대한 인식은 그리스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한의사에게 바람은 멀리서 질병을 자극하고 몸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원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질병인 외부의 침입자였다.(248, 249 페이지) 한의학의 중심에는 긴장이 있다. 한의학은 소우주와 대우주 간의 대응을 찬미하면서도 몸의 독립을 주장한다.(255 페이지) 저자는 후기(後記)에서 의사들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몸의 표현을 통해 살아 있는 것들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만질 수 있는 진실을 찾고자 한다고 말한다.(26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그들은 드러나는 징후를 통해 그 비밀스러운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비밀스런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없다. ’몸의 노래‘는 여러 관련 책들을 찾아 읽게 하는 책이다. 물론 본령은 비밀스런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없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유연한 열린 시각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으로 절제와 조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덧붙여 이론보다 구체적 실천과 움직임에 주력해야 한다는, 전체적 의미에서의 큰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아울러 했다는 말도 해야 함은 물론이다. 박식한 저자에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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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어렵다. 엄청나고도 방대한 동서양의 문헌을 뒤져서 인용하고 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다소 모호한 표현들을 남발하고 있어서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기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저자의 질문 때문에 책에 대한 흥미를 쉬이 놓치 못한다. 이 책은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에 관심이 있고, 동서양의 몸을 바라보는 의학적 관점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다소 부풀려진 이상향으로 포장되어 있다. 서구의학에 대한 반발로 우리 전통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향한 열정은 좋은 것이나, 지나치게 미화하고 낭만적인 접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책은 동서양의 몸을 바라보는 의학사를 꿰뚫으면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 준다. 서구의 의학이 처음부터 기계론적인 의학은 아니었다는 것, 오히려 해부가 일반화 되기 이전에는 동양적인 접근과 상당히 유사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혼이나 신의 개념을 배제하면서 지금 현재의 서구의학이 탄생했다는 측면에서는 이런 기계론적인 바탕이 오히려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임을 알게 해준다. 동양의학에 대한 서술 역시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우리 전통의 것에 대한 환상을 깨고 있는 그대로의 민낯을 드러내 준다. 나는 이책을 통해 한의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신비적 기대를 넘어 설 수 있었으며 현실과 객관에 근거한 양생법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한의학은 결코 범인들은 깨달을 수 없는 신비적 능력이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핵심은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의 지혜를 가르쳐 줄 뿐이다. 이 책 가장 초반부에 소개하는 동서양의 촉진의 역사에서 동양의 맥진 방법을 소개하는데, 여러 문헌을 인용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 감동을 받았다. 이 부분을 통해 사실상 객관에 근거한 맥진의 올바르고 정확한 방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모두가 나름의 동양철학에 근거한 다양한 맥진법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어느 방법이 경험적으로 우월한지에 대해서도 통계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한의사들의 자신만의 경험으로 개별적으로 확립해 나가야 할 문제이지 어느 책에서도 배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맥진은 심장의 언어, 또는 몸이 말하는 바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심장이 표현하는 바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흔히 말하는 촌관척의 맥이라고 생각한다. 심장이 기쁜지,편한지,활기찬지,괴로운지, 뭔가에 막혀 헐떡거리고 있는지, 바쁜지, 부하가 걸리고 있는지.. 아주 다양하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이다. 심장은 곧 몸의 대표라 그것은 몸이 표헌하고 싶은 바, 언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맥을 통해 장부의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구별해 낸다는 것은 심한 과장이다. 그저 심장의 희노애락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책, 3,4장에 나오는 서양의 근육에 대한 관심과 상대적으로 거의 관심을 갖지 못한 동양의 관점 비교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만큼 크게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영역도 없으리라. 세상에 동양에서는 근육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니!! 그만큼 뭔가 의지적으로 활동하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 즉 기의 흩어짐은 경계를 하고, 기의 모음과 지킴을 상대적으로 얼마나 중시했는가, 즉 자신의 기를 지키는 양생에 주안점을 둔 동양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 5장에서는 피와 사혈을 다루는데, 서구에서 다혈증을 거의 모든 질병의 근원으로 보아 거의 모든 질병에 사혈로 치료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질병의 근원을 과도한 영양과 스트레스, 그리고 폭발적인 환경자극에 의한 염증으로 보는 견해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다혈증에 대한 인식이 꼭 황망한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몸에 나타나는 염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은 대체의학에서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염증에 대한 확대개념은 모든 질병에 적용될 수 있을 정도이고 이 염증의 치료가 모든 치료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에 대한 동서양 의학 견해를 소개하는데 상당히 어려우면서도 재밌다. 현대 의학에서 바람에 대한 의학적 주의는 완전히 사라졌고 한의학에서도 상당히 과거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외부의 바람, 사기에 대해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지켜내는가가 건강을 지키는데 생각보다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환절기의 바람, 그리고 대륙을 넘어서 오는 바람은 상당히 경계를 해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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