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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읽게 된 기사의 한 페이지-브레히트는 니체 식의 격렬한 문체를 포기했다.중요한 건 문체가 아니라 내용이라 봤다.그래서 문체는 극히 소박해진다.(...) 이런 대조를 통해 슐라퍼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주의다.(...)살펴봤듯 언어의 내용을 떠나 도취된 언어에 취약한 사회는 민주주의가 취약한 사회라 할 수밖에 없다./(펌) 한국일보.3.27 조태성기자 - 덕분(?)에 브레히트 작가가 궁금해졌다.부랴부랴 검색을 하고 나서는 순간 얼음! 올해 여름 연극 무대에 올려질 <코카시사의 백묵원>의 작가였다는 사실.그러나 더더 놀란건 이미 <서푼짜리 오페라>를 읽은 기억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그러나 줄거리 조차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지를 못하니 다시 읽어봐야겠다.어느 책부터 골라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푸치니의 오페라'투란도트'를 작가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각색한<투란도트>가 가장 궁금해서 읽게 되었고 망설임없이<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작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포리즘에 관한 책을 먼저 읽는 다는 것이 살짝 고민이 되어 미리보기로 먼저 만나보게 되었는데 소제목'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주문~^^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그런데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를 생각해 보면 그 자리를 쉽게 떠날수 있던가? 한 페이를 읽고 나면 다음 페이지로 잘 넘겨지지가 않는 거다.가슴으로 쿵 하고 내려 앉는 감동의 여운탓에 숨고르기가 종종 필요했다..."우리 엄마는 5월 1일에 죽었다. 한창 봄이 무르익던 때였다.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하늘은 맑았다(...) 엄마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엄마를 내 방식대로 사랑했다.하지만 엄마는 자기 방식대로 사랑받기를 원했다"/19쪽 처음 읽을때는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읽고 또 읽어가다가 알았다.아니 그런걸까? 라고 나의 상황을 대입해 보았다.이별의 경험을 갖고 있어서인지 몰라도..자기방식대로 사랑받기를..이란 말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순간 소름이 돋았으며 브레히트의 언어가 격렬하지 않다는 슐라퍼선생의 말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니체에 비해 언어가 격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용만큼은 결코 얌전하지 않다는 생각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크게 다가왔다."브레히트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투철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라고 말한 한나 아렌트의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이 간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책에 실린 아포리즘 글들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사랑,정치,예술,자본,삶의 지혜,혁명 주제로 실린 글들 모두 공감하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그럼에도 유독 정치편은 우리가 처한 복잡하고 기막힌 상황 탓인지는 몰라도 가장 격한 공감을 하게 만든 주제였다고 해야겠다."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유롭게 자신들의 부자유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부르주아지들의 오래된 속임수다.자신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식이다.악보를 읽는 법도 피아노를 치는 법도 배울수 없었던 사람에게 아무 건반이나 두드려보라는 선택의 자유를 주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76쪽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더 간절하게 읽고 또 읽어본 문장이었다.남들의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 자신들의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고 판단해서 투표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간절함이 절박함이 정치편을 읽는 내내 따라 오더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도 정치와 연결되어 생각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예술을 읽을 때는 또 예술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에 대해,삶의 지혜를 읽을 때는 정말 쿨하게 인생을 바라봐야 하는 관점을 간단명료하게 적어 놓았군나 싶었다.소개된 책들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었다면 읽는 재미가 조금은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읽는 내내 전혀 낯설지 않았으니 그런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오히려 소개된 책들 가운데 읽어 보고 싶은 책들이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저자의 수많은 책들 가운데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로 엮이게 된 이유 정도가 함께 설명이 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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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책읽는 오두막
브레히트는 전쟁과 독재의 그림자로 얼룩진 시대에서 40년 동안 글을 쓰면서도, 현실을 외면한 채 낭만에 심취하지도, 사회 구호에 파묻혀 문학의 품위를 잃지도 않았다. 현명한 정치 논객 브레히트와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 브레히트의 진면모가 이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지만, 모순을 지닌 불완전한 존재야말로 완성될 수 있는 존재라는 신념만은 여전히 그의 문장 속에 살아 있다. 이제 그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다시 생각해볼 때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학업을 마친 브레히트는 병역을 피해보려고 의학과에 진학하기도 했으나 징집을 피하지 못하고 위생병으로 군생활을 하게 된다. 1924년 베를린으로 간 그는 당대 유명 연출가였던 막스 라인하르트에게 발탁되어 '독일극단'의 연출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21세기 괴테"라고 일컫는 브레히트의 인생의 지혜와 통찰이 깃든 문장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
이야기는 모두 여섯 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그 문장들 속에 저자의 상황들이나 고뇌들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었고, 읽으면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바쁘다고만 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긴 버스 여행을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본다.
p.19 ....... 나는 엄마를 내 방식대로 사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자기 방식대로 사랑받기를 원했다.
어버이 날을 맞아 엄마께 다녀오는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사랑에 대해서 일방적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의 나 역시도 일방적으로 내 방식데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싶다.
p.52 너에게 산이었던 것을 그들은 갈아엎었다 그리고 너의 계곡을 그들은 덮어버렸다 너를 밟고 편안한 길이 뚫린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사랑? 뭐 이런 식의 나 입장에서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한계이지만, 그래도 자고로 사람에게는 이성이란 것이 있으니 생각이란 것을 좀 하고 살자. 귀가 있으니 들리는 소리를 외면하지는 말자구.
p.109 우리는 히틀러와 그의 하수인들이 뭐라고 주장을 하건, 그들은 독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정직한 고백, 아픔을 아픔이라, 잘못을 잘못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용기이리라. 그것보다 더한 교육이 어디있을까 싶다. 아이들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내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들을 올바른 것이라 삶으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p.170 그럼 너희의 시인들은 왜 거기에 침묵하고 있었느냐?
시인은 고뇌하고 있었다. 거기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었던 자신을 말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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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있는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짧은 문장과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처음 페이지부터 봐야된다는 조건도 없고 문득 손에 잡히는 데로 책페이지를 펼쳐서 닥치는 데로 읽는것도 이런책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느날 어떤시간에 무작위로 손가락의 자연스러운 이끌림으로 순간에 펼쳐 잡는 책의 내용이 현재의 내마음과 같을수도, 때론 나의 의문에 해답을 제시해 줄수도 있는 운명적 내용과 만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브레히트에 대해서는 이책을 통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었고 전혀 들어본적도 없는 인물이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에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나치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랐으며, 베를린 앙상블 극장의 설립을 했는데 이극장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독자와 관객이 함께 의심하고 토론하며 논쟁하는 참여문학의 새로운 지편을 연 서사극을 탄생시키며 연극계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시, 소설, 드라마, 희곡 등 주옥같은 작품을 생전에 남겼으며, 이책은 그주옥같은 작품속의 글을을 발췌해서 사랑, 정치, 예술, 자본, 삶의 지혜, 혁명으로 나눠서 책속에 실은것 같다.
아무래도 나에게 관심있던 분야는 "사랑"이였다. 21세기 괴테라고 불리는 브레히트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일부분이다.
이런 짧은 글들을 통해 나름의 내방식으로 생각할수 있게 만든계기를 선사해 주는 책이다. 연기라는 제목으로 호숫가의 집한채를 생각해보게 되고 그집안에는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함께한 늙은 노부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집에 연기가 피어나지 않았다면 나무와 호수와 집은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과 물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기로 인해 나는 늙은 노부부의 삶을 떠올렸고 행복한 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아마 브레히트도 연기에 따스한 감성을 담아 사랑을 이야기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책을 보았을때는 짧은 글귀들로 금방 책을 볼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읽어보니 전혀 짧은 시간에 이책을 이해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글귀를 가지고도 한나절을 생각해볼수 있고 한달을 생각해볼수도 있는 그런 문구들이 많았다.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정해진 해답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답을 내릴수있는 기회를 주고 혼자서 생각한 시간을 주는 것 같다. 이책을 읽기전 브레히트는 낯설었지만, (물론 지금도 그에 대해서 잘모른다.) 그사람의 주옥같은 글들만 뽑아 엮은 이책을 통해 그의 삶과 생각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의 글을 통해 내 삶또한 돌아보고 생각할수 있는 시간이였다. 인상깊은 구절진실을 말하기 보다는 믿을 만한 것을 말하는게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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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 짧은 글귀를 읽고 나도 생각해본다.
나의 명함에 쓰인 나의 일 외에 내가 정말 온전히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찾았었는데
그리고, 난 이제 다시 책장을 펼쳐 브레히트의 말에 귀기울여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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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변하고 불안정 할수록 누구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책 읽는 오두막의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는 바로 현대사회를 바르게 인식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데 촌철살인과 같은 어록이 숨겨져 있었다.
당신은 없었다 나는 하나 있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브레히트의 첫 장을 넘기면 '약점'이라는 사랑의 언어가 기다린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랑에 대하여, 혹은 앞으로 있을 사랑에 대하여 이 만한 명언이 있을까. 나는 브레히트를 알고 싶어졌다.
정치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자본에 대하여, 혁명에 대하여 그의 서사적 이야기는
참신하고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전쟁을 시작하는 모든 정부는 술주정꾼 같다. 소주 한 잔을 들어 올리며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본문 중에서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브레히트는 덴마크와 소련 , 미국 등지로 이어지는 긴 망명생활을 하였다. 그 기간 동안 브레히트의 거의 모든 대표작들이 탄생하였다. 그후 동독에 자리 잡은 브레히트는 '베를린 앙상불극장'을 아내와 함께 설립한다.
특히 브레히트는 독자와 관객이 함께 토론하며 논쟁하는 참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서사국'을 탄생시키며 연극계에 혁명을 불러 일어켰다.
브레히트는 21세기의 투철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의 고뇌와 열정이 느껴진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용기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연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것은 도시가 살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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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랐다.
사회주의 리얼리스트 브레히트, 서사극의 창시자, 이렇게만 어렴픗이 알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시인을 (재)발견했다.
첫번째 시부터 압권이었다.
"약점"
당신은 없었다 나는 하나 있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3줄에 불과하지만, 이보다 더 애잔하고 아쉽고 읽고 나면 강한 여운이 남는 시를 본 적이 없다.
첫 줄에 반해 이 책에 담긴 시들을 골라 읽으니 정말 브레히트는 탁월한 시인이라는 게 절감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책으로 알았지만, 이런 시뿐만 아니라 실린 글들이 주옥같다.
연기자에게 잘못된 콘셉트를 빨리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긴 설득이 아니라 박수 하나 없는 관객의 침묵이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감이 사라진 사람, 그에게 희망이 없다.
문자 그대로 last but not least,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이 더하기 이는 사 이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 지는 사람은 우리
이 책에 실린 글은 정말 어느 하나 놓칠 게 없다. 하나하나가 브레히트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읽고나서도 여운이 길다. 때로는 뿌듯하고, 때로는 씁슬하며 또 때로는 애잔하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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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한 사람을 매수되지 않도록 교육시킬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코이너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를 배부르게 만들면 되지."
'어떻게 해야 좋은 제안을 내놓도록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자기의 제안에서 나오는 이득에 참여 할 수 있게 하되 다른 방식으로는, 즉 혼자서는 그 이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하면 되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中
독일의 격동기를 살아온 브레히트는 당시 사상에 대한 갈등, 체제에 대한 반감 등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수많은 비유들이 묘사되고 있다.
당시 학교 교육을 통해 참고 인내하는 미덕(?), 지도층이 원하는 인재육성에 대한 비판을 하고, 전쟁을 통해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속에서 돈을 벌고 있는 사업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특히 "송아지들은 어기적 거리며 북소리를 뒤따른다. 그 북의 피막도 송아지들이 댄다." 라는 구절은 읽는 순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잔잔하고 비유적인 풍자로 당시의 요동치던 세상에 쓴소리를 담은 명화를 한편 감상하고 나온 느낌으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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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너무 좋아해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너무나도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대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극예술 연구회를 하면서 처음 브레히트를 알게 되었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브레히트는 늘 우리에게 회자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공연도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마치 교과서처럼 브레히트의 작품을 읽고 또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는 희곡, 연극 연출에 두각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시, 소설, 논설 등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작품을 남긴 작가로 유명합니다. 이 책은 인문 교양 에세시로 [이렇게 말했다]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입니다. 첫 번째도서이다 보니 역시 대문호로 불리는 브레히트가 그 주인공인 된 것 같습니다. 삶에서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철학가와 문호의 원서를 바탕으로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짧은 단문을 중심으로 문호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처음 접했을때 '왜 이렇게 짧지?'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 정치, 에술, 자본, 삶의 지혜, 혁명 6개의 소주제로 그와 관련된 브레히트의 명문장이 나옵니다. 읽으면서 어디서 본 듯한 구절들이 많아서 참 좋았습니다. 어렵고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의 주요 문장들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읽기에도 너무 편안하고 두고 두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입니다. 브레히트가 살았던 당시 독일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떠올리면서 책을 읽으면 이해가 더 잘 쉬울 것 같습니다. 독일의 지성으로 불리는 브레히트는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작품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현실과 낭만에 중용을 잘 지켜 문학의 품위를 잃지 않은 작가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 깊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페이지가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대학교시절 브레히트의 삶과 작품에 관해서 열심히 토론했던 기억이 계속나서 그냥 기분이 묘했습니다. 10년이 넘게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도 어제 얼마 전의 일처럼 설레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브레히트가 이야기 하고 싶은 메시지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시리즈로 헤세, 카프카, 니체의 작품을 볼 수 있다닌 아주 흥분되면서 기대가 됩니다. 시리즈 열심히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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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철학적 질문들』 / 앤서니 그레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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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한번 '살짝' 느껴보실래요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사극의 창시자인 '브레히트'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때론 수업에서도 귀에 닳도록 들어왔지만 짤막한 인용문 빼고는 온전한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브레히트의 연극은 특히 연극 자체에 감성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해 빠져드는 여느 다른 연극들과 구별되어,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무대와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써 보여지길 의도한다. 그것을 브레히트가 처음으로 서사극이라 정의했는데, 이러한 특성상 한번쯤 읽어봐야 할, 아니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도 좋을 작품으로서 존재한다. 하지만 나에게 희곡을 읽는 것은 왠지 어렵고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인물과 대사가 함께 있는 희곡의 특성이 아직도 낯설어,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희곡작품조차 안읽어본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새롭게 드는 생각 두가지. 첫번째, 그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 (특히 갈릴레이의 생애) 그리고 두번째, 브레히트는 '시'로도 유명하며 그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문체말고도 감성적이고 세밀한 문장도 있었다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는 사랑, 정치, 예술, 자본, 삶의 지혜, 혁명 이렇게 여섯가지의 주제를 토대로 브레히트가 말한, 혹은 쓴 내용들을 분류해놓았다.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은 브레히트의 특성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은 정치, 예술, 사회, 혁명이고, 내가 상상했던 브레히트의 글들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부분이 사랑과 삶의 지혜 부분이었다. 책 속 전체를 보자면 브레히트의 글들은 대부분 시니컬하고 유머있고 때론 권태가 느껴지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이 짤막한 글들에서도 무언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가 창시한 서사극 처럼. 그래서 이 책의 많은 글들이 한 페이지의 반도 안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나는 때때로 브레히트에 글 밑에다가 주저리 주저리 써보고 싶었다.
만약 브레히트의 모든 것을 알고자 이 책을 읽고 싶다면 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브레히트의 유명한 작품의 축약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레히트와 그의 작품들을 더 알고 싶어지게 하는 흥미를 주는 것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론 감탄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더 알지 못해' 그 순간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브레히트의 작품들을 통달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복습 차원'에서 읽었을 때에는 그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다. 특히나 독문학 전공자로서 그의 작품들을 읽지 못하고 이 책을 읽었다는 게 참 아쉽고 부끄럽다.
- 사랑은 싱싱할 때는 맛있지만 즙을 다 빨고 나면 뱉어야 하는 코코넛과도 같아. 과육만 남게 되면 그 맛은 씁쓸해. (42p. 바알)
- 그들은 땀을 뚝뚝 흘리며 돌투성이의 길 위로 바구니를 끌어올리는 데, 아이를 낳는 데, 그래요, 먹는 데 필요한 힘을, 영원히 지속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어떤 느낌에서 얻었어요. 땅을 보면, 해마다 새롭게 푸르러지는 나무를 보면, 성당을 보면, 그리고 주일마다 성경 구절을 들으면 그 느낌이 생겼죠. 하느님의 눈이 그들을 보고 있다, 감시하면서, 거의 불안해하면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생극장 전체가, 연기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훌륭히 해내는 걸 보기 위해 마련되어 있다, 그게 확실하다, 이런 말을 들었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부모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그들이 어느 작은 바위 위에 있고 그 바위는 텅 빈 공간에서 다른 별의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고, 그건 수많은 바위들 중 하나일 뿐이고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거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인내해야 하고 가난을 수긍해야 할까요? (63p. 갈릴레이의 생애)
- 나는 예술과 교훈이 분리될 수 있는 거라고 믿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인식, 특히 인간들의 공동생활에 관한 새로운 인식은 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주된 원천이다. 관객들의 기존 경험에 새로운 경험을 보태주지 않는 예술, 관객들이 입장할 때의 상태 그대로 퇴장하게 하는 예술, 날것의 본능에 아부하고, 설익은 혹은 너무 익은 견해를 재확인해주는 예술은 쓸모가 없다. 단순한 오락은 후회를 가져올 뿐이다. 오직 관객들을 교육시킬 대상으로만 삼아 금욕적으로 흐르는, 즉 예술이 갖고 있는 다양한 수단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믿는 예술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예술은 관객을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지겹게 만든다. 관객들은 즐길 권리가 있다. (129p)
- 교회에 가거나, 법정에 가거나 혹은 학교에 가는 식으로 극장에 간다면 그건 틀렸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장에 가듯 극장에 가야한다. 여기서는 이두박근을 이용해서 하는 싸움이 아니라 좀 더 섬세한 싸움이 일어난다. 그 싸움의 무기는 언어이다. 무대에는 항상 최소한 두 사람이 있고 또 대부분은 갈등을 겪는다. 우리는 누가 이기는지 분명히 지켜봐야 한다. (...) 격투기에서처럼 사람들 속을 꿰뚫어 봐야 하고 예리하게 주시해야 한다. 무대에서는 사소한 기술이 가장 흥미롭다. 영화는 이런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영화는 내면적인 것과 미묘함을 이해할 수 없는 둔한 사람들 몫이다. 그래서 좀 더 영리하고 섬세한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가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연극을 스포츠를 보듯 관람해야 한다. (143p)
- 낯설지 않은 것을 낯설게 느껴라! 익숙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라! 일상적인 것에 너희는 놀라야 한다. 규칙이라고 하는 것의 오용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오용인 걸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제거하라! (279p)
이제 '이렇게 말했다'시리즈로 또 여러권이 나오게 되는데, 이번에 나온게 헤세이고 (만세!) 카프카, 니체도 곧 나올 것 같다. 완전 기대된다!!!!!! 그런데 일단 다들 독일문학이다. 표지에도, 책 속 중간중간에도 독일어로 적혀있고. 이쪽 문학가들에 초점을 맞춘건지 아님 곧 확장될 건지 궁금하다. 어쨌든 이 네권은 독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듯. (일단 나는 관심 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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