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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일까? 아니 나부터 나와 다름을 인정해주며 살아 가고 있을까?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나와 똑같아지기를 강요하며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사회인듯 하다. 그런 반면에 요즘은 '동호회' 가 인터넷을 활성으로 인해 무척 다양해지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산악회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겹치기로 몇 곳의 산악회를 드는가 하면 애견인들이나 애묘인들은 또한 그 나름으로 뭉치기도 하고 취향이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어쩌면 세분화 되어 단위가 커지고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되었다.
네가 떠나고 난 후 빨다 버린 사탕이 된 나는 인턴은 진작 끝났고,인턴이 끝나니까 이제 직장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고,그래서 나는 씹다버린 껌처럼 바닥에 들러붙어서 그저 빚 갚을 일만 남았는데 돈도 없고,그러니 이제 문서제단기에서 들어간 영수증처럼 잘게 썰려 벌져지는 일만 남았는데 너는 이미 내 곁에 없는 거였다.
소설에서는'애묘'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애견을 키우고 있어서 그런가 나 또한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소통이 잘 되어 할 이야기가 많지만 애견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는 한마디도 안통한다. 그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이 없다.동물은 동물이다. 동물에게 하는 사랑을 부모나 그외 사람들에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이너스인 부분도 있지만 삶에 반려동물로 인한 플러스 부분도 많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이 것이 '취향'인듯 하다. 애묘인들, 아니 애묘가였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달랑 문자 한마디로 헤어지자고 하고는 행방불명이 되듯 행방이 묘연해졌다. 나의 어디가 맘에 들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애묘인 '쿠치'를 잃어버리고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오드아이였던 쿠치, 쿠치는 어디에 있길래 그녀와 그의 사이를 갈라 놓은 것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고양이 애호가가 아닌 애호 무리가 지나치게 늘어난 것은 특수한 경우에요.이런 식으로 대거 몰려 다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일이거든요.저희는 그것을 특별함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정말 '쿠치'라고 생각되는 그녀의 애묘를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쿠치를 잡을 수 있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묘카페동호회에 나가지만 망신아닌 망신을 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애묘가가 아닌 '안티 버틀러'였던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반대파나 마찬가지인 '안티'가 있었던 것,그와 통하는 바가 있다. 그렇게 한은 김B를 만나 '안티 버틀러' 가 되어 행동에 나서게 되는게 그게 정말 대단하다. 모인사람들이 고양이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더 나아가 대선까지 연관이 된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취향'이 한나라의 우두머리를 뽑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음까지 나아갔다. 취향이 무섭게 작용을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무섭게 흘러간다.아니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자신들의 '취향'만을 인정하는 세계,나와 다른 취향을 공격적으로 공격을 한다.물론 현실에서는 이렇지 않겠지만 소설에서는 '공격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소수의 인원이 모이지만 그 힘은 섬짓하다. 그런 이야기가 맛깔나면서 '천명관'의 <고래>를 읽는 느낌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 <고래>가 자꾸 생각나는 것은 뭘까?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이야기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 취향은?' 하며 반문해 보게 되었다.내 취향은 타인에게 강요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의 글은 어쩌면 소설속 '남궁 아버지'의 글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진밥이 아닌 고두밥이 아니어도 분명 고두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그런 글을 만난 기분이다.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할 것만 같은 저자의 소설을 오래 기억하게 될 듯 하다.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받아 들이고 인정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서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그 힘든 일을 고두밥과 같은 독특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꼭꼭 씹어 삼키라고,그런 글을 만난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거기 실린 글들은 진밥이다. 씹고 삼키기 좋다는 뜻이지.사람들은 그런 글을 좋아한다.읽고 섬기기 좋기 때문이지. 아버지의 글은 고두밥이다. 씹기도 삼키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다.남들과 다른 것,알기 힘든 것,그런 것은 튀어나온 돌부리와도 같다. 시선을 두다가도 비켜가거나 피하고 마는 거지.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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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씨앗을 뿌려 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잎이 무성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푸른 잎을 달고 자라는 채소를 가꾸는 취미로 삼으며 지낸 지 5년 남짓이 흘렀다. 채소밭에서 다른 풀들에 치여 잘 자라지 못할까봐 잡풀을 매어주느라 손톱 끝이 새까맣게 변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시장에 가서 사 먹으면 될 것을 햇볕에 그을리면서 웬 고생이냐며 지청구를 늘어놓는 이도 있다. 적당한 공기와 물, 햇볕 아래 커가는 작물을 보는 즐거움은 소소한 기쁨을 선물한다. 누가 강요해서라기보다는 채소를 가꾸려는 마음이 동하여 지금은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나와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적대시하며 일련의 활동을 폄하하여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은 양상을 띠며 양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속출한다.
남녀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의 매력을 발산하며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시작한 만남이 수차례 이어질수록 단조로움 일색이라면 어느 한쪽에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이별을 통보할 때가 온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한은 고양이를 좋아하여 고양이에 미친 홍을 만나 자신의 인생이 걷잡을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홍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고양이 자체가 되길 바랐고, 자신의 취향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말았다. 문자 메시지로 이별을 통보받은 한은 여자 친구를 만나 이별의 이유를 묻고 싶어 그녀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일방적으로 자신을 차버린 그녀를 찾을 단서를 좇아 길을 나선 그는 고양이 애호 카페 정모가 열리는 카페를 찾았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회원들은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는 그에게 독설을 퍼부었고 고양이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으로 몰아갔다. 타인의 의사나 견해를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메뉴를 결정하여 내놓는 회원들의 취향에 환멸을 느낀 한은 카페 문을 나섰을 때 비로소 고양이 애호가들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그들을 집사라고 부르며 버틀러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취향에 근거해 타인을 차별하는 근거로 보아 타인의 취향을 얕잡아 일컬었다. 개인의 순수한 취향을 배척당한 채 취향을 이용하려는 이를 징치하여서라도 인류 취향의 역사를 돌려놓으려는 안티 버틀러 동호회원들은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이 과정에서 한은 인류 취향의 역사를 순수한 원형으로 돌려놓으려는 기괴한 미션에 참여하여 체득한 기술을 십분 발휘했다.
고양이 애호 동호회를 이용하여 대권에 도전하려는 장국태의 정치적 술수와 음모를 저지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안티 버틀러 수괴인 곽을 중심으로 테러를 방불케 하는 미션을 수행하여 갔다. 여자 친구 홍의 돌연한 이별 통보로 심리적 충격이 컸던 한은 집사를 위시한 고양이 애호가들의 배타적 태도에서 야기된 취향의 감정적인 탄압에 맞서 올연히 나섰고 결과적으로는 일련의 활동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일로 갈무리되었다. 고양이 사냥꾼 박은 고양이 입처럼 갈라져 있는 윤형자를 아내로 맞아 살면서 고양이를 먹어야 사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 그것을 아내에게 고아 바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고양이 사냥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했지만 아내를 살릴 수만 있다면 타향살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곽, 박, 한, 오 씨 등은 미션을 성실히 수행하였지만 범법자로 죗값을 치러야 했다. 수형자로 살다 자유의 몸이 된 박은 아내 윤형자의 죽음을 목도하고는 삭발한 뒤 승려의 길을 걸으며 악업을 뉘우치며 업장 소멸의 길을 걸어갔다.
메리트가 없어 한의 곁을 떠난 홍은 남자친구의 영웅적인 면모를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는 듯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듯이 돌연 돌아와 그의 마음을 떠보지만 한은 그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끈을 싹둑 잘라버렸다. 새로운 사랑의 상대를 찾아 봄날의 설렘 가득한 사랑을 잉태하여 상상력에 열기를 더한다. 취향이란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표로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매혹되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나와 다른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에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취향을 폄하하여 아집과 독선으로 치닫는 활동은 사회적 소통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나의 취향이 소중하면 상대의 취향도 존중해 줄 수 있는 너그러움과 타인의 취향의 장점을 찾아 헤아릴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극단적인 행동으로 버틀러들의 집단행동과 공고한 연대를 와해시키려는 의도는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취향을 즐기고 가꾸는 가운데 또 다른 취향을 수용하여 나와 너의 취향이 공존하는 가운데 하나의 조화로운 문화를 이뤄가는 삶을 지향한다.
* 이 리뷰는 예스 24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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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끊임없이 내 삶을 점검해 보게 하고, 내 과거를 곱씹어 보게 하고, 내 인생 전체를 관망해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 이 소설의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이다. 그래 나에게도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만났던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가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는 다짜고짜 내가 보드를 타지 않는다고, 운전을 할 줄 모른다고, 대단한 취미 같은 게 하나도 없다고 나를 떠나갔다.
그러니까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나 역시... "세상 평범한 새끼, 평범한 것 외에는 아무 장점도 없는 새끼"였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 무시당한 경험 덕분에 나중에 보드도 배우고 운전도 배우고 이것저것 취미라고 할 만한 것도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평범하다고 굴욕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에게 묵은 한이 있는 나는 순식간에 이 소설에 빠졌고 몰입했고 백 퍼센트 감정이입을 했다. "카타르시스로 샤워를 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린다"는 중앙장편문학상 심사평이 나에겐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취향은 그동안 소설에서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테마인데,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작품으로선 생소한 테마이지만, 일상생활에선 매일매일 마주하는 문제이기에 공감도 잘 되었다. 나 역시 주변 사람 몇 명을 벙어리로 만들며 야구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패션 이야기나 춤 이야기를 할 땐 스스로 벙어리가 되기도 했으니깐. 그러니까 취향에 관한 전면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을 읽으면 뜨끔하고 통쾌한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너무나 재미있는데, 서사 구조도 뚜렷하고 캐릭터들의 매력도 대단하다. 애묘인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대선 후보를 저지하기 위한 기괴한 미션도 손에 땀을 쥐며 읽게 될 만큼 긴장감 넘치고, 각각의 인물들의 고양이에 얽힌 사연들도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가장 큰 재미는 문장을 읽는 맛에서 나오는데,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능력자>와 느낌은 다르지만, 그 이상으로 작가의 입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이를테면 내가 좋았던 문장들은 이런 것인데...
"너의 미모는 나를 오징어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버터도 발라져 있지 않은 얄팍한 나는 네 옆에서 타버리거나 바짝 구워져 배배 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역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역입니다. 나는 아디다스 저지의 옷깃을 여몄다. 그러니 디스 스테이션 이즈 메이비 유. 나는 이번 역은 너라고 생각했다. 내 사랑의 종착역.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
"있지, 난 좀 더 간질간질했으면 좋겠어. 내게 필요한 건 좀 더 조용하고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이제, 고양이처럼 야옹…… 하자."
"나는 머뭇머뭇 다가가 승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켈리 클락슨과 조영남이 입을 맞추는 순간이었다. 아주 조금 뒤, 승연의 팔이 나의 목을 감았다. 이어폰이 빠지면서 승연이 듣고 있던 음악이 조그맣게 들렸다. 조영남의 화개장터였다. 창문 너머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완벽한 봄날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어쩌면 내일까지, 날씨가 참 좋았다."
한국 장편소설엔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나였기에, 이런 입심 좋은 작가의 등장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산뜻한 봄나물 향기가 나는 이 소설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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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이야기를 쓸 수도 있구나. 이 책은 [취향]에 관한 이야기, 혹은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그도 아니면 심하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함 탈출 프로젝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수진 이라는 젊은 작가의 참신하다 못해 기막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초반부 스토리는 의미 없고, 진부하며, 김 빠진 맥주 같이 약간은 허무하고, 소설적 재미가 많이 부실한 편이다.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예전보다 더 오래 걸렸다. 소재 자체는 참 흥미롭다. 세상은 고양이를 좋아하다 못해 떠받들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TV를 켜면 온통 고양이 관련 소식으로 넘쳐나고, 고양이 코스튬에, 고양이화 되어가는 사람들로 거리는 넘쳐난다. 오죽하면 유력 대선주자마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선언하여,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청년 백수 ‘한’은 어느 날 “우리 그만 만나. 연락하지마.” 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고양이 같은 여자친구 ‘홍’을 찾기 위해 고양이 애호 모임의 정모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양이에 ‘환장’한 버틀러(집사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다 못해 받들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들과 한 바탕 소동을 벌인 뒤, 그 곳에 위장 잠입한 김B를 만나게 된다. 김B는 {클럽 안티 버틀러}의 회원으로 ‘한’을 회원으로 영입하여 소수의 취향이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종의 계획에 참여하도록 회유하게 되는데…. {클럽 안티 버틀러}의 회원인 ‘곽’, ‘오’, ‘박’, ‘남궁’, ‘김B’와 ‘한’은 모두 어두운 과거의 상처를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이들의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는데… 이 책에는 톡톡 튀는 날 것 같은 신세대 취향과 언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근엄하고, 무게 잡는 단아한 문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마치 현장을 보고 있는 듯, 현실감이 넘치는 단어들은 한 편의 키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뭐야? 뭔데, 저 개 같은 것들은?” “뭐, 이 고양이 같은 새끼들아!” (p.69) 펄펄 뛰는 참신함과 날 것 같은 싱싱함이 미덕인 소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이야기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뉠 것 같다. 새로움에 목마른 독자들에겐 시원한 생수가 될 테지만, 이야기 전개가 어딘지 작위적이고, 조금 늘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평론가들은 이 책에 대단한 찬사를 보낸 모양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지극히 개인적인) 이 책이 내 ‘취향’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가 ‘내 취향’대로 책을 쓰지는 않았을 테니, 당신의 취향에는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 결의를 다지는 장면에서 {클럽 안티 버틀러}의 회장 ‘곽’의 의미심장한 일갈은 이 책의 주제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할 거야. 아직도 이 일의 중대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네. 또한 이것이 불법적인 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길 바라네. 또한 이것이 불법적인 일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길 바라네. 박 형도…… 들키게 되면 직장에서 잘리는 수준으로 끝나진 않을 거라는 걸 알아두셔야 해요.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겐 작은 불법일지 몰라도 인류 취향의 역사로 봤을 땐 큰 도약이고 걸음일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아.”(p.302)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의 취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책의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재미있게 읽었는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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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괜찮지 않나? 뭔가 단호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취존"이라는 단어가 넷상에서 쓰이고 있긴 하다. "(당신의) 취향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인데 가령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탑급이 아닌 조금 개성적인 연예인을 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혹은 평범치 않은 음식 조합을 즐기는 사람에게, "제 취향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당신의 취향도 존중하겠습니다"의 의미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취향을, 아니 취향 따위가 없는 평범한 사람도 존중해달라고 부르짖는 책이다. 자신만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은연중 자신의 취향이 고급이며 우월하다고 느끼는 일부 취미 생활가들에게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 워낙에 트렌디한 사회라 뭔가 한바탕 뜨고나면 죄다 그쪽으로 쏠리는 줏대없는 따라쟁이들 주제에 소수인양 개성적이고 고상한 취향인양 가식을 떨거나 때론 다수의 취향을 소수에게 강요하면서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망각하는 이들, 그 미묘한 불쾌감. (그래서 결국 빠가 까를 만드는 것이다-_-)
요즘 소설에서 부쩍 그런 경향이 느껴지는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다니는 최근의 삶의 모습들이 문학에도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예쁘고 못돼 처먹은 너"라니!
매우 술술 잘 읽히고 재밌다. 무엇보다 "취향이 없는 평범한" 이들을 위해 쓰여진 소설답다. 잘난척하는 이들에게 발칙하고 도발적으로 일갈한다.
또 마냥 유쾌하고 발랄하지만은 않은 것이, 박과 윤형자의 이야기는 무척 가슴아팠다.
중반부 이후에 다소 억지스런 설정이 나오긴 하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고 문장도 좋고 현실적인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초판 한정 특별 선물로 '취향 존중' 스티커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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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 제목을 본 적 있다. 언젠가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제3회까지 상 받은 소설을 다 보았다. 사실은 그것 또한 우연이다. 어떤 책은 보고 싶어서 보게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우연히 보게 되기도 한다. 나는 우연히 볼 때가 더 많다. 어쩌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볼 때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한테 남다른 취향은 없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지는 않지만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음식점에 가면 무엇을 먹을지 바로 정하는 사람. 나는 이런 거 잘 못한다. 취향과 상관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작가는 다른 사람과 같은 취향을 가져보려고 잘 모르는 음악을 듣고 잘 모르는 책을 읽고 잘 모르는 그림을 보러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취향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남의 취향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자신조차도 몰랐던 자기 취향을 알게 되는 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보는 일 아주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한가지 조심해야 하는 일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고 밀어붙이지 않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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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어떤 작가의 칼럼중 인용한 부분이 떠올랐다. 그 내용의 대충 요지는 모름지기 작가라면 무작위로 주어진 단어 하나로(그 단어를 테마로 해서) 적어도 책 한권 분량의 글을 즉석에서 써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썰(說)을 잘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물론 여기서 말한 분량은 양적 측면만 말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질적인 차원도 내포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조금의 과장된 부분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소설가들에게는 훌륭한 덕목의 하나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이수진 작가의 이 장편소설은 소위말하는 작가의 '필력'에 대해 확고한 신뢰의, 검증된 저력이 느껴졌다. 작가에 대해서는 '입심좋은 변사의 탄생'이란 표현도 있는데 특히 작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문체들이 일필휘지로 말달리는 듯한 빠른 템포와 독특한 유머와 윗트가 담긴 리드미컬한, 음악쟝르로 치자면 랩송이나 재즈의 기막힌 변주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 문장들로 구성되고 있으며 혹자들은 숨 가쁘게 휘몰아치는 익살맞은 문장의 자진모리 장단 같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작가는 취향이 없고 평범하다고 상대를 바보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신적 소외자를 대변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평범하다는 이유를 들어 여자 친구에게 간단한 문자메시지만 받는 것으로 차인, 어이없게도 완전 일방적으로 차여버린 한 남자가 여친의 고양이를 들고 그녀를 찾아가는 스토리로 시작하는 이작품은 전체적 스토리 전개방식이 각각의 등장인물마다 소위 가지치기 구성의 스토리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령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적 스토리 전개방식이 구성의 기본틀로서 인물들이 연결되는 방식들이 도식적인듯 시각적이다. 그러니까 짜임새의 골격이 탄탄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내용의 핵심 테마적인 측면들에서는 특히 결말부분에 이르러서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도 강하게 느껴졌으나 다소 강한 비약으로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의 작품으로서 희화한 위트들이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저자는 라스트에 이르러 '안티 버틀러'의 입을 통해 진정한 '취향'의 의미와 서로다른 취향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 지에 대해 나름의 논리로 테마를 표출한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문제를 희화적으로 때론 황당할 정도의 개인적인 코미디로 작품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포된 의미들을 살펴보고 확대해 보면 진중하면서도 심도가 있는, 다분히 정치적으로도 해석해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 여러분,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취향이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 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우리는 그 뒤에서 일종의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변 애호가 중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을 만나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른바 저희가 버틀러라고 부르는 이들이죠. 그들은 주로 소수의 무리였을 겁니다. 다수에 의해 이해받지 못하는데 염증을 느끼고 공통의 취향을 가진 이들끼리 뭉치게 되었을 테니까요. 그게 그들이 배타적이 된 역사적 배경이었죠. 긍정적인 결과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보다 더 깊은 수준의 연구와 학습을 하는 경향을 보였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자의식이 싹텄지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그들이 소수인 이상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버틀러들의 위험성이 두각을 드러낸 것은 그들이 다수가 되었을 경우의 일이었습니다." (P325~ P326)
안티 버틀러의 입을 통해 대변되는 작품의 핵심 테마들은 위 문장을 시작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색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마지막 '작가의 말'도 빼놓지 말고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신인 아닌 신인 작가의 솔직함들이 읽힌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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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취향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취향에 대해 배타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진 이가 많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혈연, 학교, 군대, 직장 등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의 힘이 강한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집단과 다수가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소수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문화를 당연시하는 파시즘적 경향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틀림이 아닌 다름이다', '이해가 아닌 인정이다' 등등 취향의 차이,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자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만, 이런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고양이를 내세운 지독한 풍자 소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읽을 수 없는, 가볍고도 묵직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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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제목부터 재기발랄함이 팍팍 느껴지는게 무슨 내용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인터넷 검색결과
여튼 각설하고,
"정신적 소외자를 대변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이 시대에 취향이란 가진의 개성을 드러내는 지표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매혹되어 있는지는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가요? 우리는 그 뒤에서 일종의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p325)
더이상은 스포일러가 될수 있으니 이정도 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고 굳이 표현하자면 동물을 커피 잔에 담갔다 꺼내 방치한 듯한 냄새였다. (p13)
나는 미치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쳐지지도 않을 것 같아서 더 미칠 것 같았는데 사실 미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p25)
정말 재미있는 표현들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식당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따위에 부렸던 네 변덕은 애교 수준이었다. 나를 가장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은 네가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한 변덕이었다. 너는 너무 자주 가장 갖고 싶은 게 바뀌었다. 너의 그 변덕의 기저에 있는 건 네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대단한 취향과 안목이었으나 내 눈에는 그게 그거 같았고, 내가 보기엔 가지나 가지지 않나 어차피 매번 업데이트 될 게 분명했다. 어쨌든 너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꼭 갖는 여자였는데 문제는 네게 그것들을 가질 만한 능력이 없단 거였다. (p44)
이 책을 읽고 중앙장편문학상에 흥미가 생겨 다른 수상작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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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생전 처음 본 것 같은 참신함이다. 우울하고 질척질척한 한국소설에 질린 독자라면, 또 루저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기분으로 리프레쉬를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