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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좋아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란 물음에 시인을 한 분 적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 시인이 바로 떠올랐죠. 신동엽, 김수영, 정호승…. 이 시인들의 시는 제 젊은 시절 감성의 폭을 넓히는 자양분이었으니까요. 참여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신동엽과 김수영 시인은 어느 누가 앞섰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학 시절의 히어로입니다. 데모 세대인 만큼 이분들의 시는 정의를 품은 젊은 혈기를 자극하였지요. 정호승 시인은 앞의 두 시인과 결이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참 좋았습니다. 신동엽과 김수영 시인…. 이 두 분 중 어느 분의 시에 마음을 더 주었는가 생각하다가, 신동엽 시인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댓글을 읽어보다가 신동엽 시인을 언급한 블로거는 딱 한 분이란 것이 의아했습니다. 시인이 1969년에 작고했으니 요즘 독서인은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외우는 신동엽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껍데기는 가라 신 동 엽 <1967년>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의 1960년대는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 6·3 항쟁, 베트남 전쟁 파병 등으로 정의와 진리가 왜곡되는 어수선한 시대였지요. 이런 시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박통, 전통으로 이어지는 군인 정치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신동엽 시인의 이 시 「껍데기는 가라」는 젊은 가슴을 꽉 채우는 정의의 잣대가 되었더랬죠. 그런데 2020년을 살아가는 지금에도 이 시가 가끔씩 떠오릅니다. 아직도 껍데기들이 판치는 세상이니까요. 지도자급이란 사람들 일부에겐 내로남불이 고착화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위선과 거짓의 껍데기가 알맹이에 큰소리치는 세상이 되었지요. 이제 4월이 되면 다시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흔히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도 하지요. '선출된 인물'이란 이면에는 엄청난 혜택을 받는 '선택받은 사람'이란 의미도 숨어 있습니다. 국민이 이들에게 주는 각종 혜택은 당연히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주는거지요. 그런데 이걸 개인의 특권으로만 생각하는 개념 없는 의원도 있어 보입니다. 무능한 껍데기를 쫓아내려면 유권자인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유권자도 사분오열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껍데기들은 가짜 뉴스를 적절히 활용하며 마치 자기들이 정의요 진실인 양 언성을 높입니다. 자기 살자고 그러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러려면 그런 자리로 나가면 안되는 거겠지요. 아무튼, 국민을 제일 앞에 두지 않는 패거리 정치가,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자, 특권 갑질 행사자는 철저히 가려야 할 것입니다. 토의·토론도 모르고, 공감도 못하는, 상생이라고는 1도 모르는 껍데기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야하지 않을까요. 신동엽 시인이 하늘나라로 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껍데기는 가라’고 외쳐야 한다니... 경자년은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나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그런 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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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로 5가를 서성이는 가난한 소년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 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 전라남도 해남 땅 어촌 말씨였을까. 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 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 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 그의 누나였을까.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쪽 기대 앉아 속내의 바람으로, 때 묻은 긴 편지 읽고 있었지.
그리고 언젠가 보았어.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 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 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 싸늘한 땀방울 뿜어 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 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 변한 것은 없었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 기껏해야 버스 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 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 광고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 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 도시락 차고 왔지.
이슬비 오는 날,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 신동엽,「종로 5가」 신동엽은 김수영과 더불어 1960년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서정적이면서 의지적인 언어로 분단현실을 시적으로 묘사했고, 산업화 시대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 종로 5가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시인에게 길을 묻는 소년이 있다. 이슬비가 내리는 밤 열한시 반, 소년은 시인에게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소년의 눈동자는 크고 맑다.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는 것도 모르고 시인은 소년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맑은 눈을 한 소년은 왜 이 늦은 시간에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을까? 소년은 새로 사 신은 운동화를 벗어 가슴에 품고 있다. 등허리에는 고구마가 “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이 소년에게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시인은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선다. 노동자들의 홍수 속으로 사라진 소년을 시인은 쉬이 잊지 못한다. 무엇일까? 시인은 소년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시인은 소년을 통해 예전에 본 또 다른 인물들을 떠올린다. 우선 눈 녹이는 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 날, 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본 어떤 여인이 시인의 기억 속에서 흘러나온다. “그의 누나였을까.”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그때 본 여인의 모습에서 소년을 느낀다. 그녀는 “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되어 속내의 바람으로 누군가가 보낸 때 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다. 눈물도 흘렸을지 모른다. 시골을 떠난 여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겉으로는 화려하기만 한 산업화의 물결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인간이 하는 일 가운데 어쩔 수 없는 일은 없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시인의 기억은 언젠가 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에서 본 노동자로 다시 이어진다. 자갈지게 등짐을 하던 이 사내는 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다. “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라는 구절에 산업화 시대를 보는 시인의 씁쓸함이 배어 나온다. 노동자 아버지를 두고, 창녀 누나를 둔 소년은 고구마를 등에 짊어지고 아비와 누이를 찾아 도시로 왔으리라. 허리 다친 아비를 보고 소년은 무엇을 느꼈을까? 속내의 바람으로 양지쪽에 앉아 편지를 읽는 누이를 보며 소년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시는 다만 이 장면들을 보여주기만 한다. 하긴 시인이 보여주는 장면만으로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소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허리 다친 아비가 소년이 받아들여야 할 미래라고 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것일까
시인은 노동자들의 이마를 흐르는 세 줄기 “싸늘한 땀방울”을 이야기한다. “대륙의 섬나라의/ 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의/ 물결이 뒹굴고 있었다.”라는 시구에 나타나는바, 시인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휘감고 있는 외부적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대국들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그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남아나는 게 없다. “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조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고 왜 시인은 말하는 것일까? 이조 오백년 동안 당한 그 고통을 민중들은 변함없이 지금도 겪고 있다. 시간은 흐르는데 변한 것은 없다. 아니, 겉으로 보는 사회는 화려함을 더해 가는데, 일하는 이들의 삶은 화려함의 그늘 속으로 휘감겨 들어가기만 한다. 2000년대를 훌쩍 넘긴 지금이라고 과연 이때와 다를까
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갈 사람들이 이제는 버스 타고 서울로만 몰려든다. 분단으로 땅덩어리는 더 좁아졌다. 자신들은 살 수 없는 건물을 지으며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또 일을 한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내일 하루를 살 수 없다. 하루 일해 하루를 사는 이 사람들에게는 몸이 곧 삶의 도구이다. 하지만 거친 일을 날마다 하니 아비처럼 허리를 다칠 수밖에 없다. 다친 허리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시간은 노동자들을 더욱 더 험난한 길로 내몬다.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아들이 찾아와도 아비는 한 끼 밥조차 챙겨주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다. 시인은 소년의 그 맑은 눈망울에서 허리 다친 아비의 슬픔을 보고 있는 셈이다.
시인은 “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와 “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을 하나로 묶고 있다. 노동으로 지친 가슴으로 시인은 하염없이 비를 맞는다. 시인이 보고 있는 저 소년은 이 세상을 사는 노동자의 아들을 대표한다.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묻는 소년을 보며 시인은 노동자로서 사는 삶의 비애를 느낀다. 노동자가 게을러서 이런 비애를 느끼는 건 아니다. 비애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게 대륙이든, 섬나라든, 새로운 은행국이든 시인은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외부적 상황들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다.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는 서글픈 서정이 무엇보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도 비극적 현실과 마주하는 의지적인 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비애의 서정 뒤편에서 시인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본다. 신동엽은 바로 그 서정으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의 본질을 시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4·19 영혼들을 향한 애도곡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산에 언덕에 신동엽이 지은 산에 언덕에 는 4·19 영령들을 추모하는 시로 알려져 있다. 추모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애도하는 것이다. 한 맺혀 죽은 이들을 애도함으로써 죽은 자는 제 갈 길로 가고, 산 자는 이곳에 남는다. 시인은 “그리운 그의 얼굴”을 산에서, 언덕에서 만난다. 그리운 사람은 산에 언덕에 꽃으로 피어난다. 죽은 자는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죽어서 꽃으로 피어난 존재는 이승에서 맺힌 한을 푼 것일까? “화사한 그의 꽃”이라는 시구로 시인은 죽은 자들을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화사한”이라는 수식어는 ‘꽃’이라는 대상과 잘 어울린다. 그 꽃에서 시인은 4·19 때 죽은 ‘그’를 본다. 올해 핀 꽃은 작년에 핀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돌려 말하면 꽃은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꽃을 피운다. 죽음을 넘어서서 피어난 꽃이 아닌가? 죽음의 시대와 맞서 싸운 4·19 영령들을 이보다 알맞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산에 언덕에 피어난 꽃은 2연에서는 ‘노래’로 변주된다.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에 나타나듯 시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분명히 알고 있다. 아무리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죽은 이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4·19 영령들이 없는 건 아니다. 4·19 영령들은 이 땅 어딘가에서 여전히 “맑은 그 숨결”을 내쉬며 살고 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있을까? 죽은 자가 숨을 쉬는 게 아니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숨을 대신 쉰다. 죽은 자는 산 자를 통해 숨을 쉬고, 산 자는 죽은 자를 통해 4·19라는 ‘거대한 사건’을 기억한다. 산 자는 왜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가?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죽은 자는 왜 산 자와 더불어 숨을 쉬는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그래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을 부르고 있다. 산에 언덕에 꽃이 피어났지만 그곳을 거니는 행인은 여전히 쓸쓸하다. 들에 숲속에 퍼진 “맑은 그 숨결”로도 이 쓸쓸함을 메우기는 힘들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지만, 죽은 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꽃으로, 숨결로 우리는 다만 ‘그’를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이 현실처럼 다가오면 우리는 어느 순간 희열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 사실만은 변할 리 없다. 꽃은 꽃이고 숨결은 숨결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죽은 이를 향한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어찌해야 할까?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비다’와 ‘담다’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비다’가 따로 있고 ‘담다’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눈길이 비면 바람이 곧바로 그곳에 담긴다. 당신이 죽어 ‘빈’ 자리에 꽃이 피고, 꽃이 져서 ‘빈’ 자리에 다시 꽃이 핀다.
눈길이 비면 바람을 담고, 바람이 비면 인정을 담는 세상을 시인은 꽃으로, 숨결로 피어나는 4·19 영령들로 묘사한다. 눈길-바람-인정은 비우면서 담기는 역설적 상황을 구성한다. 그러니 죽은 자들이 비운 자리를 산 자들이 채우는 거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죽은 자들이 비운 자리를 꽃이, 숨결이 채우는 거라고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시를 쓴다. 그 시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섬세한 언어가 담겨 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을 더듬는 그 마음으로 시인은 4·19 영령들이 비운 자리에 무언가를 하나하나 담는다. 꽃이라고 해도 좋고, 숨결이라고 해도 좋다. 언어라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눈길이 비면 어떻고, 인정이 비면 어떤가? 빈자리는 어김없이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 죽은 자를 위한 애도는 이렇게 산 자들을 위한 애도로 돌아오는 셈이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라는 상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죽은 자가 살아날 수는 없다. 하지만 “울고 간 그의 영혼”이라면 어떨까? 시인은 울고 간 그의 영혼을 산에서 언덕에서 보고 있다. 영혼이 있느냐 하는 논의는 여기서는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울고 간 그의 영혼”을 시인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시적 사실이다. 그리움이란 결국 이런 마음이 아니던가! 그리워만 하는데 왜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픈가? 들에 언덕에 핀 저 꽃들을 보면 왜 가슴이 미어지는가? 저들이 간 자리를 다른 걸로 채우지 못한 ‘쓸쓸한 행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뻗어 나온다.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이다. 부재하는 대상을 그리워하는 자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죽은 이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죽은 이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죽은 자를 향한 산 자들의 애도는 이토록 질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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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숲노래 시읽기 2022.3.28. 노래책시렁 222
《신동엽전집 증보판》 신동엽 창작과비평사 1975.6.5.첫/1999.4.10.15벌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 살아남는 길이란 여럿인데, 첫째로는 배움터를 그만두기요, 둘째로는 푸른배움터만 마치는 길이요, 셋째로는 열린배움터로 나아가서 낡은 틀을 뜯어고치는 길이요, 넷째로는 서울(도시)을 떠나 시골에서 숲을 품는 길입니다. 다섯째는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일 텐데, 열여덟 살에 배움책(참고서)이 아닌 《신동엽전집 증보판》 같은 책을 읽고서 동무한테 빌려주었는데, “야, 너무 어렵다. 한자도 많고.” 하더군요. 동무는 “우리하고는 맞지 않는 듯해.” 하고 보태었습니다. 예전에 글을 쓰던 분은 한자를 자주 썼고, 노래에는 더더욱 한자를 드러내었습니다. 적어도 노래에 한자를 넣지 않았다면 동무가 어려워하지 않았을까요? ‘영어’는 꺼리면서 ‘한자’는 사랑하던 지난날 노래님은 두동진 넋이지는 않을까요? 글을 모르고 배운 적 없는 어버이가 낳은 딸아들이 배움터를 다니며 글을 익히고, 나라가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해온 지 얼추 온해(100해)에 이릅니다. 오늘날 우리 말글은 얼마나 자라거나 빛났을까요? 오늘 우리는 살림터를 어떤 손끝으로 추스르는가요? 손수 밥옷집을 짓고, 노래를 짓고, 말을 짓고, 생각을 지으면서, 아이를 고이 품는 숨결은 누구한테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ㅅㄴㄹ
아니오 / 괴뤄한 적 없어요, / 稜線 위 / 바람 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 리야. // 아니오 / 사랑한 적 없어요, / 세계의 /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 차마, 옷 입은 都市계집 사랑했을 리야. (아니오·1963/31쪽)
목은 말라도 / 구멍가게엔 / 건빵, 쪼꼬렡뿐 / 막걸리, 김치 생각은 굴안 같은데 / 가게엔 英語로 쓴 부란디 / 化學酒뿐, // 냇가에선 / 수십명의 수건 두른 / 부인들이 / 모래를 일는다, / 탄피, 小銃알, / 날품값 보리 두 되 값이라던가, (錦江/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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