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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공부하러 태어난 게 아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논다. 혼자 꼬물꼬물 스스로 놀고 동무들과 신나게 어울려 논다. 아이들한테 시간과 공간만 주어진다면 놀이는 저절로 생긴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게 더 좋다. 시골은 아이들이 놀기에 천국 같은 곳으로 동무들과 함께 온갖 놀이를 하는 곳이고, 도시도 비록 좁은 골목길이지만 동무들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놀이터다. 환경에 맞게 놀이를 개발하고 전쟁터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은 논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뛰어논다. 놀잇감이 없어도 놀이를 하고 놀잇감이 있으면 더 즐겁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놀이를 하는 아이들. 놀이로 죽고사는 것을 되풀이하며 성장한다.
여기 노는 아기가 한 명 있다. 누런 종이 상자에 들어가면 몸이 다 가려지고 겨우 얼굴만 보일 만큼 작다. 아직 밖에서 동무들과 뛰어놀기에는 어린 나이 같다. 아기가 늘 챙기는 것은 파란 곰돌이와 빨간 장난감 자동차이다. 본문을 열면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 누런 종이 상자 아래 파란색 바지랑 윗옷 일부만 보인다. 아기가 뒤집은 상자 속에 들어가 있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거 같다. 다음 장을 여니, “까꿍!” 소리를 내며 아기가 누런 종이 상자를 벗는다. 맞다, 숨바꼭질 놀이다. 웃는 얼굴로 드러나는 아기는 즐겁다. 숨바꼭질은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다. 본능적으로 숨바꼭질 놀이를 좋아한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과정,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 가슴 졸였다가 확 펴지는 놀이의 한 전형을 아기가 즐겁게 하고 있다.
동동, 우리 아기 두 손으로 동동동, 아이, 재미있어.
아기는 숨바꼭질을 하던 종이 상자를 악기로 만들었다. 대단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한 면만 개봉한 누런 종이상자를 엎어놓고 다가가 앉으면 된다. 두 손으로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동동 소리가 나는 종이상자 악기 덕분에 아기는 덩달아 몸이 동동 뜬다. 그래서 마침내 종이상자 위에 오른다. 둥둥, 아기 두 발로 둥둥둥, 춤을 춘다. 누런 종이상자가 무도장이 되었다. 그런데, 어쩌랴, 비록 아기이지만 종이상자가 아이를 떠받칠 힘은 없다. 그래서 아기는 쑥 가라앉는 종이상자에 그만 풀썩 내려앉고 만다. 어이쿠, 그래도 아기는 즐겁다. 두 면이 개봉된 종이상자를 들고 머리에 써 보기도 하고, 다시 “까꿍!” 종이상자를 통해 바라보기도 한다. 종이상자를 터널처럼 빠져나오며 빨간 장난감 자동차랑 함께있는 파란 곰돌이에게 인사를 한다.
곰돌이와 함께 있는 장난감 자동차를 보자 아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종이상자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다. 곰돌이를 뒤에 태우고 아기는 자동차를 운전한다. 부릉부릉, 부웅. 자동차는 신나게 달려간다. 곰돌이랑 신나게 자동차를 타는데 갑자기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누군가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 돌발 상황에서도 아기의 놀이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곰돌이한테 숨자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멀리 숨는 게 아니다. 그저 종이상자 안에, 여전히 몸의 일부가 드러나는데도,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들킬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숨바꼭질이다. 드디어 종이상자를 똑똑 두드리는 손. 아이가 얼굴을 들어보니 형아다. 와, 함께 놀 형아가 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곰돌이도 두 팔을 활짝 펴고, 장난감 자동차도 몸체 앞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