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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떠난 뒤로는 서울의 옛 도심에 갈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도심은 물론 변두리의 걷기 좋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서울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서울 도심걷기에 다시 나설 것 같기도 합니다. 산책 삼아 도심을 걷는다면 일상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코에는 학회와 출장 때문에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전철과 걸어서 도시를 구경한 적도 있습니다. 확실히 도쿄와 서울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도쿄 산책자>는 도쿄를 방문한다면 유념해서 볼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책을 쓴 강상중 교수는 규슈의 구마모토 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로 세이가쿠인대학 교수입니다. 젊어서는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을 했는데, 21살이 되던 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서울을 찾았을 무렵, 저 역시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저자의 눈에는 서울이 도쿄의 어두운 그림자로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지하철1호선 공사가 막 시작되는 등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였습니다.
필자가 도쿄에 처음 가본 것은 2003년 무렵이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거품경제가 막바지에 올라있던 시절이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쳐흘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재해가 덮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도쿄 산책자>에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도쿄의 옛 모습을 되살려보고, 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도쿄의 깊숙한 면모를 살펴보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젊었을 적에 고민했던 정체성의 문제를 짚었는데, “인간 누구나 다양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이 없음을 부정하기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27쪽)”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곳이 바로 ‘도시’라는 것입니다. 타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는 것인데, 도시란 바로 그런 타자를 만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도쿄에 가본 것도 몇 번 되지 않는데다가 업무 차 간 것이라서 제대로 구경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메이지신궁 정도를 제외하고는 저자가 찾아간 곳이 모두 생소한 까닭에 저자가 느낀 점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도시를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운 것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학생 때는 야간 침대열차를 타고 집에 다녀오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행은 흔히 인생의 전기가 되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행이 사람을 순수하게 ‘보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46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쇼와 중기까지 활동한 철학자 미키 기요시(三木淸)가 쓴 『인생론 노트(人生論 ノ-ト)(1947년)』에서 읽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함께 여행을 떠나세요”라는 대목을 기억해냈습니다.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들어 알고 있던 말입니다.
저보다는 연배가 조금 있으신 편입니다만, 시대적 배경이 거의 비슷한 까닭인지 인용하는 것들이 익숙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일본적인 것들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배경의 차이 때문인지 금세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특정한 장소로부터 떠올리는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은 접근방식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산책삼아 길을 나섰다기보다는 우연한 일로 가본 곳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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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거대도시 서울의 한가운데,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인 나만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해 익숙한 몇몇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가끔 술을 마시며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출퇴근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같은 층 맞은 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웃집 주민까지도 사실 나와는 상관없는 낯선 사람(stranger)일 뿐이다. 서울이 아닌 도쿄나 북경이라고 다를 바 없다. 과연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당신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가끔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곳이 없다.
이 책에서 도쿄의 스트레인저인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는 도쿄의 중심부와 변두리 구석구석을 직접 걸어다니며 산책자의 시선으로 도쿄를 탐색한다. 그는 도쿄를 '중성적이고 평평하며 청결한 메트로폴리탄'으로 정의한다. 소요도 혼란도 일탈도 우연한 만남도 사라지고 오로지 욕망만을 채우는 거대한 소비지 도쿄의 모습을 만난다. 도쿄 생활이 일견 사람을 생활을 편하고 자유롭게 해준 것 같지만 사실은 인간을 원자화하고 고립시키며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대지진과 쓰나미, 방사능과 전력난이라는 대재난을 겪고 난 후의 도쿄가 이젠 이방인들도 포용하는 따뜻한 도쿄, 사람 온기가 있는 도쿄가 되길 기대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저자가 찾아간 도쿄의 지역들은 도쿄에서 일상을 벗어나 있는 공간들이다. 역사를 간직한 도쿄의 장소들과 그곳에 사는 도쿄인들의 내밀한 풍경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일본 근대화의 뒷모습을 볼수 있는 롯폰기힐스나 하라주쿠에서부터, 세계화의 현장인 샤넬 긴자점과 신오쿠보를 둘러보기도 한다. 디지털시대를 꿋꿋이 버텨온 진보초 고서점가와 전통 있는 가부키자에서 도시 문화의 향기를 추적해 보기도 한다. 아키하바라와 고양이 카페, 노동자 주거 지역인 산야 등에서는 원자화되고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두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첫째는 역사를 간직한 도쿄의 풍경을 구석구석 스케치하는 저자의 눈길따라 동경, 나아가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단면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도쿄에 잠시라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하나의 장면에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만 낯선 여행자의 시각에서도 쉽게 그 자취를 돌아볼 수 있다. 둘째는 메트로폴리탄 도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라는 측면이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이 주는 의미, 도시 속의 이방인의 모습, 주변과의 연결과 커뮤니케이션이 끊어져 가고 있는 원자화된 현대인의 모습, 사회문화의 변화상에 대한 성찰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보자. 나는 왜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책을 덮으면서 수많은 상념들이 스쳐간다. 질문들에 대한 모든 답들을 당장 발견하지는 못하겠지만 장마비 속에서도 웃을을 잃지 않고 보다 따뜻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그런 계기는 마련하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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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게 되고 나서 도서관이나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리는 일이 많아졌다.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수시로 찾아보기도 하고, 요즘 어떤 책들이 인기가 있는지 순위를 보기도 한다. 우연히 알게된 강상중 교수,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 2세로, 일본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도쿄 구석구석에서 어떤 이야기를 펼칠까 궁금해서 집어든 책은, 수긍할만한, 혹은 조금 더 생각할 만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저자는 1950년 구마모토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로, 일본 학교를 다니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1972년 한국 방문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였다. 이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본명을 쓰기 시작했다. 정치학과 정치사상사 전공,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고, 현재는 구마모토현립극장 관장 겸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도쿄 산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첫 시작은 바로 저자가 자신의 '강상중'이라는 모습을 깨달은 계기가 되었던 '서울' 1972년 당시는 군사정권아래였고 휘황찬란한 도쿄와는 다른 날것의, 흙탕물의, 소란이 가득한 서울이었지기에, 그는 그 속에서 쩔쩔 매면서도 무언가 아득한 그리움을 느꼈다고 한다. 무언가 발산하지 못했던 자아의 존재를 찾았다고 해야할까?
저자는 도쿄의 지역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그 안에서 사람에 얽힌 인문학적인 사색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약 1년간 일본에서 거주했던 적이 있던터라 그가 소개하는 지역지역이 지극히 반가웠다. 그러나 일반적인 시선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 단순히 관광객이나, 거주인으로써의 사색이 아닌, 조금 더 날카로운 사회비판적인 시선으로 또 한편으로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로-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소개해주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가득했다. 재일 한국인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쭈욱 살아오고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일본인이기에,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생각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주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이 일본인, 일본사회, 일본의 도시 도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하려나? 첫번째 장소는 메이지신궁, 일반적으로 도쿄를 여행할때 꼭 들르는 곳 중의 하나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산과 숲, 신을 느낄 수 있는 곳
두번째는 국립 신미술관,2007년 개관한 록폰기의 미술관이다.
일본에는 마쓰리(축제)가 많이 열린다. 불꽃놀이에서부터 벚꽃놀이까지-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참으로 많이열린다. 저자는 산자마쓰리(아사쿠사에서 진행되는 축제, 도쿄를 대표하는 마쓰리 중 하나)를 이야기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메이지신궁 옆에는 묘하게 하라주쿠가 붙어있다. 패셔니스타들이 한가득이고, 애니메이션과 같은 복장을 한 젊은이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하라주쿠에서 발산되는 키워드는 바로 가와이 (귀엽다:라는 느낌의 일본어) 저자는 이 워딩을 '성숙'대 '미성숙'이라는 이분법이 약해지면서 태어난 말로 정의한다.
'산책을 저 분과 하면 정말 많은 것을 알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절로들 만큼 저자의 산책길에는 굉장한 깨달음과 사색의 문구들이 등장한다. 혹 다시 도쿄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이책을 가지고 가서 그 장소에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통째로 배낄수는 없으니 기억에 남는 구절만 조금 더 정리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1년 정도 생활하면서, 일본인들을 꽤 많이 접했었는데, 일본인들은 '주위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일본에 가면 아무도 자기를 신경쓰지 않고 너무도 조용하고 질서정연한?모습+ 거기에 세밀하고 정갈한 제품 & 음식에 반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관광객이 아닌 생활인으로 일본인과 함께하게되면 또다른 일본인의 모습을 보게된다.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신경쓰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벽이 있는 듯이 행동하고, 겉모습과 확연히 다른 속모습이 있다는 것도 알게된다. 집단으로 강하지만 개인으로는 약하다고 해야하려나? 상식이 가득한 곳이지만 비상식적인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굉장한 일들이'일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저자는 재일 한국인2세이지만, 일본문화와 사회속에서 자랐기에 끊임없이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면서도, 1972년에 한국에서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던 것 같이 한국인 특유의 '호기심/ 궁금증/ 생동감'등의 가치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과 일본, 두 문화의 이종결합, 도쿄의 스트레인저로 저자는 더많은 다양성과 사색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방황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 '스트레인저'같은 위치가 독보다는 득이 되지 않았을까? 책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있는, 또다른 지식인을 만나게 되어서 참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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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책을 너무 읽지 않는다. 예전보다 글은 더 많이 읽는다. 나도 그렇다. 그 이유는 블로그와 같은 인터넷으로 글을 읽는다. 덕분에 글은 과거보다 더 많이 보고 읽는다. 블로그에 올린 글이 주옥같다고 다들 감격해한다. 그 글을 쓴 분을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너무 감각적인 글에 사람들이 감동한다. 진중하고 진짜 울림이 있는 글에 사람들은 오히려 반응하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피하고 읽지 않는다. 블로그에 그런 글은 올려도 잘 읽지 않는다. 가벼운 글이되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글에 사람들이 더욱 열광한다. 잔잔하 마음에 큰 파도를 불러일으켰다는 표현도 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 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도 그 글이 좋은 글이란 것은 인정하지만 - 그러니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 과한 사람들의 반응에 놀란다. 곰곰히 따져보면 그가 쓴 글이 좋아서보다는 그 글을 쓴 사람이 더 중요한 듯하다. 이런 경우가 갈수록 더 많아진다. 최근에는 점차적으로 블로그와 관련된 인터넷 글을 잘 읽지 않게 된다. 내가 상대방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그 글을 쓴 의도가 명백히 읽히는데도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점이 답답하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 이건 책을 많이 읽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블로그에 아무리 글을 많이 올려도 책 한 권에 쓰는 글과는 차이가 있다. 최소 2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일관성있게 써야 하는 것은 꽤 힘들다. 현대인에게 책보다는 블로그와 같은 곳에 올라온 글이 더 맞기는 하다. 깊지 않고 가볍고 편하게 읽고 넘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데 그걸 모른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걸로 아는데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강상중의 책이 그런 경우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영~~ 별로라고 할 수도 있다. 난 우연히 강상중의 책을 읽고 팬이 되었다. 그가 쓴 대부분 책을 읽으려고 한다. 강상중은 자이니치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그 정체성의 혼란.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 친척의 초대로 한국에 온 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으로 살아간 사람. 다른 곳도 아닌 일본에서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일본국적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이야기하지도 상상이 된다. 그는 강상중 이름을 버리지도 않고 꿋꿋하게 일본에서 지식인이 되었다. 오로지 지식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어도 정말로 대단한거다. 책을 어렵게 쓰지도 않는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을 언급하며 쓸데없이 어렵게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내가 이만큼 잘났다고 자랑하는 글이다. 자신만 알고 남에게는 알려주지 못하는 지식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좌절감을 느끼기보다는 마음것 자랑하는 그 작가의 글은 더이상 읽지 않으면 된다. 천재가 세상을 이끌어도 내가 꼭 그 천재 수준에 맞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조금 늦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다. 강상중이 이번에는 도쿄에 대해 소개한다. 도쿄는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만난 도시다. 동양의 그 어떤 도시보다 먼저 서양을 받아들였고 서양이 되고 싶어했던 도시다. 성장기에 도쿄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며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이제 도쿄는 성장이 지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활력은 여전하지만 과거와 같이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도시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울은 아직도 욕망을 꿈꿀 수 있는 도시가 아닐까. 도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쓴 책이 아니다. 도쿄에서 유명한 곳을 저자가 직접 돌아다니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책이 보통 그 장소에 대한 사진만 찍는 것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도 저자가 직접 그 현장에 있는 사진을 찍었다. 그와 함께 저자 자신이 갖고 있는 추억과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자연스럽게 도쿄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도쿄는 단순히 도시가 아닌 일본의 수도다. 도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들고 그 사회적 의미도 돌아보게 한다. 나도 이런 책 한 권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출간은 힘들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책이 힘들면 블로그에라도 장소와 의미와 추억과 유래 등을 함께 글로 진중하게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더구나, 서울은 내가 나고 자라고 모든 추억이 깃들여 있는 장소지 않는가. 이 책에도 도쿄 중심이 아닌 곳도 소개하는데 나도 서울 곳곳에 어린 추억들이 있다. 대로변도 아닌 골목에 말이다. 책은 대단히 거창하지도 않고 심각한 정의를 내리며 머리를 강하게 치지도 않는다. 그래도 진중하게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런 책이 더 좋다고본다. 읽으면 가슴을 파고 감동에 전율되기보다. 책을 읽고 직접적으로 남은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내 무의식 어딘가에서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남아있는 책이 난 더 좋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책이 얇다.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도쿄 가고 싶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532266446 마음의 힘 - 이니시에이션 http://blog.naver.com/ljb1202/205261317 고민하는 힘 - 인간만이 http://blog.naver.com/ljb1202/187066629 살아야 하는 이유 - 소세키와 윌리엄 제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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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동안 저자의 책들을 읽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우여곡절의 인생을 사신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금 더 올드한 느낌을 떨치고 다양한 방면의 인문사회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 나왔으면 참 좋을 텐데 하고 .. 그랫으면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어떻게 알았는지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확 와닿았다. 그래 이 책이야. 그리고 산책길에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으로 오후 내내 그리고 밤이 깊어질때까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게 되었다. 두말 필요없이 아직까지 강상중의 책을 읽지 못했다면 단연코, 이 책은 필독서 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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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이 아님에도 오래된 책으로 여겨진다. 도쿄의 곳곳을 산책하며 시대의 의미를 읽어주는 편지라고 할까? 규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강상중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했던 책이다. 서경식 선생으로 시작하여 자이니치에 대한 관심은 강상중 선생의 글까지 가 닿았다. 예리한 시선으로 일본을 분석하는데 슬픔이나 상처가 느껴지지 않았다. 역사를 초월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시대 불안한 청춘들에게 쓰는 편지라고 규정한다면 여기에 포함되는 청춘은 한일의 국경이나 민족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자이니치의 아픈 역사를 충분히 안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조언하는 그는 나에게 역사와 지리, 정치와 문화를 넘어선 자로 비쳐진다. 한마디로 '대인배!' 선생의 학술적인 책들은 전공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지식이 미천하여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에세이는 공감되는 면이 많았다. 서경식 선생의 글은 슬퍼서 좋다면 강상중 선생의 글은 슬프지 않아서 좋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좋은 글은 좋은 삶에 뿌리를 둔다. 그들이 거쳐온 궤적이 글을 탄생시키는 것. 한번 더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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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름 나가노 데쯔오, 한국이름 강상중 이 두이름의 정체성에대한 고민을 담았을 것 같던 느낌이 있었다. 도쿄와 서울에서 느끼는 감정, 그건 동질성도 있으면서 그 각자가 갖고 있는 역사의 뿌리때문인지 서로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다. 도쿄에서 느끼는 정돈된 도시화속에 지극히 개인화된 모습과는 반대로 서울은 도시속에 정이라는 고유함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도쿄에서 한달간 살아봤었던 나의 느낌으로는 도쿄의 고층빌딩 사이사이에 사람사는 모습이 있었다. 단지 한달이라 피상적으로만 봤을 수도 있지만 벌써 10년전이니 지금 생각해도 아니 작년에 한번 갔을때도 그 모습들은 변하지 않았던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보면 이젠 쉽게 변화하지 않는 도시, 도쿄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성장은 멈췄지만 성숙해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서울은 많이도 변하고 있다. 아직 채워야 할 공간이 무수히 남은것처럼 수직으로 그리고 수평으로도 성장중이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청년같이 저자는 도쿄의 구석구석을 산책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일본의 과거를 연결하고 거쳐간 곳에서 의미를 부여한다. 메이지유신후 서양화에 몰두했던 일본, 제국주위까지 따라해서 동남아 여러나라를 침략하고 그 대가로 본토까지 폭격을 당하고 핵폭탄앞에 무릅을 꿇었던 일본, 그후 미국을 추종하며 뛰어난 경제성장을 거두었던 일본, 그 역사의 중심이 도쿄였으며 곳곳에 역사를 품고 있는 장소가 그의 방문 장소였다. 일본은 아직 옛것이 아주 많이 보전되고 이어져내러가고 있다. 전통적인 축제인 마쯔리를 비롯하여 신궁,공원,신사 이넌것들이 있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관광지로 삼는거 같다.
1. 진정한 자기같은 건 없습니다. 있는 건 자신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것을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깨닫는것입니다 자기찾기의 여행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각오와 담력입니다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극복법은 그냥 받아들임이었다. 그런 혼란또한 자신의 일부라고 너무 싱거울것 같지만 진정한 자기라는 허상의 것을 찾는 헛수고를 버리라는 말이다. 2. 확실히 고정되어 있으면 겉으로는 안심이 되겠지만 그것이 변화의 흐름을 막아버리게 되어 오히려 내면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게 되고 불안감만 커집니다. 사실 인간의 마음은 흘러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 3. 여유란 돈이나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은 뒤로 물리고 볼수있는 정신적인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인간의 욕망이나 상승지향이 수직적인 헝태로 나타난 그것이 고층빌딩이라는 것입니다 : 김훈의 자전거 여행2에서 일산신도시를 보며 작가가 한 말에 수직과 수평이라는 문구가 이 글을 읽자 떠올랐다 수직은 불안하다. 높은것은 그것을 유지하는 에너지도 또 넘어졌을 때의 피해도 무지막지하다. 수직을 내세우는 욕망은 비교우위라는 욕망때문이 아닐까? 5. 왜 문학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그건 아마 책과 대화를 하면서 비대해진 자기로부터 또 한사람의 자기를 발견해 나갈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안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안다거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사색함을서 거듭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책을 읽으면 교만해질 수 없는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족하고 하찮게 느껴지는 나를 만나서 그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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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음]과 에세이 [마음의 힘]을 읽은 후 강상중 교수님의 이전 출간책을 역으로 읽어가고 있다. [도쿄 산책자]는 얼핏 보면 인문학자의 여행에세이처럼 보이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저자의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면 어느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내가 리뷰를 쓰는 방식이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나 공유하고 싶은 내용보다 '느낀 점'에 가까운 유년시절 방식에 가깝긴 하지만 이 책의 리뷰는 그런 경향이 더욱 짙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호텔의 기능 중 하나로 '문화 장치'의 기능을 언급하며 호텔이 닫힌 공간이자, 특정 '부류'에게만 열린 공간이 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로비에서 다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거나 로비에서 콘서트를 열어 '열린 공간'으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을 때 로비의 혼잡함과 소란스러움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면 저자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큐레이터로 살아가기]의 저자는 강상중 교수의 의견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실제 최란아 저자가 큐레이터로서 했던 작업 중에 호텔로비에서 미술품을 전시해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점을 좀 더 깊게 들여가면 방문했던 지역 혹은 크게 봤을 때 해당국가의 문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소개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숙박업소'로. 어렵게 어떤 장소로 이동하게 하거나 텍스트를 통해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보았던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우드 잡>은 청년들이 숲에서 적응해가는 과정을 요리와 직업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축제'를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저자는 축제, 마쓰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실 마쓰리와 혁명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마쓰리에서 혁명이 된 예는 얼마든지 있고, 반대로 혁명을 기념할 때 '제'라는 마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59쪽
일본의 경우는 양쪽 모두의 의미를 가진 축제가 다양하게 열리는 것 같다. 반면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축제는 대부분 평안과 풍작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드라마에서 보는 신녀 혹은 무녀들의 신탁을 받는 것을 실제 본 적은 없었다. 앞서 두 언급한 두영화에서의 마쓰리는 지역의 결합을 강화하는 의미가 강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데 모이는 축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있겠지만 지역내에 결속력을 강화하는 의미의 축제의 맥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자면 이런 축제가 국내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의견은 나와는 좀 반대였다. 아무래도 일본과 국내 축제의 실정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쿄를 현지인만큼 자주 방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방문할 때 마다 조금 꺼리는 지역이 있다면 바로 '긴자'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청담거리라고들 흔히 말하는 곳이다. 소위 말하는 명품브랜드가 밀집한 곳으로 원래는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거리라고 한다. 처음에는 전통깊은 브랜드가 입점했었지만 지금은 약간 다른의미의 '명품'들이 들어선 것이다. 초창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분명 지금의 모습은 한국의 청담의 모습과 방향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산책지역은 '진보초'다. 헌책방의 거리로 잘 알려진 이곳에서 저자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미 다른 책에서 적었거나 나중에 출간한 책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 페이지로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 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과의 만남은 달라지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책과의 만남도 달라집니다. '어떤 책과 만났느냐'가 당신의 사람됨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139쪽
저자가 도쿄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사색에 빠지는 것처럼 그가 걸었던 곳을 걷게되면 나 또한 책의 문장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산책을 평소에 즐겨하지만 보통은 생각의 멈춤을 위한 산책이 많았기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준건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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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찾아 서고를 어슬렁대던 중 우연히 발견한 강상중 교수의 『도쿄 산책자』. 제목만으로는 도쿄의 명소를 찾아 산책을 하며 쓴 에세이집일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도 식힐 겸 여유시간에 가볍게 읽어보자며 대출을 한 책이다. 하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무게감을 그리고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을.
메이지 신궁에서 시작하여 국립신미술관, 롯폰기힐스, 하라주쿠, 샤넬 긴자점, 진보초 고서점가, 가부키자, 진구 야구장, 아키하바라, 산야, 국회의사당, 쓰키지 시장, 가부키쵸 등 도쿄 시내의 내로라하는 명소를 산책하며 강상중 교수 자신의 이야기와 박학다식한 인문학적 지식이 잘 버무려져 맛깔나는 코스 요리를 즐기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다.
강상중 교수는 1950년 구마모토 출신의 재일 한국인 2세로 우리나라에서는 재일 한국인 최초의 도쿄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이 따라붙는다. 시골 구마모토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작한 도쿄생활의 기억을 더듬어 학생 시절 바라보았던 도쿄, 버블을 겪은 도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도쿄를 애정 어린 눈길로 성찰해가며 뛰어난 문체로 독자를 흡입한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는 인문학이다. “왜”,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새로운 사고의 문을 열어준다. 그 속에서 도쿄뿐 아니라 일본의 역사, 사회, 문화, 교육 등에 대한 지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애초에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왜?”, “무엇 때문에?”라고 묻는 학문입니다. “왜 살아가는가?”,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왜 일하는가?”등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나 사회의 바람직한 가치와 크게 관련되어 있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들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무엇이든지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고, 인문학적인 테마도 모두 “내 마음이지”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적인 물음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뇌해 보았자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면 풍요로운 사회는 구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넓은 교양, 인문학의 확고한 토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pp.122-123)
마지막으로 본문에 삽입된 사진들이 교수가 아닌 일반 풍경 사진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에게는 감명 깊은 글을 만났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마주친 교수의 얼굴은 가독성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대로 술술 써내려가는 교수의 훌륭한 필력에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간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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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시로 - "나는 이 도시가 좋아. 멸망으로 향한 길을 가장 '즐겁게'걷고 있는 도시니까." ([도쿄 바빌론] 中)
책을 읽으면서, 자꾸 귓가에서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이 들리는 것 같았다. 도쿄처럼 서울도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불에 타죽을 것을 예감하면서도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강상중 교수는 이방인으로서 도쿄의 구석구석을 산책하고, 때로는 안내자 역할까지 한다. 지은이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였다고 생각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관동지역은 피하고 있지만, 번화가 곳곳에 숨겨진 한적한 산책로가 가끔은 그립니다. 그런 여백이 도쿄의 숨구멍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강상중이나 대담자로 나온 고이즈미 교코도 아직 도쿄(일본)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일본의 미래에 비관적이지만, 일본이 정상적인 국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